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파트2, 송혜교를 괴롭히는 새 고데기에 담긴 참혹한 현실

더 글로리 파트2

“성공했네. 박연진. 나를 상대할 새 고데기를 두 개나 찾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문동은(송혜교)이 던지는 그 대사는 이 드라마의 후반전의 뜨겁게 타오를 화력을 예감케 한다. 고데기와 문동은의 온 몸에 남아있는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폭력의 시스템의 중요한 상징들이다. 머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쓰는 고데기를 저들은 약자들의 온 몸에 상처를 내는데 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왜 없는 것들은 세상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박연진의 대사로 등장하는 이 말이 바로 저 가해자들의 뻔뻔한 입장이다. 하지만 문동은의 온 몸에 남은 화상자국이 그러하듯이, 피해자들은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간다. 심지어 죽고 싶을 만큼. 문동은은 그래서 저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마치 바둑을 두듯 차근차근 상대의 집을 무너뜨려가며 걸어가지만, 박연진도 만만하지 않다. “네 X을 상대할 고데기를 찾을 것”이라고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박연진이 찾아낸 두 개의 새 고데기는 문동은의 엄마와 그의 든든한 조력자 현남(염혜란)이다. 이미 어린 문동은을 박연진의 엄마가 준 돈 몇 푼에 합의서를 써준 후 버렸던 문동은의 엄마다. 그런 그를 이제 박연진이 찾아와 돈을 주며 문동은을 학교에서 떠나게 만들라고 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엄마가 다시 찾아오자 문동은은 분노한다. 과거의 상처와 악몽이 또 다시 현재에 되살아난다. 

 

또한 박연진은 현남을 찾아와 그의 딸을 빌미로 협박한다. 딸의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는 것. 그러면서 현남을 회유해 문동은을 배신하라고 획책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동은은 괴롭다. 자신이 믿고 함께 하는 조력자가 자신의 복수 때문에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두 개의 새 고데기는 그렇게 다시 박연진의 손에 들려 문동은을 향해 드리워진다. 

 

온라인 시사회를 통해 미리 공개된 파트2의 2회분 내용을 보면 <더 글로리>의 후반전이 문동은과 박연진의 치고받는 대결로 치열해질 것인가를 예감케 한다. 여기서 가장 소름 돋는 설정은 가해자의 ‘새 고데기’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학교폭력 같은 과거의 폭력 전과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다시 새로운 고데기가 되어 피해자를 괴롭히는가에 대한 서사가 들어 있어서다. 

 

물론 <더 글로리>에서 새 고데기는 박연진이라는 최강 빌런이 끝내 찾아내는 ‘악의 성실함(?)’에서 등장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들의 새 고데기는 그들이 처벌받지 않고 심지어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을 괴롭힌다. 최근 자녀의 학교 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단적인 사례다.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드러낸다. 서울대생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그래서다. 당시 피해자가 자살 시도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학교폭력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입시, 인사 시스템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고데기가 아닐까.

 

최근 MBN <불타는 트롯맨>에서 과거 폭력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하차하지 않고 활동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가 쏟아지는 비판 속에 결국 하차를 결정한 황영웅과 제작진에 쏟아졌던 공분도 같은 것일 게다. 피해자는 여전히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새로운 고데기를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폭력의 이면에 존재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스템과 그래서 돈과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더 잘 살고, 약자인 피해자는 더 힘겹게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저격하는 드라마다. 성실한 악은 아니라고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의는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게는 새 고데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더 글로리>는 에둘러 말해준다. 

 

만일 죄지은 자들이 처벌받는 정의가 작동했다면, 문동은 같은 피해자가 왜 스스로 나서서 사적 복수를 하려하겠는가. 그건 복수가 아니라 새 고데기가 여전히 드리워진 삶으로부터의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까. 오는 10일 후반부 전편이 공개되는 <더 글로리> 파트2는 이 첨예한 새 고데기와 맞서 싸우는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연진의 말과 달리 이 세상에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가 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보여주길.(사진:넷플릭스)

복수극 난무하는 시대, ‘법사’가 선택한 새로운 길

법대로 사랑하라

층간소음, 아동학대, 성폭력, 학교폭력. 소재만 봐도 그 사안의 심각함을 누구나 체감할 게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할 때마다 대중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사건들. 하지만 끝나지 않고 계속 터져 나오는 사건들. 그래서일 게다. 현실이 해결해주지 않는 이 사건들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속 시원한 해결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사회 문제와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온 장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복수극 형태로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던지는 드라마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사건을 사적 복수의 형태로 해결하는 드라마들도 적지 않아졌다. 이런 시대에 KBS 월화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다. 저 심각한 사안들을 가져오고 그 사안들에 대한 판타지 사이다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이 드라마는 변호사가 출연하고 있고 그래서 법을 다루고 있지만 법정 안에서의 싸움을 그리진 않는다. 그렇다고 법 바깥에서 사적 복수를 취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안이 발생한 그 서민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실질적인 해법’이나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한다. 로펌에서 나와 로(Law) 카페를 차려 법원에 가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김유리(이세영)라는 인물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는 저 심각한 사안들을 겪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며 실질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준다.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미칠 지경이 된 한 사내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이웃 간의 에티켓 문제가 아니라 건설사의 부실시공이 문제라는 걸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김유리와 김정호(이승기)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여타의 법정드라마 혹은 법 밖의 복수극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예고에 가까웠다. 법적 대응을 해봐야 소송비용을 빼고 실질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얻어갈 것이 없을 거라는 걸 간파한 이들은 각자 다른 집에서 악기를 연주해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른바 ‘층간소음 밴드’ 영상을 SNS에 올림으로써 브랜드 이미지 추락에 직면한 건설사의 합의를 얻어낸다. 

 

지속적으로 벌어진 아동학대 때문에 아이가 밤마다 거리로 도망쳐 나와 돌아다니고 김유리가 운영하는 로카페에 까지 들어오게 된 사건도 가해자인 부모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피해자인 아동의 이야기를 김유리와 김정호가 들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해결책을 보여줬다. 게다가 김유리는 해당 관청에서 이런 신고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지만, 해당 공무원 역시 보호 아동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현실적인 토로를 함으로써 아동학대 문제와 연관된 아동보호시설의 부족까지 꼬집기도 했다. 

 

5회에 등장한 가사도우미 성폭력 사건은 흥미롭게도 ‘적극적 동의(Yes means Yes)’에 대한 이야기를 김유리가 김정호에게 동의 없이 키스한 대목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이 법적인 사건과 드라마 속에 부지기수로 등장했던 이른바 ‘동의 없는 키스들’에 대한 비판을 달달한 멜로와 엮어 풀어내는 기막힌 전개를 보여줬다. 

 

이른바 ‘벽치기’라고도 불리는 드라마 속 동의 없는 키스 장면들은 이제 ‘폭력’으로 간주되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키스의 적법성에 관한 고찰’이라는 부제에 맞게 김유리는 자신의 키스가 김정호의 동의 없이 했던 것에 대해 재차 사과한다. 이건 이런 장면에서의 남녀 상황을 뒤집어놓은 설정을 가져와 이러한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위들에 사전 동의가 필요하며 그게 아니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가사도우미에게 아무런 동의 없이 스킨십을 하려한 집주인의 성폭력 사건과 연결되어 사안을 더 확장해서 보게 해준다. 

 

6회에 다뤄지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로 카페에 상담하러 온 폭력 피해학생이 ‘촉법소년’에 대해 물어오고 그건 그가 심각한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위기의 신호를 암시한다. 그 폭력을 옆에서 알아차린 역시 학교폭력으로 동생을 잃은 로카페 바리스타 서은강(안동구)이 피해학생을 돕겠다고 일부로 방화사건을 내고 그걸 가해학생들의 짓이라 거짓 증언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직접적인 보복도 법적인 해결도 아닌 이들이 제시한 제3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사실 <법대로 사랑하라>는 제목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주로 ‘법대로 하라’는 말이 법대로 ‘처벌하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처벌’ 대신 ‘사랑’을 선택했다. 처벌이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를 말한다면, 사랑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물론 심각한 사건들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중요할 게다. 하지만 그러한 처벌만큼 삶이 나아지려면 피해자들을 보듬어주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법대로 사랑하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김정호와 김유리의 관계로 보면 김유리를 사랑하지만 자신과(혹은 가족) 관계된 일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는 김정호엑 이 드라마는 일단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당당해진 후 사랑하라고 말하는 듯 하다. 또 앞서 말했듯 ‘법대로’ 처벌만이 아닌 사랑을 하라는 의미로도 읽히고, 저 성폭력 사례의 적극적 동의의 관점으로 보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으로(그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여러모로 복수의 방식으로 법이 그려지곤 하는 시대에 색다른 선택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사진:KBS)

학교폭력을 다뤄도 '나의 가해자에게' 같은 진지함이 있어야

 

학교폭력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KBS 드라마스페셜 2020에서 마련한 단편 <나의 가해자에게>가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조심스럽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단순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걸 이 드라마는 알고 있다.

 

이 단편 드라마가 학교폭력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여겨지는 건 그 이야기 구도 자체에서부터 느껴진다. 학생시절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기간제 교사 송진우(김대건)가 바로 그의 가해자였던 유성필(문유강)을 동료 기간제 교사로 맞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있지만 지금은 그런 학교폭력이 벌어졌을 때 이를 올바르게 바로잡아줘야 할 똑같은 선생님이라는 점이 문제의식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

 

즉 유성필에 대한 복수심을 느끼는 송진우는 동료 교사가 온다는 소식에 밤을 새워 학교 전반적인 업무 내용이 담긴 OJT 자료를 만들었지만, 그가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료를 찢어버리고 원본 파일까지 삭제해 버린 것. 자신이 과거 당했던 그 일을 학생들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학교'라는 문구를 모니터에 붙여 놓고 다짐하던 송진우는 유성필을 마주하며 과거 그에게 당하며 복수를 꿈꿨던 학생시절의 자신이 다시 떠오른다.

 

그렇게 소신이 흔들리는 그에게 학교 이사장의 손녀인 박희진(우다비)은 그의 끓어오르는 복수심에 불을 붙인다. SNS에 떠돌던 과거 송진우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영상을 찾아내고 그가 유성필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 박희진은 이 약점을 쥐고 송진우에게 복수를 하게 해주는 대가로 "1년 간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런데 그 요구는 알고 보니 박희진의 '놀이(짝을 괴롭히는 것)'를 묵과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나의 가해자에게>는 송진우라는 인물이 이제는 교사가 되었지만(그것도 남다른 소신을 갖게 된) 자신이 과거 당했던 학교폭력이 현재에도 계속 반복되게 되는 이유를 묻는다. 이사장의 손녀라는 권력은 그가 가해자가 되어도 교사들이 그걸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심지어 피해자가 학교를 전학가거나 그만둬야 하는 엉뚱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게다가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도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해자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의 가해자>는 학교폭력이 권력과 함께 어떤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반복되는가를 다루고 있고, 그 상처가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평생 피해자를 따라다니는 고통을 안긴다는 걸 보여주며, 나아가 그것을 근절하기 위해 진정한 어른들(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각성한 송진우가 자신이 과거 당했던 폭력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자기 반에 벌어지는 피해자를 외면하려 했다는 것에 사죄를 하며 지금이라도 자신을 믿고 이를 바로잡자고 말함으로서 학생들과의 연대로 이 문제에 맞서는 장면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또한 그 장면은 학교폭력이 단순히 복수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청률 1.5%(닐슨 코리아)의 단편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떠오르는 건 무려 14.5%의 시청률을 내고 있는 SBS <펜트하우스>다. <펜트하우스>에도 학교폭력이 일상화된 아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학교폭력을 자극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그 복수를 당장의 사이다를 주는 카타르시스 정도로 담는다. 학교폭력이라는 결코 간단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재를 시청자들을 자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정도로 활용하는 것. 그런 점에서 이 1.5% 시청률의 드라마가 갖는 가치는 저 14.5% 시청률의 드라마보다 훨씬 크지 않을까.(사진:KBS)

‘검사내전’, 억지 사이다보다 현실 공감 택한 검사드라마

 

학교폭력에 자식이 휘말렸다. 그런데 그 부모가 검사다. 과연 그 검사는 자식을 위해 아는 연줄의 힘을 쓸까. 대부분의 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라면 그 부모는 자식을 위한답시고 할 수 있는 모든 연줄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 사건을 무마하려 했을 게다. 하지만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은 다르다.

 

이선웅 검사(이선균)는 자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 사건에 자신의 힘을 쓰지 않는다. 조민호 부장(이성재)과 홍종학(김광규) 수석검사가 관할서에 연줄이 있다며 도와주겠다 했지만 그 도움을 받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경찰서에서 직업을 묻는 경찰관에게 이선웅은 검사가 아닌 “회사원”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일선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쉽게 사죄하고 용서를 이야기하지만 피해자는 결코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이선웅은 보게 된다. 그러니 자식의 잘못을 덮기보다는 그 잘못이 얼마나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됐는지를 아이가 알기를 바란다. 그는 아이에게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말한다. “쉽지 않겠지만 아빤 지훈이가 뭘 잘못한 건지 그리고 그 친구한테 어떻게 해야 했었는지 깨달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꼭 그 친구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좋겠고.”

 

<검사내전>은 자식문제나 육아문제 같은 현실문제들에 있어서 검사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워킹맘 오윤진(이상희)이 육아에 일에 치여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상황은 여성이어서 감당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드러낸다. 점심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남자들의 농담이 가진 성차별적 인식은 검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가 맡은 성폭력 사건이 무죄 판결나자 심지어 같은 여성인 차명주(정려원) 또한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애 키우면서 공판검사 하는 거 힘들면 하기 힘들다고 하세요. 내가 감안하고 볼 테니까.”

 

이선웅이 맡은 사내 성폭력 사건 또한 여성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을 드러낸다. 우연히 복도에서 부딪칠 때 스킨십이 있었다는 이유로 홍종학(김광규)이 마치 피해자를 ‘꽃뱀’보듯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뒤늦게 취직해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남자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담배도 배우고 함께 술도 마셨지만 그러면서 남자들이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했다는 것. 피해자의 진술은 우리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천장을 뚫어야 하는 여성들이 겪는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낸다.

 

<검사내전>에는 엄청난 연쇄살인이나 납치사건 같은 사건들이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사건들도 적지 않겠지만 이 드라마가 짚어내는 건 그런 사건들만큼 우리네 일상에 닿아있는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사건들이 결코 작은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슬며시 들어와 우리네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중대한 일들일 테니 말이다.

 

<검사내전>은 이런 사건들을 검사들이 다루는 저 바깥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그들 역시 겪는 사건으로 그려낸다. 법을 집행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똑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때론 흔들리면서도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려 애쓴다는 것.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억지 사이다보다는 현실 공감을 택한 검사 드라마라고나 할까. <검사내전>이라는 작품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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