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여자’, 그 뒷심 좋은 드라마의 조건

‘태양의 여자’의 뒷심이 무섭다. 이 드라마는 첫 회에 7.6%(AGB 닐슨 집계)의 저조한 시청률로 시작해지만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이제 시청률 20%를 넘기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상승곡선은 정상적인 드라마의 시청률 추이다. 점증적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종영하기 직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끝나는 이야기의 구조는 특히 드라마 같은 연속성 있는 작품에서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가 이 곡선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이미 종영한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8% 대에서 시작했지만 3회만에 10%를 넘기고 5회까지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어쩐 일이지 6회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시청률은 갈수록 하락해 결국 10%대 이하까지 떨어졌고, 결국 9.3%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이렇게 된 것은 이 드라마가 초반부에 너무 많은 힘을 실은 에피소드를 배치한데다, 느슨해진 이야기의 연결고리 탓에 각각의 에피소드가 점층적인 시청률 상승을 이끌지 못하고 편편으로 끊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태양의 여자’는 초반부 조금은 느린 템포지만 앞으로 이어질 갈등의 구도를 세우는데 좀더 몰두했다. 이 드라마가 뒷심이 좋게된 이유는 그 특유의 이야기구조 덕이다. ‘태양의 여자’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정상에 선 여인, 도영(김지수)과 어린 시절 버려져 바닥에 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월(이하나)이 그려내는 빛과 어둠의 희비쌍곡선을 다루고 있다. 도영이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 꼭대기에서 점점 바닥으로 내려오는 반면, 사월은 자신을 버리고 모든 걸 앗아간 도영에게 복수하며 바닥에서 점점 정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이 복수극이 단순한 선악구도에 머물지 않는 것은 초반부 죄를 저지르게 되는 도영에게 그만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도영을 그렇게 만든 것은 도영의 친모가 이미 얘기했듯이 어린 시절 그녀를 버린 친모의 죄이다. 드라마 초반에 이 친모가 등장해 도영에게 사죄하며 “모든 죄는 자신이 가져가겠다”고 말한 후 죽게되는 에피소드는 도영을 이제는 돌아갈 곳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사월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을 당하기만 하고, 정작 자신을 그렇게 만든 엄마에게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도영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대부분의 복수극이 후반으로 갈수록 탄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숨겨졌던 진실이 밝혀지고 그동안 억울하게 살아왔던 삶을 복수를 통해 전복시키려는 그 욕망은 그대로 드라마의 갈등을 최고조로 만들기 때문이다. ‘조강지처클럽’이 초반 30여 회에 걸쳐 20%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하다가 서서히 복수가 시작되는 그 이후부터 꾸준한 시청률 상승을 그린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점증적인 상승곡선이 드라마가 흘러가는 정상적인 궤도임을 알면서도 초반에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은 초반 마케팅에 따른 광고 수주와 관련이 있다. 초반에 확실한 이미지를 세우기 위해 드라마의 핵심부분을 모두 노출하는 전략은 그러나 마케팅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드라마 자체로 보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의 완성도는 초반이 아니라 작품이 끝나는 후반부가 얼마나 잘 마무리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작만 좋은 드라마로 끝낼 것인가 혹은 뒷심 좋은 드라마로 끝낼 것인가 하는 질문은, 마케팅에 우위를 두느냐, 작품에 우위를 두느냐는 질문과 거의 유사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작품의 드라마가 마케팅에서도 성공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왜 미완의 아이템이 되었나

MBC 수목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사회부 기자, 서우진(손예진)은 갑자기 울어버린 앵커로 인한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생방송으로 시간을 끌기도 하고,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짝퉁 명품을 파는 현장을 탐사보도하기 위해 잠입했다가 곤욕을 치를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심지어 특종에 대한 강박으로 장진규라는 희대의 살인마에게 접근해 목숨을 내건 인터뷰를 강행하기까지 한다. ‘스포트라이트’의 초반 장진규 에피소드까지의 숨가쁜 이야기는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을 보여주었다.

‘스포트라이트’, 왜 좋은 아이템을 살리지 못했나
이처럼 애초에 ‘스포트라이트’가 꿈꾸었던 드라마는 적당히 전문직을 차려입은 멜로 드라마가 아니었다. 물론 손예진과 지진희가 가진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어떤 멜로의 예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잠입 취재를 하기 위해 다방 여 종업원으로 위장하고, 희대의 살인마와 격투를 벌이다 머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맹렬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손예진과, 따뜻함보다는 냉철함을 연기하며 ‘킬!’을 외쳐대는 캡 지진희는 그런 예감을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초반부에 너무 하이라이트를 집중시키다보니 다음 진행에 큰 부담이 생겼다. 앵커 경합이나, 사회에 전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의 사연 같은 에피소드가 그 자체로는 약한 것이 아니지만, 장진규 에피소드 뒤로 붙으면서 상대적으로 맥이 풀리게 된 것. 장진규 에피소드에 환호하던 시청자들은 그 이후의 상대적으로 맥빠지는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스포트라이트’는 장진규 이후 종영했다”는 과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이후에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뉴시티 분양과 관련하여 벌어진 영환건설의 비리를 캐내려는 서우진 기자가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접어들면서다. 기자로서의 신뢰도도 땅에 떨어지고, 가족들마저 피해를 입게되는 극단적 상황으로 몰리면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결국 그 뿐,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이어진 에피소드는 다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서우진과 채명은(조윤희)과의 대결이다.

이후 마지막 에피소드로서 경제특구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지만 이 역시 결말에 있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동안 고압적으로만 보였던 국정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이나, 영환건설측이 순순히 방송출연을 자청한다는 것, 그리고 방송 도중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게 되는 내용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상당 부분 떨어뜨렸던 것이 분명하다.

‘스포트라이트’, 왜 미완의 아이템이 되었나
전체적으로 보면 ‘스포트라이트’는 늘 일을 잘 벌여놓은 상태에서 뒤처리가 잘 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기자로서 서우진이 잡아내는 아이템들은 실제 현실 사회에서 보았던 유사한 비리사건들을 연상시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주로 정치적인 해결에 의지했다. 사회부에서 시작한 에피소드가 정치부에서 끝나는 것은 실제로 보면 현실적일지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들이 보고싶은 결말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는 또한 서우진과 오태석(지진희)의 멜로 구도에 있어서도 망설이기만 할 뿐 어떤 진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꼭 멜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중반부터 오태석의 캐릭터가 캡에서 연인으로 바뀔 조짐을 보였던 것은 드라마의 일관성에 독이 되었다. 차라리 멜로의 조짐 자체를 빼고 하드보일드하게 진행하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멜로를 바탕에 깔고 가던가 ‘스포트라이트’는 미리 결정을 했어야 한다. 직접적인 멜로 라인은 아니지만 저 ‘X파일’의 스칼리와 멀더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트라이트’는 여러모로 미완의 성격이 강한 드라마가 되었다. ‘스포트라이트’가 ‘킬’해야 했던 것은 너무 초반부에 만들어버린 하이라이트에 이어진 전체 흐름과 아무 상관없는 소소한 경합아이템들이다. 또한 애초에 멜로를 예상하기 어렵게 어필되었던 오태석의 캐릭터가 중반부터 흔들린 것도 ‘킬’되었어야 하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에피소드들 하나 하나를 두고 보면 관심을 끌만한 좋은 아이템들이었지만, 이 아이템들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나 큰 흐름을 잡지 못했기에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상승곡선을 이루지 못했다.

이로서 ‘스포트라이트’는 드라마 속에서의 뉴스프로그램과 유사한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각각의 뉴스들은 흥미진진하지만, 어떤 일관된 심층리포트 같은 집요함이나 끈질김을 발견하기가 어렵게 된 것은 이 좋은 가능성을 가진 아이템 자체를 아쉽게도 ‘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SBS 드라마 전성시대, 그 인기의 비결

SBS의 연초 드라마 시청률 성적표는 좋지 않다. 월화에는 MBC의 ‘이산’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고, 수목에는 ‘뉴하트’가 포진해 3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뉴하트’가 종영하는 시점에 맞춰 시작한 SBS의 ‘온에어’가 수목의 밤을 장악한 후, 그 바통을 ‘일지매’로 넘겨주었고, ‘이산’이 종영한 월화의 자리는 SBS의 ‘식객’이 차지했다. MBC는 ‘스포트라이트’와 ‘밤이면 밤마다’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 승부했지만 시청률 10% 전후를 전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KBS는 작년에 이어 일일드라마를 빼놓고는 주중드라마에서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SBS는 주중드라마 모두를 장악했고 최근에는 ‘달콤한 나의 도시’같은 프리미엄 드라마로 금요일 밤을 공략하면서 불륜드라마로 인식됐던 금요드라마를 바꿔나가고 있다. 주말 드라마로서 ‘조강지처클럽’과 ‘행복합니다’가 역시 수위를 차지하고 있어 SBS 드라마는 오랜만에 일주일 내내 시청률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월화의 밤, ‘이산’이 지나간 자리
‘이산’이 종영한 후, 월화의 밤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변칙 편성이 난무할 정도로 치열한 편성전쟁이 치러진 후, 그 승자는 ‘식객’이 되었다. ‘최강칠우’와 어느 정도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역시 ‘식객’이 앞서나간 것은 무엇보다 원작 드라마가 갖는 힘 때문이다.

SBS는 작년 ‘쩐의 전쟁’으로 만화 원작 드라마에 강점을 보인 바 있다. 만화 원작 드라마는 일단 그 자체로 극화되어 있다는 점과, 어느 정도는 이미 탄탄한 스토리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동명의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식객’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더해진다. 그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갖춰야할 전문성이 이미 원작 단계에서부터 꼼꼼한 취재를 통해 확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식객’이 ‘이산’이후의 월화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원작 드라마가 갖는 탄탄한 스토리와 허영만 화백 특유의 전문성이 무리 없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식객’에는 드라마의 힘을 더해주는 요소들, 즉 팽팽한 대립구도, 전문적인 이야기, 음식이라는 소재의 강점, 감동이 있는 스토리, 게다가 음식에 대한 철학적인 논점까지가 모두 잘 버무려져 있다. 물론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수목의 밤, 전문직과 사극의 대결
MBC가 ‘누구세요’로 주춤하는 동안, SBS는 ‘온에어’라는 방송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전문직으로 다루면서 수목의 밤을 장악했다. 이어 절치부심 내놓은 MBC의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일지매’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면서 전문직 드라마와 사극의 대결구도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초반의 관심을 얼마나 잘 이끌어갔느냐에 달려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탈주범 장진규 에피소드라는 초강수를 내보이면서 주목을 끌었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너무 일찍 보여준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에피소드 드라마 형식으로 병렬적으로 구성된 ‘스포트라이트’는 드라마의 흐름을 끊는 역할까지 해 시청률 상승에 족쇄가 되었다. 게다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미완적으로(정치적으로 해결) 해결되는 모습은 다음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을 상쇄시켰다.

한편 ‘일지매’는 ‘스포트라이트’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초반부 화려한 일지매의 액션을 보여주고는 그 일지매가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보여주었던 것.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상승곡선을 이루면서 시청률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KBS의 ‘태양의 여자’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타방송사의 작품들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최근 들어 사극과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면 좀체 화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말해준다.

주말드라마, 명품이거나 공식이거나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된 요즘, 금요드라마는 주말드라마와 함께 얘기될 수밖에 없다. 그간 금요드라마가 주부대상의 성인드라마가 되어왔던 것은 이탈되어가는 시청층을 그나마 충성도가 높은 주부들에게서 찾아보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바 크다. 하지만 프리미엄을 주창하는 새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거꾸로 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섹스 앤 더 시티’같은 세련된 성인 미드에 익숙한 시청층을 공략한 것. 10%대를 유지하는 시청률에서 성공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금요일의 색깔을 바꾸었다는 의미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말 드라마로서 ‘행복합니다’나 ‘조강지처클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주말 트렌드를 읽어낸 결과다. 이 드라마들은 일단 어렵지 않고 캐릭터나 관계만 알고 있으면 몇 회 정도는 못 봐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 정도의 편안한(?) 작품들이다. 이동이 많은 주말 밤에 너무 꽉 짜여진 드라마는 부담이 된다. ‘달콤한 인생’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시청률 경쟁에서는 정작 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BS의 주말드라마는 이러한 공식에 충실한 트렌드를 이미 ‘황금신부’를 통해 확인한 바 있고 지금의 드라마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KBS의 ‘엄마가 뿔났다’같은 경우는 이러한 주말 트렌드를 김수현 작가 특유의 색깔로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예외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헤게모니는 일 년에도 몇 번씩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는 방송사의 드라마 관계자들을 만나면 흔히 이 주기적인 헤게모니의 이동을 얘기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시간이 지나면 응당 자신들의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려운 입장에서 부단한 노력과 투자가 있었기에 헤게모니의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SBS의 드라마 평정은 한동안 이어질 수도 있고 또 언젠가 타 방송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과정에서의 노력이 좋은 드라마라는 결실로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드라마, 예능에 가득한 경합, 그것이 말해주는 것

‘식객’의 초반부 긴장감을 탄탄히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단연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요리 경합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이미 앵커 자리를 놓고 한 차례 경합을 벌였던 서우진(손예진)과 채명은(조윤희)이 이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또 경합을 벌이고 있다. ‘대왕 세종’에서도 드라마 초반에는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이 국본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정치적 경합을 벌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드라마 속의 경합, 공정하지 못한 사회
드라마들이 이렇듯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는 갈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대결구도를 가장 쉽게 가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경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합의 양상들을 좀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거기에는 사회가 가진 서열 구조와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욕구들이 드라마 속에 환타지의 형태로 드러난다.

성찬과 봉주의 경합에서 봉주가 상처를 받는 것은 그가 적자의식을 갖고 있어서다. 그는 운암정 최고권위자인 오숙수(최불암)의 아들이니 당연히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우진과 채명은의 경합에 있어서도 이 적자와 서자의식은 똑같이 드러난다. 선배인 채명은은 서열상 자신이 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대왕 세종’같은 사극 속에서의 장남이거나 적자인 이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권력과 부가 승계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 적자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사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적자나 서자의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당히 실력을 갖춘 이가 적자의식에만 가득한 인물을 무너뜨리고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경합뿐이다. 이것은 점점 능력 중심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거꾸로 여전히 실력보다는 서열이나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드라마에서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환타지일까.

그것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능력 위주의 사회는 바람일 뿐, 우리 사회는 심지어 그 탄생에서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갖춘 자들의 적자의식은 시대가 흘렀지만 여전하다. 드라마 속에 이렇듯 빈번하게 경합이 활용되는 것은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사회이면서도, 그 경쟁 자체는 그다지 공정하지 않은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예능 속의 경합,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
한편 경합에 빠진 건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이 경합의 틀을 갖고 있다. ‘1박2일’의 잠자리나 식사 한 끼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이 그렇고, ‘무한도전’의 끝없는 과제 속에서의 이기적인 출연진들의 대결이 그러하며,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안에서 벌어지는 도전 암기송이나, ‘패밀리가 떴다’의 유재석이 툭하면 제안하는 게임이 그렇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의 경합은 얼토당토않은 목표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얼토당토않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스포츠경기 같은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진지한 긴장감 같은 것은 사라진다. 만일 진지한 목표가 설정된다면 긴장감은 생기겠지만 웃음은 좀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복불복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일 뿐 현실 사회가 보여주는 진짜 경쟁과는 다르다. 경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것은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다.

직장생활 같은 경쟁적 삶 속에서 살다가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때론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의 경합은 따라서 사회 풍자적인 요소가 있다. 그 얼토당토않은 경합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미 우스꽝스런 경쟁적 삶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게 된다.

드라마나 예능이 점점 이 경합이라는 코드를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거기서 충분한 효과를 얻어내는 것은 여러모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불공정한 구조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피곤함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는 이 경쟁의 피곤함을 환타지의 형태로 해결하려는 것이며, 예능은 경쟁 자체를 비웃음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 무엇도 실제적인 해결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랴. 그 경합의 재미 속에서 현실의 경쟁적 삶을 잊어버리는 것은. 잠시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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