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우리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손에 땀을 쥐고 봐야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어도, 시위현장에 한 사내가 가스통과 기름을 가득 채운 차로 돌진해도, 심지어 형사인 공지만(유승목)의 아들 정인(곽동연)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화를 받고, 지만이 그 피리부는 사나이가 보낸 아들을 찾으러 오라는 협박사진을 받았어도, 또 알고 보니 그것이 정인의 자작극이었고 또 그 뒤에는 피리부는 사나이인 척 한 성찬(신하균)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어도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도대체 왜 이럴까. 화면 상에서는 긴박하게 인물들이 움직이고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제 몸을 내던지며 그 부조리를 토로하고 있는데도 그다지 큰 공감대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 그들의 이면에 피리부는 사나이가 휘파람을 불며 나타나 배후조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다지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를 막기 위해 치밀한 두뇌싸움으로 협상을 벌이는 성찬과 명하(조윤희)의 고군분투가 그리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혹시 종영한 <시그널> 탓이 아닐까. 워낙 긴장감도 높았고, 또 그 간절함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시그널>이었다. 사실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시그널>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기 뛰고 또 뛰는 형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시켰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그런 판타지 설정도 없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몰입이 안 되는 걸까.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한 실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행강도 사건은 물론 우리에게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의 정경은 미국 어디쯤에서 벌어질 법한 그런 장면을 보여준다. 일단 강도가 어디서 구한 것인지 총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진 누군가를 배후조종해 폭력을 일으키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다. 만화에는 어울릴 법 하지만 드라마처럼 좀 더 리얼리티를 보여줘야 하는 장르에는 어딘지 너무 만화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그널>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위해 그들이 처한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 은행강도가 출연하지만 그가 왜 은행을 털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뒤에 피리부는 사나이의 조종이 있었다는 것이 있을 뿐, 그 은행강도가 어떤 사회적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대신 이 드라마는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성찬과 명하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협상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멋진 협상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마치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이상을 주지 못한다. 피해자와 희생자가 겪는 고통을 마치 내 일처럼 여기며 심지어 목숨을 거는 휴머니스트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실감이나 정서적 공감대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 <피리부는 사나이>는 우리 이야기 같지가 않다. <시그널>이 가장 잘 했던 그 부분이 빠져 있는 것. 이것이 <피리부는 사나이>가 가진 취약점이 아닐까. 그게 없어서 사건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도 그다지 긴장감이나 놀라움이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피리부는 사나이>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여형사 전성시대, <미세스캅2> 김성령의 매력

 

바야흐로 여형사 전성시대다. 종영한 tvN <시그널>에서 김혜수는 1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청순하고 풋풋했던 젊은 날의 풋내기 여형사와 경험이 풍부한 팀장 여형사의 두 모습을 연기해내 호평을 얻었다. 최근 시작한 tvN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조윤희는 협상전문가 여명하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범인과도 끝까지 소통하고 들어주려는 모습으로 여성성의 가치가 주목되는 여형사다.

 


'미세스캅2(사진출처:SBS)'

<미세스캅2>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이가 있는 워킹우먼으로서의 여형사가 주인공이다. 그 시즌1에서 김희애는 최영진이라는 강력1팀 팀장으로 열연했다. 시즌2로 돌아온 <미세스캅2>에서는 김성령이 그 강력1팀에 고윤정이라는 팀장으로 들어온다. 같은 강력1팀 여형사라도 김성령은 김희애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낸다.

 

김희애가 시즌1에서 보여줬던 최영진 팀장은 훨씬 더 절박한 캐릭터였다. 아줌마 특유의 촉을 갖고 있고 또한 이것저것 참견하는 오지랖도 넓다. 하지만 사건에 뛰어들어 범인을 잡으려는 그 간절함이 전면에서 보여졌다. 하지만 김성령이 연기하는 고윤정이라는 형사는 이런 절박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엔 허당에 허세까지 느껴지는 모습이지만 실제는 다르다.

 

형사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잘 차려입고 다니지만 누군가를 추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카페 마담이 아니냐는 뒷얘기가 흘러나오지만 거기에 대해 스스로 발끈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지만 매년 기념일마다 벌어진 살인사건이 사실은 연쇄살인이라는 걸 밝혀내고 그 흉기가 산악용 망치라는 걸 찾아낼 정도로 치밀할 땐 치밀한 캐릭터다.

 

고윤정이 연쇄살인범이자 갑질하는 재벌2세인 이로준(김범)을 심문하는 장면에서도 그녀 특유의 웃으면서 농담하듯 물러서지 않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마치 흥분하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고윤정은 상대가 도발할수록 더 침착하게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짓말 탐지기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는 슬쩍 슬쩍 상대를 도발하지만 그렇다고 속내를 아예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전쟁을 선포하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즌1을 겪고 나서일까. 시즌2에서의 고윤정이라는 캐릭터는 훨씬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만일 사회생활을 하는 워킹맘이라면 남자들과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최영진보다는 때론 슬쩍 피하기도 하고 때론 허허실실한 모습을 보이는 고윤정에게 훨씬 더 공감 가는 면이 있을 게다. 물론 여형사라는 캐릭터로 극화된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워킹맘, 그것도 팀장으로서의 면면은 어쩌면 현실에 살아가는 워킹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 있다.

 

<미세스캅2>는 워킹맘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형사라는 직종을 통해 극대화시킨 드라마다. 사실 매일 같이 남자들 세상처럼 구축되어온 전쟁 같은 일터로 나가는 워킹맘들의 처지가 저 고윤정의 상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차별적인 얘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고, 팀장이라고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기도 하는 그런 현실 속에서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그런 문제들을 훌쩍 뛰어넘는 고윤정이라는 캐릭터에 공감되는 이유다.

 

고윤정이란 캐릭터는 여러모로 김성령이라는 배우의 면면과 무관하지 않게 탄생한 듯 하다. 지금껏 봐왔던 김성령은 여성적인 매력이 넘치면서도 때론 당차고 때론 시원시원한 사이다적인 면모를 가진 배우다. 그 이미지는 고스란히 고윤정이라는 여형사의 캐릭터로 드러나고 있다. <미세스캅2>를 보는 재미의 반 이상은 이 고윤정이라는 캐릭터와 그녀를 연기하는 김성령에서 나오지 싶다.

<치인트>, 어째서 끝까지 웃을 수 없었을까

 

소통의 실패는 콘텐츠의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초반부 놀라운 화제를 이끌었던 tvN <치즈 인 더 트랩>이 후반부에 이르러 논란의 논란을 거듭하고 심지어 막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끝을 맺게 된 건 그 소통의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치즈 인 더 트랩>은 원작자 순끼와의 소통에도 실패했고, 배우 박해진과의 소통에도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불편함을 토로했던 시청자들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 이윤정 PD가 내놓은 열린 결말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답답한 결말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엔딩에서 주인공 유정(박해진)이 모든 걸 감싸 안으려는 홍설(김고은)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그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홍설이 보낸 메일을 유정이 열어보았다는 것으로 그들이 다시 만날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그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물론 원작자 순끼가 원한 결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째서 좋은 시작을 보였던 <치즈 인 더 트랩>은 끝까지 웃을 수 없었을까.

 

물론 후반부에 가서 여러 문제점들을 도출했지만 사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콘텐츠 자체가 그리 큰 흠결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청춘 멜로의 틀 속에 우리네 대학가 청춘들이 겪고 있는 치열한 현실을 투영시켜 놓았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치즈 인 더 트랩>은 청춘 멜로의 겉면을 갖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으로 표징 되는 유정의 아버지 유영수(손병호)로 인해 심지어 정신병적으로 뒤틀어진 청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유정은 아버지로 인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고, 백인하(이성경)는 정신병동에까지 들어가게 됐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이들 청춘이 아니라 유영수라는 어른이라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이 의도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었다. 이 얘기가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되려면 유정의 상황이 좀 더 디테일하게 다뤄졌어야 했다. 그가 왜 그토록 모든 걸 안아주고 감싸주는 홍설에게 절실하게 기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들이 드라마를 통해 납득됐어야 했고, 그래서 스스로 서지 않으면 계속 홍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어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유정의 입장이 공감됐어야 했다.

 

이러려면 유정의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는 오히려 그 분량이 별로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홍설이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 건 그런 정도의 충격을 통해서만이 유정이 스스로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드라마가 찬찬히 이야기를 쌓아가며 전개했다면 이런 과잉된 설정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사전제작이 드라마 제작방식에 있어서 궁극의 대안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전제작이라고 해도 이번 <치즈 인 더 트랩>의 후반부 논란들을 통해 드러난 허점은 분명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이다. 사전제작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만일 필요하다면 추가분의 촬영 또한 보완되어야 한다는 걸 이번 사태는 말해주었다.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고 해도 소통에서 실패하면 끝까지 웃을 수 없다는 걸 <치즈 인 더 트랩>은 보여줬다

<응사>20대, <응팔> 40대, 세대를 뛰어넘은 김성균

 

도대체 이런 연기가 어떻게 가능할까. tvN <응답하라1988>에서 김성균은 44년생으로 45세 아버지 역할을 연기한다. 현재 나이로 치면 72세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성균은 실제로는 80년생으로 만 35세다. 무려 10살이 더 많은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 더 놀라운 건 <응답하라1994>에서 그는 75년생 스무 살의 김성균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연기라니. 도대체 이런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그의 자연스런 연기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시도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물감 없이 소화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응답하라1988>에서 라미란의 남편이자 정봉(안재홍)과 정환(류준열)의 아버지 역할로서 김성균의 연기는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 그가 40대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노안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우습지 않다. 연기로서 그 역할에 확실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응답하라1988>에서의 김성균 역할이 기성의 아버지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권위의식이 별로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다. 입만 열면 유행어를 하려고 하는 그는 아들의 친구인 덕선(혜리)과도 반갑구만 반가워요-”를 하며 즐거워하는 어른이다. 어딘지 가벼움이 느껴지는 어른이지만 그렇다고 진중함이 없는 건 아니다. 어머니의 기일에 한없이 우울해지고 표현 없는 아들의 무뚝뚝함 앞에 쓸쓸함을 느끼는 아버지다.

 

아내인 라미란에게는 철딱서니 없는 남편이지만 의외로 닭살 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권위를 내보이기도 하는 그런 남편이기도 하다. 라미란의 실제 나이가 만 40세다. 그러니 김성균하고는 다섯 살 연상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라미란에게 김성균이라는 남편은 누나에게 의지하는 동생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이 독특한 부부 캐릭터와도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응답하라1994>에서 김성균은 무려 열 살이 넘게 어린 스무 살 청년 삼천포의 연기를 시도했다. 거기에도 역시 신원호 PD가 의도한 웃음의 코드가 들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 캐릭터로서 노안의 김성균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때도 역시 드라마가 진행되며 그의 이런 나이에 대한 이물감은 사라져갔다. 조윤진(도희)과의 러브 라인은 그래서 의외의 설렘을 만들어내며 그에게 포블리라는 닉네임을 선사하기도 했다.

 

<응답하라1994>의 포블리에서 <응답하라1988>은 이제 균블리라는 닉네임을 그에게 선사하고 있다. 10년 정도의 세월은 훌쩍 뛰어넘어, 처음에는 웃음을 주다가 차츰 그 캐릭터가 주는 새로운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 그것은 아마도 김성균의 녹록치 않은 연기 공력에서 비롯되는 일일 게다. 20대부터 40대까지 넘나드는 연기가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20대들에게는 친근함과 웃음을 주고, 40대들에게는 어떤 짠함까지 선사하는 가장의 모습은 김성균이 가진 폭넓은 연기의 결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는 그의 향후 캐스팅이 어떤 나이에 어떤 인물로까지 나아갈 지가 못내 기대된다. 세대 차이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그 모습에서 서로 다른 세대들은 그를 통해 어떤 공유점을 발견하고는 뿌듯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대가 달라도 충분히 소통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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