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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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런닝맨'에게 랜드마크란

D.H.Jung 2011. 10. 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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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에서 하던 '런닝맨', 랜드마크를 만들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의 초기 버전은 랜드마크가 중심이었다. 대형쇼핑몰, 월드컵경기장, 과학관, 세종문화회관, 서울타워... '런닝맨'은 게임버라이어티답게 이 랜드마크 속으로 들어가 그 공간에 어울릴만한 게임들을 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물론 흥미로웠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어딘지 다람쥐 챗바퀴 돌듯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것도 그 공간과 어울리는 게임을 억지 춘향식으로 맞추다 보니 '틀에 박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런닝맨'은 이 틀을 과감하게 버렸다. 즉 랜드마크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게임에 집중했던 것. 이렇게 되자 게임은 좀 더 흥미진진해졌다. 런닝맨들은 이제 그 날의 목적지가 어딘지도 또 거기서 어떤 미션으로 게임을 할 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런닝맨'의 시작과 함께 부여된 미션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식이다.

'런닝맨'이 랜드마크를 버리면서 게임 공간이 확장되자, 랜드마크에 집착했다면 할 수 없었던 '횡단 레이스' 같은 게임이 가능해졌고,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자 홍대거리처럼 열린 공간에서의 게임이 시도될 수 있었다. 그만큼 게임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랜드마크와 억지로 꿰어 맞춘 게임이 가진 예측 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본래 게임이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더 흥미로운 법, '런닝맨'의 게임은 멤버들이 그 날의 게임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이것은 제작진과 런닝맨들 사이에 묘한 심리전을 만드는데, 런닝맨들이 무언가를 의심하고 또 확신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때, 제작진은 그것을 거꾸로 역이용해 게임을 만드는 기민함을 보인다. 스파이는 '런닝맨'의 이런 심리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장치다. '트루개리쇼'는 스파이가 되고 싶어하는 개리를 먼저 세워두고 다른 런닝맨들이 개리를 속이는 몰래카메라를 게임으로 내세웠지만, 마지막에 가서 사실은 개리가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는 또 한 번의 반전을 만들었다. '런닝맨'이 보여준 일련의 진화과정을 되짚어보면 이런 심리전이 가능하게 된 것도 결국은 그 랜드마크에 대한 집착을 버린 데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반전이 생긴다. 즉 '런닝맨'이 랜드마크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이제 거꾸로 그들이 가서 한바탕 게임을 벌이는 공간이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런닝맨 힙합 특집'에서 그들이 갔던 홍대 놀이터나 대학로는 이제 본래 그 공간이 가진 이미지에 '런닝맨'의 힙합맨들이 게임을 했던 장소의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제주도에서 신세경과 함께 벌인 로드 레이스는 그들이 지나간 시장, 해수욕장, 식당 등에 '런닝맨'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심지어 그들이 간 파타야나 북경은 그 게임과 장소가 그대로 하나의 여행상품화 되기도 했다.

'런닝맨'이 애초에 하려던 게임은 기존 랜드마크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지만, 이제 '런닝맨'은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에서 한 판 신나는 게임을 함으로써 그 공간을 랜드마크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이제 관광지나 여행지 같은 공간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과거에는 그 곳의 유적이나 특별한 자연경관이 관광지로서의 의미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이 그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런닝맨'의 랜드마크에 대한 태도 변화는 실로 시의적절 했다고 여겨진다. 랜드마크를 찾아다니던 '런닝맨', 이제 그들이 가는 곳이 랜드마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