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묵직한 메시지도 남궁민이 하면 발랄해지는 까닭

“22년을 이 회사를 위해서 또 내 가족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한텐 견딜 수 없는 치욕과 내 가족에 대한 미안함밖에 없습니다.” 오부장에게 대기실 발령은 왜 회사 옥상 난간 끝에 설 정도로 큰 치욕이었을까. 그건 그가 그만큼 자신이 다녔던 회사를 각별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다. 그는 회사가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 그런 회사가 그에게 주는 치욕은 말 그대로 “삶이 무너지는 기분”을 주었을 게다. 

'김과장(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회사의 일방적인 폭력을 꼬집었다. “회사가 회사지. 이 빌어먹을 회사”라고 김과장(남궁민)은 말하지만, 오부장은 그 모든 것을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겁니다. 내가 마무리를 잘 못한 겁니다.” 대기실 발령이라는 폭력이 만들어내는 건 그 치욕감 속에 스스로 자존감을 잃게 하고 심지어 자책하게 하는 일이다. 오부장이 자신이 22년 동안 다닌 회사의 옥상 난간에서 뛰어 내리려 하게 만든 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김과장이 말하듯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도 회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김과장이 오기 전 그 자리를 지키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이과장의 경우처럼, 회사는 오히려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한다. 심지어 회사의 비리까지 몽땅 뒤집어씌워 개인의 비리로 치부해버린다. 죽어서까지 이용당하는 셈이다. 

김과장이 안타까워한 건 바로 그렇게 회사를 탓하기보다는 자책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잘 살아온 선량한 이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삥땅 쳐봤어요? 해먹어봤어요? 남의 눈탱이 치고 남의 돈 가지고 장난 쳐봤냐구. 근데 뭘 잘못 살아. 이 양반아. 잘만 살았구만. 남의 돈 다 해먹고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그런 새끼들도 아주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는데 부장님이 왜 요단강 건너려고 그러는데 왜! 거기 올라가 가지고 뒈져야 될 거는 부장님이 아니라 바로 그 딴 새끼들이라고 그 딴 새끼들.... 빌어먹을 회사만 몰라 우리 부장님 최고로 잘 살아온 거.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다 아는데. 그죠?”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복도 한 편에 놓여진 빈 책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방치하는 대기발령이라는 치욕을 더더욱 견디기 어려울 게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그 결과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라는 배신감과 모멸감도 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김영삼 정부 시절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은 삶을 통째로 회사에 헌납한 채 살아온 가장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언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회사의 정리해고를 그리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일상화된 어떤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당사자들의 고통이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을 게다.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 모멸감을 참아가며 대기발령을 견디는 가장들의 고통이 어찌 무뎌질 수 있을까.

<김과장>은 겉으로 보면 경쾌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뜯어보면 꽤 묵직한 메시지들이 발견된다. 기업의 회계비리라든가, 노조를 분쇄하기 위해 투입되는 폭력이라든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가까운 대기발령 에피소드 모두 우리네 기업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러한 무거운 메시지들을 전하면서도 결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김과장이라는 캐릭터 덕분이다. 선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수하지도 않은 이 캐릭터는 그러면서도 사람에 대한 정이 있다. 바로 그 정 때문에 자신은 더럽혀져도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그저 지나치지 못한다. 삥땅 전문인 김과장이 “삥땅 쳐봤냐”며 오부장을 설득하는 모습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독특한 위치를 잘 보여준다. 그는 회사에 뭘 그리 충성을 다하냐는 투로 말한다. 지나치게 회사에 충성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자세. 의인이라고까지 불리는 김과장이 회사의 부조리에 맞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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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춘기' 정준하·권상우가 전한 메시지

가출을 했더니 가족이 보인다. 싸우고 났더니 친구가 보인다. 혼자 있어 봤더니 함께 했던 시간들의 소중함이 보인다. 멀리 떠나왔더니 비로소 가까이 있던 것들의 의미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MBC 예능 <사십춘기>는 역설적이다. 이야기는 40대 가장들이 무작정 계획 없이 가출여행을 떠나는 것이지만, 그렇게 멀리 블라디보스토크의 칼바람을 맞으며 그들이 그리워하는 건 떠나온 곳, 자신들이 돌아갈 곳에 있는 가족들이었다. 

'사십춘기(사진출처:MBC)'

젊은 시절부터 오랜 친분을 쌓아왔지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권상우가 급한 성격에 뭐든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빨리를 외치는 와중에도 정준하는 특유의 느긋한 성격으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두 사람은 각자의 속도를 추구하는 것뿐이지만 상대방의 성향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제아무리 방송이지만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너 성격 바꿔”라고 정준하는 말하고, 여기에 대해 권상우도 속 터지는 답답함을 드러낸다. 

사실상 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생고생의 연속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야라는 러시아인들이 즐긴다는 눈밭 위의 사우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한겨울의 살풍경함을 보여주었고, 권상우가 꿈꾸던 눈썰매의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동네 야산 같은 곳을 올라 눈썰매를 타는 그런 초라한 풍경으로 끝이 났다. 

권상우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내고 꼭 가보고 싶어했던 루스키섬은 상상과 달리 살벌한 느낌마저 주었다. 물론 새로운 숙소를 찾아내고 <무한도전> 촬영을 위해 귀국했다 다시 돌아온 정준하가 함께 하면서 온기를 되찾았지만, 호숫가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벌이는 바비큐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권상우는 마지막날 그들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여정을 회상하며, 자신들이 갔던 곳은 사실 러시아 사람들은 그 겨울에 가지 않는 곳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추워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이방인이 여행이랍시고 다녔다니 그 시간들은 사실 얼마나 우스운가. 

하지만 그 생고생의 연속 속에서 힘겨워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의외로 툭탁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반야를 찾아서는 눈밭 위에서 서로 껴안고 뒹굴기도 했고, 비록 초라한 동네 야산 같은 곳이었지만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그들은 눈썰매를 탔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람들이 가득 모이는 곳이지만 한겨울 텅 빈 루스키섬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을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봤다. 

섬의 한때는 벙커였던 곳으로 보이는 곳에 앉아 바다 저편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들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새삼 떠올렸고, 너무 달라 사사건건 부딪쳤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랜 세월 옆에 있어주었던 친구로서의 우정을 되새겼다. 한 겨울 살풍경은 색채를 지워버려 마치 흑백필름 속에 그들을 채워 넣었지만, 그 장면은 마치 짐 자무쉬 감독의 흑백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한 자락을 떠올리게 할 만큼 깊이가 있었다. 멀리 왔는데도 별 다를 게 없다는 것. 멀리 떠나왔지만 떠나왔던 곳을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것. 

<사십춘기>는 그래서 중년의 나이라는 세월만큼 멀리 떠나온 것 같지만 여전히 소년에 머물러 있고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무작정 떠난 여행기가 단순히 이국적인 곳에 대한 호기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는 삶을 들여다보게 한 건 이들 여행기가 그려내는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아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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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동물농장’ 800회, 동물은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사실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 중 장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KBS ‘동물의 왕국’같은 프로그램을 빼놓을 수 없다. ‘동물의 왕국’은 1969년부터 방영되어 물론 중간에 잠깐 잠깐씩 휴지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방영되고 있는 동물 소재 프로그램이다. 그토록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시청률이 적게는 5%에서 많게는 7%를 유지하는 스테디셀러다. 

'TV동물농장(사진출처:SBS)'

그러니 이 보다는 상대적으로 짧은(?) 16년차를 맞은(물론 이것도 짧은 건 아니다) SBS ‘TV 동물농장’이 지금 그 의미가 남다른 건 단지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TV 동물농장’은 ‘동물의 왕국’과 달리 단 한 차례도 휴지기를 가진 적 없고 꾸준히 16년을 달려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는 그 과정들을 고스란히 프로그램의 변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지금 현재도 뜨거운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서 있다.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구경꾼에서 반려자로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서 프로그램에 적극 반영해온 것이 ‘TV 동물농장’이 거둔 가장 큰 성과다. 사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물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구경꾼’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각의 변화를 조금씩 보여줬던 프로그램이 바로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동물의 입장에서 붙여진 내레이션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의 문을 열어주었다. 

‘TV 동물농장’ 역시 초창기에는 동물들의 신기한 행동 관찰기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만 차츰 동물을 캐틱터화 하기 시작했고 그 의인화는 동물과의 거리감을 대폭 좁혀 놓았다. 그리고 ‘TV 동물농장’이 고민한 건 동물과 인간과의 공존에 관한 것이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그 이야기들은 커다란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때론 처참한 동물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을 공분하게 만들기도 했다. 

2009년에 방영된 ‘동물심리분석가 하이디의 위대한 교감’ 같은 코너는 상처받은 동물들과의 교감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TV 동물농장’의 방식은 거꾸로 우리들이 사는 방식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우화적 기능을 부여하기도 했다. 피 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길바닥에서 만나 그 차가운 몸을 부비며 마치 친 자식을 돌보듯 챙긴 고양이 이야기나, 사정이 어려워 떠난 주인을 하염없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는 개의 이야기 같은 소재들은 우리를 새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TV 동물농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대당하는 동물들의 실태를 고발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방영됐던 ‘강아지 공장’ 실태에 대한 르뽀는 현행 ‘동물보호법’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겨줬다. 또 학대당하는 강아지를 주인으로부터 격리시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TV 동물농장’이 해온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어느새 동물들은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할 가족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와의 공존은 그것이 동물과의 관계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로 확장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적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단지 16년 800회의 수치로만 얘기할 수 없는 ‘TV 동물농장’만의 진정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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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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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가 인어를 통해 말하는 기억, 가족, 사랑

 

우리 예은이 너무 착해서 엄마 돕겠다고 수학여행도 안 간 애예요. 정말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다시 못 깨어날 줄 알았으면... 다 해줄걸. 수학여행도 억지로 보내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 걸.... 엄마가 못해준 것만 생각나니까.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예은아..”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 심청(전지현)은 병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예은 엄마를 만난다. 그녀는 의료사고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우리 딸이 왜 죽었는지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냐고 청이 묻자 예은 엄마는 예은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살았을 적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는다.

 

내 비밀 들어볼래요? 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가 있어요. 원하면 지워줄게요. 슬프게 하는 기억? 딴 생각 안 나면 안 슬프고 안 아플 수 있잖아요. 내가 해줄게요.”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어 심청의 제안에 문득 예은 엄마는 예은이와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눈을 뜨더니 말한다. “아니요. 죽을 때까지 아무리 아파도 가지고 갈 거예요.” 아픈데 왜 가져 가냐는 심청의 물음에 예은 엄마는 말한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기억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는 각별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대구가스폭발사고 등등.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몇 년 간 벌어졌던 사건사고들만 해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까지 너무 많은 이들이 벌어졌다. 그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엄청난 아픔과 상처가 마치 트라우마처럼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흉터를 남긴다. 너무 아파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tvN에서 방영됐던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기억의 시스템을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한 가장의 비극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통해 아프게도 담아냈다. 뺑소니로 죽은 아들의 기억을 지워내는 대가로 사실은 자신의 현재의 위치와 지위를 갖게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이 가장의 이야기는 기억을 지우는 것과 권력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시그널>에 시청자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까닭 역시 지워져가는 기억을 되돌려 그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형사들의 따뜻한 인간애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며 그 미제사건을 풀어내려는 간절한 열망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그 판타지는 아무런 이물감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억을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서 모두가 지워가는 그 기억의 언저리를 마치 유령처럼 세월이 지나도 계속 배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기억에 대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은 엄마가 그렇고, <기억>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던 가장과는 달리 결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아이 엄마가 그러하며, <시그널>의 그 많은 희생자 가족들이 그렇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인간 세계를 전혀 모르는 심청은 가족이 뭐냐고 같은 병실에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그녀는 진짜 몰라서 물어? 여기 간병하는 사람들이 다 가족들이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심청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가족은 붕어빵 같은 거네요. 붕어빵들처럼 닮았고 따뜻하고 달달해.’

 

하지만 가족은 그저 달달하기만 한 존재들은 아니다. 드라마 말미 에필로그에 이르러 그 아주머니는 가족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항상 좋기만 하겠어?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나도 우리 아들 빚 갚아주느냐고 생고생이야. 그래서 여기 디스크 터진 거잖아.” 가족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남는 상처들이다.

 

허준재(이민호)에게도 그 상처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재혼해 같이 살게 된 형 허치현(이지훈)은 그의 자리를 빼앗는다. 그래서 결국 상처 입은 허준재는 집을 나와 살아가게 되지만 아픔만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가짜 아들 노릇하는 허치현이 무감한 것과, “미안해도 미안하다 말 못하고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다는 말 잘 못하며살아가는 아버지와 허준재의 아픈 마음은 그래서 너무나 다르다.

 

허준재. 사람들은 아프고 슬퍼도 기억하고 싶어 해? 밥도 못 먹고 잠을 못 자도 기억하고 싶은 사랑은 뭘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인어라는 인간과는 다른 이질적 존재를 내세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기억이니 가족이니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새삼 질문한다. 아파도 기억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아픈 기억과 가족과 사랑의 이야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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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심심해보여도 편안함을 얻는 방법

 

이번 tvN <삼시세끼> 고창편에는 왜 게스트가 없을까. 마지막회까지 촬영을 마친 나영석 PD는 끝까지 게스트는 없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그는 이번 편에 출연한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의 인물 구성이 게스트를 요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게스트를 집어넣으려 해도 빈 구석이 있어야 그 효과가 나기 마련인데, 그런 여지가 없이 케미가 잘 맞는다는 것.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의 말대로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만재도편에서 지금껏 이어오며 이제는 좀 오래되어 서로가 익숙한 부부 같은 느낌마저 준다. 유해진이 있어야 차승원의 아재 개그가 툭툭 터져 나오고, 차승원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제 그거 하려고?”하고 묻는 유해진의 이심전심이 그렇다. 유해진이 뭔가 먹고 싶다고 툭 던진 이야기는 차승원의 손에 의해 요리가 되고, 부족하다 싶은 건 유해진의 맥가이버 같은 손이 척척 만들어낸다.

 

손호준은 이제 차승원과 유해진이 뭐라 하지 않아도 뭘 필요로 하는 지 알 정도로 <삼시세끼>라는 상황과 관계에 익숙한 존재가 됐다. 거꾸로 차승원이 손호준이 없으면 난 안돼 라고 말할 정도다. 새로 들어온 남주혁은 손호준의 동생으로, 유해진의 아재개그 제자로, 차승원에 의해 초딩 입맛조차 바뀌어지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이 가족 같은 구성원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러니 빈틈이 있을 리가.

 

하지만 이렇게 익숙해진 관계는 또한 심심해지기마련이다. 긴장감이 없고 뭐든 척척 케미가 맞아 돌아가니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고창편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 손오리나 유해진의 반려견인 겨울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다. 오리들의 성장담과 오리들과 가깝게 지내고픈 겨울이와 그 겨울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오리들의 이야기들 같은 것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관계의 재미는 요리부와 설비부로 나뉘어진 차승원-손호준과 유해진-남주혁의 밀고 당기는 약간의 대결구도 정도에서 나온다. 두 팀이 새롭게 푹 빠져버린 내기 탁구대결이나, 요리부끼리 또 설비부끼리 상대방을 비하하며 자신들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의 재미도 반복적인 재미를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의 탁구대결은 그 디테일한 재미 속으로 빠뜨리지 못하고 그저 편집되어 결과만 알려주고 지나간다.

 

요컨대 <삼시세끼> 고창편은 이제 출연자들도 익숙해졌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수치적으로 봐도 11%대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계속 떨어져 8%대까지 내려온 건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보편적으로는 시청자들의 유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럴 경우 응당 나오는 것이 게스트 출연이지만 나영석 PD는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도 게스트가 들어왔을 때 지금의 <삼시세끼> 고창편이 주는 그 편안함이나 따뜻함 같은 것들이 조금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스트는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하고 그래서 출연자들이 무언가를 자꾸 하게 만들지만, 이번 <삼시세끼> 고창편은 아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 유례가 없는 무더위 탓인지 우리는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는 일조차 이제는 버거워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관계들을 굳이 만들어내는 게스트의 필요성보다, 조금 심심해도 편안해지고픈 욕망을 더 느끼는 지도.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삼시세끼>나 하며 지내고픈 그런 여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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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를 찾아서>,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을 위한 위로

 

저는 단기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는 도리입니다.”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는 너무나 작고 깜찍하게 생긴 물고기 도리의 이런 말로 시작한다. 도리는 바로 직전 자신이 한 이야기조차 깜박 깜박 잊어버린다. 그래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한다. 그런 도리를 부모들은 참을성 있게 대하며 한 편으로는 용기를 준다. 밖에서 놀다가 집을 찾아오는 일이 쉬울 리 없지만, 도리의 부모는 조개껍질을 표식으로 그걸 따라 오다보면 집으로 올 수 있다고 도리에게 알려준다.

 

사진출처:영화<도리를 찾아서>

너무나 작은 존재인 도리가 살고 있는 바다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다. 그러니 커다란 스크린에 작은 도리가 부모를 잃어버린 채 홀로 어둠 속에 있는 장면은 고스란히 그 막막함을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게다가 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이 아닌가. 도무지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도리는 말린을 만나 그의 자식인 니모를 함께 찾으면서 친해진다.

 

이 정도 되면 <도리를 찾아서>라는 애니메이션이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가가 대충은 이해될 것이다. 부모를 잃어버린 도리가 이번에는 말린과 니모와 함께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다. 하지만 이런 소소함으로 기대감을 놓았다면 <도리를 찾아서>는 의외의 즐거움과 감동은 물론이고 어떤 삶에 대한 깨달음까지를 얻는 작품의 성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여정에서 도리가 만나게 되는 위장술의 대가 문어 행크와 멀리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린 시절의 친구 고래상어 데스티니, 그리고 음파 탐지 능력으로 멀리 있는 도리의 위치를 파악해내는 벨루가 고래 베일리 같은 동물친구들은 이 애니메이션이 다채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 행크가 위장술을 이용해 미션을 수행하는 캐릭터로서의 긴장감과 웃음을 준다면, 짝패로 도리를 돕는 데스티니와 베일리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 작품의 따뜻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먼 여정을 통해 도리가 부모를 찾아내는 그 과정은 대단히 감동적인 장면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이런 다소 의도된 감동보다 이 애니메이션이 좋은 건 도리라는 캐릭터에 담겨진 우리네 삶의 비의다. 단기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는 도리는 그것을 장애로 여기지만 긴 여정을 통해 도리가 발견한 건 그것이 다름 아닌 그를 계속 살아가게 해준 동력이었다는 점이다. 부모가 해줬던 말 계속 헤엄쳐라는 말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하나씩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해나가다 보면 결국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사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건 막연하게 다가오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스펙을 쌓는 건 바로 그 두려운 미래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도리의 단기기억상실증은 이러한 우리네 현실 속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멀리 예측하려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 그래서 정해진 운명이나 미래 따위는 없으며 자신이 해나가는 것들과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변수들(이를 테면 친구들 같은)이 더 흥미진진한 미래가 된다는 것을 도리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가족을 찾아 나선 도리는 부모를 찾지만 또한 여정을 통해 또 다른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니모와 말린이 그렇고 행크와 데스티니, 베일리가 그의 새로운 가족들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지만 애초에 그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것들이 도리에게는 미래로 주어진다. <도리를 찾아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앞에 서서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우리네 관객들을 취향 저격한 이유다. 걱정하기 보다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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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거야>에는 왜 현실 갈등이 잘 보이지 않을까

 

SBS <그래 그런거야>에 등장하는 어르신들,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의 존재감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많은 걸 겪으며 살아온 이 어르신들은 이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시점을 제공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맏딸이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수절 아닌 수절을 하며 시댁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걸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데 둘째딸마저 그 사돈네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 엄마인 이태희(임예진)는 사돈댁을 찾아와 어르신인 김숙자 앞에서 대놓고 재수 없는 집안이라는 말을 해버린다. 그러니 그 말은 들은 맏며느리 한혜경(김해숙)도 참을 수 없다. 김수자 앞이라 조심조심하면서도 불편한 심경을 이태희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갈등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다. 이태희가 돌아간 후, 유종철이 김숙자를 부른다. 그리고 애들이 가출한 걸 갖고 뭐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김숙자를 데리고 야반도주 했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청춘들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유종철은 허허롭게 웃어버린다. “그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이 드라마의 갈등 해결법인 셈이다.

 

이 관점이 나쁜 건 아니다. 그간 그토록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수현 작가는 대놓고 이렇게 갈등을 극으로 몰아가는 막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의외로 가족의 품 안에서, 어르신들이 조금만 욕망을 내려놓거나, 혹은 어르신의 시선으로 인생 전체를 통해 그런 작은 갈등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던짐으로써 쉽게 풀려버린다. 이런 식의 시도는 드라마의 본령이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신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가 이처럼 괜찮은 해결의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은 그 갈등들이 여전히 많이 봐왔던 가족 갈등 이야기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결혼을 두고 양가가 부딪치는 이야기나, 노년으로 홀로 살아가다 갑자기 젊은 처자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 혹은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들은 물론 나름의 갈등을 유발하지만 어쩐지 과거 어떤 드라마에서 봐왔던 것들의 반복처럼 여겨진다.

 

갈등의 해결방식은 다르지만 제시되는 갈등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여기게 됐던 이유는 <엄마가 뿔났다><내 남자의 여자>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 속에서 당대 현실과 조응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휴직선언과, 불륜에 대한 탐구 그리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그 드라마들 속에는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었다면 <그래 그런거야>가 보여주는 현실은 너무 소소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가. 젊은 청춘들은 취업 앞에서 꺾어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그래서 대가족은 해체되어 나홀로족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근 성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남혐 여혐의 문제도 심각하다.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어가며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크디 큰 현실적 문제이다.

 

김수현 작가 같은 중견을 대표하는 작가가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문제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들이다. 지금의 가족을 그려내겠다면 적어도 이런 시대적 문제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그저 어르신의 긍정적인 시선만 던진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그래 그런 거야라고 현실을 초월해 소소한 가족갈등을 긍정의 목소리로 화해시켜도 저 밖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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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거야>, 이렇게 갈등 없는 드라마도 가능하다?

 

세상에 이렇게 갈등이 없는 드라마도 있을까.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소소한 수다와 말다툼은 있어도 가족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는 갈등은 없다. 사돈지간이어서 사랑할 수 없는(사실 이게 왜 문제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영(남규리)과 세준(정해인)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할 듯이 무작정 경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갈등과 해결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즉흥적으로 떠나긴 했지만 이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세준이 나영에게 먼저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진짜 두 사람은 헤어질 것처럼 싸우고 고개를 돌리지만 갑자기 나영이 다시 세준에게 다가와 붙잡자 그는 돌아서 나영을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이들이 언제 싸웠느냐고 보일 정도로 또 살가운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갈등의 소지가 있어도 그것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그래서 어떤 파국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금세 갈등 이전 상태로 돌아온다. 이것은 세준과 나영의 밀당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부부로 살아왔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고 울고불고 하지만 이를 긍정해버리는 유세희(윤소이)의 이야기가 그렇고, 나이는 들어서 여전히 젊은 여자 밝힘증을 보이는 유종철(이순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김숙자(강부자)와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다.

 

또 외부에서 보면 오해하기 쉬운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둘이 함께 사는 유민호(노주현)와 이지선(서지혜)의 경우도 그렇다. 이런 외부 시선이 끼어들면 갈등은 커지고 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지선은 시아버지인 유민호가 다른 여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고 유민호는 죽은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허허웃는 게 유민호의 캐릭터다. 이러니 갈등은 쉽게 봉합된다.

 

집안 간의 격차 때문에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소재다. <그래 그런거야>에도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유세현(조한선)과 결혼한 유리(왕지혜)를 여전히 탐탁찮게 여기는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또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자라난 유리가 시집살이하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갈등은 별로 없다. 그것은 유리라는 캐릭터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솔직하게 모든 걸 드러내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지만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귀여운 푼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야>는 이처럼 기존의 갈등들을 끝까지 몰고 나가는 막장드라마들의 문법을 정반대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갈등이 생겨도 제목처럼 그래 그런거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종의 긍정어법이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사실 막장드라마들이 해체시켜버리는 가족 이야기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이 드라마에는 야심차게 깔려 있다.

 

물론 그래서 이 드라마는 따뜻하다.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김숙자(강부자) 같은 인물이 가족의 중심을 딱 잡아주고, 평생 집안 살림 하느라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별 불만을 얘기하지 않다가 한 번 떠나게 된 경주 여행에서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한혜경(김해숙) 같은 며느리도 있다. 진짜 가족이 그러하듯이 갈등과 문제가 있어도 이들을 서로를 토닥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의 진짜 의미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상화되고 판타지화된 가족이지 지금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핵가족화되다 못해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현실에 <그래 그런거야>의 대가족은 이제는 낯설게 다가온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주는 향수는 있지만 내 얘기 같지 않고 남 얘기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래 그런거야>의 한계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수현 작가는 그렇게라도 사라져가는 옛 가족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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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 시즌2 가능성

 

이토록 완벽한 엔딩이 있을까.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섣부른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새드엔딩을 그리지도 않았다. 이재한(조진웅)은 죽지 않고 차수현(김혜수)에게 돌아왔지만 김범주(장현성)를 살해한 후 실종되었다. 이렇게 과거가 바뀌자 박해영(이제훈)과 차수현의 미래도 바뀌었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총에 맞아 사망한 박해영은 되살아났고, 형의 누명이 이재한에 의해 밝혀지면서 가족은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차수현과 함께 했던 미제사건 전담팀은 아예 사라져버렸고 자신은 전혀 다른 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재한의 생사가 궁금한 그였다. 그는 이재한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했고 그 길에서 차수현을 다시 만났다.

 

드라마는 쉽게 그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대신 이재한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요양병원을 찾아가는 박해영과 차수현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정도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재한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하지만 그가 죽었을 가능성 또한 드라마는 버리지 않고 열어두었다.

 

왜 이처럼 쉽게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또 그렇다고 새드엔딩을 보여주지도 않았을까. 아마도 해피엔딩을 마지막회에 갑자기 보여주는 건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지금껏 달려온 그 간절함의 기조를 상당부분 뒤집을 위험성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의 메시지는 마지막회에 담겨진 포기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그 엔딩에 있지 않은가. 섣부른 해피엔딩은 현실의 무수한 미제사건들에 대한 간절함까지 상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마치 드라마가 모든 걸 해결해준 것 같은.

 

그래서 끝까지 해피엔딩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시그널>은 세 사람이 모두 살아있다는 희망의 뉘앙스를 남겼다. 그 희망은 또한 시청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시즌2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 이재한이 병원에서 창밖을 보다가 뒤돌아서는 모습과 그 옆에 놓여진 무전기는 지금 바로 시즌2로 이어져도 아무 손색이 없는 엔딩이었다. 그만큼 작가도 시즌2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엔딩에서는 느껴졌다.

 

시즌2에 대한 의지가 작품의 엔딩에 담겨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늘 시즌2가 어려웠던 건 배우들이 모두 여기에 대한 동의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PD는 그 의지를 이미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이제훈은 일찌감치 시즌2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조진웅과 김혜수가 의지를 드러낸다면 시즌2는 기정사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지상파드라마가 시즌2를 요구받았어도 실현시키지 못했던 반면 tvN은 시즌제를 해왔던 점도 <시그널>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물론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막돼먹은 영애씨><응답하라> 시리즈 등은 시즌제를 통해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았던가. 이처럼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을 방송사가 외면할 까닭이 없다.

 

무엇보다 <시그널> 시즌2에 대한 요구는 이 드라마가 그토록 꿈꿔온 미제사건들의 해결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절함은 어찌 보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뛰어넘는 무전기 설정을 시청자들이 허용한 이유이기도 하고, 이대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지 말고 이 드라마가 달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그널>의 시즌2를 열망하며 그로 인해 이 땅의 많은 미제사건들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게 만드는 간절함은 그러니 애초에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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