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보다 과정, ‘하트시그널2’가 깨어나게 한 연애세포란

채널A <하트시그널2>는 벌써 10회가 방영됐다. 시즌1은 13회 분량이었지만 시즌2는 이보다 훨씬 길어질 전망이다. 아직 이들이 ‘시그널 하우스’에서 지낼 시간이 10일 정도가 남았기 때문이다. 시즌1과 비교해 꽤 방영이 된 회차이고, 아직 10일이 남았다면 향후의 방영분량도 꽤 있을 걸로 보이지만, 시청자들도 또 출연자들도 벌써부터 남은 날들이 얼마 없다며 아쉬워한다. 김현우와 함께 장을 보러 간 임현주가 계란의 유통기한을 보며 “우리가 함께 지낼 시간이 이 유통기한보다 짧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것처럼.

1회 시그널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그들을 떠올려보면 이제 서로가 익숙해지고 또 그 마음속에 들어선 이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게 된 지금의 상황이 한 편의 팽팽한 멜로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첫 만남에서 긴장한 듯 말없이 앉아 눈치만 보고 있던 김도균이나 그 어색한 분위기를 환한 웃음과 호응으로 풀어내주던 임현주. 아나운서인 줄 착각할 정도로 털털한 성격과 달리 우아한 느낌을 줬던 오영주나 뒤늦게 합류해 모든 출연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으로 여성 출연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김현우. 

하지만 이들은 10회 분량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겉보기에는 친한 친구들의 생활처럼 보였어도, 그 안으로는 감정의 격랑을 겪었다. 김현우가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한 공간에서 지내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설레는 감정과 그 감정이 전달되지 않아 느껴야 했던 아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전달됐을 때 느껴지던 기쁨 같은 것들을 느낀다.

그 과정을 스튜디오에서 바라보며 마치 제 일처럼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또 가슴 설레하는 연예인 패널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들이 그 하우스에 들어가 그 감정들을 똑같이 느끼는 것 같은 몰입감을 드러낸다.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앉아 그들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고 누가 누구에게 마음이 가고 있는가를 맞추는 것이 그들의 표면적인 역할이지만, 실제 그들의 역할은 출연자들의 감정을 공감하는 면이 더 커 보인다. 그들이 몰입하는 만큼 시청자들도 그들과 똑같이 이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감정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10회 분량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포착해냈다. 첫 만남에서부터 과거 자신이 일할 때 우연히 봤던 오영주를 기억해냈던 김현우. 하지만 적극적인 임현주의 대시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오영주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던 그가 다시 오영주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렇다. 첫 번째 봤던 사람에 대한 확고한 마음이 있다고 김현우가 얘기했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인 줄 모르고 오해하고 홀로 눈물 흘리는 장면은 드라마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실제 상황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커플이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그로 인해 마음을 줬던 누군가를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김현우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던 임현주는 그래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버리는 그에게 아픈 상처를 갖게 되지만, 그의 옆에는 오래도록 그만을 바라보며 서 있던 인물이 있었다. 김도균이 바로 그 인물이다. 말도 별로 없고 표현도 잘 안하는 그가 데이트에 임현주가 준 이병률 시인의 시집의 ‘사람이 온다’라는 시를 통째로 외워 종이에 적어 건네주는 장면은 그래서 또 하나의 리얼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렸던 김현우와 달리 조금씩 옆에서 노력하며 마음을 주었던 김도균이라는 인물은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이제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지만, <하트시그널2>는 또 어떤 변수가 이들의 관계를 바꿔놓을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김장미가 적극적으로 김도균에게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와 임현주의 단단해 보이는 관계를 확인하며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가 그렇게 공고하게 끝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가 누구와 이뤄지느냐 하는 그 결말만큼, 그 과정이 일깨워준 잊고 있던 그 감정들이 아닐까. <하트시그널2>는 그래서 그 하트가 누구에게 시그널을 보냈는가보다 아직도 시그널에 가슴 설레 하는 하트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해주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연예인도 아니고 멜로드라마도 아닌 일반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이야.(사진:채널A)

‘미스 함무라비’, 우리가 보던 흔한 법정물과 다른 지점

억울한 피해자와 공분을 일으키는 가해자. 증거를 찾아 가해자를 검거하려는 검사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변호사. 혹은 공명정대한 사이다 판결로 정의를 구현하거나, 아니면 권력과 결탁해 약한 자들을 짓밟는 판사. 대체로 우리가 법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던 캐릭터들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부터 대놓고 법정물을 기대하게 하는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그 장르 중 하나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스 함무라비>는 이들 법정물들이 그려내는 그런 장르적 이야기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것이 그런 법정 사건들 자체가 가진 이야기성에만 기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보다 이 드라마가 더 주목하는 건 그 사건을 바라보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미스 함무라비> 2회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부터 다양한 사건들이 왜 더 자세히 등장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졌을 수 있다. 박차오름(고아라)이라는 열정적이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진 신입 판사가, 바로 그 개인의 열정 때문에 조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과정을 꽤 오래도록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차오름의 이런 순수한 열정과 전면적으로 부딪치는 인물은 바로 부장판사인 한세상(성동일)이다. 재판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박차오름에게 지청구를 날리는 한세상. 결국 박차오름은 바로 이런 남다른 동정심과 공감능력으로 인해 사고를 친다. 채무자 할머니의 사연에 마음이 움직인 박차오름은 판사라는 직업의 본분을 망각하고 도움을 주려 했던 것.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박차오름과의 관계를 이용해 상대방을 협박하는 일을 벌인다.

한세상은 그런 열정과 지나친 공감능력이 판사로서의 직업적 본분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박차오름은 그 소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손님 사이에 벌어진 법정 소송에 있어서 감동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그저 대충 합의로 끝내라는 한세상의 명을 어기고 제대로 잘잘못을 판결하겠다고 나선 그 법정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인 그 손님의 마음을 들여다 본 박차오름으로 인해 주인과 종업원이 모두 사과를 하고 손님도 소송을 취하하게 되는 결과를 얻어낸 것.

결국 판사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판단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내막을 깊이 들어주고 그 사연에 공감해줌으로써 오해가 있다면 풀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라마는 박차오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판사라 표정을 보여서는 안되는 직업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마음까지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 

작가가 현업에 있는 문유석 판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이 갖는 현실적인 고민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할 이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스 함무라비>에는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다. 법정물이라고 하면 끔찍한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런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드라마는 훨씬 더 우리네 일상에 다가와 있는 느낌을 준다. 판사가 특이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법정물이라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함무라비’ 김명수와 고아라, 그 냉정과 온정 사이

판사라면 어떠해야 할까. 모든 사건들을 냉정하게 다루고, 오로지 법의 틀 안에서만 바라봐야 할까. 아니면 그 사건들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야 할까. JTBC 새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첫 회는 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판사 임바른(김명수)과 박차오름(고아라)이 한 사무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임바른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판사로서의 바른 길을 고집하는 인물.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암울하다.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에게 사람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판사라는 직업이 좋은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세상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는 월급을 기다리는 샐러리맨과 판사라는 직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된 건 해직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아마도 ‘입바른’ 소리를 하며 살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지만, 그렇게 기자로서 입바른 소리를 하던 아버지는 해직되어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무능력자처럼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임바른은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렇게 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같은 사무실로 박차오름이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쩍벌남과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주머니를 그냥 넘기지 않고 일침을 가하고, 성추행범에게는 일격을 가하는 박차오름의 모습은 여러모로 임바른과는 다르다.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첫 날부터 한세상(성동일) 부장판사에게 끌려가 말도 안되는 “여자가 조신해야지” 같은 성차별적 소리까지 들었지만 박차오름은 다음 날 더 튀는 옷을 입고와 부장판사와 맞섰다. 조신하지 못하다는 소리에 히잡으로 갈아입고 나선 박차오름은 어느 것이 낫냐고 물어 부장판사의 뒷목을 잡게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지내지만 “인간들이 싫다”고 생각하는 임바른과 그 인간들을 공감하는 박차오름은 너무나 달랐다. 인간의 죄를 담아낸다며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임바른에게 아예 대놓고 보라는 듯 다음날 이중섭의 가족 그림을 붙이고,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책상 앞에 놓아둔 임바른과 달리, 천수대비의 상을 책상 앞에 두는 박차오름이다. 임바른이 판사로서 냉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면, 박차오름은 세상의 많은 약자들의 아픔에 손을 내미는 온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딪침은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할머니를 두고 벌어졌다. 증거가 없어 억울한 판결을 받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시위를 할 게 아니라 항소를 하시라고 권하는 임바른과 달리, 박차오름은 그 할머니의 사연을 눈물을 흘리며 들어주고 있었다. 판사라는 직업으로서의 정상과 비정상을 이야기하는 임바른에게 박차오름은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정상이고 비정상인가를 되물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판사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그가 판사로서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에 대한 딜레마를 첫 회부터 잘 담아내고 있다. 박차오름이 이상을 보여준다면 임바른은 현실을 대변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멜로는 단순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서게 해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멜로의 구도 속에 법 정의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캐릭터를 통해 녹여내고 있다는 것. 냉정한 임바른과 온정 가득한 박차오름의 케미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다.(사진:JT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우리들이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

늘 봐오던 풍경이라고? 그래서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MBC 새 교양 파일럿 프로그램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늘 봐오던 풍경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댁의 풍경이 어째서 그리도 이상한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사랑과 전쟁>의 ‘불륜녀’ 역할로 많이 알려진 배우 민지영은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에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친정집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시댁을 간다는 그 부담감에 전날부터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했던 민지영.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이바지 음식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도대체 이렇게 많이 음식을 준비하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시댁으로 가는 딸을 보며 엄마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왜 눈물을 흘렸는가는 시댁에 도착한 후 민지영이 금세 체감하는 그 공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치 남자들이 있는 공간과 여자들이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시댁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남자들이 두런두런 모여 술판을 벌이기 시작할 때, 며느리들(시어머니도 며느리다)은 음식 준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어머니는 첫 날은 그렇게 일하는 거 아니라며 며느리를 밀어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어찌 시어머니가 동분서주하는 걸 보고만 있을까. 

이런 상황은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의 명절 풍경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으로 보여졌다. 남편이 일을 나가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에 어린 아들을 안고 무거운 짐까지 들고 홀로 나서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시댁으로 가는 길 보채는 아들을 달래가며 운전을 하는 모습이라니.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이런 일을 혼자 감당한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명절이니 제사니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시댁에 어렵게 도착했을 때 시아버지는 손주만 덜렁 안고 들어가 버렸고, 앉아 쉴 틈도 없이 바로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박세미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명절 음식들. 먹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걸 차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나. 그러면서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며 과거와 비교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며느리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과연 진심으로 좋아졌다 생각할 수 있을까.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지만 며느리는 이방인이었다. 시누이는 그토록 챙기면서 어째서 며느리는 그렇게 부릴까. 보채는 아이 챙기며 음식 준비하고 시댁 식구들 심부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 며느리는 임신 8개월이었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남편은 생각도 없이 자신이 사왔다는 술을 꺼내 자랑을 늘어놓고, 어렵게 잠을 청하자마자 새벽부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깨운다. 제사상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제사가 끝났으면 일찍 친정으로 보내주면 좋으련만 시댁 식구들은 어떻게든 더 붙잡아두려 혈안이다. 억지로 윷놀이 하는 걸 지켜보며 웃는 척 하고 있지만 며느리의 마음이 어디 편할 수 있을까. 어째서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없을까. 시어머니도 한 때는 며느리가 아니었던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일상처럼 치부되어 왔던 시댁의 풍경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금 들여다본다. 그랬더니 드러나는 건 이 풍경에 담긴 놀라울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다. 남자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어떤 일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려니 했지만 그걸 확인해보니 더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며느리의 일상. 그 일상에 깊이 공감하며 같이 아파하는 시간은 그래서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다가온다.(사진:MBC)

‘예쁜 누나’가 소박하게 담아낸 여성들에 대한 위로

이 정도면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연일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야기다. 거기 등장하는 ‘예쁜 누나’ 손예진 이야기이고, 그의 상대역인 ‘밥 사주고 싶은 동생’ 정해인 이야기다. 수다 자리에서 “그거 봤어?”하고 말하게 되는 그런 드라마가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인 걸까.

손예진이 ‘예쁜 누나’라고 불러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만큼 진짜 예쁜 ‘방부제 미모’를 갖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정해인이 어색하게 쓱 웃는 소년 같은 풋풋한 미소를 던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설렘 같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좀 더 사회적인 함의가 담겨있다. 그러니 그 일상적인 모습만으로도 이런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들이 나오는 것일 게다.

무엇이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린 걸까. 가장 큰 건 이 드라마가 담아내는 소박해도 진솔한 여성들에 대한 위로의 시선이다. ‘예쁜 누나’라고 지칭되어 있지만 극중 윤진아(손예진)는 그냥 나이 든 누나다. 그 나이에 변변한 남자친구도 하나 없어 부모가 나서서 배경 좋은 남자를 엮어주려 할 정도다. 그런데 그 남자는 배경은 좋을지 몰라도 인성은 꽝이다. 요즘 같으면 극혐으로 불리는 ‘스토커’형 인간이다. 

바람을 피워 그게 들키고도 뻔뻔하게 윤진아 앞에 나타나 널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윤진아는 소유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파렴치한 스토커는 매장까지 찾아와 완력으로 윤진아에게 키스를 하려 한다.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헤어지려 했던 윤진아에게는 처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저런 인간을 한 때 죽자 살자 좋아했던 자신에게조차 자괴감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들은 그를 마치 ‘소유물’ 취급한다. 회사는 그런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이 난무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간이다. 직속상사는 회식 자리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모두 참석하라고 강요하고, 그 자리에서는 마치 습관처럼 성희롱과 성폭력이 벌어진다. 

그래서 모두가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지만 윤진아만은 그러려니 포기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래서 출장까지 가서 굳이 가고 싶지 않은 점주와의 회식 자리에 가지 않겠다고 그가 선언하자 상사도 또 그 소식을 들은 동료들도 적이 놀란다. 윤진아가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아왔다는 걸 그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보여준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지만 상사가 잘못한 걸 뒤집어써야 겨우 겨우 직장생활을 연명할 수 있는 처지나, 잘못은 점주가 했지만 직장에서는 그 점주를 관리 못한 그를 질책하는 상황. 그가 기댈 곳이라고는 유일한 친구 경선(장소연)뿐이다. 그만이 윤진아의 진가를 알아준다. 자신의 엄마가 죽고 아빠마저 재혼을 해 기댈 곳이 없었던 경선 옆에서 끝까지 그를 지지해준 이가 바로 윤진아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윤진아를 나이 들고 만나는 사람도 변변히 없는 데다 많은 걸 포기한 채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하는 그런 사람 취급하지만, 드라마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별 내색도 안하고 밝게 살려 애써 웃는 윤진아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준희(정해인)가 윤진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딱 그렇다. 경선의 친구인 누나로서 옆자리에서 봐온 윤진아의 진짜 ‘예쁨’을 준희는 일찌감치 알아봐줬다. 

멜로드라마들이 늘 그려왔던 틀이 주도적인 남자와 그로 인해 천거되는 여자의 구도였다면, 이 드라마는 그런 틀을 훌쩍 벗어버린다. 그건 멜로드라마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세우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지금의 여성들이 원하는 멜로의 구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예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이와 성별을 훌쩍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멜로가 어째서 지금껏 그리 많지 않았던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래서 여전히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소박하지만 강력한 위로를 건넨다. 신데렐라가 되는 엄청난 돈과 지위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대신 ‘밥 한 끼 사주는 것’ 속에 담겨진 소박하지만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사회에 대한 요구들이 시대의 목소리로 등장하고 있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만들어내는 신드롬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각자 제 위치에서 힘겨워도 버텨내며 살아가는 그들이 진심으로 예쁘다고 한 마디 해주는 것.(사진:JTBC)

‘키스 먼저’, 김선아는 잊어버린 걸 감우성이 기억한다는 건

‘그는 기억하고 그녀는 잊어버린 것.’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매회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런 제목의 짧은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 이야기에는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의 이미 과거에 얽혔던 사연들이 소개된다. 둘 다 이혼을 하고난 후 흔들리는 기내에서 처음 마주하던 때와, 그 날 아무도 없는 한겨울 동물원을 찾은 순진을 무작정 따라갔던 무한과, 거기서 자살 시도를 했던 순진을 구해냈던 무한의 이야기 등이 그 에필로그에 담긴다.

그 에필로그가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 속에는 무한과 순진이 왜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제시된다. 무한은 이혼 후 세상과 거의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이제 병들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고, 순진은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들을 방치한 채 오랜 법정싸움으로 지게 된 사채 빚 독촉을 받으며 자포자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에필로그에는 순진이 본래 아이가 있었고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하게 된 사연이 더해진다. 공원묘지에서 무한은 아버지의 묘소를 방문했다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며 오열하는 순진을 보게 된다. 순진이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방치해놓고 있는 건 바로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남편인 은경수(오지호)가 집을 나가자 순진을 찾아왔을 거라 의심한 백지민(박시연)이 그 집안에 들이닥쳐 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다 문득 발견한 아이를 담은 비디오테이프 앞에 멈춰서게 된 건 그 역시 순진이 미우면서도 부채감 같은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는 스스로 말했듯 자신은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지민을 만나 빠져나왔지만, 아직 순진은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수가 지민과 재혼하고도 순진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너무 아파서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순진은 아이의 죽음이 주는 그 거대한 상처만을 기억하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자신을 바라보던 무한의 눈길은 기억하지 못한다. 눈 내리던 동물원 어느 한 켠에서 눈을 맞으며 오열하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우산을 받쳐주던 무한이 있었고, 버리고 간 캐리어를 대신 끌며 따라왔던 무한이 있었다. 그리고 무한은 어느 벤치에서 순진이 손목을 그었을 때 달려와 그를 응급실까지 데려갔다. 무한은 선명히 그것을 기억하지만 순진은 잊어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들이 무한 같은 새로운 사람과의 기억을 담을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위층 남자 아래층 여자로 만나게 되고, 점점 가깝게 되어 이제는 “자러 올래요?”라는 말에 야릇한 감정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순진은 여전히 무한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런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이제 직장에서도 잘리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 처지의 순진을 지금도 무한은 뒤에서 바라본다. 순진은 그 모든 아픔 앞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를 바라봐주고 다가와주며 손을 내밀어주는 무한이 있었다.

아마도 이 구도는 <키스 먼저 할까요?>가 가진 사랑에 대한 시각이다. 이제 나이 들어 딱히 설렐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들이지만, 이들은 육체적인 욕망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그 시선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 아마도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 붙었을 게다. 이들에게는 스킨십이나 함께 자는 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들여다봐주는 것이니. 순진은 잊어버렸지만 기억해주는 무한이 보여주는 그 마음.(사진:SBS)

‘황금빛’ 천호진과 신혜선의 공감이 주는 남다른 울림

“마지막으로 일주일만 만나기로 했어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딸 서지안(신혜선)은 아버지 서태수(천호진)에게 그렇게 말한다. 애초에 서태수는 지안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최도경(박시후)과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되는 마음에 딸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딸의 그 말 한 마디에 이 아버지는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마지막’이란 말이 너무나 자신의 가슴에 콕콕 박히기 때문이다. 

서태수가 그 말을 남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자신 또한 그 ‘마지막’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생겨난 상상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너무나 힘겨운 삶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그 생각이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져 허허 웃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서태수는 딸 서지안이 말하는 ‘마지막’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지막’을 상정해놓고 서로 웃으며 지내고 있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찾아온 서태수는 문득 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 사랑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너무 다른 집안의 차이 때문에 결코 이뤄지기 어려운 딸의 사랑이 자신의 잘못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서태수에게 딸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는다. 자신은 괜찮다고 애써 말한다. 

딸 서지안이 서태수를 이해하게 된 것 역시 자신 또한 죽음까지 생각한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벌가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쫓겨난 서지안은 그제서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선선이 집을 나서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죽음을 결심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겨우 그 곳을 지나는 이에 의해 살게 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안정을 되찾게 된 서지안이 외면하고 있던 아버지가 사실은 극단적인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오열하게 된 건, 바로 자신이 겪었던 그 상황을 통해 아버지의 상황을 더 절실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오히려 축복처럼 받아들이게 됐을까. 

이런 동병상련의 마음은 <황금빛 내 인생>의 인물들이 저마다 제 자리를 찾아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평범한 서민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해성그룹 부회장으로 살아가는 최재성(전노민)이 딸 서지수(서은수)를 돕는 마음이 되는 게 바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재벌가의 삶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사랑마저 희생해야 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알고 있는 최재성은 그래서 서지수에게 선우혁(이태환)과의 연애를 허락하고 노명희에게 사직서를 내버린다.

결국 누군가를 진짜 이해한다는 건 타인의 상황을 고스란히 공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게다.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똑같이 바라보는 것으로서 풀어질 수 있는 일이다.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이 그래서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바로 그 입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타인에 대한 이해다. 

이 흐름 안에서 최도경과 서지안이 맞닥뜨리는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현명한 방식들이 나타난다. 갑자기 나타나 결혼을 제안하는 노명희 앞에서 두 사람은 잠시 흔들리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단호히 거부한다. 최도경은 이미 홀로서기를 해나가며 갖게 되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는 걸 자신의 홀로서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결혼으로 서지안의 발목을 잡는 일은 그에게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노명희에게 이를 거부하는 뜻을 전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관계의 그물망에 허우적대던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지만 그러기 위해서 서로의 입장을 체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인생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인생도 중요하다.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타인 또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어야 결국 진정한 자신의 행복 또한 찾아질 수 있다고 <황금빛 내 인생>은 말하고 있다.(사진:KBS)

‘미스티’, 김남주의 독한 연기가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드는 걸까. JTBC 새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성공한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처한 만만찮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치열하게 싸워 여성 앵커로서 성공한 인물이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고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앵커라면 실력과 경륜이 가장 중요할 수 있지만, 방송사가 고려하는 건 오로지 시청률이다. 그래서 당장 시선을 끄는 젊은 기자 한지원(진기주)을 그를 밀어내고 앵커 자리에 앉히려 한다.

고혜란은 앵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방송사가 어떻게든 인터뷰를 잡으려 하는 케빈 리(고준) 프로골퍼 섭외를 앵커 자리보전을 위한 조건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케빈 리를 섭외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려는 그 순간에 오랜 병원생활을 해왔던 엄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결국 병원이 아닌 공항을 선택한다. 엄마 또한 늘 그에게 말했었다. 넌 성공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가 간다고 살아날 수 없는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하기보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 

성공을 위해 달려왔고 그렇게 거머쥔 최고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비정한 고혜란을 남편 강태욱(지진희)은 납득할 수가 없다. 유명한 아내를 위한 마지막 배려로서 자신을 놓아줄 때까지 그냥 묵묵히 각자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그는 그래서 고혜란과는 쇼윈도 부부의 삶을 살아간다. 고혜란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생활에서는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이들과 싸워야 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자신이 기댈 곳은 전혀 없다. 스스로 아이를 지워버릴 정도로 그의 삶은 성공에만 맞춰져 있으니 그런 삶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선택한 삶이 점점 추락해가고 있는 걸 느낄 때, 그의 앞에 과거의 연인이었지만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그가 버렸던 케빈 리가 성공한 프로골퍼로서 나타난다. 그것도 보잘 것 없이 살아왔던 그의 여고시절 단짝 서은주(전혜진)의 남편으로. 독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현재 위치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고혜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서은주의 존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과거 자신이 버렸던 케빈 리 역시 은근히 자신을 도발하는 상황은 또 어떻고.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케빈 리를 섭외하고 자꾸만 그와 얽혀들게 되지만.

하지만 고혜란은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지원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그가 유혹의 시선을 던지는 케빈 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은 사진으로 한지원을 밀어낸다. 그에게 그 사진을 찍어준 기자 윤송이(김수진)는 그를 “독한 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좋다고. 

이건 마치 여성 앵커 버전의 <하얀거탑>을 보는 것만 같다.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 병원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갖가지 술수들을 다 동원하는 것처럼, 고혜란도 방송국 앵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자행한다. 심지어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 또한 저버리는 단계에 이른다.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절박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방송국 앵커 자리는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유리천정이라고 불린다. 남성 앵커는 나이가 들수록 경륜으로 받아들이지만, 여성 앵커는 나이가 들면 교체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 앵커만큼 여성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게 하는 직종이 있을까. 그러니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한 년”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여성이라는 성차에 대한 편견까지 공공연한 곳이 바로 거기이니 말이다. 

그래서 <미스티>의 고혜란에게는 그 독한 행보들이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되면서도 동조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렇게 독하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강한 공감이 깔려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10년 전 <하얀거탑>이 성공을 위한 질주와 그로 인한 파국을 통해 개발시대의 가장들의 자화상을 장준혁이라는 캐릭터로 담아냈던 것처럼, <미스티>는 지금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차별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독하게 버텨낼 수밖에 없는 커리어우먼들의 자화상을 고혜란이라는 캐릭터로 담아내고 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김남주는 그래서 고혜란 역할을 연기하는 모습 속에 여성 연기자로서 갖는 정서적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연기자들 역시 나이 들어갈수록 그 위치를 계속 버텨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현실이다. 젊은 연기자들이 치고 올라오고 방송은 더더욱 시청률에만 집중하는 현실이니. 김남주의 연기가 <미스티>에서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이러한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도 존재하는 공감대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사진:JTBC)

각자 서야 가족도 행복, ‘황금빛’의 새로운 가족 제안

“난 이 집 가장 졸업하겠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태수(천호진)는 아들 서지태(이태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과거 노모의 병환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을 집 보증금을 빼서 갚겠다고도 했다. 집 나가서 어떻게 혼자 살 거냐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혼자서였다면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서태수의 ‘가장 졸업’ 선언은 그간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결과였다. 사업을 망하기 전까지 그토록 노력해왔던 그의 삶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망한 후 힘들었던 일들만 가장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실망했다. “사업 망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양미정 당신 나 한 번이라도 위로해준 적 있냐. 지태 지안이 지수 네들이 나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 있어?...그래. 나 못난 애비다. 무능한 아버지야. 서태수 너 인생 실패했다.”

서태수는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지수(서은수)를 찾아가 그는 25년 전 그를 데려와 자식으로 키운 걸 사과했다. 부모의 사과. 그것은 더 이상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네가 믿든 안 믿든 넌 항상 내 딸이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훔친 딸이니까 내 딸이 아닌 거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그는 그것이 허망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조촐하게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겠다던 소박한 가장의 꿈은,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부모가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도 결정되는 현실 앞에서 흙수저 부모이기 때문에 부정당하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가장 졸업 선언이 공감 가는 이유다.

<황금빛 내 인생>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가족이, 핏줄이 족쇄가 되어 개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서태수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처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사실은 엄마의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 집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가족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서지안(신혜선)도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죽을 결심까지 하지만 친구 덕분에 돌아와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중 그는 새삼 부모 탓을 하며 희생을 감수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는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는 하우스 메이트의 말 한 마디에 서지안은 문득 그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떠올린다. 부모의 지원을 마치 당연히 해줘야 할 것처럼 여겼고 그래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지 않자 스스로 꿈을 접고 희생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재벌가 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그는 새삼 깨닫는 중이다.

가족이 따뜻한 둥지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사정은 서지수가 들어간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집도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서지안처럼 위장해 공식석상에 서야 하는 걸 거부한 서지수는 할아버지 노양호(김병기)의 냉혹한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네까짓 게”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노양호는 “황금 물고 태어나면”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서지수를 집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한다. 서지수는 이 재벌가의 핏줄에 황금빛 족쇄가 채워져 버린 셈이다. 

최도경(박시후) 역시 재벌가의 이미 정해진 삶으로서 결혼할 가문과 상대가 있었지만 서지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거부한다. 그 역시 이 재벌가의 핏줄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지금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가족상을 내세운다. 그것은 서로 핏줄로 얽혀 끈끈한 가족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가족상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그리고 서민이든 재벌가든 가족이 핏줄이라는 이유로 족쇄가 되는 삶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서서 비로소 행복해질 때야말로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제시한다. 

김수현 작가의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의 휴업 선언을 다룬 바 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황금빛 내 인생>은 아빠의 가장 졸업 선언을 그리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와,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신의 삶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자식이라면 그 가족은 따뜻한 둥지가 아닌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닐까. 각자 삶은 각자 개척해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상이다.(사진:KBS)

‘고백부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란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KBS 금토드라마 <고백부부>가 갖고 있는 타임리프 설정은 어쩌면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힘겨운 현실에 부딪쳐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서로의 마음이 다치고 그래서 결국은 이혼이라는 아픈 선택을 했던 부부. 만일 그들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고백부부(사진출처:KBS)'

분명 현실 걱정할 것 없는 청춘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는 그들의 청춘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특히 마진주(장나라)의 엄마 고은숙(김미경)은 신장염 투석 치료를 받아오다 결국 삶을 등졌다. 그러니 영정사진으로 남은 엄마를 다시 보게 된 마진주의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괜히 쳐다보다 눈물을 흘리고, 갑자기 껴안고 평소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속 얘기를 한다. 

장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최반도(손호준)에게도 특별해진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살아생전에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자신이 후회된다. 그래서 괜스레 그 집을 찾아가 선물을 놓고 오기도 하고, 곤경에 처하게 된 장모를 나서서 도와주기도 한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아서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새삼 소중해진다.

물론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다는 건, 지금은 죽고 못살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윤보름(한보름)과 안재우(허정민) 같은 친구의 관계가 훗날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마진주에게 접근하는 박현석(임지규) 같은 인물이 사실 얼마나 최악인가를 미리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자신들의 관계 또한 그렇게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도.

그래서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알고 있다. 함께 결혼해 살아가면서 아픈 시간들만 가득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들이 서로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가를.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서진(박아린)이라는 존재를 아예 없는 것처럼 지워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그리고 과거로 와보니 그 젊은 날 두 사람이 어째서 서로 끌렸던가를 새삼 느낀다. 최반도는 민서영(고보결)과 가까이 지내게 되지만 어쩐지 두 사람은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그저 오빠 동생 같은 관계처럼 보인다. 마진주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는 최반도는 스스로도 알아차린다. 자신이 그를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가를.

그래서 과거에서 자신만 혼자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 최반도는 마치 마진주가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그를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별 특별한 날도 아닌 어느 평범한 아침이지만 최반도는 마진주가 아주 특별한 존재로 느껴진다.

현재에서 과거로, 또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을 뛰어넘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이러한 불가능한 장치들을 이용해 우리 앞에 보여주는 건 의외로 큰 울림을 준다. 너무 익숙해졌거나, 아니면 너무 가까워서 별로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이 이렇게 관조적인 시각으로 그 시간들을 되돌려보면 굉장히 소중했던 시간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준다. 

이 모든 걸 겪어낸 마진주와 최반도의 눈물이 남다른 공감대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알겠는 것들. 그래서 왜 그 때 좀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후회되는 일들. 그런 일들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는 시간들 속에 담겨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그 때로 되돌아가서라도 다시금 제대로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는 걸 이 드라마는 이들의 눈물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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