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뜨강', 드라마 위기대처의 좋은 사례로 남은 까닭

 

웨이브에서 서비스되는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는 2회에서 6회까지의 분량이 빠져 있다. 이에 대한 사유는 '출연자 이슈'로 적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주인공 온달 역할이었던 지수의 학교폭력 논란에 의한 하차를 말하는 대목이다. 결국 지수 대신 나인우가 온달 역할을 7회부터 맡았다.

 

사실 이렇게 출연자까지 교체되면서 드라마가 온전하긴 어렵다. 하지만 <달이 뜨는 강>은 생각보다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시청률도 8%대(닐슨 코리아)를 유지하고 있고, 시청자 반응도 나쁘지 않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첫 번째는 빠른 위기 대처능력이다. 지수의 학교폭력 논란이 터졌을 때 <달이 뜨는 강>은 재빨리 나인우로 출연자 교체를 결정했고, 교체된 분량을 다시 찍어 결방 없이 방영을 이어갔다. 보통의 경우라면 일주일 정도 '결방'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달이 뜨는 강>의 이런 빠른 결정과 행동은 드라마가 위기상황에서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두 번째는 주인공 교체에 따라 총 20부작의 95% 촬영을 마친 작품을 사실상 재촬영해야 하는 부담을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기꺼이 감수하고 희생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지지까지 얻어냈다는 점이다. 사실 지수의 학교폭력 논란은 그의 개인적 사안일 뿐 <달이 뜨는 강>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쪽이었다. 그래도 그 피해를 모두가 감당하겠다는 팀워크와 이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가 이 드라마를 다시 되살려내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세 번째는 그저 남은 분량을 나인우가 소화해내는 것을 넘어, 지수가 출연했던 분량인 1회에서 6회까지의 분량 역시 재촬영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미 1회는 나인우로 대체되어 재촬영된 분량이 웨이브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제작진은 나머지 2회에서 6회까지의 분량도 빠른 시일 내에 서비스가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재촬영에 일부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고 나서는 미담까지 전해졌다.

 

1회에서 6회까지의 재촬영은 사실상 해외 판권 판매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1회가 먼저 재촬영된 이유는 그 도입부에서 북조와 전쟁을 벌이는 순노부 사람들과 온달, 평강의 장면들이 13회의 내용을 먼저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13회 내용을 재촬영 하면서 1회 내용 또한 자연스럽게 보강될 수 있었던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의외의 호재들도 생겼다. 지수를 대체한 나인우가 오히려 온달 역할에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런 평가는 출연자 교체가 만드는 이물감을 빠르게 지워내는 효과를 만들었다. 여기에 마침 불거진 SBS <조선구마사> 사태는 오히려 <달이 뜨는 강>에는 호재가 되었다. 역사왜곡, 문화왜곡의 소지로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자극적인 <조선구마사> 사태의 반대급부로서, 다소 '순한 맛'의 <달이 뜨는 강>이 오히려 가치를 재조명받게 된 것. 이러한 의외의 호재들이 <달이 뜨는 강>이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 오히려 승승장구하게 된 네 번째 이유다.

 

사실 콘텐츠업계만큼 의외의 위기요소들이 많은 분야도 없다. 그래서 전혀 의도치 않은 어떤 위기에 의해 피어나지도 못하고 꺾어지는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빠르고 현명한 대처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기도 하는 게 콘텐츠업계이기도 하다. <달이 뜨는 강>은 그 위기대처의 좋은 사례로 남을 듯하다. 물론 아직 남은 분량들이 있고, 또 재촬영해야하는 부분도 남았지만 현재까지의 흐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들로 이어지고 있다.(사진:KBS)

'조선구마사' 사태, 현 K콘텐츠에 센 예방주사 효과 있다

 

결국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2회 만에 폐지가 결정됐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일파만파 커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대중들이 이 사태를 가볍게 보지 않고 들불처럼 들고 일어섰고, 이들 잠재적 소비자들의 힘은 광고주들과 드라마 협찬사들을 움직였다. 계속 광고 게재를 강행하다가는 자칫 불매운동까지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광고가 20개 가까이 빠져버렸다는 사실은 사실상 드라마 제작은 물론이고 방영조차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걸 말해준다. 폐지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비극으로 끝나버렸지만, 여기서 우리는 제2의 <조선구마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이 비극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도전들이 우리네 K콘텐츠 앞에 현재 펼쳐져 있는 것이며, 나아가 어떤 방향성이 K콘텐츠의 바람직한 길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먼저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촉발된 것이지만, 이제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들부터 PPL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감수가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풍 소품들이 현 중국의 문화공정(전파공정)에 예민해진 우리네 대중들의 역린을 건드린 면이 크지만, 이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제 우리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우리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작은 소품들(PPL 포함)까지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것.

 

<조선구마사>가 어째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거기 등장하는 의복이나 음식 등등의 소품들에 보다 정확한 고증과 감수를 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퓨전사극이나 판타지사극에서 역사왜곡이 거론될 때마다 흔히 "역사가 아닌 상상력으로 그린 허구일 뿐"이라고 하던 그 변명 속에 사태의 불씨가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퓨전이든 판타지이든 그것이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조선 같은 특정 시대의 시공간을 빌려 쓰게 될 때는 (이야기는 허구일 수 있어도) 그 시공간에 담겨진 '생활사'에 대한 고증은 분명히 따라줘야 하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면 조선이라고 해놓고도 중국드라마인지, 일본드라마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구마사> 이전에 박계옥 작가가 쓴 작품인 <철인왕후>가 초반에 그토록 거센 역사왜곡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유야무야 됐던 건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판타지로 현재에서 과거로 날아간 남성이 왕후의 몸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또 제아무리 그것이 코미디를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왕후가 왕에게 끝까지 반말로 일관하는 건 자칫 조선시대라는 시공간을 빌려 쓰는데 대한 무례일 수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중국의 문화공정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고증 없이 마구 쓰인 중국풍 소품들은 고스란히 저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최근 <빈센조>에 등장했던 중국 비빔밥 PPL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저들은 아마도 이런 장면들을 떼어다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봐라 너희들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먹고 입는 게 다 우리 것 아니냐고. 너희들조차 우리 비빔밥을 먹고 있지 않냐고. <철인왕후>나 <조선구마사>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조선은 위아래도 없는 나라라고. 대중들은 이런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싫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줬다.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봐야 하는 건, 현재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다. 넷플릭스나 향후 본격화될 디즈니 같은 서방세계의 글로벌 플랫폼과 중국의 아이치이나 텐센트 같은 글로벌 플랫폼 혹은 거대자본들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 중간에 K콘텐츠가 서 있다. 지금까지는 넷플릭스가 주로 K콘텐츠에 투자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어 그들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우리 작품들을 알렸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아이치이 같은 중국 플랫폼 역시 K콘텐츠에 돈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미국이야 우리와 인접국이 아닌지라 역사나 문화적인 갈등의 소지들이 적지만, 중국은 다르다. 인접국이기 때문에 역사든 문화든 부딪치는 지점이 만들어진다. 특히 중국은 여전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동북공정에 이어 문화공정으로까지 펼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향의 문제는 저들이 자본을 직접 대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시장(중국의 소비자들)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중국향 소재를 채워 넣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변화된 환경을 염두에 두고 지금 현재 벌어진 <조선구마사> 사태를 들여다보면 2회만의 폐지라는 다소 가혹한 결과가 어떤 의미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센 예방주사를 맞은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순수자본만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데다, 우리만의 글로벌 플랫폼을 갖추고 있지 않아 넷플릭스든 아이치이든 해외의 플랫폼을 키우는데 오히려 우리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들이 활용되고 있는 이 형국에서 우리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마저 버린 채 상업적인 선택만을 한 결과가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는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절실하게 통감해야 한다.(사진:SBS)

비전문 분야로 영역 넓힌 설민석, 전문가들 팩트체크에 멈칫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2회 만에 역사왜곡 논란이 터졌고 제작진과 설민석의 사과가 이어졌다. 논란이 터진 건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 '이집트편'의 자문 역할을 맡은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이 방송 직후 SNS에 올린 비판으로 비롯됐다. 

 

그 SNS에서 곽소장은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을 보는데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많다"며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에 저는 정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사실과 풍문을 분명하게 구분해 언급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에 제작진은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 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뒤늦게나마 설민석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류를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것이 제작진 잘못이 아닌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분명히 했고, 나아가 "더 성실하고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위사실 유포 논란이 불거졌다. 설민석이 자신의 유튜브에 "재즈가 초심 잃어 R&B가 탄생했다"고 한 발언이 화근이 됐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배순탁 작가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재즈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초기 로큰롤에 대한 역사를 다룬 원서 한 권이라도 읽어본 적 없는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허위사실유포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설민석이 왜 '무지'에 가까운 영역에까지 손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세계사 왜곡 논란을 사과로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역시 비전공 분야인 음악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발언으로 이어지면서 설민석에 대한 반감이 되레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중들의 실망과 프로그램의 추락한 신뢰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 애초 그 무엇보다 재미있게 세계사를 다루겠다던 취지는 이제 '재미'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보의 정확성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이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전문적인 정보가 교양이 아닌 예능프로그램에도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모로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겨진다. 

 

사실 역사 같은 소재들은 일제강점기의 내용들이 일부 MBC <무한도전>이나 KBS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뤄지기 시작했고, 그 후로는 아예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이나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렇게 된 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나 <어쩌다 어른>, JTBC <차이나는 클라스>처럼 교양의 영역이었던 정보들이 예능으로 들어오고 있는 그 트렌드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이제 막 열리고 있는 교양이 가진 전문적인 정보들의 예능화에서 '팩트'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 면이 있다. 이번 사태는 전문적 영역을 다루는 예능프로그램들이 설민석처럼 역사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를 효과적으로 스토리텔러 혹은 방송인 같은 인물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사실 전문영역도 갖고 있으면서 방송까지 잘하는 인물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예능이 우선 추구하는 재미적 요소를 채워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요구됐던 것.

 

설민석 같은 스토리텔러가 필요한 부분은 충분히 공감되는 면이 있지만, 여기에는 선결조건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전문가의 자문, 감수가 우선되어야 하고, 제작진도 재미와 정확한 팩트 사이에서 우선적으로 팩트를 추구해야 하는 이러한 방송의 성격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방송은 제작단계에서 자문도 필요하지만, 다 만들어진 방송의 방영 전 감수 또한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적으로 스토리텔러가 팩트를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만큼, 그것을 제작진이 재미를 위한 왜곡 없이 제대로 담아냈는가에 대한 사전 감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사실은 그 자문의 내용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문이라고 부르지만, 제작진이 그 내용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꺼내 활용한다면 제대로 된 자문의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까지 내걸며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스토리텔러와, 역사 같은 전문적 영역을 소재로 가져온 것에 대한 제작진의 남다른 책임감이 요구된다. 

 

교양이 예능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건 역사 같은 소재만이 아니다. 방송의 리얼리티 경향은 전문적인 수준까지 요구되고 있어 다양한 전문정보들이 방송에 들어올 때 그 정확성을 체크하는 감수와 자문 그리고 편집의 문제는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을 통해 방송가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사진:tvN)

'철인왕후', 굳이 유쾌한 코미디를 길티 플레져로 만들 필요는 없다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는 2회 만에 천국과 지옥을 겪었다. 첫 회에 8%(닐슨 코리아)가 넘는 시청률을 내면서 일찌감치 대박드라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듯 했지만 2회가 방영된 이후 갖가지 논란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혐한, 역사왜곡, 명예훼손에 이어 성인지 감수성 부족 논란까지 겹쳤다. 방통위에 민원이 쏟아졌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랐다. 

 

결국 제작진은 "건강한 웃음을 드리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불편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사과 했고, 신정왕후가 '온갖 미신을 믿는' 인물로 묘사됐다며 강력대응을 경고한 풍양조씨 종친회의 입장이 나온 후, '풍안조씨', '안송김씨'로 이름을 바꿨다. 또 다소 과한 표현으로 문제를 촉발시킨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찌라시네"라는 대사는 다시보기에서는 삭제했다.

 

사실 사극에서 역사왜곡 논란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허구와 역사 사이의 갈등이다. 사극은 상상력이 들어간 허구이니 실제 역사 그 자체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입장과, 그럼에도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할 때는 자칫 그 상상력의 허구를 진짜로 오인하게 할 수 있다며 왜곡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이 부딪친다.

 

<철인왕후>는 그 형식적 틀만 보면 당연히 허구일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긴 하지만, 현대에서 과거로 날아가 그것도 남성이 여성의 몸으로 들어감으로써 발생하는 코미디를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현대의 바람둥이 장봉환(최진혁)이 하필이면 조선시대 중전 김소용(신혜선)의 몸으로 들어와 벌어지는 궁궐에서의 소동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중전이 제대로 옷도 갖춰 입지 않은 채 맨발로 궁궐을 뛰어 다니는 모습이 어찌 허구가 아닐 수 있나. 

 

이 허구는 그래서 사극이 주로 보여주던 '엄숙'한 분위기를 현재의 관점에서 비틀거나 희화화함으로써 웃음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흔히 "지금이 조선시대야?"라고 묻는 시대착오적 상황들을 실제 조선으로 날아간 인물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풍자적으로 그려내는 것. 그래서 여성이(그것도 궁궐에서 살아가는 중전이나 후궁 같은) 그 곳에서 해야 하는 불편한 억압들이나 차별적인 요소들을 뒤틀어낼 때 만들어지는 카타르시스 같은 걸 작품은 의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또 그 뒤틀어내는 부분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분명히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철종 같은 실재 역사 속 소재나 인물이 등장한다는 건 상상력의 허용에 있어 불편한 지점을 만든다. 그래서 만일 이런 다소 과감한 선택들이 아니라 조선만을 배경으로 하고 모든 걸 허구로 채웠다면 제작진이 얘기한대로 '건강한 웃음'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들은 <철인왕후>가 주는 재미와 더불어 실제 역사를 가져온 부분에서 생겨나는 불편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신혜선의 인생연기가 들어간 코미디는 빵빵 터지고, 그래서 이 원맨쇼를 마음 편하게 즐기고 싶지만 정반대로 터져 나온 논란들 속에서 과연 이렇게 즐기며 봐도 되나 하는 불편함이 생겨난다. 

 

흔히들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콘텐츠를 이른바 '길티 플레져'라고 부른다. 물론 길티 플레져에는 자신이 그런 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죄의식을 갖는 심리가 들어 있다. <철인왕후>가 사전에 이런 논란의 소지들을 세심하게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시청자들에게 괜한 '길티 플레져'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불편의 요소들은 바꾸거나 지워내는 편이 시청자들을 위한 일은 아닐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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