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기’의 배용준 vs ‘히어로’의 기무라 타쿠야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의 드라마 팬들은 두 명의 카리스마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왕사신기’로 컴백한 배용준과,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동명의 드라마를 영화화한 ‘히어로’로 일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무라 타쿠야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영웅과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란 점이다.

포용하는 카리스마, 담덕
‘겨울연가’의 부드러운 남자, 배용준이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우려했던 것은 카리스마 연기가 될까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대결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태왕사신기’ 속에서 배용준이 연기하는 담덕은 그 어떤 영웅들보다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포용하는 카리스마다.

‘태왕사신기’는 궁극적으로 이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리스마라고 하면 우린 흔히 무언가 강압적인 힘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막스 베버가 지배형태의 유형을 설명하면서 종교용어에서 차용한 단어다. 베버는 카리스마가 강압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고 피지배자의 자발적인 인정, 신뢰, 숭배를 통해 생겨난다고 말한다. 즉 ‘태왕사신기’는 막스 베버가 말하는 지배형태 중 카리스마적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태왕이 태왕으로 서기 위해 사신(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드라마 설정이 그걸 말해준다. 사신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신화적 영물이고 그것은 또한 네 부족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태왕사신기’는 쥬신의 별이 빛나던 날, 신탁을 받고 태어난 두 명의 인물이 사신을 취하는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담덕과 연호개(윤태영)가 구사하는 카리스마가 된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까지를 포용한다’는 말은 배용준이 담덕을 통해 보여주는 카리스마의 전모이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숨겨진 강인한 결단력과 포용력은 장차 태왕이 될 담덕의 카리스마가 사신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를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것은 마초적인 과거 카리스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최민수가 화천회의 대장로 역할을 하면서 담덕과 대결한다는 점이다.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숨겨진 카리스마, 쿠리우 코헤이
반면 ‘히어로’에서 중졸에 검정고시로 검사가 된 쿠리우 코헤이를 연기하는 기무라 타쿠야는 일본인 특유의 숨겨진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도무지 검사 같지 않아 보이는 쿠리우에게 팀원들은 모두 불신을 보이고, 부검사가 되고자 열성을 다해 쿠리우의 사무관이 된 아마미야(마츠 다카코)마저 점점 실망하게 되는 상황. 그러나 쿠리우는 자신이 해결한 일마저 남이 한 것처럼 둘러댈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들은 의식하지 못했던 관료주의에 의해 매몰되고 있던 팀원들이 이 쿠리우 검사에 의해 차츰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에서, 기무라 타쿠야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일본사회의 리더 상을 제대로 연기해낸다. 이 드라마가 역대 시청률 1위에 랭크된 것은, 일본 관료주의사회를 대변하는 듯한 도쿄지검에 벌어지는 변화가 강압적이거나 과격한 양상이 아닌 남 모르는 영웅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데서 많은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숨은 손’과 ‘숨은 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가는 쿠리우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집단을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원칙에 맞게 솔선수범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지배는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발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역시 사무라이로 대변되던 일본 전통의 카리스마와는 달라진 카리스마라 할 수 있다.

달라진 시대, 달라진 카리스마
나라가 다르고 작품이 달라도 거기 표현되는 카리스마의 양상은 유사하다. 그것은 강력한 힘 앞에 굴복시키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저 스스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을 끌어내는 카리스마다. 이것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조직 속의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대변하기도 한다. 상명하복하던 과거의 수직적인 리더십은 이제 구태가 되었다.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카리스마를 가진 팀장의 리더십이란 팀원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이 희구하는 영웅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이제 영웅은 더 이상 신화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평범 속의 비범을 보이는 자다. 한일 두 드라마 지존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이러한 현재적 가치를 반영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작금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이 일제히 왕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작년에 이어 또다시 사극전성시대가 열렸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시청률 수위를 단 한번도 놓치지 않은 KBS의 ‘대조영’을 위시해, 새롭게 돌풍으로 일으키고 있는 SBS의 ‘왕과 나’, 그리고 MBC의 ‘이산 정조’와 ‘태왕사신기’가 나란히 배치됨으로써 금요일을 뺀 일주일 내내 사극이 방영되게 됐다. 그런데 최근 방영을 시작한 사극 세 편이 모두 그 중심에 사랑을 주테마로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왕과 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스스로 거세한 김처선(오만석)이란 내시의 이야기다. ‘사랑을 위해 거세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가 극적인 이 이야기는 절대권력을 가진 왕, 성종(고주원)과 후궁이었던 폐비 윤씨(구혜선), 그리고 내시인 처선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다. ‘태왕사신기’는 이야기의 모티브 자체를 사랑과 질투에서부터 따왔다. 단군신화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등장한 환웅을 사이에 둔 호족의 가진과 웅족의 새오 간의 사랑과 질투는 다시 광개토대왕 시기의 담덕(배용준)을 사이에 둔 기하(문소리)와 수지니(이지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산 정조’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정조(이서진)와 성송연(한지민)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처럼 사극 속에 등장하는 멜로 코드는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의 특징은 사랑을 그저 약방의 감초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들 사극이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 시청층을 겨냥하겠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는 늘 수요층이 있게 마련인데, 최근 들어 현대극에서 멜로드라마가 퇴조하면서 여전히 남은 수요층을 사극이 끌어안는 형국이다.

또한 여기에는 사극의 달라진 시각도 한 몫을 차지한다. 과거의 사극에서는 주로 영웅으로서의 주인공을 사극에 담았다면,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극은 영웅보다는 한 인간(영웅이라도 인간적인 면모의 영웅)을 다룬다. ‘왕과 나’는 왕보다는 나의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따라서 나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왕과 얽히는 멜로 드라마도 수평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다. ‘태왕사신기’는 영웅적인 인물의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 속에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를 넣어 극성의 강화와 함께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산 정조’는 정조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 성송연이란 운명적인 연인이 등장한다.

사극들이 저마다 사랑에 빠졌지만 각 사극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강점들은 제각각 다르다. ‘왕과 나’가 가진 멜로드라마의 강점은 시대적 아픔 속에 운명적으로 얽히는 관계 자체가 가장 큰 관전포인트가 된다. ‘태왕사신기’는 두말할 것 없는 배용준이라는 멜로드라마의 제왕이 있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이산 정조’ 역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명대사로 기억되는 ‘다모’의 이서진과, ‘경성스캔들’에서 맑고 밝은 씩씩한 면모를 보여준 한지민이 엮어 가는 사랑이야기가 관전 포인트이다. 그 어느 것이든 기대를 갖게 만드는 이들 사극 속에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운명적 멜로드라마가 날갯짓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극이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법

역사를 다루는 사극이 사료가 거의 없고 신화만 존재하는 시대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없는 사료를 상상력으로 메워나가는 이른바 퓨전 사극이 등장하면서 신화는 공공연히 사극의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신화를 사극이란 틀의 드라마로 보여준다는 것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신화를 날 것 그대로 그려낸다면 자칫 무협지나 환타지가 될 소지가 있다. 물론 사극의 스타일이 무협지 같거나 환타지 같은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지만 신화를 소화해내서 보여주는 사극 자체가 무협지나 환타지가 되는 건 문제가 있다.

신화는 역사는 아니지만 사극으로 들어왔을 때 적어도 그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어져야 한다. 퓨전사극 ‘주몽’은 주몽신화를 드라마로 끌어오면서 신화적 의미보다는 영웅적인 인간의 건국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신화를 통해 그려졌던 주몽은 물론이고 해모수나 금와 같은 인물들은 신의 옷을 벗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몽은 알에서 태어난 게 아니고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의 사랑으로 태어난다.

물론 거기에는 삼족오에 대한 이야기나, 다물활 같은 신물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들이 환타지적인 스타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주몽이란 인물의 신탁을 의미할 뿐, 그 자체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물리적인 힘을 주지는 못한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고구려 건국은 신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영웅적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반면 ‘태왕사신기’가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것과는 다르다.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단군신화를 본격적으로 화면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 사극은 단군신화에서 환웅과 웅녀 그리고 호족의 이야기를 영웅 탄생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즉 환웅이 말한 신탁에 기대 그 예언으로서 태왕과 그를 보필할 사신이 탄생한다는 얘기다.

신화 속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웅족과 호족의 싸움으로 해석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지만 ‘태왕사신기’가 택한 것은 환타지다. 환웅(배용준)은 전지전능한 인물로 등장하고 웅족의 대표인 새오(이지아)와 호족의 대표인 가진(문소리) 역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이란 상상의 동물 또한 실제로 등장한다. 사극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두 가지다. 그 첫 번째는 CG의 힘이다. ‘태왕사신기’는 신화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CG를 통한 환타지를 선택했다. 애초에 단군신화를 끄집어내면서 두루뭉실 인간의 이야기로 신화를 훼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좀 낯선 면이 없잖아 있지만 ‘태왕사신기’가 CG를 활용해 신화 자체를 그려 내려한 점은 적절한 선택이었음에 분명하다.

여기에 ‘태왕사신기’는 안전장치를 하나 더 집어넣었다. 그것은 이 신화를 극중 인물의 이야기 속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현고(오광록)의 내레이션을 통한 접근은 사극 속에서 자칫 붕 뜰 수 있는 환타지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갖는다. 즉 ‘태왕사신기’가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나름대로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첫 회에서 이미 다 알고 있는 단군신화를 굳이 CG로 다 그려낼 필요가 있었나 싶은 것이다. 신화의 내용을 화려한 그래픽으로 보여준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이제 앞으로 진행될 담덕(배용준)과 사신의 이야기들이 단군신화의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있을 때이다. 사극이 신화를 끌어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주몽’이 했던 선택, 즉 신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환원한 사극이 아닌 지금의 과감한 CG를 동원한 신화를 바탕으로 깔고 가는 선택의 적절함은 전적으로 앞으로 진행될 전개에 달려있다. 기왕에 꺼낸 CG라는 카드가 그저 볼거리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블록버스터의 덫에 걸린 MBC

45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 퓨전 사극, 한류스타의 별 중의 별, 배용준 출연, 한일 동시 방영 가능성 등등 ‘태왕사신기’라는 불가사리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여기에 각종 소문이란 쇠를 먹고 점점 몸을 불려왔다. 몸이 커질수록 관심과 기대도 커졌다. 그런데 거대한 몸체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또 방송일을 연기했다. 이번으로 무려 4번째. 이에 대한 각종 의혹과 추측은 점점 더 이 불가사리의 몸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제작사와 방송사의 기존 관계 구조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나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주제작사의 몸피가 커졌다고 하지만 방송사가 질질 끌려 다닐 정도였을까.

시청자들의 기대를 잔뜩 갖게 만들고서 계속 연기를 거듭하는 제작사와 그것을 이례적으로 용인하면서 대체 드라마를 찾는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MBC노조가 표현한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태왕사신기’는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그 파장은 일파만파일 수밖에 없다. 일차적인 피해자인 MBC는 그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일주일 내내 MBC는 내세울만한 이렇다할 드라마가 실종된 상황이다. 먼저 월화의 상황을 보면 ‘태왕사신기’의 급작스런 연기로 인해 급히 8부작 드라마로 편성된 ‘신현모양처’는 시청률을 기대하기보단 시간을 버텨주는 형국이 강하다. 그나마 더 연장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뒤에 와서 얘기지만 지금 방영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쩐의 전쟁’이 애초 MBC에 제안되었다 ‘태왕사신기’와 겹쳐 SBS로 가게됐다는 점에서, 수목 드라마의 어려움도 이 거인 드라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말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에어시티’는 60억이 투여된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지만 시청률은 10% 내외를 오가는 저조한 상황이다.

한때 ‘주몽’이란 대작 드라마로 드라마왕국이란 칭호가 어울렸던 MBC는 왜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일까. 그 해답도 바로 ‘주몽’이란 대작 드라마에 있는 것 같다. ‘주몽’은 시청률로서 월화의 밤을 거의 방영기간 내내 독식해왔다. 그 파급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주몽’의 앞뒤에 방영되는 ‘뉴스데스크’와 ‘개그야’의 시청률이 동반상승 되었음은 물론이고 MBC 방송사 전체의 이미지도 높아졌다. 한류와 맞물려 킬러콘텐츠로서의 대박 드라마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진 상황에 ‘주몽’은 ‘역시 돈 들이면 된다’는 선례를 남겼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돈 들이면 드라마가 될까. 이것은 블록버스터의 환상이다. ‘주몽’은 돈 들여서 된 드라마가 아니다. 퓨전사극만이 가질 수 있는 아기자기한 스토리들로 엮어내는 역사적 영웅의 환타지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화되는 드라마의 한 편에서 스토리는 부재하고 몸집만 커지는 드라마가 결국 전체 드라마 시장을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태왕사신기’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전혀 알 수 없기에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최근 대작 드라마들의 양상을 보면 블록버스터가 흔히 빠지는 함정, 즉 볼거린 있어도 스토리는 없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분명한 건 시청자들은 볼거리보다는 스토리에 더 열광한다는 점이다. ‘태왕사신기’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규모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참신한 연출과 다양한 소재발굴, 작가군의 양성 등으로 드라마의 완성도에 투자하는 가장 기본적인 제작시스템이 하루빨리 정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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