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록’, 협박범과 협력하는 형사의 온몸으로 쓰는 참회록

형사록

과거의 잘못된 선택은 과연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한 순간에 동료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용의자가 된 형사 김택록(이성민). 위기상황에 놓인 그에게 ‘친구’라 자칭하는 의문의 인물이 전화를 걸어온다. 그 ‘친구’는 자신이 그를 살인용의자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걸 드러내고 다짜고짜 게임을 제안한다. 그건 김택록이 과거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했거나 진범이 아니라는 의심이 있었지만 윗선의 수사대로 그냥 내버려뒀던 그런 사건들을 다시금 수사해 그 진실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은 이처럼 그 이야기 구조가 독특하다. 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물이지만 그 살인범의 목적은 바로 이 택록이라는 형사의 과오를 캐는 것이다. 택록은 왜 그가 이런 일을 벌이는가를 애초에는 궁금해 하지만, “과거 속에 내가 있고 왜가 있다”는 그의 말을 재수사 과정을 통해 조금씩 알아차린다. 

 

택록은 범인을 어떻게든 잡아넣기 위해 범행 도구로 쓰인 흉기를 찾아야 했지만, 찾을 수 없게 되자 이를 조작했던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10년 넘게 딸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아픈 세월을 살아온 피해자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당시 피해자의 엄마는 딸이 단순실종이 아니고 그 범인에게 살해당했을 것을 주장해 수사를 요청했지만 범행 도구를 조작해 수사를 마무리 짓는 바람에 사건으로 그것을 덮어버렸다. 

 

결국 ‘친구’라는 협박범의 요구에 의해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택록은 암매장된 시신과 그 옆에 놓여진 진짜 범행도구를 목도하게 된다. 뒤늦게 피해자 엄마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고개를 숙이지만, 그것으로 10년간이나 딸의 시신이나마 찾기 위해 산을 헤매고 다닌 부모의 상처가 위로될 수는 없었다. 

 

‘친구’는 또 택록에게 과거 굴다리 밑에서 벌어졌던 방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방을 갔던 양기태(김재범) 역시 누명을 쓴 거라며 진범을 찾으라고 요구한다. 당시 양기태는 그 사건의 목격자였지만 피해자의 진술에 의해 범인이 됐다. 당시 찜찜함이 있었지만 그걸 그냥 넘겨버렸던 택록은 재수사를 통해 진범은 따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진범이 동네 유지의 아들이고 그래서 수사과정에서 결탁도 있었다는 것을. 

 

이처럼 <형사록>은 택록이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협박자인 ‘친구’ 때문에 다시 수사해나가며, 그 사건에 있었던 비리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택록이 이 수사과정을 통해 ‘친구’라는 인물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덫에 빠뜨린 협박자로서 그에게 분노하지만, 차츰 그가 요구하는 수사를 통해 자신도 어떤 방식으로도 연루되어 있던 과거의 잘못들을 들여다보며 협박자와 진짜 동료 같은 유대감을 갖게 되는 것.

 

처음에는 발신자 추적이 금지된 번호로 걸려오던 전화가 이제 번호가 찍혀 걸려오고, 그 번호를 추적하면서도 택록이 자신의 핸드폰 주소록에 ‘친구’로 입력하는 모습은 이들의 관계 변화를 잘 보여준다. 즉 택록을 변화시키는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 형사물은 과거 저질렀던 잘못들에 대한 그의 참회기를 그려나간다. 그건 그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진상을 파악하고 그 이면에 있는 진범들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형사록>의 이런 서사는 과거에 벌어진 잘못에 대한 참회가 궁극적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사과하고 사죄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건 아프더라도 온 몸을 던져서 그 과오를 파헤치는 것이고, 그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사록>의 이야기는 확장해서 바라보면 이 땅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사고와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고 지금껏 살아가는 무고한 피해자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참회의 길인가를 보여주는 면이 있다. 그것은 그저 고개 까닥 숙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애도만 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이 그 길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걸, <형사록>은 에둘러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디즈니 플러스)

'사이코', 오정세가 만들어내는 멜로 그 이상의 가치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11회 부제는 '미운 오리 새끼'다. 매회 동화를 부제로 가져와 동화가 제시하는 교훈과는 다른 해석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 드라마가 '미운 오리 새끼'를 가져와 던진 질문은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동생 강태(김수현)와 자신이 좋아했던 동화작가 문영(서예지)이 가깝게 지내는 걸 형 상태(오정세)는 용납하지 않는다. 강태는 문영에게 상태가 가진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며 자신은 형 옆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영에게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고 한다. "내가 형 옆에 있을 테니까 넌 그냥 내 옆에 있어."

 

그래서 문영은 상태를 찾아와 작업을 같이 하자며 세 사람이 함께 지내려 애쓴다. 하지만 상태는 요지부동이다. 동생 강태를 "내 거"라고 말한다. 그런 상태에게 문영은 "강태는 강태 거"라며 말다툼을 벌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상태에게 먹힐 리 없다. 상태는 강태가 동생이지만 문영은 "남"이라고 선을 긋는다.

 

"형한테 나는 유일한 가족이야. 그런 나를 너한테 빼앗기고 혼자가 될까봐 형이 두려워하고 있어." 강태는 형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 문영과 가까워지면 자신은 버려질 지도 모른다 두려워하는 것. 그래서 강태는 말한다. "날 뺏기는 게 아니라 함께 있어줄 한 명이 더 생기는 거라고.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되는 거라고 믿게 해줘야지."

 

강태는 형에게 둘리 가족을 이야기하며 고길동이 왜 둘리와 도우너 같은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걸 빗대 '보호자'와 '어른'은 '남'이어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설득시킨다. 집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강태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형이면 형답게 좀 굴어!"라는 말에 상태는 생각이 많아진다. 잠든 강태가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걸 보며 상태는 '강태의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자폐를 갖고는 있지만 그는 자신이 형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자신만의 돈 통에 꼭꼭 숨겨둔 비상금을 꺼내 강태에게 돈가스를 사준다. 형답게 돈가스를 잘라주고 물수건도 건네준다. 그리고 자신의 돈가스를 동생에게 덜어주고는 돈 통에서 꼬깃꼬깃한 용돈도 꺼내 준다. 동생 강태를 행복하게 해주고픈 형의 마음이 묻어난다.

 

그 곳까지 따라온 문영이 상태에게 자신도 용돈을 달라며 자신은 용돈 줄 사람도 함께 밥 먹어줄 가족도 없다고 했지만 상태는 뿌리치며 강태에게 집에 가자고 한다. "나도 오빠 같은 오빠 갖고 싶다고!" 문영의 그 말은 상태의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빨리 와 문강태!... 고문영! 빨리 와! 둘 다 안와?" 상태는 드디어 형으로서 동생이 좋아하는 문영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강태는 상태에게 '미운 오리 새끼'에서 다르게 생겼다고 차별받아 오리가 떠나게 되지만, 만약에 엄마가 미운 오리를 끝까지 사랑해줬다면 어땠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어른이 잘 품어주면 오리든 백조든 다 같이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건 아마도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담으려는 또 하나의 메시지일 게다.

 

어린 시절 아픈 상처를 입고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워진 건 강태와 문영만이 아니다. 상태는 그 트라우마로 자폐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자폐여도 형으로서 동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상태가 문영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조금 달라도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상태 역시 자폐를 갖고 있어도 누군가의 가족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어른'이라면.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강태와 문영 사이의 멜로를 중심축으로 갖고 있는 드라마지만, 그 멜로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드는 건 바로 상태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자폐라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가 괜찮은 형이고 나아가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는 지점은 멜로 그 이상의 먹먹한 감동을 준다. 평범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상태보다 더 괜찮은 어른일까를 스스로 자문하게 만든다.

 

이 중요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상태라는 역할은 오정세라는 빛나는 배우를 만나 생명력을 얻고 있다.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되기도 하는 이 캐릭터가 조금은 낯설지만 따뜻하고 때론 귀엽게 그려지는 건 오정세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다. 오정세여서 더 괜찮고 더 감동적인 상태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했으니.(사진:tvN)

기억과 상처, ‘그 남자의 기억법’의 멜로가 독특해지는 이유

 

남다른 기억 능력을 가진 이가 그려나가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일까.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은 잘 나가는 방송국 앵커 이정훈(김동욱)과 SNS 팔로워 860만명이 넘는 연예인 여하진(문가영)의 만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먼저 그런 선입견을 갖게 된다.

 

실제로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정훈이 진행하는 ‘뉴스라이브’에 여하진이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의해 생겨난다. 늘 그렇듯 까칠하게 여하진의 일관성 없는 행동을 지적하는 이정훈에게 여하진이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 마디가 방송 사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정훈의 죽은 첫 사랑 정서연(이주빈)이 자주 했던 “나는 복잡한 게 싫다. 그냥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세면서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순간 정서연의 말을 떠올려 생방송 중 멍해지는 바람에 생겨난 방송 사고는 그러나 평소 평판이 좋은 이정훈이 아니라 악플이 많았던 여하진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이정훈의 질문에 화가 나서 밖으로 뛰쳐나가 잠시 방송이 끊어진 것이라 소문이 난 것. 그렇게 된 게 미안해 최희상(장영남) 국장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이정훈과 여하진은 다시 만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스캔들로 이어진다. 화가 난 여하진은 대놓고 이정훈과 좋은 만남을 갖고 있다고 언론발표까지 해버린다.

 

이처럼 ‘그 남자의 기억법’은 첫사랑을 잃고 마음을 닫아버린 이정훈과 그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여하진 사이의 멜로를 로맨틱 코미디의 스타일로 그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정훈이라는 색다른 캐릭터는 모든 걸 기억하는 것이 행복한 능력이 아닌 지독한 고통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인물. 망각의 능력(?)이 없는 그는 죽은 첫사랑의 기억 속에 갇혀 살아간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저 기억의 문제를 하나 더해 그려내는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건 의외로 아무런 걱정조차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여하진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다. 알고 보니 첫사랑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해 이정훈을 놀라게 했던 여하진은 서연의 절친이었다. 친한 사이여서 나눴던 말들이 불쑥 불쑥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 이정훈을 놀라게 했던 것.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하진은 정서연에 대한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떤 지울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 감당할 수 없는 상처가 여하진으로 하여금 정서연과 관련된 기억을 지워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정서연의 죽음은 어딘지 여하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거기에 여하진의 망각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 남자의 기억법’이 담고 있는 멜로가 흥미로워지는 건, 정서연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정훈과 여하진의 기억이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정훈은 그 순간 하나하나를 낱낱이 기억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반면, 여하진은 그 기억을 지워버린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두 사람이 그 기억을 매개로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과정은 어쩌면 치유의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 어떤 거대한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고 보듬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 남자의 기억법’이 단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경쾌함을 담은 드라마가 아니라, 의외로 진중한 문제의식이 담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MBC)

‘초콜릿’, 하지원과 윤계상의 음식을 통한 마음 특히 먹먹한 이유

 

바다식당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문차영이 찾아왔던 그 곳에서 이강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쏟았다. 늘 열쇠가 놓여있던 곳에서 열쇠를 찾아 식당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이강(윤계상)의 기억에도 불이 켜졌다.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맛나게도 먹었던 기억.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문차영(하지원)에게도 추억이 돋아난다. 요리를 직접 한다는 이강의 말에 그 어린 시절 행복했던 맛이 떠올랐을 수도.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바다식당에서 두 사람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차영은 사고로 머리를 다쳐 미각을 잃은 상태였다.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문차영은 그러나 마치 미각을 다시 찾기나 했다는 듯이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이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동생한테서 MRI사진이랑 진료기록 받았어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무 식당이나 그냥 데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말에는 이강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문차영은 다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문차영에게 이강은 어렸을 때 그랬듯이 휴지를 건넸고, 문차영은 “너무 행복해서 그래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자꾸 눈물이 나요.”라고 그 어린 시절 했던 그 말은 다시 했다. 그 말은 이강에게 오래도록 지워져 있던 기억 하나를 끌어올렸다. 문차영에게 바다식당에 온 적이 있냐고 물었고 자신을 아냐고 물었다. 문차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쩌면 <초콜릿>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궁극적인 지점일 것이었다. 어린 시절 첫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다시 재회했지만 그를 알아차리는 문차영과 달리 기억을 못하는 이강. 그렇게 서로 엇나간 운명 속에서 지내다 결국 다시 그 첫 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떠올린 기억.

 

이것은 <초콜릿>이 다루고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와도 딱 맞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가 아닐 수 없다. 그걸 매개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음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비록 배고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내 일처럼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바다식당을 떠나 저 현실을 떠돌며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들을 겪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이강은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가 건네준 초콜릿으로 문차영은 살아남았지만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이 들어 다시 이강을 만났지만 그의 친구 권민성(유태오)의 구애로 운명이 엇나갔고 권민성은 사망했다. 문차영은 그 상처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동 식당에서 일하며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듯.

 

이강은 거성재단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지만 후계를 두고 벌어지는 이준(장승조)과의 대결과 그를 밀어내려는 이준의 부모들 속에서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바다식당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그 행복했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이강은 손까지 떨리게 되자 결국 호스피스 병원으로 좌천되어 내려오게 된다.

 

이렇게 현실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다시 바다식당에서 음식을 마주한 채 서로를 기억해낸다는 설정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미각조차 잃어버린 요리사 문차영이 이강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너무 맛있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음식이 그저 맛과 같은 감각 그 이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음식을 통해 그는 이강의 마음을 느낀 것이고 그 마음이 너무 행복했던 것.

 

이건 그간 <초콜릿>이 담아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음식을 매개로 하고 있는 이유를 드러낸다. 너무나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 건넨 음식 하나가 어떤 위로와 위안을 넘어 힘을 줄 수 있는 건 단지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거기 담긴 음식 만드는 이의 마음 때문이라는 걸 <초콜릿>은 음식을 마주한 두 사람의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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