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 <삼시세끼>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

 

이 프로그램 망했어!”로 시작한 이서진은 <삼시세끼>의 마지막에도 여전히 지금도 이 프로그램이 살아있다는 게 불가사의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삼시세끼>는 그저 살아남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의 신기원을 이룬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려 12%의 시청률을 내면서 금요일 밤 tvN이 채널 헤게모니를 가져오게 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도대체 이 망했다고 자평하던 프로그램은 어떻게 이런 정반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그 망했다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내려오는 불문율의 편견 속에 있다. 즉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응당 이러해야 하며, 또 이런 건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불문율. 이를테면 낚시나 등산 같은 소재는 예능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금기로 여겨져온 바 있고, 복불복 같은 게임을 보험처럼 가져가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얘기도 하나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니 <삼시세끼>처럼 복불복 게임도 없고, 마치 낚시나 등산처럼 너무나 잔잔하게 흘러감으로써 보여지는 장면이 단조로운 시골 살이의 예능에 대해 스스로 망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바로 이 망할 거라는 속단으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함으로써 성공을 일궜다.

 

세끼 집에 한정된 공간의 한계는 오히려 그 집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밀 묘사함으로써 뛰어넘었다. 즉 별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집 구석구석에 카메라들을 설치하고 오래도록 들여다보자 의외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주의깊게 살피지 않은 것일 뿐 옥수수가 자라고 채소들이 자라나고 동물 친구들이 성장해 자식을 낳고 하는 일들은 사실 하나하나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처럼 변해가는 광경들 속에서 적응 못하던 이서진과 옥택연이 조금씩 환경에 동화되어가고 성장해가는 모습은 그래서 어느 순간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사실 그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를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도시의 바쁜 삶이 그런 것들에 오래도록 시선을 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망작이라고 예측했던 것을 명작으로 만들어낸 것은 이 선입견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시골 살이의 예능을 시도했다는 것과, 그것을 그 어느 것보다 더 열심히 만들어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사실 시골에 카메라를 드리운다 해도 거기서 좀 더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내겠다는 제작진의 마음이 없었다면 <삼시세끼> 같은 시골의 발견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얹어진 중요한 포인트는 이서진이 말하는 것처럼 도시의 삶에서 잠시 떠나와 이 시골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는 게스트들이다. 게스트들의 마음은 말 그대로 우리네 도시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똑같이 시청자들에게도 공감대를 주었다. 그들의 즐거움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박신혜나 최지우, 손호준 같은 이들이 더더욱 이 시골살이를 즐겁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일 년을 휘돌아 이제 <삼시세끼> 정선편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일 년 동안 벌어진 많은 사건들(?)은 영상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처럼 남았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당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추억이 된다는 것. 망하는 아이템이라며 피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예능 제작자들은 이제 오히려 망한다는 아이템들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저 피하지 말고 부딪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삼시세끼>의 성공은 일깨워주고 있다



<삼시세끼>, 수수밭에 수수노예들은 없다

 

<삼시세끼>는 드디어 수수지옥을 벗어났다. 이서진과 옥택연에 이승기와 김광규라는 두 노예(?)를 충원한 노예 수수F4’는 끝끝내 수수밭에 남은 수수들을 모두 베었다. 그 과정에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보다 못한 제작진까지 모두 수수밭에 투입되기도 했다. 일을 해본 나영석 PD는 뒤늦게 노동 강도가 외외로 세다는 걸 깨닫고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그들은 굳이 그 수수밭을 끝까지 베었을까. 수수를 갖고 뭔가 만들어먹는 것도 아니다. 설혹 그 수확한 수수를 내다 판다고 해도 그런 돈벌이가 프로그램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수에 그렇게 집착했는가가 궁금해진다.

 

그 의문은 그러나 의외로 쉽게 풀린다. 그 수수밭을 베는 장면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엄청난 수수밭 앞에 마름처럼 나타난 나PD고기 한 근에 수수 한 가마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우습다. 그것은 물론 예능의 코드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제작진과 출연진 사이에 일종에 암묵적으로 허용된 놀이를 하는 듯한 뉘앙스도 들어있다. 고기를 먹으려면 수수를 베어야 하는 놀이.

 

여기에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놀라운 매력의 원천이 숨겨져 있다. 많은 이들이 <삼시세끼>가 시골 라이프를 권장하는 귀농 프로젝트처럼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삼시세끼>와 귀농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나영석 PD 또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사실이다. <삼시세끼>는 시골에서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쁜 도시생활에 지쳤을 때 나도 하루 정도는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단순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 소박한 소망을 채워준다.

 

이것은 생활이라고 하기 보다는 23일 정도의 작은 여행이라고 보는 편이 낫다. 그것은 아마도 나영석 PD가 일관되게 해온 여행이라는 소재의 또 다른 버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시세끼>는 이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실생활과는 조금 거리를 둔 프로그램이다. 거기서 출연자들은 <12>처럼 한 끼를 먹기 위해 돈을 벌거나 미션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읍내에 나가 음식 재료들을 사와도 된다. 나영석 PD는 의외로 거기에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준다.

 

만일 <삼시세끼>귀농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리얼리티를 갖고 만들어졌다면 이처럼 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현실 자체보다는 그것을 잠시 벗어나 소소한 삶이 주는 또다른 풍요로움을 누려보게 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성공 포인트다. 그래서 그들이 하루 종일 삼시세끼를 챙겨먹으며 하는 일들은 하나의 어른들을 위한 소꿉장난의 성격을 갖는다.

 

소꿉장난이라고 하면 어딘가 너무 한가로운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일이나 생산성에서 벗어나 온전히 놀이로서 접하는 <삼시세끼>의 세상은 우리에게 그동안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면이 있다. 그토록 외치던 생산성이 사실은 우리를 삶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거기서 깨닫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성과 무관한 수수밭 베는 일에 투입된 네 사람을 노예라 부르고 수수 F4’라고 부르지만 거기 진짜 노예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을 했다기보다는 하나의 게임 같은 놀이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수수밭은 그래서 노동의 공간을 놀이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삼시세끼>의 상징물처럼 보인다. 그들은 물론 허리가 빠지게 수수를 베었지만 그것이 고기 한 점이라는 흥미로운 놀이 때문이라는 점은 이 수수밭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늘 일과 생산성 관점으로만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런 놀이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을 위한 소꿉장난은 그래서 어쩌면 그 어떤 위로나 위안보다도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삼시세끼>가 바꾸고 있는 시골 동네에 대한 이미지

 

작은 시골 동네에서 철물점을 하며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삼시세끼>에는 이른바 동식이네 철물점이 자주 등장한다. 읍내에 나가는 것이 농부의 로망이라는 이서진이 읍내에 나오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바로 이 동식이네 철물점이다. 처음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였지만 차츰 친숙해진 그들은 마치 동네 형 동생 같은 관계가 됐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서진이 철물점에 자주 가게 된 것은 집에 수리할 일들이 자꾸 생기기 때문이다. 고마운 계란을 낳아주는 닭들을 위한 집도 마련해 줘야 하고, 염소 잭슨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비닐로 바람막이도 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서진이 철물점에 가는 이유는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거기 다름 아닌 동식이가 있기 때문에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시골 동네의 철물점에서 물건을 사는 건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필요에 의한 물건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왜 굳이 그 철물점에서 일하는 동식이라는 이름을 끄집어내고, 그를 마치 동생 찾듯이 찾는 이서진과의 관계에 주목했을까. 잭슨의 바람막이 작업에는 동식이가 집까지 와서 직접 일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인터뷰까지 방송에 내보냈다.

 

저는 강원도 정선에 녹송철물에 일하고 있는 임동식이라고 합니다.”라고 수줍게 말하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그에게 제작진이 묻는다. “영업비밀이 있으세요?” 동식이는 수줍은 듯, “어 해맑게 웃는 거?” 하며 진짜 그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비닐을 재단하면서 어리버리한 손호준과 프로페셔널 동식이는 대조된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거 비닐 안 재고 잘라도 되냐는 이서진의 질문에 그는 또 환히 웃으며 이미 자신이 팔 대중으로 쟀다고 말해 그를 감탄하게 했다.

 

<삼시세끼>가 동네 청년 동식이라는 인물을 오롯이 이 프로그램의 구성원처럼 포착해낸 데는 이 프로그램만의 성격이 묻어난다. <삼시세끼>는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작은 일상의 특별함들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시골 마을에서 만나는 그 무엇도 사소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철물점 동식이는 물론이고, 늘 가는 슈퍼마켓의 주인아주머니, 시장통의 풍경들, 그리고 가끔 물 마시러 들리는 관공서까지 이 프로그램에서는 중요한 소재이자 출연진들이 된다.

 

이렇게 소소함들에 한 걸음 더 다가가자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시골처럼 여겨졌던 이 정선의 마을이 점점 우리 마을처럼 친숙해진다. 동네 사람들은 남이 아니라 이웃이 되고, 그들의 삶 또한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삼시세끼>는 그 따뜻함을 갖고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작은 시골 동네의 이미지를 바꿔가고 있다. 어딘지 한번쯤 찾아가 하룻밤이라도 지내고픈 그런 인간미 넘치는 공간의 이미지.

 

철물점에서 일하는 해맑은 웃음이 영업비밀인 동식이는 이제 스물 세 살이다. 그 나이의 청춘들은 도시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는 동식에게서는 심지어 우리네 현실에 지친 미생의 청춘들이 부러워할만한 행복감마저 묻어난다.

 

모두가 성공을 위해 도시로 모여들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작아도 자신만의 일이 있고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시골의 삶은 어쩌면 하나의 로망이 될 지도 모르겠다. <삼시세끼>는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세세하게 포착해냄으로써 막연한 겉모습의 화려함과는 비교될 수 없는 소박한 시골 삶의 가치를 찾아내주고 있다. 동식이의 해맑은 미소는 진짜 시골 삶이 갖고 있는 행복의 비밀을 보여주었다.

 

이젠 <헬로 이방인>같은 외국인 예능도 농촌으로

 

이젠 외국인들도 농촌으로 간다? 2% 시청률에서 허덕이는 MBC <헬로 이방인>이 꺼낸 카드는 농촌이다. <헬로 이방인>은 강원도 모운동 마을을 방문해 현지 주민들과의 12일을 보내는 장면을 내보냈다. 워낙 침체의 늪이 깊어 그다지 큰 효과가 즉각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나왔던 <헬로 이방인>의 그 어떤 장면들보다 이 시골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의 만남은 각별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몇 안 되는 집들에 홀로 살아가시는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의 만남. 그 장면 자체로도 왠지 모를 뭉클함을 전해주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르신들과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준 강남이나, 첫 출연이지만 정이 느껴지는 터키의 핫산, 어르신들 앞에서 곰 세 마리를 부르며 재롱잔치를 한 후지이 미나, 할머니를 쉬게 해주려고 열심히 콩 타작을 한 제이크... 별 것 아닌 장면처럼 보였지만 시골 어르신들과 이방인들의 교감은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농촌이 어느새 예능의 텃밭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헬로 이방인>은 프로그램의 형식적 한계 때문에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12>이나 <삼시세끼>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김제 신덕마을로 내려가 할머니들과의 하룻밤으로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던 <12>은 왜 농촌이 그 공간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를 잘 보여주었다. 어딘지 소외된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프로그램이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인 공감을 만들어낸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하룻밤도 특별해지는 이유다.

 

나영석 PD<삼시세끼>는 농촌의 라이프 스타일을 하나의 예능으로 끌어안은 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고립되고, 또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피하게 되는 그 시골이란 공간을 이 프로그램은 즐기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문명의 이기가 전혀 없는 이 곳에서는 난방조차 직접 장작을 패 때워야 하고, 한 끼 먹기 위해 한 나절을 준비하거나, 텃밭을 키우고 수수를 거둬들이기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하지만, 그것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변모한다.

 

불 피우고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는 게 하나의 로망으로 다가오고, 깜깜절벽에 올려다 보면 지천으로 떨어지는 별이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설렘을 만드는 이 곳에서는 떨어지는 빗물 소리 하나, 소소한 읍내 나들이 하나마저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온다. 그러다 가끔 찾아오는 누군가의 방문은 그래서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별 특별할 것이 없어 더 특별해지는 <삼시세끼>라는 시골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마법이다.

 

사실 농촌으로 예능 프로그램이 간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그랬고, <12>은 초창기부터 시골과 오지를 텃밭으로 삼았으며 <패밀리가 떴다><청춘불패> 역시 시골의 라이프 스타일을 배경으로 삼아왔었다. 하지만 최근 예능이 다루는 시골의 풍경은 막연한 고립과 소외의 이미지에서 한 차원 더 나간 느낌이다. <삼시세끼>를 통해 보여지듯이 이제 그 시골은 도시인들이 가끔 꿈꾸는 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제주도에 내려간 이효리가 시골의 소소한 삶을 즐기며 콩 수확을 벌이는 모습이나 <삼시세끼>의 이서진과 옥택연이 티격태격하면서 즐기는 시골의 삶은 이제 복잡한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잊고 있던 그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면이 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이다. 모두가 바쁘게 저마다의 욕망을 안고 뛰고 또 뛰고 있지만, 삶은 오히려 가끔 그렇게 멈춰서는 곳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준다는 것. 요즘 농촌이 텃밭이 된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훈훈함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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