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데 왜 슬플까, <12>의 할머니들

 

일찍이 혼자된 할머니는 유난히 흥이 많아 보이셨다. 고추 수확 일을 하다 살짝 데프콘에게 한 눈을 팔던 김준호가 마치 도망친 것처럼 숨자 할머니는 갑자기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떠나버린 그 사람-”을 불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장면은 이상하게 마음이 짠했다. 그 할머니의 흥 속에 숨겨진 한 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제로 떠난 <12>은 내내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너무너무 웃긴데 한없이 슬픈.

 

'1박2일(사진출처:KBS)'

김제 신덕마을에서 펼쳐진 전원일기특집의 주인공은 오롯이 할머니들이었다. <12> MC들은 그저 거들뿐, 사실상 이 방송의 웃음도 슬픔도 따뜻한 정도 할머니들이 만들어주셨다. 잔뜩 주름진 얼굴에 깃든 세월의 흔적은 할머니들의 삶에 드리워진 결코 쉽지 않았을 노동의 강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럼에도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에서는 그렇게 해야 버텨낼 수 있었을 신산한 삶이 느껴진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도 차린 게 없어 어떡하냐고 내주시는 밥상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뭉클하게 묻어나고, 촬영이고 뭐고 카메라 들고 있는 스텝이 눈에 밟혀 밥 먹고 하라시는 말씀에는 그 분들이 살아오셨을 그 정 가득한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집안에 꺼져버린 형광등, 고장 난 노래방 기기 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그 꺼진 형광등을 다시 켜주는 멤버들의 모습을 통해 할머니들의 마음 한 구석이 환히 밝아지길 기원했을 것이다. 김준호가 고장 난 노래방 기기를 고쳐 할머니와 함께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그들과 함께 울어주기보다는 오히려 한껏 웃게 함으로써 눈물을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모습들은 그것이 바로 코미디의 본령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 와중에 가장 드러난 것은 김준호와 데프콘이다. 김준호는 그가 타고난 코미디언이라는 것을 이번 특집에서 발견하게 했다. 그는 <12>의 얍쓰 캐릭터 그대로 일은 안하고 할머니와 놀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바로 거기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너무 일만 하시고 사신 할머니들이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데프콘은 일손이 없어 벌써 제거했어야 할 잡초가 무성한 논을 보며 젊은이들이 없는 농촌의 현실을 슬쩍 끄집어냈다. 그리고 힙합 비둘기다운 모습으로 할머니와 듀오(?)를 이뤄 힘겨운 노동을 힙합으로 풀어냈다. 할머니를 업어주고, 방에 잠시 뉘이게 한 후 자신은 다시 논으로 와 혼자 잡초를 뽑는 모습에서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많은 프로그램들이 최근 들어 농촌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 많은 프로그램들 속에서 <12>의 전원일기 특집은 최고의 훈훈함을 전해주었다. 과거 2009년도에 경북 영양 기산리에서 했던 집으로특집 이후 가장 훈훈하고 정이 넘치는 <12>을 보여주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은 눈물을 쏟아내던 출연진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했던 그 기억을 이번 전원일기특집은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이번 전원일기 특집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농촌에서 벌어진 12일 간의 풍경은 왁자한 웃음으로 먼저 다가오지만 그 안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먹먹한 슬픔을 보여준다. 마치 채플린처럼 김준호와 데프콘은 그 안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나눈 웃기면서도 슬픈 정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2009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장면들은 또한 오랜 여운으로 두고두고 얘기될 것이다.

 

이병헌에 이어 김C까지 이미지의 역린

 

인스타그램에 살짝 올라온 김C의 사진 한 장과 거기에 덧붙여진 ‘I'm fine. And you?’라는 글 한 줄에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늘 피곤한 듯한 얼굴에 약간은 흐트러진 모습의 김C지만 그 모습이 호감으로 전해지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반응이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거지꼴이라는 감정 섞인 반응도 나온다. 도대체 그 이미지 좋던 김C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사진출처:김C인스타그램

문제는 지난 8월에 발표됐던 김C의 이혼 소식 때문이다. <12> 당시에도 살뜰히 가정을 챙기는 남편으로서의 자상한 모습을 봐왔던 대중들로서는 난데없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은 바로 그 다음날 그가 재혼을 전제로 스타일리스트 박모씨와 열애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하루 터울로 나온 이혼과 재혼 소식. 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마치 본처 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만난 듯한 뉘앙스에 해명이 이어졌다. C와 전 부인이 이혼에 합의해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 2013년이었지만 그들의 파경이 시작된 건 2010년부터였다는 것. 그래서 그가 독일유학을 다녀온 2011년부터는 별거를 했었다는 것이다. 즉 스타일리스트 박모씨와의 열애는 전 부인의 이혼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불편함은 있다. 그 내용은 우리가 2010년도 <12>을 통해 봐왔던 김C의 이미지와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파경을 맞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힘겨운 시절을 버텨낸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불편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들에게는 사실과 무관하게 어떻게 그것이 대중들에게 비춰지는가도 중요하다.

 

방송을 통해 얻게 된 좋은 이미지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것이 깨지게 될 때 그 좋았던 만큼의 역풍을 만들어낸다. MC몽이 고의 발치 군 기피 의혹으로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칩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비난이 여전한 건 그가 <12>을 통해 그간 쌓아온 좋은 이미지에 대한 배신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음담패설을 했다며 50억 협박을 받은 이병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큰 것 역시 그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여 왔던 순애보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역린이다. 과거에 이미지란 단단한 껍질은 좀체 깨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지로 실체를 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감춰졌던 실체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자발적으로 드러낸다면 적어도 이미지의 역린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김C나 이병헌처럼 어떤 사건을 통해 실체가 폭로되면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이병헌처럼 김C도 이제 좀체 과거 같은 이미지로의 회복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의 음악활동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C의 음악은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다만 그의 <12>을 통해 보여줬던 친근하고 자상한 이미지가 있어 음악도 독특하게받아들여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미지가 사라져버렸고 박수치던 대중들은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해피투게더> 서태지보다 <12> 조인성인 이유

 

서태지가 KBS <해피투게더>에 단독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에 대해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을 거론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의 생태계를 가늠하게 한다. ‘신비주의의 대명사이자 마지막 남은 신비주의라고까지 불리던 서태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신비주의가 심지어 마치 연예인병처럼 거드름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는 그간 좀체 내밀지 않았던 얼굴을 예능에서 보이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비주의를 벗어나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탈신비주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피투게더>의 제목에 걸맞지 않게 다른 게스트 없이 단독 출연해, 그것도 유재석과 11 토크를 한다는 건 그래서 여전히 서태지의 이미지가 과거 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이 서태지의 의도인지 아니면 <해피투게더> 제작진의 과잉 배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너무 과도하게 만들어진 신비주의 이미지가 버겁고, 그래서 보다 편안한 음악인 서태지로서 대중들에게 다가오려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 등장하는 방식부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이른바 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게스트가 애매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이른바 이라는 것을 깨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게 서태지다. 물론 음악인으로서의 급은 당연히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서태지는 좀 더 자신을 일상인에 가깝게 내려놓아야 지금 시대의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인성이 <12>에 차태현 쩔친(쩔은 친구)’으로 깜짝 등장한 것은 여러 모로 서태지의 행보에 시사 하는 바가 많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로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가 신비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에 자신을 찾아와 무작정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차태현에게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조인성에게 예능감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이런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 부담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선배 형을 위해서 열심히 방송에 임하는 조인성에게서는 신비주의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뭘 해도 CF 같은 그림을 만드는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깨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선수인 독하디 독한 <12>의 복불복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차태현과 함께 실미도로 들어오는 조인성을 보며 다른 게스트들과 출연자들 그리고 심지어 작가들마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조인성 같은 인물이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이질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조인성의 <12> 출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지금 시대에 대중들이 스타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서태지는 좀 더 타인들과 함께 섞일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이미 지나가버린 신비주의 시대에 여전히 마지막 신비주의라는 불편한 수식어를 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조인성의 <12> 출연에 쏟아지는 박수와 서태지의 <해피투게더> 단독 출연에 쏟아지는 불편함은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1박2일> 섬마을 혜나가 보여준 아이의 순수함

 

육아예능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반복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매력도 점점 퇴색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방송이 뭔지도 잘 몰라 그 어색함이 순수한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차츰 방송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적응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부터 TV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저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때때로 작은 방송인 같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12>이 선유도라는 작은 섬에서 만난 혜나라는 아이가 유독 눈에 띄는 건 진짜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 바로 거기서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군산에서 자연이라는 주제로 자유여행을 하게 된 김준호와 차태현은 빌린 오토바이를 타고 망주봉이라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평상에 앉아있는 세 자매를 발견한다. 김준호는 대뜸 얘들이 너희 여기 살아? 놀러왔어?”하고 물으며 망주봉을 물어본다. “너희 천사날개 어딘지 알아? 알잖아.” 하지만 모른다고 고개를 젓는 세 자매에게 김준호가 슬그머니 농담을 던진다. “혹시 너희가 천사 아니야?”

 

평상에 아예 누워버린 김준호가 그 중 가장 막내로 보이는 혜나에게 몇 살이냐고 묻자 혜나는 다섯 살이라고 말한다. 개그 욕심이 발동한 김준호가 나는 마흔 살이야. 너보다 35살 많아 까불지마. 시집갔어? 안 갔어?”라고 계속 웃기려 하지만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줍은 세 자매의 모습은 영락없는 섬 마을 순수한 아이의 표정들이다.

 

카메라와 사진조차 아이들에게는 낯선 것이었을 게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빼꼼히 쳐다보는 아이들의 그 순박함에 김준호와 차태현도 한껏 즐거워졌을 것이다. ‘선유8경을 넘은 순수미라는 제작진의 자막이 걸맞는 모습들. 이내 조금 친해진 듯 조심스럽게 마음을 연 혜나가 차태현에게 걸레를 던지며 야 걸레 먹어!”라고 장난을 치자 김준호가 재밌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내가 까불지 말라 그랬지?”하고 김준호가 짐짓 다그치는 표정으로 과장되게 말하자 혜나는 지지 않고 까불거예요.”라며 혀를 낼름 내민다. 애와 이기려고 이상한 표정을 다 지어가며 용을 쓰는 김준호에게 아이들은 또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김준호가 아이들을 웃기려고 그렇게 했던 마음이 슬쩍 드러난다. “정말 심심했구나. 너네...”

 

소박한 옷을 입은 섬마을 소녀들과 헤어져 섬의 명물인 등대를 돌고 점심을 먹으러간 자리. ‘딸부자 횟집이라는 이름이 이색적으로 들어온 김준호가 딸이 어딨어요?”라고 묻자 저기서 촬영 안하셨어요?”라고 말하며 다섯 살 혜나를 빼닮은 엄마가 얼굴을 내민다. 그제야 이름도 안 가르쳐준 그 아이의 이름이 혜나라는 걸 안 김준호는 큰 애는 경계를 하고 막내는 우리를 가지고 놀았어요라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타난 혜나.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깜찍하게 등장한 혜나에게 차태현이 혜나 이제 다음번에 TV에 나오는 거야. TV 나와도 돼?”라고 묻자 혜나는 !”라며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신기하고 궁금했는지 테레비가 언제 나와요?”하고 묻는다.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혜나다. 카메라보고 엄마한테 제일 갖고 싶은 거 영상편지 쓰라는 김준호의 말에 혜나는 머뭇머뭇하더니 차태현을 가리킨다. 영락없는 아이의 순수한 영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소박한 티셔츠에 꾸밈없는 모습으로 섬마을의 평상에 앉아 있든, 아니면 연예인처럼 차려 입고 으리으리한 집에 앉아 있든 아이는 아이일 것이다. 그 순수함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 그렇게 화려함 속에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건 또 다른 왜곡이 아닐까. <12>이 선유도에서 살짝 보여준 섬마을 아이 혜나가 유독 마음 한 가득 푸근함을 주었던 건 그 아이가 진짜 우리네 이웃 같은 순박함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12>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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