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성장, <정글2>의 진면목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정글 한 가운데서 최소한의 생존 장비만 주어진 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 속에 출연진들이 놓여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감 없이 포착해내는 이런 형식은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무인도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야자수를 따는 장면을 기억한다. 또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기 위해 갔다가 그 혹한의 얼음 밭 위에서 말도 안되는 간이 올림픽 경기를 상처를 입어가며(?) 했던 장면들을 기억한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우리네 리얼 예능의 계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토록 크다. <무한도전>은 이미 그 야생의 낯선 지대로 뛰어 들어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날것의 도전을 하는 그 예능의 형식적 틀을 이미 실험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이 이미 선취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무한도전>이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의 형식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는 점일 게다.

 

어쨌든 <정글의 법칙>에는 그 근간에 도전이라는 코드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정글 깊숙이 들어가 문명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존법칙을 하나하나 체득해간다. <무한도전>의 초창기가 그러했듯이, <정글의 법칙>의 초반부는 역시 이 정글에 놓여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 되었다. 사실상 첫 번째 미션 장소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 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늑할 정도로 야생 가운데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공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파푸아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정글 미션은 말 그대로 진짜 정글이었다. 이광규는 벌레들의 습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결국은 중도에 귀국했고,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극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정글로드로서 출연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정글을 탈출하다 제작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 진짜 정글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찍은 <정글의 법칙2>는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된 도전이다. 이번엔 그들을 위협하는 물이 있고 화산이 있고 정글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글의 법칙2>는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정글의 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 인물들이 투입된다. 그리고 도전을 겪어가면서 인물들의 생존능력 또한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된다면 아마도 몇 년 후의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잔 비슷하게 되어 있을지도.

 

진짜 리얼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안의 캐릭터들이 점점 실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그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차츰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로 성장한 출연진들 때문에 미션과 프로그램의 방향조차 바꿔야 했을 정도. 특히 유재석은 도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저 방송을 위해 보여주는 도전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출연자와 만나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병만 역시 그런 야생과 정글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무한도전>이 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한국화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만들었듯이, <정글의 법칙> 또한 해외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상당 부분 한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것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점이 그렇다. 자칫 힘겨운 자극에만 매몰될 수 있는 정글의 경험이 때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만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놀라운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앞에서 끌어주는 한, 이러한 성취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만의 성실과 도전정신을 보며, 정글판 <무한도전>처럼 보이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2의 유재석을 예감하는 건 섣부른 일일까.

우리가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

 '박중훈쇼'의 실패, '주병진 토크콘서트'의 난항. 우리에게 1인 토크쇼는 이제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아니 이것은 단지 1인 토크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토크쇼들의 성적표를 보면 게스트에 따른 시청률 편차가 너무 들쭉날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토크쇼 자체의 힘이 아니라 게스트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토크쇼는 단연 '라디오스타'다. 게스트와 상관없이 일정한 재미를 뽑아내주고, 심지어 타 토크쇼에서는 그저 지나쳤던 게스트마저 재발견하게 만드는 토크쇼. 그 '라디오스타'의 중추는 자타공인 김구라다. 최근 들어 토크쇼에 있어서 가장 핫(hot)한 인물인 김구라. 왜 김구라쇼는 기획되지 않는 걸까. 김구라에게 김구라쇼에 대해 물었다.

"(자신의 쇼를 하고 싶다는 건) 모든 MC들의 꿈일 겁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바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토크쇼 MC로서 특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양적으로 일이 많아서요(그는 현재 방송만 8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 자체가 들어오는 일을 거절할 수 없게 됐죠. 제가 뭐 완전 톱스타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올라가고 여건도 괜찮아지면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토크쇼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게스트들이 저의 캐릭터를 믿고 편안하게 하면서도 속에 있는 얘기를 공격적으로 물어보는 그런 토크쇼 말이죠. 사실 꽤 오래도록 토크쇼를 해와서인지 이제 노하우가 어느 정도 생겼고, 또 이 분야에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김구라의 화법은 초기에는 '독설'이 부각되면서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독설은 언젠가부터 '직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배려한답시고 빙빙 돌려 얘기하는 기존의 토크 방식을 '진정성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독설이 직설로 여겨지게 된 건, 물론 김구라만이 갖는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과감한 토크 방식 때문이다. 작금의 토크쇼들의 침체가 전반적으로 게스트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토크 방식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볼 때, 김구라식의 화법은 어쩌면 여기에 대한 대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의 직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성향이 그렇습니다. 제 성격 중 하나인데, 저는 사람을 만나서 혈액형을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로 어디 살아요? 이런 현실적인 것에 더 관심이 가죠. 그래서 토크쇼도 현실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거겠죠. 또 제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빈틈(?)을 찾기도 하죠. 또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건 별로 호응을 안 해주는 성격입니다. 처가댁 같은 데 가서도 식구들하고 얘기를 별로 안 해요. 관심이 없는 걸 얘기하니까. 또 예의를 딱딱 차리는 그런 성격도 아니라... 이런 면들이 토크쇼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독설(?)이 그저 아무렇게나 툭툭 던진다고 먹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실 우리처럼 '예의'에 민감한 민족도 없으니까. 따라서 어떤 맥락과 상황에 어떤 정도의 수위와 강약 조절을 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독설은 작정하고 하면 안 됩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의욕이 과잉돼서 뭔가 확실한 걸 보여주려고 아무 맥락 없이 강하게 멘트를 날리기도 하는데요, 그럴 경우에는 잘못하면 분위기만 썰렁해질 수 있죠. 연기에서 합이 중요한 것처럼 독설도 그 맥락과 감정 선이 중요합니다. 게스트와의 토크 속에서 감정 선이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에 터져야 독설은 효과가 있죠. 마치 배우들이 연기할 때 감정 선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처음부터 세게 해주세요.' 막 그러시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독설을 던집니까. 뜬금없이 던지는 건 무리수죠. 또 연예인이 나왔을 때랑 일반인이 나왔을 때랑 상황도 다릅니다.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측면이 많아지죠.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걸 하면서 이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특이하신 일반인분들이 나오시면 거기다 대고 독설만 던질 수는 없더라구요. 오히려 더 많이 듣고 배려하게 되더군요."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라스의 서병기(대표적인 대중문화 전문기자)'로 불린다. 박명수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김구라에게 "당신이 서병기야? 임진모야?" 했던 것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김구라만의 분석적이고 냉철한 이미지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점에서 보면 이런 태도는 기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 토크쇼를 하나의 인터뷰로 볼 때, 김구라는 확실히 무언가를 캐내려는 호기심 많은 기자를 닮았다.

"(웃음) 그렇게 불러주시니 너무 좋죠. 분석적인 토크 방식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비유 같은 걸 많이 쓰고 그래서 붙여진 별칭인 것 같습니다. 제가 비유를 좀 많이 쓰는데요, 예전에 딴지일보 그런 거 할 때 우리가 뭐 정치를 아나요? 만날 룸싸롱 같은 것에 비유하고 그랬죠. 그러다 보니 좀 현실적인 비유들을 하는 게 습관처럼 배인 것 같습니다."

김구라가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나 게스트를 직접적으로 몰아세우는 그 바탕에는 그 당사자와 게스트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깔려 있다. 이것은 토크쇼가 어떤 방식으로 게스트를 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게스트 좋은 대로 편안하게 두는 그런 배려는 결국 대중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토크쇼의 MC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는 게스트와 시청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과감할 때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명 토크를 많이 하는데, 사실 인터넷 방송 할 때는 전부가 실명이었거든요. 뭐 죄진 사람도 아닌데 실명 거론하는 게 그다지 잘못된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도 왜 실명을 얘기 하냐 뭐라 하시기도 하죠. 하지만 실명 얘기 안하면 재미가 없어요. 또 M본부, S본부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좀 우스워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물론 조금 강하게 실명으로 누군가를 언급하거나, 또 게스트에게 강한 질문을 던지는 건 제 나름의 게스트 배려 방식입니다. 그렇게 주목되게 만드는 거죠. 뭐 신인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만, 이미 탑에 있는 친구들은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입장 이해해요. 그래서 그런 거 싫어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저도 굳이 그런 얘길 안하게 되죠."

게스트를 배려하는 토크쇼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감동'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김구라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다. 심지어 눈물 짜는 게스트에게 "가지가지 한다"는 독한 멘트를 날려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여기에는 그만한 당시 상황의 이유가 있었다).

"그 때 강원래씨 나왔을 때 했던 "가지가지 하네"라는 멘트가 무슨 '기념비적인 장면'이라고까지 얘기되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 때 상황은 눈물 흘리는 사람한테 독설을 날린 그런 게 아니었어요. 강원래씨가 갑자기 울지 않아야할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 거죠. 그러자 구준엽도 그렇고 전부가 어색해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멘트를 던졌더니 강원래씨도 같이 웃고 넘어갈 수 있었죠. 뭐 저보고 방송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본래가 눈물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요즘은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조금씩 살짝 올라오는 게 있기도 하더군요."

김구라는 유재석에 대해서 "정말 야외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예능인"이라고 했다. 자신이 아무리 야외에서 열심히 해도 유재석을 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스튜디오 안에서만큼은 자신도 어느 정도 자신만의 영역을 세우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것은 실제로도 맞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요즘 토크쇼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요즘 토크쇼가 (시청률이) 많이 빠졌죠. 그만큼 대중 분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올 질문들이 딱 보이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답변이 나오기는 어렵겠죠. 해외의 토크쇼들은 좀 더 직접적이고 흥미진진한 얘기를 해야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우리도 그런 쪽으로 점점 흐름이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구라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와 날카롭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적어도 이런 캐릭터가 하는 토크쇼라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진정한 게스트와 시청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갔다. 이제 달라진 예능 환경과 대중들의 화법에 대한 욕망은 김구라라는 캐릭터를 점점 무르익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많은 대중들이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런닝맨'의 게임 예능 한계 극복기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에서 '스파이 콘셉트'는 게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 전까지 '런닝맨'은 어떤 미션을 두고 개인전 혹은 팀 대결을 벌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파이 콘셉트'가 들어가면서 미션은 이중구조를 갖게 됐다. 겉으로 주어진 미션이 있지만, 그 안에 스파이가 들어가 있는 또 다른 미션이 숨겨져 있는 방식이다.

유재석이 스파이가 되어 다른 런닝맨들의 이름표에 물총을 쏘았던 미션은 그래서 '런닝맨'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물꼬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런닝맨들은 미션을 주는 제작진은 물론이고 동료 런닝맨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두뇌싸움이 치열해졌고 그만큼 게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다해가 게스트로 출연한 '런닝맨'은 이 스파이 콘셉트의 게임 방식을 한 번 더 뒤집었다. 통상 한 명 혹은 두 명에게 주던 스파이 카드를 이다해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었고,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이다해는 바로 그 점을 역이용해 '스파이 런닝맨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간다. 여기에는 이다해의 전작인 '미스 리플리'의 캐릭터가 활용되었다. 즉 목적을 위해 특유의 미모와 거짓말로 타인을 이용하는 캐릭터다.

이다해가 출연했던 '스파이 런닝맨' 게임을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런닝맨의 게임 방식(즉 이름표를 뜯거나 어떤 지령에 따른 미션을 수행하는 식)은 기본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스파이 콘셉트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게스트의 정보나 이미지 콘셉트를 미리 꿰고 있다면 게임은 더 흥미진진해진다. 물론 '런닝맨' 특유의 공간에 대한 지식도 즐거움을 부가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사전 정보들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다해가 출연한 '스파이 런닝맨'을 봤다면 어땠을까. 그다지 큰 감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은 '런닝맨'이라는 게임 예능이 지금껏 달려온 길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대단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어느새 초기 '런닝맨'의 그 단순했던 게임 형식에서 한참 멀리 달려온 지금의 진화된 '런닝맨'을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주 조금씩 '런닝맨'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세계가 가야할 길들의 법칙들을 일러주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유람선에서 벌어진 셜록 홈즈 콘셉트의 '런닝맨'은 예능적으로 보면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런닝맨들이 한 명씩 아웃되는 의문의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그러다 결국 숨겨진 루팡 캐릭터가 등장하는 반전은 게임 형식에 미스테리와 스릴러 액션까지 덧붙인 놀라운 결과물로 탄생했다. 즉 '런닝맨'은 이제 다양한 외부 콘텐츠들(혹은 캐릭터)이 갖고 있는 스토리들을 게임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민수를 출연시켜 '런닝맨 헌트'를 하고, 이다해를 출연시켜 미스 리플리 캐릭터를 부여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즈음에서 '런닝맨' 이전의 예능에서 우리가 봐왔던 게임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거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게임들이었다. 특정 공간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쿵쿵따를 하거나 닭싸움을 하거나 레이싱을 하는 식의 그런 게임들. 이것은 지금도 대부분의 리얼 예능들이 하고 있는 게임들이다. 하지만 '런닝맨'이 보여주고 있는 게임들은 이보다는 몇 단계 앞에 서 있는 것들이다.

게임이라는 것이 너무 어려워도 시청자가 적응할 수 없고 또 너무 쉬워도 시시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균형과 적절한 진화 속도를 유지해온 '런닝맨'의 끈기와 근성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효진 PD는 그래서 여전히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그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초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복잡해진 현재의 '런닝맨'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런 제작진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런닝맨'의 성공적인 진화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놀랍기만 하다.


'SBS연예대상', 어떻게 모두를 배려했나

'SBS연예대상'(사진출처:SBS)

방송3사 연예대상 중 맨 마지막에 했기 때문일까. 올해 'SBS연예대상'은 방송3사 연예대상 중 그나마 가장 논란이 적은 시상식이 되었다. 'KBS연예대상'의 대상이 애초 후보에도 없던 '1박2일' 팀 전원에게 돌아감으로써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됐고, 'MBC연예대상'이 대상을 개인이 아닌 '나는 가수다'에게 주자 생겨난 '무한도전' 팀의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해 논란을 겪은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KBS연예대상'이 너무 배려가 없었던 반면, 'MBC연예대상'이 너무 퍼주기식으로 시상을 했던 것도 문제가 되었지만, 'SBS연예대상'은 그런 비판 또한 빗겨가게 됐다.

그렇다고 'SBS연예대상'이 여느 시상식과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 해 고생한 예능인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가졌고, 결국은 상을 타야할 이들이 상을 탄 지극히 당연한 결과를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연예대상'이 돋보이게 된 데는 타 방송사의 연예대상과의 비교점 때문이다. 'KBS연예대상'이 배제했던 김병만은 'SBS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버라이어티 부문)을 받음으로써 더 주목받을 수 있었고, 'MBC연예대상'에서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을 받음으로써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주었던 유재석은 대상을 거머쥠으로써 더 도드라진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물망에 오른 이승기, 이경규를 한 해의 공과에 따라 각각 최우수상(토크쇼 부문)과 프로듀서MC상을 준 것도 적절했다 여겨진다. 이로써 대상 후보에 오른 인물들은 대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제외되는 상황 없이 전원 상을 받아가게 되었다. 이것 역시 타 방송사의 시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 골고루 나눠 갖는 양상 속에서도 특별히 한 해 주목되었던 프로그램에 대해 더 많은 상을 준 것도 시상식에 균형을 만들어주었다.

즉 '런닝맨'은 대상은 물론이고 최우수 프로그램상, 우수상(김종국, 송지효), 베스트 엔터테이너상(하하), 방송작가상(박현숙), 신인상(이광수)을 거머쥐었고, '정글의 법칙'은 최우수상에 이어 공로상을, '강심장'은 최우수상, 우수프로그램상, 네티즌 최고인기상(이승기), 우수상(붐, 이특)을, 또 '키스 앤 크라이'는 최우수상, 특별상(김연아), 베스트 엔터테이너상(박준금)을 받았다. 그 외에 올해 SBS에서 주목되는 프로그램들도 잊지 않았다. 올해 가장 화제를 몰고 왔던 '짝'이 우수 프로그램상을 받았고, '힐링캠프' 역시 프로듀서MC상(이경규), 신인상(한혜진)을 받았다.

'SBS연예대상'이 개념시상식이 된 이유는, 올해 타 방송사에서 배제되었거나 홀대받은 인상을 준 김병만, 유재석, 이경규에게 골고루 상을 줌으로써 마치 전체 시상식의 아쉬움을 채워준 듯한 인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유재석과 김병만에게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준 SBS는 이 두 예능인에 대한 대중들의 응원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게 됐다. 또한 올해 잠정은퇴한 강호동을 그리워하는 방송3사의 예능인들이 유독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SBS연예대상'의 수상소감을 통해 유재석이 언급한 강호동 이야기는 가장 주목되는 화룡점정이 되었다.

한 해의 시상식이 올해의 공을 상찬함으로써 내년을 바라보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러모로 'SBS연예대상'은 올해 운이 좋았다고 여겨진다. 배제되는 이도 없었고 특별히 억지스런 구석도 없었다. 게다가 올해 유독 논란이 많았던 KBS와 MBC의 연예대상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SBS연예대상'은 그 논란과 아쉬움을 채워주는 시상식이 되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