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대기배우 이시언과 촬영장의 힘든 현실

최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들려오는 스텝들의 아픈 목소리들 때문이었을까. MBC 예능 <나 혼자 산다>가 슬쩍 보여준 이시언의 드라마 촬영장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등받이에 ‘대배우’라고 새겨진 의자에 앉는 이시언이 실상은 ‘대기배우’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주는 장면들이 나왔고, 무엇보다 같이 드라마를 찍는 진짜 ‘대배우’ 송승헌이 <나 혼자 산다>에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자꾸 눈에 밟히는 건 그 촬영현장의 고된 현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 대사도 없는 겨우 딱 한 장면을 찍고 하루 종일 대기하는 것이 이시언의 일상이었다. 차 안에서 기다리다 답답해 밖으로 나오면 또 폭염 속에 노출됐다. 모든 드라마 촬영장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견뎌내야만 하는 현장이라면 이번 여름 같은 폭염 속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촬영장의 감독은 머리 위에 얼음주머니를 얹어가며 촬영을 강행하고 있었다. 

짧은 장면이지만 촬영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이시언이 말한 것처럼,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그저 훅 지나가는 한 장면이지만, 촬영은 여러 시선에서 여러 각도로 찍혀져야 했다. 그러니 반복된 장면을 여러 차례 찍어야 했던 것. 인물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나 행동들이 저마다의 시선에 따라 잡혀져야 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반복 촬영이다.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시언은 새벽이 되어야 촬영할 수 있다는 얘기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배우 태원석과 편의점에 갔다. 컵라면이라도 먹으러 갔던 두 사람은 우연히 발견한 레고를 보고 뽑기 하듯 찾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사실 그것이 재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기다림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님이 찾지 않아 문을 닫는 편의점에서 나와 이시언은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촬영 시간은 점점 더 뒤로 미뤄졌다. 매니저는 두시 사십 분에서 세 시 사이에 들어갈 것 같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날씨가 또 변수였다. 마침 태풍 솔릭이 온다는 예보가 나왔던 터라 비가 오면 촬영을 접고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불안해하던 이시언이었다.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진짜로 비가 오면서 촬영은 스톱될 수밖에 없었다. 몇 십분 안에 비가 멈추지 않으면 촬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조금 더 지나면 해가 뜰 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쳐 빠른 시간에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대기했던 이시언이지만 촬영에 더 몰입해서 하는 모습이었다. 만일 비가 와서 촬영을 못하고 철수하게 되면 다음날 또 와서 똑같은 세팅을 다시 하고 찍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시간도 비용도 노동도 배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 그러니 새벽에 겨우 급하게 찍는 그 기회가 오히려 달가울 수밖에. 

“배우는 기다림이다”라고 말하는 이시언이지만, 그를 통해 들여다보게 되는 건 촬영 현장이 얼마나 혹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도 최대한 배려를 받는 주조연급의 배우들이 저 정도라면 현장에서 일하는 이름 모를 스텝들은 어떨까. 밤샘 촬영에 이시언은 기다린 것뿐이지만, 스텝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을 터였다. 만일 그런 촬영이 매일 반복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촬영장의 풍경에서 그 힘든 현실이 묻어난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현실은 너무 멀어보였다.(사진:MBC)

‘라이프’, 명쾌한 고구마도 사이다도 드러내지 않는 이유

이 드라마는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 같다. 민영화 되면서 돈벌이가 되어가는 의료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차원적인 각도로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 <라이프>가 그 전면에 내세운 인물은 구승효(조승우) 사장과 예진우(이동욱) 응급의료센터 전문의다. 

왜 하필 사장과 응급실 전문의를 대립시켰는가 하는 점은 그것이 병원을 바라보는 갈라진 두 관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장은 병원도 기업체나 다름없다 여기며 수익을 내기 위해 경영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필요하다면 수익을 낼 수 없는 응급실을 빈껍데기로만 남겨놓더라도. 반면 응급실 전문의는 갑자기 실려 온 환자들을 보며 만일 응급실이 사라진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를 질문한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구승효 사장은 지역 병원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국대학병원의 응급실, 산부인과, 소아과를 그 곳으로 파견근무 보내려 한다. 의사들이 전부 반발하고 나서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응급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상엽(엄효섭) 암 센터장은 내심 기꺼운 마음이 있다. 그건 응급실에서 올라오는 ‘가망 없는 환자들’을 받는 일이 그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장민기(최광일) 장기이식센터장은 정반대다. 응급실이 없다면 뇌사자를 받아 장기 이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논리로 병원의 경영을 정상화하자는 사장과 맞서 ‘의사’로서의 자존심과 본분을 지킨다는 대의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입장에 따른 이해득실을 고민하는 중이다. 선우창(태인호)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는 아예 사장의 편에서 일한다. 해당 3과가 모여 파업 논의를 할 때 그는 그 회의내용을 전화로 사장이 들을 수 있게 해준다. 

김태상 부원장(문성근)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어딘가 이보훈(천호진) 병원장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의사들끼리의 회의에서는 파업을 내세우더니, 사장에게는 어쩔 수 없이 파업이 결정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라 말하며 은근히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려 한다.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 함이다. 그 회의내용을 다 들은 사장은 그 속내마저 꿰고 있지만.

물론 <라이프>에도 죽은 이보훈 병원장과 가까웠던 예진우와 주경문(유재명) 흉부외과 센터장 같은 대의를 따르는 인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구승효 사장이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꿈틀대기 시작하는 이 병원의 여러 인간군상의 모습이 사실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대의와 현실의 싸움이지만,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많은 인물들의 선택들이 이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그 사이의 많은 선택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들은 마치 우리네 사회가 굴러가는 그 구조들을 입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회의 현상들을 극단적인 생각들이 부딪치고 그래서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 중간 어디쯤을 선택하는 많은 보이지 않는 다수들의 욕망이 움직이면서 그 많은 결과들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라이프>의 이야기는 명쾌한 고구마나 사이다만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것은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 복잡한 양상들을 단순화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그래서 <라이프>는 지금 우리네 드라마들이 늘 명쾌하게만 접근했던 그 틀에 박힌 방식을 깨나가고 있다. 그걸 깨야 비로소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사진:JTBC)

‘검법남녀’, 망자의 목소리를 통해 분노하게 된 건

70대 노인이 집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누가 보면 호상이라고도 할 만한 상황. 하지만 자식들의 모습이 어딘가 수상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비용 문제로 병원을 옮기고,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알고보니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은 보험금 특약사항이어다. 결국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식들이 서둘러 ‘심근경색’을 주장했던 것. 하지만 ‘심근경색’이라고 사인을 쓸 수 없다는 의사가 사인불명을 선언하자 시신은 결국 법에 의거해 부검을 하게 됐다. 

그런데 부검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노인의 발목에 결박흔이 드러난 것. 노인은 넥타이로 발목이 묶인 채 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위는 노인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활해왔다는 걸 말해줬다. 노인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노인과 함께 살았던 차남이 구속되었고 그가 전자화폐 투자로 모든 돈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나왔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평소 치매를 앓고 있어 묶어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차남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집에서 발견한 쥐와 고인에게서 동시에 복어독이 발견되면서 횟집을 운영하는 며느리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며느리는 사업 실패로 시아버지에게 집을 팔아 돈을 융통해달라 했지만 이를 거부당하자 복어독을 좋은 약이라며 갖다 주었던 것. 하지만 복어독 역시 사인은 아니었다. 치사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다룬 70대 노인의 사망사건은 이 드라마가 우리네 현실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이 담겨져 있다. 법의학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드라마는 매 회 사체 부검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사체들이 몸에 남긴 흔적으로 전하는 말들이 아프고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사체를 해부하고 있지만 사실을 우리 사회를 해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주판알만 튕기는 자식들. 고인에 대한 애도가 아닌 보험금에 반색하는 자식들. 어떻게든 조의금을 더 받아낼까를 고민하고, 받아낸 조의금을 서로 자기 거라고 가져가려 싸우는 자식들. 만일 그 아버지가 자식들의 이런 모습을 안다면 얼마나 큰 상처일까. 그것은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큰 아픔이 아닐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법의학에서 이 말은 틀렸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말을 듣는 학문이다. 그래서 사체 해부라는 어찌 보면 눈으로 보기 힘든 과정들이 실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치매를 앓고 있었지만 발목이 묶인 채 방 안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는 이 아버지가 느꼈을 회한의 목소리를 법의학은 듣는다. 혹여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수 있는 망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법의학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검법남녀>는 그래서 긴박한 사건들과 드러나는 증거에 따라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이야기가 그려지지만, 그 밑바탕에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깔아두고 있다.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여인과, 1등만을 외치는 성적 사회에 짓눌려 신음하던 학생, 그리고 방에 감금되다시피 있으면서도 자식들 사진을 옆에 두고 있던 노인이 망자가 되어 그 사연을 전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돈 계산만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하게 되는 건 그 안에 우리네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사진:MBC)

‘미스 함무라비’의 고구마와 ‘무법변호사’의 사이다

대중들은 <무법변호사>를 꿈꾸지만 현실은 <미스 함무라비>다? 두 드라마 모두 법 정의를 다루고 있지만 다루는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JTBC <미스 함무라비>가 그리는 세계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답답하고 암담할 정도다. 반면 tvN <무법변호사>는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판타지에 가깝지만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고아라)은 바로 그 법 현실의 절망감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다. 정의를 꿈꾸며 판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법원 내에서 부정한 청탁을 받은 부장을 지적한 문제는 그를 ‘내부고발자’로 찍히게 만들어 사실상 왕따를 당하게 만든다. 판사라면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심판하는 게 당연할 줄 알았지만 법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적용되기도 한다. 회사 내 성추행 사건으로 부당해고 당한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회사 측의 잘못이 명백히 보여도 법의 차원에서 피해자를 도울 수 없다는 걸 확인한 박차오름은 분노와 자괴감에 눈물을 흘린다.

물론 <미스 함무라비> 역시 이렇게 답답한 법 현실을 뒤집고픈 욕망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미스 함무라비>인 이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변되는 함무라비 법전의 정의 구현 방식을 꿈꾸는 것. 박차오름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놓은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 역시 이 갑갑한 현실을 마주하고는 절망한다. 정의를 꿈꾸었지만 법은 결국 가진 자들에 의해 이용되는 현실을 보면서, 차라리 복수가 나을 것 같은 심정을 갖게 된다. 

‘미스 함무라비’로서의 박차오름이라는 판타지 캐릭터를 세우면서도 드라마가 현실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 건 작가가 현직 판사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너무나 깊게 법 현실의 문제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타지를 담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를 이 드라마의 작가인 문유석 판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스 함무라비>는 어떤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기보다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할 질문을 던진다. 이를테면 본드를 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가를 파고 들어가 그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식이다. 

반면 <무법변호사>는 <미스 함무라비>와는 완전히 다른 판타지를 그린다. 공간 자체도 기성시라는 가상도시이고, 그 곳에서 법을 쥐고 흔드는 차문숙(이혜영)이라는 적폐 권력을 하나씩 무너뜨려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야기는 <무법변호사>가 아니라 <무협변호사>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전형적인 복수극에 액션 장르로 그려진다. 현실성을 찾기가 쉽지 않고, 이야기도 촘촘하지 않아 개연성이 흔들리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시원함을 안겨주는 단순한 재미는 분명히 존재한다. 워낙 악당들이 제대로 서 있기 때문에 그들을 무너뜨릴 봉상필(이준기)의 활약이 기대되고, 실제로 그 기대는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법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며 문제제기를 하는 <미스 함무라비>와 비현실을 통해서라도 시원한 판타지를 담아내려 하는 <무법변호사>. 시청자들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을까. 시청률로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미스 함무라비>가 3%(닐슨 코리아)대 시청률로 떨어진 반면, <무법변호사>가 7%를 돌파하게 된 건 두 드라마가 법 현실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영향이 있다고 보인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판타지에 더 이끌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건 시청률의 차원일 뿐이다. 완성도로 보면 <미스 함무라비>만큼 현실을 실감나게 담아낸 드라마가 있을까.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주는 사이다보다는, 두고두고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고구마가 때론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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