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이 복합장르에 담긴 <변호인><베테랑>

 

SBS 새 수목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은 다양한 장르들이 뒤섞여 있다. <별에서 온 그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냄새를 보는 소녀>처럼 SBS가 그간 열어온 이른바 복합장르의 유전자가 이 드라마에는 어른거린다. 주인공 서진우(유승호)가 갖고 있는 기억 능력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타인의 내면을 읽는 능력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의 냄새를 보는 능력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이고, 그들이 범죄에 연루되어 진범을 찾는 이야기도 비슷한 구조처럼 읽힌다.

 


'리멤버(사진출처:SBS)'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스릴러 장르의 한 면을 보여준다면 서진우와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언제 사형당할 지 알 수 없는 그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의 애끓는 부자 관계는 가족드라마의 틀이고, 서진우와 향후 사건을 함께 파헤쳐나가며 사랑 역시 피워나갈 이인아(박민영)와의 관계는 멜로드라마의 틀이다. 여기에 박동호(박성웅) 같은 조폭 변호사 캐릭터는 저 <용팔이>의 조폭들에게 왕진가는 의사 김태현의 이야기가 살짝 변호사로 변주된 느낌이다.

 

각각의 캐릭터들도 흥미롭고 이렇게 장르적으로도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놀랍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복합적인 장르의 장치들이 드라마를 보는 다양한 재미들인 반면, 그 기저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올 한 해 대중들이 그토록 몰입하여 들여다봤던 정의의 문제다. 과연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영화 <변호인>을 쓴 시나리오 작가 윤현호의 첫 드라마라는 사실은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상당한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변호인>은 송우석(송강호)이라는 한 인권 변호사를 인물을 세우고 있지만 <리멤버>는 세 명의 변호사가 나온다. 하나는 인권변호사 이인아이고 또 하나는 조폭변호사 박동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모든 걸 기억해내는 절대기억변호사 서진우다.

 

이처럼 세 명의 변호사가 제각각의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건 드라마의 다채로운 재미의 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정의 실현의 문제가 우리네 현실에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뜻(인권변호사)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며 또 그렇다고 현실적인 처세(조폭변호사)로만 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절대 기억 같은 놀라운 능력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 명의 변호사가 맞서게 되는 인물은 남규만(남궁민)이라는 재벌 후계자다. 이 인물은 여러모로 <베테랑>의 공분유발자 조태오(유아인)를 닮았다. 금수저와 갑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만들어내는 키워드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이 만만찮은 남규만이라는 인물과 세 명의 변호사가 대결구도를 갖는 것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리멤버>는 이처럼 최근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들과 정서들을 그 복합적인 장르의 틀 속에 기막히게 채워 넣고 있다. 그 요소들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서진우나 박동호 같은 캐릭터의 신선함이 있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기억의 문제를 이 익숙한 이야기 위에 변주하게 했다는 건 흥미롭다. 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아들은 너무나 모든 기억들을 세세히 갖고 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그 상반된 기억능력 때문에 고통 받는다.

 

기억과 정의의 문제를 교차시켜놓은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진정한 정의의 실현은 법에 의한 처벌보다 기억이 해내는 것이 아닐까.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대중들의 기억을 상기시킴으로써 시대적 정의의 문제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던 것처럼, <리멤버> 역시 파렴치범으로 기억된 채 형장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과연 아들은 돌려놓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다양한 재미의 결과 동시에 신선한 의미를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나왔다



'힐러', 지창욱의 사랑, 유지태의 성장

 

<힐러>에 출연하는 박상원은 과거 송지나 작가의 <모래시계>에서 강우석 검사로 나왔었다. <모래시계>80년대 격동의 시절을 태수, 혜린, 우석 같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으로 그려내면서 당시로서는 귀가시계라고 불릴 만큼 사랑받았던 드라마다.

 

'힐러(사진출처:KBS)'

그 때의 번듯했던 박상원은 그러나 <힐러>에서는 김문식이라는 악역이다. 겉보기엔 성공한 사업가 정도로 보이지만 그는 지금의 아내를 얻기 위해 과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 아내의 아이를 내다버린 것. 그 때의 고통으로 심적 트라우마를 갖고 성장한 영신(박민영)을 김문식의 동생인 김문호(유지태)가 찾아내고 보호하려 한다. 그 사이에 김문호가 영신을 찾고 보호하기 위해 고용한 힐러 정후(지창욱)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든다.

 

<힐러>에는 80년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과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성장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과거 벌어졌던 어떤 사건이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쥐고 있다. 힐러 정후나 영신은 모두 과거의 어른들에게서 버려져 외롭게 자라온 청춘들이다.

 

드라마의 과거가 되고 있는 8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언뜻 과거 <모래시계>의 뉘앙스가 풍겨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그 때 그렇게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이상을 외치던 젊은이들은 이제 나이 들었다. 그 중에는 김문식처럼 당시 그토록 혐오했던 권력의 심층부에 들어와 있는 인물도 있다. <모래시계>의 박상원이 <힐러>의 박상원으로 나이든 모습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캐스팅이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의 정서를 살짝 담고 있기 때문인지 드라마의 구도 역시 익숙한 옛 구도를 재연하는 느낌을 준다. 사랑하게 됐지만 돈 받고 의뢰받아 접근하게 된 힐러 정후의 사랑은 그래서 <모래시계>의 보디가드로 이름 높였던 이정재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숨어서 사랑하는 것. 이것은 확실히 요즘처럼 대놓고 키스 먼저 하는 사랑법과는 사뭇 다르다.

 

정후가 <힐러>의 사랑법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김문호는 <힐러>의 여주인공인 영신의 성장을 이뤄주는 인물이다. 일과 사랑은 역시 여성들에게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김문호를 통해 한 단계씩 성장해가면서 정후와 조금씩 사랑을 알아가는 영신은 여성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건드린다.

 

조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오는 듯한 느낌과, 요즘 숨 가쁘게 몰아치는 드라마들과는 달리 조금은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이 단점을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그 80년대식 정서를 여전히 담고 있다는 점이 은근한 매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슈퍼맨적인 힐러 설정과 권력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의 이야기는 마치 <인간시장>의 장총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물론 <힐러>는 요즘 드라마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죽음의 위협까지 겪은 인물이 한가롭게 <영웅본색>의 한 시퀀스처럼 공중전화 부스에서 남자와 달달한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낯설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금은 구닥다리의 정서가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힐러>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현재의 팍팍한 삶의 치유로서 과거적인 정서를 끌어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걸오앓이와 중기홀릭, 그 이유

‘성균관 스캔들’의 이른바 잘금 4인방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지금껏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걸오 문재신 역의 유아인은 지금껏 걸오 만한 중량감을 연기한 적이 없다.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에서도 또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도 그는 잘 생긴 소년이었다. 그것도 아주 여성적일 정도로 가녀린 느낌의. 그런 그와 현재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걸오 문재신은 이들이 과연 같은 연기자일까 의구심이 갈 정도로 다르다. ‘걸오하다’라는 말에서 따온 ‘걸오’의 뜻 그대로 그는 ‘성질과 심성이 거칠고 사나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제의 또 한 축인 “나 구용하야”의 주인공 여림 구용하를 연기하는 송중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진가를 보였다. ‘트리플’의 지풍호가 그 특유의 기분 좋아지는 명랑함으로 가능성을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송중기를 깨운 건 다름 아닌 구용하다. 송중기는 구용하라는 캐릭터를 통해 소년의 이미지에서 심지어 여성성이 엿보이는 성숙된(?) 연기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그의 빼어난 외모는 남장여자인 대물 김윤희(박민영)라는 존재에 사실성마저 부여한다.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송중기 본연의 중성적 매력이 구용하라는 유쾌한 캐릭터와 만나면서 이른바 ‘중기홀릭’은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이제 첫 연기에 도전한 이선준 역할의 믹키유천은 신인치고는 연기에 대한 집중력이 좋은 편이지만 확실히 연기가 미숙하다. 특히 감정 연기가 미숙한 그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나의 얼굴로 이선준의 역할을 해내면서도 연기력 논란이 아니라,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이유는 이선준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 덕분이다. 이선준은 고집스런 선비로서 많은 얼굴 표정 변화는 오히려 캐릭터에 부합하지 않는다. 믹키유천의 변하지 않는 얼굴 표정은 이선준의 속내를 오히려 궁금하게 만든다.

‘성균관 스캔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연기자들을 화제의 중심에 서게 한 것은 단연 이들 캐릭터 덕분이다. 강하고 거친 이미지의 문재신, 어딘지 속없고 장난기만 가득해 보이는 구용하, 그리고 원리원칙만 강조하는 듯한 이선준. 하지만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진짜 그들의 속내를 훔쳐보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즉 문재신은 거칠어보여도 여자 앞에서는 딸꾹질을 하는 부끄러움을 타는 캐릭터이며, 구용하는 장난처럼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문재신이나 김윤희에 대한 걱정이 지극하다. 고집불통 같던 이선준은 결국 대물 김윤식에게 “(사내라도) 널 좋아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원칙을 깨는 인물이다. 겉과 다른 속. 오해로 시작해 이해로 다가오는 캐릭터들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이 멋진 캐릭터들 사이에 놓여진 대물 김윤식(혹은 김윤희)을 연기하는 박민영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윤희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김윤희는 많은 드라마 속 남장여자 캐릭터들이 그러했듯이 남자들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와는 사뭇 다른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물론 남녀 간의 연애감정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여성으로 돌아가지만, 남장여자로 서 있을 때 그녀는 그 어떤 사내보다 당찬 모습을 보인다. 어찌 보면 김윤희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 이면이 다른 ‘성균관 스캔들’의 캐릭터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인다.

‘성균관 스캔들’이 우리를 앓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캐릭터들 덕분이다. 겉보기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 이면에 서로 다른 속내들을 감추며 부딪칠 때, 그걸 알고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이나 감동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은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기 마련이다. ‘성균관 스캔들’을 앓게 하는 그 실체는 이 작품이 가진 놀라운 캐릭터들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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