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의 밥상은 늘 훈훈하다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한자(김혜자)는 자식들 때문에 뿔이 잔뜩 났다. 늘 부엌에서 살다시피 밥을 짓는 그녀가 울면이 먹고싶다며 시아버지를 조른다. 중국집에서 시아버지가 사주시는 울면을 먹으면서 그녀는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한편, 뿔난 그녀가 마음에 걸려 남편 나일석(백일섭)은 붕어빵을 사 가지고 그녀를 찾는다. 울면이나 붕어빵은 흔하디 흔한 음식이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는 그것이 마음을 전해준다. 그 마음은 그걸 만들거나 사주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고, 그걸 먹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김한자가 답답하다며 남편 나일석을 졸라 저녁 드라이브를 간 곳은 다름 아닌 딸이 일 때문에 잠을 자곤 하는 오피스텔이다. 그녀의 손에는 반찬그릇이 들려있다. 그리고 그 집 앞에서 그녀가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딸이 먹고 내놓았을 배달음식 그릇들이다. 마침 오피스텔에는 딸이 만나는 이혼남, 이종원(류진)이 함께 있었는데 그는 재빨리 이층으로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 빈자리에서도 엄마는 다른 사람의 흔적을 쉽게 찾아낸다. 그 흔적이란 다름 아닌 두 개의 커피 잔이다.

음식은 늘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고, 그걸 먹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수현 작가는 우리 생활 속에서 바로 이 음식의 흐름, 음식의 법칙을 가장 잘 아는 작가다. 전작이었던 ‘내 남자의 여자’에서도 화영(김희애)과 지수(배종옥)의 캐릭터를 극명하게 나누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부엌과 그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본처를 버리고 아내의 친구와 살림을 차린 홍준표(김상중)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지수가 해주던 음식. 뻔뻔스럽게도 그는 지수를 찾아와 밥을 차려달라 하고, 그런 뻔뻔스런 남자에게 그래도 지수는 밥을 차려준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특히 드라마의 화자가 엄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유달리 음식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막내딸과 사귀는 재벌집 아들이 불쑥 찾아왔을 때도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저녁거리였다. 여기서 저녁거리를 차려주는 엄마는 그 자체로 딸의 남자친구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재벌집 아들과 헤어지겠다 마음먹고 회사에 사표까지 낸 후 집으로 돌아온 막내딸에게 엄마는 밥을 먹으라 권하지 않는다. 이유는 “마음이 더 아플테니 밥이 넘어가겠냐”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막내딸이 “나는 괜찮아”하고 말하자 엄마가 먼저 하는 이야기가 “괜찮으면 밥 먹어”이다. 엄마의 사랑은 밥으로 가장 잘 표현된다.

때론 ‘밥 먹는 것을 끊는 것’으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고은아(장미희)의 결혼반대에 대해 그녀의 아들 김정현(기태영)은 단식투쟁을 한다. 결국 사흘을 굶는 아들 앞에서 고은아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제아무리 강한 여자라 해도 한 아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엄마가 자식이 굶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허락을 받아낸 김정현에게 그래도 자신이 받은 치욕 때문에 결혼은 할 수 없다는 나영미(이유리)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도 역시 밥이다. 그녀는 김정현이 죽을 각오로 사흘을 굶었다는 말에 와락 눈물을 쏟아낸다. 그녀 역시 미래의 엄마이다.

자신의 집안에서의 반대 때문에 힘겹게 했던 일들에 대해 사죄를 하는 김정현에게 “네가 승낙을 얻어왔어도 반대한다”는 나일석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 역시 밥이다. 자기 딸과 결혼하기 위해 사흘을 굶었다는데 아무리 나쁜 녀석이라도 세상의 어떤 아빠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까. 말은 반대한다 말하면서도 나일석은 그 나쁜 녀석에게 먹일 죽이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 죽 한 그릇이 전하는 의미는 아무리 많은 말로 해도 다 채워지기가 어렵다.

김수현 작가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툭툭 던져지는 말이나, 늘 행해지는 행동들에서도 그 독특한 뉘앙스의 의미들을 잘 찾아내는 작가다. 그래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서 나오는 명대사란 실상은 그다지 거창한 수사가 별로 없다. 그냥 일상 용어일 뿐인데, 그것이 특정한 상황에 콕 찍힐 때 놀라운 울림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독 그녀의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는 음식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그것이 아무리 매일 먹던 밥이나 죽이더라도 김수현이 차려놓은 드라마 상황이라는 밥상 위에 올려지면 특유의 훈훈한 맛을 전한다. 그것은 마치 매일 매일 먹는 밥이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엄마의 온기 같은 것이다. 이것이 김수현 작가가 매번 차리는 밥상이 훈훈한 이유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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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에 빠진 주말극, 남은 건 작가색

먼저 서로 다른 집안환경에서 자라난 남녀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집안환경과 상관없이 서로를 사랑한다. 밖에서 연애를 할 때야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이가 되자 문제는 복잡해진다. 결혼을 앞두자 남자 혹은 여자는 그동안 상대방에게 속여왔던 자신이 부자임이 드러나거나, 스스로 그 사실을 밝히게 된다. 공교로운 것은 대체로 그 부잣집 자제는 상대방이 다니는 회사의 회장 자제라는 점이다. 부유한 집안 부모는 결혼을 반대하고 결국 그 반대에 모멸감을 느끼던 한 쪽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통보를 한다. 혹은 그 반대의 결정을 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위에 적어놓은 스토리는 지금 현재 주말 드라마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와 김정수 작가의 ‘행복합니다’가 똑같이 가진 이야기 구조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기 때문인지 어떨 때는 같은 날 방영하는 드라마의 내용이 거의 같게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고은아(장미희)가 스스로 대사 속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편견에 가득 찬 교양 없는 시어머니 역할 하기 싫어”라며 밝힌 것처럼 그 장면은 드라마라면 어디에나 한번쯤 등장하는 시퀀스가 되어버렸다. 고은아는 자신의 대사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연인인 영미(이유리)를 불러서 모멸감을 준다. 같은 날 방영된 ‘행복합니다’에서도 역시 같은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재벌집 사모님인 이세영(이휘향)은 딸과 결혼하려는 이준수(이훈)를 불러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다른 것이라곤 시어머니가 장모로, 그리고 며느리가 사위로 뒤바뀌어 있을 뿐이다.

이 두 부유층의 사모님들은 모두 자신의 딸 혹은 아들이 격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기를 원한다. 이 두 드라마는 서민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서민적인 주인공을 데려다가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거나 물을 끼얹는 장면은 자못 자극적이다. 그것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의 얼굴에다 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을 준다.

이렇게 한 차례씩 당한 주인공들은 저마다 회사를 그만둔다. 그 회사의 회장 자제로 있는 상대방과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 역시 ‘엄마가 뿔났다’와 ‘행복합니다’에서 같은 날 방영되었다. 이 정도 되면 주말 가족극의 패턴은 이미 공식화되어버렸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만일 이 두 드라마를 모두 즐기는 시청자라면 같은 구조의 이야기를 같은 날 반복적으로 시청한 셈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공식화된 이야기가 식상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두 드라마는 저마다 색깔이 다른 느낌마저 주면서 번갈아 볼 때 역할 바꾸기(남자와 여자의)의 재미까지 선사한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여성의 시선을 통해 계층 갈등의 묘미를 본다면, ‘행복합니다’는 남성의 시선을 통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게임 같다. 공식화된 틀 속에서 다른 캐릭터들을 갖고 한 시간 동안 즐기는 게임.

이 공식화된 구조의 두 드라마가 주는 진짜 재미는 작가에게서 나온다. ‘엄마가 뿔났다’는 김수현 작가가 주는 속도감 있는 대사들의 잔치와 자잘한 일상의 디테일들을 통해 재미를 주고, 김정수 작가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에 작가 특유의 서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묘미를 더한다. 만일 이 두 대작가들의 색채가 없었다면 이 두 주말 드라마는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유사한 구조의 스토리를 가지고도 비슷한 높은 시청률을 모두 거두고 있다는 점은 지금 우리가 주말 드라마를 통해 얻는 재미가 독특한 소재나 색다른 시각 혹은 주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우리는 똑같은 구조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내느냐는 ‘이야기꾼’의 그 이야기 능력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재미있는 두 거장의 이야기 풀어내는 능력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이 거장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는, 삶이란 결국 그렇게 독특하고 색다른 무엇이 아니라 다 같은 구조 위에 있지만 그 위에서의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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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 재벌가보다는 서민을 보다

요즘 주말극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재벌가와의 로망이라는 오래된 코드를 들고 나오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의 대기업 회장 김진규네 아들 김정현(기태영)과 서민적인 나일석네 딸 나영미(이유리)간의 사랑이 그렇고, ‘행복합니다’의 재벌집 딸 박서윤(김효진)과 이준수(이훈)의 사랑이 그렇다.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나 부의 차이를 가진 남녀의 만남은 이미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던 시대에서부터 내려오던 고전적인 소재. 그것이 오랜 고전이 되고 지금까지도 자주 소재로서 활용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신분상승 욕구나 변신욕구를 자극하는 강력한 환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이 설정은 툭하면 신데렐라의 변주 정도에 그치면서 식상해져버린 트렌디 드라마를 근본적으로 비판받게 만든 혐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이들 주말극들은 이러한 구도를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과거와는 다르게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무슨 차이가 이것을 만들었을까.

주목해야할 것은 재벌가의 남녀들이 보이는 ‘서민적인 모습’이다. ‘엄마가 뿔났다’의 김정현은 대기업 회장 아들이면서도 늘 버스를 타고 다니는 인물이고, ‘행복합니다’의 박서윤은 허례허식에 가득한 상류층 문화에 반발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들은 부유하면서도 서민적이다.

이것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시어머니가 될 재벌가의 엄마들은 허영과 특권의식에 가득한 악역이지만, 최소한 아버지들은 이런 차이를 뛰어넘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인물로서 그려진다. 이러한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부부의 조합은 상당부분 재벌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준다.

이들이 이렇게 그려지는 이유는 이들 주말극이 보여주는 재벌가와 서민층의 관계가 과거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드라마가 주로 선망 받는 재벌가의 남자 혹은 여자가 서민인 상대방의 신분을 ‘끌어올리는’ 관계를 보여줬다면, 작금의 주말극들은 거꾸로 재벌가의 남자 혹은 여자가 서민 쪽으로 내려와 눈높이를 맞추는 관계를 그려낸다. 부유하면서도 서민적인 재벌가의 남녀라는 캐릭터는 이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주제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엄마가 뿔났다’는 기본적으로 신분상승 욕망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서민적인 엄마의 일상을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시선은 늘 엄마에게 맞춰져 있다. ‘행복합니다’ 역시 그 주제의식은 ‘엄마가 뿔났다’와 마찬가지다. 서민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이철곤(이계인)네 집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으며, 그것은 박승재(길용우) 회장집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되면서 진짜 행복을 묻게 될 것이다.

재벌가가 등장하지만 이들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서민적인 일상들의 행복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극과 극의 만남이라는 설정은 오히려 돈을 좇는 사회에 진짜 행복은 이런 보통의 일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탐탁하지 않아 하는 김정현의 엄마, 고은아(장미희)앞에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나영미나, “니들이 그렇게 잘났냐”며 절망하지만, 헤어지는 조건으로 돈을 줄 수도 있다는 박상욱의 말에 분노하는 이준수는 진정한 행복 앞에서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당당할 것을 요구하는 인물들이다.

김수현 작가나 김정수 작가 같은 거장들이 주말극으로 가져온 것은 소재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인의 손길을 거친 드라마들은 일상의 디테일들을 잘 포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금까지 천편일률적으로 그려져 왔던 구도의 식상함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무엇보다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은 서민들의 일상에 대한 존경과 따뜻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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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뿔났다’, 그녀들을 뿔나게 한 것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한자(김혜자)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다. 세탁소 일을 하고 있는 아들 영일(김정현)의 아이를 가졌다며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미연(김나운)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막내 영미(이유리)는 밥벌이도 못하는 남자(실제론 재벌2세이지만)와 결혼을 하겠단다. “내 인생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실상 대부분의 자식 가진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잡아낸다. 세상에 제 맘대로 되는 자식 가진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늘 ‘안해요! 못해요!’하고 말하면서 화를 내거나 때론 눈물을 보인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걱정되어 찾아온 자식들 앞에서 그녀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며 언제 그랬냐싶게 금세 웃어 보인다. 이 조울증에 가까운 태도변화는 갑작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은 그녀의 웃는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세상 엄마들 모두가 가지고 있을 아픔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 나일석(백일섭)은 늘 이렇게 말한다. “결국엔 할 거면서 당신은 꼭 그러더라.” 속으로 뿔나면서 겉으로는 웃는 그 엄마의 마음은 내레이션 속에서나 흘러나올 뿐이다. 남자들이건, 자식들이건 일단 저질러놓고는 “사랑해서 미안혀”라고 말하면 그뿐인 존재들 아닌가. 그래서 뿔난 엄마가 어느새 웃는 낯으로 대할 때 그들은 “엄마 벌써 풀렸구나”하며 으레 그래왔고 그래야 할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렇게 뿔난 그녀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관성적인 살림의 손길 때문이다. 그녀는 늘 손이 바쁘다. 흔히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입으로는 연실 자식 걱정과 뿔난 심사를 수다로 뽑아내면서도 손은 쉴 틈이 없다. 같은 날 태어난 남편과 시누이의 생일 상을 차리면서, 아이까지 데리고 들어온 며느리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면서, 맏딸 영수(신은경)의 오피스텔에 반찬거리를 가져가면서, 갑자기 찾아온 막내 영미의 남자친구 정현(기태영)을 위해 저녁거리로 뭘 준비할까 고민하면서, 아기 목욕을 시키고 콩나물을 다듬고, 빨래를 끓이면서 나오는 그녀의 수다를 듣다보면 말과 행동이 서로 상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안한다. 못한다 하면서도 몸은 늘 그녀를 뿔나게 하는 가족들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그것이 가족을 위해 살림하는 엄마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속에서 뿔난 엄마는 김한자뿐만이 아니다. 이제 앞으로 결혼문제로 그녀와 부딪치게될 정현의 엄마, 고은아(장미희)도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아들 때문에 잔뜩 뿔이 나 있다. 격에 맞지 않는 아들의 여자친구도 여자친구지만, 한 번도 그녀의 말을 어기지 않던 아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배신감이 더 클 터이다. 그녀는 “드라마에 나오는 편견에 가득 찬 교양 없는 시어머니 역할”은 하기 싫다 말하면서도 결국은 자식 욕심 앞에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식 앞의 부모마음이야 김한자나 고은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문제는 그 뿔난 심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는 두 뿔난 엄마의 서로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을 드러낸다. 그것은 그녀들의 상반된 일상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고은아는 살림과는 거리가 먼 여자다. 그 집안의 살림은 ‘미세스 문’이 해주고 있는 상황에 그녀는 교양 있는 포즈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의 전부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왔던 그녀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늘 떠오르는 엄마라는 존재보다는 군림하고 시키는 사모님이라는 존재로 그려진다. 누구에게 양보할 수 없는 그녀가 하는 문제 해결 방식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의 여자를 불러, 남편 말대로, ‘웃는 얼굴로 포를 뜨는’ 일이다.

반면 김한자는 그 뿔난 심사의 위안을 살림 그 속에서 찾는다. “속상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며 잠자리에서 이불을 들고 나와 펴는 부엌은 그녀에게 삶의 힘을 다시 되찾게 해주는 공간이다.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들지만 ‘거둬 먹이는’ 엄마의 마음 그 속에 자신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긋지긋한 노동이 분명하지만 관성이 되어버린 살림의 손길은 때론 자신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엄마가 뿔났다’가 그려내는 두 명의 뿔난 엄마. 그 엄마들의 뿔은 모두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자식들로 인해 비롯된 것이지만 서로 다르다. 김한자의 뿔은 안으로 자라나 자신을 찌르는 반면, 고은아의 뿔은 밖으로 자라나 그 누군가를 찌른다. 고은아가 뿔난 심사를 토로할 때 옆에서 그걸 받아주는 것이 구관조 하나인 반면, 김한자의 옆에는 늘 가족들이 있는 건 그 때문이다.

“니가 최고여!”라고 말하면서 울면 한 그릇이라도 따뜻하게 사주는 시아버지 나충복(이순재), 혹여나 상처가 깊을까봐 붕어빵이라도 사서 아내를 찾는 남편, 든든한 말벗이 되어주는 시누이 나이석(강부자), 엄마의 가시 돋친 말에도 그저 뽀로통한 얼굴만 하고 넘기는 맏딸 영수,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풀어줄려고 분위기를 맞추는 예쁜 딸, 영미가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엄마의 뿔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 드라마를 보는 엄마란 존재를 가진 모든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주부들의 살림, 태안을 살림
말실수 가족
지수가 화영을 이해하는 까닭
‘내 남자의 여자’, 그녀들의 부엌
이 시대 주부, 지수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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