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폭발력 커지는 <무도> 가요제의 비밀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무한도전> 가요제는 강변북로 가요제(2007)부터 시작해 올림픽대로 가요제(2009),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를 거쳐 이번 자유로 가요제(2013)가 무려 네 번째다. 그런데 이처럼 회를 거듭하면서도 그 폭발력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자유로 가요제는 일단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3만5천여 명이 운집한 공연장은 웬만한 록 페스티벌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단 하루 게릴라식으로 치러지는 가요제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어엿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도 충분할 듯하다. 의미와 가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 싶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음악들이 주목된다. 유재석이 댄스곡을 고집한다거나 박명수가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를 반복했다면 식상해질 수도 있는 가요제였다. 하지만 유재석이 부르는 R&B는 괜찮은 느낌을 주었고, 프라이머리의 색깔이 묻어나는 레트로 힙합을 박명수가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첫 무대에 올랐던 김C와 정준하의 실험적인 무대는 실로 압권이었다. 정제되면서도 세련되고 또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 놓음으로써 좋은 시작을 알렸다. 퍼포먼스가 좋았던 정형돈과 지드래곤의 무대, 노홍철과 장미여관 그리고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선보인 파워 넘치는 록 스피릿, 그리고 보아와 길이 보여준 춤의 경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 멤버와 아티스트들의 조합, 그리고 그 관계에서 나오는 스토리텔링도 갈수록 세련되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러 차례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함께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가수들의 풀이 넓어진 것은 음악적인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메인 게스트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게스트에만도 이소라, 다이나믹 듀오, 김조한 같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정도가 아닌가.

 

자유로 가요제에는 지드래곤이나 보아처럼 국내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가수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미여관 같은 이제 막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인디밴드가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장미여관의 육중완의 옥탑방에서 노홍철이 YG 사옥을 가리키며 게찜을 먹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점심을 먹는 YG 식당을 급습하는 장면도 말이다.

 

여기에 유희열이나 김C 같은 이미 예능을 통해 믿고 보는 캐릭터들의 가세는 자유로 가요제의 예능을 남다르게 만들었다. 특히 감성변태 유희열과 유재석이 곡 선정을 하면서 서로 댄스와 R&B를 고집하다가 <100분토론>(?)까지 하는 이야기나, 제주도를 여행하며 김C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정준하의 이야기, 그리고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퀴어코드를 활용해 마치 연인처럼 밀당을 하는 이야기는 큰 웃음은 물론이고 발표될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통 시즌제를 하는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빠지는 늪이 바로 이 반복과 패턴화로 인해 생겨나는 피로감일 것이다. 제 아무리 파괴력을 보여준 소재라도 반복하면 힘이 빠지는 것이 당연지사. 과거 <남자의 자격>이 했던 하모니편은 단적인 사례이고,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한도전> 가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 특유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보통 시즌제 프로그램이 작게는 몇 달마다 길게는 1년 정도를 두고 반복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휴지기가 2년이다. 그만큼 이전의 열기가 충분히 가라앉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즌제에서 휴지기가 중요한 것은 준비기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껏 올라가 있는 기대감을 상대적으로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속에도 들어있다. 보통의 가요제라면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는 출연자들이 방송국을 찾아오는 순간부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장면, 리허설 등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가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다. 멤버들은 가수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한없이 기대감을 뺀다. “과연 저렇게 해서 노래는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자유로 가요제에서 보듯이, 막상 무대에서 발표된 곡들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토리텔링은 예능적으로 접근하고(기대감을 낮추고) 무대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 여기에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이야기까지 가사로 녹여진다면 웃음과 즐거움을 넘어 감동까지 주는 무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방송에 있어서 비슷한 소재를 갖고 회를 거듭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무한도전> 가요제는 가요제 형식의 <무한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게다. 이것은 또한 무수한 시즌제를 추구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에게도 분명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형식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무도> 가요제, 지드래곤 특히 주목되는 이유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감은 이미 대박을 치고도 남았다. 대충 설렁설렁 조합을 만들고 작곡 작사도 전혀 진지한 모습은 별로 없고 그저 즐기고 노는 모습만 가득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를 포착해내면서도 음악을 배려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한 마디로 허허실실이다. 믿고 보는 <무한도전> 가요제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모든 힘은 그간 반복된 가요제 경험이 그 바탕이 됐을 게다. 멤버들이 가진 각각의 캐릭터와 음악적 취향은 그들과 조합을 이룬 가수들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었다. 멤버와 가수들이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케미(화학작용)는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웃음을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노래에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부여한다. 단언컨대 여기서 나오는 노래들은 한 바탕 음원차트를 흔들어댈 것이 분명하다.

 

유재석과 유희열, 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만담 콤비를 보라. 유희열의 캐릭터가 그대로 묻어나는 끈적끈적한 R&B(물론 이것은 예능적인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음악적 취향이 아니라.)와 ‘자가자가자가’ 하며 끊어주는 비트의 댄스 중독자 유재석이 서로 부딪치며 주고받는 대화들은 웬만한 콤비 코미디언의 조합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군이다. 외모에서부터 음악적 취향까지 사사건건 부딪치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결국 표절에 가깝지만 그래도 댄스곡을 억지로 준비해온 유희열과, 반대로 R&B곡으로 결정하는 유재석의 이야기로 결말이 이어지는 과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매끄러운 밀당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런 조합에서 뽑아져 나오는 궁금증과 기대감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길과 보아의 조합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 사람의 친분이 전면에 내세워지면서 보이는 보아의 털털한 매력이다. 짜장면을 먹는 보아의 모습을 어디서 보겠는가. 한편 보아의 강권으로 SM식의 댄스를 선보여야할 길의 도전 역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코믹일까 아니면 진짜 길의 캐릭터에 맞는 괜찮은 크럼프일까.

 

정형돈과 지드래곤은 이 조합의 묘가 만들어낸 밀당 상황극의 끝판이다. 음악을 함께 만드는 동료라기보다는 마치 퀴어 연애를 하는 듯한 병맛 코드의 이 조합은 거만한 정형돈과 그를 추종하는 지드래곤의 반전 관계로부터 시작해, 차츰 정형돈이 지드래곤의 매력을 알아가는 단계로까지 발전해나간다. 여기에 힙합비둘기 데프콘은 이 역전된 관계에 확실한 감초역할까지 더해주었다.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동묘시장에서 의상을 구입하고 ‘삐딱하게’ 뮤직비디오를 재해석한 것은 지금껏 <무도>가 해왔던 병맛 패러디의 매력을 제대로 재현했다.

 

예능에는 아직 약한 프라이머리에게 연실 면박을 주며 예능 포인트를 살려내는 박명수의 조합이 만들어낼 세련된 힙합도 기대되지만, 제주도까지 달려가 <개콘>의 오성과 한음을 재현해내며 그 풍광이 주는 힐링의 느낌을 음악으로 풀어내줄 정준하와 김C의 조합 역시 흥미롭다. 뜬금없이 YG 식당으로 달려가 ‘시식로드’를 즉석에서 만든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가 만들어낼 자유분방한 밴드 음악과, 서민적인 냄새 가득한 장미여관과 그들을 붐업시켜줄 에너지의 노홍철이 선사할 들썩들썩할 무대 역시 기대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이 조합들이 이미 저마다의 재미와 음악적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담 콤비 유재석과 유희열의 R&B, 길과 보아가 보여줄 SM식 음악과 힙합 소울의 조합,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선사할 개가수에 가까운 B급 코드가 섞인 힙합, 박명수의 강한 캐릭터가 조화된 프라이머리의 음악, 정준하와 김C의 조금은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로 편안해질 힐링 뮤직,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의 신나는 밴드 뮤직, 그리고 어딘지 마음으로부터 지지하게 되는 장미여관과 그의 응원자 같은 노홍철의 신나는 무대. 실로 조합만으로도 성공이 보장된 게임이다.

 

이렇게 완벽한 조합과 스토리와 음악이 있으니 이제 이들은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고 더 허허실실해졌다. 프로들에게는 흔히들 어깨에 힘을 빼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에게 <무도> 가요제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특히 보아나 지드래곤 같은 국내를 대표하는 기획사의 가수들이 포진해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미 국제가수가 된 싸이가 <무도> 가요제에 상당부분의 지분을 빚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어쩌면 훗날 보아나 지드래곤이 싸이가 걸어간 길 위에 서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도> 가요제는 그만큼 부지불식간에 현 가요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여겨진다.

<무도> 추격전을 살린 -300의 위험한 정체

 

지난 주 <무한도전> ‘100 빡빡이의 습격’ 특집의 전반부는 지금껏 무수히 봐왔던 추격전의 또 다른 버전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주 후반부에 들어오면서 추격전의 양상은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지금껏 보던 추격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연출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렇게 된 것은 전반부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300만원 가방’이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면서 출연진들을 혼동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저 미션을 성공하면 300만원을 번다는 사실만 알았을 때와 -300만원 가방을 들게 되면 그 미션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300만원을 자신이 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우승자와 패자가 있어 그 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 즉 누군가 가져가면 누군가는 잃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그저 우승상금을 받는 게임은 노력한 대가의 의미를 주지만 제로섬 게임은 치고받는 생존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종의 도박판 게임이 되는 식이다.

 

제로섬 게임은 <무한도전>의 후반부를 그래서 더 팽팽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로섬 게임은 방송 게임으로서는 무리수가 될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무슨 권리가 있어서 멤버들에게 돈을 낼 것을 강요하는가. 그저 300만원을 벌 수 있는 게임이라면 추석 보너스의 개념이 될 수도 있고 또 늘 <무한도전>이 그래왔듯이 우승자가 기부의 형식으로 훈훈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0만 원은 다르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멤버들을 게임에 끌어들여 그 누군가는 300만원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 절실해지고 흥미로워질 수는 있겠지만 방송이라면 신중했어야 하는 선택이다. 이번 미션의 결과 노홍철이 300만원을 버는 우승자가 되고 박명수가 -300만 원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 결과의 장면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무한도전> 스스로도 그것이 방송용으로는 적합한 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일 게다.

 

박명수가 개인 돈 300만원을 빼앗기고 노홍철이 그 300만원을 가져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방송의 출연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짓이 된다. 물론 과거 멤버들이 사비를 냈던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명수의 ‘기습공격’이나 ‘정총무가 쏜다’ 같은 콘셉트가 그랬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부의 또 다른 형태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00 빡빡이의 습격 특집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저 돈 놓고 돈 먹는 도박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제로섬 게임이 주는 의미는 있다. <무한도전>이 늘 그래왔듯이 게임 속에 지금 현실을 투영한 거라면 이 제로섬 게임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네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을 게다. 그저 더 많이 돈을 벌겠다고 아둥바둥하지만 사실 그럴수록 이 사회의 시스템은 다른 누군가의 돈을 빼앗고 있는 제로섬 사회라는 것. 제로섬 게임은 이 살벌한 현실을 에둘러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돈을 소재로 한 게임은 방송에서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후반부를 살려낸 ‘-300만원’의 정체는 실로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누군가 더 가져가면 누군가는 빼앗겨야 하는 시스템. 그런 살벌한 현실을 그 누가 조장하는가.

카메라의 변화로 보는 예능의 진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흔한 풍경 중 하나가 MC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1박2일>은 대표적이다. 메인 MC가 “1박!”하고 외치면 다른 멤버들이 “2일”하고 외친다. 그들은 모두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일렬로 서서 이 구호를 외친다. 흔한 풍경이지만 바로 이 장면에는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는 예능 형식의 단면이 들어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이렇게 MC들이 일렬로 서고 한 명의 MC가 메인으로 나서는 이유는 카메라 때문이다. 카메라가 한 방향을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카메라들이 한 캐릭터씩을 커버하는 식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MC들은 그 카메라 앞에 일렬로 늘어설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일렬로 늘어선 상황에서는 그 중 한 명이 메인을 맡아야 프로그램 진행의 혼동이 없다.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이런 카메라들의 배열은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었다. 즉 과거의 예능에서는 똑같이 정면에 카메라가 놓여있긴 했지만 여러 명이 나왔을 때 각각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없었다. 리얼을 강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은 따라서 카메라를 좀 더 많이 세워 각각의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리액션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많아진 녹화분량은 좀 더 압축적이고 디테일한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관찰 예능으로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과는 사뭇 다른 카메라 배열을 보여준다. 즉 <진짜 사나이>나 <아빠 어디가> 같은 경우에(물론 도입부에 일부 도열한 인물들이 서는 장면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MC들이 일렬로 죽 서서 어떤 진행을 하는 듯한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메인 MC가 있을 수도 없다. 메인 MC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을 진짜 리얼이 아닌 쇼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의 핵심적인 카메라의 묘미를 볼 수 있는 것은 생활관 장면이다. 여기서 카메라는 출연자들에게서 숨겨져 있고 따라서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러운 대화와 행동들을 보여준다. <아빠 어디가>의 핵심은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VJ의 시선이다. 어느 한 곳에 고정된 시선이 아니라 각각의 출연자들에게 맞춰진 시선은 좀 더 다채로운 동선과 다양한 관점들을 포착해낸다.

 

카메라의 이런 다른 배치와 시선들이 별거 아니라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상에 이미 익숙해진 대중들에게 카메라의 시선은 그 자체로 어떤 특별한 느낌을 제공한다. 즉 일렬로 늘어선 카메라와 메인 MC가 나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또한 위계적인 느낌마저 준다는 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늘 1인자, 2인자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각각의 캐릭터를 따라 다니며 그들의 시선대로 스토리를 잡아내거나 아예 숨겨져 있어 출연자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찰 카메라의 방식은 이런 중심과 변방의 구분을 없애버린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가 주는 위계적 느낌과 관찰 카메라가 주는 수평적인 느낌은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미묘한 감성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즉 카메라의 시선 변화는 그 자체로 변화된 시청자들의 정서와 관련해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까지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유재석과 강호동이 양강체제로 이끌어오던 리얼 버라이어티 체제가 가고 이제 일반인이든 주목받지 못했던 연예인이든 새로운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관찰 예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최근까지 예능의 흐름은 카메라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 왔다. 최근 들어 예능이 리얼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는 아예 숨거나(몰래카메라), 양을 늘리거나(리얼 버라이어티), 현장 속으로 더 뛰어들거나(관찰카메라) 하면서 그 위치를 바꿔왔다.

 

또한 달라진 카메라의 위치는 그 안에 서게 되는 MC들의 성패 요인까지도 좌우해 왔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최고의 MC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카메라가 리더를 요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타인의 캐릭터를 부각시켜주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강호동은 전면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 하지만 관찰 카메라 형식에서는 리더로 나서는 순간 자칫 비호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나서서 전체를 이끌어가기보다는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관찰 카메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MC의 새로운 자질이다.

 

<1박2일>이 힘겨워진 것은 전성기 때의 MC들이 교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달라진 예능 환경 속에서 여전히 비슷한 시선만을 보여주는 카메라와 그것이 보여주는 여전히 똑같은 캐릭터들에 대중들이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같은 형식을 갖고 있는 <무한도전>도 비슷한 도전을 맞고 있지만 그나마 이 예능은 일정 팬덤을 확보하고 있고 또 새로운 형식 실험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1박2일>처럼 전형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선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앞으로 이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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