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부인전’, 추영우라는 색다른 이야기꾼 남성상의 등장

옥씨부인전

“너는 네가 방금 먹은 게 주먹밥 같고 여기가 폐가 같으냐?” 불법으로 금광을 채굴하는 이들을 찾아내고 그 작업에 동원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산을 헤매다 폐가에서 하룻밤을 기거하게 된 옥태영(임지연)이 뭐가 그리 즐겁냐고 묻자 천승휘(추영우)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기수 답게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는 아늑한 주막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로 그 주막이 어떤 곳인지 그 곳을 그 두 사람이 함께 찾아오면 주모가 부부로 생각해서 한 방을 주고 커다란 암탉을 잡아 저녁을 먹는 풍경을 풀어 놓는다. “어떠냐? 지금도 네가 먹은 게 주먹밥 같으냐?” 그 이야기와 더불어 두 사람 저편으로 그림자극처럼 상상의 영화관이 펼쳐진다. 깔깔 웃으며 함께 암탉을 나눠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옥태영은 말한다. “도련님은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웃게 만들고 시름을 잊게 하시니까요.” 그러자 천승휘가 답한다. “내가 오늘은 너만의 전기수가 돼 주마.”

 

색다른 남성상의 등장이다. 송서인이라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천승휘라는 가명으로 전기수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 이 남자는 그간 사극에서 봐온 남자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왕이나 권세가의 권력을 쥔 인물이 아니다. 또 공부 깨나 해서 장원급제한 선비도 아니다. 송씨네 가문의 아들로 살아왔지만 자신이 기생의 몸에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곳을 떠나 자신이 원하던 전기수라는 삶을 선택한 인물이다. 신분을 오히려 낮춰서 얻은 자신의 삶이다. 

 

전기수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기도 하기 때문에 몸은 잘 쓰지만 그렇다고 무공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적들이 나타났을 때 몇 명 정도는 쉽게 해치우고 여인을 보호해주는 그런 능력이 없다. 대신 연기를 한다. 칼을 쓰는 듯한 연기를 하지만 그건 사실은 춤에 가깝다. 옥태영과 한께 그 험한 산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마주하는 위험 속에서 이 남자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천승휘는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남들이 못하는 상상을 한다. 폐가에 주먹밥 하나 들고 있어도 이 인물이 해주는 이야기는 그 곳을 주막으로 바꾸고 주먹밥을 암탉으로 바꾼다. 금광을 이끄는 지동춘(신승환)과 그 무리들의 공격을 피해 불도 못피우고 한데서 밤을 지새우게 됐을 때도 이 인물은 이야기로 그 어려운 상황들을 반전시키려 한다. “불을 못 피우니까 별이 보인다. 왠지 오늘은 쉽사리 잠들지 못할 거 같아.” 그 두려움과 긴장감을 설렘으로 바꿔 놓는다. 

 

천승휘라는 이 새로운 남성상은 옥태영를 연모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소유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미 혼인을 한 유부녀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승휘는 옥태영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해준다. 이상화된 캐릭터지만 천승휘라는 남성상은 그래서 기존 드라마들이 세우고 있는 남성들의 클리셰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옥씨부인전’이 이러한 남성상을 이상형으로 세워 놓은 건, 이 작품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이항복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유연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야기와 상상력이 가진 힘을 주제의식으로 가져온 점이 도드라진다. 노비였던 구덕이가 옥태영이 되고, 양반 자제였던 송서인이 천승휘가 되어 한 바탕 살아가는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새롭게 스토리텔링하는 과정을 닮았다. 새로운 자신을 상상하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나가는 힘.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이 아닌가. 

 

레오 리오니의 동화책 ‘프레드릭’에는 시인에 가까운 쥐 프레드릭이 등장한다. 겨울이 다가오자 모두가 먹을 걸 준비할 때 프레드릭은 일을 안하고 햇볕을 쬐면서 놀지만, 겨울이 되고 동굴에서 버텨내며 먹이가 떨어졌을 때 프레드릭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는 모두 눈을 감게 하고 햇볕이 내리쬐던 바깥 세상에서의 날들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모두를 버텨내게 해준다. 스토리가 가진 힘을 말해주는 이 작품처럼, ‘옥씨부인전’은 전기수 천승휘를 통해 이야기와 상상력의 힘을 그리고 있다. 

 

천승휘 역할에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옥태영의 남편 성윤겸까지 1인2역을 소화하는 추영우는 그래서 ‘옥씨부인전’을 통해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나 어딘지 어설퍼도 매력적인 행동들 하나하나가 극중 스토리와 엮어져 그의 존재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오아시스’로 주목을 받았지만 ‘옥씨부인전’으로 이제 여성들의 새로운 이상형을 그려나가고 있는 추영우는 그래서 이 작품 최대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사진:JTBC)

'꼬꼬무',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힘이 이토록 대단한 거였던가. 한 번 보게 되면 눈을 뗄 수 없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걸려들기(?) 딱 좋은 구도를 갖고 있다. 그런 기억이 있지 않나. 우연히 두 사람이 너무나 깊게 빠져들어 나누는 이야기에 "뭐지?"하고 훔쳐 듣다 정신없이 그 이야기에 빠져들던 그런 기억.

 

<꼬꼬무>는 그 구성이 단순하지만, 우리가 이야기에 빠져들던 그 기억을 툭툭 건드린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하는 순간 그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장항준, 장성규, 장도연, 이른바 '장트리오'로 불리는 세 명의 이야기꾼들이 각각 후배 전석호, 찐친 온주완 그리고 아나운서 조정식을 1:1로 만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숨 가쁜 편집으로 이어진다.

 

파일럿 이후 지난주 정규로 돌아와 첫 방으로 꺼내놓은 '수지김 간첩 조작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우리에게는 '김신조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1.21 사태가 그 이야기의 소재가 됐다.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인 124부대의 31명 무장공비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임무를 띠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청와대까지 들어왔다 가까스로 저지된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마도 '김신조 사건'이라고 하면 누구나 아 그 사건하고 말할 것이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게다. 그래서 당시 그 124부대가 어떤 훈련까지 했고, 침투 과정에서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그런 훈련을 통해 얼마나 초인적인 침투과정을 보여줬는지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또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이 무장공비들이 어째서 임무를 실패하게 됐는지도.

 

파주 법원리 초리골의 삼봉산 나무꾼 우씨 사형제 이야기에서 공비들이 나무꾼 우씨 형제를 잡아 놓고도 죽이지 않고 투표를 통해 살려주었다는 믿기 힘든 실제 이야기의 내막이 흥미진진하게 전해지고, 북측에서 보내온 무전의 암호해독을 하지 못해 '원대복귀'하지 않고 임무를 무리하게 강행한 것이 결정적인 임무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꼬꼬무>가 흥미로운 건 영상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오롯이 장트리오 이야기꾼들이 진짜 카페 같은 곳에서 만나 수다처럼 전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씨 사형제 중 한 명의 육성을 담는 것도 얼굴을 대면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육성으로만 전함으로써 거기 앉아 있는 이야기꾼과 청자에 대한 집중을 흩트리지 않는 그런 방식.

 

같은 이야기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재미있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장항준, 장성규, 장도연이 맛있게(?) 전하는 이야기의 힘은 그들의 전달력에서 나온다. 영화감독이나 MC 그리고 개그우먼이라는 직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재밌게 전하는 직업군이 아닌가.

 

물론 <꼬꼬무>는 꼭 필요한 영상들을 이야기 중간 중간에 채워 넣는다. 과거 사건의 자료 영상들을 편집해 넣고, 이야기가 단지 재미의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고 어떤 의미나 깊이를 더해주기 위해서 직접 당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선택한 김신조의 인터뷰 영상을 담는다. 생사의 순간 분단 상황에서 체제와 이념을 모두 뛰어넘어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김신조의 이야기는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 순간 자신을 삶으로 이끌었다는 것.

 

바야흐로 영상 시대지만 우리는 본원적으로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채로운 영상은 아니지만, 이야기꾼들을 세워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조각조각 편집해 넣어 다이내믹하게 구성해낸 <꼬꼬무>는 우리에게 그 이야기의 마력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수많은 영상들도 사실은 영상 자체의 자극이 아니라 거기 깔려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아닌지. <꼬꼬무>는 그 지점을 극대화해 보여준다.(사진:SBS)

‘감빵생활’, 공간은 감방이어도 이야기는 종합선물세트

우리는 감방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에 갖는 편견들이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딘지 답답할 것 같고 이야기도 수감자들 사이의 대결구도 같은 감방 소재의 장르 안에 머물 것 같다는 것들이다. 하지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이것이 한낱 편견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감방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리고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어서다. 

주인공 제혁(박해수)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어떤 쓸쓸함과 아픔, 슬픔 같은 것들이다. 겉보기에는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로 추앙받던 그가 굉장히 행복할 거라고만 여겨왔지만, 그는 자신의 생일날 교도소에서 차려준 특별한 야구 이벤트(?)에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토로한다. 교통사고에 재활치료만 한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위암 투병까지 해왔다는 것.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버텨온 자신을 사람들은 ‘노력의 아이콘’으로 추앙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나 힘들어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의 울분은 시청자들에게 먹먹함을 주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혁 같은 ‘세상 제일 재수 없는 놈’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슬픈 정서만을 담지는 않는다. 같은 감방에서 지내는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같은 인물은 진지한 얼굴에서 나오는 혀 짧은 소리로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준다. 그는 그저 진지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캐릭터의 코믹한 설정 하나로 그건 웃음으로 전화된다. 마약을 복용하다 들어온 한양(이규형)은 그 해롱거리는 정신상태가 마치 아기 같은 느낌을 주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 제혁의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이런 캐릭터들이 공존하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이완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다양한 감정들을 균형 맞춘다.

장기수(최무성)와 장발장(강승윤)의 이야기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인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증거다. 처음에는 어딘지 살벌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츰 장발장이 부르듯 ‘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인물로 다가오는 장기수. 조폭 시절부터 엮인 장발장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부채감 같은 걸 갖고 있는 장기수는 출소를 앞둔 장발장이 자신이 살기 위해 그를 무고한 사실에도 그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준다. 장기수는 그래서 이 감방이야기가 가진 어떤 훈훈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장발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작업을 나가서도 도둑질을 하는 인물. 그리고 감방 검사에서 시계를 찼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자 그게 자기 것이 아니라 장기수의 것이라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다. 장기수와의 관계에서 마치 부자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결국은 자기 버릇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발장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반전의 감정이다. 물론 그가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어깨를 두드려준 장기수는 생각보다 더 큰 인물이다. 그가 했던 행동이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편하자고 한 일”이라는 것.

그러면서 감방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부정과 그로 인해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또한 이 드라마는 빼놓지 않는다. 동료들의 등을 처먹는 작업반장이 가구 만드는 대회에서 1등한 우승자의 상금을 가로채려 한 것이 결국 발각되는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통쾌함 같은 걸 선사한다. 

추락하는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제혁이라는 인물과 그 속에서도 웃음을 주는 카이스트나 한양 같은 동료의 이야기, 인간적인 먹먹함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섬뜩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장기수와 장발장 이야기 그리고 감방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위기와 반전의 이야기까지.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을 한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감방이라는 공간이어서 어딘가 한정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감방이어서 더 다채로울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 역발상. 이것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웬만한 시청자들을 모두 빨아들일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사진:tvN)

<W>, 어째서 이 만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까

 

말도 안 되게 재밌다? 아마도 이 말은 <W>라는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평가일 듯싶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한 마디로 만화 같기때문이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주인공이나, 현실 세계로 나와 자신을 만든 작가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만화 속 주인공이나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W(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재밌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거기에는 송재정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해주는 판타지의 욕망이 작용한다. 말도 안 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상상. 그것을 눈앞에 던져주고 나름의 법칙들을 세워둠으로써 마치 게임 같은 몰입을 만들어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설득되게 된 건 송재정 작가의 치밀한 전략이 깔려있다. 처음 만화 속 세계로 들어온 오연주(한효주)가 빨리 그 회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강철(이종석)의 뺨을 때리고 키스를 하는 설정은 하나의 유머처럼 처리되지만 그것이 하나의 법칙이라는 걸 은연 중에 인지시킨다. 즉 만화 속에는 그런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머를 통해 슬쩍 제시해 놓은 것.

 

그러면서 차츰 차츰 다양한 법칙들을 소개한다. 즉 만화 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르며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전개된다는 것이나, 만화 속으로 들어간 오연주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 같은 법칙들이다. 이렇게 마치 게임 같은 법칙들이 조금씩 소개되고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자 <W>의 상상력은 더 과감해진다. 이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지만 여기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그다지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그동안 많은 만화 속 세계의 법칙과 설정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일 그만한 적응 기간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들이 나왔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만화 같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타 장르들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건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함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시그널>에서 시청자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허용한 건, 그 함의가 진실이나 정의의 실현 같은 이야기의 메시지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W>는 아직 그 함의를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게 여겨지는 메시지들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고, 혹은 판타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신과 관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이야기의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송재정 작가의 도전은 박수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드라마가 가족과 멜로와 몇몇 장르물들 사이에서 마치 도돌이표처럼 어디서 봤던 설정들을 뱅뱅 돌리며 반복하고 있었다면, <W>의 상상력은 그 바깥으로 어디든 나갈 수 있다고 도발하는 듯하다. 늘 되는 드라마의 법칙에만 매몰되지 말고 끝까지 상상력을 밀어붙이라고 <W>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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