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록'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덕질에 빠진다

 

덕질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이른바 '덕질'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덕질의 대상은 사혜준(박보검)과 안정하(박소담)다. 모델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사혜준과, 그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먼저 알리고픈 안정하.

 

진짜 덕질의 맛은 어려운 시절부터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해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사혜준과 안정하라는 청춘에 던지는 응원과 지지는 더 애틋해진다. 우리는 알고 있는데 세상이 몰라준다는 사실이 주는 안타까움과 그래서 더 간절해지는 인정 욕구의 공유. <청춘기록>을 보다보면 사혜준과 안정하의 진가를 알아본 자신이 어느 순간 이미 그들을 덕질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들 청춘들이 처한 현실은 꿈과는 거리가 멀다. 흙수저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꿈을 이루겠다고 나서지만 현실은 그 누구보다 노력하고 능력도 있는데다 착한 인성까지 갖추고 있어도 이들을 알아봐주지 않는다. 물론 실망할 것을 걱정해 하는 반대지만, 심지어 가족조차 사혜준이 꾸는 꿈을 '헛꿈'이라 말한다.

 

일 해서 번 돈을 꼬박꼬박 집에 부쳐야 하는 안정하의 현실도 녹록찮다. 그가 샵에서 일하며 가진 유일한 낙은 사혜준을 덕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로 인해 실제로 사혜준을 만나 가까워지고 자신이 그를 덕질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나서도 안정하는 그와 스타와 팬 사이로 선을 긋는다. 덕질의 참맛은 그렇게 선을 넘지 않는 안전함(?)에서 가능한 것이라며. 하지만 그건 마치 신산한 현실 앞에 그 이상의 것을 아예 원치 않는(그래서 상처도 받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안정하의 덕질은 밝아 보이지만 현실의 슬픔이 숨겨져 있다.

 

<청춘기록>은 이들이 그 어려운 현실을 깨치고 한 발짝씩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평범>에서 단역을 맡았지만 주연배우와의 연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혜준이나, 실력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찾아줘 샵 선배 앞에서도 점점 당당해져가는 안정하의 성장하는 모습은 이제 덕질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뿌듯함을 안긴다.

 

특히 사혜준에 대한 시청자들의 마음은 갈수록 깊어간다. 애초부터 드라마가 그를 덕질하는 안정하의 시선으로 사혜준을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로서는 사혜준이 안정하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까지 내 일처럼 설렘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로 이야기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사혜준이 안정하에게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사는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청춘기록>의 이야기 구조는 청춘들을 아직 스타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충분한 자질과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세워두고 그들을 덕질하는 마음으로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큰 몰입감을 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스펙이나 태생으로 선택되거나 선택되지 못하는 무거운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덕질하다 보면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이 청춘들이 느끼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시청자들도 똑같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묻는다. 가족은 어쩌면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덕질해주는 이들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자신이 살아본 현실의 각박함 때문에 그 꿈을 애써 꺾으려는 사영남(박수영)과 그래도 끝까지 지지해주려는 한애숙(하희라)을 통해 어른들이 갖는 고민과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된다. 적어도 이 현실을 만든 책임 있는 어른들이라면 그 속에서 힘겨워하는 청춘들을 덕질해줘야 한다는 것.(사진:tvN)

가진 게 없다고 꿈도? '브람스'가 멜로에 담은 진짜 메시지

 

"저 언니 계속 꼴찌래. 서령대에서 바이올린 한다고 다 바이올리니스트인가?" 같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하지만 유명 변호사 딸 조수안(박시은)은 채송아(박은빈)를 그렇게 낮게 바라보며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내놓는다. 구두를 가져오지 않아 채송아가 자신의 구두를 빌려주고 슬리퍼를 신고 무대 뒤에서 서 있는 동안, 조수안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 장면은 가진 것과 꿈 사이에 놓인 엄청난 현실적 격차를 그 자체로 보여준다.

 

뒤늦게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갖게 되어 다니던 경영대를 포기하고 4수 끝에 음대에 들어온 채송아(박은빈)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아해서"라는 것. 너무 좋아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라는 채송아는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그래서 평생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그의 절친이자 바이올린 스승(?)이었던 윤동윤(이유진)은 자신이 바이올린을 접고 악기를 만드는 쪽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 더 이상 연주가 설레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에 들어간 '브람스'라는 단어에 담긴 것처럼 서로 엇갈린 남녀들이 겪는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그 멜로 속에 담겨진 또 하나의 메시지는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다. 채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한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설레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가 좋아해 더 나아지려 노력하려는 바이올린 연주를 평가하고 때론 모욕적인 말로 그 꿈이 현실성이 없다고 짓밟는다. 그는 가난해 가진 것도 없고 재능이 특별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도 가난해야할까.

 

학생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박준영(김민재)은 안타깝게도 음악은 재능이 중요하지만 꿈을 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에서 채송아는 그것이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인 양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 중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는 박준영의 말에 채송아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말한다. 좋아하고 노력해도 재능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 재능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박준영이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고 말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재단의 후원을 받아 왔지만, 그것은 그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처지 때문에 또 사업에 보증을 잘못 서 끝없이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 때문에 그는 하고 싶어서 연주를 한 게 아니었다. 후원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연주를 했던 거였다. 그는 재능은 있지만 좋아서 연주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재단을 찾아와 자신의 아이가 오디션에 왜 떨어졌느냐고 따지는 지원 엄마가 그 날 그 현장에 있었던 채송아에게 자신의 아이의 연주가 어땠냐고 묻자 채송아는 이렇게 말해준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원이는요.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어머니. 지금 오디션에서 붙느냐 떨어지느냐는 지원이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콩쿨과 오디션 중요하죠. 그렇지만 저는 지원이가 등수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지원이를 묵묵히 믿고 지켜봐주신다면 반드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채송아는 "그렇게 재능이 있고 잘하는 걸 좋아하지 못하게 되면 안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채송아는 알고 있다. 바이올린을 하는 데 있어 재능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재능이 있어도 '좋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힘겨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박준영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디션, 합격, 성적 같은 것들로 누군가의 삶을 무례하게 재단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좋은 것을 하고 싶어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걸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어디 꿈에 있어서만 그러할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세상은 그가 가진 것들로 재단한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저 혼자 포기하려던 채송아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된 박준영에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각별히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어쩌다 우리는 꿈도 사랑도 가진 것에 의해 재단되는 세상에 살게 된 걸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래서 단순한 청춘 멜로로만 볼 드라마는 아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꿈과 사랑을 제 멋대로 가로막고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잔잔한 클래식 선율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울컥 눈물이 터지게 되는 건 그 음악 언저리에 어른거리는 냉정한 세상에 이토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신산한 삶이 느껴져서다.(사진:SBS)

'청춘기록' 불공평한 세상, 박보검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요즘은 부모가 자식한테 온 평생이야."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원해효(변우석)의 엄마 김이영(신애라)은 사혜준(박보검)의 엄마 한애숙(하희라)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들들은 친구지만, 한애숙은 김이영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처지다. 입던 옷을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김이영이 내주면 한애숙은 속도 좋게 잘도 받아 집으로 가져온다. 사실 자신의 사는 모양이 김이영과 비교되는 건 그러려니 하는 한애숙이다. 하지만 자식의 인생을 비교하고 나서자 한애숙도 참기가 어렵다.

 

"그런 세상은 죽은 세상이죠. 부모가 온전히 커버해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렇게 대거리를 하지만 속으로는 그게 현실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자식이 자신처럼 살 거라는 말에 발끈하고는 있지만. 한애숙은 아들에게 친구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아들이 그 일로 기죽어 산다면 자신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혜준 역시 어찌 고민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착한 아들은 엄마에게 엄마 인생이니 엄마 마음대로 하라며 이렇게 말해준다. "생각해보니까 엄마 인생하고 내 인생하고 다른 데 내가 왜 엄마 인생 선택해줘야 돼? 내 인생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부모의 인생과 자식의 인생은 다른 것이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맞장구 쳐줬던 한애숙이지만 그건 과연 사실이었을까. 세월이 흐르고 한애숙은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며 혼잣말로 넋두리를 한다. "거짓말. 어떻게 부모가 자식한테 사기를 치냐? 어떻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형편은 나아지지도 않니? 우리 아버지가 부자였음 내가 이렇게 까진 안됐어... 나쁜 년. 엄마 아버지 원망하는 거야?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은데.. 살아있음 내가 진짜 잘해줄 건데. 아휴 진짜 주책이다. 왜 혼잣말을 해. 왜 살수록 엄마를 닮아가냐."

 

<청춘기록>의 현실인식은 냉정하다.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섣부른 판타지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사혜준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 그는 친구 원해효의 진심어린 배려를 고마워하지만 그가 성취하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가 가진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남동에 산다고 하면 그저 다 잘 사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은 그 곳에 살아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친구 도움으로 화보 동반 촬영에 나서고, 엄마는 그 친구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의 매니저가 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이민재(신동미)는 영화 캐스팅에서 원해효가 되고 사혜준이 떨어진 게 실력 때문이 아니라 인지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모든 걸 잠시 포기하고 군대에 가겠다는 사혜준을 만류한다. 행복이 별거냐며 오늘이 즐거우면 된다 말하는 사혜준에게 이민재는 뼈 때리는 충고를 던진다.

 

"갖고 태어난 거 없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돼. 나아지지 않아. 보통 그걸 서른이 넘어서 깨달아. 20대는 꿈꿀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환상도 갖거든? 똑똑한 애들은 20대에도 깨달아. 이룰 수 없는 꿈보단 돈을 벌자. 근데 넌 그 꿈에서 아직도 못 헤어 나오고 있어. 왜 니 인생의 기준이 최세훈 감독이야? 아 그 감독님 훌륭해. 그치만 그 감독님도 틀려. 네가 맞을 수 있어. 남은 시간 1초까지 다 쓰고 수건 던져."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이 드라마는 냉정하게 알려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보다 절박하게 남은 1초까지 다 써야 겨우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현실. 이런 현실 앞에 놓여 있어서인지 사혜준과 안정하(박소담)가 만나 서로에게 건네는 자그마한 호의나 위로는 그 무게감이 달라진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우산을 사가지고 온 사혜준은 그 우산을 안정하에게 가져가라며 자기 동네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안정하는 같은 서울인데도 어디는 비가 오고 어디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한다. 그건 마치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는 곳에 따라서도 비를 맞는 청춘들과 그렇지 않은 청춘들이 나눠지는 현실. 안정하는 홀로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같이 쓰고 연인들이 떠나간 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사혜준이 건네준 우산은 안정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헤어져 혼자 집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느껴진다.

 

<청춘기록>이 담고 있는 건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청춘들 앞에 놓인 냉정한 현실이다. 그들은 꿈을 꾸지만 그것은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보다 현실적인 삶을 살라고 하고 심지어 막장드라마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식의 꿈을 가로막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기에 자식이 상처받는 게 싫어서다.

 

과연 이 냉정한 현실 속에서 사혜준과 안정하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갈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시작부터 불공평한 출발선에 서 있는 이들이 그걸 해내길 응원하게 된다.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한 바탕 그 현실을 뒤집어 놓기를 바라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며 버텨내기를 바라게 된다.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사진:tvN)

'청춘기록', 탓도 덕도 원치 않는 박보검의 쿨한 짠함

 

현실에 부대끼지만 그렇다고 청춘이 꿈이 없을까.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은 가진 게 없어 맨 몸으로 뛰지만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춘들의 고군분투로 시작한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부모에 의해 삶 또한 유산되는 우리네 현실이 이 드라마 속에는 세 명의 절친과 그 가족들에 이미 투영되어 있다.

 

사혜준(박보검)과 원해효(변우석), 김진우(권수현)가 그들이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온 절친들이지만 이들이 사는 배경은 사뭇 다르다. 원해효는 대학 이사장 아들로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아 일찍 성공한 스타가 됐지만, 사혜준과 김진우는 그만큼 여유로운 형편에서 자라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혜준은 잘 생긴 외모 때문에 모델로 활동했지만 배우로의 꿈을 꾸며 알바를 전전하고 있고, 김진우는 인턴 사진작가로 원해효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반사판을 들고 있는 처지다.

 

게다가 사혜준의 엄마 한애숙(하희라)은 원해효의 엄마 김이영(신애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한다. 그러니 삶의 환경이 다른 이들 친구들의 관계가 애매해질 수도 있지만, 이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서로를 응원하는 절친이다.

 

사혜준은 이미 모델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청춘이지만, 밥벌이를 하기 위해 경호 아르바이트,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다. 그런 그를 아버지 사영남(박수영)은 괜한 '헛꿈'이라며 포기하고 보다 현실적인 일을 하라고 하지만, 사혜준은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입영통지서를 받고는 이번에도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군대에 가겠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 역시 흔들리고 있는 것.

 

<청춘기록>에서 사혜준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현실적으로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빈부 격차가 만들어내는 차이에 그다지 주눅 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의 절친인 원해효에게서도 똑같이 보이는 모습이다. 원해효는 엄마가 자신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하고 있는 한애숙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라고 해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 고집한다.

 

또한 원해효는 자신은 이미 스타가 되었지만 아직 피어나지 못한 친구 사혜준의 꿈을 응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즉 이들은 빈부 격차가 만들어내는 현실이 꿈을 실현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에 연연해 사람과 관계를 재단하지 않는다. 누구 '탓'도 누구 '덕'도 원치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청춘들이다.

 

<청춘기록>의 사혜준은 그래서 쿨하면서도 짠한 다소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주는 청춘의 초상이다. 그것은 그 현실이 어떤 것이든 거기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 현실이 워낙 무겁다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로서는 쿨한 만큼 짠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것은 사혜준을 남몰래 팬으로서 덕질하고 있는 안정하(박소담)에게서도 그대로 엿보이는 지점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안정하지만 현실은 만만찮다. 악착같이 모아 집을 사긴 했지만 문짝 정도만 자기 것일 정도로 빚이 전부고, 갑질 하는 선배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사혜준이 자신의 블링블링해 보이는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앱에 올리고, 안정하가 그런 사진을 들여다보며 덕질하는 것으로 힘겨운 현실의 위로를 찾는 모습은 쿨하고 예뻐보이기만 하는 청춘의 삶의 실체를 보는 것만 같다. 늘 사진 속에서는 화려하고 행복해보이지만 그 바깥으로 나오면 그들이 마주할 버거운 현실이 눈에 밟혀서다.

 

'탓'도 '덕'도 원치 않고, 스스로 노력한 만큼 성취하고픈 것이 이들 청춘의 소망이다. 사혜준과 안정하는 과연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그걸 얻을 수 있을까. 만일 얻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꿈꾸며 노력한 시간들이 무익한 일들은 아니었다 보여줄 수 있기를...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 아닐지.(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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