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랑>, 할 말 다 하는 김숙 이러니 대세지

 

가모장제 김숙에게 명절증후군 따위가 있을까. JTBC <최고의 사랑>은 설 명절을 맞아 가상 남편 윤정수와 한복을 차려입고 함께 설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원시원하고 할 말 다 하는 김숙과 그녀의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윤정수에게 선배 개그맨들의 덕담이 쏟아졌다.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 그러니 아예 진짜 결혼하라는 것.

 


'최고의 사랑 님과 함께(사진출처:JTBC)'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선배 이성미의 말대로 두 사람은 점점 닮아간다. 가상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순간 순간 결혼을 소재로 한 콩트를 찍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는다. 설날이라고 떡국을 끓이지만 마늘을 너무 많이 넣어 못 먹을 맛에 MSG를 투하하고는 자랑스럽게 그걸 넣었다고 얘기하는 김숙. 그래도 다 먹으라는 한 마디에 꾸역 꾸역 먹는 윤정수다.

 

발 싸대기(?)를 벌칙으로 세워두고 벌이는 윷놀이는 결국 간발의 차이로 윤정수가 뺨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놀이를 하는 과정은 마치 아이들처럼 즐겁다. 물론 김숙이 남편 막 대하는 모습은 일종의 상황극 설정이 들어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상황극이 주는 실감이 의외의 통쾌함을 선사하는 건 왜일까.

 

갑작스레 이성미가 등장해 윤정수의 시어머니 역할로 이 상황극에 들어오게 되자 상황은 명절의 흔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여자들이 부엌에서 하루 종일 손에 물 묻히며 일할 때 남편은 뒹굴고 시어머니는 심지어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하는 그런 장면이 우리네 명절의 흔한 풍경이지만 김숙과 윤정수는 거꾸로 되어 있다. 윤정수가 쌓여진 설거지를 하려고 하자 이성미가 마치 시어마니나 되는 것처럼 니가 왜 설거지를 해라고 소리친다.

 

자꾸만 진짜 결혼해 살라는 이성미의 이야기에 선배님에게도 대놓고 실언을 많이 하신다어서 가시라고 등을 미는 모습에서는 김숙 특유의 사이다 같은 시원스러움이 느껴진다. 결국 상황극 설정 속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했던 이성미는 얘 상 돌아이 아니냐고 혀를 내두른다. 그 대책 없이 할 말을 다 하는 김숙의 모습은 물론 실제라기보다는 순간 상황극 속에서의 캐릭터 설정이겠지만 마침 명절의 스트레스를 한껏 느낀 며느리들이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최고의 사랑>으로 김숙과 윤정수가 재발견된 것은 그들이 이 리얼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절대로 리얼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다. 대신 그들은 이 상황을 개그맨 특유의 잘 맞는 합으로 웃음을 주는 콩트로 만들어낸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일 때 시청자들이 웃게 되는지를 그간의 오랜 개그맨 생활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때론 과한 설정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김숙은 그 속에서 남편 구박하는 아내의 모습을 또 윤정수는 구박 받으면서도 순종적인 남편을 연기하지만 그럼에도 그 합이 너무 잘 맞는다.

 

바로 이 상황극 속에서 슬쩍 진심이 나올 때 시청자들은 그것이 단지 연기만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진짜 마음을 느끼게 된다. 윤정수가 벌칙으로 발 싸대기를 맞고 아파하자 안쓰러워하며 김숙이 오빠 괜찮아?”하고 묻는 장면이 그렇다. 슬쩍 드러난 그녀의 진심은 남자로서는 아니라고 해도 오빠로서 윤정수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 김숙이 마침 명절을 맞아 벌이는 상 돌아이상황극은 그래서 기분 좋은 사이다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피곤한 명절을 보낸 며느리들은, 할 말 다하고 남편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당당하게 시키는 김숙의 모습을 통해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날려보낸다. 가모장제를 주장할 정도로 당당한 성격에 어떤 상황극에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숙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대세 개그우먼다운 면면이다

의외로 강한 <자기야>, 이런 판타지가 없다

 

이만기 같은 사위가 있다면 어떨까. SBS <자기야-백년손님>에서 이만기와 장모는 톰과 제리의 관계를 보여준다. 틈만 나면 소파에 누워 제 집처럼 잠을 자기 일쑤지만 그럴 때 장모는 맛좋은 소라무침에 막걸리를 한 상 내놓고는 사위를 슬슬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일을 시킨다. 그런 장모에게 이만기는 시종일관 투덜투덜 대지만 또 막상 시키는 일은 꼬박꼬박해낸다. 이만기는 마치 머슴살이 들어온 힘 좋은 사내처럼 보인다.

 


'자기야 백년손님(사진출처:SBS)'

그런데 갑자기 단수가 되어버리자 마을 입구까지 내려가 물을 떠오는 이만기를 보면 역시 천하장사다운 스케일을 보여준다. 자그마한 물통이 아니라 하나 들기도 힘들 것 같은 양동이 두 개를 꽉 채워 옮긴다. 힘들 게 옮기는 물통이지만 동네 어르신이 한통만 달라고 하자 또 그걸 거부하지도 못하는 순박함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마치 순박하고 힘 좋은 머슴이 물을 길러 오는 장면처럼 그려진다.

 

밭일하기 위해 연장을 챙기러 창고에 온 이만기가 거기 있던 의자에 누워 보고는 아예 장모의 눈을 피해 숨는 장면 역시 톰과 제리의 마름 머슴판처럼 그려진다. 장모의 눈을 피해 그 거대한 몸을 잔뜩 웅크려 숨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장모는 아예 문을 밖에서 잠가 버린다. 화장실이 급해진 이만기가 결국 어무이 문 좀 열어 주이소하는 모습은 꾀부리다 오히려 당하곤 하는 톰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리 같은 장모가 톰 같은 이만기를 부리는 방법은 역시 음식이다. 죽통밥을 해주겠다고 꼬드겨서 대나무를 자르러 가서는 아예 한 열 개 정도 잘라 평상을 만들라는 장모의 말에 일이 점점 커지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도무지 끌고 올 수 없을 것 같은 그 대나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끌고 오는 모습에서는 역시 천하장사의 위용이 느껴진다.

 

집에 와서 이만기는 그 대나무들을 하나하나 잘라 쉬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장모는 잘라낸 죽통으로 죽통밥을 만든다. 일이 너무 많아 한참을 투덜대며 하던 이만기는 그러나 장모가 내온 죽통밥에 순식간에 단순해진다. 너무 맛있다며 힘들었던 노동을 싹 잊어버린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은 아마도 이 땅의 장모들에게는 우직하고 단순해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을 것이다.

 

SBS <자기야-백년손님>은 사위들의 강제 처가살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설정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장서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한 설정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대신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문제와 함께 점점 사위가 아내의 친정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사위의 처가살이는 현실적인 일이 됐다.

 

이만기처럼 든든함을 주는 사위의 모습은 현실적으로는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이 판타지가 주는 힘은 의외로 세다. 톰과 제리, 마름과 머슴처럼 보이지만 그런 격의 없는 툭탁댐은 장모와 사위의 관계라기보다는 엄마와 자식 같은 편안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위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이 판타지라고 해도 자꾸만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왕가네>, <이순신>보다는 나을 수 있을까

 

시집살이가 아니라 처가살이? 늘상 가족드라마에서 그토록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것이 시집살이와 고부갈등 같은 거였다면, <왕가네 식구들>이 들고 온 처가살이는 그나마 소재만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현실적으로야 여전히 시집살이가 더 많겠지만 최근 처가살이라는 말도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결혼하고 시집에 들어가 사는 신혼부부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심지어 시댁에서도 함께 사는 걸 꺼려하는 추세다. 오죽하면 시집살이가 아니라 ‘며느리 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직장 다니는 며느리 챙겨주는 시어머니들의 고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대신 아이 보육 문제 등으로 친정과 가깝게 지내는 신혼부부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당연히 갈등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렇게 달라진 가족관계의 모습은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왕가네의 가장은 왕봉(장용)이지만 이 집안의 실권자는 그의 아내인 이앙금(김해숙)이다. 그녀는 왕봉의 홀모인 안계심(나문희)이 있어도 아랑곳 않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꺼내놓을 정도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이름대로 왕봉은 그저 봉인 존재이고, 안계심은 있어도 안 계시는 시어머니다. 이름대로라면 이앙금은 아마도 시댁에 어떤 앙금이 있는 인물일 게다.

 

집안의 어른인 시어머니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대신 며느리가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전형적인 신 모계사회의 가족 풍경이다. 이앙금은 딸들의 사위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한다. 처가 식구들을 챙겨온 첫째 딸 왕수박(오현경)의 사위 고민중(조성하)은 이앙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둘째 딸 왕호박(이태란)과 혼전임신으로 결혼한 백수 허세달(오만석)은 구박 덩어리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과 남성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여성들은 남편 덕에 잘 나가거나(왕수박), 철없는 남편과 상반되게 성실하게 살아가거나(왕호박), 교사직을 포기하고 자기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셋째 딸 왕광박(이윤지)), 전교 1등의 성적을 거둘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막내 딸 왕해박(문가영)) 인물들이다.

 

반면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위기상황이다. 고민중은 역시 이름대로 회사가 위태로워 길바닥에 나앉기 일보직전이고, 허세달은 허세만 가득한 백수이며, 안계심 여사의 늦둥이 왕돈(최대철) 역시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백수다. 중학교 교감 선생인 왕봉은 아이들에게 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고 그의 늦둥이 아들 왕대박(최원홍) 역시 엉뚱한 반항만 하는 인물이다.

 

즉 <왕가네 식구들>은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가족 구성원을 보여주면서 이 새로운 모계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갈등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첫 술에 어찌 배부르겠냐마는 첫 회는 식구들의 캐릭터를 빠르게 세우기 위해서인지, 다소 급하고 어수선하게 진행된 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간 딸 부잣집 이야기가 거의 모두 딸들이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느냐는 관점에만 몰두했던 점들을 생각해보면, 이 딸들이 중심이 되는 딸 부잣집 이야기는 확실히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최고다 이순신>이 시청률 면에서나 화제성,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터라 KBS 입장에서는 주말극의 자존심을 세워줄만한 힘을 <왕가네 식구들>이 보여줄 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과연 <왕가네 식구들>은 그만한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적어도 <최고다 이순신>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그러려면 그나마 괜찮게 여겨지는 <왕가네 식구들>의 처음 가진 기획의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관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다 이순신>이 그러지 못해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장옥정>, 왜 독해질수록 살아날까

 

장희빈 하면 먼저 떠오르는 장면. 그것은 바로 먹지 않으려는 사약을 억지로 입에다 우겨넣는 장면이다. 하지만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에서의 장옥정(김태희)은 그런 최후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인데다 이순(유아인)과의 달달한 로맨스가 전면에 펼쳐지지 않았던가.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나 보다. 순둥이에 늘 당하기만 할 것 같던 그녀는 단 몇 회만에 독이 잔뜩 오른 모습으로의 대변신을 보여주었다. 장옥정이 영원히 용종을 잉태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극약을 대비 김씨(김선경)가 궁녀들을 시켜 억지로 입에 넣는 장면은 그래서 본래 장희빈 하면 떠오르던 바로 그 명장면(?)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본래 장희빈의 귀환이다.

 

예쁘고 착하기만한 장희빈? 의도는 알겠지만 애초부터 가능하지도 않고 또 대중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굳이 장희빈을 장옥정으로 부르고, 숙종을 이순이라 부르는 건 그만큼 이 사극이 역사와의 간극을 두겠다는 의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즉 이 사극은 역사의 기록에 남겨진 장희빈과 숙종을 그리는 게 아니라, 기록 바깥에 존재하는 사적인 인물로서의 장옥정과 이순의 애틋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역사에 기록된 장희빈이 벌인 일련의 사건들마저 왜곡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장희빈을 장옥정으로 바꾸면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녀가 벌인 일들에 어떤 사적인 근거를 마련해주는 정도다. 그래서 장희빈의 독한 행동들이 왜 나왔는가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준다면(그것이 이순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것으로 장옥정이란 인물의 재해석은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장옥정>은 그녀가 독하게 변하게 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궁 밖으로 내친 것도 모자라 그녀를 집에 가둔 채 불을 질러버린 인현왕후(홍수현)의 부친 민유중(이효정)은 그녀가 독해지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계기는 그녀의 당숙인 장현 역관(성동일)이 제공한다.

 

“이제 깨달았느냐.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의 들끓는 욕망을, 원하는 것을 빼앗겼을 때의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넌 주상의 총애를 받고도 길거리에 내던져졌고 민유중의 여식은 주상의 총애 없이도 명문가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감히 네가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저 자리에 있지 않느냐?”

 

장 역관이 장옥정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태생적으로 이미 정해져 버린 삶에 대한 도발이이다. 누구는 명문가에 태어나 사랑 없이도 왕의 여인이 되는데, 정작 왕의 사랑을 받는 자신은 궁에서 밖으로 내쳐져 정인 옆에도 갈 수 없는 현실. 조선이라는 신분사회가 가진 간극을 장 역관은 그녀에게 펼쳐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태생적이고 운명적인 삶에 대한 도발은 다분히 작금의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청춘들의 현실을 반영한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결국 장옥정은 독해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장옥정이 이순의 사랑을 갈구하며 뭐든 다 저지르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 장희빈이라는 캐릭터가 본래 갖고 있던 대중적인 힘이 생겨난다. 장희빈이라는 캐릭터가 과거 정통사극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면서도 대중들의 마음을 끄는 것(여성 캐릭터로서는 거의 유일무이하다)은 그녀가 단지 악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어찌 보면 조선을 다루는 사극에서 신분과 계급의 금기를 뛰어넘고 도발하는 거의 유일한 능동적인 여성이다.

 

과거 정통사극에서는 그래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를 보는 이중적인 시선이 존재했다. 한편으로는 악녀로서 비난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꽉 막힌 신분제 사회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통쾌함이 있었다는 것. 마치 가부장적인 시월드에서 시어머니에 대들고 맞서는 며느리처럼 장희빈은 당대의 양가적인 감정을 끌어안는 캐릭터였던 셈이다. 어쩌면 사극 속 장희빈의 악행을 보며 시어머니는 분노하고 며느리는 통쾌해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옥정>은 이 이중적 시선에서 ‘악녀’로서의 시각을 떼어낸 셈이다. 그녀는 여전히 독하지만 악녀는 아니다. 오히려 운명을 뛰어넘으려, 또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신세대 여성이다. 그러니 그토록 연기력 논란에 휘말리던 김태희가 ‘언제 연기 이렇게 잘했나’ 칭찬받고, 바닥을 치던 시청률이 반등하는 것은 이 본래 장희빈이 갖고 있는 캐릭터의 색깔이 살아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사극 속의 신세대 장옥정은 악녀라는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이니 이제 시청자들에게 남은 일은 그녀의 도발을 즐기는 것뿐이다. 물론 그 결과는 역사가 기록한대로 비극일 수밖에 없겠지만, 조선 같은 신분사회에서 한바탕 제 목소리를 내고 사라진 한 여성의 삶이 어찌 새롭고 귀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이제 사랑 앞에 한없이 말랑해지고 그 사랑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독해지는 장옥정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