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선' 윤선주 작가라면 의사들 멜로로 풀진 않을 거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은 그 소재가 독특하다. 이 드라마가 소개되기 전까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며 의료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섬을 중심을 의료 활동을 벌이는 이 병원선은 그래서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 배가 있고 그 배를 타고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의료행위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지해주고 싶은 소재니까. 

'병원선(사진출처:MBC)'

게다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상정하는 건 의학드라마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극적 상황들이 가능한 장르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로서의 병원선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주는 그 풍광이나 때 아닌 자연재해 같은 또 다른 극적 상황이 가능해진다. 물론 섬사람들과 병원선 사람들이 갖게 되는 끈끈한 인간애나 휴머니즘은 당연해지는 기대요소다. 

또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과 성장과정 역시 기대요소 중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과의 송은재(하지원)가 병원선으로 오기까지 보여준 면면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손을 벌벌 떠는 신참 앞에서 수술 도중 그런 손이 환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고 호통치며 척척 수술을 해내는 장면만으로도 이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충분히 빠질 수 있었던 것. 

최연소 과장이 되고픈 욕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섬마을에 사는 엄마가 수술이 필요해 보내는 마을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엄마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가 병원선으로 자청하여 오게 되는 그 과정은 그래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좇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공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치열한 삶이 행복을 찾아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병원선으로 와 섬사람들을 위한 의사로서 살아가는 일은 챙기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부채감으로 시작된 일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회만으로도 독특한 의학드라마로서 기대감이 넘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남는 불안요소들도 적지 않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멜로가 그것이다. 연애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송은재라는 캐릭터가 병원선에서 만나게 되는 곽현(강민혁)과 결국 멜로관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지점은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갖게 만든다. 

물론 멜로를 원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최근 들어 본격 장르드라마에 대한 요구 또한 적지 않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아버지의 아들로서 곽현은 실력과 외모 평판까지 사실상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와 송은재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커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멜로의 등장이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던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적어도 <병원선>에서의 이야기만큼은 적절한 선이 유지됨으로써 본래 하려고 했던 휴머니즘과 성장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기대하는 면이 있다. 만일 이 부분의 균형이 깨진다면 이 좋은 소재의 드라마가 평이한 멜로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은 <병원선>의 작가가 우리에게는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 세종>, <비밀의 문> 같은 주제의식이 유독 강한 작품들을 내놓은 윤선주 작가라는 점이다. 병원선이라는 특별한 공간 위에서 청년의사들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예의나 그를 통한 성장기는 그래서 <병원선>에 대한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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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의 신기원 ‘품위녀’, 무엇이 그리 특별했을까

욕심쟁이 드라마다. <품위 있는 그녀>는 결국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마지막 회 12%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JTBC 미니시리즈 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백미경 작가는 전작인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성공시키며 JTBC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품위 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하지만 이 작품이 얻은 건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에서부터 사회 풍자극, 치정극 같은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한 드라마 안에 녹여놓은 완성도 높은 대본이 있었고, 김희선과 김선아를 중심으로 빈틈없는 연기의 향연이 있었다. 보통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가고,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삼박자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드라마라고 할 때, <품위 있는 그녀>는 그 기준에 모두 부합한 드라마였다. 

<품위 있는 그녀>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무엇보다 강남 부호들의 위선적인 삶을 들여다본다는 쾌감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치정과 돈 관계로 얼룩진 구질구질함이 이 드라마가 폭로해낸 것이었다. 욕망으로 얼룩진 그 삶이 실체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허망한 것이라는 걸 백미경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통찰해냈다.

단지 폭로의 쾌감만 있었다면 <품위 있는 그녀>가 가슴까지 어떤 울림을 주는 드라마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박복자(김선아)라는 인물이 이 세계에 들어와 파란을 일으키는 이야기지만,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인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담아냈다. 그토록 꿈꾸던 진정한 품위와 우아함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파국을 맞는 그 삶을 통해 우리네 서민들이 갖는 욕망과 그 욕망의 끝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면서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그 세계로부터 탈주해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는 돈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평상시에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품위 있는 그녀’의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다. 그것이 진정한 ‘품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이처럼 자못 무게감이 있는 메시지를 백미경 작가는 지극히 대중적인 작법들을 통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이미 첫 회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박복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마지막 회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작가가 공언한 것처럼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서야 그 진범이 밝혀지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진범이 누구인가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장치가 있어서 시청자들은 끝까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가 범인인가를 추측하게 만드는 그 장치를 통해 여러 용의자들(?)의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 또 다른 떡밥으로서의 풍숙정 김치의 정체는 그 실체가 조미료였다는 게 밝혀짐으로써 어떤 통쾌함을 안겨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맛도 모르면서 비싸게 산다고 진짜 맛이 아니라는 것. 품위가 그러하듯이.

<품위 있는 그녀>는 지금껏 JTBC 드라마가 추구해온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중성까지 확보해낸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았다.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연기와 연출... 좋은 작품의 교과서 같은 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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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녀’, 김선아는 왜 돈을 얻고도 허망해진 걸까

“박복자씨,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난 처음부터 그걸 알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서 우아진(김희선)은 박복자(김선아)에게 그렇게 말한다. 마침 박복자는 과거 호텔에서 우아진을 처음 봤을 때 그녀가 입었던 하얀 원피스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말하던 참이었다. 도대체 왜 박복자는 그 하얀 원피스에 집착하고, 우아진은 그런 그녀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 JTBC)'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색색의 원피스가 아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우아진. 아마도 박복자는 그런 우아진의 모습을 처음 접하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품위’를 자신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모 없이 자라 버림받는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그것. 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치.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내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 바로 거기서부터였다면 박복자의 욕망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게다.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박복자는 그 품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오해했을 게다. 거기서부터 비뚤어진 욕망이 비롯된다. 안태동을 유혹하고 그의 진심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안태동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이 그토록 그녀가 원했던 우아진에게서 보이는 그 품위를 얻게 했을까. 

부유층의 동태를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청함으로써 파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풍숙정의 오풍숙(소희정)은 절대로 박복자가 그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하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박복자 스스로도 넘치는 돈을 가졌지만 자신이 본래 얻으려 했던 그 ‘품위’는 얻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우아진을 찾아와 그녀처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애원한다.

우아진은 처음부터 박복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우아진을 만났을 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알아보고 예술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걸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돈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개인적 성취나 성장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내 돈에 대한 욕망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아진이 다시 박복자의 마음을 돌리는 순간에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언급하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애초에 박복자가 가졌던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품위 있는 그녀>는 첫 회에 박복자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런 장치를 만든 건 이 드라마가 그녀의 폭주 끝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있었고, 그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 장치가 가진 의미심장함은 ‘죽음’을 이 욕망에 대한 폭주 직전에 슬쩍 꺼내 보여줬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우아진이 함께 하는 마음공부 모임에서는 저마다 유서를 써와 읽는 시간을 가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바라보면 박복자가 가진 그 욕망의 허망함이 공감된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얻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삶의 ‘품위’가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의 품위란 죽음을 전제로 바라볼 때 그 삶이 얼마나 자신에게 진심어린 삶이었는가를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안태동 회장의 집은 그런 점에서 보면 욕망의 허위로 가득 채워진 곳이다. 그 곳에는 주인들도 혹은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 욕망의 수레바퀴 안에서 휘둘린다. 박복자는 그 부유함이 삶의 품위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것은 욕망의 수레바퀴에 휘둘리는 일일 뿐이라는 걸 엄청난 재산을 얻은 후에 돌아오는 허망함 속에서 깨닫는다. 우아진은 그 세계 속에서 그나마 자신을 지키며 살아오던 인물이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그런 삶이 그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탈출하는 인물이다. 결국 우아진은 홀로서고 그 누구와 비교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에 충만함을 느낌으로써 품위를 얻는다. 

<품위 있는 그녀>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 이 안태동 회장의 집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진정한 삶 사이의 긴장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갈등 상황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강남의 부유층들이 살아가는 삶을 막연히 동경하고 그래서 그렇게 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이 과연 동경할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 품위라는 것이 돈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막바지에 이른 <품위 있는 그녀>에서 궁금해지는 건 박복자를 누가 살해했는가 하는 그 의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박복자가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끼는 감정의 동요와 변화들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끝에서 그녀는 과연 진정한 삶의 품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까. 그래서 그녀가 동경하던 우아진의 삶이 사실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될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동경하던 그 마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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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녀’, 김희선이 보여주는 품위란 무엇인가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는 왜 ‘품위’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 부유한 삶이 마치 ‘품위’를 가져다 줄 것처럼 보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것이 틀렸다는 걸 시작부터 끄집어내 놓는다.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하는 강남의 아줌마들은 명품으로 도배를 한 모습으로 앉아 있지만 전혀 품위를 느끼기가 어렵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들은 대화는 한 마디로 속물적이다. 누가 무슨 한정판 명품을 샀는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 중산층의 학생들이 오는 것을 꺼리는 특권의식을 드러낸다. 나아가 누가 누구와 바람이 났느니 하는 뒷얘기가 수다의 소재로 오른다. 요트를 빌려 한 턱 내는 파티에는 그녀들을 시중 들 젊은 사내들이 올라탄다. 품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돈이면 뭐든 다 되고, 충분히 부유함에도 돈을 더 벌 수 있거나, 그 돈으로 치장하는 것이 자신의 격을 올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 속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우아진(김희선)이다. 그녀는 자신이 부유하다고 해서 그것을 드러내고 갑질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모임 사람들과 적당히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긴 하지만, 그녀가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대하는 모습은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속물적인 그녀의 집안사람들과도 그녀가 다른 점이다. 

그녀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은 그녀의 딸이 엄마에 대해 하는 말에서 드러난다. “엄마가 그랬어. 상대방이 부족하다고 내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그녀는 최소한 가진 것을 위세로 내세우는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은 그녀를 마치 딸처럼 생각해 조언과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그녀는 그 아주머니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 집에 안태동 회장(김용건)의 마음을 얻어 그 안사람 자리를 차지한 박복자(김선아)는 가난을 뛰어넘기 위해 온 몸을 던져 그 위치에 오르지만 그녀 역시 품위라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 그녀는 칸딘스키에 대해 척척 얘기할 정도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녀가 하는 행동은 저 브런치 자리에서 속물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이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안사람 자리를 차지한 그녀는 그 권력을 이용해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제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 어딘지 음모가 엿보이는 새로운 사람을 메이드로 뽑아 자신의 측근으로 세우려 한다. 

<품위 있는 그녀>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여겨지고, 그 축소판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아니며 어떻게든 선을 넘어 그 권력을 쟁취한 자들이 모두 품위 없는 짓들을 벌이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작품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가진 ‘천민 자본주의’의 속성을 ‘품위’라는 관점으로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품위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이 드라마는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답변을 하는 인물이 바로 우아진이다. 물론 그녀 역시 이 속물적인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이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거기에 굴복하거나 그들처럼 속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바람 난 남편과 딸의 미술선생을 불러 말 몇 마디로 그들을 굴복시키는 모습이나 갑자기 시어머니로 들어오게 된 박복자에게 결혼 전 계약서를 쓰게 하는 대목은 그래서 더 통쾌하게 다가오고, 이 우아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우아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품위라는 것이 돈이나 권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다. 그녀에 대해 심지어 일하는 분들까지 지지를 보내는 건 그녀가 평상시 해왔던 타인을 인격적으로 대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가 딸에게 “상대방이 부족하다고 내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말했듯, 저 속물적인 천민자본주의의 실체를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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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의 신부’가 전하려는 진심,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잘 들어. 물의 신, 하늘의 신, 땅의 신. 우리들은 자연이다. 곧 나는 자연이다.” 하백(남주혁)의 이 대사는 낯설다. 현실적인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이 주인공이 하백이라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낯선 말을 하는 인물 앞에 선 소아(신세경)의 황당과 당황은 마치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게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그 말을 듣고는 이렇게 반문한다. “나는 자연인이라고요?”

'하백의 신부(사진출처:tvN)'

우리에게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이 “나는 자연이다”라는 대사보다 훨씬 더 익숙하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나는 하백이다”를 반복해서 말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드라마는 바로 그 비현실성 때문에 초반 몰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tvN <하백의 신부>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를 위해 병맛 코미디를 그 장르로 차용해 이 어려운 몰입을 유머로 넘어서려 한다. 

<하백의 신부>의 첫 방에 나오는 비판적 목소리들은 사실 예견된 것들이다. 이 작품은 원작 만화가 가진 ‘신계의 이야기’라는 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계로 내려온 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나 그 신을 연기한다는 건 사실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가 몇 배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저 소아의 입장이 된다. “나는 자연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하백에게 자꾸만 “나는 자연인이라고요?”라고 묻게 된다. 

이런 병맛 코미디 설정을 몰입을 위한 전략적 장치로 세우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왜 이런 하백이라는 신의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가 하는 그 의도일 게다. 사실 비현실적인 설정과 이를 넘어서려는 병맛 코미디라는 설정의 겉면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하백의 신부>는 첫 회에 상당 부분 그 의도를 대사 속에 드러내고는 있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질문이다. 

“이봐 종. 넌 정말 가장 필요한 게 도오온이야? 인간에게 왜 그렇게 도오온이 필요한거지?” 하백이 묻자 소아는 말한다. “도오온이 있으면 행복해질테니까요.” 그러자 하백은 그녀의 말을 뒤집어 그 의미를 되새긴다. “이봐 종. 넌 가장 필요한 게 도오온인데 도오온을 가지면 행복해지니까. 가장 필요한 건 행복이군.”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소아에게 하백은 거꾸로 그녀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사실을 그녀는 머리로는 이해할지 몰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당장 대출을 연장하지 않으면 파산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은 너무나 쉽게 아주 낮은 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없는 이들은 어렵게 그것도 아주 높은 금리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빌려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앞에 그녀는 서 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행복일지 모르죠. 정말 지쳤거든요. 그러니 이제 그만 가주세요.”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지쳤다고.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을 그녀는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산 속에 있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팔리지도 않는 땅이 전부이니. 

그 산 속에서 하백과 그녀가 마주하는 상황은 그래서 그 병맛 코미디 너머를 바라보면 자못 의미심장하다. 아무 것도 없는 그녀가 마주한 건 하백 스스로 얘기했듯, ‘자연’이니 말이다. 그 자연 속에서 네비게이션에 기대 길을 가던 그녀는 길을 잃는다. 그런데 그건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자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일까. 

지친 현실 속에서 돈이 구원이 될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때론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우리를 넉넉히 껴안아주는 자연이 주는 행복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하백의 신부>가 병맛 코미디 속에 숨겨 말하려는 진심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지만 찾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자연처럼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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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녀’ 김선아, 통쾌한데 불편한 이유는 뭘까

저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강남의 부호들로서 뭐든 사고 싶은 건 사고 하고 싶은 건 하는 그들이다. 그들이 사는 집 자체가 서민들에게는 현실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문을 통과해 들어가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되는 대저택에, 도대체 방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집안. 게다가 그 집에서 주인들을 위해 일하는 아주머니들.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가 보여주는 강남의 부호들이 사는 모양은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게다가 이 걱정 하나 없이 살아갈 것 같은 이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가관이다. 불륜은 마치 공기처럼 퍼져 있고, 심지어 공공연히 아내에게 내놓고 내연녀 이야기를 하는 남편도 있다. 아는 언니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자신의 레지던스에서 상습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딸의 미술선생과도 바람이 난다. 마치 일반적인 삶은 이제 지겹다는 듯 탈선은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니 이 세계 속으로 들어간 박복자(김선아) 같은 흙수저의 서민이 가진 알 수 없는 분노와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욕망을 채우려는 그 모습들에 시청자들은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편으로는 저 위화감을 주는 세계를 파괴해가는 박복자의 행각에 통쾌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가 저지르고 있는 그 범죄가 주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건 그나마 이 세계에서 어떤 자신만의 룰을 지키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모두가 불륜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욕망을 분출하며 살아갈 때 그녀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모두가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들을 하녀처럼 부릴 때 그녀는 그 분들의 자녀의 생일선물을 챙겨준다. 물론 그것 역시 그녀가 가진 허영일 수 있다. 자신은 충분히 가졌지만 또한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박복자에 의해 우아진의 세계가 깨져버리는 이 구도는 아마도 <품위 있는 그녀>가 의도하고 있는 자본화된 사회의 부박함을 잘 드러낸다. 이름처럼 박복한 여자의 도발로 인해 그 우아한 세계가 깨져갈 수 있는 건 이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안태동 회장(김용건)이기 때문이다. 우아진은 박복자에게 멈추라고 했고, 급기야 “나가야 한다”고 명했지만 어느새 안태동의 마음을 사로잡은 박복자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 존재가 된다.

돈줄이 모든 권력의 중심이 되고 그 중심을 쥐는 것으로 이 시스템의 권력을 쥐게 되는 박복자는 그래서 이제 우아진을 비롯한 그 집안을 장악하는 새로운 실세로 등장한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건이지만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이 공고한 시스템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박복자에게 느끼는 동정과 분노는 이 시스템의 을로서 갖게 되는 이중적인 감정이다.

이로서 드디어 만들어진 우아진과 박복자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흥미진진해진다. 시청자들은 때론 박복자의 도발 앞에 우아진이 그녀의 욕망을 멈추게 해주길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우아진의 그 위화감을 주는 세계가 박복자에 의해 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드라마 초반에 등장한 바 있다. 박복자의 죽음. 그것은 욕망의 끝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파괴된 우아진의 세계를 말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지만 또한 우리 사회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는 이 대결구도가 가진 흥미진진함과 그 안에서 인물들이 일으키는 동정과 분노의 양가감정의 힘에 의해 팽팽하게 흘러간다. 그러면서 그 대결구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품위 있는 그녀>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가져가는 독특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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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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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 그 많은 경계들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가슴에 칼이 박힌 채 바로 그것 때문에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 간단해 보여도 이런 캐릭터를 도깨비에 부여한 건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참신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른 무게감을 이 캐릭터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가 뭔가. 혹부리 영감에게 속아 혹과 도깨비 방망이를 바꿀 정도로 아둔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도토리 깨무는 소리에 집 무너지는 줄 알고 줄행랑을 치는 겁많은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토대로 보면 도깨비는 인간을 살해할 만큼 악독하지 않고, 인간의 꾀에 넘어가 초자연적 힘을 이용당하는 미련함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신이지만 조금은 희화화되어 인간적인 면면을 가진 캐릭터가 바로 도깨비다. 김은숙 작가가 다른 시도 아닌 도깨비를 선택한 건 실로 탁월했다고 보인다. 도깨비라는 존재는 서구로 보면 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캐릭터일 수 있지만 또한 우리네 고유의 개성을 가진 신이라는 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 점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이 콘텐츠가 보편적으로 먹혀들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가슴에 박힌 칼로 인해 영겁을 살지만 그것이 또한 죽지 못하는 것으로서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는 희비극 설정은 자칫 허황될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설화 속의 도깨비는 그래서 희화화된 존재지만 이 드라마 속의 도깨비는 비극성을 껴안은 진중한 면면과 동시에 도깨비 특유의 장난기와 가벼움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된다. 이 설정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것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걸 캐릭터로 구현해낸다.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전쟁의 신이었던 김신(공유)의 이야기가 현재로까지 이어진다. 김신은 죽지 않는 존재로 계속 살아 현재까지 무려 9백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지은탁(김고은)이나 써니(유인나), 유덕화(육성재) 같은 인물들은 현생에 태어나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연기설 같은 것들이 끼어들면서 과거 고려시대의 김신과 그를 질투해 죽인 어린 왕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역시 죽음을 당한 왕비(김소현)가 현재 어떤 인물로 태어났는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도깨비>는 자연스럽게 사극과 현대극을 뛰어넘는 장르적 퓨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설정이 더 흥미로워진 건 과거의 악연이 현재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단순구도가 아니라 과거에는 악연이었지만 현재는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구도가 예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저 도깨비 캐릭터가 가진 희비극적 요소가 어른거린다. 즉 인연은 설렘을 동반하지만 그렇게 가까워진 사랑은 동시에 비극이 될 때 그 강도도 커지는 법이다.

 

이런 선택은 김은숙 작가가 마치 신데렐라 구박하듯 지은탁을 괴롭히는 이모네 집 사람들을 도깨비 김신이 벌주는 독특한(?) 방식에서 슬쩍 드러난다. 도깨비는 엉뚱하게도 벌이 아닌 금덩어리를 준다. 그래서 이모네 집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금덩어리에 좋아하지만 그것은 금세 지옥으로 바뀐다. 욕심이 상황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

 

이런 소소한 데까지 뻗어있는 이야기들의 면면들은 다름 아닌 김은숙 작가가 이제 인생을 좀 아는 고수라는 증거다. 행복은 비극과 연결되어 있고, 슬픔은 또한 행복이 되기도 하며 그래서 악연으로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굉장한 진중함이 사실은 가벼움과 공존할 수 있고, 시간이나 공간의 한계는 이야기라는 장치 안에서는 쉽게 그 경계가 무너진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이론적인 말일 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도깨비>라는 작품을 보다보면 너무나 쉽게 희극이 비극으로 또 비극이 희극으로 이어지고, 어떤 즐거워 보이는 욕망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어 버리며, 사랑이 주는 설렘이 다가오는 비극의 불안감으로 변화하는 걸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삶의 진짜 양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것. 멜로 한 장르를 깊게 파왔던 김은숙 작가가 그간 꽤 많은 작품들과 세월을 통해 어떤 경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심증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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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 어디까지 갈까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초현실적인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반영할까.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올 한 해 드라마의 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초현실적인 판타지를 만난 멜로다. tvN <또 오해영>이 사랑하는 여자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고, MBC <W>는 웹툰 속 주인공을 사랑한 여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으며, JTBC <마녀보감>이나 tvN <싸우자 귀신아>는 마녀, 귀신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대미를 인어가 등장하는 SBS <푸른바다의 전설>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장식하고 있다는 건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멜로드라마가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등장시켜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하게된 건 우선 드라마의 이야기성이 점점 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웹툰 같은 현재 드라마의 원천적 소스가 되고 있는 장르는 드라마가 이러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성을 극대화하게 된 기폭제가 되고 있고, 여기에 훨씬 좋아진 CG 기술은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를 허용한 건 시청자들이다. 이미 드라마 경험이 풍부해진 우리네 시청자들은 이런 판타지를 용인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결국 판타지라는 걸 공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판타지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저 비현실적인 허황된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곤란하다. <W> 같은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수용한 건 그 이야기가 마치 우화적인 느낌으로 에둘러 현실을 이야기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현실을 갖고 현실을 얘기하는 방식. 초현실적 판타지가 들어가는 드라마에서는 바로 이 우화적 기능이 그래서 중요해졌다. <W>가 제시한 작가와 작품 속 캐릭터의 문제는 신과 인간의 철학적인 질문은 물론이고, 독자의 개입으로 작가 개념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현재의 변화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인어 이야기를 현대로까지 끌어오게 된 건 인어라는 백지 상태의 리트머스지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보기 위함이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어가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 것. <도깨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는 과연 행복할까. 죽음은 과연 불행일까.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은 사랑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결국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에 빠져든다는 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픈 욕망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을 드라마를 통해 채워보려는 안간힘. 그런 관점에서 보면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나 <도깨비>의 도깨비가 우리의 어떤 갈증들을 채워주는가가 드러난다. 인어가 순수한 사랑같은 조금은 추상적인 갈증을 추구한다면, 도깨비는 우리네 설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욕망들, 이를테면 부에 대한 욕망이나 영생에 대한 욕망 혹은 초능력에 대한 욕망들을 건드린다.

 

<별에서 온 그대>가 촉발시킨 이질적 존재와의 로맨스는 그래서 이들 작품들로 이어지며 다양한 욕망들을 수용하는 중이다. 답답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바꿔주는 존재에 대한 희구. 그건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판타지가 유독 올해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건 그저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현재 처한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다는 반증은 아닐는지. 그 답답한 현실은 그래서 인어에 도깨비까지를 현재로 소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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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국을 예견한 <밀회>의 소름끼치는 폭로들

 

그 사람들 기분 좋게 돈 쓰게 하고 또 돈 벌고 그런 걸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먹이사슬. 계급 그런 말 들어봤어?” “꼭대기는 그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아니구나. 진짜 꼭대기는 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 마귀.” JTBC에서 방영됐던 <밀회>의 대사들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아니 최근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국을 이미 <밀회>는 예견하고 있었다.

 

'밀회(사진출처:JTBC)'

그것은 단지 등장인물의 이름과 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거론되는 이름이나 병원 이름이 소름끼치도록 똑같고, 그 상황도 딱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다. <밀회>라는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가 지금 현재 뉴스에서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회>는 상류층에 기생해 살아가며 스스로를 우아한 노비라 부르는 혜원(김희애)이 선재(유아인)라는 순수한 청춘을 만나 일종의 내부고발을 통해 그 더러운 실체를 까발리고 노비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시국에서 <밀회>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일찍이 이러한 내부고발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른바 상류사회의 추악한 진면목이 그저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는 예술재단과 학원까지 운영하는 서한그룹 서필원 회장(김용건)과 그의 아내 한성숙(심혜진), 딸 서영우(김혜은)가 살아가는 첫 번째 세계 상류층과, 서영우의 대학친구지만 지금은 그 밑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혜원이 사는 두 번째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선재라는 전형적인 빈곤층 청춘이 살아가는 세 번째 세계가 등장한다. 이 세 개의 세계를 통해 드라마는 갑질하는 상류층의 삶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포획하고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것은 자본의 종속관계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친구 사이지만 서영우가 혜원을 비서처럼 부리는 것처럼 첫 번째 세계는 두 번째 세계를 종속하고, 또 혜원이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진 이선재를 천거하고 지원하려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세계는 세 번째 세계를 종속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에 의해 나뉜 수직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있는 상류층의 결정은 저 밑바닥까지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예술재단에서 이선재 같은 천재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보다는 자신들이 사실상 돈거래로 상류층 자제들을 입학시켜주고 있는 것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이렇게 날카롭게 현재 우리가 직면하게 된 부조리한 우리네 종속 시스템을 그려냈을까. 물론 드라마는 세 번째 세계, 즉 선재에 의해 균열을 일으킨 두 번째 세계 혜원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던그 첫 번째 세계를 폭로하는 것으로 상황을 뒤집는다. 지금 현재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광화문 광장에 집결한 종속 없는 순수한 세 번째 세계가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던 언론과 야권의 두 번째 세계와 함께 첫 번째 세계의 부조리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혜원이 빠져든 욕망을 부추기는 마귀의 속삭임을 이겨내고 선재가 말하는 순수한 세계를 복원해낼 수 있을까. “모차르트가요. 어느 날 갑자기 난 이제부터 귀족들한테 주문 안 받는다. 내가 쓰고 싶은 것만 쓸 거다. 그러다가 일찍 죽은 거라면서요. 그러다 미치고 병들고.” 선재가 이렇게 말하자 혜원은 애써 부정한다. “부자들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얼마든지 제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선재의 그 한 마디에 마치 노예근성처럼 애써 저 견고한 상류사회의 시스템을 변호하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이 예전 한 사이트에서 막귀형이란 이름으로 선재에게 던졌던 말과는 상반된다.

 

그래서 선재가 그 막귀형의 이야기를 혜원에게 들려주자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양분된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제가 가끔 가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어떤 형이 그러더라구요. 스펙따위 필요 없고 그냥 막 즐기면서 살라고.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즐겨주는 거요. 저는 이 곡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비트 16, 32 막 쪼개갖고 그래서 어깨 빠지게 연습하고 변주 8번 스타카토 더럽게 맘에 안 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뻥 뚫려서 기분 째지고 그게 최고로 사랑해주는 거죠. 라흐마니노프랑 파가니니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게 장땡이잖아요. 먹이사슬이고 먹이고 뭐.”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저들의 갑질 이야기와 거기에 복무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를 집단적은 우울증으로 몰아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사태의 끝에서 우리는 <밀회>가 보여줬던 결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해줬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내 의지로는 못 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혜원이 선재에게 남긴 그 허허로운 말에 담긴 희망. 이즈음 <밀회>라는 드라마가 다시 보고픈 까닭은,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마주하고 거기서 어떤 것이 희망의 길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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