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그대와’, 또 타임리프? 보편적인 공감에 주력해야

지하철을 타고 미래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여행자의 이야기. tvN 금토드라마 <내일 그대와>는 전형적인 타임리프 장르 드라마다. 과거의 지하철 사고를 겪은 후 시간여행을 하게 된 소준(이제훈)은 미래에 사고로 자신이 죽게 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그 때 같이 죽음을 맞게 될 마린(신민아)이 알고 보니 과거 지하철 사고 때 우연히 얽히게 되어 함께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미래가 그녀와도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소준은 그녀를 살리려 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겨난다. 

'내일 그대와(사진출처:tvN)'

그러니 설정은 타임리프지만 그 이야기의 또 다른 힘은 소준과 마린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 감정에 있다. 과거 어린 시절 엄마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출연했던 작품에서 ‘밥순이’라는 별명을 마치 주홍글씨처럼 갖게 된 마린은 잊혀질 만하면 나오는 ‘밥순이’ 기사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녀는 연예인이 아니라 사진가로서의 길을 새롭게 가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여행자로서 막대한 부를 가진 소준은 그녀와 인연이 얽히게 되고 그녀의 처지를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즉 <내일 그대와>에는 마린이라는 여성이 타인들에 의해 규정되고 그것으로 고통받아온 삶을 벗어나 오롯이 자기 이름으로 서는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일종의 성장담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이야기 축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여행자인 소준이라는 판타지적 남성과 엮어지며 로맨틱 코미디 멜로의 색깔을 갖게 된다. 결국 여기서도 주목되는 건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 감정이고 그 화학작용이다. 그런데 <내일 그대와>가 가진 타임리프라는 장르적 장치는 자꾸만 그 장치가 가진 게임적인 재미로 드라마를 끌고 들어간다. 생각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은 건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타임리프 장치가 가진 재미란 논리 게임에 가깝다.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데는 그 장치만의 룰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래의 죽음을 목도한 주인공이 그걸 막기 위해 뛰어드는 건 이 논리 게임에서의 승리를 통해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함이다. 소준에게 또 다른 시간여행자인 두식(조한철)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준다. 그건 조금 황당해 보이지만 마린과 결혼해 아이를 갖는 것이다. 타임리프라는 게임적 장치 역시 그 귀결에 마린과 소준의 멜로를 두고 있다는 것. 

이 정도면 <내일 그대와>의 구성은 꽤 정교하다고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타임리프의 신기함에 눈이 끌리지만 그 복잡한 논리게임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 대신 타임리프의 신기함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어떻게 엮어져 가고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에 주목할 뿐이다. 즉 거꾸로 말해 이야기가 지나치게 타임리프 설정의 논리게임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긴박감은 생길지 몰라도 애초 기대했던 멜로가 아닌 마치 SF물을 보는 듯한 느낌에 난감해질 수 있다. 

3회에서 소준은 미래의 사고 당일 그 장소로 가지만 사고를 막지 못한다. 그래서 미래의 마린은 물론이고 소준도 죽을 위기에 몰리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미래로 간 현재의 소준 또한 소멸시킬 위기를 만든다. 소준의 간절함은 느낄 수 있지만 이런 식의 타임리프 장르 본연의 논리게임 속으로 빠져 들어 가면 갈수록 시청자들은 그 낯선 이야기 전개에 복잡함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타임리프 장르가 흥미롭고, 그래서 최근 들어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모두 엄밀한 의미로 타임리프라 말하긴 어렵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걸들이 모두 타임리프로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가 많아지며 또 성공한 드라마도 있지만 그것이 온전히 이 장르의 묘미가 가진 힘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성공한 건 그 전생과 이생의 이야기를 왔다 갔다 하며 만들어내는 논리게임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깔린 운명적이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심지어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안겨줬기 때문이다. 

<내일 그대와>는 그래서 지나치게 타임리프 속으로 들어가면 어딘지 낯설어진다. 그 재미 속으로 빠지면 타임리프 장르가 주는 마니아적 열광은 얻을 수 있어도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는 어려워진다. 물론 그렇다고 그저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멜로를 하는 것도 밋밋하고 식상해질 것이다. 그러니 중요해지는 건 타임리프라는 신선한 설정을 통해 보편적인 멜로의 장르를 유지하는 균형이다. 거기에 <내일 그대와>의 성패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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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너의 이름은>의 공감에 간절해졌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에 대한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겨우 개봉한 지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애니메이션이고 그것도 우리 대중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런 흥행은 이례적인 느낌이다.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있어서 국가 간의 정서가 앞세워질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사진출처: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이런 국가 간의 정서를 떼놓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들여다보면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꿈을 통해 타인의 몸과 자신의 몸이 바뀐다는 판타지 설정은 사실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스위치> 같은 영화가 그런 소재를 다룬 바 있고, 우리에게도 <시크릿 가든>으로 익숙해진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해온 일련의 작품들이 가진 극도로 현실적이고 섬세한 감정들이 심지어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던 전작들을 염두에 놓고 보면 이런 판타지 설정은 조금은 과하게 다가온다. 몸과 몸이, 그것도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바뀌는 그 상황은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보면 너무 복잡하고 장황하다.

 

물론 그런 변화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만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중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를 본 관객이라면 너무나 스펙터클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게다. <언어의 정원> 같은 작품이 놀라웠던 건 사실 그 안에 담겨진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는 인물들의 감정표현이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더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속5센티미터>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같은 학교에서 지내던 두 아이가 어쩌다 서로 떨어져 멀리 전학을 가게 되고 서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다 어느 눈 오는 날 그 먼 거리를 달려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 여자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아이의 감정은 마치 문학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깊게 요동친다. 이런 내적인 감정 표현들이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리고 배경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섬세한 붓놀림에 의해 완성된다. 그의 작품은 실로 인물이 내면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그 인물이 서 있는 배경을 통해 말하는 것으로 놀라운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이런 점을 두고 보면 <너의 이름은>은 이런 내면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행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건 아마도 단편과 장편의 차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문학적인 그림들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이 우리네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그 나마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지점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의식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의 몸이 바뀌어진 것을 알게 된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그 과정은 사실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고 있는 스펙터클의 스토리보다 더 우리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 서로에 대한 공감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사적인 차원을 넘어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세월호 참사 같은 아픈 기억을 가진 우리에게 바로 이 부분은 특별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그 마지막 장면의 간절함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적인 사랑의 차원을 뛰어넘어 공적인 마음으로까지 간절하게 읊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우리 안의 말들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에게 이만큼 큰 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워버리려 하고 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고 기억 하겠다 다짐하게 되는 그 간절한 공감의 마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도호쿠 대지진을 겪으며 갖게 된 트라우마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고 한다. 그건 그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지금껏 들여다봤던 바로 그 방식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도 알고 있다. 바로 이 트라우마 역시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통해 겨우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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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대로>, 이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들

 

어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홍대의 한 카페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걸 듣고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 이건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눈 뜨면 늘 하는 것이 바로 그 말하고 듣는 일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 말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지만 때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위로나 위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하는대로(사진출처:JTBC)'

JTBC <말하는대로>는 아주 소소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건 마이크 하나면 충분하니까. 누군가 초대된 인물이 그 마이크를 들고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면 모여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 카메라는 그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그 공감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담담하고 소소한 프로그램은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재명 시장은 이미 유력한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지만, <말하는대로>에서는 그리 거창한 정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우리 현실이 그것을 상식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담히 전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또 그 국민 중 가장 미래에 대한 꿈을 펼칠 이들이 바로 청춘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그 청춘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좌절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고통받고 있는 청춘들이 직접 나서서 세상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샘 오취리는 방송에서 늘 보여주던 그 쾌활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의 화두는 우리’. 아프리카에서 온 이 청년은 물론 한국말이 여전히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으며 겪은 그 아픔이 있었지만, 또한 그 아픔을 보듬어주는 우리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한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드는 건 바로 이 우리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김윤아는 소소한 행복과 성공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이른바 소행성토크를 보여줬다. 그녀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 많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고, 바로 그런 결핍 때문에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창한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들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거기 앉아 있는 청중들로부터 그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하고 듣는 순간에 그들의 얼굴은 똑같이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혹자는 <말하는대로>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시국을 겪으면서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는대로>에 나온 연사들이 시국 이야기만을 줄창 늘어놨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자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정치는 말에 의해 구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시국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는 이른바 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큰 목소리와 거창한 이야기들이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서 흘러나와 세상을 농단한 현실이어서인지 우리는 오히려 작고 소소하지만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더욱 갈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거짓이 난무하는 연설과 담화가 쏟아지는 지금, <말하는대로>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진짜 말이 가진 가치를 드러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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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바>,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면면들

 

과연 불륜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불륜을 하나의 논제로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 그 내용보다 중요한 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이 제목이 주인공인 도현우(이선균)가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의 제목이라는 점이다. 그건 이 드라마가 불륜이란 소재를 가져와 하려는 이야기가 단지 불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한 사안을 보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들과 그들이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며 그래서 어떻게 현실을 바꿔가는 지가 주된 관심사라는 걸.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놓는 순간, 그 사적인 이야기는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도현우의 처지를 공감하거나 혹은 그의 아내를 비난하는 글들이 채워졌다. 그리고 그 글들은 어찌 보면 글을 쓴 사람들이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려 한강에 나가는 한 사내(우현)는 도현우에게 댓글로 한강에서 기다리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달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내(이병진)현장을 덮쳐서 다 엎어버리라고 댓글을 단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는 각자 남편과 아내 입장에서 댓글을 단다. 자신들의 상황을 도현우의 상황에 투영시키는 것.

 

하지만 아내가 집을 나가고 비로소 아내의 힘들었던 삶을 이해하게 된 도현우가 게시판에 아내를 용서했다고 올리자 상황은 갑자기 반전된다. 모두가 그걸 이해해줄 거라 믿었지만 그의 용서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이들도 있었던 것. 그 중 불륜패치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가 아내의 신상을 털었다며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나선다. 사적인 내용이라 생각했던 도현우의 이야기가 이제 그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공적인 사안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도현우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불륜패치의 신상공개를 막아보려 애쓴다.

 

공지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아내를 용서한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판에 계속 채워 넣던 그를 보며 견디지 못한 아내 정수연(송지효)이 자신은 비난받아도 되지만 남편과 아이만은 보호해달라고 애원하는 글을 올리자 오히려 분위기는 더 싸해진다. 불륜패치는 계속해서 협박을 하고 노트북 배터리가 나간 사이 도현우는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지만 그 때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게시판 사용자들이 모두 아내를 용서하겠습니다라는 글로 도배를 한 것.

 

게시판 사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불륜패치의 협박 상황에서 도현우-정수연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진심이었다. 게시판 사용자 중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용서하지 말라는 댓글을 남겼던 한 사내는 보안전문가였던 자신의 경력을 살려 해킹을 통해 불륜패치의 위치를 파악해내 도현우에게 알려준다. 해킹을 하는 와중에 아내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사내는 이 일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다.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그 사안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입장을 투영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 사안의 변화가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도 바뀌게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건 바로 이 드라마가 상기시키는 현 시국의 한 단면 때문이다. 어떤 잘못된 일들이 공적으로 공표되어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차원이 되었을 때 그건 어떻게 사과되어야 하고 또 용서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거기 담겨져 있다. 물론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를 하고 용서를 하고 공적으로도 그 사과와 용서를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해도 당사자들이 실제로 관계를 회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내에게 다가가던 도현우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떠올리며 뒷걸음질 치게 되는 상황은 용서가 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하물며 부부 간의 사적인 불륜 같은 사안에도 이처럼 사과와 용서가 쉽지 않을진대 국정운영같은 거대한 공적 사안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그래서 그 불륜이라는 소재를 똑 떼어놓고 바라보면 대단히 흥미진진한 현 시대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믿었던 사람이 엉뚱한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게 된 뒤의 그 분노와 허탈감이 어찌 쉽게 풀어질 수 있으랴.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의 진정한 사과와 쉽지 않은 용서의 이야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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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만큼 소통, <집밥> 콘서트의 의미

 

이제 시즌2를 조금씩 마무리하는 시간, 왜 하필 <집밥 백선생2>는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를 선택했을까. 사실 대단할 건 없다. 이미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때때로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왔던 건 오래된 전통에 해당하니 말이다. 거기에는 감사의 의미도 있지만 더 큰 건 소통의 의미다.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시청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의미.

 

'집밥 백선생2(사진출처:tvN)'

음식을 만들어가며 하는 요리 콘서트(?)’ 형식으로 준비된 집밥 콘서트에서는 그래서 백종원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했지만 간단한 차이 때문에 제 맛을 내지 못했다는 허경환의 이야기로 파기름을 볶는 노하우를 다시금 되새겨주고, 그걸로 즉석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중국식 파기름 국수를 내놓는다. 아마도 현장 스튜디오에는 파기름 냄새가 가득 채워져 관객들의 식욕을 자극했을 게다. 적은 양이지만 관객들까지 조금씩 맛을 보는 장면은 요리를 통한 공감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마침 집에서 <집밥 백선생>을 따라 만능춘장을 만들었지만 너무 짰다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똑같은 레시피로 직접 춘장을 볶아 내놓은 짜장면을 시식하게 하는 장면 역시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 프로그램이 가진 양방향 소통의 의미를 더해준다.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만든 짜장면을 관객들이 돌려가며 한 젓가락씩 맛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

 

사실 이런 풍경은 최근 먹방 쿡방이 많이 등장하면서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과거 음식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달라진 풍경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과거의 음식 프로그램들이란 대체로 음식의 전문가라는 이들이 나와 자신의 레시피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음식 프로그램을 보라. 제자들과 함께 만들고 서로 맛을 보며 품평하고 나아가 시청자들이 참여하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만든다.

 

요리 프로그램이 그 특성상 시청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직접 시연해보는 것까지 이어진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의 진가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스트로 나온 김성은이 남편을 위해 요리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지만 너무 재료가 어렵고 방법도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거기에 그걸 시연할 대상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걸 의미한다. <집밥 백선생>은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체할 방법을 알려주고, 복잡할 수 있는 조리 방법을 보다 간단하게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요리를 모르던 사람들도 참여하게 만들었다.

 

항상 성공하는 요리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때로는 실패하는 사례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과의 공감의 폭을 넓힌 것도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요리 무식자들이 굳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뜻은 그런 것이다. 그들의 실패사례가 바로 일반 시청자들의 실패사례를 대변해주고 그 원인을 파악해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저 일방적으로 전문적인 레시피를 던져주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닌가.

 

<집밥 백선생2>가 그 시즌의 마무리에 즈음에 집밥 콘서트를 통해 보여준 건 바로 소통의 가치다. 제 아무리 좋은 요리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걸 배우고 실행할 이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런 프로그램은 외면받기 마련이다. 이제 소통공감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시대의 덕목이 되고 있다. 요즘 같은 불통의 시대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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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가 조명한 광화문 집회, 거기서 발견한 희망

 

이번 최순실 게이트JTBC <뉴스룸>을 비롯해 <썰전>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주말 저녁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목받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최순실 게이트특집으로 1편에서는 최순실 라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먹잇감으로 작업을 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한데 이어, 2편에서는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을 때 터졌던 영남대 사태와 유사한 평행이론을 보여준다는 걸 보여줬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사진출처:JTBC)'

3편에서는 최순실 일가의 재산축적 미스테리를 추적하기에 앞서 지난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집회현장을 직접 찾은 이규연의 시선으로 그 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규연이 거기서 발견한 건 역설적이게도 희망이었다. 분노로 광화문 광장에 나온 것이지만 집회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김제동이 표현한 대로 일등 국민의 면모 그대로였다.

 

묵묵히 바닥에 남겨진 쓰레기를 줍는 한 청년에게 왜 이걸 하고 있냐고 이규연이 묻자, 그는 늦게 도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몰린 집회 현장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질서정연한 모습이었고, 집회가 끝나고 난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아이들과 손잡고 나온 부모들은 저마다 아이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나왔다고 말했고, 오랜 만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온 딸은 이런 시위 현장에 처음이라며 모두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그 곳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던 세대 갈등은 보이지 않았다. 이규연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그토록 강조했던 세대통합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를 통해 분출된 민심들에 의해 통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규연이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은 달라진 집회 문화였다. 과거 876.10 항쟁 때만 해도 집회가 끝나고 난 거리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광화문에서는 시민들 스스로가 나서 비폭력을 외치는 모습이 보여 졌다. 한 격앙된 시민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자 시민과 전경이 한 목소리로 비폭력을 외치는 장면도 연출됐다.

 

한 고등학생은 시민들과 대치하고 서 있는 전경에게 음료수를 놓고 가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규연이 따라가 왜 우느냐고 묻자, “저 분들도 저러고 싶지 않을 거 아니냐며 전경의 입장을 이해하는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한 아주머니는 전경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대통령 잘못 만나 우리 아들들이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목소리를 낼 공간을 내준다면 굳이 서로 완력을 쓰고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규연의 말대로 평화는 힘이 아니라 소통으로 유지됨을 광화문은 알고 있었다는 것. 이규연은 광화문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당당한 미래세대세대공감의 현장”, “풍자로 승화시킨 울분성숙한 시민의식을 봤다며 그것은 새로운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가장 많은 비판을 해온 대목이 바로 불통이라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적인 내용 역시 바로 이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소통해야 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소통하지 말아야할 사람들과 소통한 데서 비롯된 비극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낸 근본적이 이유라는 것. 그래서 이번 광화문의 촛불은 그동안 막혀 있던 이 소통의 욕망이 분출되어 나온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양상이 비폭력으로 소통공감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 그건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는 걸 국민들이 확인해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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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답답한 현실 속 힐링 타임이 된 까닭

 

나라 안팎을 시끌시끌하게 만든 현실이 못내 답답했던 걸까. tvN <삼시세끼> 어촌편3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진다. 첫 회부터 11%대의 높은 시청률을 찍은 후 순항하고 있고 방송이 끝나고 나면 그 대단할 것 없는 이서진, 에릭, 윤균상의 득량도에서 먹은 몇 끼가 화제가 된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런 행보는 이례적이다. 전체적으로 시사와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치솟은데 반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 같은 시국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허허롭게 웃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시사 풍자가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들은 예외지만.

 

하지만 알다시피 <삼시세끼>에는 시사 풍자 같은 요소가 들어 있지 않고 또 들어갈 여지도 별로 없다. 사실 하는 일도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득량도에 들어간 이서진, 에릭, 윤균상이 세 끼 밥을 해먹는 것이 고작이니까.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요즘 같은 시국에 특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갑갑하고 화가 나니 이들과는 동 떨어진 곳에서 잠시 멈춰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일이 그 자체로 힐링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정성에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어내는 에릭, 투덜대면서도 뒤에서 그를 도우며 무엇보다 그가 만들어낸 음식을 맛나게 먹는 이서진 그리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시켜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자발적인 노예윤균상. 이들이 득량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삶의 본질 같은 걸 드러낸다.

 

결국 하루 세 끼 챙겨먹으며 사는 건 누구나 다 같다는 것. TV 뉴스에서는 입만 열면 수십 억 수 백 억이 옆집 개 이름처럼 나오고, 그걸 좀 더 갖겠다고 갖가지 부정과 청탁과 갑질을 한 정황들이 서민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지만, <삼시세끼>는 정반대로 그런 사람들의 행태가 삶의 본질에서는 한참 벗어난 것이라는 걸 에둘러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이 양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을 가진 득량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넉넉한 가슴을 내어준다. 에릭이나 윤균상처럼 바다가 낯선 그들에게도 때 되면 갯벌을 열어 누구나 쉽게 채취해갈 수 있는 양식을 내놓는다. ‘키조개의 법칙따위는 없을 정도로 어디서나 쉽게 키조개를 채취할 수 있고, 운 좋은 날에는 갯벌 여기저기서 그저 주우면 될 정도로 많은 백합을 얻을 수도 있다.

 

그걸 주워다가 뚝딱 뚝딱 관자삼합을 만들어 먹는 이 섬의 세 사람을 보다보면 그 단순하고 소박한 한 끼가 그토록 넉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삼시세끼>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있지만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봐야 다 똑같은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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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에 대한 공감, <질투> 조정석과 <이번 주> 이선균

 

JTBC 새로운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제목이 말해주듯 아내의 바람을 의심하는 남편의 찌질한 시선이 담긴 드라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온 문자메시지에서 호텔에서 만나자는 내용을 본 도현우(이선균)는 아내 정수연(송지효)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지고 그 문자메시지에 담겨진 호텔에서 만나자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진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10년 차 별 볼일 없는 외주프로덕션 PD로 생활해오고 있는 도현우는 마침 불륜 남녀를 소재로 아이템을 기획하면서 회의에서 나오는 말들조차 참아내기 어렵게 된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기를 내 아내에게 그걸 캐묻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글로 조언을 구하게 된다.

 

2007년 후지TV에서 방영됐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어딘지 우리가 봐왔던 불륜 소재의 드라마와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내의 불륜 징후를 알게 되고 전전긍긍하는 남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륜을 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나, 또 불륜에 대한 복수나 아픔을 담는 이야기하고도 다르다. 특히 남편의 불륜이 아닌 아내의 불륜을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물론 이런 도발적인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면서 우연히 그 사연을 게시판에 올리게 되고 그걸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랑과 결혼 같은 부부관계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를 발견하는 쪽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어찌 보면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관계는 익숙해지는 만큼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배우자가 자신에게 대단한 존재인가를 깜박 잊고 살아간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여기에 일종의 위기상황을 집어넣어 그 반응을 통해 잊고 있던 관계를 다시금 확인시키고 회복시키려는 실험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이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도현우의 찌질한 반응들이다. 아내를 의심하고 괜스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흥신소를 찾아가 증거를 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 이 남자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공감이 간다. 아내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지도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이를테면 문자를 주고받는)을 보이면 괜스레 주변을 빙빙 돌며 유도 심문하듯 질문을 던지는 남자. 그러면서도 결혼기념일에 모든 걸 털어내려 선물을 준비하는 남자에게서 어떤 따뜻한 인간미 같은 게 느껴진다.

 

멋지게 포장하기 보다는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떤 면에서는 찌질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공감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갖고 왔지만 어떤 따뜻함 같은 게 느껴지고, 특히 이 남자 도현우가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는 찌질한 남자들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조정석)이나 MBC <쇼핑왕 루이>의 루이(서인국) 같은 캐릭터들이 대표적인 찌질한 남자들일 것이다. 잘난 척 하기보다는 떼쓰고 잘 삐치고 징징대는 남자. 과거 그 많던 멋진 실장님들이나 현대판 왕자님들하고는 너무 다른 남성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도현우 역시 바로 그런 캐릭터들 중 하나다.

 

그런데 도대체 그 잘난 왕자님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찌질한 남자들이 차지하게 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현실을 알게 된 시청자들에게 왕자님 같은 막연한 판타지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그보다는 조금 찌질해도 그것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나아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런 현실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커져 있다는 걸 이들 캐릭터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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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길>이 불륜을 다루는 특별한 방식

 

어느 낯선 도시에서 잠깐 3,40분 정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이 스르르 사라지고 인생 별거 있나 잠시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 3,40분 같아. 도우씨 보고 있으면.”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최수아(김하늘)가 하는 이 한 마디의 대사는 <공항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도우(이상윤)와 함께 있으면 좋다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기혼자들끼리 마음이 오고간다는 걸 뜻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륜의 정서를 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잠깐 동안의 일탈이다. 늘 가던 길에서 잠깐 멈춰서거나 어느 날 살짝 자신도 모르게 다른 길을 걷다가 느끼는 잠시 동안의 일탈. 고작 3,40분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일탈이 어쩌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그런 경험.

 

이 드라마의 제목이 <공항 가는 길>인 것은 그래서 단순히 그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났다는 걸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우리가 공항을 갈 때 느끼는 그 설렘과 낯섦 그리고 여행의 의미만큼 더해지는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이나 일탈의 느낌에서 오는 살짝 현실을 벗어난 듯한 그 해방감 같은 정서를 이 제목은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다고 함부로 일탈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인연이 어느 길에서 갑자기 등장했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이나 떨림 같은 세세한 감정들을 잡아낸다. “공항, , 새벽. 몇 시간 전인데 벌써 까마득하다는 최수아의 말은 공항에서 서도우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에 대해 그녀가 현실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서도우 역시 딸의 죽음으로 그 유해를 갖고 돌아올 때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최수아와의 공항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비가 내리고 그래서 잠시 딸의 유해가 들어있는 가방을 최수아에게 맡긴 채 차를 끌고 오는 서도우의 눈에 마치 자신의 딸이라도 되는 듯 그 가방을 꼭 껴안고 있는 그녀에게서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건 어떤 따뜻함과 위로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런 좋은 감정들은 조금씩 쌓여가며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만들어낸다. 딸의 유해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사진을 붙이던 서도우가 어린 나이에 해외생활을 했던 딸 때문에 어렸을 적 사진 밖에 없는 걸 확인했을 때, 마침 그녀와 함께 살았던 자신의 딸이 갖고 있던 사진을 발견한 최수아가 그걸 서도우에게 보내주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인연이 어떻게 이어져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은 정성스럽게 이어져 있어요. 한 올 한 올. 인연이란 건 소중한 겁니다.” 서도우의 어머니인 고은희(예수정)는 도우에게 딸의 유품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하라며 조각보를 내민다. 그녀는 인간문화재 매듭장이다. 매듭은 인연의 또 다른 상징이다. <공항 가는 길>의 관계들은 그래서 이 고은희가 말하는 것처럼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이어져 있다.

 

마치 그 잠깐 동안의 일탈이 주는 좋은 감정. 서도우가 그 3,40분 같다고 고백한 최수아에게 그는 생애 최고의 찬사예요.”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저 좋아하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나 휴식 같은 특별한 시간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인간적인 뿌듯함 같은 느낌이 들어가 있다.

 

최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서도우의 집으로 향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위스키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데 그 독한 위스키의 느낌에서 기내 일식을 떠올린다. 마치 거대한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 강렬함. 하지만 그 느낌은 타버릴 것 같은데 멀쩡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아마도 불륜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공항 가는 길>이 만들어내는 정서일 게다. ‘온 몸이 타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렬하지만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얽혀진 인연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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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서울역>, <부산행>보다 더 독하다

 

<부산행>에서 시작해 <터널>로 이어지고 <서울역>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만 같다. 올 여름 영화 시장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다름 아닌 재난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좀비 영화로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건 기적 같은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떠올려보면 왜 이런 신드롬이 일어났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좀비만도 못한 우리네 현실에 대한 서민들의 공감이다.

 

사진출처:애니메이션<서울역>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서울역><부산행>의 프리퀄의 성격을 갖지만 훨씬 더 독한 현실 비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아마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본래 연상호 감독 자신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실의 디스토피아를 가감 없이 그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연상호 감독은 이번 <서울역>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의 현실이 어떤 지옥을 만들고 있는가를 여실 없이 드러내주었다.

 

서울역의 한 켠을 채우고 있는 노숙자 중 한 사람이 좀비의 시작점이라는 건 이 애니메이션이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한다. 그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산행>은 막연하게나마 부산이라는 목적지가 제시되지만(물론 그게 해결점은 아니겠지만) <서울역>은 애초에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섬뜩하다. 그들은 좀비들이 출몰하는 서울역 주변을 도망 다니며 헤매다 좀비가 되거나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집 나온 소녀 혜선은 남자친구인 기웅과 동거하며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는 그런 처지에 놓인 주인공이다. 어느 날 기웅이 인터넷에 하룻밤 파트너를 찾는다며 혜선의 사진을 올리고 그걸 본 아빠 석규가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서울역 근처에서 그녀를 찾아다니는 게 이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줄거리보다 더 흥미로운 건 좀비들이 출몰하는 상황들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네 현실을 아프게도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좀비들에 쫓겨 서울역 근처를 탈출하려 하지만 이미 전경들에 의해 봉쇄되어 시위대 취급을 받게 된 생존자들 속에서 갑자기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한 사내가 나서는 장면이 그렇다. “난 나라를 위해 일한 애국자야. 아마도 빨갱이 놈들이 저지른 짓 같은데 난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과 같이 죽을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외치는 사내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해 섬뜩하게 다가온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지하철 철로를 걸어가던 혜선이 같이 탈출한 노숙자에게 아빠가 절 찾고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울며 말하자 그 노숙자가 난 갈 집이 없어.”라고 울먹이는 장면이나, 마지막 시퀀스에 혜선이 종착점처럼 당도한 곳이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라는 것도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돌아갈 집이 없는 그들에게 모델하우스는 진짜 집이 아니지만 너무나 환상적인 공간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곳은 결코 그들의 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결말이지만.

 

<서울역>은 그래서 비극적인 우리네 삶의 밑바닥을 그려내고 거기서 현실의 비정함을 끝까지 담아내는 결코 해피엔딩 따위를 기대하게 만들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구마만 만 개 먹는 것 같은 무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네 삶이 좀비만도 못하다는 걸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외의 통쾌함을 주는 면이 있다. <부산행>보다 더 독하고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우리네 답답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워질 수 있는 작품, 바로 <서울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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