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파트너’에서도 증명한 아역 그 이상의 배우 유나

굿파트너

흔히들 아역이라고 하면 성인역의 보조 역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역이 극의 메인 캐릭터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아역의 존재감으로 인해 극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굿파트너’에서 차은경(장나라) 이혼 전문변호사의 딸 재희(유나)는 단적인 사례다. 재희는 ‘굿파트너’라는 작품이 여타의 이혼 소재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변수가 되는 인물이다. 즉 이혼 소재의 드라마들은 흔히 이혼 사유를 만들어낸 배우자와 이로 인해 심적 고통을 겪는 배우자가 대결하고 이를 통해 권선징악의 단순한 결론으로는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불륜 배우자가 응징되는 복수극 형태의 서사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혼의 현실은 어떨까. 그런 단순한 응징과 복수의 서사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자녀의 문제다. 부부들끼리는 서로 상처를 주면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갈라졌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이혼으로 인해 자녀가 겪을 상처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이 된다. 이른바 자신은 남편을 잃었지만 자식까지 아빠를 잃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게 이들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희라는 캐릭터는 ‘굿파트너’라는 이혼 소재 드라마를 색다르게 만들어낸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건 이 만만찮은 아역을 과연 누가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역할을 맡은 유나는 아역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부모들의 문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사실은 아빠 김지상(지승현)의 불륜 사실을 엄마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건 시청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엄마를 똑닮아서 ‘리틀 차은경’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똑부러지는 시크함을 가진 재희는 그래서 부모가 이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건 어른들이 결정할 일처럼 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차은경과 김지상의 이혼 소송의 핵심은 누가 재희를 키우느냐를 두고 벌이게 된 양육문제가 되고, 여기서 재희는 드디어 아빠에 대해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한다. 자신은 나름대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줬지만 끝내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 차은경 앞에서도 뻔뻔하게 버텼던 김지상은 딸의 그 말에 무너진다. 같이 살자며 두고두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갚아나가겠다는 그에게 재희는 놀라운 말을 한다. “아빠랑 안 살아. 잘못한 사람은 벌 받아야지. 아빠한테 가장 큰 벌은 나 못보는 거잖아.”

 

이 대사에서 유나의 배우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거기에 아이 본연의 모습과 더불어 어른스러운 이 아이의 캐릭터 또한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다.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감정이 겹쳐져 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나는 표현해낸다. 결국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게 되면서 재희는 또한 아빠의 빈자리를 계속 느끼게 되는데 결국 그 부재를 절감한 재희가 “그냥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이 엿보인다. 아역이지만 그저 아이의 연기라고 보기 어려운 유나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유나라는 배우의 가능성은 이미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 어린 선자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눈에 띠었다. 갈대 숲속에서 잠자리를 잡아주는 아버지를 향해 미소를 짓는 어린 선자의 매력적인 모습이 그랬다. 또 영도 어시장에서 일본인 순사가 지나가자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어린 선자의 모습은 향후 이 인물이 얼마나 당차게 거친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만들어준 면도 있었다. 

 

유나의 이런 연기 잠재력이 폭발한 건 ‘유괴의 날’에서 천재 소녀 로희 역할을 연기해내면서다. 김명준(윤계상)이라는 착하고 어설픈 유괴범에게 유괴된 로희는 오히려 유괴범에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유괴를 소재로 하는 범죄스릴러의 평이한 서사구조를 뒤집는다. “유괴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라고 로희가 말하면 명준은 “뭘 책임 져? 유괴를 당한 아이는 경찰이 책임을 져야지.”라고 말하는 식이다. 범죄스릴러의 틀을 갖고 있지만 ‘유괴의 날’은 아이들을 성적 순으로 세우고 그래서 1등과 꼴등을 나눠 그 가치를 판단하는 비뚤어진 어른들의 세상을 꼬집는 드라마다. 로희는 바로 그 어른들의 욕망이 투사된 1등 천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의 연구대상이 된 아이다. 그래서 착한 유괴범이 차라리 가장 어른다운 모습으로 로희를 지키려는 상황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 부재한 우리네 현실을 꼬집는다. 여전히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조숙한 면들을 가진 로희를 유나는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사실상 김명준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똑똑한 로희는 그러나 그렇게 정들었던 아저씨와 헤어지는 순간에 아이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 이런 말 하기 진짜 싫은데 난 아저씨랑 같이 있는게 너무 좋단 말이야. 나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람이랑 내가 배고픈지 졸린지 심심한지 그런 관심 주는 사람이랑 나 처음 있어본단 말이야. 제발 가지마. 아저씨 가지마.” 천상 어린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조숙한 면모를 왔다갔다 하는 연기. ‘유괴의 날’에서부터 ‘굿파트너’까지 이어진 유나라는 배우의 잠재성이 느껴지는 연기가 아닐 수 없다. 

 

유나의 배우로서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2022년 ‘파친코’를 내놨고, 2023년 ‘유괴의 날’을 그리고 올해 ‘굿파트너’로 매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을 보면 우리가 막연히 어리다고만 생각해온 아이의 다른 면들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나이의 아이다운 면을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잣대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생각과 아픔 같은 것들도 갖고 있다는 걸 이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가 보여준다. 하긴 아역을 성인역의 보조 역할로 생각하는 그 태도 자체가 구시대적 산물이다. 아이는 어려도 아이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다는 걸 유나라는 배우의 필모가 말해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SBS)

요즘 드라마들 사투리에 푹 빠진 이유

소년시대

“아오, 환장하겄네. 진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시대>에는 찰진 충청도 사투리가 드라마 전체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온양에서 늘 맞고만 지내던 장병태(임시완)가 부여농고로 전학오면서, 전설의 싸움꾼 ‘아산 백호’로 오인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데, 마치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도 된 듯 어색하게 허세를 부리는 이 인물이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도드라지는 건 특유의 해학 가득한 충청도 사투리다. 학원 액션물로서 학교폭력이 일상이었던 1989년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드라마를 밝게 만들어주고 나아가 코미디의 웃음이 피어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충청도 사투리다. 두드려 맞으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느껴지고, 센 척 하면서도 허술함이 느껴지는 충청도 사투리의 맛이 드라마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때 정확한 언어 전달이 최우선이었던 시절에 사투리는 방송에서는 피해야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확한 발음을 요구하는 아나운서 같은 직업에 사투리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했다. 물론 간간히 전원드라마에서 사투리가 등장하곤 했지만 그것도 너무 심해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의 사투리는 피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사투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는 것. 최근 방영된 드라마만 해도 <소년시대>를 비롯해 <웰컴투 삼달리>, <모래에도 꽃이 핀다>, <무인도의 디바>가 모두 유창한 지역 사투리들로 채워졌다. 지역도 다채로워서 <소년시대>가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면,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 사투리를,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또 <무인도의 디바>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최근 드라마들만 해도 강원도 빼고 거의 전 지역의 사투리가 TV를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그런데 지역 사투리는 그냥 쓰인 게 아니고 그 작품의 색깔과 어우러져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소년시대>의 충청도 사투리는 특유의 해학적 어감으로 최양락이나 김학래 같은 개그맨들이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했을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만큼 코미디에 착착 붙는다는 뜻이다. <웰컴투 삼달리>의 제주 사투리는 해녀들의 풍진 삶을 대변하듯 지역 특유의 정감과 더불어 억센 삶과 비감이 뒤섞인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조삼달(신혜선)의 엄마가 해녀로 등장하고 그 세대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억센 제주 사투리와 잘 어우러진 이유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는 이미 <응답하라 1997>에서부터 쿨한 멜로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사투리로 자리잡았다. 경상도 특유의 퉁명스러운 사투리의 어조는 이른바 ‘츤데레’라고 불리는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랑표현에 적합하게 활용되곤 했다. 또 <무인도의 디바>에 쓰인 전라도 사투리 역시 투박하지만 시골 정서를 가득 품은 서목하(박은빈)라는 캐릭터의 도시와는 다른 정감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사투리를 써야만 하는 지역 기반의 드라마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구사해야 하는 배우들의 자세도 달라졌다. 그저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의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사투리를 익히는데 공을 들인다. 박은빈은 그래서 캐스팅 이후 사투리 선생님과 함께 하며 말을 익혔다고 했고, 임시완은 부산 출신이지만 정서까지 담아내는 사투리를 준비해와 감독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주연배우인 장동윤은 대구 출신이고 상대역인 이주명 역시 부산 출신이라 아예 드라마와 맞춤인 경우도 적지 않다. 아예 해당 지역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사투리가 이렇게 드라마에 많아지는 건, 역으로 보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청춘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이고, 이들 드라마에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서 밀려나 지역으로 내려온 청춘들이 적지 않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지역은 이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때론 소진된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곳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실제 현실에도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곤 있지만 그게 하나의 흐름이라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드라마가 그리는 건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로서의 지역이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간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양한 지역들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거기에 서울 중심의 표준어를 벗어나 지역 정감을 살리는 사투리가 전면에 배치되는 건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만 봐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고, 그것이 도시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반복하면서 드라마 자체의 다양성도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으로 가는 드라마들의 등장은 더 다채로운 이야기와 소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는 도시와 지역 간의 문제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장 안에서는 미국 할리우드 중심의 콘텐츠들과 변방으로 여겨진 아시아권이나 유럽, 남미의 콘텐츠들 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OTT가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콘텐츠 시장 역시 영어권 중심만으로는 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K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들이 생산되어 시장 안에 들어서게 됐다. 애플이 1천억원을 들여 제작한 <파친코> 같은 작품은 단적인 사례다. 재일한인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애플이 투자한 드라마지만, 한국인의 문화와 더불어 경상도, 제주도 사투리는 물론이고 당대의 재일한인 특유의 어투까지 고증을 통해 재현해내는 노력을 선보였다. 이런 노력이 결국 한국 고유의 진한 정서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사투리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언어가 아니다. 콘텐츠를 통해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이데일리, 사진:쿠팡플레이)

‘파친코’의 진가는 단역조차 이런 묵직한 대사를 던진다는 것

파친코

오사카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이삭(노상현)은 아들이 위험한 일에 빠져 있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그 아들을 찾아가 만난다. 얼굴에 잔뜩 흙이 묻은 채 이삭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내는 설득하러온 이삭에게 오히려 “눈을 뜨라”고 일갈한다. 

 

“눈을 뜨실 때가 됐어요. 전도사님. 여기 인부들이나 나나 땅굴 들어가서 철로를 깔아요. 인부들 더 빨리 더 많이 먼 곳으로 실어 나르려고. 그래서 우리처럼 뼈 빠지게 부려 먹으려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대우를 해달래요? 최소한 길바닥에 똥 싸지르는 짐승이랑은 다른 꼴로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등장하는 이 사내는 단역이다. 이삭이 우연찮게 만나고 지나치는 인물 중 하나일 뿐. 하지만 이 사내가 던지는 대사는 <파친코> 6회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건 살기 위해 조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오사카로 와 갖가지 차별 속에서 살아나가던 조선인들이 가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저들처럼 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총칼을 앞세워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고, 그 위험이 그 자신과 가족만이 아닌 모든 조선인들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삭은 말하지만, 그런 이삭에게 던지는 사내의 일갈은 얼얼하기만 하다. “제가 그걸 모를 거 같으세요? 저라고 꿈속에서 어머니 얼굴 보고 울다 깨는 일 없겠냐고요. 형제들, 누이들 만나 본 적 없는 생판 남들까지 다 걱정되고 신경 쓰인다고요. 하지만 두려움이 내 몸을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요, 나중엔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거예요. 그걸 내 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자기 몸도 없는 게 사람이에요?”

 

1920년대 일본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조선인들의 삶은 1980년대 일본에서의 그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친코>는 이런 현실을, 이삭과 사내의 에피소드에 이어 솔로몬(진하)과 하나의 에피소드로 교차 편집함으로써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하나는 솔로몬이 미국으로 떠난 후 ‘예쁜 집’에 사는 애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걸린 이 병이 바로 그런 집에서 자란 남자한테서 옮은 거라며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한다. “솔로몬 날 봐. 넌 절대 그들이 될 수 없어. 그렇게 비싼 옷을 입고 좋은 학위를 따도 그들은 네가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딱 그만큼만 문을 열어 놓을 거야. 넘어가지 마.”

 

끝까지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김치를 담가 먹으며 살아온 재일 한인들의 삶을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솔로몬은 회사로부터 땅을 팔지 않는 한 재일한인 할머니를 설득해야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에 몰렸지만, 그래서 저들을 위해 나섰지만 끝내 할머니가 그간 겪어온 아픈 차별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고는 땅을 팔라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실패한 솔로몬을 가차 없이 버린다. 하나의 말대로 저들은 솔로몬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만큼만’ 문을 열어 놓은 것. 

 

“사람이 아니에요. 우린 저놈들 눈에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고... 적어도 나 바닥은 아니다. 내 밑에 누가 더 있다. 저 놈들의 법을 따라 줬어요. 그런데 아직도 춥고 아직도 배고프잖아요. 이젠 그 법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이삭이 만난 사내가 쏟아내는 그 말은 1980년대의 솔로몬이라는 후대에까지 그 울림이 이어진다.  

 

사내의 그 말에 무언가 깨달은 이삭은 사사건건 그의 아내 선자(김민하)를 깎아내리는 형에게 꾹꾹 눌렀던 감정을 폭발한다. 형의 모습은 저 사내가 말한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는” 그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 사내가 했던 말을 빌려 형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내 자식이 자기 몸의 윤곽을 똑바로 알고 당당하게 재량껏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자식들도 그럴 자격 있는 거 아냐 형? 형도 나도.” 

 

그리고 이삭의 이 이야기는 나이든 선자(윤여정)가 과거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하려던 한수(이민호)가 집도 사주고 뭐든 해주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솔로몬에게 털어놓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내를 반으로 쪼개놓고 살수는 없다 아이가. 뭐는 당당히 내놓고 뭐는 숨키가 살고. 니 그 아나? 잘 사는 거보다 어떻게 잘 살게 됐는가, 그게 더 중한 기다.” 그 이야기는 선자가 아이 아버지인 한수가 아닌 이삭을 선택해 결혼해 살아가게 된 이유를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일본 땅에 이주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이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대사를 단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런 선택은 <파친코>라는 작품이 주인공에서부터 저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작가가 가진 이름 모를 민초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슬쩍 지나가는 어부나 어시장 한 편에서 쌀을 파는 쌀집 할아버지, 이역 땅에 와서 땅굴에 들어가 철도를 놓는 일을 했던 인부까지 중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어쩌면 이주민이라는 위치에서 살아오며 내재된 관점이 아닐까 싶다. <파친코>라는 작품이 특히 감동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사진:애플TV+)

‘파친코’가 담아내고 있는 한국인의 저력

파친코

“1910년 일본은 제국을 확장하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한국인이 생계를 잃고 고향을 뒤로하고 외국 땅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가족들은 견뎠다. 여기 몇 세대에 걸쳐 견뎌낸 한 가족이 있다.”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이런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한 가족이 4대에 걸쳐 버텨내고 견뎌낸 삶을 담겠다고 한다. 자못 비장한 자막이 흘러나온 후 드라마는 선자의 어머니 양진(정인지)의 결의에 찬 얼굴을 비춰준다. ‘몇 세대에 걸쳐 견뎌낸 한 가족’을 그리는 것이지만, 그 중심에 바로 여성이 있다는 걸 드라마는 그렇게 말한다. 

 

무당을 찾아온 양진은 어머니가 박복했고 자신까지 낳아 고생하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마음이 아파 술만 먹고 다녀 자신과 동생은 거지처럼 빌어먹고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언챙이라 장가를 못간 하숙집 아들과 혼인시키고, 그래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는데 모두 죽었다는 것. 그가 무당을 찾아온 건 어떻게든 지금 또 가진 아이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양진은 딸 선자(전유나)를 낳는다. 

 

딸이 너무나 귀한 아버지는 선자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니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내 뭔 짓을 해서라도 이 세상 드러운 것들이 니 건들지도 못하게 할 거라고. 아버지 그 약속 지킬기다.” 그런 아버지는 결국 병으로 돌아가신다. 그 앞에서 오열하는 어린 선자의 모습에 아버지가 남긴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옛날에는 내 팔자가 왜 이리 모진가 할 때가 있었다. 오만천지 다 행복해도 내랑은 평생 먼 얘긴지 싶었데이 그런데 니 엄마가 내게 오고 니도 생겼지. 그라고 보니께 팔자랑 상관이 없는 기라. 내가 니 부모될 자격을 얻어야 되는 거더라. 선자야. 아버지가 강해져갖고 세상 더러분 것들 싹다 쫓아버렸으니까 아인나 니도 금세 강해질 거다. 나중에는 니 얼라들도 생기겠지. 그 때 되면 니도 그럴 자격이 되야 된다. 선자 니는 할 수 있다. 나는 니를 믿는다.”  

 

<파친코> 첫 회에 담긴 선자네 가족의 이야기는 1915년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을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세상 더러운 것들이 건들지도 못하겠다 했던 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그 모질고 힘든 세상 앞에 선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 그가 걸어갈 한 평생의 삶을 우리는 근현대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원폭 투하와 일본의 항복 선언 그리고 터진 한국전쟁 등등. 그 과정에서 선자는 일본으로 넘어가 파란만장한 삶을 버텨낸다. 김치를 리어커로 만들어 팔아가며 자식들을 부양해온 삶.

 

<파친코>는 선자네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파란만장한 한 세기를 살아온 한국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리고 있다. 첫 회, 선자네 하숙집에서 술 한 잔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아저씨들이 ‘뱃놀이’를 부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뭉클한 면이 있다. 어찌 보면 일제가 다 빼앗아가는 통에 더 가난하고 더 고단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이들의 노래에는 한과 더불어 흥이 가득하다. 가난하지만 나눠 먹는 상이 풍족하고, 일제의 폭력 앞에 짓밟히지만 당당하다. 

 

<파친코>가 그리는 선자네 가족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은 그래서 그 자체로 뭉클한 면이 있다. 그것은 무수한 외세의 침탈을 받아온 한국인들이 끝까지 버텨내는 끈질긴 생명력과 더불어, 가난해도 정이 있고 또 당당한 삶의 면면들이 묻어나서다. 이런 모습은 선자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선자(김민하)가 갖지 말아야할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숙집에서 양진의 보살핌으로 죽다 살아난 이삭은 딴에는 도움이 되겠다며 선자에게 입양을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선자는 단호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세상이 다 무시하는 사람의 사랑 받으면서 컸어예. 우리 아부지. 이래가 아부지 생각하는 게 뭐 염치가 없지만서도 다들 우리 아부지 평생 장가도 못가고 자식도 없을 기라캤는데 지가 요래 있잖아예. 없어야 할 아가 요 있다 아입니까. 야도 있으면 안되는 아지만 요 배 속에 잘 있심니더. 야도 사랑받으면서 클기라예. 지가 밤낮으로 일해가 손톱이 다 부러지고 허리가 뽀사지고 배를 쫄쫄 굶는 한이 있어도 내 아는 부족한 거 하나 없이 키울 겁니더. 그래 약속했십니더. 지 아부지 지한테 약속하신 것처럼예. 안돼지예. 지 아는 못 버립니더.”

 

세상 더러운 일들이 삶을 업신여기고 힘들게 만들어도 끝끝내 버텨내는 힘이 만들어내는 끈질긴 생명력. 선자는 그렇게 부모의 간절함 속에서 태어났고, 선자 역시 그렇게 자신에게 온 아이를 키우려 한다. 그리고 그 삶의 무게는 이제 노년의 선자(윤여정)의 얼굴 주름 하나하나 속에 각인되어 있다. 

 

1989년의 선자와 1915년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선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교차되면서 전해지는 <파친코>에서 노년의 선자 역할을 하는 윤여정의 연기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옛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려도 거기에 만만찮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밤낮으로 일해 손톱이 다 부러지고 허리가 부서지고 배를 쫄쫄 굶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 아이만큼은 부족한 거 하나 없이 키우겠다는 다짐. 그것이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선자의 패인 주름은 말하고 있다.(사진: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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