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제2의 전성기를 위한 전제조건들

 

<1박2일>이 시즌3를 선포하면서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느냐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수근, 유해진, 성시경, 김종민은 하차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엄태웅과 차태현은 잔류할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목이 집중된 것은 새로운 멤버로 누가 들어갈 것인가다. 항간에는 장미여관의 육중완, 샤이니 민호 그리고 존박이 새 멤버 물망에 올랐다고 하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렇게 멤버 교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캐릭터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매번 어떤 장소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는 형식의 반복이지만 그 과정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단발의 웃음으로 사라지지 않고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캐릭터다. 일일이 <1박2일>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만, 이를테면 이수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 많은 사건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수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과거 경북 영양에서 현지 주민과 하룻밤을 지냈던 미션이다. 허름한 시골집, 불빛도 별로 없는 어두운 그 곳에서 현지 주민과 함께 하룻밤의 교감을 마치고 떠나는 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이수근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김종민 하면 <1박2일> 초창기에 혼자 낙오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김C 하면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한겨울에 홀라당 벗고 박스에 의지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강호동 하면 입수를 외치며 한 겨울 계곡 얼음물에 뛰어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캐릭터는 단지 인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1박2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하차가 아쉬운 것이고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이다. 하지만 <1박2일> 시즌3의 경우에는 멤버 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너무나 익숙해진 프로그램 형식이 다시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일이다. 단지 멤버가 바뀌고 제작진이 바뀐다고 이미 익숙해진 프로그램을 참신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시즌2가 확인시켜 준 바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먼저 핵심은 이 프로그램의 소재인 ‘여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1박2일>이 시작하는 단계에서만 해도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여행은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박2일>로 인해 여행의 트렌드가 바뀐 지 오래다. 이른바 ‘아웃도어’ 열풍이 불고 있는 것. 이 열풍에 그저 편승하는 것으로는 <1박2일>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채워주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행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이 <1박2일>의 진정한 목표일 수 있다.

 

<무한도전>이 여행 버라이어티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1박2일>은 거기에 우리네 팔도의 지역 특성과 아웃도어 개념을 덧붙여 여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도 더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빠 어디가>가 아빠와 아이의 여행으로 세분화됐고, <꽃보다 할배>는 어르신들의 여행으로 세분화됐다. 그렇다면 새 시즌을 준비하는 <1박2일>의 여행은 어떻게 과거의 <1박2일>과 또 여타의 여행 버라이어티와의 차별화를 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1박2일> 시즌3의 성패가 달려 있다.

 

<1박2일>의 새 시즌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형식과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다. 복불복은 <1박2일>의 핵심적인 감초지만 이것이 너무 전면에 내세워질 때는 여행 버라이어티로서의 색채가 흐려지는 단점이 있다. 시즌2에서 늘 문제로 지목됐던 것은 과도한 게임이었다. 복불복은 다큐처럼 찍어지는 초창기 리얼 버라이어티의 안전장치처럼 사용됐던 것이 사실이다. 재미에 대한 강박의 소산물이라는 것. 하지만 요즘처럼 관찰예능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의도적인 복불복은 ‘리얼’의 느낌을 상당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다변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사안이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여행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냈던 ‘대학생 생활백서’ 같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 발굴이 절실하다 여겨진다. 여행의 일상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1박2일>을 기존 여행의 틀로만 한정짓지 않는다면 더 많은 소재와 스토리가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카메라 연출에 있어서도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최근 경향인 관찰 카메라 형식을 도입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프닝을 위해 일렬로 멤버들을 세워놓고 찍는 방식은 너무 식상해졌다. 좀 더 자연스러운 다큐적인 오프닝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고, 과정을 찍는 방식도 좀 더 현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형태가 리얼감을 높여줄 것으로 생각된다.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중민 EP가 밝힌 것처럼 “친구와 여행은 쉽게 싫증을 느끼지 않을 소재”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늘 여행을 꿈꾸고 또 여행을 다녀와서도 또 다른 여행을 생각하는 욕망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여행이라는 좋은 소재도 똑같은 형식과 스토리만을 반복해서는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와 콘셉트를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 이것이 <1박2일>에는 멤버 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카메라의 변화로 보는 예능의 진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흔한 풍경 중 하나가 MC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1박2일>은 대표적이다. 메인 MC가 “1박!”하고 외치면 다른 멤버들이 “2일”하고 외친다. 그들은 모두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일렬로 서서 이 구호를 외친다. 흔한 풍경이지만 바로 이 장면에는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는 예능 형식의 단면이 들어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이렇게 MC들이 일렬로 서고 한 명의 MC가 메인으로 나서는 이유는 카메라 때문이다. 카메라가 한 방향을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카메라들이 한 캐릭터씩을 커버하는 식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MC들은 그 카메라 앞에 일렬로 늘어설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일렬로 늘어선 상황에서는 그 중 한 명이 메인을 맡아야 프로그램 진행의 혼동이 없다.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이런 카메라들의 배열은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었다. 즉 과거의 예능에서는 똑같이 정면에 카메라가 놓여있긴 했지만 여러 명이 나왔을 때 각각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없었다. 리얼을 강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은 따라서 카메라를 좀 더 많이 세워 각각의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리액션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많아진 녹화분량은 좀 더 압축적이고 디테일한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관찰 예능으로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과는 사뭇 다른 카메라 배열을 보여준다. 즉 <진짜 사나이>나 <아빠 어디가> 같은 경우에(물론 도입부에 일부 도열한 인물들이 서는 장면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MC들이 일렬로 죽 서서 어떤 진행을 하는 듯한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메인 MC가 있을 수도 없다. 메인 MC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을 진짜 리얼이 아닌 쇼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의 핵심적인 카메라의 묘미를 볼 수 있는 것은 생활관 장면이다. 여기서 카메라는 출연자들에게서 숨겨져 있고 따라서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러운 대화와 행동들을 보여준다. <아빠 어디가>의 핵심은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VJ의 시선이다. 어느 한 곳에 고정된 시선이 아니라 각각의 출연자들에게 맞춰진 시선은 좀 더 다채로운 동선과 다양한 관점들을 포착해낸다.

 

카메라의 이런 다른 배치와 시선들이 별거 아니라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상에 이미 익숙해진 대중들에게 카메라의 시선은 그 자체로 어떤 특별한 느낌을 제공한다. 즉 일렬로 늘어선 카메라와 메인 MC가 나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또한 위계적인 느낌마저 준다는 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늘 1인자, 2인자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각각의 캐릭터를 따라 다니며 그들의 시선대로 스토리를 잡아내거나 아예 숨겨져 있어 출연자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찰 카메라의 방식은 이런 중심과 변방의 구분을 없애버린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가 주는 위계적 느낌과 관찰 카메라가 주는 수평적인 느낌은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미묘한 감성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즉 카메라의 시선 변화는 그 자체로 변화된 시청자들의 정서와 관련해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까지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유재석과 강호동이 양강체제로 이끌어오던 리얼 버라이어티 체제가 가고 이제 일반인이든 주목받지 못했던 연예인이든 새로운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관찰 예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최근까지 예능의 흐름은 카메라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 왔다. 최근 들어 예능이 리얼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는 아예 숨거나(몰래카메라), 양을 늘리거나(리얼 버라이어티), 현장 속으로 더 뛰어들거나(관찰카메라) 하면서 그 위치를 바꿔왔다.

 

또한 달라진 카메라의 위치는 그 안에 서게 되는 MC들의 성패 요인까지도 좌우해 왔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최고의 MC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카메라가 리더를 요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타인의 캐릭터를 부각시켜주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강호동은 전면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 하지만 관찰 카메라 형식에서는 리더로 나서는 순간 자칫 비호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나서서 전체를 이끌어가기보다는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관찰 카메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MC의 새로운 자질이다.

 

<1박2일>이 힘겨워진 것은 전성기 때의 MC들이 교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달라진 예능 환경 속에서 여전히 비슷한 시선만을 보여주는 카메라와 그것이 보여주는 여전히 똑같은 캐릭터들에 대중들이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같은 형식을 갖고 있는 <무한도전>도 비슷한 도전을 맞고 있지만 그나마 이 예능은 일정 팬덤을 확보하고 있고 또 새로운 형식 실험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1박2일>처럼 전형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선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앞으로 이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다.

너무 많아진 추격전 예능 이젠 패가 보인다

 

사실 추격전은 <무한도전>의 전매특허나 다름없었다. ‘여드름 브레이크’나 ‘돈을 갖고 튀어라’ 같은 특집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전에 가까운 긴박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여드름 브레이크’처럼 추격전 속에 독특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건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여겨졌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너무 많은 추격전들이 예능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1박2일>은 여행 버라이어티이면서도 자주 추격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숨겨진 목적지까지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느냐는 미션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다. <런닝맨>은 아예 추격전을 하나의 주된 형식으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다. 매주 조금씩 다른 소재를 가져오지만 그 밑바탕에는 역시 추격전이 깔려 있다.

 

사실상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있는 유재석이 <런닝맨>과 <무한도전>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은 추격전을 아이템으로 삼았을 때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너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이번 ‘100 빡빡이 특집’ 같은 경우, <런닝맨>이 예전에 건물 하나를 빌려 유사한 복장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게스트를 찾는 미션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유재석과 하하가 양 프로그램에 동시에 들어가 있고 이들의 캐릭터가 두 프로그램에서 거의 같기 때문에(이것은 리얼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더더욱 변별력을 찾기가 어렵게 된다. 게다가 다른 출연자라고 해도 추격전에 들어가면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스토리가 뻔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흔히 등장하는 배신의 아이콘이나 카이저 소제 캐릭터는 대표적이다.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배신의 아이콘이라면 <런닝맨>에서는 이광수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무한도전> ‘100 빡빡이 특집’에서 맹활약한 카이저 흑채 박명수 캐릭터는 이미 추격전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다. <무한도전>에도 여러 차례 주도면밀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카이저 소제 캐릭터가 등장했었고 <런닝맨>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1박2일>에서도 은지원이 지니어스 원 캐릭터로 이 역할을 소화하기도 했다.

 

캐릭터가 유사하고 추격전이라는 형식이 같기 때문에 스토리가 새롭기가 어렵다. 결국 추격전이란 시청자와 제작진의 두뇌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대충 이런 흐름으로 흘러 갈거야 라고 생각할 때 그 뒤통수를 치는 스토리 전개가 나와야 추격전의 진짜 묘미가 생길 수 있다. <무한도전>의 ‘100 빡빡이 특집’은 이제 전반부를 보여줬을 뿐이지만 100명의 빡빡이가 동시에 출연하는 스펙터클 이외에 새로운 이야기는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무한도전>의 추격전이 예전만큼 참신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너무 많은 추격전들이 쏟아져 나와 그 패턴이 읽혔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른 버라이어티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하나의 예능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무한도전>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늘 추구하는 예능으로서는 더 복잡한 심리전과 게임을 선보여야 하지만 주말 저녁 시간대 보편적 시청층을 생각한다면 이런 시도는 자치 마니아적인 도전으로 흘러갈 위험성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관찰 예능으로 가고 있는 요즘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턴을 읽히지 않는 것이다. 관찰 예능에 대한 시청자의 요구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을 포함한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도하려는 추격전은 더 많은 과제를 안게 되었다. 패턴을 넘어 반전을 만들어내면서도 너무 복잡하지는 않은 형태를 찾아야 하는 것.

 

이러한 고충은 추격전 형식만이 아니라 <무한도전>의 다른 형식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행을 소재로 했을 때 이제는 <1박2일> 같은 무수히 많은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했던 패턴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사실상 국내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무한도전>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무한도전>의 새로운 예능 형식 도전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패턴화된 추격전은 바로 이 어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나영석 PD가 PD의 역할로 새롭게 낸 숙제

 

tvN <택시>에 이서진과 함께 출연한 나영석 PD는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의도한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진심인지 나영석 PD가 택시에 오르자 이 두 사람의 장난스런 툭탁거림이 시작되었다. 텀블러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몰라 나영석 PD가 이서진에게 묻자, 그걸 도와주며 이서진은 “아 진짜 무식해가지고 이런 인간하고 유럽에 다녀왔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고 툭 쏘아댔다. 김구라가 대박 난 프로그램을 축하한다고 하자 또 이서진은 “그냥 하는 거 없이 얻어걸린 거예요.”라고 농담 섞인 폄하 발언을 던졌고 그러자 나영석 PD도 지지 않고 “형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약간 재수 없게?”라고 받아쳤다.

 

'택시(사진출처:tvN)'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멘트들이지만 이 첫 등장에서의 몇 마디 오고가는 독설들은 이 날 방송의 재미를 한껏 만들어냈다. 사실 케이블에서 흔치 않은 7%에 육박하는 대박 시청률의 주역들이고 나영석 PD가 스스로도 ‘신의 한수’라고 얘기했던 이서진이 아닌가. 그러니 만일 이들이 서로 상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방송은 그저 그들의 자화자찬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됐다면 재미도 반감됐을 게 분명하고 심지어 재수 없게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정확하게 방송이 어떤 포인트로 가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로 추켜세우기보다는 서로를 물어뜯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명콤비(?)의 공기를 보여주는 것. 사실 이건 의도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영석 PD가 방송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몸에 체득된 것일 것이고 또 어쩌면 그의 성격이나 개성이 묻어난 결과일 수 있다. 어찌됐건 이런 점들은 나영석 PD가 어떻게 대중들의 정서를 그토록 잘 건드리고 포섭해내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1박2일>에서부터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유독 화면에 얼굴을 들이미는 건 나영석 PD만의 전매특허였다. 물론 이것은 프로그램의 성격상 리얼 미션을 전달하는 모습을 PD가 직접 보여야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하지만 이서진이 <택시>에서 폭로하듯 ‘연예인병이 있다’고 밝힌 것처럼 나영석 PD는 이제 반드시 자신이 얼굴을 들이밀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만일 이 등장이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족처럼 여겨졌다면 대중들은 아마도 여기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째서 나영석 PD의 등장은 훨씬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까.

 

나영석 PD가 잘 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시청자들이 대리해서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은 어쩌면 대본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리얼 예능에서 어떤 안전한 가이드라인으로서 기능한다. <1박2일>에서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지만 또한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들에게 미션을 내리고 그 복불복의 결과를 수행하는 또 한 명의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는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대행하는 캐릭터를 보여준 셈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그 역할은 좀 더 세밀해졌다. 나영석 PD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서진이라는 중간 인물을 세운 것. <1박2일>에서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지만 <꽃보다 할배>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어르신들을 데리고 하는 여행에서 어르신들을 고생시키는 독한 연출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이러니 어르신보다 더 고생하는 캐릭터로서 이서진이 필요했던 셈이다. 또한 이 캐릭터는 어르신 소재의 프로그램에 젊은 세대가 대리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여기서 나영석 PD는 그 스스로도 어르신들을 모시는 것을 버거워하면서 동시에 이서진의 힘겨움을 끄집어내 끊임없이 깐족대는 역할을 보여준다. 그런데 바로 이 역할이 있어서 이서진의 캐릭터가 부각되고 또 이 전체 여행의 흐름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영석 PD 같은(때로는 이우정 작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제작진이 이서진이나 어르신들과 함께 걷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가감 없이 보여지면서 이것이 ‘만들어진 방송’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점이다. 마치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 같은 적나라함과 솔직함이 나영석 PD의 방송 틈입으로 생겨난다는 것.

 

이런 점에서 보면 나영석 PD는 예능 방송사에서 PD의 역할을 재정립한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PD가 카메라 뒤에 앉아 출연자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출연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같이 방송을 만들어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나영석 PD를 통해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권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걸 쥐고 있는 사람이 피사체를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정서는 이러한 권력적인 시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오는 나영석 PD는 그래서 이러한 권력적인 시선을 무화시키는 훈훈함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있다는 것 자체를 지워버리는 일. 나영석 PD가 PD의 역할로서 새롭게 만들어낸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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