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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예능 그 이상의 도전이 갖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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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만일 시청률을 위한 것이라면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은 무모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청률만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예전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처럼 레슬링 협회 같은 곳을 찾아가 적당한 시범과 몸 개그로 웃음을 뽑아내는 편이 낫다. 진짜 프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레슬링경기답게 해보겠다며 장장 1년 동안 기술을 배우며 링 바닥에 몸을 수십 번씩 내던지는 그런 행위가 어찌 시청률 하나만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너무나 무모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대충 레슬링을 한답시고 흉내만 내면서 몸 개그를 시도한다면 그게 '무한도전'일까. 초창기 진짜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던 '무한도전'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미 세월을 겪으면서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실제 출연자들도 성장을 거듭했던 '무한도전'에서 이런 '대충대충'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한도전'은 이미 댄스스포츠 대회에도 나간 적이 있고 에어로빅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그 살벌한 봅슬레이 위에도 오른 바 있다. '무한도전'은 이제 예능이 다루지 않았던 영역 바깥으로 나가, 예능이 다루던 방식 그 이상을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무한도전'의 레슬링은 기대치에 걸맞게 달라야 한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은 그것이 예능 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그 도전 자체가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합을 맞춰서 하는 것이지만 맨몸으로 부딪치는 레슬링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엄청난 고통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힘겨운 스포츠다. 하지만 힘겨워도 고통을 감내하며 링 위에 오르는 그들의 도전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무한도전'이 몸으로 보여준 모습들은, 한때 그저 쇼일 뿐이라는 오해의 시선 때문에 이미지가 추락한 프로레슬링에 충분히 긍정적인 시선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에 제기된 레슬링 협회와의 마찰이 생겨난 것은 오히려 '무한도전'이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이게 예능 맞아하고 물을 정도로) 지나치게 진지했다는 반증이다. 만일 그저 몸 개그를 끄집어내기 위한 제스처였다면, '무한도전'의 동호회 성격의 레슬링에 대해 프로 협회가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무한도전'의 멤버들의 실제를 방불케 하는 연습은 프로 경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마추어고, 레슬링이라는 경기 자체에 대한 찬사를 1년 동안 온 몸을 던지며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여기에 대한 레슬링계의 비판은 가혹하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이지 다큐가 아니다. 레슬링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좀 더 대중들에게 레슬링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이지 레슬링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예능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에는 예능에 대한 선입견이 들어가 있다. 예능은 그저 재미있는 말을 건네고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웃음을 만드는 그저 그런 어떤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미 예능의 외연이 다큐와 드라마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 속에 온몸을 던져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의 몸이, 링이라는 경기장 위에서 몸뚱어리 하나를 던져 보는 이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레슬링의 몸과 뭐가 다를까. 고통의 강도는 다를 지 몰라도, 그 몸이 해야 하는 일과 해내는 일의 강도는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저 늘 예능이 해왔던 웃음의 코드 속에서 익숙한 웃음을 반복하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지만, 적어도 '무한도전'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는 말은 역시 '무한도전'이 그만큼 예능에만 머물지 않고 그 한계 바깥으로 나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부상 투혼까지 발휘하는 출연진들에게 좀 더 안전하게 도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사내들에게 겨우 1년이라는 시간을 주고(1년도 작을 것이다) 완전히 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레슬링다운 경기를 선보이겠다는 도전을 한 것 자체가 어떤 어려움을 내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몇은 진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선보이지만 몇몇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바로 그것이 '무한도전' 레슬링 경기가 말해주는 진정성이다. '무한도전'의 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장충체육관에 운집한 관객들이 보고자하는 것은 레슬링 경기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간 '무한도전'이 해온 과정들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 확인 과정을 통해 레슬링은 관객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향해 늘 새롭게 도전해가는 '무한도전'을 그저 시청률이라는 숫자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온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1년 동안 지옥 같은 링 위에서의 연습을 어떻게 숫자 하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 몸의 고통스러움이 주는 지독한 진정성을 느끼면서, 바로 그것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안타까워한다면 그것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을 한 가지 면으로만 바라보는데서 나온 오해일 것이다.

이제 예능은 웃음은 물론이고 리얼함이 주는 진정성을 통한 감동까지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예능의 외연이 이만큼 넓어진 데는 예능이 오로지 웃음에만 집착하지 않고 형식실험을 통해 다양한 차원의 재미들을 끌어안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무한도전'의 일련의 도전들은 예능 전체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해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어 이런 것도 예능이 되네?', 하고 말이다.

모든 도전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결과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특히 이 도전의 과정이 갖는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더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도전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해 어떻게 걸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실패? 적어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실패란 그래서 없다. 도전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라면 실패한 과정 자체 역시 성공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이라는 도전은 그래서 실패가 아니다. 조금 떨어진 시청률로도, 또 예능 영역 바깥으로 나옴으로써 조금 줄어든 웃음으로도 '무한도전'이 1년 간 온 몸을 링 위에 던진 그 도전 자체가 주는 가치를 상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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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은 그것이 예능 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도전 자체가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어렵다는 방증이다. 레슬링은, 무도 멤버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엄청난 고통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힘겨운 스포츠다.

    2010/08/30 08:50
  2. 무한도전 레슬링, 재미보다는 불안,불편?

    Tracked from Queen's Life  삭제

    얼마전 47초만에 전좌석 매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무한도전에 대한 국민의 애정과 관심을 다시 한번 입증해 보였습니다. 처음 WM7이 시작할 때 조금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멤버들이 재치있게 훈련을 잘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무한도전만의 재미와 매력을 한껏 보여주었습니다. 매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1년여 동안 고생한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몸이 안 따라주는지 공포심에 그런지 전혀 나아지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어..

    2010/08/31 11:33

멜로는 드라마의 독? 멜로에 대한 갈증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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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사진출처:MBC)

멜로는 여전히 드라마의 독일까. 트렌디 드라마들의 퇴조와 함께 멜로의 시대도 끝났다고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멜로드라마들이 시청률 40%대를 구가하던 건 이젠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출현은 멜로를 피해야할 어떤 것으로 치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멜로드라마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멜로가 사라졌을까. 멜로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물론이고 사극,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리고 실질적인 드라마의 성패를 뒤흔드는 존재로까지 부상하게 되었다.

'동이'와 '자이언트'의 시청률 곡선을 보면 멜로가 드라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동이'의 초창기 시청률을 끌어올린 장본인은 단연 동이(한효주)와 숙종(지진희)이 궐 밖에서 만나 벌이던 일련의 멜로 시퀀스다. 이른바 깨방정 숙종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 동이의 이야기는 이 사극에 힘을 부여했다. 그 후로 숙종이 정체를 숨긴 채 동이와 마음을 나누는 장면들이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동이가 숙종의 정체를 알게 되고 궐 내로 들어오면서부터 멜로는 주춤하기 시작한다. 대신 억울하게 궐 밖으로 내쳐진 인현왕후(박하선)를 복귀시키려는 동이와 장옥정(이소연)과의 대결구도로 이어지면서 시청률은 급하락했다.

이것은 물론 이 대결구도가 이미 여러 다른 사극에서 반복되었던 전형적인 틀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락하던 시청률을 다시 다잡은 것이 멜로로의 복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깨방정 숙종'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 '동이'라는 사극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왕이지만 서민적인 소탈한 모습은 동이와의 멜로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천민 출신을 사랑한 왕의 인간적인 모습은 이 사극이 가진 또 다른 축, 예를 들면 추리적인 요소 같은 것들을 소소하게 만들만큼 강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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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사진출처:SBS)

한편, '자이언트'가 초반부 긴박하게 흘러가던 사건의 연속에도 좀체 오르지 않던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은 강모(이범수)가 어린 시절 헤어졌던 가족들인 성모(박상민)와 미주(황정음)를 만나면서부터이다. 물론 이 만남은 멜로가 아니지만, 이 두뇌게임을 치르는 것 같은 드라마에 어떤 감정을 부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이 당시 생겨난 강모와 정연(박진희)의 애틋한 멜로가 이어지면서 시청률은 급물살을 탔다. 현재 이 드라마에서 사건의 흐름보다도 더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미주와 민우(주상욱)의 멜로라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멜로는 늘 반복되는 삼각 사각으로 이어지는 관계, 항시 존재하는 신데렐라 이야기, 부모의 반대로 겪게 되는 혼사장애, 우연한 만남의 남발 등등으로 비판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멜로의 이런 경향은 작금의 드라마들 속에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와 소재들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그려지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멜로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멜로는 이제 드라마의 윤활유로서 자리하고 있다. 멜로는 과도하면 식상하지만, 적절하면 드라마에 윤기와 촉촉함을 더해준다. '동이'와 '자이언트'가 보여준 일련의 시청률 등락은 이런 멜로의 힘을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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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 국민이 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

끊임없는 막장 논란을 가져오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에 대해 진형욱 PD는 "이 작품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드라마"라고 밝혔다고 한다. 진 PD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 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쓰는 드라마"이며 "평범한 위기나 너무나 편안한 일상만 펼쳐진다면 드라마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안내상은 "시청률 40%를 기록하면 국민드라마가 아니냐"며 막장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이 "드라마가 불편한 이야기를 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지금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하늘이시여'는 끊임없는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섰지만 시청률은 40%를 훌쩍 넘어섰다. '별난 여자 별난 남자'도 각종 논란에 휩싸였지만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한다고 해서 '국민드라마' 운운하고 나온 적은 없다. '수상한 삼형제'가 시청률을 내세워 국민드라마 운운하는 상황까지 온 것은,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그만큼 자극에 둔감해진 드라마 제작 행태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 같다.

무엇이 막장이냐에 따른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대중들의 정서가 그것을 막장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요소들이 막장의 징후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은 대충 짐작될 수 있다. 대체로 막장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막장과 완성도의 측면에서의 막장으로 나뉘어진다. 얼개가 느슨한 것은 완성도가 막장이라는 것이며, 소재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은 윤리적인 막장이란 얘기다.

'수상한 삼형제'는 얼개가 그다지 느슨한 드라마는 아니다. 따라서 완성도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기는 어렵다(물론 비정상적인 관계들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막장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을 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인 상황으로만 몰고 가는 드라마의 행태가 막장 논란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워진다. 즉 '수상한 삼형제'의 막장 논란은 좋은 필력을 가진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시청률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극적인 상황을 적재적소에 넣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데서 나온 것들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지금껏 흘러온 것을 보면 작가가 캐릭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캐릭터를 하나씩 끄집어내 자극적인 관계들을 얽는 것으로 극성을 올리고, 어느 순간 그 힘이 빠지면 다른 인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그것이 파편화되는 현재가족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만큼 이 드라마는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시청률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이즈음에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갖고 국민드라마라고 주장하는 상황은, 이 사뭇 달라 보이는 두 용어 사이에 근본적으로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같은 조건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시청률을 넘긴 드라마를 흔히 우리는 '국민드라마'라고 부른다. 그만큼 많이 봤다는 뜻이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국민'이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분야는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국민예능'이라 불려지고, '해운대' 같은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국민영화'라고 부른다.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국민개그맨... 이제 '국민'이라는 호칭은 조금 잘 나가는 장르나 연예인들에게 붙여주는 왕관 같은 것이 되었다.

잘 나가는 드라마나 예능에 '국민'이라고 붙여준 들 무슨 상관일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국민'이라는 호칭이 야기하는 집단적이고 강박적인 사회 분위기는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시청률 50%나 관객 수 1천만이 정상적인 수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온 국민의 반이 같은 드라마를 보고, 국민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같은 영화를 보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라고 한다면, 그 말은 국민이 막장이란 얘기인가.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라고 말해지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에 국민을 호명하는 이 상황도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률만 높으면 다 용서된다는 이 상황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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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완성도와 시청률의 상관관계

애초에 26회 만에 40%에 도달한 ‘선덕여왕’은 여러 징후들이 50%를 손쉽게 넘길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힘과 '선덕여왕'이 소구하고 있는 3,40대 여성 시청층, 그리고 김영현, 박상연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가진 힘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40%를 넘기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드라마가 진행과정에서 점점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선덕여왕'은 사실 그렇게 쉬운 드라마는 아니다. 전쟁 사극 같은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멜로가 낯선 이야기들 속에 감초처럼 존재하는 사극도 아니다. 초반부에 중국에서부터 신라로 넘어와 낭도로 성장하는 덕만의 이야기는 스펙터클을 보여주었지만, 덕만이 궁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미실과 대적하는 이야기부터는 정치사극으로 넘어가면서 볼거리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 정치사극은 심리극에 가깝고, 그 연출 또한 추리극에 가깝다. 따라서 인물들의 대사를 듣다보면 처음 보는 이들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추리극 같은 구조의 연출은 당장 대사를 통해 사건의 정황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을 한참 증폭시킨 후에 뒷부분에 가서 정황을 터뜨리는 것으로 드라마에 이미 몰입된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줄 지 모르지만, 새로 드라마를 보려는 이들에게는 장벽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추리극을 중간부터 보는 것과 같다.

대결구도에 있어서도 이 드라마는 결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극이 내세우는 선악구도는 그 옳고 그름이 명백한 게 단점이자 강점이다. 너무 단순해보이지만 누구나 보면 척 알 수 있는 그 선악구도의 대결 속에서 시청자들은 쉽게 몰입될 수 있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대결구도는 옳고 그름의 차이라기보다는 사고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악 개념을 넘어서 있다.

미실은 주인공 덕만의 대립자이지만 또 한 편으로 보면 훌륭한 여성 지도자로도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덕만은 미실을 그렇게 인정하고,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미실에게 가져가 물어본다. 미실이 종종 덕만의 멘토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미실과 덕만 두 인물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대결구도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상대방에서조차 배우려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각자 가진 사고관의 대결을 갖는 이 이야기는 물론 매력적이다. 하지만 시청률 면으로 보면 그다지 쉬운 설정은 아니다. 각각의 사고관을 이해시켜야 하며 그 사고관의 부딪침을 극적으로 만들어내고 거기서 한 인물의 승리와 성공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 수 있을까. 게다가 선악대결구도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그 대결이 갖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일 수 있다.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드라마가 너무 꽉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인물 또한 살리는 인물, 죽이는 인물 이렇게 나눠서 그려낸 것이 아니고, 각자 제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세워두었기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각 인물들의 상황을 모두 이해해야 전체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불편함이 생기게 된다. 물론 이 불편함은 즐거운 것이고 완성도 면에서도 높게 평가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는 대중적인 수치인 시청률에는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이라는 꽉 짜여진 완성도를 가진 꽤 복잡한 사극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로 여겨진다. 최근 미실의 난을 통해 어떤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또한 미실이 가진 완벽함에 도덕적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은 '선덕여왕'이 완성도와 시청률 사이에서 처한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처럼 보인다. 이렇게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물론 당연히 올려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자칫 시청률을 위해 지금껏 쌓아온 완성도에 흠집을 내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30%든 40%든 '선덕여왕'은 이미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쪼록 시청률에 대한 압박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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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예능 시청률의 격전지가 된 주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던 시기, 주말은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주말이면(금요일 저녁부터) 야외로 나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는 주말 시청률을 반 토막 내곤 했다. 특히 봄에 찾아오는 상춘객들의 급증이나 여름 바캉스 시즌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독한 불황의 여파일까. 아니면 점점 여가로 정착되어가는 영상문화의 영향일까. 이제 주말은 계절을 불문하고 시청률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먼저 드라마 시청률 경쟁의 불을 댕긴 것은 시청률 47%라는 괴력을 보인 ‘찬란한 유산’이다. 주말 드라마들이 주로 고정적인 시청층에 소구하는 가족드라마를 내세우며 평균적으로 20%대에 머물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찬란한 유산’이 남긴 유산은 실로 찬란하다고 할 수 있다. 47%라는 수치는 좋은 작품에 그만한 시청자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은 가족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적인 특징을 끌어안는 것으로 오히려 시청률 상승에 기폭제를 만들었다. 이것은 주말드라마하면 가족드라마라는 공식의 균열을 의미한다. ‘친구’나 ‘탐나는도다’ 같은 지금까지 주말에는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들이 주말에 포진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종영 후 전체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선덕여왕’으로 그 바톤을 월화로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주말은 드라마 시청률의 밭이라고 할 수 있다.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3회 만에 20% 시청률에 도달하고 있다.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하나’ 역시 15% 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는 떨어진 시청률에도 12%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위 권에 들어있는 주말드라마가 총 네 편으로 전체 순위에 있는 아홉 편 중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주말 시청률 경쟁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격전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전체 예능프로그램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KBS의 ‘해피선데이’가 따르고 있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그 다음이고,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한 때 이 경쟁의 대열에 있었지만 현재는 주춤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일요일에 집중되던 시청률 경쟁은 이제 토요일로 번져갈 조짐이다. 토요일 예능의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승을 맛보고 있으며, 토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긴 MBC의 ‘세바퀴’ 역시 16%대의 시청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KBS의 ‘천하무적 토요일’은 아직 9%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지만 잠재력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때 ‘무한도전’의 시청률을 위협하던 ‘스타킹’은 조작과 표절 시비로 가라앉고 있지만 절치부심 재기의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MBC가 ‘무한도전’ 앞자리에 ‘스친소’를 폐지하고 대신 ‘우리 결혼했어요’를 포진시킨 점이다. 타 프로그램과의 경쟁 때문에 약화되긴 했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의 시간대 변경은 어쩌면 토요 예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경쟁은 이로써 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말해주는 주중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20위권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무려 9편에 이른다. 만일 주말의 의미를 금요일 저녁부터 계산한다면 ‘절친노트2’를 포함해 전체 주중시청률 20위 권에 든 프로그램의 반이 주말에 포진한 셈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주말이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이라 예측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말은 오히려 시청률의 밭이 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큼 경쟁적이고 피곤해진 주중의 사회 풍경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말의 TV는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진 지친 현대인들의 여가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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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이번에는 듀엣가요제를 하는군요. 지난주에는 '여드름 브레이크', 그 전주에는 '궁밀리어네어', 또 그 전에는 '기습공격', '춘향뎐', '하루만의 세계여행'... 이렇게 주욱 소재들을 나열해보면 등장인물들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매번 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예능이라면 가져야할 웃음의 포인트들도 저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여드름 브레이크'가 '프리즌 브레이크'를 패러디로 가져와 리얼액션이 가지고 있는 예측 불허의 반전의 반전을 그 웃음의 포인트로 세우고 다른 한편으로 재개발과 철거의 문제를 의미로 세웠다면, '궁 밀리어네어'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패러디해 퀴즈쇼가 갖고 있는 리얼리티 요소에 체험과 기억을 연결시켜 재미를 부가시켰죠. '기습공격'은 공익적 성격의 몰래카메라의 한 형식을 상황극과 연결시켜 의미와 재미를 살렸습니다.

'무한도전'의 이런 계속 되는 새로운 소재와 컨셉트의 발굴은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는 물론이고 최근들어 쏟아져나오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예를 들면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일밤'의 '오빠밴드' 같은)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이 쇼들은 모두 한 가지씩의 소재를 갖고 그것을 통한 변주의 재미를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죠.

저는 비교해서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 보다는 각각이 가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의 장점을 주목해 프로그램들을 보는 편입니다. 예를들면 다큐같은 의외성과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 그리고 일반인들과의 어울림이 재미를 주는 '1박2일', 지금은 좀 아쉽지만 여전히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패밀리가 떴다', 이제 막 시작해서 그 특유의 야생의 느낌이 살고 있는 '천하무적 야구단', 밴드 구성과 연주라는 음악적 요소들이 리얼리티와 어우러져 재미를 주는 '오빠밴드'... 이렇게 말이죠.

이처럼 각각의 소재들을 갖고 있으니 프로그램은 그 소재가 주는 독특한 재미요소들을 극대화시키기 마련입니다. 반복적으로 그런 재미요소들이 노출되면서 프로그램은 쉽게 시청자들을 준비시킵니다. 아 저 정도 되면 복불복을 해야되겠구나, 아 이제는 밥을 차려 먹을 텐데 어떤 해프닝이 벌어질까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러한 예측가능한 소재를 가지고 변주하는 예능과는 결을 달리 합니다. 매회 예측 불가능한 소재를 들고 나와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장르와 소재에 대한 소화력이 놀랍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한편의 액션 스릴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주다가, 어떨 때는 퀴즈쇼를 보게 만들고, 어떨 때는 사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지게 했다가, 어떨 때는 전형적인 어워드쇼를 형식으로 가져오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저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TV라는 매체의 속성상 시청률은 늘 예측되고 기대되는 부분을 보게 하는 프로그램에서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처럼 예측불가능한 소재를 늘 가져오는 경우, 이것은 마치 늘 새롭게 출발점에 서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각각의 코너들이 훌륭한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확보된 프로그램의 연속성을 통해) 중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과, 매번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는 것을 어찌 같은 시청률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렇듯 매번 다른 실험을 하는 '무한도전'이 15%에서 17%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예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프로그램의 소재나 장르보다는 출연진들과 연출자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가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무한도전'에 있어서 이 15%-17% 사이의 시청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시청률은 '무한도전'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무한도전'의 진짜 힘은 바로 이 무정형의 힘, 그래서 늘 이번엔 뭘 할까 기대하게 만드는 그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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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도', 음악의 재미를 알려주는 '올림픽 가요제'

    Tracked from pa.ra.ma  삭제

    이번 주 무한도전에서는 '2007년 강변 북로 가요제'의 뒤를 이은 '올림픽 대로 듀엣 가요제'를 보여주었다. 이번 '올림픽 대로 듀엣 가요제'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무한도전은 정말 매번 변화하며, 자신들을 업그레이드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번 가요제가 저번 가요제보다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순히 숫자만 많아져서 풍부해진 것은 아니었다. 2007..

    2009/07/05 12:32

결국은 상업적인 선택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나

드라마 시대는 가고 예능 시대가 오나. 한 때 드라마는 방송사의 얼굴이었다. 어떤 드라마가 방영되고 얼마만큼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느냐는 그 자체로 방송사에 수익을 올려주면서 동시에 방송사의 이미지를 제고시켜주었다. 하지만 경제상황 악화로 광고시장이 위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으로 드라마는 상업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떨어져 가는 수익성은 방송사에 이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드라마는 더 이상 수익도 이미지도 올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빠진 자리에 채워질 것이 예능 프로그램이란다. MBC는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를 폐지하는 대신 그 자리에 ‘명랑히어로’를 전진 배치하고, ‘무한도전’은 5분을 더 연장시킨다고 한다. 금요드라마가 사라진 SBS는 대신 그 자리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할 예정이다. 드라마 시대는 가고 예능 시대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예능이 대안이 된 것은 상대적으로 제작비를 줄일 수 있고, 안 돼도 기본 시청률은 하는 그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대안이 굳이 예능이었어야 하며, 또 예능 역시 지금 드라마와 같은 경쟁으로 천정부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방송사가 외치는 건, 결국 돈돈돈일 뿐이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많고 경쟁 또한 지나쳤던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  속에 비아냥의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 사라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늘 있어왔던 드라마 시간대 이외에 추가로 배치되었던 드라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BS 금요드라마는 그간 없었던 금요일 시간대의 드라마였고, MBC의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도 예능의 자리를 차고앉았던 것이었으며, 또 상업성을 노리고 KBS2에 신설되었던 일일드라마도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이 드라마들의 폐지는 드라마 세상에 낀 거품을 제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 약화와 함께 방송사가 일제히 들고 나온 건 결국 상업성이다.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이니 수지가 맞는 예능으로 눈을 돌린 것뿐이라는 것이다. 평균 잡아 회당 6천만 원, 적게는 3천만 원 정도만을 갖고도 최소 10%에서 20%까지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으니 예능은 여러모로 드라마보다는 확실히 되는 장사다. 드라마에 낀 거품이 가져온 수익성의 약화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방송국의 상업성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그 빈자리에 참신한 교양이나 다큐 같은 것을 배치하는 것은 이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인가.

덩치 커지는 예능,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덩치가 커져 가는 예능의 버라이어티화는 드라마의 부실만큼 큰 뇌관을 안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SBS의 ‘일요일이 좋다’는 회당 제작비로 1억3천만원이 투여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역시 회당 제작비가 1억2천3백만원. ‘해피선데이’가 방송3사 주말 예능 중 가장 적은 제작비를 기록했으나 그것도 미술비와 협찬을 제외한 비용으로 9천2백만원을 기록했다.

물론 모든 예능들이 이처럼 많은 제작비를 투여하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상대적으로 적은 6천5백만원, ‘스친소’는 6천3백만원, ‘개그야’5천8백만원, ‘스타킹’5천7백50만원, ‘야심만만-예능선수촌’5천6백80만원이 회당 제작비로 들어간다. 하지만 점차 버라이어티쇼에 입맛을 들이게 만드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상업적인 선택을 좋다고만 볼 수 있나
제작비를 좌우하는 연예인의 출연료와 야외촬영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즉 누가 출연해 어딜 가느냐가 관건이 된 예능 시장은 점차 이 부분에 대한 제작비 투여를 어떤 식으로든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캐릭터 중심에 이야기가 매회 구성되는 버라이어티쇼는 점차 드라마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어쩌면 또 다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항간에는 벌써부터 웰 메이드 드라마보다는 광고주 입맛에 맞는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잘 만든 프리미엄 드라마보다 욕은 먹어도 시청률은 나오는 투자대비 효율이 높은 그런 드라마들이 판을 칠 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다. 앞으로 TV에서 좋은 드라마는 점점 사라지고, 반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더 많아지며, 그 중간을 상업적으로 무장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장악한다? 상상만 해도 TV가 풍길 돈 냄새가 물씬 퍼지는 느낌이다.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방송사가 어떤 식으로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TV가 온통 상업적인 색채를 띄게 되는 것 역시 좋다고 볼 수 있을까. 프로그램 몇 개 없애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수지가 맞는 예능을 채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진짜 문제는 드라마든 예능이든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거품들, 예를 들면 과도한 출연료나 작품보다는 외형에 치중하다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는 그런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아닐까. 이 위기의 상황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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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야구장 해프닝이 말해주는 것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TV 세상에서 1등이란 의미는 두 가지다. 그것은 ‘최고’라는 의미와 더불어, 늘 비판의 전면에 노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절대 넘보기 힘들었던 드라마 시청률과의 대전에서조차 도전장을 내밀었던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은 그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는 최고로 찬양(?)되었지만, 하하가 군복무로 빠지는 시점을 기해 하향곡선을 긋게 되자 가장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식상하다”거나 “이제 한계”라는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외부에 더 노출되는 팀원들의 행동들은 쉽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뭇매는 시청률이 급락해 더 이상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이러한 1등이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지금 ‘1박2일’에서 반복되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가 급부상하는 상황에 ‘1박2일’은 1주년 기념으로 간 백두산 여행을 기점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다. ‘무한도전’이 겪은 대로 ‘1박2일’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박2일’의 경우 더 불리하게 된 것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무한도전’과의 대결구도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지류로서 청출어람을 해온 ‘1박2일’의 그간의 승승장구는 ‘무한도전’의 하락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으로 오인되기에 충분했다. ‘1박2일’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1년 전에 갔었던 충북 영동을 다시 갔지만 그렇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태백의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간 ‘1박2일’이 보여준 재미를 거의 재연해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시청률 하락에 대해 시청자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1박2일’의 어떤 노력도 먹히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에 결국 터질 게 또 터지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장에서 촬영을 한 ‘1박2일’이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반인들과의 접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접촉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1박2일’이 승승장구했던 시기에 톡톡히 재미를 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대민 접촉이었다. 독도 같은 오지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의 대민 접촉은 ‘1박2일’ 멤버들의 서민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더 부각시켰다. 연예인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존재가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장면들은, 멤버들의 겸손한 자세로 읽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러한 대민 접촉은 정반대로 읽히게 된다. 물론 촬영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장에 투입된 멤버들에 쏟아지는 비난의 초점은 그 시점의 이동에서 발생한다.

2등이나 3등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에 서 있던 대중들도 1등에 대해서는 좀더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특히 그 1등이 어떤 하락의 기미를 내보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상 2등을 하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들은 1등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다지 태도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비춰지는 양상은 다르다. 이수근이 방송에서 언급한 “이제 1년 만에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나대지 말라”고 한 시청자게시판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 동정 어린 응원을 받았지만 이제 막 주목받는 상황에서 나대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이 변화는 바로 ‘1박2일’이 지금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이든 앞으로든 1등에 오를 리얼 버라이어티가 직면할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지나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다. 모든 것을 시청률로 판단하게 될 때, 프로그램의 진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순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언제까지 이 수직적인 순위 경쟁에만 매달릴 것인가. 1등, 2등이라는 숫자경쟁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마다 다른 형식이나 내용, 아이템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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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된 TV 프로그램, 그 생존법과 한계

지금처럼 방송사간의 프로그램 경쟁이 치열했던 적이 있을까. 월화수목의 드라마 전쟁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고, 주말의 예능 전쟁은 그 판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중 드라마, 주말 예능’ 같은 틀조차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 월요일 밤의 예능 전쟁과 주말 드라마 경쟁은 점점 전 요일로 확산되면서 전방위적인 방송사간의 프로그램 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소재나 완성도에서 평준화된 TV
그런데 경쟁구도를 벗어나 각각의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이 가을의 TV를 바라보면 우위를 따질 수 있기보다는 각각의 개성들이 강하고,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답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에덴의 동쪽’이 대작으로서의 완성도 높은 시대극을 그리고, ‘타짜’는 부동의 소재인 허영만 원작을 각색했으며, ‘베토벤 바이러스’는 김명민 포스와 클래식소재라는 개성이 강하다. 반면 ‘바람의 나라’는 ‘주몽’과는 또 다른 고민하는 왕을 그릴 새로운 고구려 사극이며, ‘바람의 화원’은 김홍도, 신윤복 같은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퓨전사극을 기대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드라마들은 소재나 완성도면에서 어느 것의 우위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평준화되었다.

이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진화 단계를 거치며 다양해진 주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어떤 계보를 형성하면서도 즉각적으로 서로의 프로그램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무한도전’에서 비롯된 여행 컨셉트가 ‘1박2일’의 야생을 거쳐, ‘패밀리가 떴다’의 심리게임으로 이어졌고, ‘무한도전’의 리얼 버라이어티와 짝짓기 프로그램이 이종교배되면서 등장한 ‘우리 결혼했어요’의 연애모드는 거꾸로 ‘무한도전’과 ‘패밀리가 떴다’의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동시간대 경쟁하지만 모두 각각 한번씩은 수위에 올랐던 적이 있을 만큼 각각의 완성도를 구축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치열해진 편성전쟁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지만 이제 TV의 드라마와 예능은 선뜻 부동의 우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평준화되었다. 이 완성도나 소재면에서 승패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편성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마다 벌어지는 편성전쟁이나, 하루에 2회분을 방영하거나 스페셜을 앞뒤로 배치하는 등의 변칙 편성이 일반화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예능에 있어서 치열해진 건 시간대 경쟁이다.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는 각각 ‘해피선데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일요일이 좋다’라는 프로그램 속에 존재하면서 다양한 시간대 공략으로 시청률에 영향을 주었다. 초반 ‘1박2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는 다른 프로그램들이 같은 시간대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썼다. 하지만, 이제 그 힘이 약화되는 느낌을 보이자 ‘우리 결혼했어요’는 ‘1박2일’과 같은 시간대로 이동해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편성 전쟁만큼 치열해진 건,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다. 드라마에서 이제는 단순한 멜로나 트렌디가 통하지 않는 건 그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올 가을 드라마 대전이 볼만한 것은 거의 모든 드라마들이 소재면에서나 스타일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상황은 더 절실하다. 기본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형식이나 스타일이 정착되고 또 성공한 코드들이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에 소비되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자체가 가진 생명력은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는 새로움이 추가되면 그 자체로 전세는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패밀리가 떴다’가 성공한 것은 ‘1박2일’에 없던 새로움 (예를 들면 여성 출연자라거나 심리게임 같은)에 기댄 바가 크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새로운 멤버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시청자들에게 좋기만 할까
물론 시청률 경쟁은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에게 반가운 상황이다. 그만큼 질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은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방영시간이 조정되는 상황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한 프로그램에서 봤던 성공한 소재들이 여기저기서 똑같이 베껴지는 상황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 좋을 리가 없다. 이것은 끝없이 새로운 소재나 스타일을 발굴해낸 그 원본의 아우라를 무한복제를 통해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대 경쟁은 지금 시대에 얼마나 유용한 것일까. 하드웨어의 변화가 곧바로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처럼 작금의 디지털화된 방송환경의 변화에도 시청 패턴의 변화는 아직까지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시간대를 무너뜨린 디지털 환경에서 동시간대의 시청률 경쟁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그 변화의 속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화된 IPTV와 HDTV의 보급은 이 변화를 이끄는 주동력이다. 이 하드웨어의 변화가 말해주는 건 이제 경쟁의 시각보다는 다양성의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나라’, 그리고 ‘바람의 화원’을, 그리고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중 하나를 선택하게 강요받길 원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모든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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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방영에 변칙편성까지 시청률에 경도된 ‘이산’

‘이산’은 소재로 보나 특유의 시각으로 보나 훌륭한 기획의 사극임이 분명하다. 조선조 22대 임금으로 파당정치를 뒤엎고 개혁을 단행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성군. 게다가 이 정조는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임금이다. 이런 되는 소재를 가지고 ‘이산’은 왕과 개인으로서의 정조를 모두 다루는 독특한 사극의 한 장을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기획의 창대함을 두고 볼 때, ‘이산’이 얻은 것은 그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물론 초기 너무 과도한 의도를 세워놓은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작품은 뒤로한 채 시청률에 경도된 연장방영이나 변칙편성은 오히려 초반부 ‘이산’의 참신한 기획마저 색 바래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왜 ‘이산’은 보다 깔끔하게 끝내지 못하는 걸까.

창대한 기획에서 빗나간 초반부
‘이산’의 기획의도를 다시 들추어보면 그 창대한 기획의 면면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 기획의도에는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가진 정조는 물론이고, 파당정치를 해소한 정치인으로서의 정조, 실물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조선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룩한 정조, 다양한 실학파 인재들을 등용해 문화와 과학에 꽃을 피웠던 정조, 그리고 한 여인을 사랑했던 정조까지를 다루려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산’은 그저 왕조의 정치사만을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정조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을 모두 한 편의 화폭에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종영을 앞둔 ‘이산’이 다룬 것은 이 중 그 어느 하나도 만족시킬만한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탕평책을 시행해나가는 정조의 에피소드도 구체적인 것이 거의 없었고,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한 에피소드도 금난전권 철폐라는 발표로 그친 격이 되었다. 애초 기획의도에 들어있던 성송연(한지민)의 조상계(조선시대 상인들의 조직) 에피소드는 어찌된 일인지 아예 다루어지지도 않았고, 또한 군제 정비나 병기 연구 과정 에피소드의 하나로서 ‘무예도보통지’ 같은 무예책자 역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이산이 정조가 되는 과정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이산이 비로소 정조가 된 것은 45회에서다. 애초 계획이었던 60회에서의 종영은 이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정조의 업적이나 애초 의도에 들어있던 정조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같은 것들은 아직 시작도 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정순왕후(김여진)를 위시한 노론벽파의 끊임없는 암살시도(이것은 거의 마지막까지 다시 반복된다)와 영조(이순재)의 시험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산의 모습을 과도하게 반복했기 때문이다.

연장방영, 그러나 정조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이 과정 속에서 오히려 초반부 이산보다 더 주목된 것은 영조와 홍국영(한상진)이었다. 즉 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로써 영조와 홍국영(때로는 성송연)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심 힘이 위치이동을 한 것이다. 영조의 매병(치매) 설정이 그토록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것은 사실 정조를 다루기에도 벅찬 ‘이산’으로 보면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시청률이란 잣대로 보면 이 상황은 이해될 수 있다. 극의 힘을 이끌고 가는 것이 영조였기 때문이다.

중반 이상을 지나오면서 정조가 아닌 영조에 집중된 ‘이산’에 있어서 MBC의 16부 연장방영 결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또한 시청자들의 바람이기도 했으니까. 연장 결정의 이유로서 MBC가 내세운 것도 “정조의 업적과 개혁정책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서”와 “이산과 송연과의 멜로 라인 등 그 밖의 다루지 못한 부분으로 이산 시청자들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연장방영 속에서도 여전히 정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부각된 것은 홍국영이다. 홍국영의 끝없는 욕망과 그 추락에 대한 에피소드가 지속되었고, 본래 기획의도에서는 도화서에서 나와 조상계(조선시대 상인들의 조직)에도 들어가는 등 능동적인 캐릭터였던 성송연은 궁중 시집살이(?) 에피소드가 거듭되면서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홍국영의 죽음과 성송연의 장결병이란 불치병 에피소드로 채워지는 동안, 정조의 업적은 규장각 인물들과 정약용(송창의)의 간간한 ‘보고’로 처리되었다.

시청률이 ‘이산’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산’은 성군으로서의 정조를(특히 정치인으로서의 면모)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여러 번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산’이 선택한 것은 완성도보다는 시청률이었다. 완성도를 생각했다면 초반부 그렇게 질질 끌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어쩔 수 없이 연장방영을 하게 되었다면 그 이유에 걸맞게 완성도를 보충해나갔어야 한다. 300회가 거듭되는 동안 이제나저제나 정조로서의 면모를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필자 같은 시청자들로서는 이 대책 없는 후반부의 허무함을 성송연의 죽음, 정조의 죽음 같은 감성적 충격 혹은 화성 원행 같은 스펙타클로 채워야 하는 입장이다.

게다가 최근 ‘이산’의 종영을 두고 벌어진 ‘오락가락 편성’은 그 마지막 끝나는 길까지 이 드라마가 시청률의 희생자이자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남긴다. 이유야 어쨌건 두 차례의 스페셜 프로그램과 한 주에 한 번씩 띄엄띄엄 편성된 ‘이산’의 종영은 확실히 정상적인 끝맺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끝맺음을 함으로써 시청률로 보면 ‘이산’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방송사에 최대의 이익을 남겨준 드라마가 되었다.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이산’은 바로 그 시청률을 위해 완성도를 포기한 지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제 종영하는 마당에 ‘이산’의 이런 문제들을 시시콜콜 끄집어내는 것은 이것이 자칫 성공하는 드라마의 한 전형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들은 초반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편성 전쟁의 진짜 얼굴은 이것이다) 초반 시선잡기에 대부분의 힘을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초반의 힘이 끝까지 지속된다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의 과도한 힘주기는 대부분 중반 이후부터의 긴장감 저하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다반사다. 용의 머리만큼 중요한 것이 용의 몸통이자 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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