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하지원과 윤계상의 음식을 통한 마음 특히 먹먹한 이유

 

바다식당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문차영이 찾아왔던 그 곳에서 이강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쏟았다. 늘 열쇠가 놓여있던 곳에서 열쇠를 찾아 식당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이강(윤계상)의 기억에도 불이 켜졌다.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맛나게도 먹었던 기억.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문차영(하지원)에게도 추억이 돋아난다. 요리를 직접 한다는 이강의 말에 그 어린 시절 행복했던 맛이 떠올랐을 수도.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바다식당에서 두 사람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차영은 사고로 머리를 다쳐 미각을 잃은 상태였다.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문차영은 그러나 마치 미각을 다시 찾기나 했다는 듯이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이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동생한테서 MRI사진이랑 진료기록 받았어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무 식당이나 그냥 데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말에는 이강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문차영은 다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문차영에게 이강은 어렸을 때 그랬듯이 휴지를 건넸고, 문차영은 “너무 행복해서 그래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자꾸 눈물이 나요.”라고 그 어린 시절 했던 그 말은 다시 했다. 그 말은 이강에게 오래도록 지워져 있던 기억 하나를 끌어올렸다. 문차영에게 바다식당에 온 적이 있냐고 물었고 자신을 아냐고 물었다. 문차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쩌면 <초콜릿>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궁극적인 지점일 것이었다. 어린 시절 첫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다시 재회했지만 그를 알아차리는 문차영과 달리 기억을 못하는 이강. 그렇게 서로 엇나간 운명 속에서 지내다 결국 다시 그 첫 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떠올린 기억.

 

이것은 <초콜릿>이 다루고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와도 딱 맞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가 아닐 수 없다. 그걸 매개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음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비록 배고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내 일처럼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바다식당을 떠나 저 현실을 떠돌며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들을 겪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이강은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가 건네준 초콜릿으로 문차영은 살아남았지만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이 들어 다시 이강을 만났지만 그의 친구 권민성(유태오)의 구애로 운명이 엇나갔고 권민성은 사망했다. 문차영은 그 상처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동 식당에서 일하며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듯.

 

이강은 거성재단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지만 후계를 두고 벌어지는 이준(장승조)과의 대결과 그를 밀어내려는 이준의 부모들 속에서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바다식당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그 행복했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이강은 손까지 떨리게 되자 결국 호스피스 병원으로 좌천되어 내려오게 된다.

 

이렇게 현실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다시 바다식당에서 음식을 마주한 채 서로를 기억해낸다는 설정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미각조차 잃어버린 요리사 문차영이 이강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너무 맛있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음식이 그저 맛과 같은 감각 그 이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음식을 통해 그는 이강의 마음을 느낀 것이고 그 마음이 너무 행복했던 것.

 

이건 그간 <초콜릿>이 담아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음식을 매개로 하고 있는 이유를 드러낸다. 너무나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 건넨 음식 하나가 어떤 위로와 위안을 넘어 힘을 줄 수 있는 건 단지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거기 담긴 음식 만드는 이의 마음 때문이라는 걸 <초콜릿>은 음식을 마주한 두 사람의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사진:JTBC)

‘초콜릿’ 하지원의 생일과 윤계상의 기일에 담긴 뜻

 

“엄마 제사는 늘 민성이가 준비해줬는데, 이젠 민성이가 없어. 그냥 우리끼리 한 잔 해. 엄마 좋아하는 새우깡 안주 해서. 좀 답답할 거 같아서 야외로 나왔는데 괜찮지?” 이강(윤계상)은 엄마의 기일에 어느 다리 위에 앉아 소주를 따라놓는다. 무덤조차 하다못해 납골묘조차 남기지 않은 거성재단 사람들 때문에 이강은 엄마의 기일에 찾아갈 곳이 없다. 그나마 친구였던 민성(유태오)이 늘 제사를 챙겨줬지만, 그 역시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렸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덩그러니 남아 술잔을 채우는 그 마음은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를 발견한 문차영(하지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자 이강은 일 끝났으면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한다. 술잔이 놓인 쪽에 문차영이 앉으려 하자 이강은 “여긴 우리 엄마자리”라며 반대쪽 옆에 앉으라 한다. 몸도 안 좋은데 오늘은 물을 마시라며 물을 따라준 이강은 문차영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다신 아프지 말아요. 특히 생일엔.”이라 말한다. 카메라는 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왼편에는 생일을 맞은 문차영이, 오른쪽에는 기일을 맞은 윤계상이 그리고 그 오른 쪽에는 엄마의 술잔이 놓여있다.

 

이 한 장면에는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문차영의 생일과 이강이 맞은 기일이 같은 건, 그들이 같은 날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강의 어머니는 그 날 사망했고, 생일을 맞아 그 곳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사고를 당한 문차영은 이강의 어머니가 준 초콜릿 하나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 날은 이강에게도 문차영에게도 상처로 남은 날이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생일날 맞은 비극으로 문차영은 그 날만 되면 그 때의 상처와 고통이 떠오르고, 기일이지만 찾아갈 무덤조차 없어 이강은 아무 곳에서나 소주잔을 채운다.

 

그런데 모두 같은 날 상처 입은 두 사람은 바로 그 상처 때문에 타인의 상처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이강은 의사로서 어떻게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거성재단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사지로 내몰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결국 손을 떨게 된 이강은 지방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좌천되어 내려온다. 문차영은 요리사가 되어 자신의 요리를 통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주려 애쓴다. 자식에게 짜장면집에서 버려져 매번 그 곳을 찾아가는 할아버지에게 번번이 짜장면을 사주고, 자식까지 버리고 재가해 불행하게 살아가는 엄마에게 생일이라며 편지에 선물을 전하려 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아이를 보듬어준다. 그들은 아프고 상처 입었지만, 그래서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건 그 상처 입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버려져 매번 짜장면집을 찾아갔던 할아버지는 죽으면서도 자식을 걱정한다. 자기는 너무 행복하게 잘 지냈다며 죄책감 같은 것 같지 말고 살라고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그 엄마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한다. 정작 아이는 얼마 살 날이 남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아픈 이들이 상처 입은 이들은 위로한다는 건 그들이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여기는 그들은 그래서 그 고통 앞에서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을 돕고 그것으로 자신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강의 사람을 고치는 의사로서의 삶도 문차영의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서의 삶도 그런 의미를 갖는다. 결국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상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살아간다. 사랑이란 결국 그런 상처들을 서로 보듬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네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이강과 문차영은 그렇게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본다. 술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두 사람을 엮어주는 이강의 엄마가 받아놓은 빈 잔이 놓여 있다. 이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이상하게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가슴 한 구석에 잔잔한 파문 같은 걸 만드는 건 그 한 장면에 우리네 삶의 비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죽음, 상처, 사랑, 위로 같은.(사진:JTBC)

‘초콜릿’, 죽을 듯한 삶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밥 더 줄까? 밥 갖고 온다. 점심때도 밥 먹으러와 점심 때 오면 나가 초코 샤샤 만들어 줄테니께. 나도 요리사여. 배고프면 아무 때나 와. 돈 없어도 되니께. 아무 걱정 말고.” 배고픈 소녀에게 상다리 부러지게 밥 한 상 차려 준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오디션을 봐야 한다며 밥을 제대로 못먹게 한 엄마 때문에 배가 고팠던 소녀는 그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맛있었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바로 그 소녀가 먹었고 소년이 챙겨줬던 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한 끼가 줬던 행복감을 잊지 못하던 소녀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엄마를 잃고 자신 또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지만 요리사가 됐다. 요리사가 된 문차영(하지원)은 그래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자신이 그 밥 한 끼를 통해 가졌던 큰 위로와 행복감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다.

 

소녀를 위해 팔을 데여가면서까지 초코 샤샤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거성재단 한용설(강부자) 이사장의 손자가 되어 그 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성병원 뇌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른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거성재단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그를 내치려는 이준(장승조)의 부모들 때문에 심지어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던 이강(윤계상)은 그 전쟁터에서 한 아이가 폭탄이 터져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문차영은 요리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강은 거성재단 이사장의 손자로 거성병원의 의사가 됐지만 그건 자신이 하고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거성가로 들어온 뒤 삼풍백화점 붕괴로 허망하게 사망했다. 이강 역시 엄마와 꿈이 같았었지만 이제 거성가에 살아남기 위해 의사가 되어 매일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간다.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 명쾌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향후 일어날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한 것들이다.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 만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이 문차영이 밥 한 끼로 위로 받았듯이 이제는 그가 차려주는 한 끼로 치열하게 살아오며 상처 가득한 자신의 삶을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게다. 또 어쩌면 상처 가득한 이강은 같은 상처를 입고 있는 문차영을 삶의 의사로서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게다.

 

저 편에 거성재단 같은 거대한 성공의 신기루가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강과 문차영이 선택하는 건 그런 거대한 성공이 아니다. 그 거창함이 동반하는 아픔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상처 입은 존재들은 그래서 이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고 또 누군가와 그걸 나누는 것이다.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며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문차영처럼.

 

<초콜릿>은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도 충분히 훈훈함과 포만감을 줄 수 있는 드라마다. 물론 때론 강렬한 맛의 반찬들이 놓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안이 든든히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드는 드라마.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사진:JTBC)

사는 게 벌 같았지만... ‘동백꽃’ 이정은이 준 큰 위로

 

“못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니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네가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이정은)이 딸 동백(공효진)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곱 살 딸을 버리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편지에 담긴 정숙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술 취하면 폭력적인 남편을 버티다 동백까지 다치게 되자 집을 나온 정숙은 갈 곳이 없었고, 룸살롱 쪽방에서 딸과 함께 지냈지만 그 곳은 어린 딸이 지낼 데가 아니었다. 그 어린 아이가 “오빠” 소리를 배우고 따라했으니.

 

술집 언니들 식모 노릇하며 살았는데 그 곳도 쉽지 않았다. 자꾸 뛰쳐나와 갈 곳도 없는 모녀는 은행을 전전했고 공짜로 주는 박카스를 지겹도록 마셨다. 끝없이 배 고프다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결국 절망했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마저 죽일 것 같았던 것. 결국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버려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정숙은 계속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폈고 알고 보니 입양 후 파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새 엄마가 아이의 그늘에서 술집에서 지냈던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찾은 딸이 진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동백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안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정숙은 동백의 앞에 서게 됐던 거였다. 함께 지낸 세월이 고작 7년 3개월이라며 신장 이식을 받지 않겠다 버티는 정숙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라고 부른 동백은 그 기간이 짧았어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동백은 아마도 그 나머지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지냈던 34년간이 못내 아프고 화가 났었을 게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딸보다 더 아팠다. 그에게도 7년 3개월만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시간이 마치 “적금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야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아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독살 맞은 세월도 다 퉁 되더라.” 세상에,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았다니.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오며 갖가지 편견 속에서 힘겨웠던 동백의 이야기는 이제 그 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가난과 그 후로 내내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엄마 정숙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백꽃 필 무렵>이 정숙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도대체 이 정숙의 가슴 아픈 사연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파는 것일까.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흔히들 말하는 우리들은 때때로 나의 불운이 태생에서부터 결정됐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지만, 그런 문제가 야기하는 불행과 비극을 우리는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 때론 삶을 비관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좀체 제대로 날개를 펴지도 못한다.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저마다 사랑받지 않은 존재는 없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건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향미(손담비)도, 심지어 연쇄살인범조차도 그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누군가는 있을 테니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는 큰 위로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의 꽃을 피워내는 빛이 늘 어딘가에서 비춰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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