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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사극에서 당대의 현실과 정치가 투영되는 건, 대중들의 요구다. 대중들은 사극을 통해 현실에 부재한 정치적 비전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사극이 가진 역사의 재해석은 그래서 마치 '온고지신'처럼 현재의 정치를 일갈하기도 한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이 삼한통일에 앞서 그토록 찾으려 했던 '시대정신', '추노'가 보여줬던 역사의 한 줄 아래 수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의미했던 것, '공주의 남자'가 그려낸 혁명을 위해 역사와 대적하는 상상력의 힘 등은 그것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마음 한 구석을 자극한다. '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밝힌,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사극이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
소통에 더 갈급한 세상, '뿌리'의 선택 "지랄하고 자빠졌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지랄'이라는 대사는 극 전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화두다. 어린 세종 이도(송중기)가 죽은 아버지 앞에 오열하며 "지랄하지 말라고 그래!"하고 소리칠 때, 그 '지랄'은 이도의 뒤통수를 때렸다. 복잡한 말 장난 같은 이념과 철학의 대결구도 속에서 고뇌하고 힘들어할 때, 이 어린 백성의 한 마디 '지랄'은 오히려 이도에게 속 시원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뭐가 그리 복잡한가. 저리 힘들어하는 백성이 있는데. '지랄'. '마구 어수선하게 떠들거나 함부로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뜻한다. 하지만 이 사극의 대사 속에서 사용되는 '지랄'은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는 그럴 듯한 논리가 아닌 직관적으로 사태를 사..
‘뿌리’, 세종은 현재와 어떻게 소통했나 ‘뿌리 깊은 나무’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한글’과 ‘세종’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과서 속에서 시험문제에나 나올 박제화된 세종의 한글창제에 관한 일화들이 21세기인 현재의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실제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세종과 한글창제가 갖는 의미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 몇 백년의 간극을 이어주는 한 단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통’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첫 도입에서 글자를 몰라 죽게 되는 한 선량한 백성의 이야기에서 화두를 던지고, 그 일을 계기로 달라지는 세 인물을 끄집어낸다. 강채윤(장혁)과 소이(신세경)와 세종(한석규)이다. ..
와이파이 시대, 우리는 진정 소통하고 있나 휴대폰, 인터넷, 와이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누구든 얘기하고픈 사람에게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얘기를 건넬 수 있는 세상이다. 심지어 화상으로 뜬 얼굴을 마주보면서. 하지만 미디어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잘 소통하고 있을까.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무한연결되어 있는 와이파이 시대에 물음표를 하나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지금껏 단체로 미션을 수행해온 것과는 달리, 각각 사방 팔방으로 떼어놓고 미션을 시작한다. 김태호 PD는 1시간 내에 각자 지정된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간 사람을 포상할 것처럼 해 멤버들을 떼어놓은 후, 그들이 ‘무한..
둘레길을 걸으며 '1박2일'은 무엇을 얻었을까 장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는 높은 인기만큼 위기설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주말 버라이어티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1박2일'도 예외는 아니다.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복불복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조금씩 고개를 들면서 위기설은 솔솔 피어났다. 프로그램에 어떤 멋과 다큐적인 베이스를 깔아줬던 김C의 하차와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투입된 김종민의 부진, 이수근의 빵빵 터지는 상황극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가져오는 '1박2일' 특유의 자연스러운 웃음의 실종, 제기된 병역기피 혐의로 잔뜩 위축된 MC몽... 이즈음에 터진 이수근이 차 밑으로 들어가 라면을 먹는 장면이 제기한 안전불감증 논란 같은 것들은 '1박2일'의 위기를 실제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늘 존재..
'세바퀴', 가희 논란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서 초심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제작진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세바퀴'의 가희 논란에서 정작 가희의 잘못은 없다. 잘못은 초심을 잃은 제작진에게 있다. '세바퀴'라 불리지만 이 프로그램은 '세상을 바꾸는 퀴즈'가 본래 이름이다. 뭐가 그리 대단한 퀴즈길래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일까. 중요한 건 퀴즈 자체가 아니라, 퀴즈에 참여하는 신구 세대들과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그 과정이다. 그 과정은 실로 세상을 바꿀만했다. 퀴즈를 풀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신세대들과 중장년층이 서로 어우러지는 그 광경. 선배들은 신세대들의 문화를 잘 몰라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신세대들 또한 선배들 시대의 문화를 리바이벌해주는 존경의 태도를 유지했다. '..
‘동이’, 그 깨방정 숙종이 가진 의미 "여깁니다. 게중 가장 낮은 곳입니다. 냉큼 넘으세요." 동이(한효주)는 범인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숙종(지진희)에게 담을 넘으라고 한다. 하지만 "난 담을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숙종. 그런 숙종에게 변복을 한 그가 왕인 줄 모르는 동이는 "아니 다른 나으리께서는 글공부도 하기 싫어 담을 넘고 다니시는데, 나린 대체 뭘 하십니까?“하고 채근한다. 그러자 숙종은 ”내가 있는 곳은 담을 넘기엔 너무 높았다“고 말한다. 결국 ”담은 제가 넘을 테니 잠시 엎드려 주십시오“하고 청하고, 동이는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다. ‘동이’에 등장한 이 짧은 에피소드는 이 사극의 초반 부진을 털어내며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왕의 모습은 우..
낮 시간에 영화관에 가는 마음은 조금은 쓸쓸합니다. 사실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와의 소통과 공감을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가 두 시간 정도라도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울고 한다는 그 일체된 행위의 즐거움. 앞으로 어쩌면 영화관은 그런 곳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두서없이 이런 얘길 하는 건, '의형제'라는 영화를 보면서 문득 송강호가 참 쓸쓸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그 영화 속에서의 송강호가 그런 것이지만, 사실 배우 송강호도 그런 면이 있죠. 뭐 송강호가 그렇게 멋지게 폼을 잡는 걸 저는 영화 속에서 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넘버3'의 그 정서가 다른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왔죠. 그는 조금은 빈 듯 툭툭 대사를 던지고, 엉뚱하게도 진지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