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선' 하지원 뜬금 키스, 차라리 러브보트라고 하던지

기승전멜로. 우리네 드라마에 대한 비판에 항상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물론 멜로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특정 장르물로 흘러가는 듯 싶었던 드라마가 어느 순간 갑자기 흐름을 멈추고 멜로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이런 ‘멜로의 틈입’을 허용했고, 어느 정도는 시청자들도 이를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장르물은 장르물 특유의 긴장감으로 즐기고 싶어 하고, 멜로라면 차라리 제대로 된 멜로를 그리라고 한다. 

'병원선(사진출처:MBC)'

그런 점에서 보면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이 갑자기 앞으로 나가다 멜로로 방향을 틀어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난 회 마지막 부분만 보면 <병원선>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의학드라마가 가진 긴박감이 드디어 제대로 펼쳐지는가 싶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소풍을 떠나던 버스가 사고로 구르면서 ‘병원선’ 사람들의 응급 처치 상황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긴박한 상황은 의외로 빨리 정리됐다. 버스 안에 남아 있던 한 아이를 구조하러 들어간 곽현(강민혁)이 송은재(하지원)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기도 삽관에 성공하는 장면이 흘러나왔지만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 현의 생일을 맞아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섬의 정원을 돌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급기야 곽현은 송은재에게 입을 맞춘다.

물론 의학드라마가 오로지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만을 담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을 살려 주된 사건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남녀의 멜로로만 한 회가 거의 채워지는 건 장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특히 ‘병원선’이라는 지금껏 의학드라마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를 다루면서 좀 더 그 특수한 상황에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병원선>이지만 러브보트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병원선>이 아쉬운 건 어디선가 봤던 상황들이 자주 클리셰로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송은재의 상황은 이미 <낭만닥터 김사부>의 윤서정(서현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밀려나 오지로 가게 된 의사가 결국 그 곳에서 진정한 의사의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캐릭터가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전편에 깔려 있는 서울의 병원과 시골 오지의 병원 사이에 만들어지는 대결구도도 그렇다. 그것이 제아무리 지금 우리네 의료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이미 너무 시청자들에게 익숙하다. 

<병원선>이 그 제목처럼 달리 보였던 건 초반 배 위에서 벌어진 몇몇 수술 장면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며 의료 사각지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내는 그 소재에 비해 특이점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는 키스와 같은 멜로의 급 전개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곽현의 약혼녀로 소개하는 영은(왕지원)의 등장은 그나마 남았던 기대감마저 빼버린다. 

멜로를 하려면 차라리 그냥 제대로 멜로장르로 정면승부를 하는 편이 낫다. 굳이 ‘병원선’이라는 특이한 배 위에까지 올라가서 멜로를 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에도 의사 가운 입고 멜로 한다며 ‘무늬만 의학드라마’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지만, 요즘은 더더욱 통하지 않는 게 바로 이 기승전멜로다. 시청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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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선' 윤선주 작가라면 의사들 멜로로 풀진 않을 거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은 그 소재가 독특하다. 이 드라마가 소개되기 전까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며 의료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섬을 중심을 의료 활동을 벌이는 이 병원선은 그래서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 배가 있고 그 배를 타고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의료행위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지해주고 싶은 소재니까. 

'병원선(사진출처:MBC)'

게다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상정하는 건 의학드라마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극적 상황들이 가능한 장르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로서의 병원선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주는 그 풍광이나 때 아닌 자연재해 같은 또 다른 극적 상황이 가능해진다. 물론 섬사람들과 병원선 사람들이 갖게 되는 끈끈한 인간애나 휴머니즘은 당연해지는 기대요소다. 

또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과 성장과정 역시 기대요소 중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과의 송은재(하지원)가 병원선으로 오기까지 보여준 면면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손을 벌벌 떠는 신참 앞에서 수술 도중 그런 손이 환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고 호통치며 척척 수술을 해내는 장면만으로도 이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충분히 빠질 수 있었던 것. 

최연소 과장이 되고픈 욕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섬마을에 사는 엄마가 수술이 필요해 보내는 마을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엄마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가 병원선으로 자청하여 오게 되는 그 과정은 그래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좇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공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치열한 삶이 행복을 찾아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병원선으로 와 섬사람들을 위한 의사로서 살아가는 일은 챙기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부채감으로 시작된 일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회만으로도 독특한 의학드라마로서 기대감이 넘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남는 불안요소들도 적지 않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멜로가 그것이다. 연애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송은재라는 캐릭터가 병원선에서 만나게 되는 곽현(강민혁)과 결국 멜로관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지점은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갖게 만든다. 

물론 멜로를 원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최근 들어 본격 장르드라마에 대한 요구 또한 적지 않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아버지의 아들로서 곽현은 실력과 외모 평판까지 사실상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와 송은재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커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멜로의 등장이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던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적어도 <병원선>에서의 이야기만큼은 적절한 선이 유지됨으로써 본래 하려고 했던 휴머니즘과 성장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기대하는 면이 있다. 만일 이 부분의 균형이 깨진다면 이 좋은 소재의 드라마가 평이한 멜로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은 <병원선>의 작가가 우리에게는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 세종>, <비밀의 문> 같은 주제의식이 유독 강한 작품들을 내놓은 윤선주 작가라는 점이다. 병원선이라는 특별한 공간 위에서 청년의사들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예의나 그를 통한 성장기는 그래서 <병원선>에 대한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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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준과 지창욱, 멜로가 발견한 대세 현실 직진남

KBS <쌈마이웨이>도 가고 SBS <수상한 파트너>도 끝나고... 특별했던 두 멜로드라마가 나란히 종영했다. 다른 드라마지만 어딘지 닮은 느낌을 가진 두 드라마. 그것은 굉장한 재벌이나 심지어 외계인, 도깨비, 신으로까지 판타지가 확장되던 남자주인공들과 이 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해 보통의 평범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웠던 <쌈마이웨이>와 <수상한 파트너>. 이들 드라마가 괜찮은 호응을 얻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다. 태권도 유망주였으나 가난이 죄가 되어 조작경기를 하게 되고 결국 영구 제명당한다. 그래서 모든 꿈을 접은 채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단 한 시도 꿈을 잊은 적이 없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초상이지만 이 인물은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은 검사였지만 살해용의자 누명을 쓴 은봉희(남지현)의 기소를 포기함으로써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된다. 물론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남자지만 드라마는 그런 점들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 부모가 모두 화재로 죽음을 맞은 후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지욱이 은봉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재력 같은 현실적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그 점이다. 은봉희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누명 또한 끝까지 벗겨주려는 노력에 담긴 진심.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당대의 판타지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판타지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외계인이어서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남자주인공을 세워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여자주인공을 보호하는 판타지를 그려냈다면, 신드롬을 만들었던 <도깨비>는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여자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을 해결해주는 판타지를 그렸다. 

문제는 이렇게 판타지가 초현실적인 차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면서 생겨나는 현실성의 결여다. 신까지 등장한 마당에 도대체 그 이상의 어떤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을 더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담아내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남자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허공에 붕 띄워져 있던 남자주인공들의 발을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앉혔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중요한 건 남자주인공들이 이렇게 현실로 내려오면서 여자주인공들의 능동적인 면들이 더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결국 여자주인공들로 하여금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쌈마이웨이>의 최애라(김지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능동적인 존재였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 역시 변호사로서 자기 성장을 이뤄가는 능동적인 여성이었다.

<쌈마이웨이>의 박서준과 <수상한 파트너>의 지창욱은 이러한 현실 남자친구의 매력을 200% 연기해 보여줌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연기장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뭐든 해줄 수 있는 굉장한 능력보다는 남다른 직진 사랑의 면면으로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남사친와 남자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보이던 그들이 더 이상 친구는 안된다고 선을 긋고 직진할 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그 누가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아닌 남사친 여사친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 친구 관계를 넘어서는 일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기 때문일 게다. 결혼도 그렇고 육아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적정한 거리에서 남사친 여사친을 주장하며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 지도.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현실적인 남자주인공으로 건드리고 있는 건 어쩌면 이 우정의 차원을 훅 넘어 들어오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박서준과 지창욱의 그 직진이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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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굉장한 액션도 없는데 뭐 이리 쫄깃하지

이렇게 무심하고 무정한 남자주인공이 있을까.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은 그 감정의 깊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는 인물이다. 그렇게 된 건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게 되면서 갖게 된 후유증 때문이다. 완전히 무감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만큼 감정을 깊이 느끼지 못하는 상태.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래서 이 인물은 그와 관계를 맺게 되는 여성들과 마치 감정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검찰이라는 거대한 ‘비밀의 숲’에서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그 험난한 길 위에서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인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때때로 호감을 드러내도 그는 무감한 얼굴이다. 그의 후배 검사로 들어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은수(신혜선)가 그의 집까지 찾아와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제가 걱정되셨어요?”라고 물어도 이 철벽남은 그만 가라는 말만 남긴다. 

형사물이라고 해도 남녀 사이의 관계에 있어 생겨나는 멜로적 감성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드라마라는 세계는 우리네 삶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고, 거기 남녀가 등장하면서 사랑이 빠진다는 건 전혀 리얼하지 않은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아예 설정부터 황시목을 무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세움으로써 멜로에 대해 철벽을 쳐 놓는다. 

<비밀의 숲>이 이렇게 무감한 검사를 세워놓은 뜻은 따로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비리와 비밀로 얼룩진 검찰 조직의 ‘사적 감정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그 비리들을 제대로 파헤치기 위함이다. ‘시목’이라는 이름이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첫 번째 나무’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무감한 검사는 검찰 조직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이자 진단 시약으로서 축조된 캐릭터다. 

유재명 검사장에게 스폰서가 연결해준 여자 가영(박유나)의 휴대폰을 갖고 있는 서동재(이준혁) 검사를 끝까지 추적해 그 증거물을 숨기려는 현장을 덮치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토끼몰이’가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이 가진 무감한 얼굴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은 주변인물들은 물론이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까지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결과가 나온 후에야 비로소 그의 행동의 이유가 밝혀진다. 

이를 테면 영은수가 서동재의 방에 들어갔다 나와 들키고 추궁 당할 때 굳이 황시목이 나섰던 건 알고 보면 그녀에게 어떤 사적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서동재가 황시목 역시 그 휴대폰을 찾고 있다는 걸 알려줘, 그로 하여금 스스로 그 증거물을 유기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결국 황시목의 계산대로 서동재는 ‘토끼 몰이’를 당하고 결정적인 순간 현장에서 체포된다. 

<비밀의 숲>은 사실 드러난 장면들만 꺼내놓고 보면 그다지 대단한 액션 신이나 하다못해 도심 추격전 같은 것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스릴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쫄깃함이 느껴지는 건 비밀에 접근해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몰입감의 요인으로서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가 한 몫을 차지한다. 검찰 조직이라는 비밀의 숲에 대한 호기심만큼, 이를 파헤쳐나가는 황시목이라는 비밀스런 인물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감한 캐릭터로 세워놓고 멜로에 철벽을 쳐 놓자 거꾸로 이 인물과 관계를 맺는 한여진 같은 인물과의 감정 교류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의외로 설렘을 준다는 사실이다. 황시목이 순간 화를 내는 모습을 한여진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 주머니에 넣어주며 “화를 냈다”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그 그림을 집에서 펴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장면 같은 것에서는 그 철벽 사이에 조금씩 어떤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이라는 무정한 캐릭터는 작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색깔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비리로 얼룩진 검찰이라는 숲을 수사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생겨나는 멜로적 감정에도 효과적이다. 이토록 무정한 캐릭터의 남자주인공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래서 더더욱 빠져드는 인물이 바로 황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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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의 왕비’, 연산군이나 중종 아닌 폐비 신씨를 다룬 까닭

이토록 슬픈 비운의 인물이 있을까. 진성대군 이역(연우진)과 연산군 이융(이동건) 사이에 서게 됨으로써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하는 인물. KBS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는 역사적으로 중종의 정비였지만 단 7일 간만 왕비로 있다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 채경(박민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7일의 왕비(사진출처:KBS)'

실제 역사 속의 단경왕후는 연산군을 밀어내고 중종이 보위에 오르지만 아버지 신수근도 잃고 남편 중종도 잃었던 비운의 인물이다. 중종반정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신수근을 끌어 들이려 했으나 이에 반대하자 그를 죽였고, 이것이 후환이 될 것을 두려워한 반정의 실세들이 그녀를 폐위시켜버린 것. 

<7일의 왕비>는 이 역사적인 비운의 주인공을 소재로 절절한 비극적 운명의 사랑이야기를 덧입혔다. 연산군 이융과 진성대군 이역 그리고 채경은 사적으로는 형제(이융과 이역), 연인(이역과 채경), 그리고 오누이(이융과 채경) 같은 관계를 갖고 있지만 왕좌를 두고 벌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는 이들의 사적인 관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역과 이융은 대립하게 되고, 죽을 위기에 수차례 처하게 되는 이역을 채경은 돕게 되며 그로 인해 그녀는 붙잡혀 이역을 잡기 위한 볼모가 되어버린다. 

옥사에서 이제 모든 죄를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 채경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역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그가 그립다. 그에게 절대로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7일의 왕비>가 담고 있는 건 그래서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 사이에서 또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며 스스로 희생의 길로 걸어간 채경의 눈물겨운 사랑을 담고 있다. 

지금껏 연산군을 다루는 사극들을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또 중종 역시 사극의 주된 소재로 다뤄진 바 있다. 하지만 어째서 <7일의 왕비>는 이 역사적 사실에서 연산군도 중종도 아닌 폐비 신씨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을까. 그것도 단 7일 간 왕비로 살다 폐위되어 평생을 중종을 그리워하며 살다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던 인물을. 

이 부분은 아마도 현재의 시각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고 보인다. 역사라고 하면 왕들의 역사가 대부분이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간 무수한 인물들은 잘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역사가 그저 조연으로 취급했던 폐비 신씨의 이야기를 애써 주인공으로 담아내려 한 건 대중의 시대가 바라보는 새로운 역사관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보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7일의 왕비>는 멜로라는 장르적 틀을 엮어 해나간다는 점에서 절절한 비극의 성격을 부여한다. 사실 최근 드라마에서 운명적인 비극의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다. 사랑을 바라보는 시대적 정서가 달라짐에 따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멜로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보게 된 <7일의 왕비>라는 비극의 비장함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 그 무게감이 아직까지 대중적인 호응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7일의 왕비>가 그런 비극으로 꺼내놓은,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간 인물이지만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인물을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한 부분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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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쌈마이’ 같은 멜로라면...장르물과 결합하고 현실 담아내고

사실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멜로에 대한 반응은 양면적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적 전통은 드라마의 전통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뿌리 깊다. 지금껏 드라마 하면 그것이 어떤 장르를 갖고 있든 멜로가 빠지면 어딘지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드라마의 ‘멜로 코드’가 식상하다는 반응도 어김없이 나온다. 특히 장르물이나 사극에서 갑자기 멜로 코드가 등장하면, “멜로 없이는 안 되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어딘지 빠지면 아쉽고, 들어가면 식상해지는 멜로. 그래서 멜로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멜로에 법정드라마라는 장르물을 엮어냈다. 물론 법정드라마 속에 간간이 멜로 코드가 섞인 드라마는 이전부터 꽤 많이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저 멜로 코드를 살짝 넣은 것이 아니라, 멜로와 법정드라마 장르를 보다 긴밀하게 엮어내고 있다. 즉 제목에서 드러나듯 법정드라마의 공적 관계 속에서는 ‘파트너’이지만, 그것이 멜로의 사적 관계로 얽히며 멜로와 법정드라마 양면에 모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7명을 죽이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해 여주인공인 은봉희(남지현)에 접근하는 그 장면들은 장르물의 긴장감을 높이지만, 여기에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는 노지욱(지창욱)의 절절함이 더해지며 멜로의 강도도 높이고 있는 것. 그저 멜로가 양념으로 더해진 것이 아니라 장르물의 긴장감 또한 높여주는 효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수상한 파트너>의 멜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경우 답답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멜로와 엮어냈다. 즉 갑질 하는 현실에서 질식해가는 청춘들이 그들만의 연대와 사랑, 우정 등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의 골자다. 아나운서가 꿈이지만 백화점 안내원인 최애라(김지원)와 태권도 선수의 꿈을 접고 근근이 살아가던 고동만(박서준)이 그 현실의 벽 앞에서 서로를 지지해주며 차츰 친구 그 이상의 감정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청춘 멜로에 현실적 질감을 더해준다. 

태생적으로 가진 자들이 스펙을 통해 저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가고, 거기서 빗겨난 ‘쌈마이’ 청춘들이 그래도 ‘마이웨이’를 가겠다고 선언하는 이야기는 다분히 사회에 대한 도발적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러면서 그 청춘의 도발을 연대하는 친구들의 훈훈한 우정 속에서 멜로가 은근히 피어난다. <쌈마이웨이>가 다루는 청춘멜로가 뻔해 보이지 않고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적 질감이 그 밑바닥 정서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멜로의 이종결합이 그 자체만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멜로가 그저 보조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르물이든 현실적인 이야기이든 그 안에 제대로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상한 파트너>와 <쌈마이웨이>의 멜로는 이러한 이종결합의 정답지 같은 느낌을 준다. 장르물 속에서 또 현실적인 공감대 위에서 그 멜로의 화학작용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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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파트너’,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 사이

“너는 인질이야. 니가 있어야 범인이 나타났을 때 내가 잡을 수 있지.”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노지욱(지창욱)은 은봉희(남지현)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며 그렇게 말한다. 변호사일도 접고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려 마음먹었던 은봉희의 마음이 흔들린다. 노지욱은 어느 날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툭 “너 내 사람 되라”고 했던 것이 진심이라고 말한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누가 봐도 이들은 밀당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인질’이라는 표현은 마치 그들의 동거가 범인을 잡기 위한 공적인 일처럼 만들지만 그건 누가 봐도 동거하자는 말이다. 또 “내 사람 되라”는 말 역시 노지욱이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합류해서 일하자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은봉희에게 ‘내 사람’이 되라는 사적이고 멜로적인 감정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은봉희는 ‘인질’이라는 말에 설렌다. 왜 이렇게 잘 해주냐고 묻자 “인류애”라고 했던 노지욱을 떠올리며 “인류애에서 인질로 발전했다”며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좋아한다. 이것은 <수상한 파트너>가 그리고 있는 멜로의 실체다. 거기에는 사적인 차원의 멜로와 공적인 차원의 일(변호, 진범 찾아 누명 벗기)이 겹쳐져 있다. 멜로적 상황이 나올 때마다 인물들은 그것이 그저 공적인 일일 뿐이라고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그 공적인 일 안에서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적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또 한 축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적 편견의 문제나 진실과 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공적 사안과 사적 감정들은 뒤엉킨다. 은봉희를 아들의 살인범으로 생각했지만 풀려나게 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검장 장무영(김홍파)은 그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하는 은봉희에게 그는 그렇다면 진범을 잡아오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 셰프의 살해 용의자로 붙잡힌 택배 기사가 은봉희를 변호사로 지목하고, 그녀가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을 때 그녀 역시 공적인 선을 넘어 사적인 감정으로 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한다. 그 택배 기사의 상황이 자신이 과거 살인자로 몰려 있을 때의 처지와 너무나 똑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때 노지욱이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듯이 그녀는 그에게 동아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에게 노지욱은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장무영도 또 은봉희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사적인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실체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노지욱과 은봉희는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하면서도 멜로적 상황들을 놓치지 않는다. 택배기사의 변호를 하면서도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얼굴이 아니라 사랑에 이제 막 빠지려는 연인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멜로적 상황을 일로서 슬쩍 감추는 그 방식은 오히려 이 멜로의 감정들은 더 강화시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진짜 살인범을 잡아 누명에서 벗어나는 목표를 갖고 있고, 또한 억울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의 변호를 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이러한 멜로적 상황들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게 만든다. 공적인 입장과 사적인 감정들이 겹쳐져 일과 사랑을 명쾌하게 가르지 못하고 혼재시키는 상황들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하고 어딘지 부족하지만 그것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 

그래서 <수상한 파트너>에는 그 흔한 갑을관계조차 혹은 절친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불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친구들 관계에서조차 가해자와 피해자로 선악이 구분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노지욱의 모친인 홍복자(남기애)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은봉희의 모친인 박영순(윤복인)이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자 홍복자는 이른바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전형적인 상황 속에서도 박영순은 결코 만만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갑과 을의 상황은 마치 친한 친구들이 툭탁대는 모습처럼 유쾌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절친으로 지냈지만 노지욱의 여자친구와 불륜을 저질러 이제는 멀어져버린 지은혁(최태준)을 대하는 노지욱의 감정은 미움과 분노와 더불어 우정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노지욱은 지은혁을 결코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그들을 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다. 

<수상한 파트너>는 온전히 로맨틱 코미디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또 진범을 찾아내고 그래서 누명을 벗는 법정드라마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공적인 일들과 사적인 감정들의 혼재와 그 안에서 슬쩍 슬쩍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이 드라마만이 가진 특별한 재미가 아닐까. 그 부족하고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는 모습들이 그토록 예뻐 보일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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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파트너’, 법정물? 로맨틱 코미디!

법정물일까 아니면 로맨틱 코미디일까. 검사와 변호사가 등장하고 살인사건이 전체 이야기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점은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가 법정 스릴러 장르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휘파람 소리를 내며 여주인공인 은봉희(남지현)의 주변을 맴도는 범인은 그 등장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만든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러한 <수상한 파트너>가 포진시켜놓은 스릴러 장르적 틀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물 간의 관계들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의 장르적 성격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접근금지명령’이란 부제의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법정물과 로맨틱 코미디의 절묘한 결합방식을 잘 보여준다. 

살인죄로 기소되었던 은봉희를 풀려나게 해줌으로써 검사복을 벗게 된 노지욱(지창욱). 그가 은봉희에게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라며 다시는 보지 말자고 선을 긋지만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로 나뉘어 변호를 하다 다시 만나게 되고 관계가 이어지는 과정은 ‘접근금지명령’이라는 법적인 사안을 멜로적 관계와 연결시켜 해석해낸 독특한 이 드라마의 특징을 드러낸다. 

실제로 이들이 맡은 사건은 스토커를 하는 한 남자가 접근금지명령을 어기고 여자의 집안까지 난입하다 체포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들 관계의 문제를 변호하고 해결하면서 은봉희와 노지욱의 관계 역시 가까워진다. 노지욱이 은봉희에게 악연이라며 내린 ‘접근금지’가 풀려나는 과정을 사건과 연계시켜 풀어낸 것.

그러고 보면 노지욱과 은봉희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적 관계들은 이들이 겪는 법적인 사건들과 엮어져 있다. 노지욱은 은봉희를 풀려나게 함으로써 지검장의 미움을 사게 됐고 결국 검사복마저 벗게 됐다. 또 그 후에도 은봉희가 지속적으로 지검장의 사찰을 당하며 변호사로서의 일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지검장을 찾아가 항변하다 또다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결국 노지욱은 그녀를 두둔하는 법적 행동을 할 때마다 불이익을 받게 되고 그래서 악연이라며 그녀를 멀리 하려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꾸만 그녀에게 빠져든다. 바로 이 지점이 법정물과 멜로가 만나는 곳이다. 멜로는 달달해지지만 그럴수록 현실은 더 어려워지는 상황. 현실의 어려움이 만들어내는 장벽과 갈등들은 그래서 이들 사이의 멜로적 관계를 더 갈망하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법정물을 빙자한 멜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이들이 처한 문제가 해결되고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는 법정물의 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고 그래서 진범을 잡는 과정과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사적인 멜로들의 교집합. 그것이 <수상한 파트너>가 가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건 역시 그 역할을 더 실감나게 만드는 지창욱과 남지현이다. 액션 연기와 동시에 멜로적 감성을 더해주는 지창욱의 연기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긴장감과 설렘을 만들어주고 있고, 무거울 수 있는 사안들을 특유의 긍정적 에너지로 밝고 발랄하게 만들어내는 남지현의 연기는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상큼함을 부여한다. 두 사람의 케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해지는 건 그 케미가 법정물과 멜로를 동시에 엮어내는 드라마의 특성 덕분이다. 물론 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배우들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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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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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쎈 여자 도봉순’, 박보영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드라마는 끝났지만 박보영이 남긴 잔상은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마지막회 시청률 8.957%(닐슨 코리아). JTBC로서는 이제 종영한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다. 그간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그다지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던 JTBC 아닌가. 그러니 이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난공불락으로만 여겼던 시청률의 성을 깨버린 건 JTBC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리고 이 드라마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박보영이라는 독보적인 연기자 덕분이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게다. 생각해보라.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슈퍼파워걸 도봉순이 보여주는 엄청난 괴력의 장면들은 자칫 잘못하면 유치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살짝 치기만 해도 사람이 날아가고, 문짝을 통째로 뜯어내거나 달리는 버스를 맨 손으로 멈춰 세우며, 수십 명은 될 조폭들을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그 장면들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좀체 성공하기 어렵다는 B급 정서까지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을 드라마는 그간 범행의 대상으로만 주로 다뤄지던 여성 히어로를 세움으로써 심정적 지지로 바꾸었고, 그 B급 정서가 코미디적으로 연출되면서 믿기 어려운 액션들마저 웃어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난관들을 모두 허용시킨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배우 자체였다. 어른들에게는 복스럽고, 남녀 모두에게 귀엽게 다가오는 이 대체불가의 배우는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코미디면 코미디 등등 뭐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한 장르들을 떠올려보라. 스릴러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 코미디, 청춘 성장드라마 등등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다. 마치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볼 때는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고, 조폭들을 한꺼번에 때려눕힐 때는 그간 억눌렸던 감정들이 시원하게 풀어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개인적 성장을 통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고, 웃을 일 찾기 힘든 현실에 잠시 동안 모든 걸 잊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액면대로 보면 드라마가 굉장한 메시지나 형식미 혹은 내용적 완성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조금씩 있는 흠결들을 채워 넣어준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다. 그녀가 하기 때문에 용서되는 장면들도 있었고, 그녀가 있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됐던 허술한 이야기 설정들도 적지 않았다. 

이 배우가 놀라운 건 보통 우리가 ‘국민 여동생’ 같은 표현으로 지칭할 때 생기는 어떤 이미지의 장벽 같은 것들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귀여운 여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 이건 배우로서 박보영이 가진 가장 큰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작년 방영해 큰 성공을 거뒀던 tvN <오 나의 귀신님>은 박보영이라는 배우의 꽃길이 이미 시작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확실히 입증된 그 힘은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힘을 자각한 박보영의 또 다른 비상을 기대한다.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이 결국 자각했던 그 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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