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아역 연기에 남는 씁쓸한 뒤끝

 

이건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다. 주말극 <다섯손가락>과 <메이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얘기다. 이 두 주말극은 모두 성공에 대한 욕망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전략을 가진 드라마다. <제빵왕 김탁구>의 성공 이후에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출생의 비밀과 대결, 그리고 성장드라마의 요소를 이 두 드라마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초반부에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이 어른들 못지않은 대결의 날을 세우고 있는 건 이러한 유사한 전략적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메이퀸(좌)'과 '다섯손가락(우)'(사진출처:MBC,SBS)

<다섯손가락>에서 인하(김지훈)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데려온 배다른 형 지호(강이석)를 사사건건 무시하고, 밀어내기 위해 거짓말도 일삼는다. 피아노 대결에서 지호를 이기기 위해 다치지도 않은 손에 깁스를 하고 동정표를 얻어 1등을 차지하는가 하면, 대결 당일 지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지호의 친 엄마를 봤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인하는 어린 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아빠인 유만세(조민기)다. 유만세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후계 운운 하면서 경쟁 구도를 노골화하는 혹독함을 보여준다.

 

<메이퀸>에서 해주(김유정)는 어린 시절 버려져 천홍철(안내상)의 집에서 자라난다. 천홍철이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아내 조달순(금보라)은 그런 해주를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이 드라마에서 해주는 마치 옛 드라마의 억척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낸다. 동생을 챙기고, 가족의 밥을 챙기고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다. 또 이 드라마의 창희(박건태)는 천지그룹의 오너인 장도현(이덕화)의 집에 얹혀사는 아버지 때문에 늘 그의 아들인 일문(서영주)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데 이 일문은 창희의 아버지인 박기출(김규철)을 창희 앞에서도 하인 부리듯 하는 패악을 저지른다. 역시 아이로서는 보기 힘든 지나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두 드라마가 아역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이들이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라는 얘기는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역들이 어른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섯손가락>의 인하와 지호를 각각 연기하는 김지훈과 강이석이 그렇고, <메이퀸>의 김유정이나 박지빈, 박건태가 그렇다. 특히 김유정은 아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 이어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아역의 선을 넘어서버린 느낌이 있다.

 

이렇게 연기력이 어른 못지않은 아역들이 투입되면서 자칫 막장으로 흘러갈 수 있을 정도로 자극이 강한 이 두 드라마는 확실한 두 가지 이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당해도 참혹할 정도의 상황을 아이들이 겪게 됨으로써 그 자극을 더 높여주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막장의 느낌을 상당히 상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아역 분량이 드라마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연기력으로 무장한 아역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드라마로서의 이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장점이 분명하다고 해도 이를 통해 아이들 같지 않은 아이들이 방송에 점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의 설정이 점점 막장에 가까운 자극으로 흘러가고, 그 속에 아이들이 배치된 상황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현실을 표징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막장 같은 세상에 아이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의 아역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아이들 같지 않게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있는가 감탄하면서도, 씁쓸한 뒤끝이 남는 건 그 때문이다.

주말극의 새로운 도발,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

'글로리아'의 첫 장면은 요즘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달동네 풍경에서 시작한다. 그 불빛이 반짝거리는 동네의 원경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새벽부터 일어나기 위해 맞춰놓은 서너 개의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주인공 나진진(배두나)이 부스스 일어난다. 그녀 옆에서 같이 일어나는 언니 나진주(오현경)는 어딘지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척 봐도 알 수 있는 나진진의 곤궁함.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새벽부터 신문배달에 김밥장사, 게다가 세차 알바까지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가끔 진주가 사고를 치지만 진진은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반면 이 달동네 풍경과 대비되는 또 다른 그림으로 '글로리아'는 시작한다. 그것은 어딘지 절망적인 얼굴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정윤서(소이현)다. 그녀 옆에 우연히 앉게 된 이지석(이종원)의 말대로 그녀는 "창문이라도 열려 있으면 꼭 뛰어내릴 것 같은 표정"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황으로 보면 그녀는 하고 싶던 발레를 못하게 되었다. 나진진과 비교해보면 절망의 이유조차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한다.

달동네의 이웃들은 가족 같다. 사고뭉치지만 하동아(이천희)는 진진의 오빠나 되는 것처럼 그녀를 챙기려 들고, 그의 조카인 하어진(천보근)은 아침마다 진진의 김밥 장사를 돕고 진주와는 연인(?)처럼 친하게 논다. 김밥을 만들어 진진에게 납품(?)하는 셋집 주인 오순녀(김영옥)는 진진의 할머니 같다. 셋집에서 살며 나이트클럽 '추억 속으로'에서 일하는 손종범(이성민)이나 밴드마스터인 이윤배(김병춘), 웨이터인 박동철(최재환) 역시 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일원이다. 그들은 가난해도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 있다.

반면 정윤서의 집안이나 이강석(서지석)의 집안은 모두 마치 모래알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정윤서의 엄마(정소녀)는 딸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윤서가 자살을 기도하자 그녀는 "사는 게 힘들어서 수면제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도 살아!"하며 딸을 나무란다. 이강석은 집안에서 이른바 서자다. 그의 친모는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강석의 아버지 이준호 회장(연규진)의 관심을 끌려고 늘 사고를 친다. 아마도 그래서 홍콩으로 보내졌지만 질리게 술 마시고 도박하고 하는 것도 질려버린다. 그녀는 사는 게 너무너무 지겹다고 말한다. 서자 취급받는 이강석은 의붓형제인 이지석이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자리를 빼앗자 절망한다.

이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가족처럼 지내는 달동네 가족들과, 가족이란 테두리로 묶여있어도 모래알처럼 반목하는 상류층 가족들은 '글로리아'라는 드라마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돈 천 만원이 없어서 감방에 가게 된 진진을 빼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는 진진의 월셋방 보증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알게 되자 절망하는 진진에게 "그 천 만원 없다고 사람이 죽겠냐? 지금까지 살던 것처럼 어떻게든 살겠지 뭐."하고 말하는 하동아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말해준다.

절망의 바닥에서도 서로를 위무해주며 어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달동네 월셋방이지만 기타 하나 들고 "떡볶이를 사랑한 계란. 떡볶이 당신을 닮고 싶어서 난 하얀 얼굴에 고추장까지 뒤집어썼지. 아- 무정한 당신은 어묵에게로..." 같은 얼토당토않지만 이웃들을 웃게 만드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 것. 나진진의 말대로 솔잎을 먹고 살게 태어난 송충이라도 태어난 이유는 있는 법. 그래서 '추억 속으로'라는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무대가 된다.

"너희들은 여기가 삼류 나이트라고 비웃겠지만 난 아냐." 이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을 여전히 쥐고 놓지 않는 정우현(이영하)은 그래서 이 '글로리아'라는 조금은 구식의 드라마를 여전히 손에 쥐고 어떤 희망을 꿈꾸는 정지우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이것은 세련된 상류층의 이야기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해왔던 주말극들에 대한 신선한 도발이다. '글로리아'라는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주말예능이 주말극보다 더 좋은 이유

드라마가 가지는 진정성과 리얼리티는 이제 옛말이 된 걸까. 주중의 드라마들이 그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게,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나 '천만번 사랑해' 같은 주말드라마들은 이 진정성과 리얼리티를 이제는 포기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오히려 진정성과 리얼리티는 적어도 주말에는 드라마보다 예능에서 찾아진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전하는 이야기가 이들 드라마보다 더 진정성이 있고 리얼리티가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드라마의 퇴행은 어디까지 가고 있는 것일까.

주말 전체 시청률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는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저녁 8시라는 시간대에 방영되어도 좋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자극적이다. 문영남 작가의 개성이 그대로 묻어있는 이 작품은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지지고 볶는(?) 이야기가 끝없이 반복된다. 이 드라마 속에서 연적은 거의 범죄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랑을 방해하고, 시어머니는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착한 며느리를 구박하고, 새로 들어온 못된 며느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손아래 며느리를 골탕 먹인다.

지질한 캐릭터들은 이 드라마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동인이 된다. 이 민폐형 캐릭터들은 열심히 살아가려는 다른 가족의 삶을 파탄 낼 정도의 패악을 보여준다. 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두 가지다. 포기하거나, 그래도 제 자식이라고 두둔하거나. 그러니 그걸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가족드라마의 가족은 시청자에게 하나의 대안가족처럼 감정이입이 되기 마련인데, 그 속에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물론 가족드라마는 이러한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루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갈등은 현재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때 공감대가 형성된다. '수상한 삼형제'의 갈등은 그러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정도로 과거의 것들을 반복하고 있다. 불륜, 장남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가 만드는 짐, 천편일률적인 고부 갈등 등등. 게다가 이 드라마의 갈등 상황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 있다는 점에서 작위적인 느낌마저 준다. 즉 "저런 인간은 늘 저렇게 살아 간다"는 상투적이고 인위적인 설정이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공감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가족드라마에서 그토록 예전부터 반복되어온 갈등의 양상이다. 현재적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반복적인 갈등 상황을 제시해 시청자의 눈과 귀를 붙잡아 놓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퇴행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말 드라마에서 두 번째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천만번 사랑해'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대리모라는 설정을 활용해 전형적인 모성 신파극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관계를 살펴보면 실로 거의 거미줄 같은 복잡함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대리모를 해서 아이를 준 집안이 하필 자신이 사랑해 결혼한 남자의 집안이라는 사실, 한 남자를 두고 자매가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던 상황, 대리모를 주선한 여자의 딸이 하필 그 아이를 준 남자와 불륜관계가 되는 상황 등은 아무리 양보해도 지나친 우연의 남발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어 놓았기 때문에 물론 갈등 상황은 끊임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상식적인 선을 이미 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 주말극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나 '천만번 사랑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작위적이라는 것이고, 그 주창하는 메시지 역시 현재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미 닳고 닳은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 주말극들이 가지는 퇴행적인 모습에 주말 예능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와 진정성은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실험성, '1박2일'이 그려내는 작위성 없는 리얼리티, '일밤'이 보여주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진정성. 이들 주말극이 갖지 못한 것들을 주말 예능들이 갖고 있는 형국이다. 주말극, 주말 예능처럼은 못하는 것일까.

주말극을 이끄는 세 커플, 삼색멜로

주말극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한때 주말극이 전체적인 침체기를 겪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 이처럼 주말극이 격전장으로 바뀔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보수적인 시청층의 눈높이에 맞춘 드라마들이 대거 포진하면서부터다. 이제 주말극은 마치 시간을 돌려놓은 듯한 가족드라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족드라마가 갖는 안정적인 재미 위에 극성을 끌어올리는 멜로를 빼놓을 수 없다. 저마다 다른 멜로의 양상은 그 드라마의 성격까지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수상한 삼형제'의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멜로를 일차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왕재수(고세원)다. 5년 간 사귀었지만 검사가 되자 가차 없이 주어영을 차버리고 자신은 결혼할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갖고 노는 왕재수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재수없는 왕재수의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김이상의 이상적인 모습은 그를 주어영의 구원자로 만들어놓았다. 결국 양다리가 탄로난 왕재수가 물러나게 되지만,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어영의 아버지인 주범인(노주현)이 과거 사기 전력이 있는 인물이고, 김이상의 아버지인 김순경(박인환)이 경찰이기 때문.

이처럼 '수상한 삼형제'의 멜로는 인위적인 느낌을 준다. 왕재수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죄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은 상식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분통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필 이 남녀의 아버지들이 쫓고 쫓기는 사이인 것 역시 그렇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인 장애요소들은 가족드라마의 장르적 성격상 늘 세워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선을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 하는 것은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는 이 멜로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따뜻함을 희구하게 되는 가족극과, 자극으로 치닫는 막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드라마다.

한편 '천만번 사랑해'의 백강호(정겨운)와 고은님(이수경)의 멜로는 지극히 고전적이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대리모를 하게 되고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고은님을 백마탄 왕자 백강호가 지켜주는 이야기. 여기에 가미되는 백강호와 배다른 형제지간인 백세훈(류진) 간에 벌어지는, 위기에 빠진 가업 살리기의 이야기 역시 전형적이다. 계모 아래서 차별대우 받는 이야기와 사랑의 구원 이야기는 신데렐라 그대로이며,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측 가족들의 이야기는 신파 드라마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은 의외로 크다. 굳이 새로운 이야기로의 변주를 하지 않아도 신데렐라라는 고전적 틀 속에서 은님을 지켜주고픈 마음은 강호라는 왕자를 희구하게 만든다. 꽤 자극적인 설정으로 치달을 것 같지만 드라마는 의외로 따뜻한 구석을 비춰준다. 은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돈으로 뭐든 움직일 것 같은 세상에 대한 반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다분히 신파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을 갖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그 위험성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멜로에서 나오고 있다. 강호와 은님의 멜로가 전면에 부각되고, 심지어 난정(수진)과 이철(김희철), 청자(김청)와 봉피디(김진수)의 코믹 멜로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륜 속에 헤매는 세훈(류진)과 연희(이시영)의 어두움이 상쇄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대 웃어요'는 서로 다른 계층에 살아가는 두 가족의 한 지붕 살이에서 만들어지는 해프닝들을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나뉘어진 이 계층 간의 소통을 그려내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시종일관 웃음을 주는 코믹적인 설정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 극적 갈등에서조차 웃음을 뽑아낸다. 이것은 심지어 정인(이민정)을 차버리고는 다시 돌아온 한세(이규한)가 악역이면서도 웃음을 줄 정도다. 물론 이러한 웃음은 풍자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드라마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악역이라도 여전히 따뜻하다.

이 드라마에서 현수(정경호)와 정인의 풋풋한 멜로는 그저 멜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의 멜로는 결국 두 가족의 통합으로 여겨질 만큼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맞닿아 있다. 그만큼 장애도 많고 아슬아슬한 점이 있지만, 이것은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멜로가 주목되는 것은 그 긍정적인 힘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런 나라도 되겠니"하고 물어보는 곳에서는 이 드라마가 가진 상대방에 대한 소통의 욕구를 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멜로가 드라마의 어떤 성격까지를 드러내는 이유는 멜로가 가진 특유한 틀이 드라마의 주제를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멜로에는 늘 장애요소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장애요소는 결국 그 드라마의 문제제기가 되곤 한다. 즉 시어머니의 방해는 그러한 구세대적 가족제도에 대한 멜로의 문제제기가 된다.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멜로가 그려내기 때문이다. 주말극 속에 보여주는 이 세 커플의 멜로가 그 드라마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그런 이유다. 멜로를 통해 보면 '수상한 삼형제'는 이 드라마의 인위적 성격을, '천만번 사랑해'는 고전적인 성격을, 그리고 '그대 웃어요'는 현실비판과 긍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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