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2’, 가난해도 당당한 한인들, 보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유

파친코

“근데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빤 그 큰 집은 그립지 않아.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립지. 진짜 부자는, 모자수야.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란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2’에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선자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아들 모자수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이삭 역시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 곳을 떠나 가난하고 힘겨운 이들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삶의 불이 점점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는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밀고해 감옥에 보낸 것이 바로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불러 용서하려 한다. 목사는 이삭을 질투한 거였다. 부모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유일하게 유목사가 자신을 거둬주셨는데 이삭이 나타나면서 그 사랑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밀고했다는 것. 하지만 밀고한 후 그는 후회했다고 했다. “이게 변명이 안되는 거 압니다. 절대 용서 못하시겠지만...” 목사는 그렇게 용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걸 안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 이삭은 곧바로 말한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이삭의 아들 노아(김강훈)은 자신이 믿고 따랐던 목사가 아버지를 밀고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받고 어떻게 용서하냐고 절규하지만, 이삭은 말한다. “너희에게 물려줄 거라곤 이 망가진 몸뚱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건 꼭 기억했으면 한다. 후 목사와 우리들의 운명이 다 같은 처지에 놓인 거야. 노아야. 자비는 선물도 권력도 아니야. 자비는 인정하는 거야. 살려면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거.” 그는 후 목사의 잘못조차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 원작의 첫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는 건 아마도 이 작품이 이삭 같은 당시 한인들의 의연함을 그리려 하고 있다는 걸 말함이었을 게다. 다 같은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서 후목사 같은 이에게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 그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걸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말한다. 

 

이삭이 자신을 밀고한 후목사를 용서하는 장면은, 땅 주인 한금자(박혜진)를 찾아가 그 땅에 군사시설이 있었고 거기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묻혔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것조차 이용해 아베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하)의 이야기와 교차 편집된다. 솔로몬은 아베에게 그 땅을 판 후 이 소문을 내면 콜튼 호텔 측에서 개발을 포기할 거라며 당하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복수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조차 이용하려는 솔로몬에 한금자가 혀를 차자 솔로몬은 자책하는 말을 한다. 한금자도 또 선자도 자신을 경멸의 시선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런 꼴을 볼려고 그렇게 살았나? 네? 다 쓸데 없었다 하시겠죠.” 솔로몬이 그렇게 말할 때 한금자는 저 이삭이 보여준 그 의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단호하게 말한다. “후회없어 그렇게 산 거. 충분히 값진 인생이었어.” 한금자도 선자도 또 이삭도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그 속에서도 자식들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충분히 값진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삭이 죽기 직전 선자와 나누는 대사는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절감하게 한다. 이삭은 그 상황에서도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인 양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선자는 이삭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말해준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죽으면서도 아이들 걱정하는 이삭에게 걱정말라며 남편의 죽음을 직시하는 선자의 눈빛은 강인하다. 그 죽음을 피하지도 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뿐이다. ‘파친코’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건 바로 이 인간의 숭고함이 주는 뭉클함 때문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깊숙이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그 모습 앞에 누구나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애플TV+)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 12번의 다른 삶이 꺼낸 재미와 의미

이재 곧 죽습니다

한 작품 안에 이토록 다양한 장르가 겹쳐진 드라마가 있었을까. 멜로와 스릴러가 결합하고 사극과 멜로가 더해지는 식의 멀티 장르는 있었지만, 장르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의 신박한 세계다. 

 

뻔한 취준생의 회귀물인 줄 알았다면 오산

그 어렵다는 태강그룹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면접날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남자를 마주한 후 그 충격에 망쳐버린 면접에서 떨어진 이재(서인국)는 그 후로 절망적인 취준생의 삶을 살아간다. 알바를 전전하며 여자친구 지수(고윤정)에게 변변한 밥 한 끼 사지 못하는 처지에, 알바로 번 돈 전부를 투자 사기를 친 친구 때문에 다 날려버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자친구가 웬 남자랑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는 남자친구라 생각해 이별을 통보하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가 된다. 그리고 기대했던 태강그룹 최종면접의 결과는 또 불합격. 절망의 끝에서 이재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는 게 두렵지 죽음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는 이처럼 첫 회 시작한 지 15분 정도가 지난 후 주인공인 취준생이 절망의 끝에서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니 이 죽음이 끝일 리 없다. 죽었다 생각한 그는 곧 태강그룹의 둘째아들 재벌3세 박진태(최지원)로 깨어난다. 그것도 개인 전용 비행기 안에서. 그런데 그 옆에는 미스테리한 여인 죽음(박소담)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 죽음은 지옥으로 가는 이재를 붙잡아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주겠다고 한다. ‘죽음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한 이재에게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건 12번의 죽음(혹은 삶)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것. 그래서 첫 번째로 다시 깨어난 게 바로 박진태의 몸이다. 이재는 개인 전용 비행기까지 타고 있는 이 인물의 다른 삶으로 깨어난 데 대해 쾌재를 부르지만 그것도 잠시 비행기는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살려고 발악하지만 그는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사망한다. 그리고 깨어난 곳은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이다. 죽음은 그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새로운 삶 속으로 그를 보낼 것이라 하고, 거기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짜고짜 이재의 머리에 권총을 쏜다. 

 

두 번째로 깨어난 몸은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 송재섭(성훈)이다. 그는 낙하산 없이 추락해 안전그물이 쳐진 곳으로 무사히 떨어지면 30억의 후원을 받게 되는 미친 미션을 위해 하늘에서 낙하하는 중이다.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허무하게 맨땅에 쳐박고 사망하게 된 이재는 그런 식으로 제3, 제4의 삶을 계속 맞이하게 된다. 죽는 순간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회귀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자신이 아닌 다양한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점에서 그 서사는 인물들마다 색달라진다. 게다가 그가 들어간 타인은 곧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이다. 그러니 그 서사의 긴박감도 높아진다. 뻔한 취준생의 아픔을 되돌리는 회귀물처럼 보였던 이 작품은 그 첫회만에 색다른 세계관을 꺼내놓으며 신박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재난, 액션, 학원물, 조폭누아르, 멜로까지... 장르 종합선물세트

흥미로운 건 이재가 회귀하게 된 인물에 따라 다른 서사와 더불어 장르도 변주된다는 점이다. 박진태가 짧은 재난물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면, 송재섭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등장하는 액션 코믹물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 번째 몸으로 회귀한 권혁수(김강훈)는 열일곱살 고등학생으로 일진들의 상습적인 학교폭력을 겪고 있는 피해자다. 그런데 그 몸에 들어간 이재는 취준생의 어른이었다는 점에서 이 폭력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그는 머리를 써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당한 만큼 돌려주는 사이다 전개를 보여주는데, 그건 다름 아닌 학원액션물의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다. 네 번째 몸으로 회귀한 이주훈(장승조)은 조폭 해결사로 위기에 처한 보스의 여자를 구해 달아나는 중이다. 당연하 조폭 느와르의 논스톱 추격 액션이 펼쳐진다. 그러더니 다섯 번째 몸으로는 격투기 선수 지망생으로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뺑소니친 재벌3세를 대신해 감옥에 가게 된 조태상(이재욱)으로 깨어난다. 이제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장르물이 펼쳐진다. 

 

한 마디로 장르 종합선물세트라고 다양한 새로운 인물들의 삶을 살지만, 흥미롭게도 그 삶들의 겹쳐지는 부분들이 생긴다. 즉 세 번째 삶에서 권혁수를 그토록 괴롭히던 이진상(유인수)이 다섯 번째 삶에서 감옥에 가게 된 조태상의 같은 감방으로 들어오게 되는 식이다. 이러니 세 번째 삶과 다섯 번 째 삶에서 두 사람의 입장은 뒤집어진다. 권혁수로서는 피해자였지만 감방의 짱인 조태상으로서는 이진상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가해자 입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재가 죽기 전 헤어졌던 여자친구 지수의 진심을 알게 되는 멜로적 순간들도 등장한다. 모델 장건우(이도현)로 새 삶을 살게 되면서 카페를 찾아오는 지수를 만나게 되면서다. 이재지만 장건우라는 몸으로 깨어난 입장이라 눈앞에 너무나 사랑하는 지수를 두고도 다가갈 수 없는 그 절절한 멜로가 그려진다. 다시 새로운 삶으로 깨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세계관을 통해 다채로운 장르물의 묘미가 펼쳐지는 것. 요즘처럼 여러 장르들에 익숙한 시청자들로서는 그 다양한 맛을 이 작품 하나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자리에 모인 배우 유망주들

12번의 다른 삶을 산다는 세계관은 또한 12명의 배우 유망주들을 한 자리에 끌어 모았다. 서인국과 박소담을 중심으로,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 김재욱, 오정세 같은 배우들이 이재가 깨어난 새로운 몸의 주인공들로 열연했고, 여기에 고윤정, 김지훈, 김성철, 유인수, 려운 같은 배우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물론 이미 대세배우로 자리매김한 인물들도 있지만 그보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더욱 큰 배우들이라는 점에서 ‘유망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향후 몇 년이 지난 후, 각각 저마다의 작품을 통해 톱배우가 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으로서 <이재, 곧 죽습니다>가 거론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만큼 이 드라마는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배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2번의 죽음 혹은 삶을 회귀하는 것으로 <이재, 곧 죽습니다>가 하려는 이야기는 뭘까. 그건 애초 이재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던졌던 “나는 사는 게 두렵지 죽음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는 그 말이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뒤집혀가는가에 담겨 있다. 즉 이재는 계속되는 죽음을 맞이하며 어느 순간 점점 살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나를 우습게 본 죄에 대한 벌을 내리겠다고 한 것처럼, 절망 속에서도 죽음이 결코 쉽게 할 선택은 아니라는 걸 이 작품은 매 번 새로운 삶 속에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엄청 억을했는데 스스로 인생 망쳐버리고 죽음이란 감옥에 갇히게 된 걸 후회해. 너무 늦게 알았는데.. 지옥을 보고 나니까 살아있는 거 자체가 기회였더라.“ 조태상의 몸으로 회귀한 이재가 툭 던지는 이 말 속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 다채로운 장르물의 스펙터클과 치고받는 서사의 묘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몰입을 선사하면서도, 일관된 메시지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많은 회귀물들이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이미 흔해진 상황이지만, 익숙한 틀도 계속 진화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색다른 세계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재난부터 학원물, 조폭누아르, 멜로까지 없는 게 없네

이재, 곧 죽습니다

이 작품 신박하다. 시작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취준생 이재(서인국)의 아픔을 다루는 사회극처럼 보이더니, 금세 저 세상이 등장하고 다짜고짜 나타난 죽음(박소담)이 그에게 12번 죽을 기회(혹은 살 기회)를 제공하고, 그래서 다른 이의 삶으로 회귀해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삶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끝없는 학교폭력 앞에 죽고 싶어하는 학생의 몸에 들어가기도 하며, 보스의 돈과 여자를 훔쳐 추격을 당하는 조폭에, 돈 때문에 뺑소니범 대신 감옥에 들어간 격투기의 꿈을 가진 사내의 몸에 들어가기도 한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는 이처럼 회귀물을 죽음과 환생이라는 틀로 변주했다. 사는 게 더 무섭고, 죽는 건 무섭지 않다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취준생 이재에게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건가를 새삼 알려주겠다며 나타난 죽음이라는 존재가 그를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의 몸으로 12번 환생시킨다는 설정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적어도 12가지의 ‘위급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셈이다. 그 위급한 상황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는 첫 번째 환생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면, 낙하산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는 두 번째 환생은 ‘모험극’과 ‘코미디’가 엮였다. 지독한 학교폭력을 당해 죽을 결심까지 했던 학생으로 환생해 보기좋게 자신을 괴롭히던 가해자에게 시원한 한 방을 먹이는 세 번째 환생이 ‘학원 액션물’의 묘미를 살렸다면, 보스의 돈과 여자를 훔쳐 추격당하는 네 번째 환생은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오토바이 추격 액션이 돋보이는 ‘조폭 누아르’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와 죽음의 위기에 처한 그 삶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서사는 다채로운 장르들을 한 작품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이재가 환생한 몸은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연기자들도 계속 변주된다. 서인국이 이재라는 인물로 그 중심에서 연기를 펼친다면, 여기에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 등등 다양한 배우들이 이재가 환생한 몸 역할을 연기한다. 

 

여러 배우들, 그것도 호화 캐스팅이 총동원되었다는 점은 여러 장르를 가진 독자적인 여러 작품들을 보는 맛을 제공한다. 하지만 결국 지옥 앞에 선 이재라는 인물로 수렴되는 서사구조는 이러한 다채로운 재미를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묶어주는 힘을 만들어준다. 게다가 각각의 환생한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 삶 속에 이전 삶에 이미 인연을 맺은 인물이 들어오기도 하는 점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세 번째 환생에서 등장했던 학교폭력 가해자는 다섯 번째 환생에 또 등장하는데, 감방에서 싸움짱인 이재 앞에 그 가해자는 오히려 거꾸로 당하는 입장이 된다. 회귀물이 갖는 사이다 카타르시스 복수 서사가 극대화되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재, 곧 죽습니다>는 죽음과 환생을 12번 반복하는 회귀물의 틀을 가져와 그 다양한 변주의 재미를 극대화하면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째서 삶이 더 중요한가를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환생에서 태상(이재욱)의 몸으로 환생한 이재에게 감방동료가 감옥에 들어온 걸 후회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가 하는 답변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엄청 억을했는데 스스로 인생 망쳐버리고 죽음이란 감옥에 갇히게 된 걸 후회해. 너무 늦게 알았는데.. 지옥을 보고 나니까 살아있는 거 자체가 기회였더라.“ 

 

결국 <이재, 곧 죽습니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죽음까지 생각하는 현실 앞에 진짜 지옥이 무엇인가를 12번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건 허망한 죽음도 있지만 못내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고,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회라는 걸 드라마는 에둘러 말하고 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다채로운 장르의 화려함 속에서도 밑그림에 깔린 단호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이유다. (사진:티빙)

'오토라는 남자', 톰 행크스를 살게 한 작지만 큰 이유들

오토라는 남자

미국 영화 맞아? 톰 행크스 주연의 <오토라는 남자>는 마치 한국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자그마한 타운하우스에 중간 도로를 마당처럼 나눠 쓰는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응답하라1988>의 골목과 이웃들이 보여줬던 그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소소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의외로 그 감정의 진폭이 커져 끝내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영화. 

 

오토(톰 행크스)는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잃고 곧 그 뒤를 따라가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웃들과 선을 긋고 자신만의 삶에 머물며 전기도 끊는 등 끝을 준비한다. 그러니 이웃들에게 살가울 이유가 없다. 계속 함께 살아갈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하고 이웃들도 그를 대놓고 ‘꼰대’ 취급 한다. 하지만 오토가 갖가지 방법으로 죽으려 할 때마다 그 계획이 어그러지는 건 바로 그 귀찮기만 한 이웃들 때문이다. 

 

새롭게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은 어딘가 집안일에는 젬병인 남편 대신 오토를 찾는다. 공구와 사다리를 빌려달라고 하고 사다리에 올라 열리지 않는 문을 열려다 떨어져 다친 남편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자 차로 거기까지 데려다 달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운전연수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봐 달라고까지 한다.

 

그런데 툴툴거리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이 ‘꼰대 할아버지’는 그러면서도 이러한 부탁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마리솔만이 아니다. 길가에 꽁꽁 얼어붙은 길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아내의 제자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준다. 본인이 죽으려 하지만 죽을 위기에 처한 이를 구하기도 하고, 평생 지기였지만 차에 대한 취향이 달라 갈라졌던 이웃 친구가 마주한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주기도 한다. 

 

죽고 싶은 오토를 살게 하는 건 그를 귀찮게 만드는 이웃들이다. 그리고 오토가 그들을 귀찮아하면서도 외면하지 않고 자잘한 일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쓴 것처럼, 이웃 마리솔은 죽으려만 하며 오토가 그 누구도 들이지 않았던 그 길로 들어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울어준다. 그건 어둠 속에 자신만의 집과 루틴 안에만 머물던 오토를 다시 살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 죽음으로만 가던 길을 소소한 일상으로 되돌리는 것. “이게 사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일상에 있었다는 걸 마리솔은 깨닫게 해준다. 

 

베스트셀러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 영화지만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건 미국 영화에 대한 일종의 편견 때문일 게다. 사는 곳은 달라도 ‘인간의 온기’를 원하는 건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라는 걸 이 작품의 흥행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원작도 세계적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영화도 미국내 박스오피스 톱5에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를 통해 코미디 안에 잔잔한 감동과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담아내곤 했던 톰 행크스의 명불허전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마리솔 연기를 한 마리아나 트레비노다. 그가 톰 행크스와 호흡을 맞춰 보여준 연기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가슴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의 여운을 준다. 

 

<오토라는 남자>는 다른 한 편으로 우리의 이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앞서도 언급했던 <응답하라1988> 같은 작품 속 훈훈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현실에서 사라져버린 이웃들에 대한 결핍이 불러온 복고이자 추억이 아니었던가. <이웃사람> 같은 영화처럼 언젠가부터 우리네 영화에서 이웃이 따뜻하기보다는 심지어 공포를 주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오토라는 남자>가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여운이 우리네 관객들에게도 결코 작지 않은 것은. (사진:영화'오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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