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질문, 우린 과연 진짜 말하고 듣고 있는 걸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차진우(정우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저 평범하게 누구나 할 법한 그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차진우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듣는다’는 건 그래서 다른 의미로 들린다. 그저 소리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일 수 있다는.

 

그 날은 정모은에게는 너무나 힘들 날이었다. 배역 캐스팅이 되어 기뻐하며 촬영장에 갔지만 알고 보니 뺨 맞고 물세례를 받는 역할이라 빠른 촬영을 위한 더블 캐스팅이었다. 그래서 수없이 번갈아가며 뺨을 맞고 물세례를 받으며 촬영을 끝냈지만 자신이 나올지 더블 캐스팅된 다른 엑스트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없이 초라해진 마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모은은 차진우를 떠올린다. 힘들 때 부르면 오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문자를 남겨도 보지 않는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차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정모은은 집 앞에 그가 서 있는 걸 보고는 꾹꾹 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온다. 돌아선 그의 등을 살짝 잡은 채 눈물을 쏟아낸다. 정모은은 돌아볼까봐 등뒤로 숨으려 하고, 차진우 역시 그에게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걸 직감하며 그 눈물을 보이기 싫어하는 정모은을 위해 돌아서지 않는다. 

 

감정을 추스른 정모은은 자신도 모르게 차진우에게 그 날의 일들을 늘어놓는다. “저 오늘 처음으로 대사있는 역할 촬영한다고 엄청 신났었거든요. 근데 막상 가보니까 긴장도 많이 되고 정신도 하나도 없고 잘 하고 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좀 서러웠나 봐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참고...” 그렇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정모은은 깨닫는다. 말을 듣지 못하는 차진우에게 자신의 말이 너무 많았다는 걸.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진우는 아니라며 미소를 지어주고는 핸드폰에 이렇게 찍어준다. ‘수고했어요. 잘 쉬길 바라요.’ 그 말은 힘겨운 날을 보낸 정모은에게 작지 않은 위로가 됐을 게다. 

 

그래서 훗날 만나 그 날 일을 이야기하며 고맙다는 정모은에게 차진우는 의외의 답변을 핸드폰을 찍어 보여준다. ‘사실... 거의 듣지 못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실상은 너무 어둡고 말이 빨라서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정모은은 그 답변에서 ‘노력’이라는 단어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차진우에게 이렇게 익숙지 않은 수어로 말한다. “더 고마워요. 내 얘기를 들으려고 노력해줘서.”

 

자신이 듣지 못해 대화를 하는 것이 답답하지 않냐는 차진우의 물음에 정모은 역시 의외의 말을 꺼낸다. “솔직히 저는 핸드폰 없이 얘기하는 것도 좋아요. 왜 그런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순 없지만 정말이에요. 음.. 나도 모르게 한 혼잣말도 다 알아주는 것 같고. 그래서 가끔 잊어버려요. 당신이 듣지 못한다는 거.” 그러면서 오히려 차진우에게 수어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수어를 잘 못해서 힘드시겠지만.”

 

타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정모은이 말하는 ‘듣는다’는 건 단지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게다. 우리는 매일 같이 많은 말들을 듣지만 과연 그건 진짜 듣는 걸까. 그저 지나가는 소리들일 뿐인 건 아닐까. 들을 수 있어도 듣지 못하는 건 정모은이 콕 짚어낸 것처럼 ‘노력’이 없어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들을 수 있는 것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정모은의 자기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해줘서 더 고맙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차진우는 생각한다. ‘딴 생각에 빠지는 순간 눈앞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만다.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되묻기가 미안해 가끔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다시 말해달라 부탁하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믿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듣기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껏 무엇을 위해 마음에 선을 긋고 누구로부터 거리를 두려 애썼던 걸까. 나는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며 살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차진우의 이 생각은 <사랑한다고 말해줘>라는 멜로드라마가 손으로 말하는 농인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진짜 건네려는 질문을 끄집어낸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듣고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더 설레면서도 뭉클하다. 그저 쉽게 ‘사랑한다’는 말로는 다 담겨질 수 없는 진심을, 그래서 말이 아니라도 더 노력하고 마음을 다 하는 것으로 전해질 수 있는 진심을 꺼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모은이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완벽히 알아듣지 못해도 차진우와 핸드폰 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처럼.(사진:ENA)

‘사랑한다고 말해줘’, 정우성이 11년만에 선택한 멜로 뭐가 다를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산 속 외딴 곳에 있는 집. 정적 속에 산새 몇 마리의 지저귐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그 곳에 고독의 표상처럼 서 있는 그 집을 차진우(정우성)는 사진에 담는다. 마치 그렇게 침묵과 고요 속에 외롭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듯이.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남자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제주공항에 도착해 바닷가 촬영장을 찾은 정모은(신현빈)은 ‘여자4번’으로 불리는 무명배우다. 스튜어디스였지만 배우의 꿈을 시작한 그 선택은 쉽지 않다. 연기가 어색하다며 제주까지 온 그녀를 감독은 다른 배우로 바꾸겠단다. 그러면서 그녀가 배역을 위해 고심해서 산 스카프는 마음에 든다며 팔라고 한다. 정모은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무례한 말들로 가득하다. 

 

그 바닷가를 찾았다가 우연히 정모은을 멀리서 보게된 차진우는 그녀를 사진에 담는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차진우의 시선에는,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무슨 사연인지 제주를 찾아 하염없이 바다만 보고 앉아 있다 결국 죽어버린 한 남자를 벽화로 남긴다. 그 남자는 그렇게 외로운 모습 그대로 벽화 속에 남았다. 그 벽화를 보게 된 정모은은 거기에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남긴다. 

 

말이 있는 세계와 말이 없는 세계. 말로 하는 소통이 더 잘 될 것 같고, 침묵은 불통일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정모은이 마주한 세계가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가 무심코 던지는 무례한 말들 속에서 상처받는다. 반면, 차진우가 그린 말없는 고요의 벽화를 보며 알 수 없는 위로 같은 걸 받는다. 갑자기 벌어진 화재 사고 속에서 저마다 빠져나가라며 아우성을 치지만, 정모은은 그런 ‘말’ 대신 듣지 못하는 차진우를 구해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마음’에 발길을 돌린다.  

 

정모은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차진우가 전하는 감사의 표시는 말이 아니라 스케치북에 한 자씩 눌러쓴 글귀라 더 마음을 움직인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그리고 무사해주셔서.’ 듣지 못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는 건 먼저 마음이 움직이면 그리 불편한 일만은 아니다. 꼬르륵 소리에 배를 만지자, 이를 오해해 ‘아파요’라고 적은 차진우의 글에 정모은이 ‘고파요’라고 정정해줌으로써 피어나는 웃음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이들은 상대가 살고 있는 다른 세계를 알고 싶어진다.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차진우는 자신의 캠핑카로 정모은을 초대한다. 함께 라면을 끓여먹는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비를 피해 앉은 정모은은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는데, 그 와중에도 차분한 차진우를 보고는 자신도 귀를 막아 본다. 그가 사는 세계가 궁금한 것. 그녀는 나직이 말한다. “소리없이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차진우와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정모은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는가를 멜로라는 장르적 틀을 통해 묻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수한 가시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무시로 상처받고 상처주는 세상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 정모은이 차진우가 마주하고 있는 ‘침묵과 고요의 세계’를 궁금해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그건 차진우에겐 고독이겠지만. 

 

서울로 돌아온 차진우는 한 아트센터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수어로 하지만 이들의 손으로 하는 대화는 화기애애하다. 반면 배역 캐스팅을 위해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기를 선보인 정모은은 가시 같은 말들에 상처받는다. “열심히 한 티가 나요. 근데 우리가 연기 보자고 했지 암기 실력 보자고 했나 열심히 하는 사람은 뭐랄까 난 재미가 없어.” 그러자 정모은은 “제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열심히 한 게 잘못 된 건가요?”하고 되묻는다. 하지만 결과로만 판단하는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까지 듣게 된다. “아니 승무원 출신이면 좀 타이트한 유니폼이라도 좀 입고 와 가지고 어필이라도 좀 하지 이게 뭐예요.” 

 

‘거리의 이방인 옆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부디 지금은 외롭지 않길.’ 제주 어느 바닷가에서 외롭게 죽어간 사내를 그린 벽화에 정모은은 그런 포스트잇을 남겼다. 그 포스트잇에 화답하듯 차진우는 그녀의 그림을 그려 ‘배우님께’라는 글귀를 남긴 스케치북을 건넸다. 정모은은 그 글귀를 떠올리며 혼자 생각한다. ‘나, 배우라는 말 처음 들어봐요. 보조출연, 단역, 엑스트라 뭐 그렇게들 말하니까.’ 말보다 소리없이 마음을 담은 글 하나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정우성이 11년만에 하는 멜로는 이처럼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랑 혹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에서 살아왔지만, 이제 그 서로 다른 세계를 향해 마음이 움직인다. 우연히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난 자리에서 여자는 ‘열심히’ 연습한 수어로 남자의 세계를 향해 들어온다. 남자는 침묵 속에서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노력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를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준비한 말을 천천히 한 뒤엔 웃었다. 가벼운 인사 몇 마디에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냐는 듯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건  소리없는 사랑의 시작이었다.(사진:ENA)

'개천용'의 출연자 교체, 의외로 자연스러웠던 이유

 

정우성이 제대로 배성우를 입었다?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17회는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배성우 대신 박삼수 기자 역할을 맡게 된 정우성이 본격 등판했다. 배성우와 정우성. 사실 드라마 도중에 연기자가 교체되는 상황은 정상적일 수 없다. 연기자가 그간 구축해놓은 몰입감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배성우와 정우성처럼 이미지가 사뭇 다른 배우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의외로 그 교체는 생각만큼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면이 없는 건 아니다. 정우성의 스스로도 인정하는(?) 그 잘생긴 외모가 특히 큰 장벽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시청자들 중에는 정우성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정우성은 작정한 듯, 자신의 이미지를 깨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발가락 때를 만지작거리고 코를 후비고, 분장은 아예 하지도 않은 듯 진짜 자다 막 일어난 사람 같은 모습으로 배성우가 박삼수 기자를 연기할 때 자주 보이던 그 '흥분'을 고스란히 장착했다. 차분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일부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정우성의 연기는 그래서 어딘가 그 모습 속에 배성우가 연기했던 박삼수 기자의 이미지를 입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드라마는 이렇게 연기자 교체라는 황당한 상황을 시침 뚝 떼고 넘어가기보다는 아예 유머를 통해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정우성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동료기자인 이유경(김주현)이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박삼수(정우성)도 "나도 요즘 내가 어색해. 예전에 내가 아니잖아"라고 답했다. 또 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는 박태용(권상우) 변호사는 박삼수를 보며 "기자님 얼굴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배우 교체 등장에 활용한 유머와 농담은 이 황당한 상황을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전략이었고, 그것은 그만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건 제작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숨기기보다는 웃음을 통해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유머와 더불어 <날아라 개천용>의 이야기가 새 국면으로 넘어간 부분도 정우성의 교체 투입을 좀 더 자연스럽게 이어붙인 요인이 됐다. 조기수(조성하)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정황을 끄집어냄으로써 한방 제대로 먹인 후, 박태용을 아예 당으로 끌어들이려는 비선실세 김형춘(김갑수)의 행보와, 강철우(김응수) 시장이 갖고 있는 승운공고에서 다치고 쓰러져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해 마음을 쓰기 시작하는 박삼수 기자의 행보가 드라마의 새 국면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이러한 새로운 국면 전환은 자연스럽게 정우성이 연기하게 된 박삼수 기자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다시 보게 만들어준다. 

 

드라마 방영 도중 생겨난 연기자 교체는 사실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성우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벌어진 그 일에 드라마 제작진은 최대한 폐를 덜 끼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우성이 대신 들어온 것도 그렇고, 그 과정에 담긴 노련한 배려도 그렇다. 특히 정우성은 자신의 이미지를 한껏 무너뜨리면서까지 배성우가 만들었던 그 이미지를 제대로 입고 등장했다. 정우성으로 교체된 박삼수 기자의 활약을 기대하게 할 만큼.(사진:SBS)

'개천용'의 질문, 어떤 판사·검사·형사·변호사·기자여야 할까

 

조기수 대법원장(조성하)에 의해 '재판 거래'가 공공연하게 지시되고, 그 상명에 복종하지 않으면 출세는 포기해야 하는 현실. 그래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지낸 김두식(지태양) 재심 재판을 맡게 된 최동석(류연석) 판사는 갈등한다. 만일 박태용(권상우)의 말대로 "법대로만 심판"한다면 김두식의 무죄를 선고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판사로서의 미래는 끝장나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그 재심의 변호를 맡은 박태용이 가진 무기는 단 하나 '진정성'이다. 그는 진범인 이재성(윤정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가 과거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후로 사회에 봉사하며 살았던 삶을 끄집어냈다. 그를 믿어주는 이웃들의 시선 앞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려는 거였고, 그래서 이재성은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 진범은 자신이 아닌 김두식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박태용의 진정성에 마음을 움직인 건 최동석 판사였다. 그는 결국 김두식의 무죄를 선고하는 소신을 지켰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사실을 알고 찾아와 법원 안에서 싸우는 것도 좋지 않았겠냐고 묻는 박태용에게 최동석 판사는 '출포판'이란 말을 아느냐고 되묻는다. 출세를 포기한 판사. 그는 현 법원의 문제를 이렇게 꼬집는다. "법원에 있는 고위직들이 출포판들을 제일 무서워해요. 얘네는 말을 안 듣거든. 대부분의 판사들은 말을 엄청 잘 들어. 왜냐하면 출세를 해야 되니까. 그래서 내부에서는 절대로 못 바꿔요."

 

그러고 보면 <날아라 개천용>의 박태용이라는 변호사도 출세는 물론이고 성공을 포기한 변호사가 아닐 수 없다. 재심 변호사라는 것이 승소가 어렵기도 한데다 그 과정도 꽤 오래 걸려 돈이나 성공을 바라고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김병대(박지일) 같은 검사장 출신으로 최대 로펌 대석의 고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로 사는 일이지만, 박태용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박삼수(배성우) 기자나 이유경(김주현) 기자는 또 어떤가. 오로지 진실 보도를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지만 문주형(차순배) 같은 언론사 사장에 의해 기사는 편집되기 일쑤다. 그래서 이들은 선택한다. 기성 언론에 편입되어 성공의 길을 가는 기레기가 되기보다는 그 바깥으로 나와 진정한 기자의 길을 가기로. 

 

형사도 다르지 않다. 재심 사건에서 안영권(이철민) 오성시 경찰서장 같은 인물은 과거 김두식을 무고한 살인범을 몰아넣는 일로 승승장구해 서장이 되었지만, 그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려 했던 한상만(이원종)은 지구대로 좌천된다. 검사는 또 어떤가. 장윤석(정웅인)처럼 정치 검사로 승승장구하는 인물이 있는 반면, 소신을 지키다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황민경(안시하) 같은 인물도 있다. 

 

결국 <날아라 개천용>을 보면 양극단으로 나뉘는 판사, 검사, 형사, 변호사, 기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직종에 있는 인물들이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모두가 하나로 얽혀있다. 암담하게 느껴지는 건 출세해 이른바 잘 나간다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보다는 이익을 위해 그것을 저버린 이들이다. 반면 양심과 소신을 지킨 이들은 힘겹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조직 바깥에서 저들과 싸운다. '출포판'만 있는 게 아니라 '출포검', '출포형', '출포변', '출포기' 등 어떤 직종에서도 '출포O'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저 드라마로만 보기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 과연 어떤 판사, 검사, 형사, 변호사, 기자여야 바람직할까. <날아라 개천용>은 그 극명한 대결구도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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