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조윤수, ‘마녀’의 김다미를 보는 듯한 폭발적인 존재감

폭군

박훈정 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디즈니+ 드라마 ‘폭군’의 서사는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 ‘폭군’ 프로그램이라는 초인 유전자 약물을 은밀히 개발하려는 국정원 소속 최국장(김선호)과 그걸 폐기하려는 미국 정보기관 소속 폴(김강우)이 대결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약물 샘플을 가져오는 일을 의뢰받아 투입된 기술자 채자경(조윤수)과 최국장측에 서서 이 프로그램을 가로막는 이들을 제거하는 일을 의뢰받은 청소부 임상(차승원)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다소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이 폭군 프로그램이라는 엄청난 군사력을 키워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은유하는 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핵무기와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갖고 있고 러시아도 또 북한도 갖고 있는 핵무기를 왜 우리는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해 최국장은 말한다. “근데 왜 왜 우리는 맨날 안되냐? 왜 우리는 핵도 안되고 대륙간 탄도도 안되고 이것도 안돼냐? 야 니들도 하잖아.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하다못해 저 위에 북한 애들도 다 하는데 왜 맨날 우리만 안된다는 거야?”

 

이것이 최국장이 미국의 압력과 그 압력에 의해 국정원 내부에서도 프로그램을 탈취해 제거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지만 끝까지 이를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다. 그래서 폴로 대변되는 미국 정보기관의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의연한 최국장의 면면은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면이 있다. 폭군 프로그램이 위험하기 이를 데 없고, 잔인한 실험 끝에 탄생한 것이지만 그걸 저들에게 빼앗기는 건 저들의 위협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폭군’은 이처럼 박훈정 감독의 ‘마녀’와 어딘가 계보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시작은 국정원이 등장하고 조폭과 킬러들이 나오는 누아르와 스파이물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문을 열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폭군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SF 판타지의 경향을 더해 넣는다. 심지어 크리처물의 특징까지 보이는 작품은 후반부에 가서는 마치 ‘무빙’의 VFX를 보는 듯한 초능력자들의 액션 양상으로 치닫는다. 

 

보기에 따라 ‘폭군’은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장르를 훌쩍 넘어서는 지점에서 액션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박훈정 감독 특유의 누아르적 분위기와 한계 따위는 필요 없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액션의 파괴력은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몰입감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 과해 보이는 자극적인 폭력 수위와 장르를 뛰어넘는 과한 액션을 꾹꾹 눌러 무게감을 주는 건 배우들이다. 김선호는 역시 박훈정 감독의 페르소나답게 선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를 제공하고, 그와 대결하는 김강우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섬뜩한 인물의 면모들을 연기로 끄집어낸다. 여기에 차승원의 농담 같은 유머가 더해져 더욱 살벌한 청소부 역할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힘은 역시 주인공 채자경 역할의 조윤수에서 나온다. 마치 ‘마녀’에서의 김다미를 보는 듯한 서늘함이 그 무표정에서 느껴지고 그 차분함이 주는 긴장감은 작품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놀라운 건 이 배우가 ‘사랑의 이해’에서 정가람을 두고 문가영과 삼각멜로 구도를 만들었던 그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 작품 속 해맑던 모습의 배우가 이 작품 속 괴물처럼 보이는 다크한 인물과 동일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4부작으로 마무리된 작품이지만 ‘폭군’은 보다 긴 서사가 예고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4부작은 채자경을 통해 제3의 종족이 등장하게 되는 일종의 밑그림 정도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 세계가 다음 시즌으로 이어져 나간다면 채자경 역할의 조윤수는 물론이고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임상 역할의 차승원도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충분히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지만 겨우 맛보기를 보여준 ‘폭군’이 시즌2로 돌아와 이제 제대로된 요리를 선사할 수 있기를.(사진:디즈니+)

이정은과 차승원으로 연 ‘우리들의 블루스’, 무슨 이야기를 건네고 있나

우리들의 블루스

“성질 그 때 터프하고 어쩌다 웃을 때는 따뜻하고 밝고 뽀송뽀송 예뻤지개. 패기도 있고. 그 때 우리 다 그랬지개.” 깔깔 웃으며 바닷가에서 뛰놀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그 때 난 어떤 모습이었냐고 묻는 한수(차승원)에게 은희(이정은)는 그렇게 말한다. 은희의 그 말을 들으며 한수도 그 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그치? 가끔 너무 가난히 싫어서 괜히 울컥하긴 했어도 그 때 나 니들하고 놀 때 곧잘 웃기도 했어 그치? 지금처럼 재미없고 퍽퍽한 모습은 아니었어. 그치?”

 

하지만 이제 40대 후반, 오십 줄을 앞두고 있는 한수는 삶이 재미없고 퍽퍽하다. 빚에 허덕인다. 아내와 딸을 골프 유학을 보낸 기러기 아빠. 프로골퍼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딸이지만 성적이 뚝 떨어져 2부 리그에서 뛰는 딸도 또 그를 뒷바라지하는 아내도 이제 더 이상 유학을 포기하고 싶어 한다. 은행 지점장이지만 집도 퇴직금도 다 딸 유학비로 날아갔다. 포기해야 맞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여 포기할 수도 없는 삶. 그의 삶은 발톱이 훌쩍 들려버려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는 속살 같다. 

 

잘 될 때는 수백 마리 이상 생선 대가리를 잘라가며 억척스럽게 일해 동생들 다 대학 보내고 장가 보내고 집도 사주며 살아온 은희. 그런 삶에 한수가 “대단하다”고 말하자 은희는 웃으며 자기 삶을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한다. “이번 생은 가족들 다 뒤치다꺼리 하다가 나 인생 쫑나는 걸로.” 그의 삶은 생선 자르다 잘못 해 손에 달고 사는 상처를 닮았다. 그럼에도 대충 밴드를 붙이고는 계속 칼을 쥐고 생선 대가리를 치며 살아가는 삶. 

 

그런 은희의 상처에 한수가 밴드를 새로 붙여준다. 은희 역시 한수의 발톱이 빠진 걸 보고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준다. 대놓고 “내 첫사랑!”하고 부르는 은희는 물론 한수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이미 결혼해 살아가는 한수와 우정의 선을 지키려 한다. 한수는 물론 은희를 친구로서 좋아하지만, 퍽퍽해진 삶에 건물 몇 채씩 갖고 있는 은희에게 접근해 당장 필요한 돈을 빌리고픈 욕망이 생겨난다. 별거 중이라 거짓말을 하고 두 사람이 첫 입맞춤을 했던 목포로 여행가자고 은희에게 제안한다. 

 

한수와 은희는 사는 모양이 너무나 다르지만 둘 다 그리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빚에 허덕이는 한수는 친구 은희에게 그런 나쁜 마음까지 먹게 된 자신의 처지에 더 절망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치기어린 학창시절 바다로 뛰어들었던 그 모습과, 이제 나이 들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느껴진다. 은희는 그 모습에서 한수의 절망을 슬쩍 알아차린다. 

 

돈도 잘 벌고 건물도 몇 채나 갖고 있지만 은희 역시 삶이 즐겁지는 않다. 그는 학창시절 목포에 수학여행을 가서 대뜸 한수에게 입맞춤 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마치 그 기억이 있어 매일 손을 베여가면서도 이 일을 버텨내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그에게 보이는 한수의 절망은 자신에게도 아픔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4명의 인물들의 대한 이야기를 한수와 은희로부터 시작했다. 살짝 살짝 소개된 14명이 현재 살아가는 삶은 모두가 만만찮아 보인다. 마치 제주 바다의 그 거친 격랑 속에서 살아가는 삶들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제주도 바닷가와 어시장 사람들은 물론이고 곳곳을 떠돌며 물건을 파는 이들까지 거칠지만 무감한 듯 버텨내는 삶들을 담아낸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거칠지만, 드라마는 그 복작대는 삶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은희는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다 일사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시장 한 켠에서 좌판을 하는 어머니들, 옥동(김혜자)이나 춘희(고두심)를 마치 친엄마 대하듯이 챙긴다. 동석(이병헌)은 마트 하나 없는 곳에 차로 물건을 가져다주는 만물상이지만, 이런 저런 물건들을 갖다달라는 그 곳의 주민들에게 툴툴 대면서도 가까운 이웃처럼 대하는 사람이다. 해녀로 물질을 하고 저녁에는 술을 파는 영옥(한지민)은 동네남자들에게 헤프다는 이유로 다른 해녀들에게 욕을 먹지만 진지한 관계를 원치 않는다. 진지하게 다가오는 정준(김우빈)에게 “그러다 다친다”며 거리를 두는 영옥에게서도 무언가 드러나지 않은 인간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제주바다는 아름답지만, 한 발 다가서면 무서울 정도로 거칠기도 하다. 그건 어쩌면 거친 풍파 속에서도 이를 맞으며 버텨낸 삶들이 녹아난 아름다움이 아닐까. 무섭게 목숨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해녀들에게 아낌없이 삶의 터전을 내주는 바다. 은희는 그래서 제주바다를 닮았다. 상처 가득한 손이 말해주는 그 거친 삶의 이면에는 자신을 희생해 가족들 챙긴 마음이 숨겨져 있어서다. 그 바다 속으로 절망적인 한수가 뛰어들고 있다. 과연 은희는 한수의 그 절망도 넉넉히 안아줄까. <우리들의 블루스>가 앞으로 그려나갈 14명의 삶이 마주한 바다와 그럼에도 살아나가는 그 삶이 전해줄 먹먹한 위로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사진:tvN)

유해진의 소파·차승원의 요리·손호준의 손이 의미하는 것

 

 tvN 예능 <삼시세끼-어촌편 시즌5>가 종영했다. 코로나19 시국에 작은 숨통을 틔워줬기 때문일까. 그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하고 훈훈했던 <삼시세끼>의 종영이 아쉽다. 죽굴도라는 섬의 봄에서 여름까지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먹을 걸 만들어 나누던 그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모두가 떠나간 인적 없는 죽굴도에도 여전히 그들의 잔영들과 수다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유독 훈훈하게 느껴졌던 이번 <삼시세끼>는 코로나19 때문에 만재도가 아닌 무인도 죽굴도에서 촬영됐다. 작은 가게 하나 없는 섬이기에,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 고구마, 감자를 놓고 마치 레스토랑 스테이크를 먹듯 너스레를 떨며 먹어야 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머와 농담은 그들의 시간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건 마치 코로나 시국에도 우리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웃으며 버텨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동화 같았다.

 

이번 시즌이 더욱 드라마틱했던 건 지난 5년 간 상상만 했던 어마어마하게 큰 참돔을 결국 유해진이 잡았기 때문이다. 큰 참돔으로 몇 끼를 나누고 제작진들과도 음식을 나눠 먹는 그 풍경은 결국 버티다 보면 좋은 날도 온다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 같았다.

 

그런데 이번 편이 특히 훈훈했던 진짜 이유는 서울에서 촬영된 마지막 회에 공개된 미방영분내용들과 그들이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전한 메시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걸 키워드로 말한다면 유해진의 소파(So far), 차승원의 배려 넘치는 요리, 손호준의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고 챙겨주는 손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편에서는 낚시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지만 유해진이 이 프로그램에 주는 진짜 재미는 특유의 유머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유머가 아재개그에 가까우면서도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거기에 담긴 따뜻한 마음 같은 게 있어서다. 미방영분에서 유해진이 섬으로 밀려들어온 스티로폼 부표들을 안타까워 이를 수거한 후 조각내 커다란 자루에 넣어 소파를 만든 대목은 그의 유머와 남다른 의식과 따뜻함이 모두 담겨진 장면이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모아 마치 빈백 같은 형태의 소파를 만들어낼 줄이야. 나중에 그 형태 그대로 버릴 수 있어 폐기하는데도 용이한 소파를 만들어내고 그 이름을 소파(So far: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는 뜻)로 지었다.

 

차승원은 수다를 떨 때 툴툴대고 면박을 주기도 하지만, 배려 넘치는 요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의 진면목이다.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 먹을 게 마땅찮은 상황에서 공효진이 손님으로 왔을 때 그가 만들어 내놓은 무조림 같은 요리는 그저 입의 즐거움과 허기를 달래주는 포만감 그 이상의 훈훈함을 만든다. 미방영분에서 제작진들까지 챙기고, 구워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그 모습에서도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의 든든한 막내인 손호준의 손을 빼놓을 수 없다. 차승원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원하는 걸 척척 갖다 주고 챙겨주는 손호준의 손에서도 그가 얼마나 이들과 하나로 묶여져 있는가를 느끼게 만든다. 이젠 제대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원하는 걸 챙겨주는 손호준이 있어 <삼시세끼>는 완벽한 조합이 이뤄졌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나영석 PD를 위시한 제작진의 남다른 책임감이었다. 마지막 방송에서 나영석 PD는 지난 4월 2일 죽굴도에서 난 화재에 대해 언급했다. 촬영 준비를 위해 계약한 폐기물 처리업체가 섬 내부에서 무단으로 쓰레기를 태우다 낸 불이었다. 나영석 PD는 "관리 감독의 책임"을 통감하며 주민분들이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자연을 복원해드리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처리업체의 잘못이지만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것.

 

마지막으로 죽굴도를 떠나며 차승원과 손호준 그리고 유해진이 남긴 메시지도 훈훈했다. 손호준은 코로나19 시국에 잠시라도 웃으셨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고, 차승원은 빨리 이 시국이 끝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했다. 유해진은 가랜드에 메시지를 이렇게 적어 놓았다. "모두들 건강하세요!"(사진:tvN)

'삼시세끼' 어촌편에 이서진이 섞여 만든 또 다른 기대감

 

"도련님은 일어나셨나?" tvN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5에서 아침잠이 유독 많은 이서진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유해진은 특유의 농담을 던진다. 전날 늦게까지 웃고 떠드느라 잠을 설쳤지만, 워낙 부지런한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이다. 전날 몇 시에 자도 아침이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그들. 마치 일 개미 같은 모습이다.

 

반면 "게스트가 뭘 해요?"라며 죽굴도에 손님으로 들어와 '찐 게스트'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이서진은 마치 베짱이 같다. 유해진이 굳이 손님이 왔으니 제대로 된 어촌의 먹거리를 대접하고 싶어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고, 차승원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미리미리 저녁거리들을 준비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이서진은 바다가 잘 보이는 세끼하우스의 마루 한 편에 기대 앉아 있다.

 

햇볕이 점점 그 자리를 침범해오고 살에 닿기 시작하자 금세 그늘이 진 '백숙정'으로 자리를 옮기고 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차승원이 그런 모습이 너무나 우스운 듯 "너무 안하는 거 아냐"라고 유머 섞인 질책을 던져도 요지부동. 그래도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는지 눈에 밟히는 설거지를 하고 가져온 미니선풍기로 축축해져 잘 붙지 않는 장작에 불을 피우려 매운 연기에 눈이 벌개진다.

 

괜스레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고 있는 유해진이 맘에 걸려 그런 걸 뭐 하러 하냐는 식으로 툴툴대지만 막상 그렇게 잡아온 쏨뱅이로 매운탕을 끓여내자 맛나게도 잘 먹는다. 차승원의 말대로 이상하게 밉지 않은 캐릭터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지 못하는 이서진에게 "도련님 꿀물 타드려야지"하며 음료를 따라 주는 유해진의 얼굴은 그래서 싱글벙글이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또 마음 한 편으로는 이서진에게 어떤 정 같은 게 담긴 표정이다.

 

백숙을 일찌감치 펄펄 끓는 솥단지에 넣어 끓여놓은 후, 잠깐 벌어진 배드민턴 대결에서도 이서진의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다. 한 편을 먹은 손호준은 결국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만 힘들 줄 알았어"하며 투덜대며 웃고, 이서진은 초등학교 때 배드민턴부였다는 이야기와는 사뭇 달리 공을 칠 의욕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딘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유해진과 차승원 그리고 손호준은 그 누구보다 서로에 대한 마음들을 잘 끄집어내고 표현하는 인물들이다. 하루 종일 낚시를 하는 유해진의 고충을 차승원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수확 없는 날도 풍성한 저녁을 차려 내주는 차승원의 음식에 유해진은 항상 "맛있다"며 그 고마움을 드러낸다. 막내로 있지만 손호준은 두 사람을 진짜 동생처럼 끈끈하게도 따른다.

 

하지만 이런 훈훈하고 따뜻한 조합에, 물론 마음은 따뜻하지만 겉으로는 '차도남'의 이미지를 풀풀 풍기며 표현 자체를 잘 안하는 이서진이 들어가니 어딘가 그 관계에 균형이 맞은 듯한 느낌을 준다. 너무 열심히 일해서 한 끼를 차려 먹는 광경이 주는 다소 짠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소박한 풍족함 같은 게 <삼시세끼> 어촌편이 주는 정서라면, 베짱이처럼 찐 게스트의 면모를 드러내며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이서진과 이들이 툭탁대며 만들어내는 케미와 웃음들은 지금까지 어촌편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톡 쏘는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그들끼리 슬쩍 꺼내놓은 이야기로, '꽃보다 중년' 어떠냐는 제안은 그래서 솔깃해진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 시국이 지나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번 죽굴도에서 한 자리에 모인 '손이 차유'가 꾸려나가는 '꽃보다 중년'이 사뭇 기대된다.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든 중년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교감이 궁금하고, 무엇보다 이들의 안 어울릴 듯 어울리는 그 조합이 괜찮아서다. 만일 진짜로 이게 이뤄진다면 그 땐 아마도 이번 <삼시세끼> 어촌편이 쏘아올린 또 다른 수확으로 기록되지 않을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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