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변요한과 김민정, 어른 없는 세상의 청춘들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나를 낳아주신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하는 걸까. 심지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게다. 나이가 많다 해도 어른다운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이들을 어른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는 부모라면 그 길을 막아서고 저항하는 것이 진정 후대가 할 수 있는 부모를 위한 일이 아닐까.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김희성(변요한)과 쿠도 히나(김민정)가 취한 삶의 자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하는 일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고 거기에 반기를 든 자식들이다. 김희성의 아버지 김안평(김동균)은 비겁한 기회주의자다. 그의 조부 역시 독하디독한 악덕 지주였다. 조선사람 중 그들의 땅을 안 밟아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석꾼 부자지만, 김희성은 이런 부모와 집안으로부터 도망중이다.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 유학을 하다 돌아와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글로리호텔를 숙소로 살아간다. 저잣거리 국밥집에서 갑자기 물세례를 받아도 그게 조부 혹은 아버지 때문일 거라 여기며 그저 허허 웃는 인물이다.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그는 그래서 탕진하듯 청춘의 시간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룸펜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부모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고애신(김태리)이라는 인물이 가슴에 들어온다. 그가 그저 반가의 애기씨가 아니라 밤이면 총을 들고 나서는 의병 스나이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희성은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활동을 돕기 시작한다. 고애신이 자신을 위장하려 입은 옷을 똑같이 차려 입고 거리로 나감으로써 그 옷을 유행시키고 그래서 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한다. 가진 건 돈뿐인 아버지의 이름 석 자라, 그걸 이용해 돈을 빌리러 다니고 그 돈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쿠도 히나(김민정)는 더 지독한 부모를 두었다. 그는 바로 뼛속까지 친일파인 이완익(김희성)이다. 쿠도 히나는 그래서 세 가지를 빼앗겼다. 자신의 엄마와 청춘 그리고 이양화라는 본래 자신의 이름이 그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뺏기지 않겠다고 자신을 단련시켜왔다. 딸을 일본인 거부에게 팔아치운 아버지가 다시 그를 찾아와 여전히 그를 이용해먹으려 하지만, 그는 그를 더 이상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도모하려는 일들을 막기 위해 글로리호텔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그건 의병활동을 알게 모르게 돕는 일이 되어간다. 

그런데 <미스터 션샤인>은 왜 하필 이런 김희성과 쿠도 히나 같은 부모에 저항하는 청춘들을 인물로 세우게 된 걸까. 그건 어쩌면 그 개화기라는 시대가 양산한 친일파들이 했던 처참한 일들이 실제하고,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금까지 청춘들에게 대물림된 힘겨운 현실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정을 농단함으로서 그 아픈 현실은 고스란히 후대의 몫이 되어버리는 그 현실은 그러고 보면 그 기원이 이미 저 개화기 시절부터가 아니었던가 싶다.

시대를 다룬 드라마는 그 시대를 가져와 현재를 얘기하기 마련이다. 김희성과 쿠도 히나 같은 인물에게서 ‘어른 없는 세상의 청춘’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다. 올바른 선택이 아닌 개인적 욕망과 치부를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선택을 해온 어른 없는 세상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지금의 청춘들이 물려받은 치열한 현실은 그 어른 없는 세상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김희성과 쿠도 히나 같은 인물이 남다른 청춘의 초상으로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꽃할배’ 여행의 끝, 김용건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가 눈물을 흘릴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니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늘 유쾌하고 친절하며 배려 깊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는 그것에 즐거워하는 막내 어르신. 그런 모습이 tvN 예능 <꽃보다 할배>가 여행을 통해 보여준 김용건이었다. 

그런데 그는 여행의 끝에서 두 번의 눈물을 보였다. 그 첫 번째는 빈에서 찾았던 음악회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아버지’를 듣다 흘린 눈물이었다. 음악이 가진 힘은 그 노래를 듣던 기억들을 순식간에 소환해낸다는 것이 아닐까. 김용건은 늘 들었던 그 노래를 바로 눈앞에서 들으니 뭉클한 감정이 피어올랐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들이 그 노래를 타고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떠올랐다는 것. “마치 나를 위한 음악회 같았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두 번째 눈물은 실로 의외였고 반전이었다. 여행의 막바지에 나영석 PD가 던진 질문,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싶으시냐”는 그 질문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며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이었다. 그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한 건 남달랐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떠올려서다. “어릴 때 형제가 많아서 힘들었다. 6.25로 가족이 몰락하기도 했고, 젖을 제대로 먹든 분유를 먹든 이유식을 먹든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눈물은 우리가 <꽃보다 할배>를 통해 봤던 그의 밝기만한 모습 이면에 놓인 아픔 같은 것들을 끄집어냈다. 김용건이 음악회에서 노래를 들으며 주마등처럼 떠올랐던 과거처럼, 나영석 PD의 질문에 떠올렸던 어려운 어린 시절처럼, 그의 눈물은 그간 <꽃보다 할배>에서 그가 주었던 남다른 모습들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생각해보면 마치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듯 끊임없이 농담을 던졌던 그였다. 이동 중에 혹여나 침묵이 흐르면 “건건이는 어디 갔어?”라고 물어볼 정도로 그의 농담은 이들의 여행에는 하나의 공기처럼 존재했다. 그 허허로운 농담에 ‘건건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김용건의 그 농담이 있어 여행은 더더욱 활기를 띨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해 다른 어르신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백일섭 옆에서 괜스레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르며 ‘그 때’를 소환해내는 김용건이 있어 백일섭은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다소 지칠 수 있는 이동 간에도 그의 농담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다. 그건 제작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어르신들과의 여행에서 그는 젊은 제작진들에게도 존칭을 하고 농담을 던짐으로써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떠들면서 입술이 마른다며 립글로즈를 바르는 모습은 사실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마치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스스로를 낮춰 웃음을 주려 했던 김용건. 여행의 끝에서 그가 보여준 눈물은 그의 웃음과 농담들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어쩌면 그냥 즐거운 사람이 아니라 즐겁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노력의 이면에는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삶의 버거움이 가려져 있었다는 것. 본래 농담이란 그 힘겨운 현실을 다소 허허롭더라도 웃음으로 넘기기 위해 우리가 하는 본능적인 행동들이 아닌가. 김용건의 눈물은 그래서 그가 했던 농담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떠올리게 했다. 그건 마치 우리가 왜 힘겨워도 애써 웃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사진:tvN)

‘식샤를 합시다3’에서 먹방을 빼면 멜로밖에 없다는 건

먹어도 너무 먹는다. 물론 애초부터 <식샤를 합시다>는 먹방을 소재로 했던 드라마였다. 그러니 음식이 등장하고, 그걸 먹는 장면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분량이 상상 이상이다. 7회에 등장한 청춘시절 구대영(윤두준)이 이지우(백진희)와 떡볶이집에서 만나 한바탕 떡볶이 먹방을 하는 장면은 무려 8분 가까이 이어졌다. 

이지우는 구대영에게 떡볶이와 튀김은 물론이고 다 먹은 뒤 밥을 볶아 먹고는 후식으로 팥빙수를 먹는 것까지 그 노하우들을 설명했다. 떡볶이에는 계란 후라이를 넣어 노른자를 풀어 먹으면 기름이 잘 섞여 더 고소하고, 튀김은 떡볶이 국물이 아닌 마요네즈에 찍어 먹어야 눅눅하지 않고 더 맛있다고 했다. 밥을 볶은 데는 단무지를 잘게 잘라 넣어 아삭한 식감과 새콤한 맛을 더하고, 매운 음식을 먹었으니 후식으로 시원한 팥빙수를 먹어줘야 제 맛이라는 것. 

그 장면만 놓고 보면 이게 드라마인지 아니면 먹방 프로그램인지가 헷갈린다. 음식 먹는 노하우를 아주 자세히 구체적으로 설파하면서 간간히 구대영과 이지우 사이에 오가는 썸을 슬쩍 슬쩍 드러내는 것. <식샤를 합시다>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드라마인가를 이 장면은 잘 보여준다.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일단 먹방이 갖는 감각적인 요소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욕망을 끄는 드라마가 바로 <식샤를 합시다>다. 

그래서 먹방을 빼놓고 보면 도대체 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가 애매해진다. 물론 본래 의도는 살다보니 ‘입맛을 잃어버린’ 이지우 같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음식을 통해 청춘시절의 설렘을 찾아 되살려보겠다는 것. 그래서 입맛도 살리고 살맛도 나게 하겠다는 게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먹방이 점점 전면에 내세워지고 본격화되고는 있지만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는 멜로 구도 속에서 그 애초 의도는 점점 흐릿해져간다. 

보험왕으로서 영업을 하던 구대영은 바로 그런 직업적인 요소가 얽혀 그가 보여주는 음식을 먹는 장면에도 묘한 페이소스 같은 걸 만들었다. 하지만 시즌3에서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선우선(안우연)의 회사에 스카웃되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먹는 노하우를 설파하기 시작한 구대영에게서는 그런 직업적인 배경의 그림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어버린 옛 여자친구와 새로 관계를 맺어가는 이지우와의 엇나가고 만나는 멜로적 상황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7회 한 편의 이야기를 먹방을 빼고 보면, 여자친구가 있는 줄 알고 구대영을 피했던 이지우가 그 여자친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청춘 시절에 회고담으로서 시험기간에 벌어졌던 일들이 다뤄졌지만 시트콤적인 해프닝 그 이상은 아니었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식샤를 합시다3>가 아쉽게 느껴지는 건 그 좋은 소재, 이를테면 ‘음식을 통한 삶의 위로 혹은 회복’ 같은 이야기를 너무 평이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오해로 빚어진 남녀관계의 소원함이 실제사실을 알고 풀어지는 그런 단순한 멜로 그 이상을 담기는 어려운 것일까. 너무 길어진 먹방만큼 단순한 해프닝과 입맛을 자극하는 장면들 그 이상의 ‘삶의 허기’를 담아낼 수는 없는 걸까.(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눈물 났던 당대 의병들의 숭고한 선택들

“작금의 조선에 조선의 것이 없다.” 구동매(유연석)에게 붙잡힌 이름 모를 아무개, 의병은 칼날이 자신의 목줄기에 닿아 있는 와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구동매는 그 의연함이 궁금하다. 자신을 돈이 되는 일에 목숨을 걸지만, 이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걸까. 그래서 묻는다. 그 이유를. 

그러자 이 아무개가 조선의 사정들을 줄줄이 읊어 놓는다. 열강들이 수탈해간 조선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하는 것”이란다. “이런 나라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른 이를 발고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해놓은 구동매는 적이 당황한다. 그 아무개는 “내게 단 한 명의 이름도 듣지 못할 것”이라며 스스로 칼날을 목으로 당긴다. 가까스로 자결하는 걸 막은 구동매가 “미쳤냐”고 묻자, 아무개가 말한다. “들키면 튀고 잡히면 죽는다.” 그리고 백 번을 잡아도 자신의 동지들 누구든 그렇게 할 거라고 일갈한다. 칼자루는 구동매가 쥐었지만 그는 아무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처참하게 베인다. 자신의 삶이 새삼 보잘 것 없어지는 그런 느낌.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이 짧은 장면은 구동매에게 앞으로 일어날 심경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아무개로 남을 그들의 숭고한 선택에 대한 뭉클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진정 하려는 이야기일 게다. 그 중에는 지체 높은 애기씨도 있지만 이름 모를 촌부들도 있고, 노비에 백정 출신도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는지 알 수 없는 아낙네도 있다. 

주인공들은 그 많은 아무개로 남은 의병들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서 있다. 머슴이었지만 부모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조선인, 백정의 아들로 일본에서 칼잡이가 되어 돌아온 일본인 조선인, 그리고 악덕 지주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삶으로 자신을 저주하듯 살아가는 룸펜 조선인,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일본인에게 팔려가듯 결혼해 남편이 죽자 돌아와 호텔사업을 하는 일본인 조선인 여인, 미군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안고 포수로 위장해 의병활동을 하고 있는 조선인 등등. 

그 중 유진 초이(이병헌)와 구동매 그리고 김희성(변요한)은 서로 다른 국적을 갖고 있지만 묘한 관계로 얽힌다. 어느 주점에서 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그들에게 주인이 ‘동무’냐고 묻자 그들은 모두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김희성이 자신들을 “미국인인 조선인, 일본인인 조선인, 잘생긴 조선인”이라고 농담처럼 표현한 것처럼,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하나로 묶여져 있다. 그리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자꾸만 일깨우는 한 인물이 존재한다. 바로 고애신(김태리)이다. 고애신이 선택한 쓸쓸하지만 숭고한 그 선택 앞에 세 남자는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까” 고민 중이다. 

유진이 애신에게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사대부 연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라고 묻자 애신이 하는 말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거사에 나갈 때마다 생각하오. 죽음의 무게에 대해. 그래서 정확히 쏘고 빨리 튀지....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오. 할아버님껜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개화기 혼돈의 시대이기는 하나 그 나라를 위해 초개같은 자신의 삶을 던졌던 청춘들 역시 어찌 사랑이 없었을까. 애신의 유진을 바라보는 사랑이 가득한 눈빛과 그러면서도 의병의 삶을 향해 불꽃처럼 달려갈 거라는 그 말의 교차는 그래서 더더욱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거기에서는 의연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선택은 그래서 나비효과를 만들어내며 주변 사람들을 움직인다. 어느 아무개 의병의 말 몇 마디에 구동매가 칼날보다 더 아픈 상처를 입었듯이, 애신의 불꽃 같은 몇 마디 담담한 이야기는 유진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참 못됐습니다. 저는 저 여인의 뜨거움과 잔인함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꽃 속으로. 한 걸음 더. 요새 전 아주 크게 망한 것 같습니다.’ 유진의 이 읊조림은 그가 이 여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애신이 말했듯 출신도 성차도 뛰어넘는 숭고한 대의다. ‘얼굴을 가리면’ 그들에게는 조선이 그토록 신분과 계급으로 짓눌렀던 억압을 뛰어넘어 ‘다 같은 아무개’가 된다. 추운 겨울 꽁꽁 언 얼음길을 애신과 유진이 함께 걸으며 유진이 자신을 노비신분이라 털어놓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살 얼음길 같은 그 ‘함께 가는 길’에 유진은 그 신분차이가 큰 장벽이라 여기지만 과연 애신도 그럴까. 죽음을 향해 기꺼이 달려가는 불꽃같은 삶에 그건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하지 않을까. <미스터 션샤인>은 이름 없이 등장했다 사라져간 의병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되고 어떻게 불꽃처럼 살다 스러져 갔는지를 애신과 유진 같은 인물들을 통해 아프게도 그려내고 있다.(사진:tvN)

‘꽃할배’ 막내 김용건, 스스로 청춘임을 증명하는 할배

박근형이 손주들을 위해 사놓은 선물 보따리를 숙소 앞 노상카페에 두고 온 걸 뒤늦게 알아차리자, 갑자기 입술에 립밤을 바르고는 김용건이 나선다. 자신이 가져오겠다는 것. 박근형은 자신이 가겠다고 옷을 챙겨 입으려 했지만, 김용건은 자신이 가겠다며 슬쩍 ‘문 여는 연습’을 핑계로 댄다. 백일섭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숙소로 올라왔지만 자신이 문을 따는 게 영 익숙지 않아 문 앞에서 그를 힘겹게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는 거다. 물론 진짜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박근형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댄 그럴듯한 핑계였다. 

제작진들이 둘러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카페에 간 김용건은 거기서 또 ‘농담 본능’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 선물 보따리 때문에 박근형이 옷을 주섬주섬 입으셨다며 “그러니 뭐 나이 어린 내가 내려와야지”하고 말한다. 나영석 PD는 “선생님도 칠순이 넘으셨는데”라며 막내가 된 김용건의 상황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자 김용건의 하는 말이 기막히다. “글쎄 말이야. 그런데 오랜만에 하니까 또 괜찮네-” 그 말에 제작진들은 웃음을 터트리고 김용건은 기분 좋은 듯 ‘농담 주머니’를 열기 시작한다.

김용건은 백일섭이 화장실이 급한데 문이 안 열려 당황했던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노력을 해서 잘 열었어”라고 말하고, 나영석 PD는 그 “노력을 해서”라는 말이 우스운 지 그 말을 되새기며 웃는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면서도 “이것도 내가 계산할게...”라고 툭 농담을 건넨다. 나영석 PD는 그 농담을 받아 “700억”이라고 말하고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진다.

이번 tvN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 김용건은 ‘신의 한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번 여행의 활력소이자 윤활유가 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걷는 일이 많은 여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김용건이 하는 ‘막내 짓’이 어르신들을 웃게 만들고, 그래서 여행에 활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제작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이 차이를 무색케 하는 김용건의 무차별적인 농담 공격 속에 제작진들마저 빠져들고 있으니.

아침을 먹으러 가서 별 생각이 없다며 내려오지 않은 백일섭이 “커피 한 잔 하고 싶다”고 했던 그 말을 떠올린 김용건은 대뜸 아메리카노를 시켜 방까지 배달(?)을 해준다. 씻고 침대에 앉아 있던 백일섭은 갑자기 들어와 커피를 건네는 김용건을 보며 기분이 좋아져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김용건은 거기에 생색을 더해 분위기를 다시 띄워놓는다. “따끈따끈해. 막 뛰어왔어.” 그 모습은 영락없이 형에게 칭찬받고픈 막내의 모습이다.

다른 여행지로 이동하는 날 아침 한 자리에 모인 할배들 속에서 김용건은 백일섭의 말대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 옛날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자신들을 다 잊고 있었던 일들이 김용건의 이야기로 새록새록 피어나면서 할배들은 순간 나이를 잊는다. 그 때 그 시절로 금세라도 돌아간 듯 서로 그 때의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 신구는 “난 웃느라고 정신이 없어”라며 “듣고만 있어도 즐겁다”고 말한다. 백일섭이 “응답하라 199×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김용건은 오히려 “그 때 그랬어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하냐”고 말했다.

나이 73세에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끝없이 허허로운 농담을 던지고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막내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게다. 하지만 형들과 함께 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김용건. 또 제작진과 이야기할 때면 항상 존칭을 쓰는 그에게서 느끼는 건 ‘청춘’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변산>의 제작발표회에서 “청춘은 젊음을 일컫는 게 아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말한 바 있다. 73세 막내로서 행복하다 말하는 김용건은 스스로가 청춘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그가 사랑받는 진짜 이유다.(사진:tvN)

'버닝'이 담아낸, 청춘과 부조리 그리고 예술

(본문 중에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저는 뭐를 써야 될 지 모르겠어요. 세상은 수수께끼 같거든요.” 문득 벤(스티븐 연)이 무슨 소설을 쓰고 있냐고 묻자 종수(유아인)는 그렇게 답한다. 그는 알 수 없는 혼돈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느끼는 혼돈과 분노에 맞닿아 있다. 혼란스럽고 화가 나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는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길을 헤매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이 청춘들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과 그 감정을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은 얼마나 가녀리면서도 또한 희망을 주는 것인가를 담았다.

<버닝>의 첫 장면은 트럭으로 보이는 차 뒤에서 조금씩 피어나오는 담배연기로 시작한다. 누군가 그 뒤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 다만 한숨처럼 피어나는 담배연기가 그 존재를 증명하는 듯한 종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트럭에서 짐을 꺼내들고 인파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시장통으로 보이는 그 곳에서 그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곳에서 그를 알아보는 이가 있다. 바로 한 가게 앞에서 춤을 추며 호객을 하고 있는 나레이터 모델 해미(전종서)다. 어린 시절 종수와 파주의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 그들은 그렇게 만나 그날 밤 함께 술을 마신다.

술자리에서 해미는 이야기를 하며 손으로 귤을 까먹는 듯한 마임 동작을 해보인다. 그냥 재미로 배우고 있다는 마임. 해미는 마임을 잘 하려면,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귤이 없음을 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해미라는 존재와 그가 살아가는 삶을 압축해서 설명한다. 그는 가진 게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고, 카드빚에 쫓겨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 곳에서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를 춤추는 원주민을 만나겠다는 것. ‘리틀 헝거’가 배고픈 자들이라면,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자들이란다. 그는 ‘리틀 헝거’지만 ‘그레이트 헝거’를 추구한다.

아프리카로 떠나 집이 빈 동안 해미는 종수에게 보일러실에 버려져 ‘보일이’라고 부르며 그 집에서 키우고 있다는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상처가 깊이 방에 있다고는 하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는 보일이. 그리고 북향이라 하루에 단 한 번 남산타워에 반사되어 빛이 들어오는 그 방은 모두 해미를 또 종수를 닮았다. 존재가 있지만 존재가 보이지 않고, 마치 청춘이기에 없는 희망을 꿈꾸긴 하지만 그것의 실체를 손에 쥐지는 못하는 그들이다.

해미가 없는 사이 그 집에서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 보일이에게 밥을 주는 종수의 헛되어 보이지만 희망을 꿈꾸는 그 손짓은 그래서 처연하다.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저 편에 거대하게 압도하듯 발기한 채 서 있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자위를 하는 종수의 모습은 허망하다. 해미나 보일이처럼 그도 방 같은 세상에 누군가 던져주는 밥 한 끼가 없어 배고픈 이들이지만, 청춘이라는 아직도 한참을 더 살아야 하는 나이에 삶의 의미에 대한 헛된 허기를 느낀다. 그 간극은 너무나 커서 아직 세상의 이 비정함과 부조리함을 온통 이해하지 못한 이들을 알 수 없는 분노의 불길로 들끓게 만든다.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불꽃이 그 속에서 타들어간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해미가 거기서 만난 벤(스티븐 연)을 알게 되면서 종수는 점점 더 세상이 수수께끼 같다고 여긴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고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포르쉐를 끌고 다니며 럭셔리한 집에서 비슷한 동류의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는 그들의 삶은, 북한의 대남선전방송이 들려오는 파주에서 소똥을 치우며 법정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집나가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빚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를 마주하는 종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다”는 말은 그래서 이 청춘이 마주하고 있는 단단한 세상의 벽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 파주에 있는 종수의 집을 어느 날 해미와 함께 찾아온 벤은 그 포르쉐가 주차되어 있는 냄새나는 집 마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언발란스한 풍경을 보여준다. 문득 대마초를 꺼내 함께 피운 벤은 자신의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엄염한 범법행위가 아니냐고 종수는 말하지만, 벤은 그건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 어떤 선악의 의미가 들어있는 행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곳에 온 것도 비닐하우스 하나를 태우기 위한 사전답사라고 말한다.

해미는 문득 그 파주에 있었던 자신의 집과 그 집 근처에 있던 우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그 우물에 자신이 빠졌었고, 종수가 자신을 발견해 구해줬었다는 것. 종수는 그런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다. 마치 지금 해미가 벤을 만나 처한 사정이 바로 그 우물에 빠진 상황과 같다고 느끼며 그를 자신이 구해냈으면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벤이 그렇게 말하고 떠난 후, 종수는 비닐하우스에 그리고 사라진 우물에 집착한다. 버려진 비닐하우스 하나가 불타버려도 경찰이나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그 말은 마치 종수 자신의 ‘있지만 없는 존재’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사라진 우물의 존재가 원래 없던 것이 아니라, 본래는 있었던 것이라는 걸 발견하는 일이 그 ‘있지만 없는 존재’인 자신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 날 벤과 함께 온 해미가 술에 취해 대마초에 취해 마당에서 지는 노을을 보며 상의를 벗고 저편 날아가는 철새들처럼 춤을 췄을 때, 그것은 도취된 해미에게는 하나의 마임 같은 ‘행위예술’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음악이 사라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에 깨어난 해미는 그 갑작스런 현실에 당혹스러워하고 슬퍼한다. ‘없는 것을 잊으며’ 자신은 삶의 의미에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라 치부하며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현실이 닥쳐온다. 사실은 그저 배가 고픈 청춘일 뿐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종수는 아픈 말을 한다. 그렇게 옷을 마구 벗는 건 “창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 아픈 현실을 꺼내 놓은 후 종수 앞에서 해미는 마치 있지만 없는 보일이처럼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벤에 의한 것이라 의심하는 종수는 그를 미행하며 해미를 애타게 찾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해미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해미 같은 또 다른 배고픈 청춘이 벤의 옆에 나타나 해미가 걸어갔던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종수는 목격하게 된다.

가진 자들은 있는 것을 마치 제물처럼 즐기며 살아가고, 못 가진 자들은 없는 것을 잊으며 마치 있는 것처럼 살아가려 몸부림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알 수 없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버닝>은 날카롭게도 우리네 청춘들이 처하고 있는 ‘없지만 있는 것처럼’ 치부하며 버텨내는 그 안간힘을 포착해낸다. 유아인이 당혹스러운 그 얼굴로 표현해내는 청춘의 초상이 못내 아프게 다가온다.

충격적인 엔딩은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이 종수라는 인물이 또한 ‘없지만 있는 것처럼’ 그려낸 상상 혹은 소설의 일부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엔딩이 담고 있는 예술의 허망함 혹은 그나마 존재하는 희망의 양면은 역시 이창동 감독다운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을 드러낸다. 예술은 ‘없지만 있는 것처럼’ 하는 행위이고, 그래서 허망해보이지만 때론 그것이 세상을 인식하게 해주고 그래서 변화하게 해줄 수도 있는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버닝>이라는 영화가 그러하듯이.(사진:영화 '버닝')

'예쁜 누나' 손예진과 '키스' 감우성이 다시 깨운 연애시대

12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멜로는 여전히 설렌다. 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손예진과 감우성 이야기다. 12년 만에 멜로 드라마 주연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지금,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SBS <키스 먼저 할까요?>로 다시 한 번 설레는 멜로를 선사하는 중이다.

한 작품에서 멜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지만, 지금 두 사람이 하는 작품의 멜로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손예진이 열연하고 있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물론 나이가 좀 있는 누나와 젊은 동생 사이의 사랑을 담고 있지만, 풋풋한 청춘 멜로의 색깔을 갖고 있다. 손 한 번 잡는 일이나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이토록 떨리는 순간으로 다가올 수가 없다.

반면 감우성이 출연하고 있는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다. 제목에 이미 담겨 있듯이 스킨십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어른들의 멜로. 그래서 손을 잡고 키스를 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건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말 한 마디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감우성)이라는 인물이 전하는 휴머니즘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멜로다.

두 작품에서 각각 손예진과 감우성의 상대역할을 하는 배우들도 반짝반짝 빛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을 더 젊고 풋풋하게 만들어주는 장본인은 바로 상대역인 정해인이다. 소년 같은 얼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이 배우 앞에서 손예진이 무장해제되는 모습은 그래서 너무나 쉽게 공감이 간다. 사회적 통념 따위는 이 사랑 앞에 별 소용도 없어지는 것이다.

한편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감우성의 상대역할인 김선아는 드라마가 가진 무거움을 때론 비극적으로 때론 코미디로 풀어낼 줄 아는 배우다. 그래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의 무게를 때때로 웃음으로 풀어내주며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희비극적인 것들이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두 멜로드라마의 긴장감은 그들의 멜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생겨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이다. 누나의 친구, 친구의 동생이라는 그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정해인이 연기하는 서준희라는 인물은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빠마저 재혼을 해 사실상 윤진아(손예진)의 집안에서는 ‘가족’처럼 여겨지는 인물. 그러니 가족처럼 여겨지던 인물을 윤진아의 집안에서 그의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안순진(김선아)의 딸의 죽음이 손무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의 상황이 이들 사랑의 커다란 장애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두 장애물은 어떤 면에서는 죽음(손무한의)이 죽음을(안순진의 딸의) 상쇄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따뜻해진 봄 날씨에 이 두 작품은 봄 바람 같은 멜로감각을 다시금 깨워놓고 있다. 좀체 본격 멜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즘에 이만한 설렘을 줄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애시대>에서 만났던 손예진과 감우성은 이제 다시 멜로로 돌아와 더 원숙해진 멜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사진:SBS)

‘나의 아저씨’, 주도권 쥔 이지은이 주는 묘한 카타르시스

이 드라마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기대된다.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첫 회는 한 마디로 짠 내가 풀풀 진동했다. 이지안(이지은)은 사채업자에게 폭행까지 당하며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박동훈(이선균)은 엉뚱하게 상무와 이름이 비슷해 잘못 배달된 뇌물봉투로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했다. 특히 아르바이트에서 손님이 남긴 음식을 싸와 배를 채우고, 운신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할머니(손숙)를 보살펴야 하는 이지안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해보였다.

하지만 단 2회 만에 이 모든 상황이 뒤집어졌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관계를 눈치 채고 도준영 대표(김영민)가 박동운 상무(정해균)을 퇴출시키려 뇌물을 보냈으며, 박동훈의 아내 윤희(이지아)와 불륜 관계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서 이지안이 모든 주도권을 쥐게 된 것. 이지안이 박동훈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책상 서랍에 넣었던 뇌물 봉투를 훔쳐간 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지안이 그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박동훈이 뇌물을 거부한 모양새가 된 것. 

회사 내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이지안이 도준영과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대표이사지만 이지안은 그런 건 아랑곳없이 그에게 맹랑한 제안을 한다. 자신이 박동운 상무와 박동훈 부장을 모두 처리하겠다는 제안이다.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제안이지만 이지안이 보여준 때론 과감하고 때론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들을 떠올려 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제안이다. 그 순간 대표이사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아저씨’가 아닌 ‘나’ 즉 이지안이 모든 상황을 쥐고 흔드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기서 아저씨에 해당되는 박동훈은 한 마디로 착해빠진 데다 어딘가 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뇌물 봉투를 받았을 때도 그냥 갖기보다는 양심 때문에 머뭇댔던 인물. 그냥 성실히 자기 하는 일을 해가며, 노모와 형제들을 부양하다시피 하는 가장이고, 아내가 도준영과 불륜관계이며 곧 이혼을 요구할 거라는 것도 까마득히 모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부장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힘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 박동훈과 당장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할 것 같은 영악한 청춘 이지안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박동훈이 이지안을 챙기거나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위치로 보이지만, 이 관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어딘지 불쌍하고 억울해 보이는 박동훈을 이 영악한 이지안이 도와주기를 시청자들이 오히려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거나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두 세대를 주인공을 내세웠다. 하나는 이제 곧 퇴출될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저씨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희망조차 찾기 힘든 삶을 버텨내며 그 살벌한 현실 속에서 단단해진 청춘이다. 과연 이 청춘은 아저씨를 구해주는 존재가 될까 아니면 그가 대표이사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를 퇴출시키는 존재가 될까. 그 모든 주도권이 이 작고 가녀리게 보이는 청춘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껏 봐왔던 대부분의 빈부와 세대와 성별의 구도를 훌쩍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사진:tvN)

'아저씨' 이선균·이지은, 24살 차이 멜로 괜한 걱정이었나

박동훈(이선균)은 형 박상훈(박호산)과 동생 박기훈(송새벽)과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팍팍한 중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년퇴직 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리고 있다는 박상훈.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재취업은 아파트 경비 자리 얻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박기훈은 영화 감독이 꿈이지만 만년 조연출로 늙어가고 있다. 한 때는 주목받기도 했었지만 그 후로는 영화판에서 마모되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박동훈은 나아 보이지만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무게가 온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퇴근 해 혼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게 유일한 휴식이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다니는 회사 대표이사 도준영(김영민)과 불륜 중이다. 

tvN 새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들의 위기로 시작한다. 박상훈이 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저씨가 나오는 공포영화’를 말하듯, 아저씨들은 퇴직 후 사업에 망하고 재취업도 못한 채 심지어 경조사에조차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절망하고 분노한다. 돈이 없어 동생 박동훈에게 손을 벌리는 그 심정이 오죽할까. 그런 형이 큰 일을 낼까 걱정이라며 엄마 변요순(고두심)이 박동훈을 찾아와 가게라도 내주자며 5천만 원 대출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던 차에 마치 운명처럼 그에게 뇌물 상품권 5천만 원이 퀵으로 잘못 배달된다. 경쟁관계에 있는 도준영(김영민)이 박동운 상무(정해균)를 물 먹이려 보낸 돈이지만 배달사고가 난 것. 결국 도준영은 박동훈을 희생양 삼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아저씨들의 위기만큼 처절한 청춘의 위기가 겹쳐진다. 그 청춘은 박동훈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알바생 이지안(아이유)이다. 무슨 일인지 사채업자에게 심지어 두드려 맞아가며 돈을 갚아나가고 있는 이 청춘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양원 비용이 없어 청각장애에 운신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음식점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이 버리고 간 음식을 챙겨와 역시 사무실에서 훔쳐온 믹스 커피와 함께 먹는 게 그의 유일한 휴식이다. 불조차 켜지 않는 집에서 꾸역꾸역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입안에 구겨 넣고, 달달한 믹스 커피를 꼭 두 봉씩 녹여 마시는 삶. 그에게 꺼져있는 불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박동훈에게 잘못 배달된 뇌물 봉투를 우연히 보게 된 이지안은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그 뇌물을 훔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접근한다. 뇌물 봉투를 받고 당황한 박동훈이 대충 서류철과 함께 책상에 구겨 넣어둔 걸 안 이지안은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신 후 그가 집에 간 사이 사무실에 몰래 들어와 그 뇌물 봉투를 꺼내간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혹독한 현실에 내몰린 청춘 이지안과, 이제 돈도 사라졌지만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아저씨 박동훈. 그들의 위기가 격돌한다. 

<나의 아저씨>가 아저씨라는 중년세대와 청춘의 위기를 동시에 병치한 건,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다. 이제 직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 아저씨 세대는 아예 취업 전선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는 청춘 세대들과 현실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건 일자리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지만, 그래서 비롯되는 갈등은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감정적인 차원으로까지 치닫곤 한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 세대를 대변하는 박동훈과 그 형제들과, 청춘 세대를 대변하는 이지안이 부딪치면서도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애초에 24살 차이의 멜로라는 소재 때문에 갖게 되는 어떤 불편함은 그것을 단지 멜로 차원으로만 바라봤을 때 나올 수 있는 오해가 아닐까. 어쩌면 <나의 아저씨>는 그 24살 차이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을 화해하는 드라마일 수도 있으니.(사진:tvN)

‘소확행’ 작품 속 음식, 기존 먹방·쿡방과는 뭐가 다른가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건 영화, 예능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다. 지금 같은 비수기에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는 <리틀 포레스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그렇고, <삼시세끼>에 이은 <윤식당2>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 이른바 소확행 작품들의 중심에 서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다. 한때 먹방과 쿡방이 하나의 트렌드로 등장해 식욕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영상들이 넘쳐났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음식을 담은 소확행 작품들의 행보는 이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서 음식은 그저 식욕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고 하나의 소통이자 치유가 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살이에 지친 청춘이 엄마가 떠나버려 빈 고향집으로 내려와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밭과 들에서 계절에 따라 나는 것들을 갖고 스스로 음식을 챙겨먹는 그 과정들은 패스트푸드와 편의점으로 대변되는 도시생활에서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청춘이 그 요리를 알려준 집 떠난 엄마와 소통하며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식을 통한 소통과 위로의 이야기는 손예진과 소지섭 주연의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등장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계란 프라이가 그렇다. 너무나 단순한 요리지만 아이를 위해 그걸 만드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은 우진(소지섭)을 위해, 다시 살아 돌아왔지만 곧 떠나야할 아내 수아(손예진)는 아들에게 계란프라이 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아내가 떠나고도 아들이 만들어주는 계란프라이에는 그 따뜻한 온기가 남다르게 남는다.

한편 최근 화제가 된 예능 프로그램 tvN <윤식당2> 역시 한식당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음식은 그저 입맛을 돋우는 욕망의 대상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이라는 낯선 곳에서 거기 사는 주민들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영업을 종료하고 돌아오는 그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마치 이웃 같은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음식이 매개가 되어 생겨난 마법 같은 일이다.

이처럼 음식이 이른바 ‘소확행’ 라이프 트렌드를 드러내는 작품들 속에서 단골소재가 되고 있는 건, 그 일상적인 소재가 갖는 특별함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더라도 그걸 만드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 작은 연결고리는 그래서 작아도 확실한 행복이 되기도 하는 것. 그저 돈으로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 챙기는 음식을 눈여겨보게 되고 거기서 어떤 소통과 위로의 따뜻함이 주는 행복감을 대중들은 이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거대한 행복을 꿈꾸는 것이 허망하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이 찾아낸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다.(사진:영화'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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