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의 무대 밖 스토리 전략

연기자는 연기하고, 개그맨은 웃기고, 가수는 노래하고... 이젠 옛말이다. 연기자는 웃기기도 하고 개그맨은 연기를 하기고 하며, 가수는 웃기기도, 연기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예전에 가수들이 연기를 하면 ‘외도’라고 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활동’이라고 한다.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고, 그들의 타 분야에 대한 도전의 자세 자체도 달라졌다. 무대 바깥에서 인기를 얻는 가수는 무대 위에서도 뜰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도’가 ‘활동’이 된 상황.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작년 소녀시대가 ‘gee'라는 노래를 들고 나와 말 그대로 이 땅의 아저씨들을 ‘ㅎㄷㄷ’하게 만든 데는 지금까지의 아이돌 그룹의 무대 전략과는 다른 무대 바깥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소녀시대는 이미 일일드라마를 통해 중장년층에게 얼굴을 알린 윤아가 있었고, 라디오를 통해 그 털털함을 보여주었던 태연이 있었다. 사실 젊은 세대라면 모르지만 아홉 명이나 되는 소녀시대 멤버들이 펼치는 무대 위에서의 군무를, 나이든 세대들이 하나하나 친근감을 가지며 바라보긴 어려운 일이다.

만일 윤아나 태연 같은 이미 타 장르를 통해 친숙한 인물들이 없었다면 소녀시대의 군무는 그저 한 덩어리의 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한 덩어리로 보이던 군무 속에서 자신이 아는 몇몇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 애가 그 애였어?”하며 어린 딸과 쇼 프로그램을 보며 나누는 대화 속에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후 소녀시대는 본격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무대 위에서 덩어리져 보이던 이미지를 각각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쪼개놓기 시작했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일밤’, ‘무한도전’ 같은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하면서 수영은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었고, 제시카는 얼음공주 같은 쿨한 섹시함을 과시했으며, 효연의 춤, 티파니의 가창력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유리와 써니는 ‘청춘불패’에 정착하면서 무대 위의 섹시함과 귀여움과는 전혀 다른 수수함과 털털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타 분야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뽐내던 소녀시대가 ‘오!(Oh!)'를 들고 무대 위에 오르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하나의 덩어리로만 보이던 무대 위의 소녀시대에게서 각각의 멤버들의 이야기들이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소녀시대의 활동이 폭발적인 것은 이 일 년 간 그녀들이 일궈 논 이야기 농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돌 그룹들의 ‘이야기 농사 전략(?)’은 소녀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AM을 예로 들어보면, 과거 조권이나 임슬옹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기 전까지 이 그룹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다. 2PM과 비교해보면 2AM은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음악 장르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2PM은 파워풀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강렬한 무대를 연출했고, 심지어 짐승남이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까지 어필했다. 하지만 2AM의 발라드는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발라드가 갖는 어딘지 가라앉는 분위기는 이들의 이미지까지 가라앉혔다. 하지만 조권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깨방정은 이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그러자 ‘죽어도 못 보내’로 다시 무대 위에 선 2AM에서 우리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절절하고 진지하게 부르는 그 모습은 과거나 마찬가지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얻어진 유쾌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무대 위에 오른 그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 깨방정을 부리던 친구들이 진지한 구석도 있네”하는 긍정적 이미지다. 즉 늘 진지해보여 어딘지 무거웠던 2AM의 이미지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각자 멤버들의 이야기 농사를 통해 어떤 균형감각을 갖게 되었다. 2PM이 무대 위에서의 이야기를 구성해냈다면, 2AM은 무대 밖에서의 이야기를 갖고 무대 위로 올라 성공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도발적인 무대 퍼포먼스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인이 보여준 톡톡 튀면서도 어딘지 수줍은 소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고, ‘청춘불패’의 나르샤가 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읽게 된다. ‘Bo Peep Bo Peep’을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티아라의 무대에서 우리는 ‘청춘불패’의 통편녀 효민, ‘공부의 신’에서 “서방”을 부르는 지연, 그리고 ‘천하무적 야구단’의 치어리더 소연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이돌 그룹의 스토리 전략이다. 뮤직비디오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비디오 한 편이 어떤 스토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제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이 보편적인 것이 된 상황에서 가수들의 스토리는 무대나 뮤직비디오라는 테두리를 넘어선다. 이제 가수들은 저마다 무대 밖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무대 위로 가져온다. 소녀시대의 ‘오!(Oh!)'가 과거 어느 때보다 친숙하면서도 폭발력을 갖는 이유에는 소녀시대가 그간 일궈온 바로 이 무대 밖의 이야기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수들은 외도(?), 아니 무대 밖에서 활동할수록 뜨는 시대가 되었다.

가수와 예능의 밀월관계, 그 시너지 효과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무대 위에서 부채로 목 언저리를 톡톡 두드리며 'Sign'을 부를 때, 우리는 두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그 하나는 가인이 조권과 부부로 출연하는 ‘우리 결혼했어요’이고 또 하나는 나르샤가 유치리라는 시골에서 다른 아이돌들과 정착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청춘불패’다. 만일 걸 그룹이나 아이돌 혹은 아예 가요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예능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이즈음에서 다시 한 번 무대를 올려다봤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단순히 노래 부르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있는 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 전해주는 많은 스토리들을 통해서 충분히 그 캐릭터가 그려진 존재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가요 위에 덧붙여지는 이러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은 작금의 가요계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해가고 있다.

‘소녀시대’의 유리를 우리는 MBC ‘쇼 음악중심’의 MC로 만나기도 하고, ‘청춘불패’의 국민며느리로 만나기도 한다. 물론 메인 MC는 아니지만 ‘스타킹’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로서 그녀를 접하기도 한다. 유리는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 속에서는 그저 깜찍한 얼굴로 노래하는 인형 같은 가수이지만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오면 때론 풋풋하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털털한 면까지 있는 소녀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것은 ‘1박2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로서도 드라마로서도 또 MC로서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승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대 위의 황제라는 자리에서는 결코 갖지 못할 허당이라는 인간적인 캐릭터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갖게 되었다. 이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양극단의 이미지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가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은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이승기의 승승장구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얻어진 이런 폭넓은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어딘지 까칠하고 반항적으로만 보였던 이른바 힙합 전사들이 올해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들 앞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예능 프로그램의 공이다. 우리네 힙합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함께 출연하면서 예능에 발을 디뎠다. 그 후로 그는 몇몇 토크쇼들 속에서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유의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의 새 앨범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음악적인 완성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갖지 못했던 이런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갖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쌍의 길 역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보여주면서 대중들 앞에 서게 되었다. ‘무한도전’의 고정 멤버로 투입되어 강하면서도 털털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놀러와’의 골방 브라더스로 이하늘과 함께 아낌없이 망가져 주었다. 올해 리쌍이 낸 앨범의 성공 역시 이러한 길의 이미지 변신이 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하늘은 골방 브라더스로 ‘놀러와’에 자리 잡았고, 김창렬과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늙은 사자로 활약하면서 그 입지를 넓혔다. DJ DOC는 지금 이 여세를 몰아 신보 공개를 앞두고 있어 많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가수들의 예능 출연과 그 효과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그것은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해왔다. 하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과거 가수들의 예능 출연은 신보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일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예능 출연 자체가 목적이 될 만큼 가수들이 해야 할 하나의 분야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캐릭터를 구축해주는 예능의 이야기가 노래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무대는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공간이 되고, 예능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대 위에서 건방진 포즈로 멋지게 춤을 추는 유키스의 동호가 ‘천하무적 야구단’에서는 이하늘에게 형 형 하면서 막내처럼 따르는 모습은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면모 둘 다를 갖게 해주면서 서로의 분야에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예능 속에서는 그 신비함이 무너지는 재미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부각되고, 무대 위에서는 예능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를 통해 오히려 신비해진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연예인들이 구사하는 새로운 다중 이미지 전략이다. 이제 한 사람이 한 가지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리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 속 평면적 인물들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이제는 변화무쌍한 입체적 인물들이 그 리얼함 때문에 각광받는 것처럼, 여러 상황에 따른 다양한 이미지는 연예인들이 갖춰야할 새로운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는 한 가지 얼굴을 고수하는 일관성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솔직함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템보다는 캐릭터의 호감도가 더 큰 문제

지금 '일밤'이 처한 위기 상황은 한때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처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새로운 코너를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형식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좀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장수 버라이어티쇼가 왜 갑자기 이런 문제에 봉착한 걸까.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일밤'을 대표할만한 MC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밤'에는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김구라, 신정환, 이혁재가 '퀴즈 프린스'에 투입되었고,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에는 소녀시대, 유세윤, 조혜련, 김신영이, 또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황정음과 김용준 커플을 중심으로 신영일, 오영실, 김태현, 유채영이 포진해 있다.

'공포영화제작소'는 애초부터 소녀시대라는 아이콘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MC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결혼했어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퀴즈 프린스' 같은 코너는 말 그대로 MC들이 나서줘야 되는 코너다. 이 코너의 MC들은 물론 한 때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스타성이 예전 같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경규가 KBS '남자의 자격'으로 들어가면서 '일밤'은 대표 MC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착각하는 것이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어떤 성공을 가져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작금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리얼한 반응을 보여주고 이끌어내는 대표 MC가 없으면 성공은 요원해진다.

여기서 대표 MC의 중요성은 그 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매력도다. 신동엽이나 김용만, 이혁재, 신정환, 김구라 같은 MC들이 가진 능력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것이다. 능력으로만 따진다면야 '패밀리가 떴다'의 이천희나 박예진 같은 출연자는 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감도로 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특별한 형식보다 거기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일밤'의 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호감가는 인물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제작소'의 소녀시대는 어떨까. 이것은 거꾸로 코너 자체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깎아내는 경향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여전히 시청자들은 소녀시대를 보기 위해 이 코너에 눈길을 주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소녀시대 때문이지 이 코너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코너의 형식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깨는 데서 나온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대표 MC의 부재를 출연자들의 호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알렉스-신애, 서인영-크라운제이가 있던 초창기 커플들에서부터 최근 강인-이윤지, 태연-정형돈에 이르기까지 풋풋한 캐릭터들의 가상결혼이 주는 설정의 판타지는 그 자체로 강한 호감을 이끌어내 주었다. 하지만 판타지가 주는 한계는 곧 드러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꺼낸 카드가 황정음-김용준이라는 실제 커플이었다.

아마도 판타지의 한계를 뛰어넘고 리얼이 주는 화제성과 자극적인 부분들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 역시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상결혼의 커플이 리얼이냐 판타지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도 결국은 호감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황정음과 김용준이 실제 커플인 것은 맞지만 과거 네 커플이 해나가던 다채로운 결혼의 판타지 이야기를 대신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판타지라면 적절한 캐릭터 설정이라도 하겠지만 리얼을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약간의 설정조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에 처해버렸다. 반면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 오히려 해답은 보인다. 대본 공개와 함께 리얼 논란이 나왔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유는 리얼이냐 판타지냐에 상관없이 캐릭터들이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패밀리가 떴다' 역시 약간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래도 그 형태 자체를 깨지는 않았다.

'패밀리가 떴다'는 정체된 캐릭터를 매력적인 게스트의 힘으로 끌고 나갔다. 여러 사정으로 박예진과 이천희가 나가고(여기에는 물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박해진, 박시연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특유의 판타지적 설정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새 멤버들 속에서도 어떤 매력을 끄집어낼 공산이 크다. 그만큼 형식 자체가 인물들의 호감을 끌어내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이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이다.

작금의 '일밤'이 처한 위기에는 물론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나 기획을 하지 못한 문제가 크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그걸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캐릭터의 부재 혹은 캐릭터들의 떨어진 호감도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일밤'의 꼬여버린 위기 상황은 바로 이 캐릭터의 문제에서부터 풀어나가야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녀시대의 예능 출연, 실효를 거두려면

이효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몸빼 바지의 굴욕도 마다 않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수라는 본업으로 돌아오면 섹시 디바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이 농담 삼아 “그 이효리가 이 이효리냐?”고 물을 정도. 리얼리티 시대에 탈신비주의 컨셉트가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재, 모두가 이효리의 이런 섹시와 털털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갖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효리는 게스트로서의 단발성 출연보다는 고정 MC로서 예능에 입지를 다져왔다. 핑클 해체 이후 이효리는 ‘해피투게더’에서 조금씩 자신의 끼를 보였고, 핑클 속에서 고형화되었던 요정 이미지를 예능에 고정 출연함으로써 조금씩 깨뜨렸다. 이렇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만의 솔직한 개성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되자, 섹시 컨셉트로 나온 ‘10 Minutes’는 그녀의 엔터테이너적인 끼(정확히 말하면 퍼포먼스, 연기)로서 받아들여졌다. 꽤 오랜 시간의 준비기간이 있었기에 섹시와 털털은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효리의 예능, 게스트가 아닌 고정으로
여기서 이효리의 행보 중 가장 중요한 점은 ‘게스트가 아닌 고정’이라는 점이다.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반을 내고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했다면, 제 아무리 발군의 순발력과 예능감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정MC는 이러한 홍보성 논란에서 자유롭다. ‘그 이효리가 이 이효리가 된’ 상황은 오히려 더 큰 화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이효리의 성공 방정식을 거의 유사하게 그려낸 인물은 박예진이다. 그녀는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이효리가 했던 방식, 즉 그녀의 고정된 이미지(이 이미지는 너무 흐릿해 오히려 상투적이었다)를 ‘달콤 살벌한 이미지’로 깼다. 고정 출연자이기 때문에 홍보성 출연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섬뜩할 정도로 살벌한 연기를 보여주자 그것은 그녀의 연기력으로 부각되었다. 박예진은 이로써 예능에서는 솔직한 면모를, 또 드라마에서는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은 같은 프로그램의 대성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정MC로서의 예능이 아닌, 게스트로서의 예능으로 출연했던 비와 김종국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을 때, 물론 귀환을 알리는 효과는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이미지 제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잦은 예능 출연은 지나친 홍보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의 출연이 자신들의 홍보를 위한 것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빅뱅의 예능, 함께보다는 따로
최근 들어 소녀시대의 지나친 예능 출연이 갖고 있는 문제도 여기에 있다. 너무나 많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항간에서는 오히려 떨어진 시청률을 근거로 ‘소녀시대 효과라는 것은 없다’고까지 주장하게 된 것은 그 출연의 목적이 소녀시대의 홍보에만 치우쳐진, 게스트라는 입장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집단으로 출연한 ‘무한도전’과 ‘박중훈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어필하지 못했다.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소녀시대 멤버들이 너무 부딪치는 바람에 그랬고, ‘박중훈쇼’에서는 박중훈이 너무 소녀시대를 띄워주기에 급급해서 그랬다. 모두 게스트 출연이 갖는 한계들이다. 게스트가 게스트의 위치에서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메인이 되려는 것이나, 혹은 너무 지나치게 게스트 중심으로만 끌려가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

게다가 소녀시대의 멤버가 아홉 명이라는 사실은 게스트 출연에 있어서도 장애로 작용한다. 집단 게스트 출연은 예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출연자의 개성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소녀시대가 가장 자신들의 이미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윤아가 ‘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던 것과 태연이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태연의 ‘우리 결혼했어요’출연은 언제부턴가 소녀시대의 ‘우리 결혼했어요’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단독 고정출연자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확실히 알려주었고, 그것은 동시에 소녀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해주었다. 이것은 ‘빅뱅’이 전원 출연보다는 대성의 단독 출연으로 예능으로부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제 배우와 가수들의 예능 출연은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성공방정식은 존재한다. 예능 출연의 효과는 이제 단발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안에서 어떤 기여도를 보여주어야 얻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었다. 소녀시대는 지금껏 예능 바람몰이를 해가며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지금은 소녀시대’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 예능 바람이 실질적인 어떤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함께’가 아니라 ‘따로’ 출연하는 방식을 택해야 하며, 그것도 단발성의 게스트가 아닌 고정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소녀시대에게 필요한 것은 통상적인 음반 홍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게스트 출연을 하는 가수들의 전략이 아니라, 아예 예능인으로서도 충분한 이효리와 대성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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