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복제시대, 쇼의 생존법

쇼는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그것을 진화라고 부를 수는 있는 것일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쇼라고 해도 하나하나 그것을 뜯어보면 끝없는 복제 끝에 만들어진 돌연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진화라고 한다면 쇼는 진화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면 좀 허무하지 않을까. ‘무한도전’을 복제하다 실패한 것이 ‘라인업’이고 돌연변이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 ‘1박2일’이라면?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과 동시에 케이블TV의 동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복제하면서 나온 돌연변이가 ‘우리 결혼했어요’라면 비약일까?

거의 의미가 없어진 원본
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원본이라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 역시 90년대의 ‘사랑의 스튜디오’같은 프로그램에서 피를 받았고, ‘무한도전’은 특이한 경우지만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해온 결과로서 만들어졌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제 해외의 쇼들을 둘러봐야 할 것이다. 늘 벌어져왔던 베끼기 논쟁의 끝이 바다 건너로까지 가는 건 쇼의 탄생도 또 형식 그 자체도 거기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복제를 부정적으로 보면 마치 아무런 창조적 작업을 행하지 않은 도둑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창조의 의미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있는 것들을 가지고 조합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기술복제시대에 복제는 어쩌면 창조의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쇼 프로그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선조로 두고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들이다. 그러니 가장 최근에 야심차게 만들어지고 기획된 쇼라면 어쩌면 이 많은 웃음의 유전자들을 하나에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무한복제시대, ‘패밀리가 떴다’의 생존법
SBS의 ‘패밀리가 떴다’를 보다보면 그 많은 쇼의 유전자들을 목격하게 된다. 거기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은 ‘1박2일’에서 보였던 여행의 형식이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가 여행코드를 활용하는 방식은 ‘1박2일’과는 다르다. ‘1박2일’의 여행이 야생의 체험이면서 여행지를 보고 체험하고 느끼는 ‘발견하는 여행’이라면, ‘패밀리가 떴다’의 여행은 여행지 체험이 아닌 패밀리를 다시 발견하는 단합대회에 가깝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이 두 여행에서 상반되게 보이는 여행지에 대한 무게감의 차이다. ‘1박2일’에서 여행지가 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것은 단지 장소제공을 해줄 뿐이다.

‘패밀리가 떴다’가 ‘X맨’의 야외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1박2일’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패밀리가 떴다’는 애초부터 게임을 그 중심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유재석이 틈만 나면 “게임 해야죠”하고 말하고, 쇼를 통해 만들어진 관계를 게임 속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예를 들면 천데렐라 이천희와 계모 김수로의 대결구도 같은) 것이 그것이다. 게임을 통해 경쟁 관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사랑해 게임’같은 남녀 간의 게임을 통해 애정 관계를 끄집어내는 것은 ‘X맨’에서 이미 익숙했던 코드들이다. 즉 ‘패밀리가 떴다’는 ‘1박2일’의 여행코드와 ‘X맨’같은 남녀가 벌이는 알콩달콩한 게임 쇼가 합쳐진 형태다. 물론 ‘X맨’ 역시 80년대의 ‘명랑운동회’이후 끝없이 생산된 스튜디오형 게임 쇼와 각종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 형식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무늬만 다를 뿐, 토크쇼의 알맹이는 같다
이런 사정은 토크쇼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소위 말해 집단 MC 체제의 토크쇼들은 대부분 2000년도에 거의 50%에 가까운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서세원쇼 토크박스’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등장해 한 사람씩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거나, 개인기를 보여주는 이 단순한 형식은 지금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야심만만’같은 프로그램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달라진 것은 연예인의 사생활 토크와 개인기를 끌어내기 위한 형식들이다. ‘해피투게더 - 도전 암기송’에서 도전 암기송에 할애되는 시간이 점점 작아지고 대신 연예인들의 토크에 더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에둘러 말해준다.

‘야심만만’이 독특했던 것은 똑같은 연예인의 사생활 토크와 개인기를 특유의 공감코드와 엮었다는 점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특정 상황 속에서의 대처방법 같은 순위의 차트가 있고, 그걸 맞추기 위해 자신의 경우를 말하는 ‘야심만만’은 가장 자연스럽게 연예인의 사생활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이 알고싶은 사생활’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알리고픈 홍보성 사생활’이 속보이게 드러나면서 프로그램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최근 다시 시작한 ‘야심만만-예능선수촌’은 오히려 그 포맷의 중심을 더 ‘서세원쇼 토크박스’로 두고 있다.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둘러앉아 저마다의 이야기와 개인기를 보여주는 토크박스 형식에 ‘올킬’이라는 시스템으로 대결구도를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처럼 지금의 쇼 프로그램에서 어떤 그것만의 아우라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어떤 프로그램 속에서 ‘명랑운동회’나, ‘사랑의 스튜디오’,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서세원쇼 토크박스’ 같은 아련한 아우라가 파편적으로 조금씩 뒤섞여져 보일 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치열한 시청률 경쟁이 그 원인이다. 게임쇼가 잘 되면 게임쇼로 몰리고, 짝짓기 프로그램이 잘 되면 모든 채널에 짝짓기 코드가 적용되어왔던 것은 지금 전 쇼의 리얼 버라이어티쇼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단지 시청률 경쟁 때문일까. 여기에는 원본의식이 희미해진 디지털 기술복제시대가 갖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작용한다. 누구나 다 비슷비슷한 아이디어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이미 원본이 없어진(중요하지 않게 된) 이러한 세상에서 자신이 원본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중요한 건 원본보다는 그 원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나 오히려 타 분야(심지어는 다른 쇼)와의 다양한 접목 같은 것이 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방송3사 모두의 대표MC가 됐을까

현재 예능 프로그램의 대표MC를 말하라면 누구나 유재석과 강호동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방송3사의 대표적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강호동이 MBC ‘무릎팍 도사’, KBS ‘1박2일’, SBS ‘스타킹’의 메인MC라면,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 KBS ‘해피투게더’ 그리고 SBS ‘패밀리가 떴다’의 메인MC로 둘 다 방송3사 예능의 그랜드 슬럼을 달성한 셈이다. 이들의 이런 놀라운 성공비결을 알고싶다면 먼저 이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 별로 이들의 캐릭터 설정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

뚝심의 강호동, 까칠하게, 친형처럼, 머슴처럼
강호동이 가진 기본 캐릭터는 거의 대개가 씨름선수 시절에서부터 가져온 것들로 그것은 힘과 순발력이다. 때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힘의 승부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단히 섬세한 순발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무릎팍 도사’가 극대화시킨 부분은 ‘까칠함’이다. 이 도발적인 토크쇼에서 강호동은 특유의 힘있는 말을 구사하면서 섬세하게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는 캐릭터로 자신을 설정한다.

반면 ‘1박2일’에서 극대화된 것은 ‘친형 같은’ 이미지다. 여기서는 순발력보다는 힘이 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활용된다. 때론 무모하리 만치 바보스럽게 고집을 피우지만 그로 인해 저 스스로 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직하게 동생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스타킹’에서는 노련하지만 ‘머슴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이미지를 구사한다. 프로그램 특성상 출연한 일반인들의 재미요소를 순발력 있게 잡아내면서, 그 재미요소에 대해 힘있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에서의 강호동의 입지를 공고히 하게 만든다.

균형감각의 유재석, 1인자, 2인자, 3인자
탁월한 순발력의 소유자이자 프로그램 전체를 조율하는 특별한 균형감각을 지닌 유재석은 바로 그 빠른 상황판단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특징을 잘 살리는 MC다. ‘무한도전’에서 그가 구축한 이미지는 1인자다. 물론 여기서 이 1인자는 흔히 생각하는 수직적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1인자가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보여준 탁월한 점은 수평적 카리스마를 구사하면서 1인자 같지 않은 1인자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해피투게더’에서의 유재석은 2인자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출연진들의 재미요소를 잡아내고 극대화시키는 버팀목 역할에 더 치중한다. ‘해피투게더’가 한때 고전하다 최근 다시 정상의 궤도에 오른 것은 바로 이 유재석의 버팀목 역할로 주변인물들, 예를 들면 박미선이나 신봉선 같은 고정 출연자나 게스트들의 캐릭터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은 3인자의 이미지를 자처한다. 늘 지고 깨지는 역할을 자청하는 이유는 대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초반부가 그러하듯이 그 힘든 과정 속에서 캐릭터가 더 잘 구축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라고 해도 방송3사의 그것도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점은 아마도 이미지 관리일 것이다.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활용한다면 그만큼 빠르게 캐릭터가 소진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니 이 도전에 맞서 이들이 구사하는 것은 프로그램 성격에 맞는 캐릭터의 변신이다. 이제 우후죽순 많아지는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연기자의 연기변신처럼 예능인의 캐릭터변신(혹은 설정 변신)은 필수적인 것이 될 지도 모른다.

키워드로 보는 방송3사 예능 색깔

1년 전만 해도 방송사의 얼굴은 드라마였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은 그 방송국의 이미지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이 역할은 예능과 분담되고 있는 추세. 주중 한밤중의 토크쇼 전쟁, 주말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경쟁은 드라마 경쟁만큼이나 치열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에 있어서 방송3사가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것처럼 예능에 있어서도 그 색깔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MBC 예능, ‘연애’에 빠지다
‘무한도전’이 주춤하는 사이, 새롭게 강자로 부각된 ‘우리 결혼했어요’. 짝짓기 프로그램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접목된 이 프로그램은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만 출연했던 각종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저마다 남녀를 출연시켜 짝짓기 프로그램을 그 안에 넣으려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이 ‘무한걸스’와 미팅을 했고, ‘1박2일’이 백두산으로 가는 여정에 승무원들과 짝짓기 게임을 했으며,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여자 출연자들이 출연해 남자 출연자들이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살아봅시다’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결혼의 환타지를 현실 버전으로 바꾸었다. 최근 MBC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MBC의 예능에 짝짓기 프로그램이 새로운 메인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SBS 예능, ‘가족’에 빠지다
SBS 예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라인업’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고배를 마신 SBS가 야심차게 꺼내놓은 카드가 ‘패밀리가 떴다’라는 점은 가족을 유달리 강조하는 방송사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패밀리가 떴다’는 물론 그 프로그램 포맷에 있어서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상당부분 유사한 점들이 있지만, 다른 점은 바로 출연진들이 유사가족을 형성하고, 전국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유사가족을 꿈꾼다는 점이다.

SBS의 ‘가족’ 편향은 ‘스타킹’의 출연진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보통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발견되고, 몰래카메라의 새로운 버전인 ‘체인지’의 주류를 이루는 가족을 찾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폐지가 결정된 ‘사돈 처음뵙겠습니다’는 물론이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와 유사한 ‘살아봅시다’가 좀더 가족들과의 대면에 집중하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SBS의 다른 예능들 예를 들면 ‘인터뷰 게임’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역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이템들이 주를 이루는 것도 그 특징의 하나가 될 것이다.

KBS 예능, ‘노래’에 빠지다
‘전국노래자랑’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오락관’같은 장수하는 코너에는 늘 노래가 있어서 일까. KBS는 좀더 예능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노래로 대변되는 일상 생활의 즐거움이다. KBS 예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1박2일’은 물론 여행이란 아이템이 그 첫 번째 성공비결이 된 것이지만, 거기에서도 노래를 빼놓을 수는 없다. ‘1박2일’이 가장 파괴력을 보인 것은 ‘전국노래자랑’과의 만남이나, ‘충주대 게릴라 콘서트’같은 노래 아이템과의 만남에서였다.

이것은 물론 구성원들이 가수란 점도 작용을 한 것이겠지만, 노래 자체가 갖는 예능에서의 기본적인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결 노래가 좋다’나 ‘도전주부가요스타’같은 본격적인 노래 대결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열린 음악회’나 ‘윤도현의 러브레터’같은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은 바로 노래 자체가 갖는 이 같은 힘이 극대화된 것들이다. 이처럼 ‘불후의 명곡’이나 ‘해피투게더’의 ‘쟁반노래방’의 새로운 버전으로 읽히는 ‘도전 암기송’ 같이 KBS는 줄곧 노래가 주는 즐거움을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오는 경향이 있다.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이처럼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은 그것이 각 방송사의 사풍이나 프로그램 정책, 또는 한때를 풍미했던 프로그램의 경험 같은 것들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은 그때 그때의 트렌드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각기 다른 색깔을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남자여자 따로따로? 천만에!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진원지는 ‘우리 결혼했어요’. 연예인들의 가상으로 설정된 알콩달콩한 부부생활을 리얼리티쇼의 형식으로 보여주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는 과거 남자여자 따로따로 존재해온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짝짓기 프로그램의 만남
새롭게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에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는 이색적으로 남성 출연자들 속에 이효리, 박예진이 투입된 것은 이 변화의 바람을 예고한다. 이 여성 출연자들의 투입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 감정 같은 좀더 다양한 코드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패밀리가 떴다’의 일등공신으로서 이효리와 박예진이 지목되고, ‘사랑해 게임’이 주목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 주 방영이 예고되어 있는 ‘무한도전’에서 ‘무한걸스’와 6대6 미팅을 벌이며 커플 버라이어티를 시도한다는 것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케이블에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남녀간의 만남이 더 많이 이루어져 왔다. 청춘남녀의 소개팅을 다룬 엠넷의 ‘아찔한 소개팅’, 올리브의 ‘키스 더 데이트’같은 리얼리티쇼는 물론이고, 극단적으로는 코미디TV의 ‘애완남 키우기 - 나는 펫’도 남녀의 은밀한 연애감정을 주로 다뤄왔다.

이것은 심지어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에브리원의 ‘무한걸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 출연진들에 의해 꾸려져 가는 ‘무한걸스’에서 그 도전 과제 중 하나로서 멋진 남자들과의 소개팅은 늘 시도되었던 소재이다. 그러니 ‘무한걸스’ 입장에서 보면 ‘무한도전’과의 미팅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공중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원조격으로 주로 남자들만의 도전에 치중되어 있었던 ‘무한도전’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공중파와 케이블의 만남
‘우리 결혼했어요’가 케이블TV 짝짓기 프로그램의 공중파 버전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면 이러한 변화양상을 공중파 전체에 파급시킨 것은 역시 그 진원지를 케이블TV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과 ‘무한걸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로 각각 팀원이 구성되어 성격도 다른 두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만남이면서 동시에 공중파와 케이블의 만남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케이블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중파는 케이블TV의 짝짓기 프로그램이 갖는 선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전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사실은 동거생활을 보여주면서도 그 선정성이 가려지는 것은 마치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상큼 발랄한 영상들과 이야기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 공간에서 남녀가 함께 잠을 자야하는 상황에 있는 ‘패밀리가 떴다’는 유사가족 같은 분위기로 그 위험성을 넘어서려 한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모두 동거나 혼숙이라는 음성적인 코드를 결혼과 MT 같은 긍정적인 모드로 바꿔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윤리적인 잣대보다는 그것이 진짜 리얼리티에 효과적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남자들만의, 혹은 여자들만의 팀원들이 갖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각자의 리얼리티를 끄집어내는데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이성들이 함께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정말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미 케이블에서 예고되었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짝짓기 프로그램과의 동거는 이제 점점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분명한 점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는 공중파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리티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상인지 출연진들조차 혼동을 일으키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 놓여져 있다는 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