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복제의 덫, 달라진 시대와 소통하지 못했다

 

51부작 MBC <옥중화>가 종영했다. 최고 시청률 22.6%. 지상파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과 비교하면 나름 선전했다 평가할 수 있지만, 동시간대의 MBC 주말드라마가 이미 2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갖고 있었고 <내 딸 금사월> 같은 드라마는 34.9%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좋은 성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현대극과 사극은 극성이 다를 수밖에 없고, 게다가 <옥중화>는 우리가 이른바 거장이라고 부르는 이병훈 감독의 사극이 아닌가.

 

'옥중화(사진출처:MBC)'

물론 누구나 알다시피 시청률은 평가기준이 되기 어렵다. <내 딸 금사월>이 제 아무리 30%를 넘는 시청률을 가져갔다고 해도 이 시간대의 MBC 주말드라마가 막장드라마오명을 갖고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초에 <옥중화>는 그래서 이런 이미지를 상당 부분 털어낼 수 있는 작품으로 기획됐고 그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심지어 막장 사극이라는 오명까지 갖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시청률이 20%대라는 건 성적에서도 완성도에서도 모두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허준>, <상도>, <대장금> 같은 이른바 퓨전 사극의 기틀을 만들었고, <이산>, <동이>, <마의> 같은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MBC 사극의 브랜드를 확고히 해온 이병훈 감독. 하지만 어째서 이번 <옥중화>는 이런 혹평을 받으며 종영하게 됐을까. 애초에 전옥서라는 배경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사극은 당대의 어려운 민초들의 영웅담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옥녀(진세연) 캐릭터가 전옥서 다모에서 체탐인으로 변화하면서 이야기는 엉뚱하게 튀었다. 갖가지 직업을 소화해내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다 잘하는 전지전능한 캐릭터. 후에는 명종(서하준)까지 의지하는 비선실세가 된다는 캐릭터는 현실성을 잃어버리며 공감대를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옥중화>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은 이미 그토록 많이 해왔던 이병훈 감독의 작품들에서 요소요소들을 가져온 자기복제로 지목되었다. <대장금>의 틀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여성 캐릭터의 미션-해결-성장 구조는 물론 지금도 매력적인 이야기 틀이지만, <옥중화>는 거기에 새로움을 덧붙이는 데는 실패했다. 물론 이것은 이병훈 감독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와 <허준> 시절부터 함께 작업을 했었던 최완규 작가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빛과 그림자>로 재주목을 받았던 최완규 작가지만 이번 작품은 그 답지 않게 너무 졸작이었다. 하지만 이병훈 감독이 지금껏 작품을 해오며 사실상 작가들을 리드해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번 <옥중화>의 패인에서 그의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최근 들어 드라마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이 더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데 있다는 이야기가 드라마 제작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제 작품은 한 천재와 거장이 홀로 만들어낸 세계로는 많은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반영하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김수현 작가가 쓴 지난 SBS <그래 그런거야>가 실패한 이유도 작품이 나빴다기보다는 달라진 시대와 소통하지 못한 결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거기에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목됐던 건 자기복제였지만.

 

이병훈 감독이나 김수현 작가 같은 이들을 우리는 거장이라 부른다. 오랜 세월동안 작품을 해오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어 이른바 일가를 이뤘다고 말해도 무방한 그들이다. 하지만 확실히 시대는 바뀌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자칫 지금 시대와의 소통에 실패하게 되면 그건 독선이 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그 자기만의 세계가 갖고 있는 노하우는 자칫 자기복제의 유혹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거장들이 최근 박수 받지 못하게 된 건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자기의 세계가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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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과 김유정, <구르미>의 어른 아이들

 

사실 대본만 놓고 보면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왜 이토록 화제가 되는 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남장여자 코드의 사극 버전 멜로는 이미 <성균관 스캔들>이나 <바람의 화원>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스토리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스토리는 여기서 그다지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남장여자로 자신을 숨긴 채 내시로 궁에 들어온 홍라온(김유정)이 왕세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멜로 이외에 사극이 갖기 마련인 정쟁 구도도 그리 신선하다 여겨지지는 않는다. 왕이 있지만 모든 실세를 쥐고 있는 세도가 김헌(천호진)이 그 정쟁의 중심에 서 있다. 대리청정을 받아들인 왕세자 이영(박보검)은 그 김헌과 대립한다. 이미 뽑힐 사람이 정해져 있는 말 뿐인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던 이영은 정약용(안내상)의 조언으로 시험은 치르되 다른 시제를 냄으로써 시험의 초심을 공명정대하게 지켜낸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소소해 보여 이 사극이 보여주는 멜로와 견줘보면 그리 집중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이 사극의 이야기는 이영과 홍라온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가 거의 대부분이다. 남장여자라는 콘셉트는 내시와 여인 사이를 오가는 홍라온을 통해 이영과의 멜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장치다. 물론 홍라온이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멜로구도는 정치적 사안과 맞물려 긴장감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극의 특성상 그 이야기 역시 정치적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멜로적 긴장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이야기는 익숙한 것들이 어느 정도는 그 향방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그리고 그 뜨거운 반응의 중심에는 박보검과 김유정이 있다. 이 두 사람의 연기에 한 마디로 심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들의 연기가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토록 마법을 부리는 걸까.

 

사실 박보검은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그가 들어가는 프로그램마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응답하라1988>에서 그 연기가 주목받았다면 <꽃보다청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심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았다. 연기력과 심성. 이 두 요소는 요즘 드라마와 예능에서 가장 요구되는 자질들이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스틸사진>의 아역에서부터 <각시탈>, <원더풀 마마>, <참 좋은 시절>, <내일도 칸타빌레>를 거쳐 <응답하라1988>까지 꽤 많은 작품들에서 연기공력을 쌓았고, 파산으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쉽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연기 경험을 했던 것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점은 결과적으로 보면 연기자 박보검에게는 큰 자산이 됐다고 보인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이영을 연기하는 박보검은 여전히 아이 같은 순수한 눈빛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슬퍼 보이고 그러면서 때론 서슬 퍼런 왕세자의 눈빛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려보이지만 어른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그것이 꽤 슬픈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김유정 역시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박보검과 비슷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연기를 하며 성장해왔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3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벌써 연기경력이 10년이 되는 셈이다. 아역의 이미지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그것을 깨기 위해 최근 무던한 노력을 해왔다. <우아한 거짓말>이나 <앵그리맘>에서의 연기변신은 단적인 사례다.

 

아역이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성장통은 의외로 깊을 수밖에 없지만 놀라운 건 김유정은 아역 시절부터 벌써부터 성인역에 가까운 감정과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반인반수인 연이 역할을 연기하는 김유정이 그랬고, KBS단막 스페셜 <곡비>에서 기생 역할을 연기하는 그녀가 그랬다. 그녀에게도 박보검처럼 아이 같은 면면과 동시에 어른스러움이 갖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이런 남다른 필모그라피 덕분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면면을 갖고 있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서서 어른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박보검과 김유정의 눈빛이 더 아련한 느낌을 주는 건 당연하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살벌한 어른들 세계에 온전히 아이 둘이 서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지 않던가. 두 사람이 서로 애절한 눈빛을 나누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더 쥐어짜는 건 그래서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고 또 찾아보게 만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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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어쩌다 장편의 늪에 빠졌을까

 

도대체 한때는 드라마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리던 MBC드라마는 어째서 최근 들어 화제가 잘 되지 않는 걸까. 월화드라마로 자리한 <몬스터>는 총 50부작의 대작이지만 지금 시청률은 10% 정도에 머물고 있다. 화제성은 거의 제로나 마찬가지다. 이런 장편의 경우 40부가 넘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화제가 되기 마련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몬스터>는 지금 시청자들에게는 방영되고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한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W(사진출처:MBC)'

주말 드라마로 이병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옥중화>20%의 적지 않은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본래 이 시간대에 MBC 주말드라마가 심지어 막장 논란이 일어나곤 하는 자극적인 드라마들을 연달아 세우면서 늘 20% 이상의 시청률을 냈던 걸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그리 높다고도 할 수 없는 시청률이다. 게다가 <옥중화>는 극성이 셀 수밖에 없는 사극이 아닌가. 문제는 이 드라마 역시 그리 화제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보는 이들은 있지만 그만큼 열성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나마 MBC 드라마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건 수목드라마로 포진한 <W>. 이 드라마는 최근의 MBC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르게 도발적인 시도를 하고 있고 또한 그만한 성취를 거두고 있다. 심지어 지상파 드라마 같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W>MBC만의 성과라기보다는 지상파 드라마 전체의 성과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하지만 <W>의 성취가 MBC 드라마가 현재 처한 위기를 모두 상쇄시켜주는 건 아니다. <W>를 제외하고 나면 장편으로 포진된 MBC드라마들의 침체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벌어지게 된 것일까. 막장 논란이 벌어졌어도 한때 시청률과 화제성 만큼은 확실히 챙겨가곤 했던 MBC가 최근에는 시청률에 있어서도 또 화제성에 있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장편의 한계. 사실 MBC가 이렇게 장편을 월화에 또 주말에 배치하게 된 건 그것이 시청률을 가져가는데 있어 유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주몽> 시절을 떠올려보라. 거의 1년에 가깝게 MBC가 월화극의 지존으로 자리한 바 있고, 경쟁사들의 드라마들이 소리 소문 없이 묻히기 일쑤였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몬스터>를 보면 장편이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오히려 굉장히 버거운 덩치가 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 때 흥행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이병훈 감독의 사극 <옥중화> 역시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 건 장편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고, 그래서 시청자들도 새로운 이야기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연히 화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옥중화>50부작이 아닌 16부작이나 20부작 정도로 압축했다고 생각해보라. 훨씬 더 속도감 있고 밀도 있는 이야기전개가 가능했지 않았을까.

 

MBC가 그간 주말에 세워 막장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헤게모니를 잡았던 주말드라마들 역시 장편의 늪에 빠져 있다. 새로움이 없고 늘 비슷한 코드들을 약간 다른 소재 속에서 반복하다 보니 찾아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화제성도 빠지게 되었다. 그게 그거 같은 드라마들로 시청자들에게 여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장편의 가장 큰 한계는 새로운 제작진이 투입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결국 드라마는 젊은 PD들의 참신한 시도들이 계속 실험될 수 있는 장 위에서 어떤 발전적인 양상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장편이 이렇게 월화, 주말에 포진되고 나면 거의 반년 넘게 몇몇 제작진에게만 일이 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장편의 늪이 오래 지속되면 신진 PD들의 발굴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되어버린다.

 

장편이 시청률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방송사의 드라마 전체에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잘 될 때는 좋을지 몰라도 잘 되지 않으면 그 덩치 때문에 폐해도 몇 배로 생겨난다. MBC드라마가 과거 같은 드라마 공화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앞으로라도 장편보다는 미니시리즈를 통한 새로운 실험에 과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W>가 그나마 보여주고 있는 성과를 주목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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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무게감 주는 이준기와 강하늘의 존재감

 

이준기와 강하늘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는 사극이지만 청춘 로맨스의 가벼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여주인공 해수(이지은)는 현대에서 고려 시대로 넘어간 인물이다. 그러니 그 옛 시대의 감성들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황궁에서의 말투는 물론이고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사진출처:SBS)'

그래서 해수는 현대인의 자유로움을 통해 이 무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낸다. 황자들은 그런 그녀의 자유분방함에 시선을 빼앗긴다. 청춘 로맨스는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사극의 진지함을 깨고 들어오는 가벼움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너무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태조 왕건이 나오는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너무 장난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 같은 사극은 그래서 그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가벼움으로 흘러버리면 사극 특유의 진지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다고 그 진지함을 고수하다 보면 청춘 로맨스의 달달함과 코믹함이 주는 웃음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에서 가벼움을 주는 존재들은 해수를 비롯해 10황자 왕은(백현) 14황자 왕정(지수) 같은 인물들이다. 여기에 13황자 왕욱(남주혁)도 한 몫을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딘지 숨겨진 슬픔 같은 게 묻어난다.

 

<달의 연인>이 초반부에 가벼움을 먼저 보여준 건 전략적인 실패로 보인다. 갑자기 황자들 속에 뚝 떨어진 해수의 이야기부터 <달의 연인>은 너무 사극 같지 않은 가벼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가벼움을 드러내는 존재들인 해수나 왕은, 왕정, 왕욱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딘지 사극에 잘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건 이 사극의 초반 약점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이 가벼움 속에서 사극 특유의 어떤 진지함과 무게감을 세운 건 4황자 왕소(이준기)8황자 왕욱(강하늘)이었다. 이 두 사람이 있어 <달의 연인>은 사극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왕소가 일찍이 어머니인 황후 유씨(박지영)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채 황궁 밖으로 내쳐져 신주 강씨 집안의 양자로 자라온 인물. 그는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늑대개의 거친 삶을 살았다. 3황자 왕요(홍종현)가 정윤 왕무(김산호)를 살해하려는 걸 막아내면서 왕소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왕욱은 왕소와는 상반되게 차분하고 자상한 인물이다. 고려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해수를 돕고 또 보호해주는 인물. 그 특유의 차분함은 사극이 가지는 진지함을 잡아내면서 또한 조금씩 해수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사극에서의 멜로도 해수를 사이에 두고 왕욱과 왕소가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연기력에 있어서도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건 바로 이 왕소와 왕욱 역할을 연기하는 이준기와 강하늘이다. 이준기와 본래 사극연기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까지 모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지만, 강하늘의 안정감 있는 연기 역시 돋보인다.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노려보는 이준기의 눈빛과 부드럽고 자애로워 보이지만 한층 무게감이 느껴지는 강하늘의 눈빛. <달의 연인>이 그래도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두 인물 덕분이다.

 

<달의 연인>은 첫 단추가 잘 꿰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어떤 반전의 기회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준기와 강하늘, 이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존재감과 매력이 아닐까. 작품이 가진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충분히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갈 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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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 사극도 현대극도 심각함도 코믹도 멜로도 되네

 

확실히 박보검은 준비된 연기자다. 이것은 이미 tvN <응답하라1988>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가 연기했던 최택이라는 천재기사의 캐릭터는 청춘 특유의 밝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아버지와 둘이 살아가며 바둑이라는 승부의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인물의 날카로움과 어두움도 갖고 있었다. 어눌한 듯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지만 어떤 순간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사의 면면까지. 한 캐릭터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의 새로운 작품,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도 박보검의 연기는 확실히 출중하다. 물론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한 사극이지만, 사극 어투는 연기자들도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박보검이 연기한 왕세자 이영이라는 인물은 첫 등장부터 사극이 갖는 특유의 어투들을 잘 소화해냈고, 그러면서도 그걸 살짝 무너뜨림으로써 캐릭터의 코믹함과 긍정적인 성격을 동시에 보여줬다. 주상이 시찰하러 오자 술술 고전들을 외워보였지만 바람이 미리 적어둔 답변들을 날려버림으로써 그 진지한 척 했던 인물의 허당스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던 것.

 

물론 이영의 이런 허당기는 그 진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정의 실세로서 권력을 틀어 쥔 영의정 김헌(천호진)은 향후 이영과 대결구도를 이룰 인물이다. 학문을 게을리 하며 어딘지 왕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영이 사실은 허허실실하고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점은 <응답하라1988>에서의 최택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최택이 진지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뒤에 덕선(혜리)에 대한 사랑을 숨기고 있었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은 허허실실 유쾌하고 웃는 얼굴 뒤에 조정을 걱정하는 진지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하지만 역시 박보검의 연기가 빛나는 건 뭇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드는 멜로 연기다. 이미 첫 회부터 남자여자로 등장한 홍라온(김유정)과 인연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이영은 이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인 사극의 주요 색채를 멜로로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궁에까지 들어온 홍라온은 향후 이영과 다시 만나 조정을 농단하는 자들과 대립하며 사랑을 이어가게 되지 않을까. 자칭 연애 상담사인 홍라온이 정작 자신이 이영에게 빠져드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른바 <응팔>의 저주라고 불리는 건 이 드라마에서 배출된 연기자들이 다른 드라마에서는 어쩐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데서 나온 이야기다. <딴따라>에 출연했던 혜리가 그렇고, <운빨로맨스>에 출연했던 류준열이 그랬다. 그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고아라, 손호준, 유연석이 모두 새로운 드라마에 투입되었지만 별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박보검만은 이 <응팔>의 저주에서 예외가 될 듯싶다. 그것은 박보검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온전히 준비된 연기자로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갈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대극은 물론이고 사극도 되고, 심각함과 코믹 나아가 멜로도 되는 연기의 면면을 박보검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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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의 폭주, 어째서 막장이 떠오를까

 

SBS 월화사극 <대박>이 폭주하고 있다. 그 폭주는 이인좌(전광렬)의 폭주를 닮았다. 그가 연령군(김우섭)을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이 사극이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걸 말해준다. 연령군이 누군가.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비록 서자지만 숙종이 그토록 아끼던 자식이 아닌가. 그런데 일개 이인좌 같은 인물의 폭주에 의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너무 과한 허구다.

 

'대박(사진출처:SBS)'

이인좌라는 인물 역시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이런 설정은 지나치다. <대박>은 이인좌라는 인물의 힘이 중요한 게 사실이지만, 너무 이 인물을 크게 그려놓았다. 연잉군(여진구) 따위는 애송이로 바라보는 존재이며 심지어 한 나라의 임금인 숙종과도 대적하는 엄청난 존재다. 이제는 왕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찔러 죽이는 희대의 인물로 그려졌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허구조차도 개연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박>의 여주인공은 담서(임지연). 그런데 담서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또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사실은 이인좌라는 걸 알고 있는 담서는 복수를 하려던 인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숙종의 명을 받고 이인좌를 죽이러 온 김체건(안길강)의 앞을 그녀가 막아선다. 그가 자신을 제자로 삼은 것만은 진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그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기꺼이 김체건의 칼에 맞아 죽으며 이인좌를 살려달라고 말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물의 일관성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걸 보고 역시 이인좌를 처단하기를 그토록 원해왔던 백대길(장근석)이 구생패를 던지며 갑자기 그를 살려달라고 김체건에게 말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갑자기 살인검 활인검이야기를 꺼내며 담서가 목숨을 걸고 부탁한 일인데 그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일관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보다. 모든 비극이 이인좌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대길이 담서의 죽음과 부탁(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으로 이렇게 이인좌를 살려 달라 하는 대목이 이해될 수 있을까.

 

앞서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대길의 아버지 백만금(이문식)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며 돌아오는 이야기에서도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주인공으로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이 가능했을 담서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대목에서는 작품이 너무 쉽게 인물을 죽이고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박>에도 일종의 데스노트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다른 게 막장이 아니다. 충분히 납득될 만큼의 개연성이 없는 것, 인물의 일관성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궁극에는 인물들이 마치 작가의 노리개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런 전개가 바로 막장이다. 이런 막장이 목적하는 건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아니라 자극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줘 주목을 끌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자극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박>의 시청률은 결국 8.5%(닐슨 코리아)로 월화극 꼴찌로 전락했다. 시청률에서 유리한 사극이고, 장근석,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쟁쟁한 캐스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폭주하는 이야기 때문이다. 연기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개연성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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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의 무리수, 운빨에 맞춰버린 전개라니

 

역사를 상상력으로 재해석하거나 바꾸는 건 이제 그다지 큰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역사 왜곡의 문제가 어느 선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따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SBS <대박>이 그리는 다소 무리한 전개들, 이를테면 숙빈 최씨(윤진서)가 도박에 빠진 남편이 있었다거나, 그 남편 백만금이 숙종(최민수)과 도박을 벌여 숙빈 최씨를 얻었다거나 하는 것 같은 설정은 차치해두고 이야기하자.

 

'대박(사진출처:SBS)'

하지만 드라마가 내적 개연성을 따라가기보다는 너무 인위적인 흐름이 느껴지는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다. 숙종의 명으로 이인좌(전광렬)가 형장에까지 나오게 되고 형 집행이 막 벌어지려는 그 순간 마침 숙빈 최씨가 사망하면서 집행이 유보되는 이야기는 너무 인위적이다.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이 그토록 노력해 잡은 이인좌가 아닌가. 하지만 그가 거의 죽음 직전에 살아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운이 좋아서다.

 

어쨌든 <대박>이라는 드라마가 도박을 다루고 그래서 운이라는 것이 중요한 동기나 결과에 작용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적 상황을 애써 만들어놓고 그저 운이 좋아 인물을 살린다면 거기에 몰입해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이인좌라는 인물이 억세게 운이 좋은 인물이니 그렇게 살아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드라마가 운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합당한 근거와 이유들을 대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운이라는 것이 그저 하늘에서 점지해준 어떤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우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의 행동과 부딪침, 그로 인해 생겨나는 화학작용 등을 좀 더 세세하게 다뤄주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더 흥미진진함을 안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사극이 그리고 있는 숙종은 그 캐릭터만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신하들과 세자는 명분을 찾지만 숙종은 그저 명령한다. “짐이 말하고 있노라하고 엄포를 놓으면 그 많은 신하들의 반대는 그대로 수그러든다. 그토록 이인좌를 붙잡을 명분을 찾기 위해 대길과 연잉군이 고생을 했지만 숙종은 한 마디로 명분 따윈 필요 없다며 당장 그를 잡아넣으라고 명하고, 며칠 후 능지처참시켜버리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숙종 앞에 그간 유약함을 보이던 경종(현우)이 이인좌의 형 집행을 유보시키고 그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대노한 숙종은 칼을 뽑아 들고 경종을 향해 다가와 죽고 싶으냐며 으름장을 놓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순간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버린다. 그간 지병을 앓고 있던 것이 마침 그 순간 터져버린 것이지만, 이런 전개 역시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우연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런 우연의 반복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굴러가기보다는 작가에 의해 개연성 없이 전개되는 걸 계속 보다보니, 이미 죽은 걸로 알고 있던 대길의 아버지 백만금(이문식)을 다시 살려놓은 것 역시 작가의 인위적인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애초에 백만금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복선을 우리는 과연 봤던가. 갑자기 이인좌가 감옥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죽었던 인물을 다시 살려놓은 느낌이다. 대길에게 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자신을 살려내라고 엄포를 놓는 이인좌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이야기 전개가 어떤 내적 개연성으로 흐르지 않고 작가의 자의적인 의도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은 <대박>에 시청자들이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굉장한 일에 빠져든 듯 진지하지만 그들은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룡은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저마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대박>의 인물들은 심지어 대길이나 연잉군도 그리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들 캐릭터가 스스로 가진 내적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무언가에 의해 휘둘리거나 열심히 능동적으로 움직이려 했는데 사실 알고 보면 이인좌의 손바닥 위라는 걸 발견하고는 허탈해한다. 그들이 느끼는 허탈함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열심히 몰입해 들여다봤는데 그게 그들 캐릭터의 내적 힘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손바닥 위에서 감정놀음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시청자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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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보다 소시민적 삶에 공감한 대중들

 

월화극의 대결구도는 이제 12소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애초 예상은 그 1강이 SBS <대박>이었다. 사극인데다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MBC <몬스터> 역시 만만찮은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황후>, <자이언트> 같은 대작을 성공시켰던 장영철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강은 가장 약할 것으로 여겨졌던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에게로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든 것일까.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먼저 <대박>은 예상과 달리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아니라 오히려 비교점을 만들면서 힘이 빠졌다. 무언가 강렬한 극적 상황들이 계속 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사건과 사건이 맥락없이 연결되어 힘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무려 여섯 명의 주인공을 세워두고 여러 사건들을 겹치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힘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 개국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박>의 대길(장근석)이나 연잉군(여진구)이 그토록 이인좌(전광렬)와 대결하는 그 과정들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가 애매모호하다. 물론 대길은 복수하려는 것이고 연잉군은 날개를 펼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그런 사적인 욕망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들에 몰입하고 그들의 사적 욕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시청자들이 갖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표가 지금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만큼 공적이어야 한다. 이런 목표제시가 제대로 공감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대박>은 그저 도박과 복수극의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50부작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를 강기탄(강지환)이라는 인물의 복수극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소소한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그다지 마음이 얹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기탄이 싸우고 있는 도도그룹이라는 세력이 보통의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가 이 드라마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강기탄의 복수극은 마치 현실이 아닌 게임처럼 여겨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연수과정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드라마가 아닌 만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몬스터>의 최대 약점은 이 안에 배치된 많은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너무나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시력을 잃어 오히려 청력이 좋아진 이국철(이기광)이었을 때만 해도 그 주인공은 참신한 면이 있었지만 강기탄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마저 사라졌다. 도도그룹의 연수 최종 미션이었던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강기탄이 증인인 오승덕을 법정으로 데려와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너무 깊이 없이 다뤄져 마치 하나의 가상극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들어와도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거대담론의 거창함을 피하고 동네변호사라는 소시민적 삶으로 내려옴으로써 오히려 공감대를 넓혔다. 물론 이 드라마도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아버지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라든가 악덕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의 입장 혹은 아버지로서의 조들호의 이야기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대중들은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소시민적인 삶의 이야기에 더 공감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시작일 뿐일 것이다. <대박>24부작이고 <몬스터>는 무려 50부작이다. 그러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만일 <대박>이나 <몬스터>가 이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다면 자잘한 이야기 전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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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들이 분명한 드라마들, 남은 건 채워주는 연기력

 

월화드라마의 경쟁이 한 치 앞도 모를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작은 SBS <대박>이 시청률 1위로 치고 나갔지만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조금씩 시청률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박>을 앞질렀다. MBC <몬스터>는 지금까지 3사 대결에서 계속 꼴찌 시청률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시청률이 나아지는 양상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몬스터>가 언제 또 수위로 치고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이 흐름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즉 방영 전까지의 액면으로 보면 <대박>이 단연 셀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사극인데다가 도박이라는 소재를 담고 있다. 게다가 장근석이나 최민수, 전광렬 같은 배우들의 면면도 확실히 끄는 매력이 있다. 그러니 <대박>이 첫 시청률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런 요소들이 만들어낸 기대감 덕분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호불호는 당연히 나눠진다. 사극이라고는 하지만 상상력이 가미되어 어떤 면으로 보면 역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덜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역대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은 숙종은 처음이라며 상찬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게 너무 과하게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부인이었다가 도박으로 숙종의 빈이 된 숙빈 최씨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래도 <대박>의 힘은 여전히 세다. 한번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시청자라면 계속 어떤 전개가 나오게 될지 궁금해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한 장근석의 연기변신은 칭찬할만하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처음부터 확 땡기는 드라마는 아닐지 몰라도 각성한 인물이 억울한 이들의 편에 서서 변호를 해나간다는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끌리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웹툰이 원작이라고 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많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거의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던진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의 장면들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그걸 잘 채워주는 박신양이라는 연기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물론 조들호라는 캐릭터에 의지하는 면이 많지만 박신양이라는 연기자의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몬스터> 역시 강점과 약점이 분명하다. 강점은 장영철 작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전개의 힘이다. 복수극이라는 틀을 갖고 있어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갈 지는 뻔하다. 하지만 장영철 작가는 이 정해진 결말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의 재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역시 비현실적이고 나아가 만화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사극과 무협의 틀을 현대극으로 가져온 듯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 역시 이런 약점들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있다는 점이다. 이기광이 초반에 확실히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냈다면 그 힘을 강지환이 잘 이어가고 있다.

 

결국 월화드라마가 어느 한 작품이 확고한 선두를 치고 나가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하게 된 건 압도적인 작품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마다 강점도 있지만 약점 또한 분명하다. 그래서 주목되는 건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채워주는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월화드라마의 대결은 이제 연기력 대결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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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시청률 급상승, 이기광이 만들어낸 기대감

 

MBC 월화드라마 <몬스터>에서 이기광은 단 2회만 출연했다. 그리고 그의 성인역할로서 강지환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단 2회 출연이고 이미 성인 역할로 교체되었다고 해도 이기광이 이 드라마에 만들어낸 기대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3회에 <몬스터>가 시청률 9.5%(닐슨 코리아)로 급상승하며 SBS <대박>(11.6%)KBS <동네변호사 조들호>(10.9%)를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었던 건 이기광의 공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몬스터(사진출처:MBC)'

장영철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몬스터> 역시 사극 같은 스토리 구조들을 그 바탕으로 깔고 있다. 현대극이지만 어찌 보면 사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설정들이 눈에 띈다. 도도그룹이 일종의 궁궐이라면 그 총수인 도충(박영규)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역할이고 그의 아들인 안하무인 도광우(진태현)와 첩실 소생인 도건우(박기웅)가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사극 속 궁중 권력투쟁의 구도다. 여기에 가신들로 들어가 있는 야심가 변일재(정보석)나 문태광(정웅인) 같은 인물들의 대결구도도 사극의 그것처럼 흥미롭다.

 

여기에 화평단이라는 비밀조직을 통해 무협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MK2 변종바이러스라는 요소는 무협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지만 그로 인해 힘을 얻게 되는 기보 같은 역할을 갖고 있다. 국철(이기광)이 변종바이러스의 유일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바닥에 떨어져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후에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화평단의 옥채령(이엘)이 그의 면역혈청을 사는 대가로 그를 부활시키는 것. 물론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청력이 좋아지는 이야기 역시 무협적인 요소다.

 

<몬스터>는 현대극이지만 조금은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 요소들을 갖고 있다. 시력을 잃은 채 청력만으로 교도소에서 자신을 바닥으로 추락시킨 인물에게 복수하고 탈출하는 이야기나,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복수를 꿈꾸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전형적인 무협지 이야기다. 3회에 강기탄(강지환)으로 이름을 바꿔 돌아온 국철이 도도그룹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연수를 받는 모습 또한 그렇다. 그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만화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야기인데다가 그 결말도 대체로 정해져 있는 뻔한 복수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낸 건 바로 이제 몇 차례 연기 도전을 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기광의 연기 몰입이 좋았기 때문이다. 번듯이 잘 살아가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과정을 이기광은 절절하게 연기해냈다.

 

특히 결코 쉽지 않은 시력을 잃은 국철이라는 캐릭터를 이기광은 잘 소화해냈다. 시력을 잃고 절망하면서도 차정은(이열음)에게 살짝 마음을 여는 모습에서는 그 연기에 섬세함마저 느껴졌다. 이기광이 만들어낸 이런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지환으로 그 힘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힘을 강지환이 얼마나 더 살려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이기광이 그 밑바탕이 되는 판만은 확실하게 깔아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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