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재난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건

 

<터널>이라는 영화의 예고를 잠깐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가질 지도 모른다. 무너진 터널에 갇힌 사람의 처절한 사투를 담은 영화라니! 그잖아도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 이런 선입견은 영화 <터널>에는 하나의 커다란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단언컨대 <터널>은 그런 퍽퍽한 고구마 같은 영화가 아니다.

 

사진출처:영화<터널>

물론 <괴물>에서부터 현재의 <부산행>까지 관통하는 우리네 재난 영화의 공식과 메시지가 <터널>에도 여전히 깔려 있다. 재난 상황보다 우리를 더 절망적으로 만들어내는 콘트롤 타워의 부재와 선정적인 언론,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를 저버리는 공직자들, 생존자의 구출보다는 자신이 언론에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 등등.

 

하지만 <터널>은 흥미롭게도 이러한 재난 영화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절망적 현실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재난 영화에서 터널에 갇힌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또한 그렇게 갇힌 생존자를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119 대원들의 이야기도 그 절실함과 간절함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 곳에서도 역시 훈훈한 웃음이 피어나고 유머 역시 멈추지 않는다. <터널>에 갇힌 답답한 이야기? 오히려 <터널>은 그런 폐쇄적인 공간에 갇힌 이를 구해내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웃음을 멈추지 않는 영화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매몰된 터널에 갇힌 주인공 정수(하정우)와 그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소방대원 대경(오달수)의 독특한 캐릭터 덕분이다. 정수는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다. 처음 터널이 무너져 내리고 간신히 살아남아 스마트폰으로 119와 연결됐을 때 그는 당연하다는 듯 언제 자신을 구하러 올 거냐는 낙관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 구조작업은 의외로 지난한 사투로 돌변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절망하기보다는 그래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대경도 마찬가지다. 그는 구조작업에서는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며 반드시 정수를 구하겠다고 단언한다. 기자들이 취재를 명목으로 특종만을 노릴 때, 정치인들이 도룡뇽 하나 때문에 건설이 멈춰져 입은 경제적 손실 이야기를 하고 터널 붕괴로 멈춰버린 제2 터널 공사 재개를 얘기할 때, 대경만은 거기 묻혀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이처럼 답답한 터널 속에서도 훈훈한 웃음이 피어나올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은 하정우와 오달수라는 배우들의 저력이 한 몫을 차지한다. 이미 <테러 라이브>에서 두 시간 가까이 그 얼굴만 쳐다봐도 쫄깃한 긴장감과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줬던 하정우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물론 신스틸러의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국민배우가 되어가는 오달수의 웃음과 감동을 넘나드는 천연덕스런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결코 시원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더위처럼 실로 <터널> 같은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 <터널>은 그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터널을 빠져나오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무더위에 답답할 것 같다는 건 선입견이다. 오히려 무더위 때문에라도 그 답답함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를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영화다

<삼시세끼>가 무더위에 대처하는 방법

 

겨울철 혹한이 예능의 최고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미 <무한도전>이나 <12>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른바 혹한기 대비 캠프라는 이름으로 계곡 얼음물을 깨고 입수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조차 소름 돋게 만들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안겼다. 게다가 추위에 오그라든 모습들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기도 했으니 혹한이 예능의 최고 아이템이 될밖에.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혹한만큼 무더위 역시 예능에서 좋은 아이템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를테면 에어콘이 안 되는 자동차로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복불복을 했던 <12>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더위 소재의 활용은 어딘지 자연스럽지가 않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억지로 웃음을 만들기 위해 무더위라는 소재를 극대화하는 식의 느낌.

 

하지만 <삼시세끼>가 무더위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저 시골에서 삼시 세끼를 챙겨먹는 것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게임을 통해 무더위를 소재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쩔 수 없이 덥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뿐이다. 여기서 무더위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건 유해진이나 차승원 같은 출연자다. 그들은 너무 더워 힘겨워진 그 상황을 오히려 유머로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유해진이 부대찌개를 먹다가 갑자기 역시 여름엔 부대찌개지라고 한 말은 이열치열의 상황을 드러내주며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가 웃음의 소재로 활용된다. 그러더니 갑자기 차승원의 제안으로 합판으로 급조한 탁구대에서 새벽까지 탁구를 치는 이른바 탁구 중독에 빠져버린다. 그러면서도 나오는 유머는 역시 여름엔 탁구라는 농담이다. 더워서 움직이기도 힘들만도 한데 뜨거운 부대찌개를 먹고 탁구를 치며 땀을 흘리는 방식. 그러면서 무더위를 농담의 소재로 던져 웃음으로 바꾸는 것이 <삼시세끼> 식구들의 여름나는 법이다.

 

너무 더워 돈 벌어 에어컨 하나 장만하자는 손호준이 예전에는 에어컨이 없어 대야에 얼음물 담아 발 담그던 이야기를 하자 유해진은 엉뚱하게도 더운 여름에는 에어컨이라며 자신의 추억을 농담으로 이야기해 웃음을 준다. 유해진은 한낮 지옥 같은 고구마 캐기 작업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농담을 던진다. 그걸 차승원은 옆에서 척척 받아주며 콤비가 되어준다. 제 아무리 더워도 또 강도 높은 노동에 허리가 나가는 듯 아파도 이런 농담들은 그들을 웃게 해준다.

 

물론 이런 농담들이 시청자들에게 유발하는 폭소가 아니라 미소에 가깝다. 아재개그가 그리 재밌진 않아도 피실피실 웃음이 풀어져 나오게 만들 듯이, 이렇게 극적 설정이 없어 빵빵 터지진 않아도 자연스러운 농담들은 시청자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무더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땀을 그대로 보여주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을 통해 그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 후 마치 보상처럼 마트의 시원한 쇼핑을 보여준다.

 

그리고 선운산 계곡으로의 소풍이나 차승원이 뚝딱 해주는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는 어쩌면 도시인들에게는 꿈꾸고픈 피서로 다가온다. 그건 에어컨 바람처럼 차갑진 않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있는 그대로의 더위와 땀과 노동을 힘겨워도 웃으며 해낸 그들만이 더욱 실감할 시원함 같은 것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삼시세끼>가 무더위에 대처하는 방식은 그리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해진, 차승원, 손호준, 남주혁이라는 인물들이 서로를 토닥이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좋은 피서 방식도 없어 보인다

<무한도전> 귀곡성, 패러디도 공포도 역대급이었던 까닭

 

이건 또 다른 역대급 <무한도전>미션의 탄생이다. 여름철이 되면 일종의 공포 체험미션은 방송사마다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된 지 오래다. 놀이공원에 가면 있는 귀신의 집에 들어가거나 흉가 체험을 하는 등의 미션은 오싹한 소름과 함께 빵빵 터지는 웃음이 공존하는 여름철 대박 아이템 중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번 <무한도전>귀곡성특집은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그 시작은 영화 <곡성>의 패러디였다. <곡성>의 캐릭터들 분장을 한 출연자들은 그래서 이것이 일종의 상황극일 것이라 착각할 만했다. 이 점은 다소 압박감을 가질 수 있는 출연자들이 영화 속 명대사들을 툭툭 던지고, 캐릭터 흉내를 내는 것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줬다.

 

퀴즈로 문제를 맞춰 귀신(?)을 얻는 스튜디오 게임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딘지 으스스한 스튜디오 분위기에 그들이 앉은 책상 밑에서 불쑥 귀신이 튀어나오는 설정은 이제 시작도 하지 않은 이 귀곡성특집의 만만찮음의 복선이었지만 그래도 공포 그 자체보다는 웃음이 더 컸다. 이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 어느새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귀곡성특집의 미끼를 물어버렸다는 걸 잘 알 수 없었다.

 

만일 제작진이 <대장금> 세트장에 직접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설치했다면 어땠을까. 그건 아마도 이번 귀곡성특집만큼의 공포도 또 재미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그 미션이 가끔 <무한도전>의 센 미션들에서 불거져 나오기도 하는 제작진의 악취미처럼 오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트를 꾸미는 걸 온전히 출연자들의 몫으로 넘겨버리자 이런 논란의 소지들은 원천적으로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위에 올려진 것이 출연자들 사이의 오랜 시간 누적되어 쌓여진 캐릭터들이다. 늘 아이들처럼 각을 세우던 출연자들이 어디 한 번 당해봐라 하며 자신이 꾸미는 세트에 무시무시한 장치들을 해놓게 된 것. 하하는 그 악동 같은 캐릭터 그대로 만든 자신도 결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역대급 귀신의 집을 마련해 놓았다.

 

공포 특집에서 역시 가장 빛을 발한 건 정준하였다. 그가 어떤 리액션을 보여줄 것인가는 출연자들 역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산만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놀라 자빠지고 진심이 묻어난 그 공포 가득한 리액션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정준하만의 영역으로 이미 자리한 지 오래다. 그리고 정준하는 실제로 모두를 감동시키는(?) 리액션을 보여줬다.

 

천정에서 쑥 내려오는 귀신 장치 앞에서 지나치지 못하고 10여 분을 어쩔 줄 모른 채 서성대는 모습이나, 또 내려오려고 하자 때릴 지도 모른다MC 민지의 랩을 쏟아내는 모습은 특히 공포 체험에서 늘 빛을 발하던 그의 리액션만의 묘미를 잘 보여주었다. 유재석이 말하듯 그건 미리 설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실제 상황으로서 진심이 묻어나기 때문에 생겨나는 리액션. 땀을 뻘뻘 흘리며 난 안되겠어라 자조하는 모습은 그것이 진짜기 때문에 시청자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이번 <무한도전> 귀곡성 특집을 역대급 공포체험으로 만든 건 영화 <곡성>이 그러했듯이 슬쩍 상황극 패러디처럼 출연자들을 끌고 들어와 미끼를 물게 만들고 그들 스스로 서로를 공포에 빠뜨리겠다는 장난기 어린 치기를 끄집어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완성은 그 안에 들어가 설정이 아닌 진심으로 리액션을 보여준 정준하로 완성되었다.

 

그러고 보면 <무한도전> 제작진은 서로가 서로를 공포 속에 빠뜨리는 미끼를 던진 것뿐이고, 출연자들은 그걸 확 물어버린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 <곡성>의 패러디는 물론이고 역대급 공포 체험까지 마련했으니 <무한도전>으로서는 한 번에 두 마리 물고기를 낚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정준하 같은 대어로. “히트다 히트란 유행어에 딱 어울리는 결과다.

<아는 형님>, 이수근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만일 JTBC <아는 형님>에 이수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이외에도 만만찮은 출연자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심심한 예능이 되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원탑으로 불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수근이다. 그는 학교 콘셉트로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아는 형님>에서 독보적인 드립을 연속으로 날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상황극을 하거나 개인기를 선보인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애초에 강호동을 중심으로 그 존재감이 느껴졌던 <아는 형님>은 점차 그 무게중심이 이수근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물론 이수근은 강호동과 오랜 콤비를 맞춰오며 그가 어떻게 하면 돋보이는가를 몸에 익혀왔고, 그래서인지 <아는 형님>에서도 톰과 제리 같은 치고 박는 코미디언 콤비를 선보이곤 했다. 때려서 웃기는 강호동이 있다면 그걸 맞아서 웃기게 만들어내는 이수근이 있다. 만일 이수근이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강호동의 다소 가학성이 있는 개그는 자칫 불편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상민을 현모양처라고 소개하고는 현재 모양이 처량해서라고 드립을 치고, 씨스타 보라가 예전에 방송을 찍고도 통편집 되어 화난 모습을 보이자 JTBC가 선물을 준비했다며 “1년치 신문 구독권이라고 툭툭 던지는 모습은 어깨에 힘을 뺀 타자가 바로 그것 때문에 연타석 안타를 쳐내는 모습을 그려낸다. 반장으로 지목되어 나선 이수근이 방송 분량이 거의 없어 고민이던 김영철에게 북한 드립을 시켜 주목받게 하고, 민경훈에게 계속해서 뻥을 쳐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장면들 역시 그가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것들이다.

 

강호동과 유독 프로그램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이수근은 마치 그에게 묻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과거 <12> 시절 이수근이 강호동과의 케미로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고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또 <신서유기>에서도 강호동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아는 형님>을 보면 오히려 이수근에 강호동이 의지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사실 도박 사건으로 휴지기를 가졌지만 이수근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여전히 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반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건 이수근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이렇게 된 건 이수근이 보여주는 이른바 웃음의 진정성때문이다. 사과하고 사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일이다. 그래서 이수근은 결국 진정으로 사죄하는 건 대중들에게 큰 웃음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해오곤 했다.

 

결국 예능인이 할 수 있는 진심어린 속내의 표현이란 말보다는 직접 프로그램에서 온 몸을 던져 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일일 것이다. 웃기기 위해서는 제 몸을 망가뜨리는 일쯤은 언제든 서슴없이 해온 그가 아닌가. <아는 형님>은 그런 그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호불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웃음에 대한 그 누구보다 절실한 모습을 통해 조금씩 호감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 박수 받을 일이다. 예능인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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