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말 못하는 산체 힐링의 존재 된 까닭

 

tvN <삼시세끼> 어촌편에 첫 게스트로 출연한 손호준에게 산체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색하고 부담스럽기 이를 데 없는 대선배들을 찾아온 손호준은 낮잠을 자는 그들을 깨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했다. 그 불편한 첫 만남에서 그를 반겨준 건 다름 아닌 이 만재도의 귀요미로 자리한 산체였다. 손호준은 보자마자 산체에게 푹 빠져 연실 뽀뽀를 해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강원도편의 밍키에 이어 만재도편에서는 산체가 화제다. 너무 작아서 방안에서조차 숨어버리면 찾기 어려운 이 어린 강아지는 아직까지 거친 어촌의 바깥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방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데 특유의 귀여운 자태(?) 때문에 출연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유해진도 바깥일(낚시)을 하고 돌아오면 먼저 방안의 산체를 들여다보기 일쑤다. 방안에 싼 앙증맞은 똥을 치워주고 끼니 때가 되면 딱 50일씩 줘야 하는 사료에 덤으로 10알을 얹어주며 애정을 과시한다. 차승원 역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산체와의 망중한을 보낸다. 커다랗지만 지친 몸들이 자그마한 산체와 토닥거리며 장난을 칠 때, 그들은 잠시 동안의 힐링을 맞본다.

 

잠깐 잠깐 등장하는 것뿐이고, 게다가 뭔가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산체에 대한 관심은 출연자들 이상이다. 혹자는 산체를 보기 위해 <삼시세끼>를 본다는 얘기를 한다. 그만큼 산체 없는 <삼시세끼>는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도대체 이 말 못하는 강아지의 어떤 마성의 미력이 대중들을 사로잡았을까.

 

<삼시세끼>의 산체가 출연자들에게 주는 힐링은 아마도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에게는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직장 생활의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달려와 가슴에 안기는 반려견의 그 따뜻함은 하루의 고단함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힘을 발휘한다. 폭풍이 몰아치고 때론 눈보라가 날리는 어촌에서 한 끼 한 끼를 챙겨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이 잠시 그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는 존재가 바로 산체다.

 

그래서 그 작은 방안에서 산체와 노니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마치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한없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지는 마음이 그 작은 방안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체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방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는 어느새 출연자는 물론이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시청자들에게도 힐링의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나영석 PD는 이를 우연한 결과라고 말하지만 결코 그냥 일어난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나영석 PD를 위시한 제작진들의 세심한 편집과 연출의 힘이 들어 있다. 산체라는 존재 자체가 귀요미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극대화한 건 연출의 몫이 있었다는 점이다. 출연부터 슬로우모션으로 달리는 산체의 모습을 마치 거친 야생의 동물처럼 표현한 건, 본래의 모습과 반전효과를 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출연자들마다 한 번씩 이 귀요미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산체의 존재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출을 통해 힘겨운 바깥의 생활이 끝난 후 산체를 찾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은 산체를 휴식힐링의 존재로 각인시켰다. 이러니 거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과거 <12>의 상근이부터, <삼시세끼> 강원도편의 밍키, 그리고 만재도편의 산체까지 하나같이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그들의 존재자체가 주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일정한 스토리텔링을 투사해 만들어낸 캐릭터의 힘이기도 하다. 그가 힐링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이제 산체를 보기 위해 <삼시세끼>를 본다는 말이 그저 과장이 아니라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 끝낸 <삼시세끼>, 어촌편은 블록버스터다

 

이미 실험은 끝났다? <삼시세끼>를 처음 런칭할 때까지만 해도 나영석 PD는 이 예능 실험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 콘셉트로 내세워질 만큼 확실히 손에 잡히는 요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시세끼> 강원도편이 대성공으로 끝난 만큼 스핀오프로 돌아오는 어촌편은 이미 대박이라는 얘기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거기에는 그만한 합당한 근거들이 있다. 첫째, 캐스팅이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삼시세끼> 강원도편의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줄줄이 이어진 게스트들의 면면이 약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번 어촌편은 캐스팅이 톱 클래스급이다.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장근석까지. <무한도전>의 고정 게스트라고 여겨질 만큼 나올 때마다 살벌한 노동강도를 보여주는 차승원이고, 티저에도 나왔듯이 나는 <12>이야라고 이미 예능판을 충분히 경험한 유해진이 아닌가. 여기에 예능의 손이 한 번도 타지 않은 프린스 장근석의 동참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감을 높인다.

 

고생하면 할수록 짠해지면서도 웃음이 나게 만드는 차승원이고, 그 고생 속에서도 끝없는 특유의 농담으로 좌중을 쓰러지게 만드는 유해진이다. 이들을 보필하는 장근석은 지금껏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 왔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망가짐의 미학(?)’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미 5차 예고 동영상으로 통해 보여졌듯이 만재도에 들어간 세 사람은 못생김(?)’을 먹고 못생겨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대박의 근거는 어촌이라는 공간이 주는 살풍경에서 나온다. 바다는 강원도편의 유유자적하는 농촌의 환경과는 사뭇 다르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몰아친다. 그런 배경은 <삼시세끼>의 새로운 느낌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낚시를 해야 하고, 바람 속에서 불을 지펴 무언가를 해먹어야 한다. 노동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주는 정서나 느낌 또한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석 PD 예능 특유의 따뜻하고 훈훈한 관계가 이런 어촌의 살풍경 속에서 오히려 더 드러날 것이라는 게 세 번째 대박의 근거다. 이미 예고편을 통해 보여졌듯이 문밖을 나서면 파도와 바람이 불어 닥치는 만재도지만 그 문 안에서의 세 사람은 뒹굴뒹굴 누워 이런 저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부린다. 문 밖의 살벌함과 문 안의 따뜻함.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현실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삼시세끼> 어촌편은 나영석 PD의 예능이 늘 그러하듯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성공한 작품으로 다가오고 있다. 강원도편이 성공적인 실험의 성격이 강했다면 어촌편은 블록버스터다. 출연자들도 또 카메라에 담기는 환경도 강원도편과는 급이 다른 강도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장근석은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금요일 밤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1박2일>, 제2의 전성기를 위한 전제조건들

 

<1박2일>이 시즌3를 선포하면서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느냐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수근, 유해진, 성시경, 김종민은 하차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엄태웅과 차태현은 잔류할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목이 집중된 것은 새로운 멤버로 누가 들어갈 것인가다. 항간에는 장미여관의 육중완, 샤이니 민호 그리고 존박이 새 멤버 물망에 올랐다고 하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렇게 멤버 교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캐릭터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매번 어떤 장소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는 형식의 반복이지만 그 과정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단발의 웃음으로 사라지지 않고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캐릭터다. 일일이 <1박2일>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만, 이를테면 이수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 많은 사건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수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과거 경북 영양에서 현지 주민과 하룻밤을 지냈던 미션이다. 허름한 시골집, 불빛도 별로 없는 어두운 그 곳에서 현지 주민과 함께 하룻밤의 교감을 마치고 떠나는 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이수근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김종민 하면 <1박2일> 초창기에 혼자 낙오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김C 하면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한겨울에 홀라당 벗고 박스에 의지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강호동 하면 입수를 외치며 한 겨울 계곡 얼음물에 뛰어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캐릭터는 단지 인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1박2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하차가 아쉬운 것이고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이다. 하지만 <1박2일> 시즌3의 경우에는 멤버 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너무나 익숙해진 프로그램 형식이 다시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일이다. 단지 멤버가 바뀌고 제작진이 바뀐다고 이미 익숙해진 프로그램을 참신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시즌2가 확인시켜 준 바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먼저 핵심은 이 프로그램의 소재인 ‘여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1박2일>이 시작하는 단계에서만 해도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여행은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박2일>로 인해 여행의 트렌드가 바뀐 지 오래다. 이른바 ‘아웃도어’ 열풍이 불고 있는 것. 이 열풍에 그저 편승하는 것으로는 <1박2일>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채워주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행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이 <1박2일>의 진정한 목표일 수 있다.

 

<무한도전>이 여행 버라이어티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1박2일>은 거기에 우리네 팔도의 지역 특성과 아웃도어 개념을 덧붙여 여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도 더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빠 어디가>가 아빠와 아이의 여행으로 세분화됐고, <꽃보다 할배>는 어르신들의 여행으로 세분화됐다. 그렇다면 새 시즌을 준비하는 <1박2일>의 여행은 어떻게 과거의 <1박2일>과 또 여타의 여행 버라이어티와의 차별화를 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1박2일> 시즌3의 성패가 달려 있다.

 

<1박2일>의 새 시즌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형식과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다. 복불복은 <1박2일>의 핵심적인 감초지만 이것이 너무 전면에 내세워질 때는 여행 버라이어티로서의 색채가 흐려지는 단점이 있다. 시즌2에서 늘 문제로 지목됐던 것은 과도한 게임이었다. 복불복은 다큐처럼 찍어지는 초창기 리얼 버라이어티의 안전장치처럼 사용됐던 것이 사실이다. 재미에 대한 강박의 소산물이라는 것. 하지만 요즘처럼 관찰예능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의도적인 복불복은 ‘리얼’의 느낌을 상당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다변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사안이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여행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냈던 ‘대학생 생활백서’ 같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 발굴이 절실하다 여겨진다. 여행의 일상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1박2일>을 기존 여행의 틀로만 한정짓지 않는다면 더 많은 소재와 스토리가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카메라 연출에 있어서도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최근 경향인 관찰 카메라 형식을 도입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프닝을 위해 일렬로 멤버들을 세워놓고 찍는 방식은 너무 식상해졌다. 좀 더 자연스러운 다큐적인 오프닝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고, 과정을 찍는 방식도 좀 더 현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형태가 리얼감을 높여줄 것으로 생각된다.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중민 EP가 밝힌 것처럼 “친구와 여행은 쉽게 싫증을 느끼지 않을 소재”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늘 여행을 꿈꾸고 또 여행을 다녀와서도 또 다른 여행을 생각하는 욕망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여행이라는 좋은 소재도 똑같은 형식과 스토리만을 반복해서는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와 콘셉트를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 이것이 <1박2일>에는 멤버 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불황이 만들어낸 마이너리티 감성

만일 당신이 사회의 정신적인 뇌관을 건드리는 테러리스트라면, 우리 사회만큼 간단한 테러 목표도 없을 것이다. 그저 남자라는 단어와 '루저'라는 단어를 붙여 넣기만 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테니까. '미녀들의 수다'의 한 여대생이 "남자 키 180cm 이하면 루저"라는 말 한 마디가 일으킨 대폭발(?)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민감해져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불황에 남녀 구분이 있을까마는 아마도 상대적인 박탈감은 남성들이 더 할 것이다. 본래 높은 위치에 계시던 분이 진창으로 나서야 그 힘겨움을 더 느끼게 되는 법 아닌가. 남성들은 가부장제적 사회 속에서 이제 조금씩 남녀평등의 사회로 이행해가고 있는 중이고, 차츰 자신들이 가졌던 이성적 능력보다, 여성성이 가진 능력이 이 감성적인 시대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렇다고 그 박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독한 불황은 남성들의 어깨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실로 이 계속된 불황 속에서 우리네 남성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들은 이 이행기에 여전히 가장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으면서도, 그 지위는 누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청년실업에서부터 조기퇴직까지 이른바 가장으로서의 남성들의 목은 댕겅댕겅 잘려나갔다. 그러니 이 가뜩이나 힘겨운 상황에 처한 남성들에게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붙여진 '루저'라는 단어는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루저'는 무능력자에 회생 불가능한 폐인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상대적인 의미인 위너들과 비교될 때 분노감은 더 커지게 된다. 즉 세상은 위너들의 공고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고 '루저'들은 늘 질 수밖에 없는 패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루저'라는 말이 그저 한 때의 잘못 발화된 한 여대생의 실수담이 아니라는 것은,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사실과 함께 드러난다. 유해진은 늘 조연 자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는 '전우치'에서 전우치로 등장하는 강동원이 아니다. 그는 전우치가 데리고 다니는 개 초랭이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그런 그가 늘 '엣지있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당당한 미인 김혜수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은 고개 숙인 남성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니 작년 한 해 눈에 띄게 약진한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저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주창하던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도드라져 보인다. 물론 '루저'라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그 낮게 되어버린 남성들의 눈물겨운 도전과 노력에 우리는 감동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남성과 '루저'가 만나면 폭탄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만큼 구조적으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남성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루저'라는 말조차 농담처럼 웃으며 들을 수 있는 사회가 될까. 아직은 요원한 느낌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