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 양세종의 아픔과 그 아픔을 바라보는 설현

 

세상에 설현의 연기에 가슴이 울컥해지다니. 어쩌면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시청자들은 적이 놀랐을 것 같다. 죽은 줄만 알았던 서휘(양세종)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한희재(김설현)의 눈은 한껏 커졌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희재가 안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서휘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한희재가 피 묻은 칼을 쥔 서휘의 손을 붙잡는다. 두 손을 꼭 쥔 손에 한희재가 그간 마음에 품어왔던 그리움과 연정, 걱정 같은 감정들이 묻어난다. 그리고 한희재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이 짧은 장면은 시청자들 또한 울컥하게 만든다. 그건 그 한희재의 시선에 서휘의 참혹한 운명이 담겨지기 때문이다. 서휘가 그간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라. 가장 친한 동무였던 남선호(우도환) 때문에 사랑하는 동생을 두고 전장으로 나가야 했고, 요동 정벌군으로 나선 전장에서도 그는 오지 않는 지원군들에게 버려졌다. 그들은 지원은커녕 척살당할 위험 속에서 살아나왔다.

 

그렇게 살아 돌아와 자신을 전장을 내보낸 남선호의 아버지 남전(안내상)을 찾아가지만, 거기서 기억을 잃어버린 동생 연이(조이현)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이를 볼모로 자신을 수족으로 삼으려는 남전 앞에서 서휘는 동생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한희재 역시 그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을 위한 삶은 없고 오로지 주변인들을 위한 삶만이 놓여 있으며, 그것도 칼이 난무하는 사지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그가 감당해야 하는 삶이다.

 

그 누구도 그 삶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심지어 동무인 남선호조차 그를 이용하려 하지만,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이 그 아픈 운명을 들여다보고 눈물을 흘려준다. 바로 한희재다. 모두가 죽었다고 말할 때도 믿지 않고, 애써 외면하려 하는 그를 붙잡아 세운다. 한희재가 서휘를 잡아 세우는 그 짧은 장면이 특히 먹먹해지는 건 바로 그 장면 하나에 담긴 이런 많은 이야기들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연기는 연기자의 연기력만으로 빛을 보는 건 아니다. 물론 베테랑 연기자들이야 제 아무리 엉성한 캐릭터를 갖고 와도 스스로 해석해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 좋은 연기는 그걸 받쳐주는 대본과 캐릭터를 만났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의 나라>는 이제 배우라 불러도 될 법한 연기를 보여주는 김설현에게는 소중한 작품이 될 것 같다. 한희재라는 캐릭터가 그의 연기 가능성을 끄집어내 줬으니 말이다.

 

한희재라는 캐릭터는 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능동적인 여성이다. 특히 신덕왕후 강씨(박예진)를 보좌하는 모습에서는 대사 하나하나에도 매력적인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남전과 팽팽한 기싸움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어린 세자를 바라는 건 비단 전하 뿐만은 아닌 듯싶다”며 남전의 야심을 정면에서 건드리며 “친절한 곁을 경계하십시오”하고 말하는 장면이나, “널 치마정승이라 부른다지”하고 남전이 말하자, “대감을 갓 쓴 왕이라 부른다더이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한희재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건 이를 소화해내는 괜찮은 김설현의 연기와 더불어 <나의 나라>라는 작품의 스토리 속에서 그 대사 하나하나가 캐릭터에 매력을 부여해서다. <나의 나라>에 김설현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간 너무 외모로만 부각되어 왔던 김설현이 아닌가. 하지만 그 선입견이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배우의 노력과 괜찮은 작품이 만나서 가능해진 일이다. 모쪼록 이 경험이 앞으로도 그에게 중요한 자양분이 되기를.(사진:JTBC)

'나쁜 녀석들', 뻔한 데 웃기고 통쾌한 캐릭터 액션 통했다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로 돌아온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어딘가 익숙한 캐릭터들로 채워져 있다. 이미 드라마를 봤던 시청자들이나, 보지 않았어도 김상중과 마동석의 캐릭터를 아는 관객이라면 <나쁜 녀석들>은 아무런 인물 설명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김상중이 오구탁 반장으로 등장해 첫 대사를 던질 때 관객들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대목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그 낮게 깔린 자못 심각한 김상중의 대사는 의외의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이것은 마동석도 마찬가지다. 이미 일찌감치 극중 박웅철이라는 이름보다 마동석이라는 자신의 캐릭터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있는 이 배우는 첫 장면에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재봉틀 수를 놓는 장면으로 빵 터지게 만든다. 그 곳은 다름 아닌 교도소이고 거기에 과실치사로 막 들어온 전직 형사 고유성(장기용)이 재소자들과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에 마동석이 등장해 해머 같은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은 액션과 더해 웃음을 만든다.

 

마동석의 액션이 굉장히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면서도 웃음을 주는 건 그것이 한층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먹을 날리면 맞은 악당들은 몸이 날아가 버린다. 그 과한 리액션이 마동석의 액션을 폭력성보다는 만화적인 느낌을 부여하는 이유다. 폭력성의 불편함이 사라진 지대에서의 마동석의 액션은 그래서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통쾌함을 더해준다.

 

김상중과 마동석이 극중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건 연기로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게다.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오히려 이 캐릭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마동석이 의도적으로 던지는 “그것이 알고 싶네?” 같은 대사는 <나쁜 녀석들>이 오롯이 통쾌한 액션과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오락영화라는 걸 드러내준다.

 

<나쁜 녀석들>의 바로 이런 대놓고 2시간 정도를 즐기다 가라는 태도는 관객들이 부담 없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어차피 이야기는 뻔하다.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는 것. 그런데 그 설정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적지 않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이 요원해진 현실 속에서 ‘나쁜 녀석들’의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때려잡는 것’만이 목적인 그 행동들이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여기에는 자칫 폭력 미화라고 볼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이것 역시 <나쁜 녀석들>은 이들이 대적하는 적들을 과장함으로써 넘어선다. 한일관계를 의식한 것인지 이 영화는 일본에서 세력을 평정한 야쿠자들이 이제 우리나라에 들어와 거점을 만들고 중국 같은 대륙까지 진출하려는 야욕을 깔아놓는다. 그건 다분히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현재의 조폭 버전으로 바꿔 놓은 지점이다. 그들을 돕는 ‘친일파’까지 등장시켜서.

 

이러니 영화는 더더욱 오락물의 색깔을 확실하게 세우게 된다. 물론 영화가 단지 오락거리로만 치부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통쾌한 액션을 보며 웃는 일은 결코 무의미한 건 아닐 게다. 이것이 추석 명절에 <나쁜 녀석들>이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이유다. 즐거움이라는 목적을 주기 위해 기존 배우들의 캐릭터 이미지를 활용하고, 일제강점기 상황까지 패러디하는 방식. 완성도나 메시지가 다소 떨어진다 해도 그 하나의 목적만큼은 충실했다는 것.(사진:영화'나쁜녀석들')

주말극 같은 장르물, 이건 ‘열혈사제’의 진화인가 퇴행인가

분명 장르물의 색깔을 지녔는데 어딘지 주말극 같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 동료애 하나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트라우마 때문인지 조폭들에게 휘둘리는 형사. 마음 한 구석에 살해당한 신부님을 외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성공하고픈 욕망 때문에 흔들리는 검사. 이들이 정치인에서부터 경찰, 검찰, 조폭들까지 결탁해 구담시를 좌지우지하는 악의 카르텔과 대적해가는 이야기.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분명 액션이 더해진 장르물의 구조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된다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자잘하고 일상적인 코미디에 더 집중하는 이 드라마는 어딘지 전형적인 주말극을 닮았다. 

시청률표를 보면 금토에 SBS가 새롭게 시간대를 마련해 들어온 이 드라마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국시청률이 16.1%(닐슨 코리아)에 이르고, 특히 타깃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는 2049시청률 또한 9.4%를 달성하고 있다는 건 실구매층으로 여겨지는 젊은 세대들 또한 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딘지 변종이다. 지금껏 시청자들이 OCN이나 tvN 등에서 자주 봐왔던 장르물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OCN에서 방영됐던 <나쁜녀석들> 같은 드라마와 <열혈사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나쁜녀석들>이나 <열혈사제>나 그 이야기 설정과 구조만 보면 그리 다른 장르물은 아니다. 현실을 대변하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하고(이들은 대부분 권력과 결탁해 있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법집행기관은 부패해 있다. 그러니 더 ‘나쁜 놈들’이 나서 그들과 싸우거나, 참다못한 열혈신부가 나서 그들과 대적해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팀을 이룬다. 

<나쁜녀석들>과 <열혈사제>는 이야기 구조는 비슷해도 장르물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나쁜녀석들>은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언제 어떤 반전이 생겨날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반면 <열혈사제>는 정반대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와 지금은 악의 무리들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형사와 검사가 이 구담시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이들과 힘을 합쳐 결국은 정의를 세울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 전개도 전혀 빠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같은 상황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드라마의 전제가 되는 이영준 신부(정동환) 살해사건은 일찌감치 벌어졌지만 아직 그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대신 악의 세력들과 결탁한 불량급식업체의 비리를 캐나가는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이야기가 몇 회에 걸쳐 이어진다. 대신 이 드라마는 느린 전개 속에 자잘한 캐릭터 코미디를 채워 넣는다. 마치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우스꽝스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실제로 태국인 출신 노동자인 쏭삭(안창환)이나 배부르게 먹으면 놀라운 청력을 발휘하는 요한(고규필)이 보여주는 코믹한 캐릭터 플레이는 의외의 정감과 재미를 더해 넣는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 순삭(순간삭제)’을 경험한다. 뭐 별 이야기도 아직 진행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험. 하지만 그건 긴장감 넘치는 전개 때문에 생겨나는 ‘시간 순삭’과는 사뭇 다르다. 이야기는 실제로 별로 전개되지 않지만 대신 깨알 같은 캐릭터들의 유머 코드들이 채워져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 순삭’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장르물이 지상파 주말극이라는 시간대를 공략하기 위해 시도된 새로운 의미의 진화일까. 아니면 본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장르물의 퇴행일까.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지점에 서 있는 <열혈사제>지만 그 느린 전개에도 남다른 몰입감을 느끼며 젊은 시청자들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건 이런 장르의 변종이 그 안에 들어 있어서다. 

장르물은 이제 드라마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들은 여전히 그 플랫폼이 지금껏 유지해온 색깔과 시청층들(신구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을 겨냥해 본격 장르물보다는 변종들을 시도해왔다. 멜로에 가족까지 더한 이른바 ‘복합장르물’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열혈사제>는 또 하나의 변종 장르물이라 여겨진다. 장르물이지만 주말극 같은 느슨함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사진:SBS)

'나 혼자 산다', 소소한 이들의 일상에 왜 빠져들게 될까

한국과 카타르의 아시안컵 축구경기가 방영되고 있는 와중에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는 1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이 결방했지만, 대신 편성된 JTBC의 축구중계가 23% 시청률을 낸 걸 생각해보면 <나 혼자 산다>는 이러한 외적인 요인에 의해 그다지 큰 시청률 변동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지난주 12% 시청률보다 오른 걸 보면 충성도 높은 고정 시청층에 축구중계에 별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까지 더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청률이 그리 중요한 지표가 되지 못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이렇게 굳이 이 수치를 거론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것이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충성도 높은 시청층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시청자들은 <나 혼자 산다>를 챙겨본다. 마치 과거 시즌 종영하기 전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이 날 방영된 내용이 그리 대단히 새롭거나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나 혼자 산다>는 이시언이 정들었던 상도하우스를 떠나 새 아파트로 이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무렇게나 물건들이 쌓여 있어 발 디딜 틈조차 없던 그 집에서 물건들이 하나둘 정리되고, 나중에 텅 비어버린 집에서 괜스레 울컥해진 이시언이 두꺼비집을 내리며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짠하게 다가왔다.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좀더 주목받게 된 그는 그 집이 복덩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 집에 대한 남다른 고마움과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뉴얼(새 얼간이) 캐릭터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는 성훈이 평소 어색한 관계였던 기안84를 찾아가 함께 밥을 먹고 갑자기 떠난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것 역시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라고 할 순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조금씩 친숙해져가는 과정이 있었을 뿐이다. 성훈이 어딘가 무식함을 드러내는 대목에서 기안84가 점점 마음 편해하는 모습이 웃음을 줬다.

사실 이런 정도의 에피소드를 갖고 시청률 14%를 낸다는 건 대단히 가성비 높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비교해서 금요일 밤에 방영되는 SBS <정글의 법칙> 같은 경우 그 힘든 정글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훨씬 높은 노동 강도를 보여주지만 9%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그건 출연자들에 대한 친밀감에서 생겨난다. 언제부턴가 <나 혼자 산다>는 전현무를 중심으로 박나래, 한혜진, 이시언, 기안84, 헨리 같은 보기만 해도 반가운 느낌을 주는 출연자들과의 친밀감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들이 그저 동네에서 함께 만나 밥 한 끼를 먹으러 가도 남다른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된 건 <나 혼자 산다>가 가진 특별한 구성방식과 편집, 자막의 공이 크다.

관찰카메라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할 때 등장한 프로그램이 <나 혼자 산다>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직까지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딘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던 그 시절, 이 프로그램은 ‘1인 라이프’라는 취지를 앞세워 관찰카메라를 찍었다. 그러다 점점 관찰카메라가 익숙해지면서 1인 라이프 같은 취지는 그리 중요한 일이 되지 않게 됐다. 이제는 자주 보다보니 남다른 케미들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마치 우리들의 일인 양 친밀해진 상황이 만들어진 것.

이것은 마치 <무한도전>이 출연자들을 시청자들에게 마치 가족처럼 느끼게 해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건, <나 혼자 산다>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 직접 들어가 캐릭터가 아닌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정도다. 친숙해진 그들은 이제 어떤 조합으로 만나도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이시언과 기안84 그리고 헨리가 ‘세 얼간이’라는 조합으로 묶이고, 박나래와 기안84 그리고 충재씨가 묘한 관계로 얽히는 과정만으로도 흥미롭게 된 것.

게다가 <무한도전>이 가끔씩 무한뉴스를 통해 보여줬던 저들의 실제 생활을 <나 혼자 산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관찰카메라를 통해 보여준다. 이시언이 상도하우스를 떠나 새로운 아파트로 이주하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남다른 감흥으로 느껴지는 건 그 과정 하나하나를 봐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 혼자 산다>는 메인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만나는 이들까지 패밀리로 묶어내는 놀라운 확장성까지 갖고 있다. <무한도전>이 가끔씩 ‘친구들’을 불러 오디션을 벌이거나 축제를 벌이는 방식을 통해 했던 ‘외연 넓히기’처럼, <나 혼자 산다>는 화사나 승리, 김충재 같은 주변 친구들을 만나는 것으로 끊임없이 패밀리를 늘려간다. 이러니 이야기는 더더욱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예능 트렌드는 관찰카메라 시대로 넘어왔지만,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원하는 건 출연자들과의 ‘친밀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도 그랬던 것처럼,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들은 어느새 시청자들이 마치 그들과 오래도록 함께 해온 이들 같은 친밀감을 주고 있다. 마치 혼자 사는 이들이라면 느끼고픈 유대감을 대신 만들어주는 것처럼.(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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