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공권력

수사의 세 가지 방법을 묻는 시험에서 공부 잘 하는 카이스트 출신 희열(강하늘)은 정답인 ‘피해자 중심 수사, 물품 중심 수사, 현장 중심 수사’라고 적어 넣는다. 반면 공부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성격의 기준(박서준)은 고민 끝에 엉뚱하게도 ‘열정, 집념 그리고 진심’이라고 답을 적어낸다. 아마도 영화 <청년경찰>이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시험이 원하는 정답은 아니지만 기준이 적은 열정과 집념 그리고 진심이야말로 진정한 공권력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이라는 것.

사진출처:영화<청년경찰>

경찰대생이 실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주 오래 전 봤던 할리우드 코미디영화 <폴리스 아카데미>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청년경찰>은 그 영화와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청년경찰>은 그 안에 우리네 현실적 상황과 정서들을 콕콕 박아 넣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웃음의 강도가 강하고, 학생이라 어설프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해나가는 이 청춘들의 좌충우돌에 대한 정서적 지지도 크다. 

<청년경찰>은 사실상 그 캐릭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 이야기를 담으면서 굳이 부여한 ‘청년’이라는 캐릭터에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청년들의 어설픔은 오히려 영화 속에서 ‘순수함’으로 표현되고, 당장 성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응당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정직함’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렇지 못한 기성 경찰들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결국 사건을 해결했지만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징계를 주려는 경찰 수뇌부들이 바로 그 기성 경찰들을 표상한다면, 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양교수(성동일)는 과거에는 자신들도 그렇게 열정에 넘쳤던 적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 반성하는 어른이다. 넘쳐나는 사건들 속에서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해왔던 수사가 결국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적인 오류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청년경찰들의 열정, 집념, 진심이 들어간 수사는 그 어설픔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 진지함에 뭉클한 면들이 묻어난다. 

<청년경찰>이 흥미로운 건 이런 거창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주 일상적인 수준에서 농담처럼 잘 배치해놓았다는 점이다. 훈련을 받으며 다리를 다친 희열을 업고 내려오다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버리는 기준의 이야기는 사실은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한 행동으로 처리되며 웃음을 주지만 그 농담 속에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넣는다. 결국 길거리에서 우연히 한 소녀가 납치되는 걸 목격한 그들이 그걸 외면하지 않고 수사에 뛰어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앞부분에 보여진 에피소드와의 연결고리를 가지며 공감을 만들어낸다. 

<청년경찰>은 영화에서 캐릭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정서를 반영하는 잘 축조된 캐릭터가 주는 매력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드라마 <쌈마이웨이>로 기분 좋은 청춘의 면면을 드러냈던 박서준과 영화 <동주>로 역시 청춘의 초상을 그려냈던 강하늘의 손발이 척척 맞는 콤비 코미디가 주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코미디의 이면에 담겨진 의미 역시 작지 않다는 점에서 <청년경찰>은 부담 없이 보는 여름철 오락영화로서의 모든 구색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청년경찰>이 그려내는 청춘의 긍정성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간 청춘의 쉽지 않은 현실을 담은 작품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작품들 속에서 청춘들의 고충이 주로 부각됐다면, <청년경찰>은 오히려 그 청춘이 가진 열정, 집념, 진심 같은 기분 좋은 가능성들을 영화의 에너지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여타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바로 그 부적응상태가 주는 긍정성.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통쾌한 구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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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준과 지창욱, 멜로가 발견한 대세 현실 직진남

KBS <쌈마이웨이>도 가고 SBS <수상한 파트너>도 끝나고... 특별했던 두 멜로드라마가 나란히 종영했다. 다른 드라마지만 어딘지 닮은 느낌을 가진 두 드라마. 그것은 굉장한 재벌이나 심지어 외계인, 도깨비, 신으로까지 판타지가 확장되던 남자주인공들과 이 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해 보통의 평범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웠던 <쌈마이웨이>와 <수상한 파트너>. 이들 드라마가 괜찮은 호응을 얻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다. 태권도 유망주였으나 가난이 죄가 되어 조작경기를 하게 되고 결국 영구 제명당한다. 그래서 모든 꿈을 접은 채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단 한 시도 꿈을 잊은 적이 없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초상이지만 이 인물은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은 검사였지만 살해용의자 누명을 쓴 은봉희(남지현)의 기소를 포기함으로써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된다. 물론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남자지만 드라마는 그런 점들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 부모가 모두 화재로 죽음을 맞은 후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지욱이 은봉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재력 같은 현실적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그 점이다. 은봉희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누명 또한 끝까지 벗겨주려는 노력에 담긴 진심.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당대의 판타지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판타지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외계인이어서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남자주인공을 세워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여자주인공을 보호하는 판타지를 그려냈다면, 신드롬을 만들었던 <도깨비>는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여자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을 해결해주는 판타지를 그렸다. 

문제는 이렇게 판타지가 초현실적인 차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면서 생겨나는 현실성의 결여다. 신까지 등장한 마당에 도대체 그 이상의 어떤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을 더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담아내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남자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허공에 붕 띄워져 있던 남자주인공들의 발을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앉혔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중요한 건 남자주인공들이 이렇게 현실로 내려오면서 여자주인공들의 능동적인 면들이 더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결국 여자주인공들로 하여금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쌈마이웨이>의 최애라(김지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능동적인 존재였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 역시 변호사로서 자기 성장을 이뤄가는 능동적인 여성이었다.

<쌈마이웨이>의 박서준과 <수상한 파트너>의 지창욱은 이러한 현실 남자친구의 매력을 200% 연기해 보여줌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연기장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뭐든 해줄 수 있는 굉장한 능력보다는 남다른 직진 사랑의 면면으로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남사친와 남자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보이던 그들이 더 이상 친구는 안된다고 선을 긋고 직진할 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그 누가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아닌 남사친 여사친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 친구 관계를 넘어서는 일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기 때문일 게다. 결혼도 그렇고 육아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적정한 거리에서 남사친 여사친을 주장하며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 지도.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현실적인 남자주인공으로 건드리고 있는 건 어쩌면 이 우정의 차원을 훅 넘어 들어오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박서준과 지창욱의 그 직진이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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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도 메이저, ‘쌈마이웨이’의 든든한 위로

“네가 있는 곳이 메이저야!”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회로부터 마이너 취급을 받는 청춘들. 본래 하고 싶었던 일과 갈수록 멀어져 꿈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 드라마는 그런 사회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 곳이 바로 메이저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화려한 삶은 항상 저편에 있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부정경기를 치르고 꿈이었던 태권도를 접게 된 고동만(박서준)은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렇게 영영 무도의 길을 떠나 잊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의 시간은 김탁수(김건우)에게 경기를 일부러 져주던 그 날에 멈춰 있었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꿈이었지만 그 꿈이 꺾어진 자리에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격투기가 있었다. 그는 결국 그걸 선택했고 그 안에서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본래 꿈이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였지만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으로 살아가던 최애라(김지원)에게 아나운서 박혜란(이엘리야)의 삶은 메이저였다. 그래서 결국 백화점을 그만 두고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다니던 그녀는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발견한다. 격투기장에서 선수들을 소개하는 아나운서. 그녀는 그 곳을 자신의 메이저로 삼겠다 마음 먹는다. 

백설희(송하윤)는 꿈이 엄마다. 그래서 6년째 사실혼 관계로 사귀고 있는 김주만(안재홍)을 마치 엄마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돌본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할 즈음, 의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자신이 담근 매실액을 블로그로 본 사람들이 주문을 시작한 것. 그녀의 엄마라는 꿈은 그래서 그 마음을 담은 음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된다. 물론 그렇게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김주만과의 관계 또한 회복된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처럼 본래 하려던 꿈을 그대로 이룬 것이 아니다. 그들은 꿈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서 또 다른 꿈을 이어간다. 그것이 세상에서 보기엔 메이저가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바로 메이저라는 걸 알게 된다. 

드라마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모두 해피엔딩을 보여주지만 아마도 현실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쪼대로 살아보는 거야”라고 외치는 고동만의 목소리는 적어도 흙수저라고 꿈마저 흙수저일 수는 없다고 믿는 많은 청춘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사고를 쳐야 청춘”이라고 말하는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보는 내내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현실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 난공불락의 저들만의 세상에서 그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이 던지는 발차기와 외침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사는 다세대주택의 옥상에 마련된 남일바의 정경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한 풍경으로 담아낸다. 어딘지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 곳 평상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던 곳. 달동네의 빽빽한 집들이 밤이면 아름다운 불빛들을 배경으로 제공해주는 그 곳은 어두워도 그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작은 드라마였지만 그 어떤 블록버스터 드라마보다 더 울림을 준 <쌈마이웨이>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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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 무엇이 이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가로막나

“왜 짐이 이것 밖에 안 되냐?” 이젠 헤어져 자신의 짐을 챙겨달라는 백설희(송하윤)에게 김주만(안재홍)은 화가 났다. 그건 아마도 그녀에게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리라. 무려 6년 간 사귀면서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산 물건들이라는 것이 한 박스도 안 되는 싸구려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토록 살뜰히도 챙겼던 그녀가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백설희는 결국 김주만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간 백설희의 빈자리를 김주만은 톡톡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녀가 없는 자리가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고 멍할 수밖에. 

그들이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김주만이 자신을 따르던 인턴 장예진(표예진)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하고 들어온 것이었지만, 그것만이 이별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이전부터 그들 관계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지나치게 김주만만을 챙기고 자존감이 바닥인 백설희.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지만, 그런 헌신은 김주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온통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를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6년 간을 뛰고 또 뛰었지만 그다지 바뀌지 않는 현실. 최고는 아니어도 “중간” 정도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소소한 행복’은 그에게는 어떤 무력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이별은 서로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챙기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로 사랑하고 챙기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무거운 현실 앞에 서게 되자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백설희를 위해 김주만은 전셋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 애써왔고, 김주만을 위해 백설희는 그를 챙겨도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이들의 이별이 남다른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쉽게 부숴버리는 현실을 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최고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의 행복을 원하지만 그건 번번이 갑질 하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그 현실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진 것 없는 흙수저 청춘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비열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쌈마이웨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청춘들의 ‘돌려차기 한 방’을 그리려 한다. 그래서 일찍이 가난한 현실 때문에 접었던 무도의 꿈을 고동만(박서준)은 다시 걸어가려 하고, 스펙이 없어 접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최애라(김지원)는 다시 꿈꾼다. 그렇다면 김주만과 백설희는 이 현실 앞에 무너진 사랑 앞에서 어떤 ‘돌려차기’를 보여줄까. 그깟 현실 따위 훌훌 털어내고 다시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고동만과 최애라의 꿈이 작게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김주만과 백설희의 사랑이 그 현실 앞에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성공과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바깥에서 얼마든지 꿈을 꾸고 사랑할 수 있기를. 저 부조리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시스템이 그들을 무릎 꿇게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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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웨이’, 그래 우린 모두 꿈이 있었어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의 이 한 마디 속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담겨져 있을까. 이제 지긋한 나이, 그 세월을 살아온 분이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말은 사실 그 삶을 부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것은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자식에게만은 자신 같은 삶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말만큼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없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스스로를 흙수저라 부른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집을 찾아온 아버지 고형식(손병호)에게 그 답답한 속내를 토로한다. “나한테 아버지처럼 살라고 하지 마라. 죽을 똥 싸면서 나 같은 놈 또 만들어야하나 잘 모르겠다. 걔가 흙수저라고 나 원망할까봐.” 하지만 흙수저 청춘의 부모 역시 당연히 흙수저 부모다. 그들 역시 스스로 흙수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들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다. 

영업부장으로 새파란 사장 앞에서 잔뜩 고개를 조아리고 갑질을 감내하는 아버지를 본 고동만은 거기서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상사에게 당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한 번도 못해봤던 생각.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역시 한때는 자신처럼 꿈이 있던 청춘이었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소주 한 잔을 따라드리며 꿈이 뭐였냐고 묻자 아버지는 말한다. “내 꿈은 파일럿이었다. 지금은 그냥 너희들이 내 꿈이다.”

그 아버지가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한다. “난 이제 와서 파일럿은 못해도, 넌 사고라도 한번 칠 수 있잖아.” 그리고 아들이 흙수저라고 한 그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지 허세 섞인 한 마디를 덧붙인다. “너 흙수저 아니야. 아버지 앞으로 20년은 더 벌거야. 뒤에 아빠가 딱 있으니까 한번 날아봐라. 들이받고 덤비고 깨져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봐.”

<쌈마이웨이>는 가진 것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쌈마이’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청춘들의 부모들 이야기 역시 그 울림이 적지 않다. 족발집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만(안재홍)의 집 사람들에게 설움 받는 딸 백설희(송하윤)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주만에게 자신의 딸을 많이 사랑해주라고 부탁하는 설희 엄마가 그렇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한 달음에 달려오는 최애라(김지원)의 딸바보 아빠가 그렇다. 

가진 것 없이 키워서 흙수저가 되어 현실에 나간 자식들 앞에서 이 부모들은 모두 죄인처럼 살아간다. 자신은 꿈을 지워버리고 흙수저 현실을 살아가며 자식만큼은 그 삶을 반복하지 않고 그들의 꿈을 키워가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흙수저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 있듯이 그 굴레는 고스란히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쟁적인 현실은 이제 정년퇴직을 앞둔 부모 세대가 계속 자식들을 위해 취업전선에 나서야 하고, 그 자식들 역시 이렇게 가중된 경쟁 속에서 취업난을 겪는 이중고로 이어지고 있다. <쌈마이웨이>의 고형식이 아들 고동만에게 던지는 격려가 슬프고도 먹먹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우린 모두가 꿈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을 알아버리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꿈은 이제 아빠, 엄마가 되어간다. 자식들을 대신 꿈이라 치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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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욕먹을 캐릭터조차 공감하게 만드는 안재홍 연기력

타고난 배려심일까 아니면 쓸데없는 오지랖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김주만(안재홍) 대리가 장예진(표예진) 인턴을 대하는 태도는 한편으로는 공감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6년 간을 거의 사실혼 관계로 지낸 조강지처 백설희(송하윤)가 있지만 끝없이 대시하는 장예진에게 철벽을 치지 못한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접촉사고를 당한 장예진이 도움을 요청하자 김주만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물론 사고를 낸 상대 남자들에게 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김주만의 입장은 어찌 보면 ‘회사 동료’로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을 주고 굳이 집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고 다리를 저는 그녀를 부축해 문 앞까지 데려다주다가, 문 앞에 가득 쌓인 택배박스를 힘들게 옮기려는 그녀를 그냥 보지 못하고 도와주는 모습은 너무 과하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김주만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다. 사실 6년 전 그가 백설희와 가까워지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타인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배려심 때문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설희를 도와주다가 결국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됐던 것. 

그래서 김주만은 자신에게 대시하는 장예진의 모습에서 당황스럽게도 자꾸만 6년 전 백설희의 모습이 겹쳐지는 걸 발견한다. 그는 백설희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추신수가 출전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본다. 그런 그에게 백설희가 서운함을 드러내자 그는 말한다. “6년을 만났는데 어떻게 눈만 보고 있어. 무뎌지는 거지.”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쌈마이웨이>의 이제 막 1일을 선언한 고동만(박서준)과 최애라(김지원)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서로 눈만 쳐다봐도 꿀 떨어지는 고동만과 최애라의 관계가 보는 이들마저 가슴 설레게 만든다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그 달달했던 시간들이 지나간 쓸쓸함을 담는다. 어쩌면 고동만과 최애라의 그 죽고 못사는 관계도 6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김주만과 백설희처럼 데면데면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쌈마이웨이>가 담아내려 하는 건 지금 막 스파크가 터지는 사랑의 시작점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 그 사랑이 어떻게 시련을 맞게 되고 그럴 때 우리들은 어떤 노력과 결정들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까지다.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그래서 이 달달한 청춘 로맨스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들은 과연 이 고비를 잘 넘어갈 것인가. 

주목할 건 이 김주만이라는 현실 남친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는 안재홍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물론 <응답하라 1988>에서 ‘봉블리’라 불리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주목받은 배우였지만 확실히 이번 <쌈마이웨이>는 그가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욕먹을 캐릭터’지만 그것조차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쌈마이웨이>는 현실이 부여한 어떤 틀에 박힌 길에서 소외되어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건강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 김주만이라는 캐릭터에게서도 <청춘의 덫> 식의 틀에 박힌 변심이 아닌 무언가 이들만의 해결책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하고 묻던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아닌 <쌈마이웨이>만의 길을 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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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 박서준, 무심한 듯 애틋하고 웃긴데 설레는

이쯤 되면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박서준 파워를 인정해야 할 듯하다. 아예 남녀 관계에 있어 쑥맥이라 그런지 그것이 우정인지 정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도 헷갈려하는 고동만 역할을 박서준이 이토록 잘 소화해낼 것이라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지난 작품이었던 <화랑>의 잔상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다. 물론 당시에도 무명 역할을 연기한 박서준의 연기가 나빴다고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사극의 그 이미지가 박서준에게 잘 어울리지 않은 면이 있었을 뿐이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쌈마이웨이>의 박서준이 돋보이는 건 고동만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무심한 듯 애틋하고, 웃긴데 설레는 그 면면들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지원의 공 역시 적지 않다. “그러지 마. 나 자꾸 설레”라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고동만이 “어쩌냐. 이젠 우는 것까지 예뻐 보이니.”라고 하는 대사가 확 살아난다. 

온 시청자가 다 알고 있지만 두 사람만 모르는 것 같은 연애감정이다. 그래서인지 드디어 고동만의 “썸이고 나발이고 키스 했으니 오늘부터 1일이다”라는 직진 멘트를 하고 공식적으로 사귀는 걸 인정하는 그 순간, 시청자들 역시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귀니까 또 하자”는 그 말에서는 고동만이라는 인물의 순진함과 순수함이 묻어난다. 

오래도록 친구 사이로 지내 자신들도 모르게 남사친, 여사친 관계가 되어버린 그들이 보여준 건 사실상 썸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썸. 그래서 최애라(김지원)의 아버지에게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잤다는 걸 들켰을 때 고동만이 “애라하고는 무인도에 가도 원숭이나 원주민처럼 지켜줄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여러 감정들을 수반한다. 

그런 말이 웃기기도 하지만, “뭘 지켜주냐”며 발끈해하는 최애라에게서는 서운함이 묻어나고 최애라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우리 딸이 뭐가 모자라서?’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그렇게 애써 변명을 하고 있는 고동만도 슬쩍 한 발 물러나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하는 그 속내를 숨길 수 없다. 바로 이런 지점이 <쌈마이웨이>에서 박서준과 김지원의 멜로가 갖는 남다른 묘미다. “썸이고 나발이고”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들은 그 이상의 썸을 보여줘 왔던 것.

하지만 일단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앞뒤 재지 않고 직진하는 게 바로 고동만의 스타일이다. 이런 남자다움은 친구 사이에서 갑자기 연인 사이로 훅 들어오는 그 순간의 가슴 두근거림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 

박서준이 로맨틱 코미디 장인이라는 건 사실 <그녀는 예뻤다>의 지성준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확인된 바 있다. 거기서도 친구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연인으로 다가올 때의 그 설레는 순간을 그는 제대로 연기해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쌈마이웨이>에서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의 밑그림으로서 현실에 날개가 꺾였지만 그래도 고개 숙이지 않고 살아가려는 당당한 청춘의 자화상까지 덧붙여 놓았다. 

<쌈마이웨이>의 고동만이라는 캐릭터에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랑과 꿈 두 가지가 모두 성취되기를 바란다. 동생 수술비 때문에 포기했던 꿈을 격투기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얻기를 바라고, 힘들 때 항상 옆에서 친구처럼 지지해줬던 최애라와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지금의 힘겨운 청춘들에게 기원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박서준은 그 청춘의 초상을 제대로 연기해 보여주고 있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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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웨이’ 김지원, 신데렐라 걷어차고 내 길 간다

“무빈 씨 생각엔 백마 태워 호강시켜 주길 바라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을 거 같은가 본데 그 신데렐라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먹혀요. 진짜 현실에선요, 자기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수두룩 짱짱하다고. 그니까 유리구두! 개나 주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최애라(김지원)은 박무빈(최우식)이 선물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을 사귀어온 박무빈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겠다며 그가 사준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녀를 걱정해 찾아온 고동만(박서준)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며 분노하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가슴이 떨린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멜로와 어떻게 결이 다른가를 정확히 보여준다. 최애라가 대사로 얘기했듯이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된 건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현실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 신데렐라가 가당키나 한 판타지인가.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에 ‘갑질하는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드리워놓고 있어서다. 최애라도 고동만도 갑질을 당하는 건 ‘일’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아무렇게나 쓰다 버려지지만, 그런 갑질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박무빈이 최애라에게 이끌리게 된 계기를 보라. “걔가 좀 나대잖아요? 쥐뿔도 없는 놈이 항상 신나 있고. 그게 거슬린다.”고 말하는 박무빈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이다. 그는 단지 고동만처럼 ‘없는 놈’이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꼴이 거슬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 

일터에서 청춘들이 일상처럼 만나는 갑질은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었다. 과거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부자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주인공을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면, <쌈마이웨이>는 보기 좋게 그 유리구두의 판타지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는 달달하기는커녕 너무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고동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현실의 신데렐라가 된 박혜란(이엘리야)은 뻔뻔하게도 다시 고동만 앞에 나타나 그를 자기남자로 만들려 한다. 그녀는 이제 고동만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제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그랬으므로.

하지만 고동만도 최애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동만은 박혜란에게 자꾸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최애라는 박무빈이 만들어주겠다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던진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맨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지켜낸다. 이 맨발의 청춘이 현실에 치여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일도 사랑도 갑질 투성이인 세상, <쌈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청춘이 더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당당한 <쌈마이웨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 이 청춘멜로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갑질 세상에 날릴 통렬한 돌려차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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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한방', 희비극이 잘 엮어진 예능드라마

짠한 데 웃음이 나고, 우스운데 짠하다. KBS <최고의 한방>은 희비극이 무엇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최우승(이세영)이 사귀던 남자친구가 자신의 룸메이트와 바람을 피우는 걸 박스 안에 숨어서 보다 들키는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과 짠함의 정체를 드러낸다.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우승이 박스를 뒤집어쓴 채 집밖으로 나가려 하고 그걸 막으려는 남자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짠한데 웃음이 난다. 코미디가 가진 양면성, 즉 비극 속에 담겨진 희극적 요소가 주는 페이소스가 이 드라마에는 도처에 묻어난다. 

'최고의 한방(사진출처:KBS)'

힘겨운 공시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승은 일 년 간의 노력 끝에 들어간 시험장에서 갑자기 배탈이 나 결국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그 상황 자체가 주는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배탈을 애써 버텨내려는 우승에게 시험 문제지의 글자들, 즉 ‘고비, 폭발, 쏟아지는, 산사태, 배출, 터져 나온다’ 같은 단어들이 그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웃음이 난다. 

매달 평가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기획사의 독종 연습생 혜리(보나)를 지훈(김민재)이 자꾸 자살하는 줄 알고 오해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시퀀스들도 코미디적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죽도록 연습을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청춘들의 땀과 눈물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연습생을 하도 오래해 ‘조상’으로 불리게 된 지훈이 월말 평가에서 대놓고 떨어지라 요구받은 랩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는 모습은 그토록 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엉뚱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버텨내고, 눈물이 흘러도 눈물샘이 막혀 생긴 질환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 이 청춘들이 어느 날 가로등 아래서 진짜 힘겨움을 슬쩍 드러낼 때 그 무표정이 사실은 온통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얼굴이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런 청춘들에게도 한 방의 기회는 과연 올 것인가. 

<최고의 한방>은 여기에 특별한 판타지 설정을 집어넣었다. 그것은 1990년대의 아이돌 스타 유현재(윤시윤)가 그 시대에서 갑자기 20년을 뛰어넘어 현재로 타임리프한 것이다. 유현재는 당시 최고의 스타로서 화려한 청춘을 구가했지만, 20년을 뛰어넘은 현재의 그는 어쩌다 지훈의 옥탑방에 얹혀 지내는 신세가 된다. 왜 <최고의 한방>은 최근 드라마에 많이 등장해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우려가 있는 타임리프 설정까지 굳이 집어넣어 90년대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을 연결시킨 걸까.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과거 한 때는 청춘이었던 지금의 중년들이 살아왔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지금의 현실은 과거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청춘 유현재가 현재의 청춘 지훈과 가까워지고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한방’의 실체가 되지 않을까.

짠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으로 그것을 전하려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힘겨워도 웃으며 버텨내려는 청춘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밑에 깔려 있는 청춘들의 절망감이 공감된다. 유현재는 이제 중년이 된 시청자들의 시선이 되어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고, 지훈과 우승은 지금의 청춘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 유현재와 지훈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청춘이라는 공유점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최고의 한방>은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건 코미디적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잘한 코미디적 상황들이 숨기고 있는 ‘한방’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청춘의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라는 묵직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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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쌈마이’ 같은 멜로라면...장르물과 결합하고 현실 담아내고

사실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멜로에 대한 반응은 양면적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적 전통은 드라마의 전통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뿌리 깊다. 지금껏 드라마 하면 그것이 어떤 장르를 갖고 있든 멜로가 빠지면 어딘지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드라마의 ‘멜로 코드’가 식상하다는 반응도 어김없이 나온다. 특히 장르물이나 사극에서 갑자기 멜로 코드가 등장하면, “멜로 없이는 안 되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어딘지 빠지면 아쉽고, 들어가면 식상해지는 멜로. 그래서 멜로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멜로에 법정드라마라는 장르물을 엮어냈다. 물론 법정드라마 속에 간간이 멜로 코드가 섞인 드라마는 이전부터 꽤 많이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저 멜로 코드를 살짝 넣은 것이 아니라, 멜로와 법정드라마 장르를 보다 긴밀하게 엮어내고 있다. 즉 제목에서 드러나듯 법정드라마의 공적 관계 속에서는 ‘파트너’이지만, 그것이 멜로의 사적 관계로 얽히며 멜로와 법정드라마 양면에 모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7명을 죽이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해 여주인공인 은봉희(남지현)에 접근하는 그 장면들은 장르물의 긴장감을 높이지만, 여기에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는 노지욱(지창욱)의 절절함이 더해지며 멜로의 강도도 높이고 있는 것. 그저 멜로가 양념으로 더해진 것이 아니라 장르물의 긴장감 또한 높여주는 효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수상한 파트너>의 멜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경우 답답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멜로와 엮어냈다. 즉 갑질 하는 현실에서 질식해가는 청춘들이 그들만의 연대와 사랑, 우정 등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의 골자다. 아나운서가 꿈이지만 백화점 안내원인 최애라(김지원)와 태권도 선수의 꿈을 접고 근근이 살아가던 고동만(박서준)이 그 현실의 벽 앞에서 서로를 지지해주며 차츰 친구 그 이상의 감정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청춘 멜로에 현실적 질감을 더해준다. 

태생적으로 가진 자들이 스펙을 통해 저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가고, 거기서 빗겨난 ‘쌈마이’ 청춘들이 그래도 ‘마이웨이’를 가겠다고 선언하는 이야기는 다분히 사회에 대한 도발적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러면서 그 청춘의 도발을 연대하는 친구들의 훈훈한 우정 속에서 멜로가 은근히 피어난다. <쌈마이웨이>가 다루는 청춘멜로가 뻔해 보이지 않고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적 질감이 그 밑바닥 정서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멜로의 이종결합이 그 자체만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멜로가 그저 보조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르물이든 현실적인 이야기이든 그 안에 제대로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상한 파트너>와 <쌈마이웨이>의 멜로는 이러한 이종결합의 정답지 같은 느낌을 준다. 장르물 속에서 또 현실적인 공감대 위에서 그 멜로의 화학작용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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