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의 자연스러운 혼재, <냄새를>의 세계

 

달콤함과 살벌함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적어도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있어서만큼은 이 경계가 무너진다. 장르적 재미에 엄격하거나 그 틀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런 공감각적인 형사물에 적이 놀랐을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이토록 철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전 범죄를 실행해 옮기는 권재희(남궁민)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드라마는 일찍부터 그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그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은폐하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권재희가 의사 천백경(송종호)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그는 부주방장과 비밀 레시피를 만드는 시간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이용한다. 미리 레스토랑에 도착해 요리를 준비해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이용해 자동으로 시간에 맞춰 켜지게 만들어놓은 후 그는 트레일러에 천백경의 차를 실어 낯선 곳에 버리고 온다. 예약된 음식이 조리되는 그 시간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만든 것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은 세밀하게 시간별로 보여준다. 알리바이를 더 그럴 듯하게 하기 위해 대리기사를 이용해 레스토랑에 두고 간 차를 국도휴게소로 가져오게는 하는 시퀀스는 그래서 기막힌 알리바이의 장치가 된다. 그 차가 나가는 걸 본 부주방장에게 권재희는 전화로 집에 향신료를 가지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대리기사가 국도휴게소로 가져온 차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온다. 굳이 천백경의 차를 옮기는데 트레일러를 이용하는 점이나, 트레일러의 번호판을 바꾸고, 대리기사에게 대포폰을 쓰는 등의 디테일들은 심지어 이 권재희의 치밀한 범죄행각을 흥미롭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런 살벌함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 권재희에 의해 동생을 잃은 뒤 감각을 잃어버린 최무각(박유천)과 역시 그에게 부모를 잃은 뒤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갖게 된 오초림(신세경)의 달콤한 멜로가 또 한 축이기 때문이다. 순경이지만 동생의 복수를 위해 강력계의 일원으로 수사에 뛰어든 최무각을 초감각 소녀 오초림이 돕는다. 그것은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이용한 특별한 수사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오초림이 개구리 극단에서 개그맨을 꿈꾸는 소녀라는 점은 이 달콤 살벌한 수사멜로물(?)에 코믹한 설정까지 덧붙여 놓는다. 무뚝뚝한 최무각이 오초림과 콤비가 되어 개그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장르적인 틀로만 바라보면 낯설다. 심각한 살인사건의 수사를 하는 주인공이 갑자기 극단에서 개그 코너를 선보인다는 건 만일 그리스 시대 극작가들이 봤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장르는 혼재되고 왜 캐릭터는 장르 안에서 비현실적으로 일관성만을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시대다. 개구리 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이 최무각에게 집 날려 먹을 때도 머리에 꽃 달고 개그했어... 개그맨은 그런 거야.”라고 얘기한 게 바로 진짜 현실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애도하면서도 개그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닌가.

 

달콤함과 살벌함의 혼재. 범죄물과 멜로 게다가 코미디까지 뒤섞이는 장르의 경계 해체.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지는 건 마치 무감각 소년이 초감각 소녀와 만나는 그 설정처럼 자연스럽다. 이것은 초감각 소녀 오초림이 바라보는 냄새의 세계와 같다. 거기에는 일관된 냄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취와 향기가 뒤섞여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오초림의 시선은 그래서 이 수상한 드라마가 가진 장르 같은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다.

 

그래서 이 <냄새를 보는 소녀>의 세계 안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는 현실의 실체들이 보여진다. 강력계 형사가 되고픈 순경, 개그우먼이 되고픈 초감각 소녀, 연쇄살인범 셰프.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왔던 직업군들의 일관성이 이들에게는 없다. 형사물과 범죄물이 갖고 있는 그 살벌함이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과 잘 어우러지는 세계. 너무 진지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가벼울 이유도 없는 그런 세계.

 

무각은 극단에서 보조스텝으로 전락해 상심하는 오초림에게 불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매운 불족발에 슬픔을 숨겨 오초림은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음식점을 나오며 이렇게 말한다. “눈물 콧물 다 뺐더니 아주 시원하네.” 이것은 쿨 하고픈 현 세대들의 표현방식일 것이다. 그 시원함이 무엇 때문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랴. <냄새를 보는 소녀>의 기묘한 재미가 달콤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살벌함에서 기인한 것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냄보소>, 복합장르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재미

 

뭐야 뭐야? 나 촉 디게 좋아-” KBS <개그콘서트>은밀하게 연애하게에서 임종혁은 김기열과 박보미의 비밀연애를 슬쩍 슬쩍 훔쳐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형사들이다. 범죄를 수사해야할 촉이 연애로 향하고, 선임과 신입 여형사는 수사가 아닌 연애를 한다. 형사물과 연애물을 결합하니 기묘한 지대가 생겨난다. 늘상 보던 연애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그 복합장르 속에 뒤섞인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아마도 SBS <냄새를 보는 소녀>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느낌이 이와 같지 않을까. 복합장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SF 판타지에 멜로와 코믹, 액션, 스릴러 같은 장르들을 엮어내 대륙까지 흔들었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피노키오>의 박혜련 작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장르를 뒤섞으면서도 그 안에 독특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자신만의 영역을 과시한 바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복합장르의 또 다른 버전이다. <별에서 온 그대>가 초능력을 가진 별에서 온 도민준(김수현)을 내세우고 있다면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처럼 냄새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 오초림(신세경)이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미스테리하게 벌어지는 이른바 바코드 연쇄살인을 담은 스릴러로 시작한다.

 

연쇄살인마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하고 쫓기던 오초림은 차에 치어 기억을 잃어버리는 대신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연쇄살인마를 목격한 그녀 때문에 최무각(박유천)은 같은 이름을 가진 여동생이 살해당하는 걸 보고는 감각을 잃어버린다. 연쇄살인마에 의해 두 사람은 각각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지만 한 사람은 초감각을 갖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처럼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만 보면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나 추리 장르처럼 보이지만 이 두 사람이 운명처럼 만나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멜로 역시 빠질 수 없는 재미요소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는 멜로의 이야기는 또한 두 사람의 공통의 목표 즉 연쇄살인마를 잡고 과거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것에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다양한 장르들은 기묘한 이음새로 이어진다.

 

초감각의 오초림이 무각의 최무각을 도와 수사를 하는 과정은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해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는 모습 그대로다. 오초림이 초감각으로 사건의 단서들을 찾아낸다면 무각은 온몸을 던져 범죄자들을 잡아낸다. 또 오초림의 꿈인 개그우먼이 되는 것을 돕기 위해 의외의 콩트 연기력을 보여주는 무각은 그녀와 콤비를 이룬다.

 

일상에서 오초림은 땅 위로 1센티 정도 들어 올려진 듯 과장된 인물이고 최무각은 반대로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무겁게 가라앉은 인물이지만 콩트 코미디 속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초림이 콩트 특유의 과장을 잘 못하는 반면, 최무각은 거꾸로 과장된 연기로 개그의 자질을 드러낸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건 이들의 외면과 내면 사이의 부조화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것이 어떻게 합치를 이루는가도 이 드라마가 앞으로 보여줄 또 하나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여러 장르들이 뒤섞인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의외로 보는 내내 두근두근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것이 스릴러가 주는 긴박감 때문인지 아니면 오초림과 최무각 사이에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로맨스 때문인지는 애매모호하다. 물론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복합장르의 기묘함은 분명한 정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그 모호함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가상과 현실은 이미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그다지 그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니 가상이 주는 판타지와 현실이 주는 실감 사이의 경계도 점점 얇아지고 있다. 복합장르가 주는 기묘한 느낌은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들이나 판타지와 현실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엮여 어떤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데서 나온다.

 

흔히들 가상현실의 혼재가 가져온 그 으스스한 느낌을 언캐니 현상이라 부르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특징이라고들 말한다. 복합장르에서 느껴지는 그 기묘하고 정체가 모호한 재미 역시 그 특징을 어느 정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냄새를 보는 소녀>가 주는 정체모를 두근두근에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감각의 일단이 느껴진다.

 

뭐야 뭐야 나 촉 디게 좋아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그 재미의 정체가 여전히 모호하게 다가오는 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전통적 문법들의 저항 때문일 게다. 물론 <냄새를 보는 소녀> 같은 복합장르의 애매모호함 역시 우리가 디지털 깊숙이 들어와 이제 디지털을 그다지 새롭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향후 우리네 드라마의 익숙함이 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언맨>의 끝없는 추락, 동화에 머문 멜로의 한계

 

도대체 이건 무슨 얘기일까. KBS <아이언맨>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우화나 동화처럼 상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하면 등에 칼이 돋는 캐릭터. 주인공 주홍빈(이동욱)은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차라리 분노를 상징화한 캐릭터다.

 

'아이언맨(사진출처:KBS)'

이러한 상징의 캐릭터화는 과장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언맨>의 초반부는 주홍빈이라는 캐릭터의 분노를 심지어 보는 이들마저 불편할 정도로 시종일관 보여주었다. 그는 까칠함과 까탈스러움과 신경질적임이 무엇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까칠함의 대명사처럼 남자 주인공을 세운다는 건 모험일 수 있다. 어쨌든 멜로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처럼 시종일관 신경질적인 모습만을 드러내고, 때로는 동물처럼 코를 킁킁대며 여자의 냄새를 맡는 모습은 과장됐다 하더라도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쨌든 하나의 장치다. 이미 이 남자의 등줄기에서 칼이 돋는다는 캐릭터 설정은 좀체 이 남자가 여성에게 마음을 열기도 또 여성이 이 남자에게 쉽게 다가가기도 어렵다는 것을 전제한다.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혹은 <헐크>처럼 그는 내재한 분노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또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일정부분 불편함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과장된 또 한 명의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그녀가 바로 손세동(신세경)이다. 그녀는 시골 마을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의 풍경에 깜짝 놀라 야아-”하며 과장된 목소리를 내 버스에 탄 할머니들을 모두 웃게 만드는 소유자고, 할머니 한 명 한 명 내릴 때마다 짐을 내려주는 친절의 소유자다.

 

주홍빈이 찾은 옛 사랑의 집에서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정신을 놓아버린 노모가 그녀에게 왜 이제 왔냐고 말하며 딸로 착각할 때,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딸처럼 울어줄 줄 아는 그녀다. 그녀는 분명 주홍빈처럼 과장되어 있다. 주홍빈이 분노를 표징하는 인물이라면 그녀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표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이 <아이언맨>이라는 등에 칼이 돋는 캐릭터까지 등장해서 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해진다. ‘분노공감’. 즉 관념적으로 얘기하면 분노가 어떻게 공감을 통해 풀어져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주홍빈의 칼이 돋는 등을 안아주거나 그 등을 토닥여주는 손세동의 모습은 그래서 이 관념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를 형상화해주는 장면처럼 보인다.

 

<아이언맨>의 동화적인 상징은 그 자체로는 흥미롭다. 마치 이야기의 원형을 그려내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언맨>은 동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드라마는 좀 더 현실적인 장르다. ‘분노공감으로 바꾸는 이야기를 캐릭터화해서 보여준다면, 드라마는 여기에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배경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즉 지금의 시청자들이 왜 분노공감을 표징하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드라마에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분노의 이유가 너무 단순하고 사적이다. 사랑하던 옛 연인이 죽었고, 그 죽음이 아버지 때문이라는 막연한 상황이 그 분노의 이유다. 만일 동화라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드라마라면 너무 소소해진다.

 

물론 분노라는 감정은 지금 시대의 정서임에는 분명하다. 경제적인 불평등, 몰염치한 사회, 툭하면 터지는 사건사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제 살길만 찾는 특권층들... 이 현실적인 분노들은 마치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떠다닌다. 그러니 이러한 사회적인 분노의 시대에 지극히 사적인 홍빈의 분노가 대중들의 눈에 들어올 까닭이 없다. 또한 이런 분노는 <아이언맨>이 세동을 통해 동화적으로 보여주는 밝음공감으로 끌어안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이언맨>이 괜찮은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그저 소소한 이야기가 된 것은 그 이야기의 내적 완결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 이야기가 지금 현재 어떤 울림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서다. 그 분노에 조금은 사회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승승장구, 이유 있었네

 

‘사과가 썩은 것은 사과 잘못이 아니다.’ 대부업체의 깡패로 살아가던 한태상(송승헌)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혹시 이 문구 때문이었을까. 7년 전 서미도(신세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 서씨글방에 빚 독촉을 하러 간 한태상이 본 그 입구에 적혀져 있던 문구. 혹시 집나간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죽어버린 아버지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아 결국은 그 깡패들의 일을 하며 썩은 사과의 삶을 살게 된 그에게 그 문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남자가 사랑할 때'(사진출처:MBC)

한태상은 바로 그 문구로 인해 자신이 이 썩은 사과의 길로 들어서게 됐던 때의 일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마음으로 한태상을 찾아온 서미도의 “그렇게 살면 좋아?”라는 질문에 마음이 흔들렸을 지도. 공부 잘 하는 학생에서 어느 날 가족들로 인해 길바닥으로 내던져진 한태상에게, 빚만큼 자신을 사라는 서미도의 당돌한 제안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 게다.

 

“가끔 인생은 이런 날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이제 끝장이다 싶을 때 작은 쥐구멍 하나가 나올 수도 있어. 아직 어려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라. 함부로 널 놓지 마.” 더 이상 동네의 구경거리가 되기 싫어 인생의 끝장을 선택한 서미도에게 던지는 한태상의 이 말은 그래서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태상과 서미도의 사랑은 이렇듯 시작부터가 다르다. 거기에는 운명적인 만남 따위는 없다. 다만 치열한 현실이 있고, 그 현실에 대한 동병상련이 있을 뿐이다. 가난했던 그들은 바로 사랑의 지고지순함을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일 한태상의 금전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서미도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나지 않겠는가. 이 속물적인 사랑에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서미도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다가온다. 그 운명적인 연인 이재희(연우진)를 만나는 곳이 해외의 휴양지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의 완전히 다른 나를 경험하게 해주기 위해 한태상이 보내준 해외출장에서 서미도는 이재희를 만난다. 현실에서 한 뼘쯤 들어 올려진 공간에서야 비로소 현실을 벗어나 온전히 가슴 설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서미도가 한태상과 이재희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어장관리가 아니라 이 두 개의 사랑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가 보여주는 사랑은 겉으로 보면 너무나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에서 갈등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결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세경이 연기하는 서미도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이 캐릭터는 <패션왕>에서 신세경이 연기했던 이가영을 닮았다. 끊임없이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지극히 속물적이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그런 캐릭터.

 

아마도 태생적으로 부자인 삶을 살게 된 인물들의 사랑이라면 이러한 사랑을 하면서도 돈과 현실에 솔직한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 등장하는 멜로의 장본인들은 태생적 부유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설 수 있는 풍족한 삶의 맨 밑바탕은 한태상이 떠받들고 있고 그 위에 서미도와 이재희가 서 있다. 이 현실적인 부분은 서미도 같은 캐릭터가 스스로도 말하는 ‘속물’ 근성을 오히려 공감가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랑 사랑 하지만 길바닥에 내던져져 당장 살 수가 없는 마당에 무슨 놈의 사랑인가.

 

그래서 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서미도의 속물적 사랑은 거꾸로 그녀를 그렇게 만든 사회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사과가 썩은 것이 어찌 사과 잘못이겠는가. 다만 그렇다고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약간은 빗나가고 약간은 속물적일 지라도 그렇게 솔직한 사랑의 모습은 그래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멜로를 남다르게 보게 만든다. 때로는 현실을 벗어난 운명 운운하는 것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사랑이 더 마음에 닿을 때도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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