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둘레길을 걸으며 '1박2일'은 무엇을 얻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1박2일'(사진출처:KBS)

장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는 높은 인기만큼 위기설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주말 버라이어티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1박2일'도 예외는 아니다.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복불복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조금씩 고개를 들면서 위기설은 솔솔 피어났다. 프로그램에 어떤 멋과 다큐적인 베이스를 깔아줬던 김C의 하차와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투입된 김종민의 부진, 이수근의 빵빵 터지는 상황극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가져오는 '1박2일' 특유의 자연스러운 웃음의 실종, 제기된 병역기피 혐의로 잔뜩 위축된 MC몽... 이즈음에 터진 이수근이 차 밑으로 들어가 라면을 먹는 장면이 제기한 안전불감증 논란 같은 것들은 '1박2일'의 위기를 실제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 그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1박2일'이 꺼내든 방식은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 드러내는 것이었다. 모든 걸 인정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지리산 둘레길을 가다' 편에서 강호동은 오프닝에서 이례적으로 '1박2일'의 이 위기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승기는 모든 영혼이 드라마에 가있고, 은지원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으며, MC몽은 차마 방송에서 얘기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고, 김종민은 묵언수행중이라는 이야기. 그러니 말을 할 때마다 빵빵 터뜨려야 한다는 이수근 역시 위기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것.

'1박2일'의 자기반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해외연수 프로그램으로 영국에 간 이명한 PD를 대신해 들어온 이동희 PD는 그 첫 마디에서 "많이 고여 있고 젖어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많은 개혁'이 있을 거라고 예고했다. 지금껏 제기된 수많은 위기설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 같은 자세는 '1박2일'이 그토록 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1박2일'은 지금껏 그것이 설사 오해에서 비롯된 억울한 논란이라고 하더라도 부정한다거나 외면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시청자들의 관심의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던 것. 이 소통의 노력은 '1박2일'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1박2일'이 '지리산 둘레길' 특집을 통해 보여준 것은 본래 '1박2일'이 가졌던 초심의 복원이다. 다섯 개의 코스로 나뉘어 그 아름다운 풍광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담아내는 이른바 '다큐' 형식의 차용은 '1박2일' 본연의 여행 버라이어티를 다시 살려냈다. '1박2일'이 처한 가장 큰 위기는 바로 본래 취지인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수적인 자극들, 예를 들면 복불복 같은 게임에 자꾸 몰입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1박2일'이 보여준 여행은 대중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왔다. '저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하룻밤의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감성이 거기에는 담겨져 있었다.

물론 복불복 같은 게임은 프로그램의 감초로서 없으면 안되는 자극이지만, 거기에 몰입하다보면 더 큰 것을 잃게 되기 십상이다. 둘레길을 걸으며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그 체험의 신산함, 헬기에서 찍어 보여주는 스펙터클한 영상에서부터, 스틸 사진으로 잡혀지는 순간의 아름다운 풍광, 게다가 오랜만에 듣게된 김C의 정감어린 내레이션까지. 각각 나뉘어진 컨셉트는 복불복을 지우고 대신 각자 지금껏 '1박2일'을 해왔던 자신들을 회고하고 반추하는 시간을 줌으로써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게 해주었다.

이것은 제기된 문제들을 소통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1박2일' 특유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주는 위기감은 분명하지만, '1박2일'을 진짜 위기에 몰아넣는 것은 본래 취지인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잃는 것이라고 볼 때, 그 해법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역시 '여행'을 복원시키는 것일 것이다. '1박2일'을 보면서 다시 그 여행이 주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지금 '1박2일'은 다시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1264 관련글 쓰기

'세바퀴', 가희 논란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서

초심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제작진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세바퀴'의 가희 논란에서 정작 가희의 잘못은 없다. 잘못은 초심을 잃은 제작진에게 있다. '세바퀴'라 불리지만 이 프로그램은 '세상을 바꾸는 퀴즈'가 본래 이름이다. 뭐가 그리 대단한 퀴즈길래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일까. 중요한 건 퀴즈 자체가 아니라, 퀴즈에 참여하는 신구 세대들과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그 과정이다. 그 과정은 실로 세상을 바꿀만했다. 퀴즈를 풀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신세대들과 중장년층이 서로 어우러지는 그 광경.

선배들은 신세대들의 문화를 잘 몰라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신세대들 또한 선배들 시대의 문화를 리바이벌해주는 존경의 태도를 유지했다. '일밤'의 한 파트로 있을 때는 이 신구세대의 균형이 잘 이루어졌다. 아마도 그 시간대는 신구세대 모두를 배려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밤'에서 빠져나와 몇 차례 편성표의 자리를 옮겨 다니다 작금의 밤 시간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바퀴'는 조금씩 변한 게 사실이다.

내적인 이야기보다는 외모에 치중하는 경향도 생겼다. 젊은 남자 아이돌에게 복근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보여주면 일제히 환호하는 아줌마들의 모습, 그리고 때로는 과감하게 복근을 만지거나 껴안는 장면들은 물론 호감의 표시이거나 웃음을 주기 위한 과장일 테지만, 이런 장면이 연출될 때 유의해야할 점은 거기 세워지는 젊은 남성 혹은 여성이 이 당혹스런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조권 같은 이미 예능감이 충만한 아이돌이라면 오히려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상황을 주도해나간다. 이럴 경우, 성희롱 같은 느낌은 상쇄된다. 물론 이런 연출이 잘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어떤 균형이 유지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균형이 깨졌을 때가 문제다.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젊은 아이돌들을 세워놓고 춤을 추게 하고 복근을 보여 달라고 조르는데, 그 행동이 어떤 강요 같은 느낌을 줄 때, 게다가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이런 느낌으로만 흐를 때, 그건 당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까지 불편하게 된다. 문제가 생겼던 가희가 출연했던 '세바퀴'에서는 특히 그런 불균형이 심했다. 이날 출연한 줄리엔 강을 놓고 벌어지는 아줌마들의 토크와 행동들이 특히 그랬다. 박미선이 계속 줄리엔 강이 "잘생겼다"고 연발하자, 이경실은 그래서 미리 "침을 발랐다"고 표현했으며(이때 줄리엔 강은 그 말뜻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뜻이 '뽀뽀'를 뜻하는 거냐는 줄리엔 강의 질문에 이경실은 "뽀뽀 원해?"하고 다시 물었다. 결국 줄리엔 강은 "허그를 잘 한다"는 이휘재의 말에 따라, 아줌마들의 애정 공세에 일렬로 죽 늘어선 그녀들을 하나하나 껴안아줘야 했다.

가희가 나왔을 때는 조형기가 자신의 과도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것은 지금껏 조형기가 가진 캐릭터에 비춰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외모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조형기의 애정 역시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급기야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 흘러나왔고, '자기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싫다"는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그리고 역시 외모에 대한 비교가 이어졌다. 그 이상형에 맞는 사람은 줄리엔 강밖에 없다며, 그와 그녀를 나란히 세우는 것. 그 후에 예정된 대로, 가희가 섹시한 춤을 추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김구라가 넋이 나간 모습을 연출했다.

'세바퀴'의 외모에 대한 치중은 결국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신구 세대 간의 균형있는 접근이 아니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젊은 세대들을 세워놓고 그 성적인 뉘앙스(외모로 표현되는)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상황이 만들어내는 문제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 희롱 같은 불편한 장면들이 연출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아저씨 아줌마들로 표상되는 세대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아저씨 아줌마들은 다 그래)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런 차원으로 넘어가면 애초에 '세바퀴'가 의도했던 세대 간의 소통은 요원해진다. 결국 구세대들의 젊은 세대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세바퀴'의 가희 논란이 불거진 것은 바로 그 키 얘기 자체가 민감해서라기보다는, '세바퀴'가 계속 의도적으로 연출해낸 이런 자극적인 구도 탓이 더 크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상형을 물어보는데, 외모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세바퀴'의 문제는 '가희 논란'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초심과는 멀리 와 버린 작금의 프로그램 전반의 문제다. 아무리 자정에 가까운 성인들의 시간대라고는 하지만, 너무 노골적인 외모나 성적인 접근은 오히려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땅의 모든 중년들이 젊은 외모 앞에 노골적인 것처럼 그려지는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신구세대가 균형 잡혀 있던 그 때의 초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1234 관련글 쓰기

‘동이’, 그 깨방정 숙종이 가진 의미

"여깁니다. 게중 가장 낮은 곳입니다. 냉큼 넘으세요." 동이(한효주)는 범인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숙종(지진희)에게 담을 넘으라고 한다. 하지만 "난 담을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숙종. 그런 숙종에게 변복을 한 그가 왕인 줄 모르는 동이는 "아니 다른 나으리께서는 글공부도 하기 싫어 담을 넘고 다니시는데, 나린 대체 뭘 하십니까?“하고 채근한다. 그러자 숙종은 ”내가 있는 곳은 담을 넘기엔 너무 높았다“고 말한다. 결국 ”담은 제가 넘을 테니 잠시 엎드려 주십시오“하고 청하고, 동이는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다.

‘동이’에 등장한 이 짧은 에피소드는 이 사극의 초반 부진을 털어내며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왕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보던 근엄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이와 함께 도망치다가 이내 “달려본 적이 없다”고 주저앉고, 칼을 들고는 “배우긴 배웠으되 실전은 처음이다”고 말하는 왕. 그 모습에 ‘허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항간에는 이 깨방정(?) 왕의 모습이 지나치게 희화화되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

하지만 이 동이가 감히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낮게 웅크린 왕의 모습과 ‘담을 넘는다’는 그 행위가 마치 ‘왕과 낮은 자들과의 소통’으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이 덕분에 사건을 해결한 왕은 그녀가 일하는 장악원에 어식(御食)을 내리고 동이에게 상을 내린다. 왕과 노비가 함께 일을 해결하고 왕이 내린 상에 장악원 사람들이 함께 포상 받는 이 장면을 통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슴 한 구석에 바로 이런 ‘소통의 욕구’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숙종은 훗날 장희빈이 될 장옥정(이소연)을 부를 때, “옥정!”하고 이름을 부른다. 이것 역시 여타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왕은 옥정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면서 “이건 절대 풍(거짓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날 동이에게서 배운 서민들이 쓰는 ‘풍’이란 말을 옥정에게 써먹은 것이다. 그러자 옥정은 방긋 웃으며 저잣거리에서 쓰는 말을 어떻게 왕이 아시냐고 반색한다. 왕의 낮은 자들과 소통하려는 욕구를 ‘풍’이라는 말 하나로 보여준 것이다.

사실 왕의 깨방정은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바로 이러한 소통의 몸짓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껏 낮아지고 한껏 소탈해진 왕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동이와 왕의 로맨스가 단지 사랑놀음이 아니라 이러한 통(通)에 대한 사극의 메시지로 확장해낼 수 있다. 이것은 ‘동이’가 단순한 사극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가능성이다.

여기에 이병훈 사극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명랑한 분위기’는 이러한 통(通)하는 세상에 대한 판타지마저 꿈꾸게 만든다. 왕이 서민과 함께 고개를 맞대고 똑같은 눈높이로 얘기하는 것. 그것은 때론 우스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숙종의 등을 밟고 동이가 담을 넘는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쉬 찾기 힘든 그 통(通)하는 세상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1158 관련글 쓰기

낮 시간에 영화관에 가는 마음은 조금은 쓸쓸합니다. 사실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와의 소통과 공감을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가 두 시간 정도라도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울고 한다는 그 일체된 행위의 즐거움. 앞으로 어쩌면 영화관은 그런 곳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두서없이 이런 얘길 하는 건, '의형제'라는 영화를 보면서 문득 송강호가 참 쓸쓸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그 영화 속에서의 송강호가 그런 것이지만, 사실 배우 송강호도 그런 면이 있죠. 뭐 송강호가 그렇게 멋지게 폼을 잡는 걸 저는 영화 속에서 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넘버3'의 그 정서가 다른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왔죠. 그는 조금은 빈 듯 툭툭 대사를 던지고, 엉뚱하게도 진지한 순간에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그가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이상한 놈으로 캐릭터지어져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아한 세계'의 조폭의 상스러움과 가장의 성스러움을 동시에 품는 그런 캐릭터가 어찌 이상하지 않을까요. '괴물'이나 '박쥐' 같은 어찌 보면 기괴할 수 있는 영화 속에서도 그는 절대 폼을 잡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서민적인, 혹은 속물적인 속내를 슬쩍 드러냄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죠.

'의형제'에서의 송강호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정원 요원이지만 어찌보면 강력계 형사 같은 인상을 주는 이한규(송강호)는 이 팽팽한 긴장감을 갖게 만드는 북한 공작원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도 바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유지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가 나오는 영화에는 그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어찌 해 서로의 신분을 속인 채 같이 살게된 북한 공작원 송지원(강동원)이 닭을 잡아 요리를 해줄 때, "이거 누가 해주는 밥 정말 오랜만이구만"하고 송강호가 툭 던지는 대사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아이리스' 같이 폼나는 것이 아니라 '의형제'라는 조금은 구닥다리 냄새를 풍기는 지 단박에 알려주죠.

이 영화는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또 그 시스템들의 대결 속에서 희생되고 피흘려야 하는 개인들의 아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개인들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싸울 이유가 없는 이들을 싸우게 합니다. 결국 '의형제'가 보여주는 것도 이 소통의 문제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혼자 대낮에 영화관에 간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개인들이 시스템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형'이라고 부를 때, 슬쩍 뜨거워지는 가슴에 화들짝 놀라 괜스레 주변을 흘끔흘끔 돌아본 것은 아마도 거기에 나와 똑같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를 확인하고픈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송강호는 늘 그렇게 서민적인 얼굴로 자신을 한껏 낮추며 때론 속물적으로 느껴질 만큼 폼잡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보통 연기자들이 자신의 주변에 어떤 타인과의 선을 그어놓고 적당한 거리에서 폼을 잡는 것과는 사뭇 다르죠. 그래서 사람들은 송강호에게서 어떤 정 같은 것을 느끼나 봅니다. 이것은 어쩌면 송강호가 갖고 있는 다른 연기자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장점일 것입니다. 한없이 긴장을 뺀 상태. 타석에 들어가기 전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 그래서 편안한 상태.

그렇게 편안해서인지 그 무장해제에서 웬지 우리네 아저씨들의 쓸쓸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뭔가 산전수전 다 겪고 그래서 "인생 뭐 있냐"는 식의 편안함 속에 느껴지는 쓸쓸함. 이건 아마도 낮에 영화관에 간 영향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의형제'라는 영화 속에서 송강호의 쓸쓸함을 느낀 것은 분명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정말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송강호의 영화 속 모습들이 편린처럼 다 들어가 있어, 마치 그의 필모그라피를 읽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주니까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1104 관련글 쓰기

  1. [의형제] 영화도 배우들의 연기도 메시지도 전부 좋았다

    Tracked from 드라마작가지망생의 S  삭제

        동상이몽. 한지붕 두 가족. 목적이 있는 만남. 자신만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착각. 의심과 배신과 의리와 정.   <의형제> 영화도 배우들의 연기도 메시지도 전부 너무 좋았다.   송강호의 연기야 뭐 말할 필요 있을까. 진짜 살아있는 배우. 삶의 냄새가 스크린 밖으로 생동감 넘치게 튀어나온다. 강동

    2010/02/05 09:29
  2. vfyyahdt

    Tracked from vfyyahdt  삭제

    vfyyahdt

    2010/03/02 21:41

소통의 쾌감에 충실한 영화, '하모니'

‘아바타’가 전 세계 영화시장에 던진 파장은 쓰나미급이다. ‘타이타닉’이 세웠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고, 우리나라에서 외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러고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아 항간에는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인 ‘괴물’의 기록까지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바타’의 질주를 의식한 나머지 3D로만 개봉하는 제재를 가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니 우리네 영화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바타’의 쓰나미에 몇몇 우리 영화들은 흔적 없이 쓸려 내려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영화들이 차례로 개봉되면서 조금씩 ‘아바타’의 영향권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하모니’다. 이 작품은 그다지 언론을 통한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았지만 특유의 스토리가 갖는 입소문으로 대중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도대체 ‘아바타’와는 다른 그 무엇이 ‘하모니’를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하모니’는 여러 모로 보나 작년 최고의 흥행작인 ‘해운대’를 닮았다. 윤제균 감독에 의해 제작된 이 영화는 먼저 각본이 ‘해운대’를 쓴 이승연과 윤제균에 의해 만들어졌고, 감독도 윤제균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강대규가 메가폰을 잡았다. 물론 ‘해운대’처럼 쓰나미가 몰려오는 거대한 블록버스터는 없지만, ‘하모니’는 ‘해운대’의 그 쓰나미를 빼고는 거의 비슷한 톤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감방에 수감된 여죄수들. 그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배치되어 제각각의 사연들을 들려주다가, 가족들을 앞에 둔 무대 위에 올라 하나로 묶여지는 하모니로 울려퍼지는 것은, ‘해운대’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쓰나미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묶여 울림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즉 ‘하모니’에서의 쓰나미는 바로 그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쏟아내는 감동의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쓰나미인 셈이다.

‘해운대’가 웃기고 울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보다는 감정이입의 블록버스터에 더 치중했던 것처럼, ‘하모니’도 마찬가지다. ‘하모니’의 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관객들을 웃기지만, 한 꺼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순간적인 증오심에 죄를 짓고 감방에 들어왔지만, 그렇게 모여 한 방에 살아가는 그들은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그들이 더 끈끈해지는 것은 이 각자의 사연 속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린 가족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모니’는 이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하모니라는 점에서 공감과 소통의 쾌감을 주는 영화다.

‘하모니’를 굳이 ‘아바타’ 같은 작품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주는 감정의 질주가 여타의 멜로드라마나 휴먼드라마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하모니’가 주는 감정이입은 저 '해운대'가 그랬던 것처럼 울다가도 웃음을, 또 웃다가고 울음을 터뜨리게 할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 머뭇거리거나 하는 지점을 이 영화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장르와 영화가 주는 즐거움(웃음뿐만 아니라 눈물까지)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충실함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하모니’를 우리는 굳이 ‘작품’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또 혹자는 이를 ‘해운대’에서처럼 신파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기능적인 측면을 두고 말한다면 ‘하모니’는 ‘아바타’처럼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갖는 공감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기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라면, ‘하모니’는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호소하는 감정이입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는 물론 현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모니’ 같은 우리 이야기가 갖는 강점들이다. ‘아바타’에 대처하는 ‘하모니’의 자세를 통해, ‘아바타’가 가진 쿨한 볼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감정을 이끌어내는 정서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의 본질이 어떤 소통의 쾌감이라고 한다면, '하모니'는 바로 그 쾌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1100 관련글 쓰기

'무릎팍 도사'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

"로스트로포비치, 미샤 마이스키..." 줄줄이 장한나에게 음악을 사사했던 세계적인 스승들의 이름들을 읽어나가던 건방진 도사 유세윤. 하지만 그는 그런 세계적인 스승들의 이름조차 자신은 잘 모른다며 심지어 "그래서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무릎팍 도사'의 PD들 이름을 대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분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다. 하지만 바로 이 농담에 '무릎팍 도사'만의 화법이 숨어있다. 어떤 계층이나 어떤 타 분야의 인물들, 특히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 정도의 명사들이 오더라도, 거의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려는 노력. 이것이 '무릎팍 도사'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다.

장한나라는 세계적인 첼리스트이자, 음악가를 앞에 앉혀두고 '무릎팍 도사'가 제 눈높이에서 맘껏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MC들의 캐릭터에서 나온다. 무릎팍 도사, 강호동은 '무식한' 콘셉트의 캐릭터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세계적인 스승들의 사사를 받는 장한나에게 "레슨비는 얼마나 내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식함이 캐릭터의 콘셉트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질문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한다. 토크쇼는 답변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웃음을 주는 포인트는 주로 질문을 통해 제시되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명사들에게 던져지는 가장 낮은 수준의 질문은 그러나 그저 웃음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 낮은 수준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장한나의 모습은, 우리가 연주회장에서 보았던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 즉 보통사람과 똑같은 진솔한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이것은 권위의 해체가 주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막연히 갖고 있던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고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클래식이라는 어딘지 특정 부류들만 향유할 것 같은 문화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소통의 물꼬를 트게 해준다. 악보를 펼쳐놓고 장한나와 무릎팍 도사가 함께 입으로 연주하는 모습은 이런 동질감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한 편 나머지 두 명의 MC들도 저마다의 기능을 갖고 있다. 건방진 도사 유세윤은 건방지다는 콘셉트 외에 조사하고 준비하는 MC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이것은 메인 MC인 무릎팍 도사의 '무식함'을 보조하는 것이면서, 토크쇼의 정보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크 콘셉트가 건방짐이기 때문에 정보의 전달은 뒤틀리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건방진 도사가 하려는 얘기의 뉘앙스는 '내가 당신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방지고 도발적인 얘기들이지만 캐릭터 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웃음으로 승화되고 결국 명사와의 동등한 눈높이를 만든다.

올밴은 '꿰다 논 보릿자루' 캐릭터다. 그는 아무 말도 안하고 멀뚱멀뚱 이 토크쇼를 관전하고 있다가 가끔씩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해댄다.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사사해주면서 나중에 그 배운 것을 또 다른 후학에게 가르치라는 장한나의 스승들의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이것이 바로 청출어람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강호동에게 "빌려간 15만원 빨리 돌려 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강호동과 올밴의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와 비교해 세계적인 거장들과 장한나 사이의 숭고하기까지 보이는 관계를 오히려 돋보이게 한다.

'무릎팍 도사'가 구사하는 낮은 자들의 화법은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이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 상상해보라. '무릎팍 도사'에 나오기 전, 우리가 상상해왔던 장한나의 모습과, '무릎팍 도사'에 나와 실컷 웃고 떠들고 난 후, 우리가 발견한 장한나의 모습 사이의 차이를. '무릎팍 도사'는 물론 하나의 웃음을 지향하는 토크쇼에 불과하지만, 그 토크쇼가 보여주는 독특한 화법으로 인해서 알게 모르게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 문화적 차이 같은 벽을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것. 이것은 '무릎팍 도사'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며 또한 수직적 체계가 무너지고 수평적 체계의 다양성으로 향해가는 현 사회가 소통해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981 관련글 쓰기

대중의 기대와 작품 사이, 소통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 이처럼 중간에 서 있는 것은 그만큼 오인 받을 소지가 많다. 결혼과 연애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문란한 방탕으로 보이기 쉽고, 오빠와 연인 사이에 서 있는 것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불륜으로 보이기 쉽다. 특히 우리처럼 이쪽 아니면 저쪽이어야 하는 것이 마치 당위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그러니 '트리플'은 한 가지도 오인 받고 비난받기 쉬운 어려운 난이도의 소재들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돌아야 하는 드라마다.

'트리플'이 가진 화법의 문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초반부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이 드라마는 실제로 논란거리들이 가득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 낯선 지대에 서 있는 남녀들의 관계가 그렇다. 조해윤(이선균)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로 돌아가려는 강상희(김희)와, 자꾸만 오빠가 좋아진다는 이하루(민효린), 또 친구의 부인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현태(윤계상)는 드라마를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그 골치 아픈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단 먼저 행동하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장현태는 마음을 빼앗긴 최수인(이하나)에게 조금씩 다가가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다. 집 마당에 농구대를 떡하니 세워두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그녀 앞에 불쑥불쑥 자신을 드러낸다. 이 행동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장현태는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고 행동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후에 장현태의 고백으로 밝혀지는 것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결행된 것들이 아니다. 장현태는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최수인의 집으로 가기까지 여러 번 그 동네 주변을 뱅뱅 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조해윤과 강상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쿨한 인물들은 좀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부터 보여준다. 하룻밤을 지내고도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던 강상희에게 조해윤이 "넌 그게 쉬운 여자잖아"하고 심한 말을 하자, 그녀는 비로소 자신도 고민을 했었던 것을 밝힌다.

이것은 '트리플'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화법이다. 이하루(민효린)는 신활(이정재)과의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오빠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린다. 강상희와 신활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행동이 먼저 보여지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그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이 드라마의 화법은 여러모로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선 이들이 그저 방탕하고 불륜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트리플'의 실패, 작품이 아니라 소통이다
이러한 오인되기 쉬운 감추려는 화법 속에서 이윤정 PD 특유의 감각적이고 팬시한 연출은 심지어 이런 기저에 깔린 관계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해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엇갈린 관계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얘기하는 규범의 틀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빠(친오빠가 아닌 관계로서의 오빠)인 줄 알면서도, 친구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또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최수인의 어머니가 죽음에 임박해서 딸의 불륜이 될 수도 있는 장현태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관계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시청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사이의 차이는 이 드라마의 화법이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윤정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콤비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 같은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트리플'은 그 엇갈린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게로 판타지를 한없이 무너뜨린다.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청춘들의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려했지만 '트리플'은 그 관계의 무게로 인해 순정만화의 기대치를 배반하고 만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조해윤이 보이는 것은 그가 그나마 이 기대치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주변인물들의 관계들을 보면서 투덜대곤 한다. 강상희에게도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장현태가 최수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듯 말할 때도 "그만해라. 이젠 지겹다"고 말한다. 조해윤과 강상희가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활이 "우리 중에 가장 재밌게 사는 놈은 너"라고 말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이처럼 뒤늦게나마 이 화법들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느끼고 있지만 그 돌파구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트리플'은 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을 안고 멋지게 삼단 점프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재적으로 오인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시도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삼단 점프를 하면서 정작 그걸 보고 환호해줄 관객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서 발생한다. '트리플'이 끊임없이 비난을 받는 것은 작품이 조악해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대중들의 기대와 맞춰가며 나가려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931 관련글 쓰기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서 김서방은 수없이 많은 불특정 다수를 말한다. '김씨표류기'의 김씨는 그런 의미다. 그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정재영)이기도 하고, 자신의 방 속에 스스로를 고립한 채 표류하고 있는 여자 김씨(정려원)이기도 하며, 그 밖에 도시라는 정글의 바다 위에 각자 저마다의 섬을 갖고 표류해 살아가는 우리네 현대인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류라는 말 또한 의미를 달리한다. 흔히 생각하듯 여기서의 표류는 바다 한 가운데 고립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심 한 가운데서도 표류할 수 있고, 집 한 칸에서도 표류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함유하는 의미로서의 표류란 '문명화된 공간으로부터의 이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자 김씨나 여자 김씨 모두 도시로부터 이탈된, 정확히 말하자면 밀려난 존재들이다.

구구절절, 그들이 왜 도시로부터 밀려났는가를 설명하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남자 김씨가 밤섬에 표류하게 되는 동기로서 자살시도가 들어있기 때문에 굳이 카드빚이나 변심한 애인 같은 상투적인 이유를 붙여놓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이유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다 이해되는 일이다. 여자 김씨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물론 이마의 상처가 그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만) 그저 그 상황 자체가 이해되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고립된 표류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손을 내미는가(커뮤니케이션) 하는 문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 고립은 시작된다.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관계들은 종종 소통에 실패하고 만다. 섬에 표류된 남자 김씨는 핸드폰에 남은 배터리로 구조를 요청하지만 그것은 장난전화가 되거나, "그러십니까 손님"하는 규정화된 안내 멘트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핸드폰이 꺼져버리자, 세계와 연결된 고리가 끊겨버리는 이 상황은 도시적 삶이 가진 소통의 가벼움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남자 김씨는 미디어가 사라진 공간 속에 표류된다.

한편 여자 김씨는 미디어에만 둘러 싸여 자신을 익명화한 채 살아간다. 인터넷과 미니홈피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온통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지만(심지어 미디어 속에 들어가 있다), 그 누구와도 진짜 소통을 이루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그녀에게 불쑥 들어온 외계생명체(남자 김씨) 역시 망원 카메라를 매개한 것이다. 실제적인 소통은 아마도 그녀에게는 상처 그 자체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매일 밤 잠들기전 기억을 지우듯 비디오 클리너를 돌려본다.

영화는 각자의 섬 사이에 놓여진 이들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혀져가는 과정에 천착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고립된 두 사람이 소통의 매개로 활용하는 미디어의 방식이다. 그것은 병 속의 편지나 땅 위에 커다랗게 써놓는 글씨 같은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미디어들이다. 버튼 하나면 메시지가 지구 반대쪽까지 날아가는 시대에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미디어들의 소통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소통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진짜 소통인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표류기가 이 땅의 도시인들의 삶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소통은 기적처럼 보이고 대단할 것 없는 행위 조차 모험으로 여겨지게 된다. 무인도 시리즈가 갖는 고전적인 코미디의 웃음 코드 속에 푹 빠지다가도 어떤 뭉클한 감동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도시 모험이 희구하는 목표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을 가로막는 것들이 도시적 삶이라고 상정할 때, 도시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밤섬이라는 공간은 통조림 통 속에 담겨진 흙처럼 절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 밤섬이라는 공간 속에서 가지게 되는 작은 희망이 결코 작지만은 않은 것이란 점을 그려낸다. 여자 김씨의 방안을 가득 메우던 통조림 통의 절망감이 그 통 속에 자라는 옥수수처럼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남자 김씨가 도시로 둘러싸인 고립된 밤섬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 모습과 정확히 쌍을 이룬다.

'김씨표류기'는 무수한 미디어에 둘러싸여 오히려 소통 부재가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어떤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얘기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보여주었던 이해준 감독 특유의 유머는 이처럼 포복절도의 웃음의 언저리에 늘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는다. 정재영은 충분히 엉뚱하고 진지하게 우리를 웃겨주었고, 정려원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자리가 얼얼하게 우리를 감동시켜 주었다. 헐리우드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김씨표류기'라는 존재는 어쩌면 통조림 통 속에서 피어나던 옥수수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 영화가 내미는 손의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862 관련글 쓰기

  1. <김씨표류기> - 럭키 서울

    Tracked from FILMON  삭제

    자살하려고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밤섬에 갇혀버린 남자 김씨(정재영)와 방구석에서 그를 지켜보는 여자 김씨(정려원)의 교감을 그린 <김씨표류기>. 구조조정으로 백수가 되고 대출 빚에 허덕이다 한강에 몸을 던진 남자와 몇 년 째 집안에 틀어박혀 인터넷만 하는 은둔형외톨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진 이 시대 도시인의 우울한 초상을 내세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해준 감독은 ‘도심 속 무인도’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복잡한 일상..

    2009/05/15 16:33
  2. ‘김씨 표류기’,우리 삶이 바로 표류 그 자체 아닙니까?

    Tracked from 영화리뷰전문 무비조이  삭제

    이 영화 기억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바로 2006년에 나온 <천하장사 마돈나>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따뜻한 인간적 감정이 잘 묻어나 있는 소박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한번 보고나면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관객들에

    2009/05/15 19:30
  3. 김씨 표류기는 슬픈영화다.

    Tracked from pa.ra.ma  삭제

    최근에 개봉한 영화, 김씨 표류기! 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했다. 무슨 영화를 볼까?하다가 요즘 유명한 영화 '김씨 표류기'를 봤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도 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하고, 희망이 있는 영화라는 것이 김씨 표류기의 주된 평가였다. 하지만 난 왠지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도 슬펐다. 그리고 그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짙어졌다. '김씨 표류기'는 슬픈 영화다. 적어도 내게는 '슬픈 영화'다. 그럼 이제 김씨 표류기의 리뷰를 시작해..

    2009/05/16 10:05
  4. 김씨표류기와 괴짜가족

    Tracked from 개갈안나는 블로그  삭제

    김씨표류기가 개봉을 했습니다. 개봉전부터 왠지 영화와 어울리는 정재영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았죠. 스토리도 특이하구요. 자살하려고 한강에 뛰어들었는데 서강대교 밑의 밤섬으로 표류하게 되어 생활하게 되는 코믹물입니다. 정재영의 인터뷰대로 박쥐의 송강호가 배역을 맡았어도 참 어울리는 작품이었을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살과 섬이라는 곳의 표류. 그리고 은둔형 외톨이의 여자. 극단적이긴 하지만 2009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됩..

    2009/05/16 11:42

‘인터뷰 게임’, 이 시대의 진정한 소통이란

인터뷰라는 단어는 대충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고용주와 지원자 사이의 대면, 둘째, 기자가 기사 대상을 두고 하는 면담, 셋째, 그런 정보를 가진 기사 혹은 방송. 하지만 이제 이 단어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다. SBS의 ‘인터뷰 게임’은 이른바 정보통신의 시대라는 현재, 오히려 더욱더 단절되어있는 그 소통의 물꼬를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풀어보려는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할 때 그 한 길 사람 속을 파고드는 프로그램.

40세의 김진영씨가 인터뷰를 통해 알고싶은 것은 아내의 마음이다. 그는 아내와의 깊은 갈등 끝에 이제 파국의 벼랑 앞에 서 있다. 그는 어눌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서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전한다. 한 때는 그렇게 살가웠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이 왜 이렇게 끝자락에 서 있는 지, 그는 진정 알고싶다. 그래서 그가 인터뷰하는 것은 아내 주변의 인물들이다. 그것은 아내의 선배이기도 하고 직장상사이기도 하며 아내의 친구, 부모 혹은 아내가 찾아간 한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내에 대해 질문을 해온 김진영씨가 알게된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내가 왜 그런가’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알게된 것은 바로 오히려 몰랐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내에게는 상처가 되고 있었고, 아내는 때론 그 상처를 갖고서도 남편을 두둔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장모가 그녀에게 불만조로 남편이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오히려 남편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진영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진심이 자신의 폐부를 찌른 것이다.

그것은 똑같이 김진영씨의 아내에게도 전달된다. 우습게도 그것은 이 ‘인터뷰 게임’에서 한 인터뷰의 내용, 즉 수집된 정보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아내의 진심을 알게 된 남편이 결국 아내와 대면해 몇 시간 동안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거의 없다. 결국 그 파국이 예상될 즈음에 남편의 한 마디가 그것을 바꾼다. 그것은 자신이 아내의 상황을 알기 위해 수 차례 인터뷰를 해왔으며, 그를 통해 “당신이 힘들었겠구나”하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에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결국 진심은 논리나 말에 의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터뷰 게임’은 보여준다. 그것은 오히려 그 진심을 담은 행위, 즉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인터뷰를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인터뷰라는 형식은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기존의 기자들이나 PD의 인터뷰가 어떤 정보라든가, 재미를 추구하는 목적이 뚜렷했기에 그 내용이 중심이었다면, ‘인터뷰 게임’이 보여주는 것은 그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뷰 게임’의 인터뷰 형식은 여타의 인터뷰하고는 다르다. 여타의 인터뷰가 목적하는 것이 주로 정보라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진심이다. 따라서 인터뷰 형식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적확한 정보나 재미를 전달하는 장면 위주의 편집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행위 그 자체가 된다. 프로그램이 정보전달에 있어 날려버릴 수 있는 불필요한 장면들을 빠른 장면으로 그대로 돌려 보여주거나, 사운드를 죽인 상태로 화면이라도 전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정보성이 없는 행위가 담긴 장면들은 보통의 인터뷰에서는 편집되는 장면이거나 버려지는 텍스트가 되겠지만 사실 말 이면의 진심을 포착하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인터뷰 게임’은 정보통신의 시대라는 소통의 기기가 극대화된 시기에 오히려 소통 부재가 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이 주목하는 것은 인터뷰를 하는 자나 당하는 자의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대신 그 인터뷰를 하는 행위 속에 담긴 마음이 된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신 옆에서 늘 투덜대는 아내나, 늘 웃고 있는 아버지, 늘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서 그 말로서만 들었던 이야기는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심은 오히려 그분들이 투덜대면서도 밥을 차리고, 웃으면서도 쉴 새없이 손을 놀리며 일을 하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늘 노심초사하는 그 행위 속에 담겨 있을 지도 모른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thekian.net/trackback/479 관련글 쓰기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38)
블로거의 시선 (89)
네모난 세상 (998)
생활의 발견 (44)
상투잡기 (4)
깊게보기 (2)
스토리스토리 (1)

달력

«   2010/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589,265
  • 73757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