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사> 아이유, 아이돌의 화려함과 쓸쓸함 사이

 

KBS <프로듀사>에서 아이돌 신디(아이유)<뮤직뱅크> 탁예진 PD마저 무릎을 꿇리는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이 인물은 그래서 조금은 안하무인격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차츰 이 신디의 도도함과 꼿꼿함은 어쩌면 상처받지 않으려는 과도한 자기 방어 본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어린 나이에 아이돌이 되어 소속사의 스케줄에 맞춰 살아가는 삶.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늘 웃어야 되는 일상. 늘 따라다니는 안티들. 무엇보다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더 어린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 느껴질 수밖에 없는 박탈감. 모든 걸 감수하기 힘겨운 나이에 이런 부침을 겪는다는 건 실로 혹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신디의 마음을 살짝 연 것이 그래서 어리바리하게까지 보이는 신입PD의 작은 우산이었다는 건 그녀가 얼마나 이 작은 진심에 목말라했던가를 느끼게 해준다. 몸매 망가질까봐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그녀에게 라준모 PD(차태현)가 챙겨준 밥이나, 무작정 소속사로부터 도주해 잠수를 탔을 때 그녀를 포근하게 맞아준 라준모와 탁예진(공효진) 그리고 백승찬(김수현)과의 지극히 일상적인 며칠은 꿈만 같았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꽁꽁 닫아두었던 그 마음을 조금 열고 백승찬에게 다가가는 신디에게서는 그래서 절실함이 묻어난다. 심지어 자신을 키워준 엄마라고 부르는 소속사 사장이 또 다른 아이돌을 데려와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현실. 그 속에서 그녀가 기댈 곳이라고는 그렇게 잠시나마 마음을 열어준 따뜻한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테일한 사정이나 상황은 다르겠지만 아이유 역시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삶과 정조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론 그 나이 또래의 귀여움을 드러냈다가 때론 쓸쓸함이 묻어날 정도로 처연해지고 때론 가녀릴 정도로 예민한 감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할 것 같은 나이와 외모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이유는 중년들의 감성과도 잘 어울릴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가 길게는 몇 십 년의 나이 차를 훌쩍 뛰어넘는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줄 수 있는 건 그래서다. 그런데 그렇게 조숙해진다는 건 그녀가 얼마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현실 경험들이 해왔다는 얘기일까. 신디라는 캐릭터와 아이유가 그렇게 오버랩되는 지점에서는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진다.

 

<프로듀사>는 예능국 PD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지만 신디라는 아이돌의 이야기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된 것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이돌들 같은 인물들마저 일상적이고 진솔한 면들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프로듀사> 역시 신디라는 인물의 진심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러한 최근 예능의 경향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첫 회에 등장했던 신디의 모습이 그 주변 인물들과의 좀 더 친밀한 만남을 통해 더 가깝게 느껴지고 그 소회까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신디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들의 숨겨진 쓸쓸한 이면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자꾸만 그녀에게 마음이 가게 된다는 것. 그리고 아이유라는 소녀를 다시 보게 된다는 건.

 

<프로듀사> 김수현 바보 웃음에도 누나들은 심쿵

 

왜 김수현이 KBS <프로듀사>를 선택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에게 이만큼 맞춤인 작품이 있을까. SBS <별에서 온 그대>로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최고의 한류스타로 떠오른 그였다. 불멸의 존재로서 동안에 지적 능력, 초능력까지 가진 완벽한 캐릭터 도민준을 연기한 그가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는 한중 양국 대중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결국 그의 선택은 <프로듀사>. 어리버리하고 아직까지는 공부로만 예능을 아는 초짜 백승찬 예능 PD가 그 인물이다. 그런데 이 어리버리한 인물 묘한 매력이 있다. 심지어 바보처럼 웃어도 누나들의 가슴을 심쿵하게 만드는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프로듀사>는 실질적으로 이 백승찬이란 인물의 힘으로 굴러가는 작품이다. 그걸 증명하는 건 그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드라마가 확실한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신디라는 아이돌 가수와 탁예진 예능 PD 사이에서 그가 보여주는 매력은 젊은 여성들부터 중년 여성들까지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디에게 백승찬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이 업계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별종이다. 뭘 몰라서 더 순수하고 곧이곧대로 인 이 인물은 친절하긴 해도 PD로서의 선을 딱 그어놓는 그 태도 때문에 신디를 더욱 애타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라고 부르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만들어 사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자신을 대하는 변대표(나영희)에게 어눌하지만 자기 소신을 밝히는 이 PD의 모습에 신디는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편 선배 PD지만 백승찬이 사고 칠 것 같다고 고백한 탁예진이라는 인물은 중년 여성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녀는 오랫동안 친구사이로 지내왔던 라준모(차태현)PD를 좋아하지만 어느새 불쑥 자기 앞에 남자로 나타난 백승찬을 느낀다. 라준모 PD에게 상처를 받고 혼자 공원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살짝 안아주는 백승찬의 모습은 그녀에 빙의된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디와 탁예진이라는 두 여자 사이에서 이 만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백승찬이 설 수 있다는 사실은 김수현이라는 연기자의 가장 큰 장점을 보여준다. 김수현은 어린 나이에 동안 외모에도 그 팬층이 상당히 두텁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과의 커플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건 어려보이지만 때로는 여성을 리드하는 독특한 매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디와 탁예진을 모두 설레게 만드는 백승찬이란 캐릭터의 매력은 <프로듀사>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소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만들어낸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가 <프로듀사>의 이 어리버리한 백승찬을 선택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선택이 그에게는 최선이고 최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죽지도 않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는 도민준 같은 캐릭터를 대치할 판타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백승찬 같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만일 김수현이 또 다른 도민준 같은 판타지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본인에게는 손실이 되는 일이다. 즉 성공한다면 기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가 깨지게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실망이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백승찬처럼 심지어 바보 웃음을 짓는 캐릭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성공하면 그의 넓혀진 연기영역이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 해도 도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수현의 선택은 옳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또 다른 백승찬 신드롬으로 이어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도민준처럼 능력자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순수하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채 누나들의 마음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다.

 

젊은 피 광희 신고식, 나이든 <무도> 멤버들에게는

 

쫄쫄이를 입고 나온다는 건 작정했다는 뜻이다. 웃기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예능인으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그 몸매(?)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옷에서는 묻어난다. 그들은 쫄쫄이를 입고 100킬로로 달려 나가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화장을 하고, 짜장면을 먹는다. 거대한 여객기를 맨손으로 끌겠다며 차가운 진흙탕에 빠지고 발 위에 균형을 잡은 채 기내식이라고 제공되는 음식을 입으로 받아먹는 연습과정을 거친다. 잔뜩 더러워진 얼굴에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구르고 또 구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무한도전> 클래식이라고도 불리고, 한편으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불린다. 벌써 10년 전부터 이들이 시도했던 것들이다. 그 때만 해도 그들은 훨씬 젊었다. 모두가 30대의 미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40대에 저마다 아이를 가진 아빠들이다. 이들 아빠들의 작정한 듯 망가지기로 한 웃음 속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심히 뛰고 넘어지고 망가지게 만드는가.

 

클래식이라고도 부르는 데서는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무한도전>과 함께 나이 들어온 시청자라면 정준하가 과거 롤러코스터 위에서 날려 보낸 짜장1의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명장면의 회고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새내기 광희의 신고식을 겸해 다시 짜장 2호에 이어 짜장3호를 날렸다. 입 안 가득 면발을 물고 얼굴 가득 짜장 범벅이 된 채.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라는 표현에 걸 맞는 힘겨운 미션들은 이 40대 아빠들의 도전에 짠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버님 박명수가 롤러코스터 위에서 새로운 화장품을 어떻게든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어떻게든 그걸 꺼내 얼굴에 바르려는 모습 속에는 웃음을 주기 위해서 뭐든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물웅덩이를 가운데 놓고 서로 잡아당겨 그 진창에 빠뜨리는 미션에서 보여준 박명수의 놀라운 선전은 그래서 아버님이라는 수식과 만나면서 먹먹한 느낌마저 준다.

 

젊은 피 광희의 신고식으로 시도하게 된 <무한도전> 클래식이자 <무모한 도전>이지만 광희보다 오히려 더 빛나는 건 40대 아빠들의 여전히 빛나는 투혼이다. 광희가 허수아비젊은 배영만종이인형그리고 졸라맨이라고 불리는 반면, 이들 10년 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오며 나이 들어간 아빠들은 여전히 너무도 익숙하게 망가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러니 이들의 웃음을 주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는 이제 뭐든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젊은 날의 치기보다는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의 무게 같은 것도 느껴진다. 그 힘겨운 미션들을 반복하며 이동하는 차안에서 그들끼리 바보처럼 과장되게 아닌데요?”를 반복하며 웃는 모습 속에는 10년 간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동료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힘겨운 상황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웃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젊은 피 광희는 이들이 웃음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코 <무한도전>이라는 자리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자리는 인기에 군림하는 왕좌가 아니라 진창 위에 몸을 굴리는 가장 낮은 자리라는 걸 깨닫지 않았을까. 아마도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후에도 여전히 쫄쫄이를 입는 걸 서슴지 않을 모습들. 추억에 젖다가 또 웃다가 짠해지는 순간이었다.

 

차승원, 유해진, 이서진, 나영석의 중년남자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이제 올해로 마흔이 되지만 그가 줄곧 프로그램을 함께 해온 남자들은 대부분 40대였다. tvN <삼시세끼> 강원도편의 이서진이 그렇고, 이번 스핀오프로 열풍을 만들고 있는 어촌편의 차승원과 유해진이 그렇다. 나영석 PD는 또 <꽃보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 편하게 찍었던 것이 <꽃보다 청춘>이라고 했다. 페루에서 찍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상, 유희열, 이적이 모두 40대다. 도대체 왜 나영석 PD는 왜 40대 남자들을 이토록 선호하는 것이고 또 그들에게서는 어떤 매력이 나오는 것일까.

 

이서진, 차도남과 그린 라이프 사이

tvN <삼시세끼> 강원도편에서 단연 주목받은 인물은 이서진이다. 나영석 PD와 서로 툭탁대며 갈등을 주로 보여주는 관계지만 그러면서도 해야 할 건 다 하는 인물이다. 나영석 PD<삼시세끼>가 잘된 이유로 서슴없이 이서진을 꼽기도 했다. 투덜대면서도 할 일은 하는 이 이중적인 모습은 <삼시세끼>처럼 어찌 보면 아무런 미션이나 도전이 없어 밋밋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흥미진진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나영석 PD와 각을 세우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긴장감과 갈등요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면서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이서진은 또 그 시골생활의 불편함을 즐기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이서진의 이 양면적인 반응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이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에 대한 도시인들의 양가적 입장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난 이런 생활 진짜 싫어라고 말하는 이서진의 이야기가 더 진정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불편한 삶에 대한 투덜댐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편한 시골 삶이 모두 나쁘기만 한건 아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면 보이는 새로운 것들이 있다.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별빛과 듣지 못했던 빗소리, 한 끼 식사가 주는 소중함, 찾아주는 친구에 대한 설렘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도시의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거기서 벗어나 조금은 나만의 내밀한 공간을 원하는 건 지금의 중년들이 꿈꾸는 삶이다. 개발시대의 아버지들을 보며 자라난 이들은 일에만 몰두한 삶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를 목도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이들은 일과 함께 동시에 휴식과 자신만의 놀이를 원한다. 이서진은 그런 마음으로 도시를 떠났으나 막상 겪으면 불편함이 먼저 다가오고 그러면서도 또한 그 시골 삶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중년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차승원과 유해진, 이 브로맨스 혹은 가상부부

어촌편이 그려낸 중년들, 차승원과 유해진은 이서진과는 그 결이 약간 다르다. 이서진이 시골 삶이 낯선 투덜이 도시인이었다면, 차승원과 유해진은 이런 삶 자체도 즐길 줄 아는 이른바 선수들이다. 나영석 PD 본인도 놀랐을 정도라는 차승원의 요리 실력은 만재도에 중국집을 차려도 되겠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현란했다. 갖가지 김치 담그기는 기본이고 물고기 회를 뜨거나 탕수요리를 해먹거나 해물짬봉에 심지어 어묵탕까지 시도하는 차승원은 만재도의 살풍경한 눈보라까지 녹여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차승원의 옆에서 바깥양반으로 유유자적하며 낚시부자를 꿈꾸는 유해진은 인생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를 보여준다. 그가 농담처럼 말한 돼크라테스(배부른 돼지+생각하는 소크라테스)’는 그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그는 삶을 즐길 줄 알면서도 동시에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이다. 차승원이 마치 소크라테스의 안사람처럼 바가지를 긁어대면 유해진은 그걸 받아치기보다는 그냥 흘려보내며 허허함으로써 오히려 이 관계의 훈훈함을 만들어낸다. 차승원의 요리에 모든 게 녹아내리는 그 흐뭇한 웃음은 이 두 사람의 브로맨스 혹은 가상부부의 케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프로페셔널한 차승원과 유해진이 보여주는 건 중년의 여유다. 그것은 경제적인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다만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오다보니 중년의 나이에 접해 갖게 된 삶의 능숙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의 40대가 과거의 중년들과 달라진 게 있다면 차승원처럼 심지어 요리만드는 걸 즐길 줄 알고 유해진처럼 시골의 삶에서도 어떤 즐거움과 사색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우정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갈증은 지금의 중년들이 추구하는 자신만의 시간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나영석 PD40대 남성 출연자들이 가진 프로그램에서의 이점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삶에 대해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굳이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할 필요가 없죠.” 어찌 보면 이 40대 중년의 여유는 뭐 하나 기댈 곳이 없어 보이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하나의 위안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힘겨운 삶도 익숙해지는 단계가 온다는 것을 이들 40대 중년들은 보여주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