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마프>, 남은 건 친구뿐, 짠내 나는 꼰대들

 

이 어르신들은 죽음을 끼고 산다. 문정아(나문희)길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조희자(김혜자)는 너무 멋있다며 같이 죽자고 한다. 그들은 어르신 사진만 찍는 사진작가인 마크 스미스(다니엘 헤니)에게 찾아가 다짜고짜 영정사진을 찍으라고 명령한다. 거기서 박완(고현정)의 할머니 오쌍분(김영옥)은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 죽으면 울어라고 말한다. 그런 얘기 말라는 박완에게 할머니는 저승바다에 발 담근 지오래됐다고 한다. 그리고 걱정 말라며 지금은 골로 가는 것보다 집에 밭일이 더 급하다고 말한다.

 

'디어 마이 프렌드(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가 그려내는 흔한 장면들이다. 아예 대놓고 꼰대 드라마라며 우리가 꼰대라 치부하는 어르신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는 드라마. 그래서인지 이 어르신들이 항상 옆에 친구처럼 달고 다니는 건 죽음이다. 조희자는 집에서 전구 하나를 스스로 갈지 못하고 망상 증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자 건물 꼭대기에 올라간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이지만 그 밑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이 다칠까봐 내려와 도로로 뛰어들기도 하고 한강 물로 뛰어들려고도 한다.

 

물론 미수에 그쳤지만 그런 조희자가 친구들 영정사진 찍을 때는 피했다가 살짝 사진작가를 찾아와 부탁해 찍은 사진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찍은 그 사진 속에서 조희자는 웃는 것처럼도 보이고 우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찌 보면 부끄러워하는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겹쳐지는 얼굴을 보인다는 건 그 자체로 뭉클해지는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드>는 그런 드라마다. 우리가 막연히 꼰대라 치부하며 봤던 어르신들의 여러 얼굴들을 들여다보는 드라마.

 

그 나이에도 여전히 꿈이 있다. 꼰대에 구두쇠 남편을 둔 문정아는 힘들 때마다 자신을 붙잡아 놓기 위해 남편이 사탕발림으로 말하곤 했던 세계일주의 꿈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녀는 길 위에서 벼랑 끝으로 신나게 차를 몰아 죽음까지 날아간 <델마와 루이스>를 꿈꾼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집 구석을 벗어나 길로 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죽음을 향해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무작정 집을 나선 그녀는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조희자를 부른다. 결국 남은 건 친구뿐. 아마도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여진 것일 게다. 그리고 그들은 차를 몰고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신나게 달려 나가지만 그들 앞에 놓인 건 그런 멋진 죽음이 아니라 사고로 벌어진 지독한 현실이다.

 

박완의 엄마 장난희(고두심)는 남편의 불륜을 집안에서 목격한 아픔이 있다. 또 여전히 그녀의 어머니가 돌보는 장애인 동생도 있다. 그래서 박완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모든 남자가 되지만, 유부남과 네 삼촌처럼 장애인은 안된다논란까지 야기한 대사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이런 편견들을 가감 없이 끄집어내 깨려는 목적으로 이런 대사를 집어넣었다. 결국 박완이 사랑하는 서연하(조인성)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장난희가 그 편견을 스스로 넘어서고 박완 또한 장애는 불편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걸 담아내려는 게 이 드라마가 가려는 목적이다.

 

박완과 서연하라는 여전히 빛나는 남녀의 안타깝고도 설레는 사랑이야기가 있지만 죽음을 무시로 끼고 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디어 마이 프렌드>는 단순한 멜로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나아간다. 박완은 사진작가의 집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라는 문구를 읽어낸다. 남녀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나 편견은 시한부라는 그 문구 앞에서 무색해진다.

 

젊어서 영원히 살 것만 같을 때는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죽을 것이라는 그 명제를 직시한 후 바라보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 아픔도 이별도 사랑도 모두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보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라는 말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 <디어 마이 프렌드>는 그런 얘기를 건네고 있다

<돌아저씨>, 복수극 아닌 공감의 방식을 택한 까닭

 

만일 웃음을 걷어냈다면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얼마나 슬픈 드라마가 됐을까. 뼈 빠지게 회사에서 온 몸을 바쳐 일하다 덜컥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그것 역시 자살로 덮어버리려는 현실. 돌연사니 과로사니 하는 사인들이 분명하지만 그 노고를 인정해주기는커녕 부정하고, 그 노고의 과실 또한 가로채는 현실. 무엇보다 모두의 기억 속에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남겨버리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다.

 


'돌아와요 아저씨(사진출처:SBS)'

또한 이러한 가장의 죽음은 그 가족의 슬픔이자 비극이기도 하다. 김영수(김인권) 과장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들은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 그의 아내 다혜(이민정)는 발도 딛기 싫을 남편이 죽은 그 백화점에서 일한다. 무엇보다 자살로 알려진 사인은 가족을 충격 속에 빠뜨린다. 가장의 자살이라면 그 가족에게 남을 깊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너무나 큰 비극이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이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 비극은 슬프고 나아가 당사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코미디의 형태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과장되어 있고, 상황은 판타지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는 여기에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이들을 되살려 놓는다.

 

죽음 앞에 그 사람의 존재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심지어 생명보다 더 큰 가치인 양 내세워지는 돈보다 더 큰 가치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당장의 삶과 나아가 큰 돈의 유혹은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하니까.

 

이해준(정지훈)의 몸으로 역송된 김영수가 결국 그것이 자살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밝혀내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차재국(최원영)은 거액의 돈으로 이를 덮어버리려 한다. 그 돈이면 다혜네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다혜는 이를 거부한다. 그것이 마치 남편의 죽음을 돈으로 가치 매기는 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최근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진 자들의 갑질을 담은 무수한 복수극과 소재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 최근 많아진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우리가 공분하는 건 가진 자들이 생명조차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다. 어찌 보면 자본화된 세상의 극단에 대한 비판이 최근의 무수한 범죄 스릴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의 소재라고 해도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시선이 사뭇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복수가 주는 판타지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돌아온 자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금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다. 적어도 그들은 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판타지를 담은 코미디 장르로 변환되면서 역송된 이들은 한 가지 지켜야할 약속을 갖게 된다. 그것은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설정을 집어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겨진다. 복수를 통한 해결이 아니라 이 드라마는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커져가는 사회적 분노와 그것을 반영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흔한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른 이 드라마만의 가치다. 어쩌면 자본 세상에 고군분투하다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지만 기사 한 줄 없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그들의 입장을 다시금 공감해보는 일.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잠시나마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코미디의 가벼운 웃음을 주는 이 드라마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화장>, 이러니 임권택 감독을 거장이라 부를 수밖에 

 

<화장>의 이야기는 독특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일상적이다. 누구나 접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물론 그것을 관통해서 바라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한 경륜과 연륜이 쌓여 삶을 바라보는 통찰이 들어가야 이 일상적으로까지 보이는 삶과 죽음은 비로소 그 민낯을 드러낸다.

 

사진출처:영화 <화장>

오상무(안성기)가 화장품을 파는 대기업의 상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마케팅 부서 상무인 그는 화장품을 팔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결정하느라 고심한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뇌종양이 재발해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오상무의 삶이란 헌신적이다. 밤에는 아내를 위해 힘겨운 병수발을 하고 낮에는 회사에서 상무로서의 일을 한다.

 

마치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듯한 그 얼굴에서는 그가 영위하는 것이 삶인지 고통인지를 알 수 없는 무표정이 묻어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오상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래서 더 깊은 슬픔과 허망함이 묻어난다. 삶이라는 게 결국은 버텨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욕망이라는 것이 있다. 추은주(김규리)가 새로 회사에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피어나는 풋풋한 젊음에 대한 욕망을 그는 먼 거리에 상상하며 흘끔흘끔 훔쳐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추은주를 상상하거나 만나면 느껴지는 그 생명력은 아내에게 돌아오면 깊은 죽음의 그림자로 덮여버린다.

 

생명력이 꽃밭 같은 미적 즐거움을 준다면, 죽음은 추한 냄새로 다가온다. 아내를 병수발하며 갖은 오물들을 다 받아내면서 오상무의 삶은 그 죽음의 냄새와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아름다운 생명력을 표징하는 듯한 추은주에 대한 욕망 또한 피어난다. 생사와 미추의 세계는 이렇게 오상무라는 한 인간의 양쪽을 잡아당긴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추은주가 미와 생명을 표징하고, 아내가 추와 죽음을 표징하지만 그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와인으로 표상되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이 세계의 관점으로 보면 추은주는 당장 미적인 존재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결국은 화장품처럼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반면 아내는 추한 모든 삶의 일면들을 드러내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진면목이 전해주는 어떤 아름다움 같은 걸 느끼게 된다.

 

미추의 세계가 뒤집어지는 건 죽음이라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귀결을 우리가 어깨 한 쪽에 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가? 그건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화장(化粧)이 화장(火葬)이 되는 순간 이 숨겨졌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래도 누군가의 화장(火葬)을 마치고 나온 인간들은 다시 화장(化粧)을 하고 삶으로 돌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 걸맞게 실로 놀라운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다. 물론 이 이야기의 근간은 저 소설가 김훈 원작에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것을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화로 이끌어낸 건 임권택 감독의 공이다. “영화라는 것은 나이만큼 살아낸 세월에서 쌓은 경험들이 누적된 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고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임권택 감독은 말했다. <화장>은 그 삶의 경험치들이 아니면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깊이를 담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숨 쉬듯 내놓을 수 있다니. 거장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시청률의 늪에 빠진 MBC드라마, 문제는?

 

또다시 임성한 작가다. 이번 <압구정백야>에서는 잠잠하다 싶었는데 데스노트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백야(박하나)와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조직폭력배와의 실랑이 끝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조나단(김민수)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상황에 따라 인물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성한 작가 드라마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럽고 허무한 느낌마저 준다는 점에서 전작인 <오로라공주>의 데스노트의 시작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압구정백야(사진출처:MBC)'

<오로라공주> 때 연달아 죽음을 맞이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낸 논란은 작가의 하차 운동까지 벌어질 정도로 그 파장이 컸다. 그걸 의식했는지 MBC 측은 부랴부랴 또 해명에 나섰다. 애초에 조나단의 죽음은 예고되어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갑작스런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런 죽음은 아니더라도 이번 <압구정백야> 역시 자극적인 장면들의 연속으로 시청자들의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수영장 격투신은 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화제가 되었다. 물속에서 상대방의 허벅지를 꼬집는 장면은 역시 임성한 작가라는 얘기를 만들었다. 친모인 서은하(이보희)에게 복수하기 위해 접근한 백야가 그녀에게 시어머니인지 친정어머니인지를 묻는 장면은 거의 한 회를 다 채울 정도의 치열한 육박전을 통해 보여줬다. 설정도 설정이지만 그걸 보여주는 방식 또한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 장면들이었다.

 

드라마를 하면서 방송사가 나서 해명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유독 임성한 작가의 작품을 할 때면 방송사의 해명이 이어지는 건 그 작품이 가진 논란과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논란이 벌어지는 작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그것도 일일극으로 편성하는 MBC의 저의는 뭘까.

 

작년 MBC 드라마의 얼굴이 된 건 <왔다 장보리>였다. 물론 임성한 작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막장 논란이 제기된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가족애를 그리려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연민정(이유리)이라는 캐릭터의 악행은 상식 이하로 자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막장 논란을 벗어난 것은 35%를 넘는 시청률 덕분이었다.

 

임성한 작가나 김순옥 작가 같은 자극적인 드라마를 그리는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당연히 시청률이다. 실제로 이들 작가들은 논란은 일으키지만 확실히 시청률 제조기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는 작가들이다. 하지만 과연 시청률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까. 그렇게 시청률을 가져가는 사이에 MBC드라마의 이미지가 점점 자극으로 점철되어가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 드라마 공화국이라고 부르던 시절 MBC드라마를 떠올려보라. MBC에서 만들어진 <여명의 눈동자> 같은 대하드라마에서부터 <전원일기> 같은 장수 드라마, <허준>이나 <대장금> 같은 도전적인 퓨전사극들이 전체 드라마업계를 견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물론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작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시끄럽고 시청률에 경도된 임성한 작가나 김순옥 작가가 만든 드라마들이 마치 MBC드라마의 얼굴이 된 듯한 인상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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