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선생 고현정, 화나지만 공감 가네

 

성적순으로 앉히고 성적순으로 사물함도 사용하게 하며 성적순으로 꼴찌 반장을 뽑아 갖은 궂은일을 시킨다? 점심시간 배식 중에 실수로 카레를 엎지르자 남은 카레 역시 성적순으로 나눠줘 몇 명 빼고는 맨밥을 먹이고, 시험 볼 때는 화장실도 못 가게 해 결국 오줌을 싸게 만들며, 심지어 아이들의 숨은 가정사를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해 창피를 준다?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고현정) 선생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막장이다.

 

'여왕의 교실(사진출처:MBC)'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학생은 무조건 꼴찌 반장. 제목이 보여주듯 마여진은 선생이라기보다는 교실에 군림하는 여왕처럼 보인다. 이 역할을 맡은 고현정이 <선덕여왕>의 미실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고, 어쩌면 오히려 이 캐스팅이 그 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이 막장 선생 마여진은 왜 이토록 지독하게 아이들을 어른들의 현실 앞에 내세우는 걸까.

 

만날 중학생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때리겠다는 위협을 받는 동구(천보근)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도망치거나 굴복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선생. 그 둘 다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 선생. 이제 겨우 초등학생에게 과연 할 말일까. 또 늘 코미디언 흉내를 내는 동구에게 반 아이들 앞에서 미혼모에 가출한 동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며 “넌 진짜 동구가 되기가 두려운 거야”라고 말하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선생. 마여진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직장의 신>과 비교해 <여왕의 교실>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들 말하는데 사실 마여진 같은 선생은 실제 교실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선생님보다 더 갑이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학교로 항의하러 몰려온 학부모들을 오히려 마여진 선생이 포섭해버리는 시퀀스는 그래서 이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지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여왕의 교실>은 도대체 뭐가 현실적이라는 걸까.

 

그것은 작금의 아이들 교육이 앞으로 아이들이 맞닥뜨릴 지독한 현실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차별이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잖아.” “사회의 99%는 너희 부모들처럼 차별 받는 것을 한탄하며 산다.” 마여진 선생이 던지는 이 이야기는 아프게도 모두가 현실이다.

 

<여왕의 교실>이 때론 지나치고 때론 너무 가혹하다 여겨지는 건, 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을 진짜 현실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직시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것은 달리 보면 아동 학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이라던가, 평등이라든가, 자유 같은 이상적인 가치들은 이 냉혹한 현실주의 앞에서는 심지어 무력하게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왜 이런 냉혹한 현실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지금의 교육이 너무 안일하다는 비판일까. 성적순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교육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속내는 교육의 문제보다는 마여진 선생으로 대표되는 냉혹하게 되어버린 현실의 문제를 더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되바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아이들 앞에서까지 냉혹한 세상의 잣대를 강요하는 마여진 선생 같은 괴물을 탄생시킨 지독스런 현실을.

 

<여왕의 교실>은 그래서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잔인하지만 아이들이라는 눈높이로 다시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동구에게 “너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잔인하게 실상을 말하는 마여진 선생에게 동구의 좋은 점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선생님은 이런 동구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는 하나(김향기)는 그래서 냉혹한 현실 운운하는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든다.

 

<여왕의 교실>은 아이들 앞에 무시무시한 현실의 잣대를 제시하는 마여진 선생과, 그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지켜야할 가치들, 이를 테면 정의나 자유나 평등 같은 것들이 왜 소중한가를 드러내는 아이들이 대결하는 드라마다. 따라서 마여진 선생으로 대변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현실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정반대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순수와 가치를 가르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동구는 좋은 친구”라고 밝히면서 눈물 흘리는 하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졌다면 여전히 우리 어른들에게도 가능성은 있는 게 아닐까.

<야왕>, 수애는 왜 그저 악녀로 전락했을까

 

<야왕>의 주다해(수애)는 왜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이나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되지 못했을까. 이들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욕망은 비뚤어진 것이어서 이들은 모두 악역을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그 악역이 모두 비난받는 건 아니다. 미실은 악역이면서도 자신만의 현실적인 통치 철학을 보여줌으로써, 또 장준혁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 역시 사회라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의 희생자라는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그 죽음에 이르러 시청자들을 고개 끄덕이게 한 인물들이다.

 

'야왕'(사진출처:SBS)

하지만 <야왕>의 주다해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일말의 동정적인 시선이 사라져버린 전형적인 악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첫 등장에서 죽은 어머니 사체 옆에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던 모습은 이 가정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는 여인이 앞으로 달려갈 욕망의 질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 주다해의 모습은 줄곧 시청자들의 이해를 받기보다는 안쓰러울 정도로 성공에 집착하는 악녀로 일관되었다.

 

의붓아버지를 죽이고는 하류(권상우)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렇게 그녀에게 헌신하는 사실상의 남편이었던 그를 배신하고 심지어 감방에 들어가게 한데다 딸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재벌그룹 아들 백도훈(정윤호)의 약점(사실은 그가 누나 백도경(김성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와 결혼하고, 하류(대신 쌍둥이형인 차재웅이 죽게 되지만)의 살인을 사주한다. 이것도 모자라 백도훈마저 사경을 헤매게 만드는 전형적인 악녀, 그녀가 바로 주다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스토리에 세계관이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악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차원으로 되돌리는 간편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주다해는 아무런 이해도 받지 못하는 인물로 전락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주다해가 나쁘기 때문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하고도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남녀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이다. 즉 <야왕>이라는 작품에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이 들어가 있다. 물론 선악구도로 나누어 놓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성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그 자체로 무언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남성은 당연히 성공을 꿈꾸어야 하지만 여성은 그러면 안 되는 듯한 관점. 이것은 주다해의 성공 욕구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편한 시선이다.

 

이렇게 주다해라는 악녀가 시스템이 탄생시킨 괴물이 아니라 그 나쁜 심성 때문에 생긴 인물이 됨으로써 <야왕>은 그저 온전한 복수의 게임으로 전락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때로는 마치 성공하기 위해 발악하는 여성과 그것이 무조건 잘못 됐다는 성차별적인 전제 하에 그녀를 막으려는 남성의 대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만일 주다해를 좀 더 이해될 수 있는 악녀로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훨씬 풍부한 관점을 가지면서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주다해를 수애라는 어딘지 도도하고 믿음이 가며 그 자체로 동정심마저 유발하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수애가 아닌 다른 연기자가 주다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생각해보라. 어쩌면 <야왕>은 그저 극악스럽기만 한 막장으로 굴러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엉성한 얼개의 스토리는 막장에 가깝지만 그래도 연기자들이 그것을 연기로서 커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힘은 세계관이 부재한 허술한 <야왕>의 대본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게 만드는 힘이다. 권상우의 연기가 그렇고 김성령의 연기가 그렇다. 물론 정윤호는 연기력 부족에다가 그저 바보가 되어버린 백도훈이라는 캐릭터의 한계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야왕>은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게임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시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하지 않고 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태도가 그렇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여성 차별적 시선도 그렇다. <야왕>의 이 문제를 집약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주다해다. 그 어떤 사회의 문제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태생적인 악녀가 되어버린 인물. 볼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판 '선덕여왕' 같은 '로열 패밀리', 그 흥미진진함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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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패밀리'(사진출처:MBC)

"회장님 지시면 인권을 유린해도 되는 거야? 공회장이 무슨 왕이라도 되는 거냐구. 아니 왜 다들 정가원에만 있으면 시대감각을 잃는 거야. 지금 무슨 사극 찍어요? 멀쩡한 사람을 어디다 가둔다고 그래?" '로열 패밀리'에서 한지훈(지성)은 정가원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가족들을 쥐락펴락하는 공순호(김영애)회장이 자신과 김인숙(염정아)을 감금하려 하자 이렇게 말한다. 한지훈의 비유 섞인 대사지만 사실 이 대사는 이 드라마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로열 패밀리'는 현대판 사극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대판 '선덕여왕'이다.

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고 있는 JK그룹은 하나의 왕국이고, 공순호 회장은 그 왕국의 여왕이다. 여왕의 가신들은 가족이다. 가족적인 회사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회사 같은 가족이라고 할까. 여왕인 공순호 회장은 이 가족들을 끊임없이 경쟁에 세운다. 그 경쟁의 전면에 나서는 인물들이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후계가 이미 결정된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첫째 며느리 임윤서(전미선) 그녀는 구성그룹의 장녀로 뼛속 깊이 재벌가 출신이다. 막내 며느리 양기정(서유정)은 정치인의 딸로 호시탐탐 JK그룹의 실권을 노린다. 여기에 공순호 회장의 딸인 조현진(차예련)이 끼어들면서 여왕의 후계를 노리는 싸움은 흥미진진해진다.

반면 집안도 학력도 일천한 둘째 며느리인 김인숙은 남편도 잃고 자식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겉보기에는 그저 순정가련형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서울 정도로 '준비된' 여인이다. 스토리는 바로 이 밑바닥부터 아무 것도 없는 여인 김인숙이 차츰 JK그룹의 실세로 성장해가는 투쟁의 과정이다. 바로 이 점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준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보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 태생으로 신분을 계층화하는 그들 속에서 수십 년을 조용히 준비해온 김인숙이 벌이는 일종의 복수가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이 사극에서라면 신분을 뛰어넘는 성공의 이야기는, 일의 측면에서 보면 워킹우먼들의 조직생활로 읽히기도 하고, 가족의 측면에서 보면 시집과 며느리의 대결구도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야기를 끊임없이 풍부하게 하는 건 이 여인들 옆에 또 그녀들을 돕는 측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첫째 며느리 임윤서와 막내 며느리 양기정은 그 유력한 집안이 움직이고, 여기에 맞서는 김인숙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후원해서 변호사가 된 한지훈, 조용히 그녀를 옆에서 돕는 정가원의 집사 엄기도(전노민), 또 그녀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넓혀놓은 사회적 인맥을 갖고 있다. 이들의 대결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건, 이 왕국의 여왕인 공회장이 이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정계와 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김인숙은 JK클럽의 대표가 되며, 로엘을 JK에 입점시키는 미션을 성공시킴으로써 첫째 며느리를 무릎 꿇린다.

'로열 패밀리'가 갖고 있는 '선덕여왕' 같은 사극의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에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사극이 갖는 서열구조(즉 신분사회 속에서 신분을 넘어서려는 욕망)는 로열 패밀리의 JK그룹의 집안으로 재현된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공회장은 이 모든 걸 장악한 미실 같은 인물이고, 아무 것도 없지만 차츰 한 계단씩 정상으로 올라가는 김인숙은 덕만 같은 인물이다. 임윤서와 양기정이 미실 세력을 만드는 외척들이라면, 한지훈은 외부에서 들어와 김인숙에게 충성하는 김유신 같은 인물이다.

'로열 패밀리'가 가진 강점은 신분사회라는 사극만이 가진 극성을 재벌가 사람들 속에서 발견해낸 것이다. 마치 싸이코 패스 같은 무감정한 경제 동물들은 신분으로 세습되고, 끝없이 축적된 자본으로 저들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그 속에 인간 김인숙이 서 있다. 그녀는 묻는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 경제 동물의 왕국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온 그녀가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나머지 두 번째는 그들을 뛰어넘는 방식으로서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힘(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사극적인 패턴이 들어간 것은 아마도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영현, 박상연의 영향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선덕여왕'을 통해 현재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극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로열 패밀리'는 거꾸로 현재 속에도 그래도 남아있는 사극적인 사회의 잔재를 보여준다. 이 현대판 사극은 따라서 그 자체로 비판적인 시선을 담는다. 저 한지훈이 "지금 무슨 사극 찍어요?"하고 되묻는 것처럼.

냉철한 카리스마에서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물'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자 대통령을 연기할 고현정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전작이었던 '선덕여왕'에서 그녀가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지도자적인 카리스마가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뚜렷한 변화로 보이는 건 '대물'의 고현정이 연기하는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의 표정이 확실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정치지도자로서 마음의 변화를 상대방에서 노출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표정변화 없이 늘 꼿꼿한 그녀의 모습은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 무표정함에서 잠깐씩 보이는 입술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 마음의 동요를 언뜻 비춰주었을 뿐이다.

미실이 무표정으로 일관한 것은 '선덕여왕'의 추동력이 그 변화 없는 미실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무표정했던 미실이 차츰 무너지면서 고통스런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 사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이미 신비화될 정도로 정점에 선 그녀가 서서히 권력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내려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대물'의 서혜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올라간다. 보통의 평범한 주부이자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인물이 남편의 죽음을 겪고는 차츰 정계에 들어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정점인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서혜림의 표정은 다채롭다고 할 만큼 끝없이 변화한다. '대물'에서 고현정의 연기가 남다른 것은 한 표정에서 다른 표정으로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강렬한 고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온 대통령의 비서를 맞는 장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그녀는 평범한 얼굴에서 시작해 화환을 모두 부숴버리며 오열하는 얼굴로 돌변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갑자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토로하는 방송을 하는 그녀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급작스런 변화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남편의 죽음을 한 평범한 여자의 입장에서 강렬하게 표현해낸다.

"놀아 달라"는 아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장난을 치는 그녀의 모습이 눈물겨운 것은 이 깊은 상처를 그녀의 웃는 얼굴에서조차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돕는 하도야(권상우) 검사 앞에서 마치 남 얘기하듯 짐짓 밝게 남편의 얘기를 하며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하고 말하다가 결국 오열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절절한 연기는 위로하는 하도야마저 더더욱 따뜻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고현정이 '대물'에서 보여준 연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차츰 정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성장과정과 함께 속내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 정치 지도자를 그리고 있지만,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미실은 이제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의 '대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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