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멸망’과 ‘간동거’의 평행이론

 

로맨틱 코미디의 남녀 주인공은 당대의 대중들이 가진 욕망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와 <간 떨어지는 동거>는 유사한 지점이 있다. 초현실적 존재와의 로맨틱 코미디를 그리고 있어서다.

어느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이젠 ‘멸망’과 밀당하는 판타지 멜로의 시대

사귀던 남자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고, 뇌종양까지 발견되어 100일 시한부 판정을 받은 탁동경(박보영)은 절망적인 마음으로 외친다. “세상 다 망해라! 다 멸망해버려!” 그런데 그 날 새벽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보니 웬 잘 생긴 남자가 서있다. 그는 불러서 왔다며 자신을 ‘멸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는 멸망(서인국)과 탁동경의 밀당 판타지 멜로가 시작된다. 

 

사실 초현실적인 존재와의 사랑이야기는 완전히 색다른 건 아니다. 이미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를 통해 우리는 도깨비 김신(공유)은 물론이고 저승사자(이동욱)의 매력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다. <멸망>은 이 작품을 쓴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였던 임메아리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도깨비>를 닮았다. 잘 생긴 초현실적인 존재의 갑작스런 등장과 그와 얽히는 판타지 멜로 그리고 과거사의 비극까지, <멸망>의 세계관은 유사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도깨비’가 초현실적인 존재이긴 해도 최소한 설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형상이 있는 반면, ‘멸망’은 말 그대로 추상이기 때문이다. 그 추상적 관념을 그려낸 실재 인물과 만나고 사랑하고 아파하며 아마도 헤어질 그 과정들은, 그래서 탁동경이라는 절망에 빠진 인물이 그 절망(아마도 멸망 같은)을 어떻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극복하는가의 과정처럼 그려지는 면이 있다. 예컨대 이 드라마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멸망이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탁동경은 그 멸망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걸 선택한다.

 

바로 이런 ‘추상’과의 판타지 멜로가 만들어내는 철학적인 세계관은 그래서 이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를 차별적으로 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사실 이러한 세계관을 빼놓고 보면 <멸망>은 지극히 평범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다. 함께 동거를 하고 계약서를 쓰고 밀고 당기는 관계를 보이다가 사랑하게 되는 드라마. 하지만 탁동경이 사랑하게 되는 존재가 다름 아닌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이유’인 멸망이라는 사실은 이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에 무게감을 만들고 나아가 운명적인 비극의 향기까지 드리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즉 그 추상적 존재와의 관계를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려는 시청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흥미를 주지만, 그것이 너무 복잡하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뻔하고 틀에 박힌 멜로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한 가지 지평만은 넓힌 공적이 있다. 그건 이제 멜로가 ‘멸망’ 같은 추상적 존재와의 밀당 정도는 다뤄야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간 떨어지는 동거

‘멸망’과 다른 듯 닮은 ‘간동거’의 판타지 멜로

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는 그 이야기의 소재를 구미호 설화에서 가져왔다. <전설의 고향>에서부터 최근 <구미호뎐>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재해석과 진화를 거듭해온 설화의 주인공이다. <간 떨어지는 동거>가 특이한 건 신우여(장기용)라는 구미호가 무려 999살을 산 존재라는 점이다. 고려 현종 때 태어난 이 인물은 그래서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을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어딘가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을 닮았다.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골동품들이 가득 채워진 집의 풍경이 그렇고, 남다른 능력(도술)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 그렇다. <간 떨어지는 동거>의 구미호 신우여는 그 긴 세월을 살며 인간에게는 정을 주지 못하는 ‘어르신’이지만, 어쩌다 우연히 그의 구슬을 삼키게 된 이담(혜리)을 그는 조금씩 마음에 담기 시작한다. 구슬을 빼내는 건 간단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담의 기억이 모두 지워지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면 구슬에 정기를 빼앗겨 이담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신우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멸망>과 <간 떨어지는 동거>는 언뜻 보기에는 확연히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비슷한 요소들이 적지 않다. 즉 멸망이나 구미호 같은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고, 그와의 밀당 로맨틱 코미디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며, 이들은 결국 동거를 하게 되고 함께 사는 동안의 계약서를 쓴다는 점도 유사하다. 또한 이 멜로가 순간순간을 웃음으로 채워 넣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과, 쉽게 이뤄질 수 없는 비극을 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인간과 초현실적인 존재 간의 사랑이니 어찌 쉽게 이뤄질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유사한 지점들이 많은 건, 이 두 드라마가 전형적인 ‘청춘 로맨틱 코미디’의 법칙들을 따라가고 있어서다. 즉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두 작품이 모두 쓰고 있지만, 거기에 ‘멸망’이나 ‘구미호’ 같은 초현실적 존재를 더함으로서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멜로라는 장르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이유

우리네 드라마에서 한때 멜로는 중심적인 장르였다. 그것은 최근 등장한 장르 드라마들보다 훨씬 더 ‘맨 파워’에 의해 힘을 발휘하는 장르가 바로 멜로이기 때문이다. 액션이나 화려한 CG 혹은 판타지적 세계를 세트나 의상 등을 통해 구현해내곤 해야 하는 장르드라마들은 더 큰 제작규모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담는 멜로드라마들은 잘 만든 대본과 연기자들의 감정 연기 등으로 가성비 높은 몰입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남녀 간의 사랑을 담는 멜로만큼 본능적인 소재도 없다. 그래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기까지 트렌디 멜로 드라마들은 우리네 드라마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2002년 만들어졌던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첫 한류의 불씨를 지폈던 것도 그 동력은 바로 멜로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그 후 20년 간 급격히 변화했다. 너무 많이 나온 멜로드라마들은 이제 시청자들이 그 공식을 꿰고 있을 만큼 익숙한 문법이 되어버렸고, 2010년대까지도 그토록 쏟아져 나온 신데렐라 판타지의 멜로드라마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대중들의 ‘성인지 감수성’ 때문에 변화를 요구했다. 김은숙 작가가 2000년대 초반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연인> 3부작으로 멜로 장인에 등극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신데렐라 스토리 덕분이었지만, 이 작가는 2016년부터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의 대작 3부작을 통해 변신했다. 장르와 더해진 멜로의 퓨전을 성공적으로 실험한 것. 

 

<멸망>이나 <간 떨어지는 동거> 같은 초현실적 존재를 등장시켜 만들어가는 판타지 멜로는 그래서 이 흐름 안에서 보면 너무 익숙해져 위기에 빠진 멜로의 안간힘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그 문법은 익숙하지만 무언가 다른 관점을 통해 새로움을 시도하려는 안간힘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간힘을 성공했을까. 두 작품은 모두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소재와 장르를 더해 새롭게 만들려 한 시도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지만, 그 껍질을 벗기고 나면 여전히 같은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어쨌든 멜로는 남녀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에서는 필수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적 변주와 창조적 변화가 요구될 뿐.(글:매일신문, 사진: tvN)

'놀면 뭐하니' 박명수·정준하보다 이효리·비가 더 기대되는 이유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갑자기 <무한도전>의 풍경이 펼쳐졌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100마리 치킨을 무료로 나누는(이 미션을 성공하면 1000마리 치킨을 기부하는 콘셉트였다) 이른바 '토토닭'에 '치킨의 명수' 박명수와 일일 인턴 정준하가 출연하고 이벤트 현장을 찾아온 하하가 합류하면서 생겨난 풍경이다.

 

사실 시청자들은 여전히 <무한도전>의 시즌 종영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더해진 <무한도전>의 풍경은 어딘지 조화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것은 <무한도전> 시절의 흔했던 상황극이나 소동극이 <놀면 뭐하니?>에서 재연되는 것이 새로운 재미를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뻔한 재미의 코드가 박명수의 버럭 개그다. 소리를 지르며 "어떡하냐"를 연발하는 그 정신없는 멘트들은 <무한도전> 시절 박명수의 전매특허 같은 모습이지만,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버럭 댈 때 그를 적당히 눌러주는 다른 멤버들이 있어 그것이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던 <무한도전> 시절의 풍경과 <놀면 뭐하니?>의 그것은 사뭇 달랐다.

 

일일 인턴으로 참여한 김연경 선수에게 버럭 대는 박명수의 모습은 그래서 다소 불편한 감을 주었고, 정준하의 참여로 만들어진 하&수 케미도 예전 같은 재미보다는 너무 정신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차를 대고 기다리는 손님들에게도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 모습은 최근의 방송 트렌드가 상황극보다는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나마 김연경이 박명수의 그런 버럭을 받아주지 않고 맞서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그 불편함이 상쇄되긴 했지만, 여러모로 박명수의 한계가 느껴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토토닭'은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고 나아가 불필요한 장면들도 들어가 있어 본래 취지가 흐려지는 면들도 있었다. 대놓고 PPL로 들어온 교촌치킨이 그렇고, 하하가 이벤트장에 찾아와 일을 함께 하게 되는 그 상황도 너무 정해진 수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벤트장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박명수가 아내와 딸이 탄 차를 발견하고 딸이 요즘 무용을 한다는 걸 굳이 인서트를 집어넣은 장면도 그랬다.

 

<무한도전>이 그립긴 하지만, <놀면 뭐하니?>는 역시 유재석이 홀로 이끌어가며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때 더 흥미로워진다는 걸 이번 '토토닭' 프로젝트는 보여줬다. 사실 지난 번 비가 출연해 이효리와 비가 함께하는 혼성 댄스 그룹 도전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시청자들이 많았을 게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처럼 기다려지게 되는 건 그 조합이 새롭고 그래서 기대감도 크기 때문이다.

 

박명수의 버럭과 정준하와 맞춰 만들어내는 티격태격 '하&수' 케미, 그리고 하하 특유의 과장된 '호객행위(?)' 같은 장면들은 <무한도전>이라는 틀 안에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다소 불편한 대립 같은 게 등장해도 그걸 상쇄해주는 서로 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 같은 새로운 틀에 자꾸만 <무한도전>의 그 색깔을 끼워 넣으려고 하는 시도는 조금씩 진화해가고 성장해가던 <놀면 뭐하니?>가 뒷걸음질을 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다양한 세계를 확장시키고 결합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무한도전>처럼 강한 세계가 아직 확실히 성장하지 않은 <놀면 뭐하니?>와 붙었을 때 자칫 이 새로운 세계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걸 유의할 필요가 있다.(사진:MBC)

‘1박2일’의 분화, ‘1박2일’ 콘셉트 예능 점점 늘어난다는 건

 

tvN 예능 <신서유기7>은 ‘홈커밍’에 레트로라고 대놓고 붙였지만 사실상 <1박2일> 초창기를 재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마다 추억이 돋는 캐릭터로 분장하고 팀을 나눠 퀴즈를 풀어가며 그 단서로 ‘대성리역’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그렇고, 숙소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려 방구석에 앉아 갖가지 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렇다. 사실 <1박2일>은 초창기에 그렇게 방구석에서 게임만 해도 충분히 방송분량이 나올 만큼 재미가 가득했지 않았던가.

 

강호동과 이수근 그리고 은지원이 있고 게임의 출제자로 나선 나영석 PD까지 있으니 완벽한 <1박2일> 초창기의 추억이 소록소록 돋아난다. 특히 마치 MT를 간 것 같은 민박집에 뒹굴뒹굴하는 출연자들의 풍경과, 과거의 노래를 들려주고 맞추는 게임은 옛 노래가 환기시키는 향수까지 더해진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처음 봤을 때 느껴졌던 그 추억 속으로의 여행이 그 게임의 풍경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최근 정준영 사태로 인해 잠정 중단됐던 <1박2일>이 출연진 구성을 마치고 시즌4로 곧 돌아올 거라는 점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새 출연자로 연정훈, 김종민, 문세윤, 김선호, 딘딘, 라비 등이 확정됐고, 이들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인터뷰 형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때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 티저 영상은 이런 조합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구성됐다.

 

공교롭게도 <신서유기7>이 <1박2일> 초창기의 복고 콘셉트를 재연하고 있는 와중에 <1박2일>이 시즌4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묘한 관전 포인트를 만든다. 과연 <신서유기7>의 복고는 새로 돌아오는 <1박2일4>에 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득으로 보자면 그간 중단됐던 <1박2일>의 여행과 복불복 게임의 기억들을 이 복고 콘셉트의 <신서유기7>이 다시금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신서유기7>은 곧 시즌이 종료되지만, <1박2일>은 매주 찾아온다. 이런 향수의 자극은 오랜만에 돌아오는 <1박2일4>에 익숙한 기대감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1박2일>이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나왔던 초창기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신서유기7>의 초창기 복고 재연으로 다시금 꺼내질 수 있어서다. <신서유기7>은 확실히 그 초창기 <1박2일>의 맛을 실제로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 출연진을 구성한 <1박2일4>와 당연히 비교의 지점이 될 수 있다. 과연 <1박2일4>는 색다른 인물에 걸맞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가져올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예능가는 자꾸만 <1박2일>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마도 관찰카메라가 만들어낸 의미 과잉의 예능에서 이제는 좀 더 재미에 집중하는 예능의 트렌드가 꾸준히 시도될 거라는 판단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모두 성공적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여행과 게임 예능은 이미 너무 많이 나온 면이 있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자칫 새로움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나태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복고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옛것들을 다시금 꺼내와 현재화하는 것으로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까지 그 세계에 끌어들인다. 하지만 복고에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다. 그 과거를 어떻게 현재에 맞게 가져오느냐의 문제다. 그 부분을 생각한다면 최근 여기저기서 다시금 <1박2일> 콘셉트의 예능을 만지작거리는 일들이 과연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예능 제작자들은 좀 더 고민해야할 지점이 아닐까 싶다.(사진:tvN)

‘돈키호테’ 통해 본 몸으로 웃기는 예능의 부활 가능성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돈키호테>에는 ‘미치거나 용감하거나’라는 표현이 붙었다. 여러모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인물. 보는 관점에 따라 그건 미쳤거나 혹은 용감한 행위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돈키호테>의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프로그램 소개에서도 소설 <돈키호테>의 대사 중 하나를 가져온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그럴 듯한 설정이다. 하지만 막상 <돈키호테>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어떻게든 과거 우리가 봐왔던 몸으로 웃기는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애써 강변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첫 회만 슬쩍 보고도 이건 MBC <무한도전>의 시작점이었던 <무모한 도전>을 떠올린다. 삽질로 포크레인과 대결을 벌이고, 버스와 달리기를 하며, 무참히 깨지는 모습을 통해 큰 웃음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 처음엔 무모했던 도전들이지만 그것이 성공하진 못해도 최소한 웃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박수 받으며, 나아가 그 땀들이 모여 도전의 가치를 세워줬던 프로그램. 그래서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의 밑거름이 된 예능.

 

실제로 <무모한 도전>과 비슷하다는 반응들에 대해 손창우 PD는 애써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김태호 PD와 5년 간 함께 <무한도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감성’이 비슷하게 전달된 것일 수 있다고 했고, 특히 “어떠한 종목에 도전한다는 형식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절대 똑같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무모한 도전>과 살짝 다른 지점들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꿈잣돈’처럼 이들이 도전에 성공할 때마다 모아 꿈을 위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준다는 장치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장치 하나로 이 유사함이 다르다고 말하긴 어렵다. 육상 꿈나무들과 계주 대결을 벌이고 자동화 로봇과 즉석밥 포장 대결을 벌이는 그 형식은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의 연장선이다.

 

멤버 구성은 <무한도전>과는 사뭇 다르지만 어딘지 <1박2일>의 구성을 닮았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적인 팀 캐릭터 구성이 아닌가 싶다. 김준호가 맏형으로 들어갔고 조세호와 이진호가 웃음 담당 개그맨으로서 참여했으며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배우 송진우와 이 프로그램의 얼굴담당이자 젊은 피인 이진혁이 포진했다. 맏형을 세워 찧고 까부는 설정 개그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분량 욕심을 내보이는 조세호와 이진호가 별 노력 안해도 존재감을 보이는 막내 이진혁과 묘하게 세워지는 대결구도가 있으며, 여기에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이는 송진우가 조커처럼 포진했다. 도전은 이들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과정은 이들의 성장담을 그려낼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보면 <돈키호테>는 대놓고 예전 몸으로 웃기고 부딪치는 예능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얼리티쇼 즉 관찰카메라의 시대 깊숙이 들어와 이제는 캐릭터쇼가 한 물 간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어째서 <돈키호테>는 과거로 회귀한 것일까. 이건 퇴행일까 아니면 빠른 변화에서 오히려 과거가 그리워지는 복고 현상일까.

 

어찌 보면 관찰카메라 시대로 들어오면서 웃음의 강도는 상당 부분 약화된 게 사실이다. 즉 웃기기보다는 좀 더 진지해진 부분에 무게를 두는 예능의 시대랄까. 예능도 그런 진지함을 담아낼 수 있다는 외연의 확장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줄어든 것이 별 생각 없이 한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다. 재미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지면서 상대적으로 웃음의 영역은 축소되었다는 것.

 

퇴행이든 복고든 <돈키호테>가 지금 기능하는 지점은 바로 이 결핍이다. 그게 무엇이든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온 몸을 던지는 그런 예능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결핍. <무한도전>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1박2일>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빈자리다. 웃음을 주겠다는 그 진정성이 통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여겼을 법 한 상황이다.

 

다만 그토록 오래도록 해왔던 <무한도전>의 많은 스토리텔링들과의 비교를 <돈키호테>가 어떤 새로움으로 넘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무언가 새로운 포인트나 소재들이 등장한다면 시선을 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복고가 복제가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진정성은 알겠지만, 그걸 얼마만큼 신선하게 끌어갈 것인가는 이 프로그램의 중대한 숙제로 남았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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