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 오해가 풀려도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tvN <또 오해영>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건 오해였던가. 그저 발랄하게만 느껴졌던 <또 오해영>에게서 진중한 비극의 냄새가 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가녀린 존재로서의 인간의 운명이 그려내는 고통 같은 것이 배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면 분명한 악역이 존재해야하는 게 맞다. 하지만 <또 오해영>에는 악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냥 오해영(서현진)과 늘 비교되는 존재로 그녀를 괴롭게 만든 예쁜 오해영(전혜빈, 이하 전해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해영은 악역이라기보다는 밉상에 가깝다.

 

그녀는 이른바 예쁜 척 하는그런 캐릭터로 보인다. 가만있어도 남자들이 모여들고 늘 주목받는 존재이며, 사회생활에서도 부족함 없이 잘 나가는 인물이다. 이런 존재는 드라마 여자 캐릭터로서는 밉상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어딘지 자기중심적인 캐릭터인데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남자주인공을 현혹(?)시키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혜영은 도경(에릭)이 오해영의 남자친구였던 태진(이재윤)을 파산시킨 것을 그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대목은 그녀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래도 오해영에게 친구라고 늘 밝은 얼굴로 다가가곤 했던 그녀가 아닌가. 하지만 그녀와 도경의 불행을 알면서도 전혜영은 자신의 입장만을 드러낸다.

 

그래서 밉상이지만 그렇다고 전혜영이 악의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 역시 겉으로는 늘 밝은 표정을 짓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도경의 어머니의 노골적인 반대는 전혜영이 도경과의 결혼을 포기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살갑게 챙겨주는 가족이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라고 있는 장회장(강남길)은 도경의 엄마와 사귀면서 전혜영에게 더 이상 보지 말자고 말한다. 또한 도경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도. 전혜영 역시 의지할 데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 오해영>의 갈등이 선명한 악역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인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점은 이 드라마를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 제목과 인물의 이름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오해가 얼마나 인간을 비극으로 몰아가는가를 담고 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건 운명 앞에 스러지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다.

 

전혜영이 결혼식 당일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도경은 깊은 오해를 했고 분노했다. 그래서 전혜영이 새로 사귄다는 남자 이야기를 듣고 그 남자를 파산시켰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그 남자, 태진은 전혜영의 남자가 아니라 오해영의 남자였던 것. 그래서 태진 역시 결혼식 전날 오해영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파혼 선언을 하고 구치소에 들어간다.

 

오해영은 태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절망했지만 그것 역시 오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 도경은 자신이 저지른 원죄 때문에 오해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사랑이 싹텄지만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해영은 도경의 접근을 의도적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태진 역시 그렇게 오해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똑같은 이름 때문에 생겨난 오해라는 걸 그도 오해영도 알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오해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래서 오해영도 전혜영도 또 도경도 태진도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건 이 비극적 상황이 오해가 풀린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해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 과정에 보였던 많은 행동들이 그 진심을 의심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해영은 여전히 도경이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의 발단이 전혜영을 그토록 사랑했고 그래서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전혜영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도경과 태진은 어쩌다 이 오해로 빚어진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악역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나 한계 앞에서 비극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또 오해영>이 보여주는 갈등은 훨씬 근원적인 면이 있다.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인물들은 그 작은 오해로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존재로서 고통 받는다. 그걸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 오해영>이 그리스 비극이 가진 힘을 닮은 구석이다.

 

그저 작은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했던 <또 오해영>은 그래서 이제 인간의 운명을 슬쩍 들여다보는 비극의 틀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를 그저 달달한 남녀 관계를 다루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만 치부했던 것 역시 오해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국수의 신>, 고구마는 가득한데 사이다는 언제쯤?

 

KBS <국수의 신>은 한 마디로 극성이 세다. 인물마다 자신의 욕망이 뚜렷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딪침이 많다. 갈등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죽고, 폭력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지상파 드라마지만 심지어 성폭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성적 유혹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마스터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1,2회에 김길도(조재현)라는 악마의 탄생을 촘촘히 그려내면서 네 사람이 그의 손에 죽고 한 명은 식물인간이 된다. 그런데 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아버지고 다른 한 사람은 장인이며 무명의 부모는 아이의 눈앞에서 불타 죽었다. 이 정도로 세다. 목적을 위해 존속살인은 물론이고 청부, 아이도 마다않는 인간이다.

 

만일 이 드라마가 연출을 세련되게 만들지 않았다면 단박에 막장의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 정도의 자극을 갖고도 막장 논란이 안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연출에 공을 들였다. 어쨌든 이렇게 강력하게 악마 김길도를 세운 덕에 이 드라마는 복수극의 명분을 얻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무명이 친구인 태하(이상엽)와 재영(고길용)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여경(정유미)을 만나는 건 이 복수극을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들은 함께 훗날 복수극으로 도와주거나 대결하게 되는 운명을 갖게 될 인물들이다.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김길도와 대결하는 건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구도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밝혀진 바대로 여경의 어머니를 죽인 자는 태하의 아버지다. 태하는 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김길도는 그런 태하에게 부하가 될 것을 권유했다.

 

복수의 대상인 김길도가 장인인 고대천을 식물인간 만들고 서울 강남에 짓는 궁락원은 무명과 그 친구들이 부숴나갈 악마의 소굴 같은 곳이다. 무명이는 어떻게든 궁락원으로 들어가 안으로부터 그 소굴을 무너뜨려 김길도에게 복수하려 한다. 들어가는 과정이나 그 속에서 복수하는 과정은 결국 국수 만드는 비법 대결 같은 틀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이야기가 촘촘하고 전개도 빠르며 극적인 상황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시청률은 응답하지 않는 걸까. 화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껴지는 이상함이다. 인물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정작 보는 마음은 무덤덤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이런 식의 복수극과 음식 소재의 대결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디서 많이 봤던 기시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드라마 시작부터 나왔듯 <국수의 신><제빵왕 김탁구>가 만들어낸 음식 복수극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가 지금까지 너무 게임처럼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아귀가 맞고 사건은 빠른 속도로 이어지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아픔 같은 감정들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연출이 이야기 전개는 세련되게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거기에 잘 얹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복수심은 알겠지만 다양한 감정들은 잘 묻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건은 실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게임을 하듯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또한 연기가 몰입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만화 원작이 갖고 있는 그 만화적인 느낌을 드라마로 가져오면서 좀 더 현실성을 바탕에 깔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무명은 그 당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쳐다보는 것조차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차분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보다 본격적인 복수극을 위한 하나의 포석일 수 있다. 실제로 이제 <국수의 신>은 무명이 궁락원에 들어가고 여경이 검사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등 본격적인 복수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이 너무 길었다는 느낌이 짙다.

 

문제가 무엇이든 드라마에 현실적인 느낌을 좀 더 실어내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사람을 몇 명씩 죽인다고 해도 시원찮은 반응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자극적인 장면보다 더 강력한 건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공감이 아닐까. 이 불쌍한 청춘들이 그들을 짓누르는 어른들의 세계를 철저히 부숴버리는 그런 사이다는 언제쯤 등장할까.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강을 건너는 이들의 사랑

 

무엇이 이런 눈물 폭탄을 터뜨린 걸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상영되는 영화관은 의외의 웃음으로 시작해 차츰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오열로 이어졌다. 참고 참던 눈물이 북받쳐 오른 객석에서는 여기저기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사진출처: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입소문이 난 탓인지 독립영화치고 주말 조조의 극장은 거의 가득 메워져 있었고, 그 곳을 찾은 관객들은 이미 눈물을 흘릴 것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건 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가 함께 산 세월만 76년이다. 그 긴 세월에 더깨처럼 쌓인 두 사람의 사랑과 정의 세월은 마지막까지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그 연세에도 낙엽이 떨어지면 서로에게 낙엽을 던지며, 눈이 오면 눈을 던지며 또 물을 서로 뿌리며 장난을 치던 두 사람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혼자 화장실 가기가 무서운 할머니를 위해 문 밖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할머니가 아프다던 무릎에 입으로 호 하고 불어주던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아끼는 모습이었다. 밭은 기침을 해대는 자신 때문에 잠 못 들다 겨우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새벽녘 문득 잠에서 깬 할아버지가 가만히 쓰다듬는 모습에서는 무수한 세월동안 할머니를 아껴온 그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랬던 님이 먼저 강을 건너가려 한다. 할머니의 바짝 마른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는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운 영화지만 그렇다고 눈물샘만을 자극하는 신파는 아니다. 거기에는 마치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를 보는듯한 청춘 멜로와 다를 바 없는 애틋함이 있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관조적인 시선 또한 들어 있다.

 

관객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그래서 복합적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누구나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부모님에 대한 불효자들로서의 새삼스런 후회이기도 하며, 또한 그것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똑같은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공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의 위대함에 대한 깨달음의 눈물이다. 고인이 된 할아버지의 산소를 떠나며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할머니는 불쌍해서 어쩌나하고 오열하며 주저앉는다. “내가 아니면 누가 기억해줄까라는 할머니의 넋두리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또한 그것은 어쩌면 순간에 머물다 가는 가녀린 인간의 운명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영원히 살아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을 말해준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 그 사랑 속에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고 있을 것이니. 강을 건너는 이들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엔젤아이즈>,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는 이유

 

SBS 주말드라마 <엔젤아이즈>의 첫 회 시청률은 6.3%(닐슨)로 미미했다. 하지만 일주일마다 <엔젤아이즈>2%씩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다음주 8.8%를 기록한데 이어 그 다음 주에는 무려 11%를 넘어섰다. 3주만에 두 배 가까이 시청률이 급상승한 것. 도대체 <엔젤아이즈>의 그 무엇이 이런 급부상을 만들어냈을까.

 

'엔젤아이즈(사진출처:SBS)'

처음 시청률이 미미했던 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SBS 주말드라마 자체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기도 했다. 주중드라마는 SBS가 단연 선두를 이끌고 있지만 주말드라마는 KBSMBC에 밀려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SBS 주말드라마는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막장 없는 착한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가족드라마 틀을 과감히 벗어나겠다는 것.

 

<엔젤아이즈>는 주말드라마 답지 않게 본격 멜로에 119 구급대원, 의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적 성격을 접목했다. 시작부터 보여준 터널 사고 장면은 블록버스터의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 주말드라마로서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멜로에 초점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엔젤아이즈>는 장르물적 성격을 떼어놓고 보면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를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첫 사랑이 있고, 엇갈린 운명에 의해 헤어지고 12년 후 다시 만나 과거 추억의 장소를 더듬으며 그 때의 사랑을 되새기는 시퀀스들이 그렇다. 결국 남녀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12년이라는 공백이 만들어낸 두 사람의 다른 상황은 이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어린 시절 겪은 사건들 배후에는 이들 부모들의 숨겨진 비밀이 놓여져 있어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에도 불구하고 <엔젤아이즈>는 여기에 현재의 트렌디한 드라마적 설정들과 새로운 주제의식 등을 덧붙임으로써 훨씬 풍부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거기에는 119 구급대원과 의사라는 직업의 디테일들이 에피소드로 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적인 세련됨이 있고, 이들 직업들이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 머물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동주(이상윤)의 어머니 유정화(김여진)는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가족애 그 이상의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사고로 눈이 먼 어린 수완(남지현)을 가족처럼 끌어안고 결국 그녀에게 눈을 주고 저 세상으로 떠난 인물이다. 가족과 멜로를 뛰어넘는 이러한 휴머니즘은 드라마를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인 공감으로 이끌어낸다. 한편 수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유정화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동주를 자식처럼 키워내는 수완의 아버지 윤재범(정진영)도 복합적인 인물이다. 사적인 선택과 공적인 죄책감이 뒤섞인.

 

이처럼 <엔젤아이즈>는 평범할 수 있는 사적인 멜로의 틀을 소방관과 의사라는 직업적인 영역을 투영시켜 사회적 멜로로 확장시킨다. 아마도 소방관과 응급실 의사라는 위급상황이 주는 인물들의 절절함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희구하게 된 생명에 대한 포기 없는 노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먼저 간 유정화의 묘소 앞에서 그녀가 주고 간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수완의 모습은 타인이라도 가족처럼 눈물 흘리게 되는 이번 참사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엔젤아이즈>라는 드라마 한 편이 이 거대한 비극을 온전히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전해주는 타인에 대한 휴머니즘과 확장된 가족애는 이번 비극을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기게 해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귀한 죽음은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준다. 그 눈은 이제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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