'꼰대인턴', 김응수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이유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제목만으로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본래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메시지가 명쾌하면서도 임팩트가 있어야 작품의 힘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꼰대인턴>은 꼰대였던 인물이 인턴의 처지가 된다는 그 독특한 아이디어가 작품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꼰대인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만식(김응수)이다. 그가 바로 '꼰대 (시니어) 인턴'이기 때문이다. 옹골 라면사업부에서 가열찬(박해진)이 인턴시절일 때 그를 괴롭히던 팀장이었지만, 퇴직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경쟁업체 준수식품 본부장인 안상종(손종학)의 제안으로 가열찬의 팀에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오게 되는 인물.

 

그 역전된 상황이 주는 기대감은 그 무엇보다 클 수밖에 없다. 결코 이만식 같은 꼰대는 되지 않겠다 마음먹었던 가열찬은 과연 이만식을 인턴으로 들이고 꼰대짓을 하지 않을까. 만일 꼰대짓을 한다면 이만식은 어떻게 반응할까. 으르렁대면서도 팀으로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떤 관계의 변화를 겪을까.

 

하지만 가열찬과 이만식이 팽팽한 대결구도로서 주던 긴장감은 의외로 쉽게 풀려 버렸다. 가열찬과 이만식이 각각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갑과 을의 관계를 악연으로 맺어왔지만, 알고 보니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가열찬과 이만식은 그렇게 쉽게 팀장과 팀원으로 묶여버린다.

 

애초 안상종과 남궁준수(박기웅) 대표가 공조해 이만식을 끌어들였고, 그를 통해 가열찬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던 그 계획은 쉽게 무산되었다. 이제 이만식은 가열찬을 돕는 든든한 우군이 되어 있다. 대신 악역은 남궁준수가 온전히 맡는다.

 

과장된 병맛 코미디로 그려진 가열찬과 이만식이 섬에서 고립된 채 생존(?)하는 이야기는 남궁준수가 꾸민 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오랜 연구 끝에 가열찬과 이태리(한지은)가 협력해 만들어낸 핫쭈꾸면은 스프를 납품하는 업체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사실을 남궁준수가 터트리면서 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 과정에서 멜로들이 깔린다. 가열찬은 과거 핫닭면을 만들었을 때의 뮤즈가 바로 이태리라는 걸 알게 되고, 주윤수(노종현)와 탁정은(박아인)은 계약직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까워진다. 적당한 멜로도 더해지고, 라면업체에서 벌어지는 성공기와 위기 그리고 그 극복기가 주는 재미는 충분하다.

 

하지만 어딘가 이렇게 단순해진 대립구도와 적당한 멜로의 결합이 생겼지만, 애초 <꼰대인턴>이라는 이색적인 관계의 조합이 주던 힘은 조금씩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그 이유는 가열찬과 이만식의 관계가 너무 쉽게 화해무드로 정리되어 버려서다.

 

결국 중요해진 건 이만식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가열찬의 오른팔 역할 정도에 머무는 상황은 어딘지 이 캐릭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만이 가진 그 색깔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이만식이라는 '꼰대 인턴' 캐릭터가 좀더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그게 본래 이 작품이 하려던 이야기이기도 할 테고.(사진:MBC)

'VIP'가 그리는 두 개의 세계, 어느 쪽이 이길까

 

SBS 월화드라마 <VIP>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계속 부딪친다. 처음 그 부딪침은 나정선(장나라)과 박성준(이상윤)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듯 보이는 부부 사이에서 시작했다. 박성준의 불륜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 불륜 사실이 밝혀지고 그 대상이 박성준의 라인인 하재웅(박성근) 부사장의 숨겨진 딸이자 VIP 전담팀에 갑자기 막내로 들어온 온유리(표예진)라는 게 드러나면서 그 사적인 대결구도는 공적인 대결로 이어진다.

 

온유리가 하루아침에 하유리가 되면서 성운백화점 재벌가, 즉 VIP의 딸이 되면서 전담팀의 서열 구도가 능력이나 경력이 아닌 혈연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다. 부사장이 공공연하게 하유리를 딸이라 공표하고, 성운백화점 재벌가에서도 그를 집안사람으로 받아들이면서 하유리도 조금씩 변한다. 급기야 부사장이 그 힘으로 하유리를 덜컥 과장 승진시켜버리자 노력해서 성공하려는 보통의 샐러리맨들은 커다란 허탈감에 빠진다.

 

물론 <VIP>는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대결구도 또한 담아놓은 면이 있다. 하재웅 부사장과 박성준 라인이 가진 권력구도는 새로 부임해온 하태영(박지영) 사장과 나정선과의 가시적인 남녀 대결을 보여주고, 송미나(곽선영)와 이현아(이청아)가 자신들을 성추행한 배도일(장혁진) 이사를 미투 폭로로 내모는 그 과정에서도 남녀의 대결구도는 분명히 보인다. 여기서 나정선-이현아-송미나-강지영(이진희)은 하나의 여성들의 연대가 되어 서로를 돕는다.

 

그렇지만 <VIP>가 무조건적인 남녀 성별 대결구도를 그리는 건 아니었다. 거기에는 송미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려 노력하는 남편 이병훈(이재원)과 이현아를 응원하는 차진호(정준원) 그리고 은근히 나정선을 걱정해주는 마상우(신재하) 같은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 등장한 하태영 사장은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의지가 더 큰 인물이다. 그래서 이 대결구도는 남녀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당한 노력으로 그만한 대가를 얻으며 성취하려는 보통의 정상적인 인물군들과, 부정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낙하산 인사를 하고 권력의 힘을 이용해 약자들에게 갑질하는 비정상적인 인물군들의 대결이다.

 

하재웅 부사장과 박성준의 검은 네트워크가 그걸 대변한다. 하재웅의 내연녀와 차명계좌를 박성준이 관리하고, 그런 내밀한 관계로 박성준이 이사가 되는 그 과정은 이른바 ‘VIP’라는 특정 인물군들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부정이 저질러지고 그런 결탁을 통해 성공을 거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다.

 

반면 여전히 박성준 밑에서 차장으로 일해 왔고 심지어 지방발령까지 갈 위기에 몰렸던 나정선의 고군분투는 시청자들을 그 분노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는 남편이 이제 대놓고 불륜을 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도 사내의 복잡한 관계에 얽혀 오히려 벼랑 끝에 서 있게 된 상황이다. 부사장이 아예 초 VIP들을 위한 팀을 따로 꾸려 박성준과 자신의 딸 하유리를 그 팀에 넣고 VIP 전담팀을 와해시키려 하자, 나정선은 하태영에게 블랙다이아몬드 클럽을 운영하자며 박성준 팀과 TF팀을 구성한다. 부정한 방식으로 사내 권력을 쥐려는 저들과 나정선이 본격적으로 대결하기 시작하는 것.

 

하유리가 하루아침에 과장 승진을 하는 모습은 육아 때문에 만년 사원으로 승진을 못한 채 심지어 사내 갑질에 성추행까지 당하며 이제는 퇴사를 고민하는 송미나와 대비된다. 저들은 별 다른 노력 없이도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내에서 승진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뛰고 또 뛰는 송미나가 그런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구도다.

 

드라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혈연과 어두운 관계로 이어져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들과 오로지 노력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으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게 되는 이들이 가진 두 세계의 부딪침을 그린다. 거기에는 역시 두 개의 너무나 다른 의미를 가진 VIP들이 있다. 혈연과 어두운 관계로 이어진 이들의 세계에는 부정한 일들조차 처리해주고 받들어지는 VIP들이 존재한다. 한편 보통의 삶에서는 저들의 갑질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는 남편이나 남자친구 혹은 회사동료 같은 진정한 의미의 VIP(아주 중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VIP>는 이 서로 다른 인물군들을 대비함으로써 어느 쪽이 진짜 VIP인가를 질문하고 있다.(사진:SBS)

본격 대결 들어간 ‘아스달 연대기3’, 결과적으로 휴지기는 득

 

결과적으로 보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2를 끝내고 파트3로 이어지는 두 달 여간의 휴지기가 득이 됐다고 보인다. 워낙 큰 기대를 갖고 시작했지만 파트2까지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는 적지 않은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다뤄본 적이 없는 선사라는 시대의 낯설음, 그 낯설음을 채우기 위해 여러 콘텐츠들을 참조하다보니 생긴 의상이나 배경, 설정 등의 유사함,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과한 설명들이 그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파트2까지 진행되며 그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인지시킨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3로 와서는 상황 설명이 아닌 본격적인 대결구도에 들어감으로써 훨씬 몰입감이 높아졌다. 신성한 방울을 찾아냄으로써 대제관의 자리에 오른 탄야(김지원)는 노예가 된 와한족을 구하고 돌담불로 끌려간 은섬(송중기)까지 구해내려 하고, 탄야로부터 아라문 해슬라의 재림으로 지목받아 아스달 연맹 최강자로 우뚝 선 타곤(장동건)은 태알하(김옥빈)와 함께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려 한다.

 

한편 돌담불에서 탈출에 성공한 은섬은 죽은 사트닉(조병규)의 유언에 따라 주비놀에 갔다가 모모족의 샤바라인 카리카(카라타 에리카)와 아들을 구함으로써 은혜를 갚는 모모족이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은섬은 와한족을 구해내고 아스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부하들을 거느려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처럼 <아스달 연대기> 파트3는 저마다의 인물들이 가진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며 생겨나는 대결구도가 선명해졌다. 피를 보지 않고 아스달을 장악하려던 타곤의 야망은 아사론(이도경)의 계략으로 그가 이그트라는 게 밝혀지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결국 “모조리 죽여주겠다”며 폭주하기 시작했고, 은섬은 아스달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모모족을 얻은 데 이어, 아고족의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 은섬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려는 타곤과 그 왕국을 무너뜨리려는 은섬의 대결은 국가의 탄생과 자연 그대로의 삶 사이의 대결구도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어째서 어떤 종족은 국가가 되고 어떤 종족은 그래도 종족으로 남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대결구도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훨씬 편안해진 건 이런 문화인류학적인 무게감과 또 단군신화 같은 우리네 선사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을 한 꺼풀 내려놓고 있어서다. 그런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대신 그 안에서 인물들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판타지 게임 같은 대결 구도를 선명히 그려내고 있다.

 

사실 주제의식은 그 게임 같은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그려나가면서 저절로 붙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자체의 재미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시청자들이 이 세계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잠시 가졌던 휴지기는 <아스달 연대기>에는 어떤 국면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포용 혹은 위계, ‘봄밤’이 그리는 두 세계의 대비

 

이정인(한지민)의 엄마 신형선(길해연)이 유지호(정해인)의 엄마 고숙희(김정영)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잡은 두 손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들이 있었다. 고숙희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에는 아이가 있어 자신의 삶을 거의 포기하듯 살아가고 있던 아들이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그럼에도 신형선이 가졌을 부담에 대한 미안함, 그러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손을 잡아준 그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었다.

 

MBC 월화드라마 <봄밤>이 짧게 보여준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너무나 상반된 두 개의 기성세계를 보여준다. 그 한 세계는 자신의 마음과 달라도 이를 이해하려 하고 포용하려는 세계다. 신형선은 그 세계를 대변하는 인물. 그는 딸 이정인이 만나고 있는 유지호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힘겹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딸을 꼭 껴안아줬다. 그 역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보통의 엄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고 그러니 그 힘겨운 선택을 한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끌어안아주게 되었던 것.

 

도대체 어떤 남자일까 궁금해 유지호가 일하는 약국을 찾아와 살피다, 우연히 인근 카페에 들어온 신형선은 거기서 고숙희와 약사 왕혜정(서정연)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들을 걱정하며 또 그런 아들과 만나는 이정인에 대한 좋은 마음을 드러내는 그 대화를 들은 신형선은 버스정류장에 홀로 앉아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고숙희에게 다가가 자신이 이정인의 엄마라며 손을 내민다. 그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다만 같은 엄마로서 서로를 이해한다. 그래서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이 전해진다.

 

반면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이 엄마들의 가슴 먹먹해지는 만남과 대비되는, 소원해져 서로 얼굴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이태학(송승환)과 권영국(김창완)의 관계를 병치한다. 정년을 앞두고 있어 이사장인 권영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딸 이정인과 그에게 집착하는 권영국의 아들 권기석(김준한)을 내놓고 밀어줬던 이태학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날아온 이정인과 유지호의 다정한 한 때를 사찰한 사진들과 그 사진들이 아마도 권영국이 보냈을 거라 판단하는 이태학은 더 이상 그런 장밋빛(?) 미래는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된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세계. 그들이 맺고 있는 모종의 거래 관계는 그것으로 차갑게 식어버린다.

 

<봄밤>은 다른 입장에 있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준 신형선과 고숙희의 인간적인 관계와, 서로를 이용하고 거래하는 이태학과 권영국의 권력과 연계된 거래 관계를 대비한다. 또 권력과 폭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려는 권기석과 남시훈(이무생)의 ‘범죄적 세계’와, 이에 맞서는 이정인, 이서인(임성언), 이재인(주민경) 그리고 신형선의 연대를 대치시킨다.

 

그래서 드라마는 초반부터 별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갈등과 대립의 요소들이 사실은 일상 속 깊이 들어와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걸 드러낸다. 차츰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평온해 보였던 일상에 담겨진 폭력적이고 권력적인 세계의 민낯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하지만 동시에 그에 맞서는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세계의 만만찮은 대결구도가 그려지면서 <봄밤>은 흥미진진해졌다.

 

달라도 손을 잡고 이해하려는 엄마들과, 타인의 입장이나 고통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기기 위해 ‘부정한 방법’들까지 동원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추구하는 이들의 세계. 그 팽팽한 대결구도에는 <봄밤>이라는 달달한 멜로를 소재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가는 드라마가 제기하는 만만찮은 문제의식이 담겨있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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