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하이에나’, 음악 이젠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싱어 송 라이터들은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낼까. 어쩌면 KBS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질문이 가진 효용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그건 제작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음악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늘 결과물로만 접했던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사진출처:KBS)'

그런데 제작과정이 싱어 송 라이터들마다 다 다르다. 특히 양분되는 건 이른바 20세기 소년들이었던 윤종신과 정재형의 제작방식과 21세기 소년들인 그레이와 후이의 제작방식이다. 윤종신과 정재형은 물론 디지털 피아노를 활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창작에 있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반면, 그레이와 후이는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작곡하는 정재형의 작업 풍경과 비트를 먼저 쪼개 넣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어 뚝딱 만들어내는 그레이의 방식은 그래서 음악 작업 환경이 최근 몇 년 간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의 방식이 갖고 있는 장점은 분명이 있다. 정재형의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면, 그레이의 디지털 방식으로 나온 곡은 훨씬 트렌디하다.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에서도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인다. 윤종신은 곡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인생작이라는 영화 <길>을 보며 그 감성적인 영감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정재형은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양양으로 가 서핑에 몸을 얹으며 영감을 받는다. 반면 그레이는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영감을 받고, 후이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장면이 주는 느낌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이런 저마다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곡들은 그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정재형의 곡이 아날로그적 피아노의 우아함을 담아 세련된 발라드의 느낌이 얹어졌다면, 그레이의 곡은 어딘지 힘을 쭉 뺐지만 세련된 힙합의 맛이 물씬 묻어난다. 후이의 곡이 아이돌 특유의 다이내믹함을 매력으로 갖고 있다면 윤종신의 곡은 1990년대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찌질한 남성의 감성이 담긴다. 

사실 많은 음악예능들이 지겹게 느껴지는 건 그 프로그램의 형식과 구성이 이미 시청자들의 눈에 익어서다. 대충 우리는 그 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음악에 스토리를 구성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러니 거의 오디션의 틀을 반복하는 음악예능이 제 아무리 맛있는 상을 차려내도 물릴 수밖에.

하지만 음악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제작과정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기존의 음악예능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것은 노래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해주기 때문에 생겨나는 재미다. 

너무 많은 음원들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지 우리들의 귀를 스쳐가는 노래들은 그렇게 나왔다 사라지기 일쑤다. 그 음원들에 특별한 애착이 없다면 아무리 좋아도 귀에 달라붙지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는 너무 많은 아이돌들이 쏟아져 나와도 애착 없이 바라보면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프로듀스101>처럼 아예 그들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봐야 비로소 달리 보이게 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그런 점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시청자들을 동참하게 해 그 음악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웬만한 영화보다 낫다..OCN 무비드라마 빛 보나

OCN 새 주말드라마 <터널>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첫 회 2.8%(닐슨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2회 만에 3%를 넘겼다. 같은 시간대의 OCN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보이스>가 첫 회에 2.3% 그리고 2회에 3%를 넘긴 후 5%가 넘는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이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터널>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터널(사진출처:tvN)'

<보이스>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본격 스릴러 장르로 성공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비슷한 스릴러 장르를 갖고 있는 <터널>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즉 OCN이 무비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10여년 간 지속해왔던 본격 장르물에 대한 투자가 이제 그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스릴러 장르를 통해 보여준 <보이스>의 성공은 그만한 시청층이 이미 존재한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중요한 건 <터널>이 <보이스>와 유사한 스릴러 장르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보이스>가 갖고 있던 단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보이스>는 한번 보면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와 구성은 호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잔인한 살해 장면들이 반복됨으로서 지나친 자극으로 흐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터널>의 경우, 여전히 연쇄살인범의 끔찍한 살인이 보여지긴 하지만 <보이스>처럼 자극적인 느낌은 덜 하다. 이런 차이는 드라마가 갖는 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이스>가 보다 자극적이고 끔찍한 느낌을 줬던 건 살인자나 피살자의 시점을 자주 차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널>은 같은 살인장면이라고 해도 그 시점이 사건을 추적하는 박광호(최진혁)에 주로 맞춰져 있다. 

여기에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박광호라는 형사 캐릭터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물이라면서도 <터널>이 어떤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tvN <시그널>이 스릴러 장르를 그리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가장 큰 요인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형사들의 절절하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드라마적 감성을 다르게 만들어줬다는 것. 

<터널>은 또한 박광호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이야기로 타임슬립 설정이 되어 있다. 타임슬립 설정은 자칫 그 시간여행 장치에 지나치게 빠져 게임처럼 활용되어 버리면 이야기만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터널>은 이 부분에서도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즉 타임슬립을 장치적 재미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벌어지는 인물의 감정선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와버린 박광호와 1986년에 있는 그의 아내 사이의 거리와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터널>에는 중요한 정서로 깔려있다. 

지금이야 영화 같은 드라마들이 많아졌지만 처음 OCN이 무비드라마를 주창하고 나왔을 때만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영화 같은 드라마가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 역시 커졌다. 만일 <보이스>에 이어 <터널>까지 어떤 성취를 가져가게 된다면 이로써 OCN드라마의 브랜드는 의외로 공고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 스릴러 장르 드라마하면 먼저 OCN이 떠오를 지도.

멀티플렉스 시대, 무주 산골영화제의 특별한 체험

 

무주 산골의 어둠과 정적은 더 깊었다. 그래서 불을 끄면 마치 영화관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영화관은 바람에 묻어나는 나무와 풀 냄새가 났고 간간이 반딧불이가 날아와 은은한 빛을 점멸하며 지나가곤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답답한 건물 천정 대신 확 트인 또 다른 스크린이 펼쳐졌다. 밤하늘이 펼쳐내는 스크린 위에는 도시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별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그것만으로도 영화 그 이상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진출처: 무주 산골영화제

올해로 4회를 맞은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식장 풍경. 내외빈들은 풀밭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어둠 저편 무대에서 펼쳐지는 개막작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작은 영화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종합 영화 공연이 특징이다. 작년 개막작 <어느 여름밤의 꿈, 찰리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마임으로 새롭게 덧칠한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준 바 있다. 올해 개막작인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1961년 방영된 신상옥 감독, 최은희, 김진규 출연의 <성춘향>에 음악감독 손성제의 재즈와 소리꾼 이소연의 판소리가 엮어져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그 오래된 춘향전을 영화로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작품을 현재화시켰던 것처럼,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은 이제는 과거가 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을 재즈와 판소리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재화시켰다. 낡은 필름이 보여주는 거친 질감과 후시녹음으로 어색한 발성들이 만들어내는 오래된 영화가 관객을 과거의 시간여행으로 이끌고 들어간다면, 손성제의 재즈와 소리꾼 이소연이 눈앞에서 영화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게 펼치는 퍼포먼스는 그 과거를 다시 현재로 소환시킨다. 영화 공연은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직선적인 시간을 다시 현재에서 과거로 연결시켜 시간의 고리를 체감하게 해준다.

 

문득 그 오래된 영화가 새롭게 보인다. 낡은 영화지만 그 안에 담겨진 신상옥 감독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들이 보이고 조금은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 연기에 담은 최은희, 김진규의 열정이 느껴진다. 왜 하필 무주 산골영화제의 개막작들은 이처럼 옛 영화들을 가져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거기에 현재적인 시선을 담아 다시 들여다보자 현재의 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진짜 영화 체험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우리네 춘향전이 저렇게 멋스러운 이야기였었나.

 

이른바 멀티플렉스 시대다. 영화관에 가면 영화들이 넘쳐난다. 너무나 쾌적하고 의자도 편리하며 좌석도 많고 넓은데다 음향은 실감날 정도로 짱짱하고 시각체험은 진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구획된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아 보는 그 영화들이 어떤 쾌감을 주긴 하지만, 때로는 옛 영화들이 주었던 어떤 정서와 감성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편안한 멀티플렉스가 제공하는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주는 쾌감들 속에서 우리가 점점 둔해지고 잊고 있던 정서와 감성들.

 

무주에는 멀티플렉스가 없다. 무주에 있는 영화관은 그 이름이 산골영화관이다. 과거 소극장 정도의 규모지만 영화제가 있는 기간에는 이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로 붐빈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멀티플렉스가 주지 못하는 감성과 정서가 느껴진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밤이 되면 산골 곳곳이 영화관이 된다. 이른바 찾아가는 영화관이다. 멀티플렉스가 사람들을 잡아끄는 상업적인 공간으로서 영화관을 상정한다면, 찾아가는 영화관은 이처럼 상업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버린 영화관을 온전히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되돌려준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여타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화제들과 달리 소박하다. 거기에는 화려함보다는 부족하고 퇴색하여 오히려 영화가 갖는 진짜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때로는 영화도 공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영화 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그것을 담는 그릇이 너무나 상업적으로 경도되어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관 체험에 어떤 피로를 느꼈다면 무주 산골영화제는 그 피로와 자극을 덜어내 온전한 영화적 체험으로 우리를 되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힐링이 따로 있나. 이것이 힐링이다

타란티노는 왜 <헤이트풀8>에 아날로그를 고집했을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은 결코 일반 관객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영화다. 그것은 영화가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껏 멀티플렉스관에 상영되곤 하던 빠르게 전개되는 자극적인 영상과 속도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출처 : 영화 <헤이트풀8>

영화 시작에 눈 덮인 예수상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빠져나오며 저 뒤편으로 펼쳐지는 새하얀 설원 위로 말들이 끄는 마차 한 대가 화면 앞까지 달려오는 롱테이크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 속 카메라는 여러 공간과 시간 속 인물들을 넘나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한 공간에 붙박아 놓고 그 안에 담겨진 내밀한 이야기들을 반전에 반전으로 드러내보여주려 한다.

 

눈보라 때문에 한 잡화점에 모이게 된 8명은 저 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그들은 결코 선과 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다. 무언가 숨겨진 속내들이 있고, 그것은 그들의 출신이나 갖게 된 직업 그리고 나아가 피부색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처럼 저마다의 욕망들을 갖고 모이게 된 8인이 벌이는 죽고 죽이는 살벌하지만 그 타란티노 특유의 농담이 섞인 살육전은 미국의 역사와 절묘하게 중첩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마치 <저수지의 개들>을 다시 보는 듯한 기막힌 타란티노식 심리극이 총잡이들의 사투로 풀어지는 흥미진진한 긴박감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거의 1시간에 걸친 도입 부분의 인물들에 대한 길고 긴 수다와 농담들은 미국의 문화나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놀라운 건 무려 167분에 달하는 런닝타임을 갖고 있는 이 영화가 그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이야기의 공간은 좁은 잡화점 한 곳에 거의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단지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울트라 파나비전 70(Ultra Panavision 70) 렌즈에 70mm필름으로 찍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고집스런 선택으로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미국의 영화관에 영사기를 세워 돌리기 위한 막대한 투자가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카메라와 필름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건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그저 총잡이들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극을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그 대목이다.

 

울트라 파나비전이라는 어찌 보면 과거의 스펙터클 영화를 찍어내던 방식을 가져오지만 결과적으로는 작은 잡화점 안에 카메라를 세워놓았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아마도 타란티노에게는 울트라 파나비전도 저 <벤허>의 질감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제는 스펙터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아날로그적 감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헤이트풀8>은 그래서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갖춘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란티노의 이 옛 방식을 고집한 촬영은 그래서 지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마찰을 빚는다.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고 또 어찌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3D에서 4D까지 나가며 관객들을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아날로그 방식의 <헤이트풀8>은 그래서 마치 일대 대결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단 몇 초 동안 자극에 자극을 이어가는 작금의 영화들의 시각적이고 순간적인 현란함에 옛날 방식의 어찌 보면 진짜 영화들이 그리워지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충분히 그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타란티노식의 핏빛 농담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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