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이토록 놀라운 유재석의 게스트 대응이라니

 

만일 유재석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 <런닝맨> ‘100100 레이스는 액션배우, 프로레슬러, 씨름선수, 유도선수, 태권도단 이렇게 다섯 부류 각 20명씩 총 100명과 <런닝맨> 출연자들이 즉석에서 93명을 섭외해 구성한 총 100명이 대결을 벌이는 아이템을 시도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기획은 실로 창대했다. 각 인물군들이 20명씩 등장해 저마다 강력한 액션을 선보이고 그걸 본 <런닝맨> 출연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심지어 경악하는 모습은 이 날의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대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곧 이 아이템이 가진 무리한 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런닝맨> 출연자들이 스스로 섭외해 속속 모여드는 그 많은 게스트들을 콘트롤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 당연한 일이지만 게스트는 한 명만 나와도 그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 스무 명이 차례차례 모이고 그 후에 계속 게스트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50명 가까운 인원이 채워지자 <런닝맨> 출연자들은 한없이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사적인 친분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방송에 나오는 시간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어떤 인물은 잠깐 얼굴을 비춘 후 병풍이 되어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유느님이 있었다. 유재석은 재차 모여 준 게스트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짧아도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단 몇 초 몇 분에 불과한 대화지만 그 속에서도 게스트들의 캐릭터 하나하나를 유재석이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배가 있는 장정구 같은 전 챔피언을 살뜰히 챙기는 건 물론이고 힙합 느낌이지만 의외로 트로트를 부르는 마아성 같은 예능 새얼굴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하하가 초대한 홍대 피플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김광규에게는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웃음을 주었다.

 

물론 난점은 계속 생겼다. 새로 온 게스트들을 소개하고 있자면 처음에 일찍 왔던 게스트들이 잊혀지게 됐던 것. 유재석은 그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처음에 왔던 유이가 뒤쪽 구석에 앉아 있는 걸 굳이 거론하고, 새로 온 게스트들이 웃음을 줄 때면 뒤쪽에 앉은 게스트들 역시 즐거워하신다며 그 분위기에 동참시켰다.

 

그러면서도 유재석은 게스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단속하는 모습으로도 웃음을 주었다. 중간에 게스트가 화장실에 가 자리가 빠져있는 걸 발견하고는 <런닝맨> 출연자들에게 감시를 시켰던 것. 물론 그건 웃음을 주기 위한 멘트였지만 아마도 게스트들은 거기 담긴 유재석의 양해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무리한 아이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재석이 있어 그 무리한 아이템이 지금껏 보지 못한 놀라운 진풍경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미 토크쇼 등에서 출연한 게스트들을 살뜰히 배려하고 캐릭터를 잡아내는 능력을 발휘해왔던 유재석이었지만 그가 이 정도의 능력자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러니 모두가 기꺼이 유재석의 게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송곳>, 오물을 뒤집어쓴 뒤의 역설적 자유

 

돌아올 웃음이 없다는 게 명확해졌으니 웃어줄 이유가 없어졌다.’ 왕따가 되어버린 푸르미 마트의 이수인(지현우) 과장은 더 이상 갸스통(다니엘) 점장으로부터 미소 띤 칭찬을 받지 못하게 됐다. 직원들을 해고하라는 명령에 불복하면서다. 하지만 점장은 물론이고 동료 과장들도 그를 왕따로 만들어버리자 그는 오히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자 노선을 가는 길을 선택했다.

 


'송곳(사진출처:tvN)'

보답 받을 호의가 없다는 걸 아니 애써 호의를 보일 필요도 없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정민철(김희원) 부장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그를 괴롭혀도 그는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됐다. 애초에 호의를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아예 그런 호의 자체를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JTBC 드라마 <송곳>에서는 이 역전된 상황을 흙탕물 속에서 뒹굴며 훈련을 받던 군대 이야기로 설명한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편안해지는 역설. 철조망에 손이 조금 긁히던 흙바닥에서 뒹굴던 그리 신경을 쓰지 않게 되더라는 이야기. 드라마는 이 상황을 오물을 뒤집어쓴 뒤에 찾아오는 역설적 자유라고 표현했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노동운동이라는 소재를 가져와서도 어떻게 그토록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노동운동의 이야기는 고 전태열 열사의 그것처럼 사뭇 진지하고 심지어는 비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곳>은 그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만 노동운동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 안에 드라마틱한 반전과 소소한 성취들을 집어넣음으로써 그 소재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게 해준다는 것.

 

그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반전과 역설이다. 이수인이라는 캐릭터는 우리가 노동운동하면 떠올리는 그런 인물과 사뭇 다르다. 그는 한 마디로 말하면 바른생활 사나이. 물론 성인군자라는 뜻이 아니다. 그도 역시 현실에 타협하고픈 욕망을 갖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못할 뿐이다. 보통의 그런 바른생활의 인물이라면 잘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학교, 군대, 사회 어디든 가는 곳마다 걸림돌같은 존재다.

 

이것은 캐릭터의 역설이다. 바른생활 사나이가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그런 인물을 송곳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현실. 결국은 현실이 비뚤어졌다는 역설이다. 그래서 마냥 당할 것만 같지만 웬걸? 의외로 이 바른생활 사나이가 승부욕을 보인다. 그것은 그래서 또다시 왕따의 역설로 나아간다. 왕따가 되니 오히려 저들의 요구나 기대를 따를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부당함에 보다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인을 돕는 구고신(안내상)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도 우리가 노동운동하면 떠올리는 그런 투사의 이미지가 아니다. 거리에 노동자들이 나와 사측과 대치상황을 보여주지만 그 장소로 이수인을 데려온 구고신은 그것이 좋은 현장교육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노동쟁의나 노동운동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다. 어디든 노동은 있고 노동자와 사측이 있기 마련이라면 노동분쟁도 일어난다.

 

그래서 그는 노동운동에 대한 교육을 서구에서는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걸 역설한다. 그들에게는 일상이 우리에게는 마치 송곳같은 일이 되어있다는 것. 구고신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이 노동운동에 대해 지나치게 비장함에 빠져들지 않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

 

사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즉 노동쟁의를 무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처럼 금기시하는 현실에서는 마치 사측의 호의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왕따가 되어버리지만, 거꾸로 분쟁이 있을 때 그러한 노동운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수인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왕따의 역설은 그 관점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면이 있다



<육룡>, 김명민부터 유아인까지 꽉 채워진 연기

 

SBS <육룡이 나르샤>는 여섯 명의 용이 고려를 깨치고 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다.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 서로 관계를 맺고 저마다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결코 쉽지 않은 전개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여섯 명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이합집산하는 걸 따라가야 한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명쾌한 여섯 캐릭터는 그래서 중요하다. 만일에 한 캐릭터라도 처지거나 약하게 그려지면 그것은 그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인물의 조합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는 사극이니 그렇다. 그래서 이 사극은 먼저 이성계(천호진)라는 묵직한 산 같은 캐릭터를 중심에 세워두고, 그 산을 말 몇 마디로 움직여 민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정도전(김명민)을 덧붙였다. 이인겸(최종원) 같은 희대의 악당 앞에 과거의 약점이 잡혀 무릎을 꿇는 이성계를 잔트가르라 믿었으나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아프게도 목도한 이방원(유아인)이란 캐릭터도 세워졌다.

 

세상을 바꾸려면 이성계 같은 힘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정도전 같은 머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행동에 옮기는 이방원의 실행력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가 필요하다. 이성계 대신 실행에 옮기는 이방원도 있어야 하고, 정도전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이성계라는 상징화된 존재도 필요하다. 물론 이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리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걸 실현해가는 정도전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는 여기에 민초들을 넣었다. 이 새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들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강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민초들 없는 나라가 나라일 수 없다. 분이(신세경)는 그래서 민초들의 대변자가 되었고, 그녀의 오빠인 이방지(변요한)는 음지에서 정도전을 돕는 무술의 고수가 되었으며, 무휼(윤균상)은 이방원의 호위무사가 된다.

 

물론 이들 캐릭터도 빈틈이 없다. 분이는 똑 부러지게 민초들이 할 말을 하는 캐릭터로 지금의 시청자들이 당대와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몰입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물론 분이는 향후 이 사극의 인물들 간 관계의 밀도를 만들어낼 멜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방지는 대사보다는 액션이 더 많은 인물이다. 마치 이 사극의 그림자처럼 슬쩍 슬쩍 등장하지만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극에 액션을 통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휼은 장쾌한 액션과 함께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우직한 성격과 어딘지 아이 같은 단순함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중요해진 건 이들 여섯 캐릭터들이 빈틈없이 꽉 채워질 수 있게 연기자들이 각자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마치 이들이 저마다의 연기력을 펼쳐 보이는 무대처럼 보인다. 어느 누구하나 빈 구석 없이 채워주는 연기 덕분에 여섯 용들은 이야기에서 깨어나 살아 움직인다. 물론 이들이 대적하는 삼적, 이인겸, 길태미(박혁권) 그리고 홍인방(전노민)의 캐릭터와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섯 명의 인물이 어느 하나 처지지 않고 팽팽한 캐릭터의 힘을 유지하며 서로 엮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력 덕분이다. 김명민부터 유아인까지 꽉 채워진 연기. 그것이 <육룡이 나르샤>라는 쉽지 않은 사극을 훨훨 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시청자들 막장 버리고 <육룡> 선택하나

 

SBS <육룡이 나르샤>는 지난 311.6%로 주춤했다가 4회에 13%로 반등하더니 5회에서는 13.7%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반면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MBC <화려한 유혹>은 꾸준히 상승해 410.1%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이러다 <육룡이 나르샤>마저 제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섣부른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5회에서 <화려한 유혹>9.2%로 다시 한 자릿수 시청률로 주저앉았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정신없이 사건에 반전을 섞어 쏟아내던 <화려한 유혹>이 갑자기 시청률 하락을 겪게 된 건 그 피로감 때문이다. 사실 속도감 있는 전개란 초반 힘을 잡아주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이 속도의 지속은 시청자들도 지치게 만든다. 비밀스런 사건과 관계들의 의문을 던지고 풀어내는 것도 어느 정도 반복되다보면 그 자극이 덜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막장이 가진 한계란 자극을 자극으로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무리한 전개만이 시청률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이다.

 

반면 <육룡이 나르샤>는 한 명의 주인공도 아닌 여섯 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워야 하는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전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여섯 명의 인물을 한 명씩 세우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이끌어나갔다. 이성계(천호진)가 그 첫 번째 인물로 나와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이어 정도전(김명민)이 여말의 혁명에 대한 당위성에 불을 붙여 놓은 후, 그 위에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이방원(유아인)을 세웠다.

 

그리고 이방원 주변으로 이방지(변요한)라는 매력적인 무술의 절대 고수와 민초들을 이끄는 여걸 분이(신세경), 그리고 우직하지만 무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무휼(윤균상)을 소개시켰다. 즉 이런 전개는 속도는 조금 느릴 수 있어도 차근차근 캐릭터의 매력을 세우고 그 인물들의 관계를 중첩시켜 나가면서 점점 힘이 받을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막장과 명품이 단순하게 시청률로서 비교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 역시 보는 눈은 정확하다는 게 시청률 표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매번 똑같은 설정과 캐릭터들, 반복되는 자극적인 전개들. 이제 시청자들도 지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예측 불가의 다채로운 스토리들을 장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무수히 사극에 나왔던 시절의 역사적 이야기가 더욱 뻔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을 가상의 인물들과 섞으면서 의외의 이야기 전개들이 시선을 잡아끌고 있는 것.

 

그래서 <육룡이 나르샤>를 보다보면 당대 여말 선초가 가진 역사적 이야기의 재미를 담보하면서도 그 위에 마치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영웅담이 이어진다. 상상력이 부여한 허구적 재미와 역사라는 뿌리가 주는 든든한 이야기의 신뢰감이 이처럼 균형 있게 잡힌 사극도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시청률이야 언제든 그 흐름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전체적인 드라마의 성패를 얘기할 때 우리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보면 시청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 인물의 매력과 탄탄한 스토리의 그리고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진 드라마가 어떤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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