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만큼 소통, <집밥> 콘서트의 의미

 

이제 시즌2를 조금씩 마무리하는 시간, 왜 하필 <집밥 백선생2>는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를 선택했을까. 사실 대단할 건 없다. 이미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때때로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왔던 건 오래된 전통에 해당하니 말이다. 거기에는 감사의 의미도 있지만 더 큰 건 소통의 의미다.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시청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의미.

 

'집밥 백선생2(사진출처:tvN)'

음식을 만들어가며 하는 요리 콘서트(?)’ 형식으로 준비된 집밥 콘서트에서는 그래서 백종원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했지만 간단한 차이 때문에 제 맛을 내지 못했다는 허경환의 이야기로 파기름을 볶는 노하우를 다시금 되새겨주고, 그걸로 즉석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중국식 파기름 국수를 내놓는다. 아마도 현장 스튜디오에는 파기름 냄새가 가득 채워져 관객들의 식욕을 자극했을 게다. 적은 양이지만 관객들까지 조금씩 맛을 보는 장면은 요리를 통한 공감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마침 집에서 <집밥 백선생>을 따라 만능춘장을 만들었지만 너무 짰다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똑같은 레시피로 직접 춘장을 볶아 내놓은 짜장면을 시식하게 하는 장면 역시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 프로그램이 가진 양방향 소통의 의미를 더해준다.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만든 짜장면을 관객들이 돌려가며 한 젓가락씩 맛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

 

사실 이런 풍경은 최근 먹방 쿡방이 많이 등장하면서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과거 음식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달라진 풍경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과거의 음식 프로그램들이란 대체로 음식의 전문가라는 이들이 나와 자신의 레시피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음식 프로그램을 보라. 제자들과 함께 만들고 서로 맛을 보며 품평하고 나아가 시청자들이 참여하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만든다.

 

요리 프로그램이 그 특성상 시청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직접 시연해보는 것까지 이어진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의 진가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스트로 나온 김성은이 남편을 위해 요리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지만 너무 재료가 어렵고 방법도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거기에 그걸 시연할 대상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걸 의미한다. <집밥 백선생>은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체할 방법을 알려주고, 복잡할 수 있는 조리 방법을 보다 간단하게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요리를 모르던 사람들도 참여하게 만들었다.

 

항상 성공하는 요리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때로는 실패하는 사례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과의 공감의 폭을 넓힌 것도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요리 무식자들이 굳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뜻은 그런 것이다. 그들의 실패사례가 바로 일반 시청자들의 실패사례를 대변해주고 그 원인을 파악해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저 일방적으로 전문적인 레시피를 던져주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닌가.

 

<집밥 백선생2>가 그 시즌의 마무리에 즈음에 집밥 콘서트를 통해 보여준 건 바로 소통의 가치다. 제 아무리 좋은 요리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걸 배우고 실행할 이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런 프로그램은 외면받기 마련이다. 이제 소통공감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시대의 덕목이 되고 있다. 요즘 같은 불통의 시대에는 더더욱.

TV의 비만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

 

tvN <먹고 자고 먹고>라는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먹고 자고 먹는것이 콘셉트다. 말레이시아 쿠닷의 한 리조트에서 백종원은 현지 재료들을 사다가 갖가지 음식들을 만든다. 그 산해진미를 온유와 정채연이 만끽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려는 전부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현실을 살짝 벗어나 먹고 자고 먹으러 온 정채연의 가방에서 불쑥 저울이 나온다. 그녀는 실컷 음식을 먹고 난 다음날 저울 위에 올라보고는 마치 굉장한 잘못이라도 한 듯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늘 살찌는 걸 경계해야 하고 따라서 다이어트를 거의 생활화하며 살아가는 걸 그룹 아이돌의 살에 대한 강박을 살짝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슈퍼스타K2016(사진출처:Mnet)'

<슈퍼스타K2016> 첫 회에 출연한 조금 살집이 있어 보이는 참가자 이지은이 제시제이의 노래를 엄청난 성량의 가창력으로 불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을 때 심사위원인 에일리는 엉뚱하게도 살 빼지 마요라고 말했다. 정작 이지은은 살을 빼고 싶다고 했지만, 에일리는 목소리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살 빼지 말라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용감한 형제가 왜 예뻐지고 싶다는데 살 빼지 말라고 하냐고 물었고 에일리는 성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짧은 장면 속에서도 TV가 살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들이 묻어난다. 살이 찌면 예쁘지 않다는 편견, 가수는 노래를 잘 하면 되는 것이지만 당연하게 살도 빼야 한다는 편견 같은 것들이 그 장면 속에는 들어 있다.

 

TV가 살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들은 다이어트 강박으로 인한 거식증 때문에 심지어 활동 자체를 잠정 중단한 걸 그룹들 같은 아이돌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살은 주연과 조연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직업을 가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와 외모, 세모, 네모기획단이 2016년 상반기 방영된 총 55편의 드라마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드라마 출연자 총 907명 중 외형상 비만인이 25명으로 2.8%에 불과했다고 한다. TV에서 살이 있는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거의 활동하고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이들 비만인들이 주연으로 캐스팅된 경우는 전체에서 <그래 그런거야>의 노주현, <디어 마이 프렌즈>의 주현 이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미 익숙히 아는 사실지만 주연으로서 살이 찐 배우를 우리는 본 적이 거의 없다. 이 조사에서는 지금껏 방영된 드라마들 중 이렇게 살이 있는 배우가 주연이 됐던 경우는 <막돼먹은 영애씨><내 이름은 김삼순>이 거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의 직업 역시 성공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현실의 반영일까, 아니면 TV가 조장하는 것일까. 적어도 현실의 비만인구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TV가 비추는 2.8%의 비만인 비율을 현실 반영이라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TV는 살을 빼는 것을 응당 해야 하는 자기 관리의 하나로 내세우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를 테면 <구르미 그린 달빛>의 뚱뚱한 외모를 가진 명은공주(정혜성)는 다이어트를 통해 극적으로 살이 빠진 모습을 하나의 중요한 서사로 담고 있다. 결국 살은 빼야 할 어떤 것이고, 그렇게 해야 사랑이든 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전언을 드라마들이 은연 중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에 대한 증오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그 강박이 만들어내는 건강에 대한 위협이 더 크다고 한다. 사실 가면을 벗겨놓고 보면 그 안에 자리 잡은 산업적 논리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미디어에 의해 조장된 강박은 결국 두려움을 만들고 그건 갖가지 몸 산업이 움직이는 원천적인 힘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고통스럽게 살을 빼고(그럴 필요도 없는 정도의 살까지도) 그렇지만 쉽지 않은 다이어트에 굴복하기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자기 몸에 대한 혐오를 갖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우리 몸을 그저 자연스러운 몸이 아니라 바뀌어야 할 몸으로 상정하고 심지어 나아가 혐오의 대상으로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세계적인 디바인 아델은 특히 여성들의 몸무게에 집착하는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제가 플러스 사이즈인데도 성공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음악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거잖아요. 애초에 겉모습이 무슨 상관이죠?” 살에 대한 편견과 그걸 일상적으로 TV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교육받고 있는 우리들이 경청해야할 일갈이 아닐까

<먹자먹>, 누구나 꿈꾸는 로망을 현실로

 

아무 것도 안하고 오로지 먹고 자고 먹고... <먹고 자고 먹고>는 제목 그대로의 예능이다.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로망. 바다가 보이는 그림 같은 풍광의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기며 갖가지 음식들을 마음껏 먹는 것. 그것이 이 예능이 추구의 전부다.

 

'먹고 자고 먹고(사진출처:tvN)'

사실 너무 단순해 보이지만 이 단순함이 주는 힘은 의외로 크다. 말레이시아 쿠닷의 한 리조트에서 백종원은 그 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갖고 이것저것 음식을 마음껏 만들고, 온유와 정채연은 아이돌로서 늘 신경 쓰던 다이어트 따위는 잊어버린 채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만끽한다.

 

그 흔한 미션 따위도 없다. 그러니 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이 이들이 해야 할 유일한 것들이다. 백종원이 만들어 먹을 음식을 구상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그걸로 음식을 만드는 그 과정은 다른 사람이었다면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에게는 전혀 미션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도 말했듯 백종원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기 위해 쫓기듯 지냈던 온유나 정채연은 백종원이 음식을 만들 동안 그저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거나 낚시를 하며 놀면 그만이다. 그리고 백종원이 만든 음식을 마음껏 먹는 건 이들이 그토록 하고팠던 로망이다. 그러니 이 예능에 반드시 해야 할 미션 따위는 없다. 그들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즐기는 것뿐.

 

사실 <12>이나 <정글의 법칙>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자주 해온 미션들이 음식을 주지 않고 굶기는 것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먹고 자고 먹고>는 이와는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공복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처절한 모습들이 <12>이나 <정글의 법칙>야생의 느낌을 부여했다면, 음식을 만끽하며 즐기는 모습들은 <먹고 자고 먹고>에 휴양과 힐링의 느낌을 부여한다.

 

<12>이나 <정글의 법칙>이 야생에서의 고생스러운 생존을 통해 현실감을 부여한다면 <먹고 자고 먹고>는 편안한 리조트에서의 휴양을 통해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단 며칠이라도 맘껏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와 셀프 힐링이라는 최근의 트렌드가 반영된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실 어찌 보면 <먹고 자고 먹고>는 먹방과 쿡방과 여행 예능의 조합처럼 보인다. 실제로 백종원이 해외 리조트에서 벌이는 쿡방이면서 온유와 정채연의 먹방이고, 휴양지에서 즐기는 여행 예능의 요소들이 이 예능의 전부다. 하지만 그런 익숙한 조합들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프로그램 전반에 깔려 있는 행복감이 느껴지는 공기다.

 

<삼시세끼>가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안하는 것을 지향함으로써 예능에서 미션이라는 인위적인 요소를 빼놨다면, <먹고 자고 먹고>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과거 굶기던 예능에서 이제는 만끽하는 예능으로 가는 이 흐름은 아무래도 힘겨운 현실에 대한 잠깐 동안의 망각을 꿈꾸는 지금의 시청자들의 욕망 때문일 것이다.

<집밥 백선생>, 시금치 요리로 보여준 백종원 레시피의 진가

 

대충 대충 하는데 맛있어요.” 김국진의 이 한 마디는 tvN <집밥 백선생>이라는 쿡방의 정체성을 거의 담고 있다. 시금치 요리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시금치 무침이나 김밥 속에 들어가는 시금치 혹은 시금치 된장찌개 정도일 게다. 너무 흔하지만 그래서 너무 뻔해보였던 시금치. 하지만 백종원은 이 뻔한 재료를 갖고 세계 음식 기행을 떠난 듯한 다양한 맛을 선사한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항상 시작은 기본부터. 시금치를 데쳐 간장과 간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후 고소한 깨를 얹어 먹는 시금치 무침. 그 간단한 기본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듣도 보도 못한 시금치 된장 죽이나 동남아풍 시금치 덮밥에 말도 안되는 이태리풍 시금치 토마토 피자 같은 것이 레시피로 제공된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잘 안 먹어 <뽀빠이> 같은 만화를 통해 시금치가 인기 음식으로 소개됐을까. 그만큼 시금치라는 식재료는 어딘지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금치 된장 죽 같은 레시피를 보고 나면 해장으로 이만한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시금치 토마토 피자는 백종원이 말하듯 맥주를 부르게 만드는 레시피다.

 

마치 수학 공식을 배워 차츰 응용으로 나가듯 <집밥 백선생>의 음식 레시피들은 처음에는 기본 공식으로 식재료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특징을 이해한 후 응용으로 들어간다. 시금치의 경우 살짝 데쳐주면 그 거해 보이던 양이 한 줌으로 줄어드는 특징과 특유의 채소가 주는 건강한 느낌이 특징이다.

 

어려울 것 없어요.” 백종원이 입에 거의 달고 다니는 이 말대로, 또 김국진이 대충대충 하는데 맛있다.”는 말처럼, 그의 레시피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게 강점이다. 요즘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루 종일 음식을 갖고 씨름하는 건 여러모로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는 큰 장벽을 만든다. 하지만 백종원은 냉장고에 흔한 기본 재료 몇 개를 갖고 슥슥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요리의 세계를 알려준다.

 

또한 본 재료가 없으면 포기하게 되는 게 일반적인 요리자들의 습성이지만, 백종원은 그 맛을 대치할 수 있는 걸 알려준다. 이를테면 동남아풍의 맛을 내기 위해 피쉬 소스가 없다면 액젓을 사용해도 된다고 알려주고, 새우 패이스트가 없다면 건새우를 잘라 그 맛을 내면 된다고 한다. 하다못해 피자 빵을 직접 만들 필요 없이 만두피만으로 퀘사디아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건 요리 무식자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선다. 보다 간편하고 보다 쉬우면서도 그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요리라면 주부들도 눈이 가기 마련이다. 그 뻔하고 흔했던 시금치 한 단이 이토록 그럴싸한 고급진 요리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있어빌리티의 세계에서는 흘려보낼 수 없는 귀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대충 하는 데 맛있는 요리. 시청자들이 <집밥 백선생>에 빠져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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