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리얼’을 ‘실패’가 입증하다

누구나 소풍 전 날, “내일은 꼭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빌었던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여행은 날씨에 민감하다. 또 변수도 많다. 갑작스런 폭설로 발이 묶이기도 하고, 우연한 사고(?)에 일정이 모두 바뀌기도 한다. 길에서 만난 사람과 생각지도 않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뜻밖의 재미를 얻기도 한다. 그것이 진짜 여행의 참 맛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여행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특별한 설정 없이도 그 낯선 장소로 떠나는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든 벌이지게 마련이다. 그걸 촘촘히 발견해내고 때론 캐릭터가 그 발견된 상황을 강화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자연스럽게 그 리얼이 주는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야생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1박2일’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야생과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엮일 때다. 박찬호와 강호동이 대결하듯 한겨울 계곡 물에 들어가는 장면은 인물들 간에 형성된 미묘한 신경전과 함께, 마침 그 장소, 그 시간에 존재하는 얼음장같은 계곡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도 인위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1박2일’은 버라이어티쇼라는 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웃음의 포인트를 현장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호동은 출연진들을 때론 윽박지르고 때론 다독이면서 지나치는 연못에 뛰어들게 만들어, 그 연못을 승기 연못으로 만들어버린다.

제주도로 가기로 되어있던 상황에서 비행기 결항으로 계획이 무산되어 대신 가게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그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바닷물에 뒹구는 몸 개그를 위한(?) 게임을 해야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위적인 부분은 그것이 여행 속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수긍하게 된다. 여행이라는 일탈 속에서는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리얼을 표방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러한 리얼의 요소들은 묻혀져 버렸다. ‘무한도전’의 끝없는 도전은 이제 굳이 리얼이라고 붙이거나 붙이지 않거나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무한도전’이기 때문에 주목되는 것이지, 이제 더 이상 리얼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에 주목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시도했던 좀비 특집, ‘28년 후’는 그 실패를 통해 오히려 ‘무한도전’의 리얼 상황을 드러내주었다. 김태호 PD는 실패에 대해 연거푸 사과하며 시말서를 쓰고 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바로 그 상황이 ‘무한도전’이 가진 실험정신과 리얼리티를 상기시켜 주었던 것.

이것은 ‘1박2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주도에 촬영팀들을 전부 보내고, 자신들은 영종도에 발이 묶여 을왕리로 발길을 돌릴 때, 이 애초의 목적 실패는 이 프로그램이 진짜 리얼이라는 것을 거꾸로 드러내주었다. 이제 모두가 리얼이라 주장하는 시대에, 오히려 리얼이 드러나는 대목은 버라이어티쇼가 어떤 목적의 실패를 했을 때가 되었다.

고정이냐 게스트냐, 예능 멤버를 바라보는 두 시선

김종국은 결국 ‘패밀리가 떴다’의 손님으로 남게 됐다. 장혁재 PD는 현재의 멤버들 간의 팀웍이 좋고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팀 구성이라며 김종국의 패밀리 영입설을 일축했다. 지난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한 김종국을 두고 벌어진 고정이냐 게스트냐는 양 갈래의 시선 중 ‘패밀리가 떴다’는 결국 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물론 김종국 스스로도 먼저 “당장은 가수활동에 더 충실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니 김종국의 ‘패밀리가 떴다’ 출연은 애초부터 게스트에 더 힘이 실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종국을 두고 벌어진 이 고정과 게스트에 대한 반응은 예능 멤버를 바라보는 두 시선을 드러내준다.

재미와 식상, 강화된 캐릭터, 팀웍의 이중성
집단 MC체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부분 고정 MC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면서 얻은 것은 강화된 캐릭터다. 물론 매번 다른 상황에서의 반응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 성격상 캐릭터는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과거의 1인, 2인 MC에 매번 바뀌는 게스트들을 가진 쇼에서는 매번 다른 얼굴들이 새로운 재미를 주었지만, 이제는 같은 얼굴들이 매번 다른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재미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고정 MC들의 캐릭터가 굳어지고 팀의 결속이 강화되는 과정에서는 최고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완성된 후 반복되는 과정에서는 동시에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쇼에서는 늘 새로운 멤버를 염두에 두게 된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멤버에 대해 극도로 폐쇄적이었다. 하하가 군입대로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5인 체제로 한 동안 프로그램이 강행되었다. 때때로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 게스트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백은 분명했다. 이러한 공백은 객원의 위치로 멤버에 안착한 전진에 의해 채워지게 되었다. 초기 새로운 멤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보면 ‘무한도전’에 어떤 생기를 부여한 전진의 투여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고정이냐, 게스트냐 이것이 문제로다
한편 ‘1박2일’은 초창기 프로그램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멤버들이 유동적이었다(이것은 초기 ‘무한도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상렬, 김종민 등이 활약했지만 현재의 멤버들로 차츰 바뀌면서 지금은 어떤 프로그램보다 고정 멤버들 간의 결속이 강화되었다. 새로운 멤버에 대한 여지를 찾기가 어려운 현재 ‘1박2일’은 그만큼 고정 멤버들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혹은 변신)하는 것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MC몽이 몽장금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허당 이승기가 울컥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건 이런 노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종국이 새로 투여된 ‘패밀리가 떴다’에서 김종국을 고정으로 해야한다, 아니다를 두고 벌어졌던 논란에는 시청자들의 멤버 영입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알 수 있다. ‘패밀리가 떴다’는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후발주자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고정 캐릭터가 갖는 딜레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장치로서 게스트를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매번 새로운 게스트를 초대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은 쉬 식상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보완해주는 힘이 있다.

게스트 시스템을 계속 활용하고 있던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독 김종국에 대한 고정 찬반 논란이 일어났던 것은 그가 예능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전적이 있는 데다가, 이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들에게도 점점 이미지가 고정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게스트 시스템 같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패밀리가 떴다’ 역시 팀웍이 강화되면서 캐릭터가 굳어지고 그 이미지 소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방신기와 김종국이 연거푸 출연하면서 ‘패밀리가 떴다’는 신선함을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김종국에 대한 게스트냐 고정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기존 ‘패밀리가 떴다’의 멤버들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식상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새로운 얼굴을 기대하는 욕구 또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1박2일’ 야구장 해프닝이 말해주는 것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TV 세상에서 1등이란 의미는 두 가지다. 그것은 ‘최고’라는 의미와 더불어, 늘 비판의 전면에 노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절대 넘보기 힘들었던 드라마 시청률과의 대전에서조차 도전장을 내밀었던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은 그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는 최고로 찬양(?)되었지만, 하하가 군복무로 빠지는 시점을 기해 하향곡선을 긋게 되자 가장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식상하다”거나 “이제 한계”라는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외부에 더 노출되는 팀원들의 행동들은 쉽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뭇매는 시청률이 급락해 더 이상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이러한 1등이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지금 ‘1박2일’에서 반복되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가 급부상하는 상황에 ‘1박2일’은 1주년 기념으로 간 백두산 여행을 기점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다. ‘무한도전’이 겪은 대로 ‘1박2일’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박2일’의 경우 더 불리하게 된 것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무한도전’과의 대결구도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지류로서 청출어람을 해온 ‘1박2일’의 그간의 승승장구는 ‘무한도전’의 하락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으로 오인되기에 충분했다. ‘1박2일’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1년 전에 갔었던 충북 영동을 다시 갔지만 그렇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태백의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간 ‘1박2일’이 보여준 재미를 거의 재연해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시청률 하락에 대해 시청자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1박2일’의 어떤 노력도 먹히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에 결국 터질 게 또 터지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장에서 촬영을 한 ‘1박2일’이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반인들과의 접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접촉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1박2일’이 승승장구했던 시기에 톡톡히 재미를 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대민 접촉이었다. 독도 같은 오지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의 대민 접촉은 ‘1박2일’ 멤버들의 서민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더 부각시켰다. 연예인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존재가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장면들은, 멤버들의 겸손한 자세로 읽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러한 대민 접촉은 정반대로 읽히게 된다. 물론 촬영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장에 투입된 멤버들에 쏟아지는 비난의 초점은 그 시점의 이동에서 발생한다.

2등이나 3등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에 서 있던 대중들도 1등에 대해서는 좀더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특히 그 1등이 어떤 하락의 기미를 내보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상 2등을 하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들은 1등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다지 태도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비춰지는 양상은 다르다. 이수근이 방송에서 언급한 “이제 1년 만에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나대지 말라”고 한 시청자게시판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 동정 어린 응원을 받았지만 이제 막 주목받는 상황에서 나대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이 변화는 바로 ‘1박2일’이 지금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이든 앞으로든 1등에 오를 리얼 버라이어티가 직면할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지나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다. 모든 것을 시청률로 판단하게 될 때, 프로그램의 진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순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언제까지 이 수직적인 순위 경쟁에만 매달릴 것인가. 1등, 2등이라는 숫자경쟁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마다 다른 형식이나 내용, 아이템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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