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이 담아낸, 청춘과 부조리 그리고 예술

(본문 중에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저는 뭐를 써야 될 지 모르겠어요. 세상은 수수께끼 같거든요.” 문득 벤(스티븐 연)이 무슨 소설을 쓰고 있냐고 묻자 종수(유아인)는 그렇게 답한다. 그는 알 수 없는 혼돈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느끼는 혼돈과 분노에 맞닿아 있다. 혼란스럽고 화가 나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는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길을 헤매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이 청춘들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과 그 감정을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은 얼마나 가녀리면서도 또한 희망을 주는 것인가를 담았다.

<버닝>의 첫 장면은 트럭으로 보이는 차 뒤에서 조금씩 피어나오는 담배연기로 시작한다. 누군가 그 뒤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 다만 한숨처럼 피어나는 담배연기가 그 존재를 증명하는 듯한 종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트럭에서 짐을 꺼내들고 인파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시장통으로 보이는 그 곳에서 그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곳에서 그를 알아보는 이가 있다. 바로 한 가게 앞에서 춤을 추며 호객을 하고 있는 나레이터 모델 해미(전종서)다. 어린 시절 종수와 파주의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 그들은 그렇게 만나 그날 밤 함께 술을 마신다.

술자리에서 해미는 이야기를 하며 손으로 귤을 까먹는 듯한 마임 동작을 해보인다. 그냥 재미로 배우고 있다는 마임. 해미는 마임을 잘 하려면,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귤이 없음을 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해미라는 존재와 그가 살아가는 삶을 압축해서 설명한다. 그는 가진 게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고, 카드빚에 쫓겨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 곳에서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를 춤추는 원주민을 만나겠다는 것. ‘리틀 헝거’가 배고픈 자들이라면,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자들이란다. 그는 ‘리틀 헝거’지만 ‘그레이트 헝거’를 추구한다.

아프리카로 떠나 집이 빈 동안 해미는 종수에게 보일러실에 버려져 ‘보일이’라고 부르며 그 집에서 키우고 있다는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상처가 깊이 방에 있다고는 하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는 보일이. 그리고 북향이라 하루에 단 한 번 남산타워에 반사되어 빛이 들어오는 그 방은 모두 해미를 또 종수를 닮았다. 존재가 있지만 존재가 보이지 않고, 마치 청춘이기에 없는 희망을 꿈꾸긴 하지만 그것의 실체를 손에 쥐지는 못하는 그들이다.

해미가 없는 사이 그 집에서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 보일이에게 밥을 주는 종수의 헛되어 보이지만 희망을 꿈꾸는 그 손짓은 그래서 처연하다.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저 편에 거대하게 압도하듯 발기한 채 서 있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자위를 하는 종수의 모습은 허망하다. 해미나 보일이처럼 그도 방 같은 세상에 누군가 던져주는 밥 한 끼가 없어 배고픈 이들이지만, 청춘이라는 아직도 한참을 더 살아야 하는 나이에 삶의 의미에 대한 헛된 허기를 느낀다. 그 간극은 너무나 커서 아직 세상의 이 비정함과 부조리함을 온통 이해하지 못한 이들을 알 수 없는 분노의 불길로 들끓게 만든다.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불꽃이 그 속에서 타들어간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해미가 거기서 만난 벤(스티븐 연)을 알게 되면서 종수는 점점 더 세상이 수수께끼 같다고 여긴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고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포르쉐를 끌고 다니며 럭셔리한 집에서 비슷한 동류의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는 그들의 삶은, 북한의 대남선전방송이 들려오는 파주에서 소똥을 치우며 법정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집나가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빚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를 마주하는 종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다”는 말은 그래서 이 청춘이 마주하고 있는 단단한 세상의 벽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 파주에 있는 종수의 집을 어느 날 해미와 함께 찾아온 벤은 그 포르쉐가 주차되어 있는 냄새나는 집 마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언발란스한 풍경을 보여준다. 문득 대마초를 꺼내 함께 피운 벤은 자신의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엄염한 범법행위가 아니냐고 종수는 말하지만, 벤은 그건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 어떤 선악의 의미가 들어있는 행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곳에 온 것도 비닐하우스 하나를 태우기 위한 사전답사라고 말한다.

해미는 문득 그 파주에 있었던 자신의 집과 그 집 근처에 있던 우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그 우물에 자신이 빠졌었고, 종수가 자신을 발견해 구해줬었다는 것. 종수는 그런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다. 마치 지금 해미가 벤을 만나 처한 사정이 바로 그 우물에 빠진 상황과 같다고 느끼며 그를 자신이 구해냈으면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벤이 그렇게 말하고 떠난 후, 종수는 비닐하우스에 그리고 사라진 우물에 집착한다. 버려진 비닐하우스 하나가 불타버려도 경찰이나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그 말은 마치 종수 자신의 ‘있지만 없는 존재’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사라진 우물의 존재가 원래 없던 것이 아니라, 본래는 있었던 것이라는 걸 발견하는 일이 그 ‘있지만 없는 존재’인 자신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 날 벤과 함께 온 해미가 술에 취해 대마초에 취해 마당에서 지는 노을을 보며 상의를 벗고 저편 날아가는 철새들처럼 춤을 췄을 때, 그것은 도취된 해미에게는 하나의 마임 같은 ‘행위예술’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음악이 사라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에 깨어난 해미는 그 갑작스런 현실에 당혹스러워하고 슬퍼한다. ‘없는 것을 잊으며’ 자신은 삶의 의미에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라 치부하며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현실이 닥쳐온다. 사실은 그저 배가 고픈 청춘일 뿐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종수는 아픈 말을 한다. 그렇게 옷을 마구 벗는 건 “창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 아픈 현실을 꺼내 놓은 후 종수 앞에서 해미는 마치 있지만 없는 보일이처럼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벤에 의한 것이라 의심하는 종수는 그를 미행하며 해미를 애타게 찾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해미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해미 같은 또 다른 배고픈 청춘이 벤의 옆에 나타나 해미가 걸어갔던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종수는 목격하게 된다.

가진 자들은 있는 것을 마치 제물처럼 즐기며 살아가고, 못 가진 자들은 없는 것을 잊으며 마치 있는 것처럼 살아가려 몸부림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알 수 없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버닝>은 날카롭게도 우리네 청춘들이 처하고 있는 ‘없지만 있는 것처럼’ 치부하며 버텨내는 그 안간힘을 포착해낸다. 유아인이 당혹스러운 그 얼굴로 표현해내는 청춘의 초상이 못내 아프게 다가온다.

충격적인 엔딩은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이 종수라는 인물이 또한 ‘없지만 있는 것처럼’ 그려낸 상상 혹은 소설의 일부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엔딩이 담고 있는 예술의 허망함 혹은 그나마 존재하는 희망의 양면은 역시 이창동 감독다운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을 드러낸다. 예술은 ‘없지만 있는 것처럼’ 하는 행위이고, 그래서 허망해보이지만 때론 그것이 세상을 인식하게 해주고 그래서 변화하게 해줄 수도 있는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버닝>이라는 영화가 그러하듯이.(사진:영화 '버닝')

'예쁜 누나' 손예진과 '키스' 감우성이 다시 깨운 연애시대

12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멜로는 여전히 설렌다. 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손예진과 감우성 이야기다. 12년 만에 멜로 드라마 주연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지금,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SBS <키스 먼저 할까요?>로 다시 한 번 설레는 멜로를 선사하는 중이다.

한 작품에서 멜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지만, 지금 두 사람이 하는 작품의 멜로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손예진이 열연하고 있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물론 나이가 좀 있는 누나와 젊은 동생 사이의 사랑을 담고 있지만, 풋풋한 청춘 멜로의 색깔을 갖고 있다. 손 한 번 잡는 일이나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이토록 떨리는 순간으로 다가올 수가 없다.

반면 감우성이 출연하고 있는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다. 제목에 이미 담겨 있듯이 스킨십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어른들의 멜로. 그래서 손을 잡고 키스를 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건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말 한 마디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감우성)이라는 인물이 전하는 휴머니즘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멜로다.

두 작품에서 각각 손예진과 감우성의 상대역할을 하는 배우들도 반짝반짝 빛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을 더 젊고 풋풋하게 만들어주는 장본인은 바로 상대역인 정해인이다. 소년 같은 얼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이 배우 앞에서 손예진이 무장해제되는 모습은 그래서 너무나 쉽게 공감이 간다. 사회적 통념 따위는 이 사랑 앞에 별 소용도 없어지는 것이다.

한편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감우성의 상대역할인 김선아는 드라마가 가진 무거움을 때론 비극적으로 때론 코미디로 풀어낼 줄 아는 배우다. 그래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의 무게를 때때로 웃음으로 풀어내주며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희비극적인 것들이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두 멜로드라마의 긴장감은 그들의 멜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생겨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이다. 누나의 친구, 친구의 동생이라는 그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정해인이 연기하는 서준희라는 인물은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빠마저 재혼을 해 사실상 윤진아(손예진)의 집안에서는 ‘가족’처럼 여겨지는 인물. 그러니 가족처럼 여겨지던 인물을 윤진아의 집안에서 그의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안순진(김선아)의 딸의 죽음이 손무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의 상황이 이들 사랑의 커다란 장애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두 장애물은 어떤 면에서는 죽음(손무한의)이 죽음을(안순진의 딸의) 상쇄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따뜻해진 봄 날씨에 이 두 작품은 봄 바람 같은 멜로감각을 다시금 깨워놓고 있다. 좀체 본격 멜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즘에 이만한 설렘을 줄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애시대>에서 만났던 손예진과 감우성은 이제 다시 멜로로 돌아와 더 원숙해진 멜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사진:SBS)

‘나의 아저씨’, 주도권 쥔 이지은이 주는 묘한 카타르시스

이 드라마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기대된다.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첫 회는 한 마디로 짠 내가 풀풀 진동했다. 이지안(이지은)은 사채업자에게 폭행까지 당하며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박동훈(이선균)은 엉뚱하게 상무와 이름이 비슷해 잘못 배달된 뇌물봉투로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했다. 특히 아르바이트에서 손님이 남긴 음식을 싸와 배를 채우고, 운신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할머니(손숙)를 보살펴야 하는 이지안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해보였다.

하지만 단 2회 만에 이 모든 상황이 뒤집어졌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관계를 눈치 채고 도준영 대표(김영민)가 박동운 상무(정해균)을 퇴출시키려 뇌물을 보냈으며, 박동훈의 아내 윤희(이지아)와 불륜 관계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서 이지안이 모든 주도권을 쥐게 된 것. 이지안이 박동훈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책상 서랍에 넣었던 뇌물 봉투를 훔쳐간 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지안이 그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박동훈이 뇌물을 거부한 모양새가 된 것. 

회사 내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이지안이 도준영과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대표이사지만 이지안은 그런 건 아랑곳없이 그에게 맹랑한 제안을 한다. 자신이 박동운 상무와 박동훈 부장을 모두 처리하겠다는 제안이다.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제안이지만 이지안이 보여준 때론 과감하고 때론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들을 떠올려 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제안이다. 그 순간 대표이사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아저씨’가 아닌 ‘나’ 즉 이지안이 모든 상황을 쥐고 흔드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기서 아저씨에 해당되는 박동훈은 한 마디로 착해빠진 데다 어딘가 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뇌물 봉투를 받았을 때도 그냥 갖기보다는 양심 때문에 머뭇댔던 인물. 그냥 성실히 자기 하는 일을 해가며, 노모와 형제들을 부양하다시피 하는 가장이고, 아내가 도준영과 불륜관계이며 곧 이혼을 요구할 거라는 것도 까마득히 모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부장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힘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 박동훈과 당장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할 것 같은 영악한 청춘 이지안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박동훈이 이지안을 챙기거나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위치로 보이지만, 이 관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어딘지 불쌍하고 억울해 보이는 박동훈을 이 영악한 이지안이 도와주기를 시청자들이 오히려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거나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두 세대를 주인공을 내세웠다. 하나는 이제 곧 퇴출될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저씨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희망조차 찾기 힘든 삶을 버텨내며 그 살벌한 현실 속에서 단단해진 청춘이다. 과연 이 청춘은 아저씨를 구해주는 존재가 될까 아니면 그가 대표이사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를 퇴출시키는 존재가 될까. 그 모든 주도권이 이 작고 가녀리게 보이는 청춘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껏 봐왔던 대부분의 빈부와 세대와 성별의 구도를 훌쩍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사진:tvN)

'아저씨' 이선균·이지은, 24살 차이 멜로 괜한 걱정이었나

박동훈(이선균)은 형 박상훈(박호산)과 동생 박기훈(송새벽)과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팍팍한 중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년퇴직 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리고 있다는 박상훈.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재취업은 아파트 경비 자리 얻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박기훈은 영화 감독이 꿈이지만 만년 조연출로 늙어가고 있다. 한 때는 주목받기도 했었지만 그 후로는 영화판에서 마모되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박동훈은 나아 보이지만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무게가 온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퇴근 해 혼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게 유일한 휴식이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다니는 회사 대표이사 도준영(김영민)과 불륜 중이다. 

tvN 새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들의 위기로 시작한다. 박상훈이 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저씨가 나오는 공포영화’를 말하듯, 아저씨들은 퇴직 후 사업에 망하고 재취업도 못한 채 심지어 경조사에조차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절망하고 분노한다. 돈이 없어 동생 박동훈에게 손을 벌리는 그 심정이 오죽할까. 그런 형이 큰 일을 낼까 걱정이라며 엄마 변요순(고두심)이 박동훈을 찾아와 가게라도 내주자며 5천만 원 대출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던 차에 마치 운명처럼 그에게 뇌물 상품권 5천만 원이 퀵으로 잘못 배달된다. 경쟁관계에 있는 도준영(김영민)이 박동운 상무(정해균)를 물 먹이려 보낸 돈이지만 배달사고가 난 것. 결국 도준영은 박동훈을 희생양 삼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아저씨들의 위기만큼 처절한 청춘의 위기가 겹쳐진다. 그 청춘은 박동훈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알바생 이지안(아이유)이다. 무슨 일인지 사채업자에게 심지어 두드려 맞아가며 돈을 갚아나가고 있는 이 청춘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양원 비용이 없어 청각장애에 운신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음식점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이 버리고 간 음식을 챙겨와 역시 사무실에서 훔쳐온 믹스 커피와 함께 먹는 게 그의 유일한 휴식이다. 불조차 켜지 않는 집에서 꾸역꾸역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입안에 구겨 넣고, 달달한 믹스 커피를 꼭 두 봉씩 녹여 마시는 삶. 그에게 꺼져있는 불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박동훈에게 잘못 배달된 뇌물 봉투를 우연히 보게 된 이지안은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그 뇌물을 훔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접근한다. 뇌물 봉투를 받고 당황한 박동훈이 대충 서류철과 함께 책상에 구겨 넣어둔 걸 안 이지안은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신 후 그가 집에 간 사이 사무실에 몰래 들어와 그 뇌물 봉투를 꺼내간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혹독한 현실에 내몰린 청춘 이지안과, 이제 돈도 사라졌지만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아저씨 박동훈. 그들의 위기가 격돌한다. 

<나의 아저씨>가 아저씨라는 중년세대와 청춘의 위기를 동시에 병치한 건,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다. 이제 직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 아저씨 세대는 아예 취업 전선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는 청춘 세대들과 현실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건 일자리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지만, 그래서 비롯되는 갈등은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감정적인 차원으로까지 치닫곤 한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 세대를 대변하는 박동훈과 그 형제들과, 청춘 세대를 대변하는 이지안이 부딪치면서도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애초에 24살 차이의 멜로라는 소재 때문에 갖게 되는 어떤 불편함은 그것을 단지 멜로 차원으로만 바라봤을 때 나올 수 있는 오해가 아닐까. 어쩌면 <나의 아저씨>는 그 24살 차이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을 화해하는 드라마일 수도 있으니.(사진:tvN)

‘소확행’ 작품 속 음식, 기존 먹방·쿡방과는 뭐가 다른가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건 영화, 예능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다. 지금 같은 비수기에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는 <리틀 포레스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그렇고, <삼시세끼>에 이은 <윤식당2>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 이른바 소확행 작품들의 중심에 서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다. 한때 먹방과 쿡방이 하나의 트렌드로 등장해 식욕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영상들이 넘쳐났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음식을 담은 소확행 작품들의 행보는 이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서 음식은 그저 식욕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고 하나의 소통이자 치유가 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살이에 지친 청춘이 엄마가 떠나버려 빈 고향집으로 내려와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밭과 들에서 계절에 따라 나는 것들을 갖고 스스로 음식을 챙겨먹는 그 과정들은 패스트푸드와 편의점으로 대변되는 도시생활에서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청춘이 그 요리를 알려준 집 떠난 엄마와 소통하며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식을 통한 소통과 위로의 이야기는 손예진과 소지섭 주연의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등장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계란 프라이가 그렇다. 너무나 단순한 요리지만 아이를 위해 그걸 만드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은 우진(소지섭)을 위해, 다시 살아 돌아왔지만 곧 떠나야할 아내 수아(손예진)는 아들에게 계란프라이 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아내가 떠나고도 아들이 만들어주는 계란프라이에는 그 따뜻한 온기가 남다르게 남는다.

한편 최근 화제가 된 예능 프로그램 tvN <윤식당2> 역시 한식당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음식은 그저 입맛을 돋우는 욕망의 대상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이라는 낯선 곳에서 거기 사는 주민들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영업을 종료하고 돌아오는 그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마치 이웃 같은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음식이 매개가 되어 생겨난 마법 같은 일이다.

이처럼 음식이 이른바 ‘소확행’ 라이프 트렌드를 드러내는 작품들 속에서 단골소재가 되고 있는 건, 그 일상적인 소재가 갖는 특별함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더라도 그걸 만드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 작은 연결고리는 그래서 작아도 확실한 행복이 되기도 하는 것. 그저 돈으로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 챙기는 음식을 눈여겨보게 되고 거기서 어떤 소통과 위로의 따뜻함이 주는 행복감을 대중들은 이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거대한 행복을 꿈꾸는 것이 허망하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이 찾아낸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다.(사진:영화'리틀 포레스트')

‘라이브’가 장르 속 캐릭터들의 클리셰를 깨려는 이유는

tvN 새 주말드라마 <라이브>의 첫 시퀀스는 눈 오는 날 시위현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길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우는 경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배가 고픈 듯 허겁지겁 식판의 밥을 뜨는 염상수(이광수)는 거기 한 켠에서 역시 밥을 먹는 한정오(정유미)와 살짝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게 됐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한정오는 자식의 전화를 받고도 그런 사람 모른다며 끊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열심히 보험영업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남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세상 앞에서 분노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토록 지워버리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찾아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으로 돈을 요구하고, 그 돈으로 경찰시험을 준비해 경찰이 된다.

염상수 역시 비정규직 건물 청소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약국의 재고정리까지 도와주며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호주로 도망치듯 나가버린 형과 함께 살아오며 어떻게든 취업을 하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자신이 정규직이 되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회사가 사실은 사기 기업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절망하던 차에 마침 벽보에 붙어 있던 경찰공무원 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고시원생활을 통해 겨우겨우 그는 경찰시험을 통과한다. 

흔히 드라마 속 청춘들의 모습은 ‘힘겨워도 나름 재밌게 살아가는’ 이른바 ‘청춘로맨스’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짠내 나도 ‘청춘이기 때문에’ 밝고 나름 달달한 모습들이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지금의 청춘들의 모습일까. <라이브>가 비추는 청춘의 초상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다.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모집공고에 내걸었으면서 실제로는 스펙 타령만 하고 아예 남성 취업자들만 뽑겠다는 식으로 여성들을 제외시키는 채용관들 앞에서 한정오는 무력감을 느낀다. 

면접 뒤에 함께 모여 술자리도 갖는 같은 처지들이지만 거기서도 남성과 여성이 그 성차별적 면접 분위기를 놓고 싸운다. 그건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그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정오는 스펙이 아닌 실력만으로 뽑는 경찰 공무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합격했다고 그것으로 경쟁이 끝난 게 아니다. 중앙경찰학교 안에서도 경쟁에서 누락되어 탈락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 그래도 이 악물고 그 경쟁을 버텨내려 한다. 

역시 부도를 내고 도망친 회사에 정규직을 희망했던 염상수는 그 절망의 끝에서 경찰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한정오나 염상수나 한가롭게 연애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생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최소한 짐은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 그래서 이 청춘들의 자화상은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 속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클리셰 깨기는 청춘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애초 드라마 시작점에 보여줬던 경찰들의 면면이 진짜 이 드라마가 깨려는 클리셰다. 우리게 경찰이란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 앞에 방패를 들고 막아서던 이른바 ‘공권력’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 심지어 철거현장에서 살기 위해 그 곳을 점거하고 있는 서민들을 무자비하게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비정한 존재들로까지 이미지화되어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늘 뒷북을 치는 무능함의 상징처럼 그려온 게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속 경찰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까. ‘공권력’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면 그들은 마치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까지 여겨지지만, 사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어쩌면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불의한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지, 그걸 감수해야 하는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오히려 살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그 무수한 딜레마 속에 서 있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라이브’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이미지로만 그려져 왔던 실제와는 다른 그런 모습과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드라마의 다짐이 이 제목에 담겨있다. 중앙경찰학교에서 마지막 현장투입의 시험대에 들어가는 이들 청춘들에게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상관은 “아무 것도 하지마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때리면 맞고 밀고 들어와도 그 자리를 지키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에 손을 부르르 떤다. 우리가 생각했던 ‘공권력’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진짜 모습이다.(사진:tvN)

‘키스먼저’ 야하기는커녕 먹먹한, 독특한 19금 드라마의 등장

“같이 잘래요?” 사실 19금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는 야한 뉘앙스를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는 이 대사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야하기는커녕 먹먹해진다. 그건 진짜 혼자이기 때문에 솔로의 중년이 겪는 불면의 고통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감우성)이 “자러 올래요?”라고 던진 질문에 1도 기다리지 않고 “네”라고 답하는 순진(김선아)의 모습에서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가 느껴진다. 

바로 이런 점은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멜로의 지점들이다. 청춘의 멜로라면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사랑의 궁극적 결실로서 등장하지만, 이들 중년의 멜로는 키스보다 ‘하룻밤’보다 더 큰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차갑게 식어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말 한 마디가 된다. 그래서 19금의 상황들이 대담하게도 전개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놀라운 감성들이 포착된다.

‘오늘만 살자’는 문신을 새긴 후, 안 해본 짓을 하겠다며 진창 술을 마시고 오래도록 안 해봤던 ‘같이 자는 일’을 하기 위해 코스프레 무인 모텔을 찾은 그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감성들 역시 이 드라마만이 갖는 멜로의 독특한 코드를 보여준다. 시청 앞 지하철 콘셉트로 꾸며진 방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그 공간이 주는 독특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기보다는 지하철이 주는 남다른 감흥에 젖어든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르는 그 모텔 방의 정경 속에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무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그들을 같은 시간대의 같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있는 연인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버린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갔을 것이지만, 어느 날 그렇게 한 공간에 서 있게 된 사람들에게서 새삼 느껴지는 기적 같은 느낌을 무한은 말한다. 그래서 그 곳은 지하철 콘셉트의 모텔이 주는 에로틱한 상상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시간을 달리는 공간 위에서 드디어 마주한 운명적인 만남을 더 떠올리게 한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씩 결혼을 했고 배우자들의 배신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처를 겪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도 딱지가 앉은 채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먼저 두 사람은 단지 남녀의 욕망으로 이끌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없는 고적한 한겨울의 동물원에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무한이 자살을 시도하려던 순진을 애써 구해낸 건 어쩌면 자신을 구해내는 일과 다른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욕망의 이끌림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고 그 상처가 내 것인 양 다독이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의 19금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되지만, 야하기보다는 먹먹해진다. 19금 상황 속에서도 욕망이 저만치 뒤로 물러나고 대신 그 순간이 주는 따뜻한 ‘기억’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더더욱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스 하면 당신이 오늘도 기억을 지울 것 같아서” 무한은 순진에게 키스 하지 못한다. 

웬만한 일들에 그리 놀라지도 않고, 이제는 밖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별로 없어 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는 과정은 그래서 가슴 시린 느낌으로 다가온다. 19금이지만 먹먹한 이상한 드라마의 등장이다.(사진:SBS)

‘와이키키’, 부족해도 순수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으라차차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다.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드라마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시트콤에 가깝다. 하지만 시트콤이라고 해서 드라마보다 격이 낮거나 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웃음의 강도가 그만큼 세다는 얘기다. 

실로 이 드라마는 아예 작정한 듯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단역배우인 이준기(이이경)가 영화에 캐스팅되어 나간 현장에서 영화계의 전설 김희자(김서형)의 상대역이 되어 겪는 고충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배역에 몰입해 사정없이 상대역이 이준기를 패고, 눈물과 함께 떨어지는 김희자의 콧물이 이준기의 입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식의 원초적인 코미디는 이미 강동구(김정현)가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장면에서도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코미디 속에 이 드라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또한 놓치지 않는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토록 다시 만나기를 애원했던 헤어진 연인을 만난 동구가 화장실이 급해 할 이야기를 못하는 장면이 그렇다. 

영화 현장에서 김희자의 과도한 몰입 때문에 심하게 두드려 맞은 이준기가 애초에 영화 캐스팅에 가졌던 그 설렘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신 다음 장면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그 상황의 반전으로 웃음을 준다. 당하는 코미디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소화해내는 이이경의 연기는 이 장면을 더 빵빵 터지게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는 원초적인 웃음 뒤에 이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웃픈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배역 하나 따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준기가 김희자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유명한 배우인 그의 아버지 이덕화가 뒤에서 힘을 써준 덕분이었던 것. 이준기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서야 떳떳할 것 같다며 영화 감독과 김희자에게도 사죄한다. 결국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김희자가 이준기가 아침드라마에 나올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흐뭇한 광경은 백도 줄도 아닌 실력으로 올곧이 서려 안간힘을 쓰는 이 순수한 청춘에 ‘으라차차’ 응원을 보내게 만든다.

이런 점은 언론사 서류전형을 간신히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간 강서진(고원희)의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과 부딪쳐 하얀 블라우스에 묻은 커피를 지우느라 정신없던 강서진이 너무 급해 블라우스를 입지 않고 정장만 겉에 걸치고 나간 면접자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은 우습기 그지없다. 

하지만 고깃집에서 하는 특이한 면접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여성 지원자에게 성희롱을 하는 면접관에게 강서진이 돼지갈비로 싸대기를 날리는 사이다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성희롱을 당한 그 여성 지원자는 강서진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이 살기 위해 면접관을 오히려 챙기는 모습을 보여줘 씁쓸함을 안긴다. 취업을 하기 위해 성희롱까지도 감수해내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으라차차 와이키키> 특유의 웃픈 상황으로 담아낸 것.

이이경과 고원희는 이 웃음 가득한 드라마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배우다. 이이경은 매회 갖가지 웃픈 상황 속에서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선사하고, 고원희는 심지어 수염 나는 여자라는 캐릭터까지 소화해내며 웃음을 준다. 청춘의 왁자한 웃음이 가득한 드라마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짠내까지 물씬 느껴지는 이야기가 이토록 잘 살아나는 건 이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덕분이 아닐까. 면접을 위해서든 연기를 위해서든 열정을 다하는 드라마 속 청춘들의 이야기와 이들 신인배우들의 면면은 그래서 어딘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다.(사진:JTBC)

'감빵생활'이 건드린 '노오력'과 최선 요구하는 사회“나 이제 그만 노력할래.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프로야구 슈퍼스타인 김제혁(박해수)은 의외로 선선히 은퇴를 선언했다. 김제혁 선수가 슈퍼스타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인내의 아이콘’이고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위기를 맞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인내와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깨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재활치료를 통해 재기할 거라 주변사람들은 믿고 있었지만 김제혁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심지어 “야구만 은퇴하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김제혁의 이 은퇴선언이 담는 함의는 작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포기보다는 노력을 통한 극복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왜 이렇게 선선히 포기를 선언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김제혁이 어쩌다 듣게 된 의사와 팀 매니저들 사이의 대화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그 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만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굴레로 스스로 하고픈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결국 은퇴선언 방송이 되어버린 감방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김제혁이 요구한 건 담배 한 대였다. 운동선수로서 모든 걸 절제하고 살아왔던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이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김제혁이 마침 감방 동료들이 벌이는 술판에서 “저도 술 잘 마셔요”하며 합류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담배도 필 줄 알고 술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 다만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극도로 절제했을 뿐.

김제혁이라는 인물이 어딘지 느리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아채기 힘들게 된 것도 모두가 그에게 희망하는 슈퍼스타로서의 면면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때 아닌 사건에 휘말려 구치소에 가게 되고 또 거기서 교도소로까지 오게 됐으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구를 포기하게 된 상황. 이 드라마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제혁은 이처럼 끝없이 현실적인 추락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성공하는 인물이 아닌 추락하는 인물로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가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그건 섣불리 성공이나 꿈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사회는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꿈과 노력으로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현실인가. 이런 현실을 마주한 청춘들은 그래서 그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김제혁은 자신이 그런 ‘노오력’의 아이콘이 되어 누군가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헛된 희망으로 남기보다는 소소해도 행복한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그동안 절제하며 살아오느라 놓쳐온 많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노오력’을 해오느라 무표정했던 삶에 표정을 찾아보기로 한다.

김제혁의 선택은 사회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 선택이고 패배자 같은 선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최선의 ‘슬기로운 선택’이다. 없는 희망은 애써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빨리 포기하고 현실적인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청춘들이 막막한 현실과 맞닥뜨려 갖게 된 ‘슬기로운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도대체 현재를 희생시키고 포기하면서 얻는 미래의 성공과 꿈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도 불확실한 미래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김제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건 ‘부정의 긍정화’다. 즉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이를 깨쳐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빨리 긍정하는 것이라는 걸 이 인물은 보여준다. 실로 감방생활을 닮은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나름 저마다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따뜻하게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고백부부’, 무엇이 이 드라마에 대한 열광 만들었나

사실 ‘예능 드라마’라는 지칭에는 약간 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낮춰보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정통적인 드라마 형태라기보다는 예능적 요소를 덧댄 드라마라는 측면에서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현실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기 마련이다. 

KBS <고백부부> 역시 그 시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청춘시절로의 타임슬립을 한다는 그 설정이 그런 선입견을 더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물론 타임슬립 장치를 사용해서도 얼마든지 진지한 이야기를 담는 드라마들도 많았지만, 예능 드라마라는 지칭과 타임슬립이 만나니 조금은 어설픈 코미디 설정의 드라마 정도를 예상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백부부>는 의외로 처절한 현실 부부의 고통스런 삶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한 삶이라는 이유로 현실에 치여 점점 마모되어가는 부부의 삶. 그래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어떻게 젊은 날 살아왔으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족을 꾸리게 됐던가 조차 잊어버린 채 결국 이혼을 결정하는 최반도(손호준)와 마진주(장나라)의 이야기.

그렇게 현실적인 면들을 깔아놓고 이뤄진 청춘으로의 타임슬립은 그래서 단순히 젊음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의 신기함과 놀라움, 즐거움의 차원을 뛰어넘어 그 때의 시간을 다시금 여행함으로써 현재를 되돌아보는 장치가 되었다. 

물론 대학시절이 주는 그 풋풋함과 첫사랑이 피어나던 시절의 설렘 같은 것들이 드라마에 청춘로맨스로서의 달달함을 선사했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혹은 장모)를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회한이라던가, 아이에 대한 남다른 감정 같은 걸 일깨웠고 나아가 잃고 잊었던 배우자의 소중함을 새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파경에 이른 부부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물론 어찌 보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살벌한 사회 현실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회 현실을 바꿔나가려는 노력보다는 변해버린 자신의 문제로 환원해 과거로 돌아가 그 자신을 되찾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이 드라마의 기조는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보수적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나, 부부 간의 사랑이야기 같은 것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잡아 끌 수밖에 없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KBS라는 방송사의 다소 보수적인 시청층에게는 이만큼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큰 공적은 이 풋풋한 청춘의 모습과 동시에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의 아저씨, 아줌마의 면면을 한 몸으로 자연스럽게 끌어안은 장나라와 손호준에게 있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타고난 동안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넘나드는 그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낸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이만한 몰입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KBS는 <프로듀사>의 성공 이래 금토 시간대에 여러 차례 예능 드라마라는 타이틀로 드라마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 이번 <고백부부>가 성공을 거둔 데는 역시 예능 드라마라는 선입견을 깨는 진지함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타깃층도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무엇보다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했다는 것. 그것이 <고백부부>가 이만한 반향을 일으킨 요인이 되었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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