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로 가는 TV, 무엇을 찾았나

'남극의 눈물'(사진출처:MBC)

'정글의 법칙'과 '남극의 눈물'. 금요일 밤 TV는 오지로 향한다. '정글의 법칙'은 쫄쫄 굶어 허기진 배를 이끌고 한 발 떼기도 힘들 정도의 진창을 걷고, 위험천만한 강을 건너서 파푸아 정글의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김병만족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같은 시각, '남극의 눈물'에서는 무려 300일 동안 극한의 오지 남극에서 목숨을 걸고 찍어온 영상들의 프롤로그가 방영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펭귄들과 해표, 물개, 혹등고래 등의 극지에서의 생태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걸 찍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촬영팀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기대감을 자아내게 했다. '정글'과 '남극'.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찾아서 그 먼 오지까지 달려간 것일까.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족의 생존기를 다루는 '생존 리얼리티쇼'. 험난한 정글 속에서 맨몸으로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며 생존하는 과정을 그린다. 다큐멘터리적인 리얼 영상이 심지어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의 생생한 정글의 느낌을 전해주지만, 또한 그 와중에도 예능적인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 퓨전적인 프로그램이다. 사실 리얼리티쇼가 전 세계적인 방송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이러한 '생존기'를 담은 프로그램은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은 이러한 서구의 '생존 리얼리티쇼'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혼자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김병만을 위시한 리키김, 노우진, 광희, 태미가 하나의 가족을 이뤄 이 극한 지대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생존능력이 뛰어난 김병만과 리키김은 그래서 때로는 이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건 강물 건너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생존능력을 발휘하는 그 원동력은 거기 다른 구성원들이 함께 한다는 것 때문이다. 이 가족적인 분위기는 '정글의 법칙'만이 가진 '생존 리얼리티쇼'의 특별함이다. 즉 정글 속에서도 그들이 보여주는 건 생존만이 아닌 점점 형제처럼 가까워지는 그들의 가족애다.

이것은 '남극의 눈물'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남극의 눈물'을 여느 생태 다큐멘터리와 차별화시키는 것은 그 안에서도 인간과 동물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끈끈한 가족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황제펭귄이 혹한 속에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발 위에 올려놓고 몸으로 덮어주는 장면이나, 새의 공격으로부터 자식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버리는 어미 펭귄, 종족 번식을 위해 온 몸이 찢겨지는 싸움을 벌이는 해표, 거대한 체구에서도 모성을 느끼게 하는 혹등고래의 생태는 그것이 동물이라는 하나의 테두리로 포괄하는 우리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혹한 속의 생태 풍경들 속에 또한 한 풍경으로 자리한 남극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어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남극의 모습은 그 이야기를 지구촌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정글의 법칙'과 '남극의 눈물'. 어찌 보면 달라 보이지만 또 달리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결국 오지에서 발견한 건 신기한 풍경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인간'이다. 어쩌면 인간애나 가족애 같은 말은 이제 이 편안한 세상에서는 너무 흔해빠진 말이 되어 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굳이 오지로까지 달려가는 TV를 통해서 비로소 그 말이 가진 절절함을 발견하게 되니 말이다. 그 곳에서의 '법칙'과 '눈물'은 어쩌면 그간 무뎌진 우리의 인간애에 대한 감각을 벼려줄 지도 모르겠다.


2인자 연기, 이 정도면 명품이다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이 친구 특별하다. 그저 처음에는 '달인' 김병만 옆에서 보조하는 정도의 캐릭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차츰 그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류담의 존재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억지를 부리는 김병만에게 조소 섞인 웃음을 날리며 "뭐라고요?"하고 묻는 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달인'이라는 코너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조연 없는 주연 없듯 2인자가 없는 1인자가 있을 수 없다.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이제는 한 물 간 스타 최곤(박중훈)에게 말하듯,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그 별을 빛나게 하는 별, 그가 바로 류담이다.

'달인' 바깥으로 나와 연기의 영역으로 들어온 류담은 좀 더 특별해진다. '선덕여왕'에서 그는 이문식과 이른바 '죽방고도' 콤비를 이뤄 사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문식이야 감초 연기로 정평이 나 있던 연기자였기에 그다지 두드러질 것은 없었지만, 고도를 연기한 류담은 말 그대로 '재발견'이었다. 보통 개그맨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그런 카메오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고, 다양한 표정연기는 류담의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게 만들었다.

특유의 푸근한(?) 몸집에 억울한 얼굴과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바보 같은 웃음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천진난만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그가 주인공 옆에 서 있으면 어딘지 마음이 든든하고 푸근해진다. 달인 김병만 옆에 늘 그림자처럼 서 있는 류담이 그렇고, 덕만 옆에 죽방과 함께 서 있던 고도가 그랬으며, '빛과 그림자'에서 강기태(안재욱) 옆에 영원한 동생으로 자리한 양동철(류담)이 그렇다. 그는 중심에 서 있지는 않지만 그 중심을 빛나게 해주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이 부분에서 그저 '달인' 김병만의 보조처럼 여겨졌던 류담이 사실은 김병만이 흉내 낼 수 없는 '연기의 영역'을 가진 존재라는 게 드러난다. 김병만도 마찬가지로 코미디를 바탕으로 연기를 하는 개그맨이지만, 류담은 코미디 연기 이외에 정극의 연기도 점점 가능한 배우로 성장해가고 있다. '빛과 그림자'에서 류담이 연기하는 양동철은 그저 강기태를 보조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한 명의 어엿한 연기자로서 의리에 죽고 사는 동생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러한 류담이 가진 특별한 존재감이 빛났던 적이 있다.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족(?)이 아프리카의 힘바족 마을에 들어갔을 때다. 모두들 어딘지 어색하고 서로 다가가지 못하는 그 순간에 류담은 힘바족과 가장 빨리 친하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어 보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류담이 가진 개그맨이자 연기자로서의 가장 좋은 장점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선한 웃음은 그게 누구든 쉽게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개그맨으로서 연기자로서 이만큼 좋은 자질이 있을까.

류담은 중심보다는 주변에서, 별이기보다는 그 별을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중심과 주변이 구분되지 않고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시대를 맞아 그 역할 자체로 빛나는 별이 되고 있다.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별을 빛나게 하는 게 어둠만은 아니다. 별 옆에서 같이 빛나면서 별을 비춰주는 별, 그게 바로 류담이다.


'정글', 우리가 생존에 열광하는 이유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디스커버리 채널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는 이른바 생존 리얼리티쇼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는 말 그대로 오지에 로프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가 생존하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오지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벌레 정도는 생으로 꿀꺽 하기 일쑤고(단백질 보충을 위해서), 뱀을 잡으면 '최고의 만찬'이라고 한다. 살을 에는 듯한 로키 산맥 강물을 배낭 하나에 의지해 맨몸으로 래프팅(?)을 하고, 절벽 정도 오르내리는 건 일도 아니다.

'1박2일'의 강호동은 가끔 프로그램을 통해 우회적으로 베어 그릴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야생 버라어이티쇼'를 부르짖던 그에게 베어 그릴스가 보여준 진짜 생 야생 리얼리티쇼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겨울에 바닷물이나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 정도는 사실 야생도 아니었던 거다. 실제로 그는 베어 그릴스 같은 진짜 생 야생 리얼리티쇼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다시 복귀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런 프로그램이 가장 적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야생에서 생존하는 모습 그 자체가 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어 그릴스 같은 생 야생 리얼리티쇼의 기회는 김병만에게 먼저 왔다. '정글의 법칙'은 물론 '인간과 자연의 대결'만큼 생 야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그 어떤 리얼 프로그램보다 더 야생이다. 아프리카 악어섬에서 있었던 생존기에서 김병만과 그 일행들은 노숙을 하고 벌레와 뱀을 잡아먹고 스스로 뗏목을 만들어 섬에서 탈출해야 했다.

물론 '인간과 자연의 대결'과 다른 점도 있다. 김병만이 가진 달인 캐릭터는 이 다큐 같은 리얼리티쇼에 예능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 야생 환경 속에서도 김병만은 놀랍게도 예능을 선사한다. 악어섬을 탈출해 보여준 힘바족과의 공존 과정은 '정글의 법칙'만의 차별성을 만들었다. 단지 자연과 대결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연과 동화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좀 더 가족적인 야생 리얼리티쇼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자연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옥의 정글' 혹은 '극한 생존의 땅'으로 불리는 파푸아의 정글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는 자연을 보여준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과 도처에서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는 벌레들, 그리고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듯한 뜨거움을 안기는 풀들까지. 정글 체험 자체가 처음인 새 멤버 김광규는 벌레에 대한 알레르기 증세로 몸이 퉁퉁 붓는 고통을 호소하다 하루 만에 긴급 귀환되었다. 예고편에서 잠깐 보인 것이지만 물살에 휩쓸리고 벌레의 습격을 받는 그 극한의 생존 공간에서도 과연 이들은 악어섬에서 보여준 것처럼 예능을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생존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갖고 있는 '생존본능' 때문이다. 평상 시 안전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굳이 발현되지 않는 이 '생존본능'을 그 극한 상황의 리얼리티쇼에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고무된다. 하나는 그런 본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있는 이 안전한 문명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김병만족이 '정글의 법칙'의 생존공간에서도 더 가족을 떠올리고, 그들 자신들도 유사가족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존이 그저 극한 야생에 대처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무언가에 대한 희망, 그 자체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의 베어 그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길 생존본능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사실 산다는 게 늘 치열한 건 아니라 애써서 생존하겠다는 태도는 필요가 없죠. 하지만 우리 내부의 어떤 요소들은 자극과 격려가 있어야 발휘되는 것이 있죠. 지금 저의 경우에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등에 하루 종일 매고 다니는 게 배낭이 아니라 제시(2살 난 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원동력이 되요." 어쩌면 우리가 '생존'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극한상황을 통해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기 늘 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가족 덕분에 이 도시의 정글에서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정글',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정글의 법칙' 악어섬이 보여준 건 '생존'이었다. 그 극한의 낯선 상황에서 가장 빛난 건 단연 김병만과 리키 김이다.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하면서 정글에서의 생존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반면 그 생존 앞에 힘겨운 얼굴을 보인 두 사람이 류담과 광희다. 하지만 악어섬을 탈출(?)해 힘바족 마을로 온 그들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낯선 힘바족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류담과 광희의 새로운 가치가 드러났다. 바로 '공존'의 가치다.

낯가림이 심한 김병만보다 류담이 돋보인 건 열린 마음이다. 아무에게나 다가가 말을 걸고(물론 힘바족 말도 잘 모르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웃어주고, 때론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주자, 힘바족들도 조금씩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힘바족 여인들에게 김병만은 그저 '키 작은 친구'였지만, 류담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사위삼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유는 하나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가 드러난다. 제 아무리 살아남는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다. 결국은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류담과 광희가 열어놓은 공존의 물꼬에 김병만도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고, 마을 한 가운데 그늘집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시냇물가에 작은 간이 목욕탕을 만들어 아이들이 들어가게 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 김병만에게도 공존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은 왜 이런 조그만 목욕탕이 필요한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사과를 나눠주고 함께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류담과 광희는 마치 힘바족의 가족이 된 것처럼 그들과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차츰 적응을 하게된 김병만 역시 나무를 타고 오르는 힘바족 청년들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한층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무지 못 오를 것이라 생각한 그 나무 타기를 선보인 김병만에게 힘바족 청년은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공존을 위한 여러 가지 법칙들이 선보여졌다는 것이다. 힘바족이 쓰는 언어를 하나하나 적어서 간단한 것이나마 말을 건네는 행위, 함께 먹을 것을 건네고 먹는 행위, 마을 사람들에게 선의를 보여줘 마음을 얻으려는 행위, 또 그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행위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건 류담의 반전이 보여준 '웃음'의 힘이었다. 한번 웃겨주는 것으로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사실 이것은 '웃음의 기원'을 추론할 때도 등장하는 얘기다. 뭔가 낯선 존재에 대한 극한 두려움이 '사실은 난 너의 적이 아니야'라는 긴장의 이완을 보여주면서 생겨난 게 치아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 즉 웃음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웃음이 가진 힘은 사람들을 '공존'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어쩌면 생존보다 더 강한 욕구가 공존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저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을 넘어선 후의 극도로 외로운 삶을 떠올려보거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윌슨씨(사실은 배구공인)를 보며 오열하던 톰 행크스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글의 법칙'이 전편에서 생존을 보여주고, 이어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김병만보다 더 빛난 류담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존'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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